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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살 ‘곰표’의 여우같은 아이디어[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대한제분, 리브랜딩 통한 ‘인텔 인사이드’식 전략 펼쳐
맥주·패딩·팝콘 등 뉴트로 콘셉트의 콜라보 제품 ‘완판’ 행진

곰표 맥주가 편의점 맥주 시장에서 5월 말 기준 월 매출 1위에 올랐다. [사진 세븐브로이]
 
‘곰표 맥주’라는, 이름도 생소하면서 촌스럽기까지 한 브랜드가 지난 5월말 기준, 우리나라 편의점 맥주 시장에서 테라·카스·하이네켄 등 국내외 쟁쟁한 브랜드를 제치고 월 매출 1위에 올랐다. 하루 판매량이 17만개를 넘어서자 생산물량을 감당할 수 없이 ‘품절템’이 될 정도다. 
 
뿐만 아니다. 2018년 겨울에 출시, 판매되고 있는 흰색 패딩은 ‘곰표’ 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혔다. 이 패딩은 이 나라 MZ세대의 ‘인싸템’이 되었다. 입으면 마치 밀가루 포대를 두른 듯한 흰색의 큼지막한 패딩에 촌스러울 만큼의 큰 글씨가 붙어 있다. 
 
밀가루 포대를 연상시키는 포장에 팝콘을 담아 ‘곰표 팝콘’ 내놓는가 하면, 여성의 얼굴을 밀가루처럼 하얗게 만들어 준다는 ‘곰표 밀가루 쿠션’도 출시했다. 이를 하얗게 만들어 준다는 ‘곰표 치약’을 넘어 그릇까지 깨끗하게 닦아주는 ‘곰표 주방세제’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곰표’는 맥주 브랜드도, 패션 브랜드도 아닌, 밀가루 회사의 브랜드다. 올해로 69년이 된 이 회사는 밀가루 말고 다른 것은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대한제분은 60여 년 간 밀가루만 만들어 온 제분 기업이다. [중앙포토]
 
대한제분은 지난 60여 년간 밀가루만 만들어 온 제분 기업이다. 제과·제빵 기업이나 베이커리, 혹은 밀가루를 이용한 면류를 취급하는 식당들을 대상으로 기업 간 거래(B2B, Business to Business)를 주로 해오던 기업이다 보니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브랜딩은 주된 관심의 영역이 아니었다. 
 
한때 대한민국 밀가루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대한제분이 위기의식을 갖게 된 것은 내부에 브랜드 마케팅을 전담하는 팀을 만들면서부터다. 이 팀이 생기며 ‘곰표밀가루’의 브랜드 인지도 조사를 해본 결과, 미래의 주고객인 20~30대의 인지도는 충격적이었다. 
 
환갑을 넘어 칠순을 바라보는 이 브랜드는 20~30대 소비자 5명 중 1명 정도에게만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B2B 시장에서 밀가루 선택은 제과·제빵 업체의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위기로 받아들여졌다. 
 
이른바 리브랜딩(re-branding)을 통한 ‘인텔 인사이드’식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인텔 인사이드’ 전략은 산업재인 컴퓨터 CPU를 생산하는 인텔이 인텔 프로세서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와 선호도를 높이면서 컴퓨터 제조사들이 인텔칩을 장착하도록 유도한 B2B시장에서 풀링(pulling) 전략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캐릭터 무단 사용한 회사에 협업 제안 

젊은 세대에 대한 ‘곰표’ 브랜드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고민의 나날 속에 기회는 우연처럼 찾아 왔다. 2018년 어느 날, 한 직원이 곰표 상표와 더불어 대한제분의 캐릭터인 백곰 캐릭터를 무단으로 사용해 패딩을 파는 4XR이라는 회사를 발견한다. 
 
대한제분 밀가루 브랜드 '곰표'와 온라인 쇼핑몰 4XR이 협업한 곰표 패딩. [사진 4XR]
 
상표권의 무단도용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아이디어가 너무 신선했기에 곰표의 이미지를 새롭게 할 기회로 여기고, 이 회사와 건설적인 브랜드 ‘콜라보레이션(협업)’을 제안한다. 약간의 브랜드 로얄티를 받고 곰표 굿즈 제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되 브랜드의 이미지와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브랜드 인지와 호감을 강화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했다. 
 
이것이 곰표가 콜라보 굿즈 브랜딩을 통해 젊은 층에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올리게 된 출발점이다. 이들과 같이 만든, 약간 낯설지만 맥시멀리즘의 레트로 감성을 품은 패딩은 MZ세대의 ‘인싸템’이 되었고, 이어진 곰표 티셔츠도 없어서 못 파는 옷이 되었다. 
 
곰표의 본격적인 소비자 타깃 마케팅은 CGV와 협업으로 진행한 ‘왕곰표 팝콘’이었다. 20㎏짜리 대형 곰표 밀가루 포대에 밀가루가 아닌 팝콘을 잔뜩 담아 5000원에 판매했다. 초유의 사이즈로 팝콘을 팔자 SNS를 타고 소문이 나며 새벽부터 ‘곰표 팝콘’을 사기 위해 CGV에 줄을 서는 대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신감이 더해지자 곰표는 순백의 하얀 밀가루와 어울리는 파운데이션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천연원료 화장품을 만드는 젊은 브랜드 ‘스와니코코’를 만나 ‘곰표 밀가루쿠션’이라는 제품을 출시 한다. 이 역시 뉴트로 감성으로 어필해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MZ세대, 곰표 굿즈 브랜딩에 열광 

곰표의 굿즈 브랜딩의 대박 성공은 수제 맥주 전문회사인 ‘세븐 브로이’가 생산하고 편의점 CU가 유통을 담당한 ‘곰표 맥주’가 만들었다. 굿즈 브랜딩을 고민하던 밀가루 회사가 밀맥주를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접근이었다. 수수하지만 거부감 없는 캐릭터와 지금까지 세련된 서구식 발음의 맥주와는 전혀 다른, ‘OO표’라는 복고풍의 브랜드표기에서 나오는 뉴트로 감성의 만남이었다. 
 
