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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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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걸 다 해” 얘기 들었던 지난 1년, 코레일유통을 변화시키다[이코노 인터뷰]

유통

코레일유통은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다. 지난 2004년 12월 설립됐지만 기본 모태는 1936년 설립된 철도강생회(1967년 홍익회로 개칭)다. 지난 2007년 현재의 사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익숙하지만 코레일유통은 낯설다. 이곳은 철도역사 내 편의점이나 자판기, 광고물 등을 관리하고 점포 임대 사업도 추진한다. 우리가 KTX(고속철도)를 타기 위해 잠시 머무는 철도역사 내 모든 유통 관련업을 관리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지난 몇 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신음했던 코레일유통은 최근 날개를 펴는 분위기다. 여객 수요가 늘면서 실적은 자연스레 상승세를 탔다. 지난해에는 5992억원의 매출을 내며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물론 코레일유통의 실적 상승은 단지 늘어난 여객 수요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해 3월 부임 후 모빌리티 서비스업을 지향하며 회사에 ‘변화의 씨앗’을 심은 김영태 코레일유통 대표이사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긍정적 경험 제공…모빌리티 서비스의 시작Q.부임 1년이 지났다. 1년간의 소회를 밝히자면.-철도역사가 달라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또 “쟤네들(코레일유통) 별걸 다 하네”, 뭐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 부임 후에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철도역사를 재미있는 곳으로 인식할까’를 많이 고민했다. 서울역에 커다란 곰돌이(초대형 벨리곰)를 세우기도 하고, 부산역에서는 롯데자이언츠 야구단 출정식도 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때 철도역사를 방문한 대원들한테 생수를 무상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5월 어린이날에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캐치티니핑’ 캐릭터 전시회도 열었다. 우리 역사를 찾는 모든 고객들이 좀 재밌어했으면 해서 뭐 이것저것 많이 한 것 같다.Q.코레일유통이 ‘모빌리티 서비스’를 강조하는 이유는. -모빌리티 혁명의 시대에서 철도가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철도 고유의 경쟁력인 안전·친환경·정시성 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고객이 ‘이동’을 위해 모빌리티 서비스를 경험할 때는 집에서 나와 원하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순간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고 평가한다. 그러면 결국 고객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모빌리티 서비스 퀄리티(질)의 관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철도역사는 고객에게 먹거리·볼거리 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모빌리티 서비스와의 연계를 통한 질 좋은 서비스 제공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Q.철도역사는 코레일유통 모빌리티 서비스 혁명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일 텐데.-지난해 전국에 있는 모든 철도역사에 다녀간 고객 수가 약 18억명이다. 이분들 시선이 우리 역사 내부에 꽂힌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철도역사 방문객의 60%는 KTX 이용객이다. 현재 KTX 정시율은 무려 99.8%다. 열차 지연 등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시율 수치가 높으면 고객들이 역사 내에 머무는 시간이 그만큼 적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분들이 철도역사를 방문했을 때 ‘역사 내 식당 밥이 생각보다 맛있네’, ‘고향 방문 선물을 미리 준비 못했는데 역사 내에서 꽤 살만한 상품들이 많잖아?’ 등의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목표다. Q.철도역사가 고객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철도역사는 모빌리티 허브(Hub)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철도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 아닌가. 그러면 우리가 이 플랫폼 안에서 고객과 어떤 것을 연결시켜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된다. 지난해에는 카셰어링 업체인 ‘쏘카’랑 함께 여러 고객 서비스를 고민했고 현재도 구체적인 서비스화를 위해 테스트하고 있다. 또 토스가 특정 지역에서 애플리케이션(앱)을 작동하면 10원을 나눠주는 서비스가 있다. 이를 참고해 우리 철도역사 내 특정 매장 앞에서 토스앱을 켜면 20원을 주는 공동 마케팅을 진행했었다. 지금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와 토스 모두에게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Q.