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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여자의 결별 선언엔 묵묵부답이 상책

Essay - 여자의 결별 선언엔 묵묵부답이 상책

즉각적인 ‘노(No)’는 하수의 대응 … ‘예(Yes)’로 답하고 잠수 타는 것도 방법



여자가 남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당신도 내게 의미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을 거듭 생각하면서 나의 실수와 미련함과 간절함을 기억하게 될 거예요. 건강하시길…. 더 이상 당신과의 만남에 대해 희화화도 유머도 재미도 부여할 수가 없네요. 그 모든 것을 해 보고 싶었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더없이 가벼워지고 싶었는데… 우리 처음엔 청춘물 성격마저 있는 멜로 찍다가, 엽기성이 다분한 코미디 에로물 찍다가, 다시 멜로로 돌아갔다가, 홍상수 영화로 갔다가… 어쨌든 저를 좋게 기억해 주세요…

여자가 결별을 고하는 내용이었다. 피차 기혼 상태에서 시들해져 버린 결혼관계를 벗어난 ‘외간’의 만남은 특별했다. 나이를 잊고 아드레날린 폭발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폭발이 문제였나 보다. 사내는 서로의 관계가 최고조로 발전한 절정기라고 뿌듯해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고 터무니없는 결별 통고가 날아온 것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사태를 이해해야만 한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일까. 그런 면도 있겠지.

혹시 잘 모르는 가운데 사내에게 실망감이 쌓여온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전전반측, 그러나 딱 부러지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녀 e메일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조와 사내에 대한 원망이 동시에 배어있다. e메일의 뒷부분을 읽어보자.

당신은 내게 “어느 한 사람의 여자가 되지 말아”라고 했어요. 제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한 말이죠. 저는 그 말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이 먹은 어린 남자입니다. 사랑을 잘 모르는 남자입니다. 사랑을 안다고, 많이 해 봤다고 믿는 어리석고 자신감 없는 남자입니다. 당신과의 관계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했죠? 완벽한 싱글이 되고 나서 새로운 뭔가를 시작해야겠어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애도가 되지 않겠지요. 오히려 우울증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 우울증이 저의 정체성이 되겠지요. 그리고 저는 그 힘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매력 같지 않은 매력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버젓이 남편 두고 자유연애를 구가하는 여인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조선조 여인, 그것도 세련된 조선 여인처럼 자기를 표현한다. 완벽한 싱글이어야 새로운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니 이 뭔…. 어쨌든 문면에 숨어있는 생각을 찾아내야 한다.

그녀에게는 둘의 관계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한 같다.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첫째, 이 만남이 고전적인 사랑에 합당하게 필사적이어야 한다는 것. 둘째, 싱글의 신분으로 떳떳해야 한다는 것. 엄청나게 어려운, 어쩌면 불가능한 숙제를 여인이 던져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진심의 전부일까. e메일을 보낸 쪽도 받은 쪽도 안다. 세상에 ‘헤어집시다’ 한 마디로 좋은 관계가 끝장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그녀의 e메일을 현실적으로 번역해 보자면 ‘저 몹시 힘들어요’ 쯤이 아닐까. 사내로서는 결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데 도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연애가 매우 잘 진행되고 있다고 희희낙락하는 와중에 뒤통수 맞듯이 여자로부터 결별통고를 받는 일은 매우 흔히 벌어진다. 헤어지자는 사유는 세상 여자들 숫자만큼이나 많고 다양하다. 앞서 예측해 본 것 같은 죄책감·실망감 따위만이 아니다.

예기치 못하게 다른 남자가 생겨난 것일 수도 있고, 사내의 기분과는 정반대로 여자 쪽은 그 만남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기대했던 성적 판타지가 채워지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아주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다. 딱 부러지게 결별의 이유를 밝혔어도, 전혀 밝히지 않았어도 어차피 마찬가지다.



결별의 이유, 알려고 하지 말라이 대목에서 사내가 고심해야 할 것은 결별의 사유를 알아내는 일이 결코 아니다. 결별 통고는 대단히 복잡한 심리적 미로를 헤매고 난 결과물이기 때문에 헤어질 이유는 얼마든지 창조되고 변용되고 발전된다. 그러니 여자가 결별을 통고해 올 때 그 이유를 꼬치꼬치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보다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사내가 취하는 태도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 압축해 말하자면 예스(yes)와 노(no)일 텐데 어느 쪽이든 의미는 똑같다. 지금 사내는 전혀 헤어지고 싶지 않으니까.

먼저, 예스의 경우. 헤어지자고 하는, 헤어지고 싶지 않은 여인의 통고에 ‘예스’라고 받아준다. 여자 쪽은 홀가분하거나 황당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어떤 반응이 오든 다음과 같은 결과가 생겨난다. 결론을 내릴 시간을 유예시키게 된다는 것. 공을 여자 쪽으로 떠넘기는 셈이다.

“우리 헤어져요”라는 여자의 통고에 “정말 그래야 하는 거니? 어쩔 수 없구나…” 쯤으로 순응하는 남자의 태도 앞에서 여자는 그 관계를 총체적으로 다시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대단히 중요한 것이 있다. 이를 악물고 혀를 깨물면서라도 남자 쪽이 먼저 연락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내의 예스 하나로 영영 관계가 끊어진다면 그건 울고불고 매달렸어도 어차피 끝장 날 사이라는 뜻이다. 결별 통고를 순순히 받아주고 잠수를 타라. 좋은 결과가 찾아올 것이다.

다음은 노(no)로 반응하는 경우. 헤어지자는 통고 앞에서 ‘그럴 수는 없다’고 반응하는 순간 남자는 가련한 ‘을’의 신세로 전락한다. 화를 내며 ‘노’라고 하면 미련한 사람이 되고, 애절하게 ‘노’를 표하면 지긋지긋한 사람이 된다. 어떤 경우에도 불리한 것이 ‘헤어질 수 없다’고 고집부리는 태도인데 대부분의 사내가 그렇게 행동한다. 그것이 진심이기 때문이다. 헤어지자는 상대에게 진심처럼 무력한 것도 없다.

작전상 ‘예스’ 따위는 죽어도 하기 싫고, 상대에 대한 간절함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태라면 즉각적인 ‘노’ 대신 이런 대응은 어떨까. 차라리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는 것이다. ‘소 죽은 귀신’이라는 옛말이 있다. 소 죽은 귀신처럼, 벽창호처럼 어떠한 답변도 하지 않고 괴로움에 쩔쩔매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정말 그녀가 영영 떠나버리면? 물론 떠나갈 확률이 70%다. 그래도 묵묵부답으로 30% 가능성은 건진다. ‘예스’든 ‘노’든 당신은 내가 하는 제안이 온통 ‘구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럴 수밖에! 만날 사람은 결국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어떻게 하든 헤어진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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