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SK스퀘어엔 ‘하이닉스’ 있는데…쪼개는 카카오 ‘국민 메신저’ 한계 넘을까
- 지배구조 수술·디스카운트 해소
‘재무통’ 김도영 중심 자산 재편
[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카카오가 카카오톡·인공지능(AI) 사업과 계열사 투자·관리 사업을 분리하는 인적 분할에 나섰다. 통신과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투자 부문을 나눠 기업가치를 높인 SK텔레콤·SK스퀘어 모델을 연상시킨다. 여러 사업이 한데 묶여 제값을 받지 못하는 ‘복합기업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각 사업의 성장성을 시장에서 따로 평가받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SK스퀘어의 성장에는 SK하이닉스라는 확실한 자산이 있었다. 카카오가 분할 효과를 주가 재평가로 연결하려면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한계를 넘어 AI 사업의 성과와 수익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K텔레콤 분할 모델과 닮은꼴
카카오는 기존 법인을 존속법인 ‘카카오X’와 신설법인 ‘카카오AI’로 분리한다. 순자산 장부가액을 기준으로 한 분할 비율은 카카오X 0.64 대 카카오AI 0.36이다. 오는 12월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2027년 1월 1일 분할을 완료하고, 1월 27일 카카오AI 재상장과 카카오X 변경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같은 인적 분할 구도는 과거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SK텔레콤은 2021년 통신 사업을 맡는 존속법인과 반도체·ICT 투자를 전담하는 신설법인 SK스퀘어로 회사를 쪼갰다.
당시 SK텔레콤은 시가총액 100조원에 달하던 코스피 2위 상장사 SK하이닉스를 비롯해 ▲ADT캡스(현 SK쉴더스) ▲11번가 ▲티맵모빌리티 ▲원스토어 등을 SK스퀘어로 이관했다. 통신업에 가려진 반도체와 ICT 자산의 가치를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아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는 명분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SK텔레콤의 인적 분할은 기업가치 제고 외에도 지주회사 전환 시 SK하이닉스 지분을 30%까지 확보해야 하는 공정거래법상 부담과 관련이 있었다”며 “반도체 투자를 가로막던 통신 규제를 피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 성격도 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사업 분리라는 형식은 비슷하지만 SK스퀘어는 SK하이닉스의 실적이 받쳐주는 반면 카카오의 AI 사업은 아직 명확히 자리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카카오와 SK텔레콤은 분할 배경에는 차이가 있지만 지배구조 개편으로 ‘복합기업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목표는 같다. 여러 사업이 한데 묶여 제값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김도영 카카오X 대표 내정자는 인적 분할 발표 직후 열린 설명회에서 카카오의 저평가 상황을 수치로 제시했다.
김 내정자는 “국내외 증권사가 평가하는 카카오 개별 사업 부문의 합산 가치는 34조2000억원에 달하지만 최근 3개월 평균 시가총액은 16조8000억원에 불과하다”며 “시장에서 그룹 전체 가치가 50% 이상 저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AI 사업과 모빌리티·엔터테인먼트 등에 관심 있는 투자자의 요구 수익률과 위험 성향이 다른 만큼 사업 부문을 분리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계열사를 나누는 기준에서도 SK스퀘어의 선례가 비교 대상이 된다. SK스퀘어는 출범 이후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비주력 자산을 정리하는 ‘리밸런싱’을 이어왔다.
디지털 광고 회사 인크로스는 SK네트웍스에, 앱 마켓 원스토어는 블록체인 게임사 넥써쓰에 매각했다. SK쉴더스는 대주주 변경과 지분 매각을 완료했고, 웨이브는 티빙과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았다.
SK스퀘어는 내년 초까지 비주력 자산을 정리하고 AI·반도체에 집중하는 투자 전문 회사로 자리매김한다는 구상이다.
핵심 계열사 품은 카카오X…갈등·규제 관리 시험대
존속법인 카카오X로 이관되는 자회사들의 면면을 보면 과제가 만만치 않다. 카카오X에는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카카오픽코마 등이 배치된다.
각 분야에서 높은 시장 지위를 확보했지만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사법 리스크와 택시업계·골목상권 등 이해관계자와의 갈등도 안고 있다.
그동안 카카오 본체 이사회 안건의 85%, 투자심의 안건의 84%가 이들 자회사 지원에 집중됐다. 인적 분할 이후에는 투자 전문법인 카카오X가 이들 계열사의 관리와 자산 재편을 전담하게 된다.
김도영 카카오X 대표 내정자의 이력에도 관심이 쏠린다. 개발자나 IT 기획자가 아닌 투자·재무 전략 전문가다. 삼성증권에서 인수합병(M&A)팀장과 기업금융2그룹장 등을 거쳤고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다. 이후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대표와 카카오 CA협의체 그룹투자전략실장을 맡아 그룹의 투자 전략과 자산 유동화를 이끌어왔다.
카카오 CA협의체에 SK 출신 인력이 다수 포진한 만큼 이번 분할 과정에서 SK의 지배구조 개편 사례가 일정 부분 참고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내정자가 보유 자산을 활용한 신규 투자와 함께 비주력 사업에 대한 리밸런싱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카카오가 거대 데이터센터나 파운데이션 모델 같은 인프라 경쟁을 직접 벌이기는 어렵지만, 카카오톡이라는 독보적인 애플리케이션 접점을 지닌 만큼 ‘에이전트 AI’에 집중하기 위해 구조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카카오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엑시트 창구 역할을 하며 성장했지만 계열사 수가 늘면서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에 부담을 느껴왔다”며 “이번 인적 분할은 카카오AI가 AI 에이전트의 실행력을 높이고, 카카오X가 핀테크·모빌리티 등의 사업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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