모빌리티 서비스 강화를 위한 다음 계획은.-철도 모빌리티 서비스는 다른 모빌리티 서비스보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토균형발전과 지역소멸 완화를 위해서라도 모빌리티 서비스를 국가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이에 지난해 취임 이후 전북 무주군·강원 인제군·강릉시·부산광역시·강화도 등과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앞으로도 전국 지차제들과 더 많은 협력을 통해 서비스를 확장해나갈 예정이다.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강조하는 ‘청취의 중요성’ 김영태 대표는 기자 출신으로 언론사 퇴사 이후 하이트진로·한샘·쿠팡 등 굵직굵직한 기업에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역임했다. 또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초대 국민소통관장도 맡았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소통이다. 그리고 소통을 위해서는 일단 들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청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해 4월 취임 당시 김 대표는 스스로 ‘최고청취책임자’(CLO·Chief Listening Officer)라는 표현을 썼다. Q.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제가 어렸을 때 벤처 미디어 관련 기업을 두 번 창업했다가 모두 망했다. 그래서 ‘지금은 때가 아니구나, 나는 창업과 안 맞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업들을 잘 되게 도와주는 일은 적성에 맞았다. 오히려 그쪽에서 내 실력을 발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이트진로 혁신 담당 임원으로 들어갔다. 당시 하이트진로는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하는 변화의 시기였다. 한샘 커뮤니케이션 총괄을 맡았을 때는 한샘과 이케아가 치열한 홈퍼니싱 경쟁을 할 때였다. 쿠팡 커뮤니케이션 부사장 때는 쿠팡이 고속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미친 듯이 경쟁하던 시기였다. 쉽지 않은 시기에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았지만 나름의 성과를 내온 것 같다. Q.정치 커뮤니케이션에까지 영역을 넓혔다.-정치 커뮤니케이션 쪽도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대통령 선거 커뮤니케이션의 기회가 찾아왔다. 대통령 선거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보면 커뮤니케이션 일의 끝판왕 아닌가.(웃음)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과 관련한 현장 스피치 등을 관여했다. 내가 낸 의견이 꼭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많이 깨지기도 했지만 어떤 의견은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선거를 이기지 않았나.(웃음) Q.청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면.-하이트진로에서 물류 담당 임원으로 일했을 때다. 2008년 화물연대가 파업을 하던 시기였다. 전국 술 배송이 마비가 됐다. 그때 청주에 위치한 소주공장 파업 현장을 찾았다. 당시 25톤(t) 탑차에 적재물을 싣는 공간에서 시위가 진행됐다. 나도 거기에 올라가서 앉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위 노동자들의 얘기를 계속 들었다. 그분들은 자기 월급 명세서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동안의 고초를 늘어놨다. 그러다 저녁 때쯤 되니 나이가 지긋한 한 시위 관계자 분이 나에게 와서는 “파업 현장에 임원이 온 것도 처음이지만 너 같이 하루 종일 우리 얘기 다 들은 놈도 처음이야”라고 했다. 그러고 이후에 파업 문제는 일이 잘 풀렸다. 들으면 일단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혁신의 기본은 일단 듣는 데서 시작한다. 다들 소통하라고 하는데 소통은 누군가를 만나 ‘나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듣는 거다.Q.청취 경영이 직원들에게 통했다고 보나.-직원들 사이에서 ‘들어주는 최고경영자(CEO)’라는 이미지는 심어진 것 같다. 또 회사가 지금까지 안 해봤던 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분위기라는 것도 직원들 사이에서 인식이 됐다. 그래서 지난해 회사가 실적도 좋았고 직원들은 각 부서에서 안 했던 시도들을 많이 했고 여러 성과를 낸 것 같다. 제가 지난해 취임사 때도 강조했지만 뭐든지 일단 ‘실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직원들이 하지 말아야 할 이유 10가지에 주저하지 말고, 해야 할 똘똘한 이유 한 가지를 믿고 도전했으면 좋겠다.Q.임기 내에 이루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코레일유통이 모빌리티 서비스 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그런 토대들을 더 구축해 놓고 싶다. 다만 공기업이다보니 예산이나 이런 부분에서 제약이 많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회사의 방향성은 만들어 놓자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시도들을 통해 얻은 기업문화도 그런 방향성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다음 분(사장)이 왔을 때도 그동안 구축해 놓은 기업문화를 자연스럽게 가져가게 하는 것이 목표다.

