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AI 전쟁의 진짜 승부처는 ‘버티컬’…인류 난제 풀까 [스페셜리스트 뷰]
- 범용 AI에서 산업 맞춤형 AI로 중심 이동
신약·제조·금융까지…특화 훈련된 AI가 문제 해결 앞당겨
데이터와 도메인 결합이 경쟁력 좌우
지난 250년 혁신의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의 진정한 폭발력은 언제나 ‘버티컬(Vertical)’, 즉 산업별 특화 영역에서 터져 나왔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철도와 방직기를 낳고, 에디슨의 전기가 공장의 생산 공정 자체를 재설계했으며, 팀 버너스-리의 인터넷이 아마존과 넷플릭스라는 도메인 특화 플랫폼을 탄생시켰듯 말이다. 지금의 GPU와 거대언어모델(LLM)이 수평적 기반 기술이라면, 다음의 빅 웨이브는 의료·법률·제조·금융 등 각 도메인의 심층 데이터와 지식으로 특화 훈련된 버티컬 AI다. 이 스페셜리스트들이야말로 인류가 수십 년간 풀지 못했던 난제들을 단숨에 풀어낼 진짜 열쇠다.
버티컬 AI가 풀어낸 인류의 난제들
버티컬 AI가 단순한 산업 트렌드를 넘어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은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 사례에서 극적으로 증명된다. 50년 이상 생물학자들을 좌절하게 했던 ‘단백질 접힘 문제’를 AI가 단숨에 풀어낸 것이다. 2억 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 예측에 성공한 AlphaFold의 성과는 2024년 10월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으로 이어지며, AI 연구가 노벨 과학상을 받은 역사상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이로 인해 평균 10~15년이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이 대폭 단축되고 있으며, 임상 1상 성공률 역시 획기적인 상승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생명과학 버티컬 AI의 또 다른 주역은 거대 제약사 노바티스(Novartis)와 팔란티어(Palantir)의 협력 사례인 데이터42(DATA42)다. 팔란티어의 온톨로지(Ontology) 플랫폼 위에서 구동되는 DATA42는 수십 년간 파편화되어 있던 막대한 임상 시험 데이터를 하나의 의미적 관계망으로 연결했다. 그 결과 AI 에이전트가 약물 용량과 반응의 관계를 실시간으로 예측하고, 머신러닝으로 수십억 개의 가상 분자를 탐색하는 혁신이 가능해졌다. 시장은 이를 단순한 데이터 플랫폼이 아닌, 버티컬 산업의 복잡한 ‘관계성 지도’를 그려내는 대체 불가한 인프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AI, 어떻게 버티컬의 문제를 풀 것인가
수많은 AI 프로젝트 현장을 경험하며 얻은 결론은 명확하다. 버티컬 AI의 성공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데이터 간의 ‘관계성(Ontology)’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존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RDBMS)가 단순한 외래키(ID)로 테이블을 연결하는 ‘구문적’ 관계라면, 온톨로지나 지식 그래프는 “환자가 이 약을 복용 중이다”, “이 성분은 저 성분과 상호작용한다”는 식으로 구조 자체에 ‘의미(Semantic)’를 내포한다. 이 근본적인 차이 덕분에 AI가 스스로 복잡한 도메인 지식을 다단계로 탐색하고 추론할 수 있으며, 이는 팔란티어가 엔터프라이즈 운영체제로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비결이기도 하다.
데이터의 관계성을 확보했다면 다음은 프로세스와 플랫폼의 결합이다. 인간 중심의 고정형 워크플로우는 한계에 달했다. 이제는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며 학습하는 AI 에이전트와 레거시 시스템, 그리고 결정적 판단을 내리는 인간이 협력하는 ‘에이전틱 플로우(Agentic Flow)’ 기반의 하이브리드 프로세스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는 GPU 인프라와 도메인 특화 LLM을 필두로, 검색증강생성(RAG), 디지털 트윈 공장 시뮬레이션, 멀티모달 비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휘하는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에 이르는 ‘7층 기술 스택’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버티컬의 난제들을 하나씩 타파하고 있다.