순백의 제품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우리 밀 맥주 컨셉트는 MZ세대에 제대로 어필했다. 또한 기존의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특유의 개성과 향이 강한 수제 맥주와 맛도 차별화했다. 곰표 맥주는 수제 맥주의 품질에 대중적이면서 은은한 과일향이 나는 맛으로 승부를 걸었다. 
 
곰표맥주는 출시 3일 만에 1차 생산 물량 5만 개가 모두 동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사진 CU]
 
이는 20~30대의 취향에 제대로 적중했다. 실제로 곰표 밀맥주의 연령대별 매출을 보면 20대(43%)와 30대(44.4%)가 전체의 8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5월 곰표 맥주가 출시되자마자 1차 생산 물량 5만 개가 3일만에 동이 났다. 
 
수제 맥주에 대한 위탁생산 규제가 풀리자 롯데 칠성에 생산을 의뢰하면서 대량 판매의 길이 열렸다. 마침내 금년 5월에는 편의점 맥주 시장에서 국내 3대 맥주 제조사를 누르는 이변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곰표 맥주의 질주는 생산량을 감당 못하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기세다.  
 
곰표의 콜라보를 통한 굿즈 브랜딩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보통의 굿즈 마케팅과는 달리 일회적 성공이 아니라는 데 있다. 2018년부터 시작된 곰표의 굿즈 브랜딩은 출시될 때 마다 반전으로 화제를 모으며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곰표의 굿즈 브랜딩이 단순히 복고 열풍이 만든 일회적 문화적 현상이라면, 어떻게 굿즈 자체가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가지며 심지어 기존 카테고리 강자들과 비교해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곰표의 전략적 브랜딩이 비록 주력 제품인 밀가루에 대한 소비자 인지와 이미지를 끌어 올리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지만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브랜딩 원칙을 보면 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곰표는 우선 매출이 목적이 아니라 브랜드의 인지도와 선호도를 높여 주력 제품인 밀가루의 브랜드 풀링을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연스럽게 콜라보의 원칙을 브랜드 아이덴티티 즉, ‘자기다움’을 강화시킬수 있는 제품으로 한정시켰다. 
 

‘밀가루 회사’ 이미지에 걸맞는 브랜드만 OK  

우선 곰표의 캐릭터와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곰표의 친근하면서도 재미있는 이미지에 해를 줄 수 있는 콜라보레이션 브랜드는 사절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 밀가루 제품의 하얗고, 부드럽고, 무해한 이미지를 해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곰표 밀가루의 자기다움을 형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형용사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재미요소(fun)가 있어야 할 것. MZ세대에게 SNS에서 입소문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전략 타겟인 MZ세대에 소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을 원칙으로 젊은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가이드 라인을 보면, 유사한 뉴트로 콘셉트로 만든 천마표 초콜릿이나 천마표 시멘트 포대 디자인을 이용한 백팩, 말표 구두약을 모티브로 만든 초콜릿, 흑맥주등과 비교해 보면 왜 곰표 콜라보를 통한 굿즈 브랜딩이 매번 완판 행진을 이어갔는지 금방 이해가 간다.  
 
곰표는 희고, 부드러운 밀가루 이미지를 해치지 않는 브랜드와 협업해 다양한 굿즈를 출시했다. [중앙포토]
 
곰표의 콜라보 굿즈 브랜딩은 칠순의 B2B 브랜드, 곰표의 ‘곰 같지 않은’ 스마트한 아이디어로 평가 받을 만하다. 우선 곰표 밀가루로 요리하고, 곰표를 먹고 자란 세대에겐 잊혀졌던 브랜드를 다시 마음속에 떠올리게 했다. 그들의 자녀인 MZ세대에게는 뉴트로의 감성을 가진 재미있는 브랜드로 기억되며 새로운 ‘곰표’가 앞으로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그들이 선택한 빵과 밀 제품에는 ‘곰표 밀가루가 들어가면 더 좋겠다’는 기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B2B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잊혀지면 결국 완제품 브랜드의 선택만을 바라보게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곰표의 콜라보 굿즈 브랜딩은 이제 다음 단계로 진입한 것 같다. 
 
최근 곰표는 본업인 밀가루와 관련된 제품을 콜라보가 아닌, OEM(주문자상표부착 생산)으로 제품을 생산·판매하기로 결정했다. 곰표 캐릭터 ‘표곰’의 모양으로 만든 치킨너겟을 곰표가 직접 판매하기에 나선 것이다. 한편 곰표 로고 서체를 이용한 무료 폰트를 만들어 MZ세대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이런 곰표의 리브랜딩을 통한 브랜드 확장을 의미있게 바라보는 이유는 밀가루라는 원료를 만드는 회사에서 치킨너겟이라는 완제품을 고객의 식탁에 올리는 기업으로 변신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순백의 희고, 부드럽고, 깨끗한 자기다움에 뉴트로 감성을 더해 특유의 ‘곰표 문화’를 만드는, 더 큰 시도의 출발로 보이기 때문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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