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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대통령의 위험한 도박

터키 대통령의 위험한 도박

▎지난 7월 20일 터키 동남부 국경도시 수루치에서 폭탄테러 희생자의 관을 운구하는 쿠르드족 주민들.

▎지난 7월 20일 터키 동남부 국경도시 수루치에서 폭탄테러 희생자의 관을 운구하는 쿠르드족 주민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 7월 말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그의 명령에 따라 터키 공군기 40대가 이라크 북부에 거점을 둔 민병대 쿠르드노동자당(PKK)을 공습했다. PKK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을 부르짖어왔다.

터키군에 따르면 그 공격으로 최소한 190명의 민병대원이 사망했다. 또 터키 경찰은 전국적인 테러 용의자 일망타진 작전으로 1050명을 체포했다. 일부는 이슬람국가(IS)와 급진 좌익 무장단체 지지자였지만 80% 이상은 PKK 관련 인사들이었다. 그에 맞서 PKK는 터키군 차량을 공격하고 여러 도시에서 경찰에 총격을 가해 최소한 13명이 숨졌다. 수십 년만에 최악의 터키-쿠르드족 유혈 충돌이었다.

바로 몇 달 전만해도 터키는 쿠르드족과 평화협상을 타결하기 직전이었다. 그 협상이 원만하게 이뤄졌다면 터키 동남부에서 약 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30년 내전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PKK의 터키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공습을 발표하며 “국가의 통합과 형제애를 위협하는 세력과의 평화는 더는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급작스런 사태 반전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의 보수 이슬람 집권여당 정의개발당(AKP)은 집권 12년의 거의 대부분을 인구 2000만 명에 이르는 쿠르드족을 포용하려고 애썼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1년 터키 동남부 쿠르드족 최대 도시 다야르바키르에서 총선 유세를 하며 “우리 쿠르드 형제들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였다. 그는 수십 년에 걸친 불신을 떨치고 쿠르드족의 강압적인 동화를 끝내겠다고 선언하며 쿠르드어 TV 방송을 합법화했다. 지난 2월엔 그의 참모들이 이스탄불 돌마바체궁에서 PKK 대표단과 만나 민병대 무장해제를 포함해 평화 정착을 위한 세부 사항까지 논의했다.

터키에 주재하는 한 서방 외교관은 “협상이 타결 직전까지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AKP 지도부가 협상을 지난 6월 총선 후로 미뤘다. 쿠르드족에게 ‘총선에서 AKP를 지지하면 협상 테이블에서 원하는 바를 들어주겠다’고 말한 것과 다름없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지난 3월 터키 남동부의 가지안테프 유세에서 실제로 그런 취지를 밝혔다. 그는 “쿠르드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길 바라는가?”라고 물었다. “형제들이여, AKP에 과반의석을 만들어주면 모든 문제가 평화롭게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터키의 쿠르드족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들은 AKP 대신 쿠르드계 신생 정당 인민민주당(HDP)에 표를 몰아줬다. 그 결과 HDP는 13%의 득표율로 의석 80석을 확보했다(터키는 정당별 전국 득표율 10% 이상인 정당에만 의석을 배정한다). AKP는 2002년 이래 처음으로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그러자 AKP는 HDP와 그 정당의 젊은 지도자 셀라하틴 데미르타스 대표를 표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돌마바체궁 협상에서 터키 정부측 대표를 맡았던 얄친 악도안 부총리는 HDP가 PKK의 ‘하청 정당이며 위장 정당’이라고 비난했다(PKK는 터키와 미국의 테러단체로 올라 있다).

실제 전투를 먼저 시작한 쪽은 PKK였다. 이라크 북부 칸딜산맥에 거점을 둔 PKK는 지난 7월 16일 2년 동안 유지돼온 휴전의 종식을 선언하고 터키 경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7월 20일 시리아에서 IS의 훈련을 받은 한 남성이 터키 국경도시 수루치의 사회주의청년연합(SGDF) 행사장에서 자폭테러를 감행해 친쿠르드족 학생회원 32명이 숨지자 PKK는 터키 보안군이 테러 공격을 허용했다고 비난하며 그에 대한 보복으로 터키군 4명을 사살했다.