버티컬 AI, 인류의 미래
나의 커리어는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인공지능을 전공하며 시작됐다. 졸업 후 통신용 미들웨어 솔루션을 개발하며 프로그래밍 일에 푹 빠졌고,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웹서비스, 오라클, SAP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거쳤다. 그곳에서 금융, 제조, 국방, 유통 등 다양한 버티컬 산업에 세계적 기업들이 어떻게 침투하여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지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업의 난제들은 점점 더 복잡해졌고, 이를 돌파하기 위한 기술의 진화 과정 역시 뼈저리게 체감하며 실력을 탄탄히 쌓아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솔트룩스에서 AI 혁신센터를 운영하며 마주한 현실은 과거 20년의 경험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고객사들이 가져오는 도메인 전문성과 문제의 난이도는 단순한 챗봇이나 자동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우리는 루시아(Luxia) LLM 3.5, 최고 등급을 받은 루시아 온 어플라이언스, A.RAG, 그리고 글로벌 300만 가입자를 돌파한 구버(Goover) 플랫폼 등 솔트룩스의 풀스택 AI 기술력을 투입했다. 39건에 달하는 국내 최다 온톨로지 특허와 범국가 프로젝트인 K-문샷 참여 역량이 고객의 딥 도메인 지식과 결합되는 순간, 수십 년 묵은 산업의 난제들이 실질적인 지능형 솔루션으로 풀리는 것을 목격하며 버티컬 AI가 인류의 미래라는 확신을 굳히게 되었다.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고려 말의 과학자 최무선은 당시 중국이 국가 기밀로 철저히 통제하던 화약 제조법을 끈질긴 독자 연구 끝에 알아냈다. 그는 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기술 장벽을 돌파해 냈으며, 그렇게 만든 화포로 진포대첩에서 국가를 위기에서 구했다. 이는 오늘날 글로벌 빅테크의 범용 AI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만의 도메인 데이터로 ‘소버린 AI(Sovereign AI)’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버티컬 AI 시대의 명제와 완벽하게 겹친다.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실용적인 해법으로 한계를 돌파하는 기술 독립의 DNA가 우리 역사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혁신 DNA는 1446년 세계 유일의 과학적 언어 설계로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측우기와 해시계를 만든 장영실, 실학 정신으로 거중기를 개발해 수원화성 축조를 혁신한 정약용, 그리고 방대한 의학 지식을 체계적으로 온톨로지화한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반도체, 조선, K-문화, 원전 기술 등 수많은 버티컬 영역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누적 수출 7000억달러 시대를 연 바탕에는 바로 이 멈추지 않는 실용 혁신의 유산이 흐르고 있다. 81.4%라는 압도적인 AI 도입 의향률 역시 이 나라의 기술 수용성이 얼마나 역동적인지를 보여준다.
물론 현실은 냉정하다. 2025년 3분기까지 한국이 유치한 AI 벤처 투자는 전 세계의 단 1%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한국 정부는 2025년 10조 원 규모의 대대적인 AI 전환 계획을 발표했고, AI로 신약 개발 속도를 10배 앞당기겠다는 K-문샷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었다. 국내 버티컬 AI 기업들은 사이버보안, 헬스케어, 제조업 분야에서 특화된 솔루션으로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선조들이 당대의 기술적 한계를 돌파하며 새 시대를 열었듯, 한국은 지금 버티컬 AI라는 새로운 도구로 인류의 난제를 풀어낼 잠재력이 충분한 나라다.
버티컬 AI,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
2025년을 지나 올해 상반기를 지나오며, AI는 더 이상 빅테크 기업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글로벌 AI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그 거대한 파도의 중심에는 각 산업의 특수성을 깊이 이해하는 버티컬 AI가 자리 잡고 있다. 샘 알트만이 예견했던 대로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AI 에이전트들은 이미 노동 시장 깊숙이 진입해 기업의 생산성과 아웃풋의 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이다. 단백질 접힘의 비밀부터 암 조기 발견, 그리고 기후 변화 대응까지 버티컬 AI는 인류가 오랜 세월 풀지 못했던 문제들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산업 현장에서, 치열한 연구실에서 버티컬 AI는 조용하지만 불가역적으로 세상을 혁신하고 있다. 증기기관이 산업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고 전기가 공장의 생산 방식을 재정의했듯, 버티컬 AI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속도와 깊이로 미래를 다시 쓰고 있다.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기 앞에서 우리의 선택지는 단 하나다. 버티컬 AI라는 이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 주도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아니면 도태되어 휩쓸릴 것인가. 그 대답은 바로 지금, 우리가 각자의 도메인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는 고려대학교에서 전산학 전공.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웹서비스, 오라클, SAP 등 글로벌 빅테크에서 금융, 제조, 공공, 통신, 바이오·제약, 온라인 등 다양한 버티컬 산업의 시스템 개발 전문가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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