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장기집권 막혔다” KB금융 회장 교체 후폭풍…5대 은행장 연임 가능성은?
- 정상혁 신한은행장 ‘세 번째 임기’ 도전…나머지 4명은 첫 연임
금감원도 승계절차 정조준…연말 인사 ‘투명성 시험대’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유력한 연임 후보로 꼽혔던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이 무산되면서 은행권 최고경영자(CEO)의 연임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역대 최대 실적을 내더라도 최근 금융권에 불고 있는 변화와 세대교체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다.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둔 5대 은행장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실적=연임’ 공식 깨진 은행권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그룹 계열사 CEO는 총 54명이다. 하나금융이 13명으로 가장 많고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이 각각 12명, KB금융 10명, NH농협금융 7명이다.
핵심 관심사는 5대 은행장의 거취다. 이환주 KB국민은행장을 비롯해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이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정 신한은행장은 추가 연임에, 나머지 4명은 첫 연임에 도전한다.
은행장에게는 통상 첫 임기 2년을 마친 뒤 1년 단위로 임기를 연장하는 ‘2+1년’ 방식이 적용돼 왔다. 다만 금융지주마다 임기와 연임 관행에는 차이가 있었다. 정 신한은행장은 2023년 2월 취임해 2024년 말 이례적으로 2년의 추가 임기를 받았다. 올해 말 다시 선임되면 세 번째 임기에 들어간다. 이환주·이호성·정진완·강태영 행장은 지난해 취임해 올해 말 첫 2년 임기를 마친다.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실적과 조직 안정성, 경영 연속성을 근거로 은행장 대부분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봤다. 하지만 KB금융이 현직 회장의 연임 대신 이재근 KB금융 부문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택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조화준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은 9월 11일 “현재의 우수한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그룹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양 회장은 취임 이후 비은행 부문의 이익 기여도를 끌어올리고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연임에 실패하면서 금융권에서는 ‘실적이 좋으면 연임한다’는 공식이 더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직 CEO의 경영 성과뿐 아니라 미래 전략과 조직 쇄신 능력, 후계자 육성 체계까지 인사의 주요 잣대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그룹 회장 교체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을 전망이다. 이 차기 KB금융 회장 후보가 오는 11월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취임하면 이 국민은행장은 새 회장 체제에서 처음 실시되는 주요 계열사 CEO 인사의 대상이 된다. 이 국민은행장이 첫 임기를 마치는 데다 새 회장이 자신의 경영 구상에 맞춰 계열사 수장 진용을 다시 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 신한은행장은 상반기 리딩뱅크 자리를 되찾은 실적이 강점이다. 신한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2조458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5% 증가해 5대 은행 가운데 가장 많았다. 다만 연말이면 약 4년의 임기를 채우는 만큼 추가 연임이 장기 재임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신한은행에서 행장이 세 차례 임기를 이어간 사례가 드물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이 행장이 이끄는 하나은행도 상반기 순이익 2조1211억원을 거두며 호실적을 이어갔다.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부문을 강화하고 안정적으로 첫 임기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함영주 현 하나금융 회장 이후 은행장이 연임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그룹의 인사 원칙이 주목된다.
실적이 후퇴한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의 고민은 더 깊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의 상반기 순이익은 1조373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9% 감소했다. 5대 은행 가운데 순이익 감소 폭이 가장 컸다. NH농협은행도 상반기 순이익이 1조1629억원으로 2.1% 줄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호실적을 거둔 CEO도 교체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한 상황”이라며 “실적 감소는 행장의 연임 심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장, ‘자회사 CEO 승계절차 투명성’ 주문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자회사 CEO의 장기 재임과 불투명한 승계절차를 잇달아 지적하는 점도 올해 임기 종료를 앞둔 은행장들에게는 부담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9월 15일 임원회의에서 금융지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승계절차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금융지주 계열사 CEO 인사와 관련해 투명성 점검을 강화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이 원장은 “향후 후보군 선정, 검증 및 평가, 기록 등 일련의 CEO 승계절차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은행마다 경영 승계 절차가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나온 발언인 만큼 대형 은행들은 현직 행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국의 주문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금융권에서는 올해 연말 인사가 CEO 연임 여부를 넘어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실적이 양호하면 경영 연속성을 이유로 연임하는 흐름이 강했지만, KB금융의 선택으로 이런 관행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며 “이사회가 연임과 교체의 근거를 얼마나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제시하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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