2024.05.20 06:01

6분 소요
"막말·혐오정치에 염증"…2030 청년층 표심 어디로

정책이슈

4·10 총선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오전 9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한 총선 후보가 "2030 세대들이 투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귀를 기울이거나 호응하는 학생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부분 두 귀에 이어폰을 낀 채 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했다.신촌역 인근에서 만난 대학생 김연형(20)씨는 "누가 되든 딱히 바뀌는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며 "선거 벽보 등을 통해 후보들의 공약을 접하기는 하지만 와닿는 건 없다"고 말했다.제22대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많은 유권자들이 표심을 정하지 못한 채 고심하고 있다. 진영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선거기간 내내 서로를 헐뜯는 막말과 인신공격이 난무했고, 이로 인한 '정치혐오' 정서가 가뜩이나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을 더욱 더 실망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청년층을 대표할 후보자들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데다, '청년 공약'마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자 의식 조사 발표에 따르면 지난 총선과 비교해 '선거에 대한 관심도'와 '투표참여 의향'이 2030세대에서 유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적극적 투표 의향을 보인 응답자를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18∼29세가 52.3%로 가장 낮았는데, 이는 지난 총선 때보다도 0.5%포인트 낮다.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공동으로 여론조사업체 메트릭스에 의뢰, 지난달 30~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3일 발표한 결과에서도 18~29세(국민의힘 16%·민주당 30%)와 30대(국민의힘 13%·민주당 40%)는 투표할 후보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각각 40%, 33%에 달했다.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20)씨는 "전공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편인데 이번 총선을 보면 상대 정당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나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아 공약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청년 관련 공약을 찾아봐도 깊이 있는 고민과 연구를 통해 내놓은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건축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26)씨는 "거대 양당이 진보, 보수로서의 비전이 아니라 그때그때 특정 인물만 내세우고 있다. 당명을 가려놓고 정책을 보면 구분도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청년층을 대변할 인물이 적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총선 지역구 후보 696명 중 20대와 30대는 38명(5.5%)에 불과하다.이날 만난 10여명의 학생은 하나같이 "정치권에 청년을 대표하는 이들이 너무 적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가에서는 이 같은 이유로 총선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거나 투표할 계획이 없다는 이들을 상당수 찾아볼 수 있었다. 투표는 할 의향이 있지만 누구를 뽑을지 정하지 못했다는 경우도 많았다.연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전모(25)씨는 역시 투표할 계획이 없다며 "대학생들은 아직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정치보다는 각자 공부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30대 초반 직장인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대전에 사는 직장인 이모(31)씨는 "전혀 현실성 없는 '공약뿐인 공약'이 너무 많고 토론회를 보려고 해도 정책은 없고 서로 헐뜯기만 하니 채널을 돌리게 된다"며 "'또 한자리 해 먹으려고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고 전했다.서울 서초구에 사는 회사원 고모(31)씨도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온갖 사안에 정치적 견해를 끼워 넣어 싸우는 것을 보고 염증을 느꼈는데 정치인들은 그것을 부추기고 '내 편'만 강조하는 것 같아 정치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졌다"며 "아직 뽑고 싶은 후보가 없다. 무효표라도 던지라는데 내 시간이 아까워 투표하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전문가들도 극단적인 진영 대결과 '알맹이' 없는 공약이 청년들을 점점 더 정치 혐오와 무관심으로 몰아넣는다고 우려했다.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이번 총선에)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의제가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지금 총선 선거운동은 '정권 심판'과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구도로 가고 있는데 청년들은 이런 정쟁적 이슈에 관심도가 떨어진다"고 평가했다.