터키 정부의 대응은 신속하고 무자비했다. 시리아 내부의 IS 표적만이 아니라 이라크 북부의 PKK 표적도 공습했다. 또 터키는 수 개월 동안 거부했던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군 전투기가 터키 동남부 인시를릭 공군기지를 IS 공습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PKK가 실전을 먼저 시작한 건 맞지만 사실 터키와 쿠르드족 사이의 전쟁은 APK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한다. 터키는 총선 후 지금까지 야당과의 연정구성에 합의하지 못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을 포함한 AKP 지도부는 새로운 총선으로 연정 문제를 돌파하는 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부담이 큰 전략이다. 그러나 만약 새 총선에서 AKP가 과반의석을 되찾는다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개헌으로 프랑스식 대통령제를 도입하는 안을 밀어붙일 수 있다. 그는 대통령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개헌을 집요하게 주장했다. 터키 신문 휴리예트의 무라트 예트킨 칼럼니스트는 “에르도안은 대통령 권한을 전면 행사하는 데 HDP가 걸림돌이라고 판단했다”고 논평했다. “새 총선에서 HDP의 득표율을 10% 아래로 떨어뜨려 원내 진출을 막을 수 있다면 AKP가 다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AKP는 쿠르드족과의 전쟁 재개로 HDP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려는 것이 분명하다. PKK의 공격 직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HDP 의원들과 데미르타스 대표의 면책권을 박탈해 ‘테러조직 연계 혐의’를 조사받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HDP 의원들은 그런 제안을 환영한다며 심지어 자발적으로 면책권을 반납할 의사를 밝히는 동시에 AKP 의원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들은 AKP 간부들의 재임 중 비리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분간 쿠르드족과의 진정한 화해는 제쳐두고 HDP 와해에 초점을 맞출 듯하다. ‘극단주의 없는 이슬람(Islam Without Extremes: A Muslim Case for Liberty)’의 저자 무스타파 아키올은 “에르도안은 자신의 야망 실현에 HDP가 장애물로 등장하자 PKK와의 평화협상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겐 야망이 최우선이다. AKP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평화도 달갑지 않다는 얘기다.”

터키의 동맹국들은 내전의 재개를 우려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IS 격퇴 노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시리아에서 IS의 영향권 확대를 막는 주된 방어세력인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에 무기와 공중·정보 지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YPG가 PKK와 긴밀하게 연계돼 터키는 시리아의 쿠르드족 지원을 원치 않는다. YPG는 터키 국경의 시리아 쪽에 자치구를 세우기 시작했다. 터키는 그런 조치에 맹렬히 반대한다. 시리아의 쿠르드족이 분리되면 터키의 쿠르드족도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터키 주재 서방 외교관은 “터키는 IS와 쿠르드족이 서로 싸우도록 내버려둔 뒤 어느 한쪽이 이기면 그때 나서서 그 세력을 공격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PKK의 공격에 대응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을 비난하긴 어렵다. 그러나 쿠르드족 공격은 단기적으로 볼 땐 AKP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터키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에르도안의 통치 동안 터키의 국내총생산(GDP)은 3배로 늘었고, 이라크부터 그리스까지 이웃나라들이 격변에 휩싸인 상황에서도 터키는 지역 안정의 보루 역할을 했다.

터키인과 쿠르드인 간의 해묵은 민족 분쟁은 1980년대에 터키 동남부를 거대한 전쟁터로 만들며 쿠르드족 수백만 명을 난민으로 만들었다. 에르도안 세대는 그런 분쟁보다는 돈을 벌고 풍족한 삶을 추구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이제 나라 전체가 전쟁에 휘말리면 터키의 번영과 지역 안정, 에르도안 대통령 자신의 정통성까지 그동안 그가 이룩한 모든 업적이 무너져내릴 수 있다.

- OWEN MATTHEW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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