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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 | 불법 판 치는 대학가 오피스텔 - 관광객 숙박용 ‘레지던스’로 둔갑

Repo | 불법 판 치는 대학가 오피스텔 - 관광객 숙박용 ‘레지던스’로 둔갑

서울 서대문구 신촌기차역 근방에 들어선 신축 오피스텔 전경. 지난해부터 생긴 4개 오피스텔의 세대수를 더하면 1000세대가 넘지만 관광객과 유학생의 수요가 많아 임대료는 떨어질 줄 모른다.





#1.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교차로. 한껏 멋을 낸 카리나(20)와 레베카(20)는 젊음이 가득한 거리 한복판에서도 눈에 띄었다. 홍콩에서 온 이들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푹 빠진 여대생들이다. 방학을 맞아 드라마 속 명소를 둘러보기 위해 7월 6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은 공항철도를 타고 곧장 이대역으로 향했다.

한 인터넷 호텔예약 업체를 통해 예약한 숙소가 역에서 5분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숙소의 가격은 2인 1실 기준으로 하룻밤에 600홍콩달러(약 7만8000원). 내부에 취사 시설을 갖춘데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주요 관광명소와 멀지 않아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숙박업체라고 했다. 카리나는 “명동이나 강남보다 시설도 좋고 싸다”며 “8월에 언니와 함께 한번 더 서울에 올 생각인데 그때도 이 숙소를 예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2. 신촌의 한 대학에 다니는 이소연(24)씨는 올 초 학교 근처에 새로 생긴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침대 하나를 놓으면 여유공간이 없는 23㎡(약 6.9평) 크기의 방이지만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80만원의 조건이었다. 이씨는 매달 나가는 월세가 부담스럽지만 역에서 멀지 않고, 학생들이 많이 산다는 중개업자의 말에 집을 계약했다.

그런데 이사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민이 생겼다. 매일 밤마다 옆집은 물론 오피스텔 복도와 로비를 드나 들며 떠드는 낯선 외국인들 때문이다. 이씨는 “밤마다 건물의 복도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외국인들 때문에 잠들기가 어려울 정도”라며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았지만 가을께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촌 푸르지오시티 불법 용도 변경홍콩에서 온 카리나가 머문 숙소와 대학생 이소연씨의 집은 같은 건물이다. 올해 1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대현동의 오피스텔 ‘신촌 푸르지오시티’의 또 다른 이름은 ‘에버8’. 시공사인 대우건설이 오피스텔로 허가를 받아 분양했지만 분양률이 저조하자 원하는 분양자를 대상으로 생활형(단기 체류) 숙박시설의 일종인 ‘서비스드 레지던스’로의 전환을 추진중이다. 그 결과 361세대의 분양이 완료됐지만 그중 220세대가 레지던스가 됐다.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호텔식 서비스가 제공되고 객실에서 취사·세탁 등이 가능한 장·단기 거주 숙박시설이다. 서울 시내의 경우 1박에 5만~10만원 수준으로 호텔보다 저렴해 관광객의 선호도가 높다는 게 업계 측의 설명이다. 결국 신촌 일대에 새로 생긴 361개의 방 중 220개는 인근 대학생들이 아닌 관광객 차지가 된 셈이다.

신촌기차역 교차로를 중심으로 들어선 한 신축 오피스텔. 최근 대학가 오피스텔이 대형화·고급화되는 추세다.
신촌 푸르지오시티의 이 같은 용도 변경은 엄연한 불법이다. 서울시와 자치구에 따르면 개인에게 분양된 오피스텔을 서비스드 레지던스로 바꾸려면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한다. 상업지역 안에 있어야 하고 주거지역과 5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또 학교정화구역(학교 200m 이내) 안에 있으면 불가능하다. 상업지역이라도 주변 도시계획에 따라 숙박업이 가능해야 한다. 지역교육청으로부터 주변 학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확인과 승인도 필수 사항이다. 레지던스로 활용하지 않는 오피스텔 계약자들로부터 대지 사용 승인도 받아야 한다.