이어 "양당이 청년의 표심을 잡겠다고 '얼마 투입하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지만 청년들은 이런 공약들이 실행될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우리 정치가 진영 대결로 극대화되고 있다 보니 청년들이 정치에서 손을 떼고 싶어 하게 된다"며 "진영 대결 속에 정책 중심 선거는 부재하고 청년을 위한 정책이 보이지 않으니 정치가 미래를 구해준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무관심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청년층이 정치권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박 평론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의 뜻대로 정책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청년의 미래도 정치가 결정하게 된다"며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면 미래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종훈 정치 평론가는 "젊은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대안을 찾기 위해서라도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정치권의 싸움이 계속되고 국민들은 수동적인 형태로 그들의 싸움에 동원되는 존재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

2024.04.04 08:56

4분 소요
[세이노 칼럼 단독 공개] ‘세이노의 가르침’ 못다 한 이야기

전문가 칼럼

인연이란 참 놀랍다.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을 돌아보며 ‘세이노 열풍’을 주목하기로 했다.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의 글을 직접 소개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올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세이노의 가르침’을 쓴 저자는 잘 알려졌다시피 1955년생 1000억원대 자산가다. 대외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의 문장처럼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우며 대화가 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선입견이었다. ‘어른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보고 자란 기자 홀로 가진 착각이기도 했다. 취재하며 느낀 그는 까탈이 아닌 세심함을, 고집이 아닌 신념을 지닌 어른이었다. 상대방의 의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인물이란 평도 인상에 남는다. 세이노는 책 ‘세이노의 가르침’의 각주 성격인 이 글을 보내며 첫 문장에 “인터뷰 요청은 사양하였으나 20여 년 전 이코노미스트에 글을 쓴 인연조차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이 글을 인터뷰 대신 쓴다”고 했다. 본지는 잊고 있던 인연의 소중함을 필자가 일깨워준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1713호(12.4~10) 커버스토리로 시작한 ‘세이노 열풍’ 기획을 이렇게 저자가 직접 쓴 글로 매듭지을 수 있게 됐다. 힘든 한 해였다. 내년은 더욱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어른’ 세이노의 글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남이 떠먹여 주는 숟가락에는 독이 묻어 있기 마련…직접 손을 놀려라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미래에 보유하고픈 자산 규모를 구체적으로 말하곤 한다. 이를테면 “나는 10년 후에 100억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라는 식이다. 나는 어땠을까? 결혼 후 최우선 목표는 집 하나 장만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에게 숫자로 표시되는 목표는 전혀 없었고 “한 달에 1000만원을 벌자” 같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혼자 벌레처럼 살면서 복권을 사던 시절에는 미래의 내가 부자로 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이후에는 내 두뇌에서 그런 상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1년 후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내가 계획하는 미래는 길어야 3개월 정도였고, 오로지 고객의 신뢰를 쌓아가면 수입은 늘어날 것이라고만 믿었다. 그러던 중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경매 직전의 아파트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출을 끼고 샀다. 그 후 사업에 재정적 어려움도 많았으나(7000만원 받을 어음이 부도난 일도 있었다) 아파트 매입 5년 후 면적이 2배인 다른 아파트를 현금 구매 후 이사한 뒤에도 금전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았고 그저 모으고 정기예금만 했다. 