유통
중동 리스크에 흔들린 에너지 공급망...식품·주류업계,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 [에너지 전쟁, 중동 쇼크 그 이후]④
- 유가 상승·공급망 불안 장기화…비용 구조 압박 현실화
태양광·PPA 확대…“ESG 넘어 생존 전략으로”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지속되면서 국내 식품 및 주류업계가 에너지 자립과 안보를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여겨졌던 재생에너지 도입이 이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에너지 관리 전략으로 급부상하는 모습이다.
불안한 중동 정세...불어나는 에너지 비용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이란에 군사 공격을 단행하면서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졌다. 이 과정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제한 조치가 이뤄지며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가 현실화됐다.
중동 쇼크로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절반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원유 수입량은 10억2800만배럴이다. 이 가운데 중동산 원유 비중은 70%에 달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80%를 웃돌던 과거 대비 개선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다.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면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급증한다. 에너지 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종결 시점이 길어질수록 국제유가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4월 말 봉쇄 종결 시 예상되는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배럴당 160달러(약 23만5700원)다. 이는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사례도 존재한다. 한국은 ▲1973년 10월 1차 석유파동 ▲1979년 1월 2차 석유파동 ▲1990년 8월 걸프전 등으로 에너지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특히 전쟁 및 이란 금수 조치(교류 중단)가 원인이 된 2차 석유파동 당시에는 국제유가 상승률이 148%까지 뛰었다. 이후 유가가 원상 복귀되기까지 85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
중동 정세 불안 시 한국 기업들의 유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더 클리메이트 그룹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실질 전환율은 약 12% 수준이다. 이는 글로벌 평균치(40~5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에너지 비용에 민감한 물류업계에서는 인프라 부족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임대 물류센터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구축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전동화 차량도 소형차 중심이기 때문에 물류업계 적용이 쉽지 않다. 그동안 정부 정책과 인프라 모두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 빨라진다
물론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의 연장선으로 최근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처럼 정부가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적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가져가면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태양광이다. 국내 기업들은 최근 자체 생산시설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농심은 올해 포승물류센터 부지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할 계획이다. 회사는 이미 인천복합물류센터와 아산공장에 관련 설비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농심 관계자는 “고효율 설비에 대한 투자를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제고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로 에너지 전환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은 오는 2027년 완공 예정인 진천통합센터 등에 적용할 중장기 재생에너지 활용 목표를 연내 재정립할 계획이다. 회사는 현재 청주 및 익산공장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구축해 활용 중이다.
오비맥주도 재생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다. 지난해 이천·청주·광주 3개 공장에 태양광 발전 설비 구축을 완료해 재생에너지로 맥주를 제조하는 국내 최초의 주류기업이 됐다. 회사의 올해 1분기 기준 전체 전력 대비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광주공장 13.5% ▲이천공장 4.1% ▲청주공장 3% 수준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나머지 전력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 현재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진행을 검토 중”이라며 “추가적으로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일 수 있는 전략도 수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효율을 기존보다 더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기업의 전력 효율화를 유도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며 “다만 그것은 절대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생에너지 전환은 기업 입장에서 변동성 관리 비용과 추가 투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무조건적인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양해야 한다. 기업이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가격 체계와 인센티브, 전력 시장 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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