신촌 일대 오피스텔 수익률 강남보다 높아서울 시내 서비스드 레지던스 가운데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곳은 8곳, 390여개 객실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불법임에도 밀려드는 관광객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신촌 푸르지오시티 역시 오피스텔로 허가를 받은 후 일부 세대수만 임의로 변경해 임대를 했을 뿐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건물 뒤편에 바로 주거지역이 있다는 점도 변경이 불가능한 이유다. 관할구청인 서대문구청 측은 “해당 건물은 5월경 위법 건축물로 이미 고발 조치했다”며 “관광진흥법에 따라 시정 기간을 거쳐 행정 조치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근처 골목에서 쇼핑을 즐기는 관광객들. 신촌 대학가가 관광지로 각광받으며 이 일대에서 숙박 시설을 찾는 관광객도 늘었다.
부동산 업계는 이 같은 기준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 오피스텔 시행사 관계자는 “일반 임대 계약 때 수익률이 5~6%임에 비해 레지던스 객실로 얻는 수익은 10%가 넘는다”며 “학생들에게 임대를 할 경우 월세가 밀리거나 중간에 이사를 가면 공실이 발생하는 등 여러 변수가 생기는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 레지던스는 회사가 유지보수 비용은 물론 임차인과의 계약 갱신 등을 도맡기 때문에 투자자의 부담이 적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지역의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레지던스 시설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 등 6개 대학이 자리잡은 서울 마포·서대문구 지역에는 최근 대형 건설사들이 건축한 브랜드 오피스텔이 앞다퉈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6월 입주를 시작한 ‘이대 푸르지오시티’를 비롯해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이대 서희스타힐스’ ‘신촌 자이엘라’ 등이 위용을 자랑한다.

신촌기차역 입구 교차로를 중심으로 들어선 4개 오피스텔은 1000세대를 훌쩍 넘는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강남·양재 등에서는 오피스텔 공급이 늘면서 임대료가 하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촌 일대는 예외다.

부동산114가 지난해 서울 오피스텔 주요 권역의 임대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강남(5.27%)·여의도(5.23%)·용산(5.23%) 등에 비해 신촌(5.95%) 지역의 임대수익률이 높았다. 신촌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유학생도 크게 늘어 이 일대 오피스텔은 거의 공실이 없다”며 “워낙 수요가 많아 대형 오피스텔의 공급이 늘어도 임대료는 예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올랐다”고 설명했다.

늘어난 거주 비용으로 대학생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지난해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9월 복학을 앞둔 휴학생 김민경(23)씨. 학교 근처인 신촌 일대 오피스텔을 알아보던 김씨는 예년보다 더 오른 임대료에 깜짝 놀랐다. 새로 지은 오피스텔의 27㎡(약 8.2평) 방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95만원에 달했다.

그마저도 남은 방이 많지 않아 계약을 서둘러야 한다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에 김씨는 고민에 빠졌다. 김씨는 “학교 주변이 비싸긴해도 휴학 전엔 월세 60만~70만원이 보통이었다”며 “아르바이트를 더해서라도 근처에서 구해야 할지, 좀 멀더라도 임대료가 싼 곳을 찾을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들어 오피스텔이 많이 생겼다고 해서 임대료가 내릴 거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1년 새 값이 오른 곳이 많아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높은 임대료를 내야 하는 학교 주변 대신 상대적으로 월세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이들도 늘었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박나영(가명·24)씨는 입학 이후 쭉 학교 근처에서 살았다. 그런데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최근 살던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이대 근처 오피스텔의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주변 지역까지 알아보던 중 상암동에서 더 조건이 좋은 오피스텔을 찾았다”며 “학교 근처에서 얻으려던 방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을 요구했지만 상암동에선 비슷한 방을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원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월세에 부담을 느껴 학교에서 멀더라도 조금이라도 싸고, 시설이 좋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4년간 걸어서 학교를 다녔지만 이제는 버스로 통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촌의 대학생들이 옮겨간 곳은 주로 인근 강서구와 영등포구·구로구 등이다. 이 지역들은 지난 5년(2009~2013년) 간 서울시에서 인허가를 받은 도시형생활주택의 물량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부동산114의 자료에 따르면 강서구 6924가구(7.43%), 영등포구 5462가구(5.86%), 마포구 4938가구(5.30%), 구로구 4860가구(5.22%)가 뒤를 이었다. 이 일대에 신축한 대형 오피스텔 역시 크게 늘어 굳이 신촌 지역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게 학생들의 설명이다.



강서구·영등포구 등으로 이사실제로 올 초 입주를 시작한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대형 오피스텔의 세입자 가운데 30~40%는 신촌 지역 대학생들이라는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산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세입자 가운데는 여의도나 광화문, 강남 등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신촌에서 살다 온 대학생 수도 적지않다”며 “대학가보다 월세가 평균 10만원 정도 저렴할 뿐 아니라 지하철이나 버스로 20분이면 학교에 갈 수 있어 새 학기를 앞두고 집을 구하려는 학생들의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이민형(25)씨처럼 신촌에서 조금 벗어난 덕분에 임대료를 절반 가량 아낀 경우도 있다. 학교 앞 오피스텔에서 최근 남가좌동으로 이사한 이씨는 “주변 친구들 가운데는 20~30분은 고사하고 1시간이 걸리는 통학 거리도 마다 않고 시내 바깥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많다”며 “전에 살던 집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60만원 수준이었는데 그마저도 재계약을 할 때마다 인상돼 결국 신촌을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생에 치이고, 관광객에 내주고, 이제 어지간한 중산층 학생들에게도 신촌 일대에 괜찮은 자취방을 구하기란 힘든 일이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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