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누구나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을 담은 ‘위시리스트’ 하나쯤은 품고 삽니다. ‘강예슬의 위시리스트’는 최근 소비자가 가장 열광하는 상품과 브랜드, 공간과 경험 등을 찾아 소개합니다. 단순히 인기 제품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했는지를 짚어 봅니다. 사고 싶은 마음 뒤 숨겨진 소비 흐름과 업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GS25 ‘민음사빵’ 4종. [사진 GS리테일] “저희 아내도 못 구해서 난리예요.”
최근 만난 한 50대 대기업 임원은 “아내가 ‘민음사빵’을 사고 싶어 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빵을 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송모씨(43)도 “민음사빵을 구하기 위해 물류 입고 시간에 맞춰 집 근처 GS25 매장에 방문했다”며 “아내가 원해 사긴 했지만 생각보다 빵도 맛있고 책갈피 품질이 좋아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 한 GS25 매장에서는 민음사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 강예슬 기자] 출시 3주 만에 100만개 팔려
민음사빵은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가 출판사 민음사와 손잡고 지난 8월 21일 선보인 협업 상품이다. 민음사빵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시집 표지에 민음사의 캐릭터 지식재산권(IP) ‘오늘의 귀여움’을 넣은 투명 책갈피 20종 가운데 하나가 무작위로 들어 있다.
종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모카번 우유크림)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대하여’(모카번 커스터드) ▲문정희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깨찰빵 솔티밀크) ▲허연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깨찰빵 커스터드) 등 총 네 가지다.
GS25가 지난 8월 21일과 26일 각각 2종씩 선보인 민음사빵은 출시 일주일 만에 12만개 넘게 팔리며 전국적인 품절 대란을 빚었다. 빵을 구하지 못한 소비자가 매장별 재고를 확인하기 위해 GS25의 ‘우리동네GS’ 애플리케이션(앱)에 한꺼번에 접속하면서 한때 앱 이용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지난 9월 14일 기준 민음사빵의 누적 판매량은 100만개를 돌파했다. 입고 물량 대비 판매율은 100%를 기록 중이다. GS25 전체 빵류 매출에서도 민음사 빵 4종이 나란히 1~4위에 올랐다.
민음사빵을 구하기 위해선 ‘오픈런’이 필수인 상황이다. 기자도 민음사빵을 사기 위해 GS25 매장을 세 곳 넘게 돌았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입고되자마자 10분 만에 다 팔렸다”였다.
GS25 점주들은 “민음사빵의 인기가 많아 매일 발주를 하지만 입고일과 발주 물량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면서 “입고되더라도 종류별로 1개씩 최대 4개만 들어온다”고 했다.
민음사빵의 유행을 이끈 건 빵에 동봉된 ‘책갈피’다. 책갈피가 소비자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면서 입고 즉시 완판 행진이 이어졌다.
20개의 책갈피 중 인기 디자인은 웃돈을 주고 구매해야 할 정도다. 빵의 정가는 2700~3700원이지만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개당 5000원 정도에 거래된다. 인기 책갈피인 ‘오만과 편견’은 최대 2만9000원에 팔리기도 했다. 1만3000원인 책보다 두 배 넘게 비싼 가격에 판매된 셈이다.
한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민음사빵이 개당 3000~5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사진 독자 제공]
지난 6월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방문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책+빵’으로 2030 女心 잡은 GS25
민음사빵 열풍의 배경에는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한 ‘텍스트힙’(Text Hip)이 자리한다. 텍스트힙은 책을 단순히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문장과 표지, 작가와 출판사 등을 하나의 콘텐츠이자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소비하는 현상이다.
GS25도 텍스트힙 흐름에 주목했다. GS25에 따르면 민음사빵의 시작은 지난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이다. 도서전에 방문한 GS25의 디저트 상품기획자(MD)가 민음사 팝업에 이삼십 대 여성이 몰린 모습을 보고 민음사 굿즈를 넣은 빵을 기획했다. 민음사 팬과 편의점 디저트의 주요 소비층이 겹쳐 좋은 반응을 얻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MD의 예상은 적중했다. GS25에 따르면 9월 초 기준 민음사빵의 구매 고객 가운데 2030 여성 비중은 50%를 웃돈다. 20대 여성은 26%, 30대 여성은 25%를 차지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38.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대의 독서율은 75.3%로 전체 성인 평균의 약 2배에 달했다. 30대의 독서율도 66.4%로 다른 연령층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독서율은 낮아졌지만 책 관련 소비와 경험 등은 늘어나는 추세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된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약 16만명이 방문했다. 지난해 15만명보다 1만명 늘어난 수치다. 민음사가 지난 8월 26일까지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운영한 팝업도 하루 1000명 이상이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명품 브랜드도 텍스트힙 유행을 반영해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루이 비통은 도서관을 뜻하는 ‘라 비블리오테크’(La Bibliothèque)를 주제로 재단장한 ‘루이 비통 서울 도산 스토어’를 지난 9월 11일 공개했다.
루이 비통 관계자는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텍스트힙 트렌드를 반영해 도서관을 주제로 도산 스토어를 꾸미게 됐다”고 설명했다.
민음사빵의 인기는 MZ 세대를 넘어 4050세대로도 확장하는 모습이다. 한 40~50대 여성 커뮤니티에 올라온 민음사빵 구매 후기 글에는 “며칠째 앱으로 확인 중인데 재고 조회가 안 될 정도로 인기” “책갈피가 탐나서 동네 GS25 매장을 다 돌았는데 하나도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책갈피를 꼭 끼우고 싶다” 등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는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것을 넘어 소비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보여주려는 특성을 보인다”며 “당분간 텍스트힙을 마케팅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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