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설탕세법 발의 연기…“사회적 공감대 형성 필요”
소득 역진성 등 구조적 한계…비가격 정책 우선 고려해야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여당이 야심 차게 추진하던 이른바 ‘설탕세’가 암초를 만났다. 당초 9월 초로 예정됐던 설탕세 법안 발의가 ‘의견 수렴’을 이유로 미뤄지면서다. 설탕 부담금 도입이 사실상 ‘꼼수 증세’라는 지적이 나오며 논란이 커지자 부담을 느낀 여당이 주춤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에 따르면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11일 대표 발의할 예정이었던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발의 시점을 늦추기로 했다.
김 의원은 오는 10월 열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기관에 당류 저감 정책 관련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르면 연내 법안 도입을 재추진할 예정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설탕세가 증세를 위한 법안으로 해석되면서 법안 발의 시 사회적 저항이 클 것으로 봤다”며 “서둘러 법안 도입을 추진하기보다는 설탕세의 필요성에 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해 법안 발의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식품산업협회와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업계 관계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한 뒤 올해 안에 법안을 발의하는 게 목표”라면서 “부담금 부과보다는 비가격 정책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업계의 지적에 따라 국감에서 관련 질의를 통해 비가격 규제 방안도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체당 포함 시 연간 부담금 약 9582억
김 의원은 소아·청소년 비만을 예방하고 만성 질환을 억제하기 위해 첨가당뿐 아니라 대체당 음료에도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9월 초 발의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김 의원이 발의할 예정이었던 개정안에는 감미 음료 제조·가공업자와 수입판매업자를 대상으로 당류 함량에 따라 부담금을 차등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첨가당 함량이 100mL당 5g 이상 8g 미만이면 L당 250원, 8g 이상이면 L당 500원을 물린다. 인공감미료 등 대체당이 들어간 음료에도 유해성과 당류 대체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L당 최대 50원의 부담금을 매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설탕세 논쟁이 본격화한 건 올해 1월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설탕세 부과를 언급하면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28일 X(옛 트위터)에 ‘담배처럼 설탕 부담금으로 설탕 사용 억제, 그 부담금으로 지역·공공의료 강화에 재투자…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요?’라는 글과 함께 국민 80%가 설탕세 도입에 찬성한다는 설문 결과를 공유했다.
여당에서는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고 법안을 발의하며 설탕세 도입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가당 음료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선민 의원안과 이수진 의원안이 첨가당 중심의 규제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김윤 의원안은 정책 범위를 대체당까지 넓혔다.
김 의원은 “설탕 부담금 도입 목적이 단 음식의 섭취를 줄여 식습관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체당도 법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봤다”며 “대체당에 부과하는 부담금은 첨가당에 비해 많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 국회 토론회에서 공개된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 추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수입되는 가당 음료 200여개 품목에 김윤 의원안을 적용하면 연간 부담금 규모는 약 9582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6789억원인 김선민 의원안과 이수진 의원안의 4274억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증세 논란’에 정부 신중론…업계 반발도
대체당을 부담금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두고 증세 논란이 일었다. 설탕의 대안으로 대체당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대체당을 과세 대상으로 삼는 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게 아니라 사실상 ‘우회 증세’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9월 7일 한국조세정책학회 세미나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갑순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설탕 부담금과 같은 일률적 가격 규제는 저소득층과 청년층의 소비 부담을 가중하는 조세 역진성과 예산 통제를 우회하는 재정 투명성 저해 등 구조적 한계를 내포한다”면서 “이미 시장에서 자율적인 당류 저감 노력이 작동하고 있는 만큼 가격 통제보다는 비가격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접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정란 명지대 미래융합경영학과 교수도 설탕세의 가장 큰 문제로 ‘소득 역진성’을 지목하며 “가격 규제보다는 소비자에게 당류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기업의 저당·제로 제품 개발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비가격 정책을 먼저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 역시 도입에 신중한 태도다.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9월 13일 정성호 민주당 의원의 설탕세 도입 관련 질의에 “설탕세는 ▲적용 대상 ▲부과 수준 ▲제도 설계 방식 등에 따라 소비 행태와 건강에 미치는 효과 등이 달라질 수 있어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후보자는 “설탕세 도입은 국민건강권과 함께 소비자 부담,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사안으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식품업계의 반발도 넘어야 할 산 중 하나다. 고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물류비 등 원가 부담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설탕세가 도입되면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업계는 현재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와 위축된 소비 심리 등으로 원가 상승 압력에도 가격을 조정하지 않고 겨우 버티는 중”이라며 “설탕세는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당류 저감과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과세 대상을 확대하기 전 당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실제 소비 행태 변화, 정책의 실효성 등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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