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K콘텐츠 열광하는데…국내 미디어 생태계는 ‘벼랑 끝’
- 치솟는 제작비 vs 줄어드는 공급 대가…콘텐츠 기업 수익성 악화
“정부 조정위 등 근본적 해결책 시급”
최근 대형 콘텐츠 제작사 및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까지 수백억원대 유동성 위기를 겪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K-콘텐츠 산업의 취약한 수익 구조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구조가 지속될 경우 콘텐츠 투자 위축은 물론 제작 기반 약화로 이어져 국내 미디어 산업 전반의 경쟁력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제작비 오르는데 콘텐츠값은 내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2025 회계연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에 따르면 국내 PP 업계 수익성은 수년째 악화하고 있다. 전체 영업이익은 최근 몇 년간 적자를 지속하다 지난해에야 적자를 면했다. 지상파 계열을 포함한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들의 방송 사업 손익은 이미 적자로 돌아섰거나 적자가 지속되는 등 경영 체력이 크게 약화한 상태다.
업계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것은 제작비와 프로그램 사용료의 격차다. 공표집에 따르면 PP 평균 제작비는 2021년 128억원에서 2025 회계연도 152억원으로 약 18.8%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SO(케이블TV)가 PP에 지급한 프로그램 사용료는 약 2.5% 감소했다. 제작 원가는 오르는데 콘텐츠 공급 대가는 오히려 줄어드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PP 업계의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구조는 콘텐츠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6월 콘텐트리중앙이 수백억원 규모의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것은 콘텐츠 산업이 직면한 투자 회수 구조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문제의 핵심은 콘텐츠 가치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내 유료 방송 시장에서는 SO와 PP가 프로그램 사용료를 협상을 통해 결정하지만, 실제 협상력은 플랫폼 사업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PP 업계 관계자는 “가입자 감소와 홈쇼핑 송출수수료 축소 등으로 플랫폼 사업자의 경영 부담이 커지면서 콘텐츠 사용료 인상이 억제되거나 일부 삭감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며 “결국 비용 절감 부담이 콘텐츠 공급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일부 플랫폼 사업자가 자체 채널 평가를 근거로 프로그램 사용료를 조정하거나 채널 재계약 과정에서 콘텐츠 사업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특히 PP 업계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홈쇼핑 송출수수료 계약에서는 적정 대가와 계약 안정성을 강조하면서도 콘텐츠 사용료를 산정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LG헬로비전 등 일부 SO와 PP 간 프로그램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는 것도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플랫폼 사업자들은 콘텐츠 사용료가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케이블TV협회 차원에서 마련한 콘텐츠 대가 기준에 따라 방송 매출과 시청률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프로그램 사용료를 합리적으로 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SO 업계의 재무 상황도 녹록지 않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2024 회계연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에 따르면 케이블TV 영업이익은 2015년 4056억원에서 2024년 148억원으로 10년 만에 96.4% 감소했다. 가입자 감소와 ARPU(가입자당 평균매출) 하락에 더해 과거 주 수입원이던 홈쇼핑 송출수수료도 TV 시청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결국 유료방송 시장 자체가 가입자 감소와 OTT 확산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제한된 수익으로 비용 효율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SO 업계의 입장이다.
“임시 봉합 반복으로는 안 돼”
전문가들은 콘텐츠 사용료 갈등을 개별 사업자 간 분쟁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한다. 유료 방송 가입자 감소와 광고시장 침체, OTT 확산 등 시장 환경의 변화 속에서 콘텐츠 제작과 유통 구조 전반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 사용료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콘텐츠 가치에 대한 SO와 PP의 인식 차이로 적정 배분 기준을 둘러싼 논란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협의체와 연구반을 운영하며 중재에 나섰지만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협상을 통해 임시 봉합하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프로그램 이용료와 광고비 수익, 송출수수료 등 미디어 기업의 주요 수입은 줄어드는 반면 물가 상승과 제작비 증가는 계속돼 업계 전반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며 “분쟁이 장기화할수록 시장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장에 갈등이 누적되기 전에 조정위원회 등을 통한 정부나 관계자의 개입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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