어느 날 부채 없이 보유 현금이 20억원이 되자 은행 금리가 연 10% 이상 되었던 시절이었기에 이자 범위 안에서 돈을 쓰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몇억 부자가 되자는 그런 생각은 꿈속에서도 하지 않으면서 사업과 투자를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2·3년에 한 번 정도 자산을 살펴보니 부채는 전혀 없이 자산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운도 따라주었지만, 사업과 투자를 제대로 한 덕분이고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자세히 얘기한 적은 외환위기 당시의 달러 투자와 전동 현수막 걸이 이외에는 거의 없는 듯싶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돈의 액수를 목표로 삼지 않았던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목표액을 채우려다 보면 사람들에게거짓말이나 뻥튀기도 할 것이고 직원들에게 야박한 월급이나 주면서도 최대한 부려 먹고자 했을 것이며 그 결과, 나의 인티그리티(Integrity·머릿속에서 옳다고 믿는 생각들과 행동이 엇갈림 없이 하나된 상태, ‘세이노의 가르침’ 186쪽)는 박살 나면서 나 자신이 내가 침 뱉던 대상으로 변하여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모습이 구역질 날 정도로 역겨워져서 나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빨리 벌려고 하면 돈을 못 번다는 말이 진리라고 믿는다. 어쨌든 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일부는 종종 내게 질문한다. 시간을 아껴 자기 개발을 해 종잣돈을 모으라는 것은 알겠는데 ‘종잣돈을 모은 후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째서 총론은 이야기하면서 각론은 알려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숟가락으로 돈을 떠먹여 주기를 바라는 자들이고 비싼 강의 하나 잘 들으면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기연과 비급을 얻게 되어” 팔자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어리석은 닭대가리들이다. “남이 떠먹여 주는 숟가락에는 돈이 아니라 독이 묻어 있다”(내 책을 출판한 차보현 대표의 말이다)는 것을 왜들 그렇게 모를까?나를 개인적으로도 알고 있는 오상익 오간지프로덕션 대표가 MZ세대이면서도 대학교 강의에서 내 책을 교재로 사용하기에 ‘어째서 세이노는 총론만 얘기하고 각론은 얘기하지 않는지’를 설명해 보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세이노는 종잣돈을 모으라고 하면서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 쌓인 돈이 부자가 될 종잣돈이라고 말하지만, 종잣돈의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 것인가, 종잣돈의 기준과 가치는 독자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몇천이 종잣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몇억이 종잣돈이 될 수 있다. 종잣돈의 금액이 다르듯이 돈을 모으는 기간도 다르다. 독자마다 수입이 다른데 어찌 모으는 기간이 같겠는가.● 종잣돈은 독자의 가치관과 처한 환경, 우선순위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부자마다 부자가 된 과정이 다르듯, 종잣돈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공통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이노는 독자가 어떠한 상황인지, 독자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모르기에 종잣돈의 활용법에 대하여서는 침묵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종잣돈을 모으는 단계까지는 일종의 보편적 방식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르침을 준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타인에게만 의존하면 독자 생존할 수 없다. 세이노가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여 주었다면 1인치씩 전진하는 걸음(종잣돈을 증식하려는 노력)은 철저히 독자의 몫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줄 아는 독자라면 누군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종잣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스스로 깨칠 것이다. ● 영화 ‘위플래쉬’(Whiplash)에서 앤드류의 음악은 플래처 선생의 채찍질(Whiplash)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와 맞서 싸우고 필사적으로 분투하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지휘자 플래처는 앤드류가 전혀 모르는 곡으로 교묘히 바꿔 그를 함정에 빠뜨리지만, 앤드류는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카라반’(Caravan)을 당당하게 독주하며 폭군 플래처까지 흥분시킬 정도로 최고 스윙을 폭발시킨다. 즉, 영화에 나오는 앤드류처럼 독자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만의 게임(인생)’을 만들어 나가라는 것이 세이노의 진짜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맞다. 종잣돈에 대한 얘기도 맞고, 스스로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도 맞다. 영화 ‘위플래쉬’는 드러머인 주인공 앤드류가 최악의 갑질 폭군인 선생 밑에서 끝없는 경멸과 모욕과 멸시를 당하지만 결국은 그 선생을 이겨내며 음악적 성취를 이루는 이야기이다. 사업을 하면서 나도 그런 갑질을 하곤 했지만, 격려와 칭찬은 물론 두둑한 보너스도 잊지 않았기에 플래처의 내리꽂기만 하는 교육방식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은 크게 공감하며 흥미롭게 보았다.1970년대 말, 20대 초반이었던 내가 미군 부대 안의 대학에 다니면서 학원과 기독교 관련 서적 번역으로 돈을 벌고 있던 때의 일이다. 