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AI 버블’ 논쟁에 흔들린 반도체…‘삼전닉스’ 내년까지 갈까
- [반도체 피크아웃, 시험대 올랐다]②
HBM 고점론에 차익실현 쏟아져
증권가는 “AI 투자 사이클 아직 초기”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최근 국내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반도체주 급등락의 배경으로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이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이른바 ‘AI 버블’ 논쟁이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시장에서는 메모리 슈퍼사이클 ‘피크아웃’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국내외 전문가들은 AI 인프라 투자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조정을 추세적인 하락으로 해석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피크아웃' 논란에 흔들린 코스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 6월 19일 장중 9385.5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극심한 변동성을 이어가고 있다. 종가 기준으로 5% 이상 하락한 장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코스피는 6월 23일 9.99% 급락한 데 이어 ▲7월 2일 -7.89% ▲7월 8일 -5.35% ▲7월 13일 -8.95%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특히 7월 13일에는 유가증권시장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면서 올해 들어 일곱 번째 거래 중단이 발생했다. 다음 날인 14일에도 장중 5.62%나 하락했다가 장 막판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0.72% 상승 마감하며 하루에도 급등락이 이어졌다.
이번 조정의 중심에는 반도체주가 있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투자 확대 기대감에 힘입어 올해 코스피 상승을 주도했지만, 최근 들어 AI 투자 둔화 우려가 부각되면서 가장 먼저 차익실현 대상이 됐다.
시장 불안을 키운 것은 국내외에서 잇따라 제기된 반도체 고점론이다. 국내에서는 SK하이닉스의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시장에서는 AI 설비투자가 둔화될 경우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수요 증가세도 함께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AI 서버 증설 경쟁이 메모리 가격 상승과 실적 개선을 이끌어 왔지만,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속도가 늦춰질 경우 메모리 업황도 예상보다 빨리 정점을 통과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AI 관련 기업들의 높은 밸류에이션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업종이 향후에도 현재 수준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고평가 논란과 함께 차익실현 움직임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185만원까지 낮춘 BNK투자증권도 이런 이유로 “하이퍼스케일러들의 경쟁적인 인프라 투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최근 메타가 프런티어 모델을 포기하고 잉여 인프라를 외부 판매로 돌렸는데, 자금 조달의 어려움과 성과 불확실성을 겪고 있는 다른 CSP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버블보다 “지나친 저평가”에 무게
반도체 버블 우려가 확산하고 있지만 국내 증권업계 대부분의 시각은 일단 이와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현재의 조정은 업황 악화보다는 과도하게 높아진 기대치가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보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증권업계가 보고 있는 것은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12M Fwd PER)이다. 이 비율은 6.35배 수준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10월 26일 기록한 6.82배보다도 아래에 형성돼 있다. 반도체 비중이 높은 한국 주식시장에 버블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실적에 비해 코스피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유안타증권은 최근 코스피 급락과 관련해 삼성전자 잠정 실적 발표 이후 실적 실망감과 반도체 고점론이 동시에 부각되면서 변동성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조정은 실제 실적 훼손보다 높아진 시장 기대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중심으로 한 수급 변동성, 저PER을 둘러싼 평가가치 논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특히 반도체 고점론의 핵심은 현재 이익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우려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지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도 고점 논란을 불식시키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설비투자(Capex) 축소나 HBM 장기공급 계약 감소 등 핵심 신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AI 투자 사이클이 끝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7월 14일(현지시간) 경제 전문 매체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바클레이스는 메모리 반도체주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CNBC도 7월 12일(현지시간) 팻 겔싱어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이자 플레이그라운드 글로벌 파트너와의 인터뷰를 전하며 “AI 수요는 거의 무한(almost unlimited)에 가깝다”며 “유일한 제약은 전력 공급뿐”이라고 밝혔다.
HBM 공급 확대와 AI 서버 투자, 기업용 AI 도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만큼 메모리 업황의 구조적 성장세는 여전하고, AI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 흐름 역시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최근의 주가 조정은 실적이나 메모리 산업 구조의 변화보다 투자심리 위축이 크게 반영된 결과”라며 “AI 인프라 산업의 장기 성장성과 메모리 공급 부족이라는 산업의 핵심 펀더멘털은 한 달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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