번역일을 꽤나 하며 우쭐하던 시기에 어느 기독교계 대형출판사에 번역 지원을 하였더니 짧은 영문 자료를 시험 삼아 번역하여 오라고 했다. 제목은 데올로구메논(theologoumenon). 조직신학 용어인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힌트를 좀 얻으려고 여러 도서관을 뒤져봤지만 내가 받은 원문이 독일어 신학백과사전 ‘사크라멘툼 문디’(Sacramentum Mundi)의 영어번역본에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만 미군 군종장교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결국 몇 주 동안이나 끙끙대며 헤매다 직역으로 원고지 15매 정도를 번역하고 그 출판사의 번역 총책임자에게 직접 제출했다. 그분은 내 원고지 몇 매를 읽다가 휙 내 얼굴에 집어 던지면서 짜증 섞인 음성으로 “이걸 번역이라고 했어요?”라고 내뱉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모욕을 당한 것에 자존심이 상하고 ‘독일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건데 헤매는 게 당연한 거 아냐?’하는 생각에 그냥 나가버릴까 하는 충동도 순간적으로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내 실력이 너무나도 창피했다. 내 원고는 내가 읽어도 이해가 안 되었으니까. 나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원고지들을 모은 뒤 벌게진 얼굴로 공손히 말했다. “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분이 플래처 선생과 다른 점은 아주 무뚝뚝했지만 “한번 해보시겠어요?”라고 내게 물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종로서적에서 당시 독일 유학 중이던 고영민 목사가 번역한 조직신학 책과 그 책의 원서를 동시에 구입했고, 그 뒤 번역문을 원문과 한 문장씩 대조하며 한 달 이상을 철저히 혼자서 나만의 게임을 했다(원서 저자가 ‘루이스 벌콥’이었는지 ‘찰스 하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번역서로는 두 저자의 조직신학을 모두 읽었다). 그 다음 데올로구메논의 의미를 이제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번역 일감을 받으러 그곳에 다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번역 원고가 그대로 최종 원고로 인정받는 사람으로 올라섰다. 1. 부동산 이야기사람들이 투자 각론을 알고자 하는 분야는 부동산·주식(채권 포함)·사업·장사일 것이다. 가장 많은 질문이 들어오는 분야는 부동산인데 사람들은 나를 전국구 부동산 상담사 정도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전혀 아니다. 나는 내가 탐내는 물건이나 내가 보유한 물건과 관련하여서만 공부하지, 전국의 부동산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당신이 갖고 있거나 구매하려는 부동산에 대해 내게 메일을 보내 봤자 내가 오랜 시간을 투자해 그 지역에 대해 조사할 리는 전혀 없으므로 시원한 답은 결코 줄 수 없다.(법적인 문제로 인해 메일을 보내는 독자들도 꽤 있는데 내가 힌트 한두 마디 정도는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법을 새로 공부하여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될 것이다.) 내가 부동산 하나를 사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곤 하였는지 당신은 모를 거다. 한 번은 100여 개 이상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며 소유주의 나이, 관계회사 재무제표, 대출 상황 등을 전부 분석한 후 마음에 드는 것들만 추려낸 적도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마음에 드는 매물이 나오기까지 3년을 계속 지켜보다가 매입하기도 했다. (비단 부동산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나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것과 관련된 것들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변기에 앉아서 한 시간 이상을 서류에 몰두한 적도 가끔 있었는데 직원은 내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은 줄로 착각하여 작은 소동이 일어났던 적도 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왜 그렇게까지 파고드느냐고 묻기도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냐고까지 하는데, 사실이 뭔지도 모르고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생각하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자칫 고통 속에서 처절한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다. 솔깃한 얘기일수록 들리는 대로 믿어 버리기 쉬운데,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서 뒤쪽에 쓰겠다.)당신이 부동산 투자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였다 할지라도 갓난아이 우유 먹이듯이 누군가 떠먹여 주기를 바란다면 조만간 사기나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 대부분의 사람은 복잡한 등기부등본 분석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친구들이나 부동산중개업소 혹은 강의팔이들이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다가 부동산을 매입한다. 전세 사기범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 역시 사람들이 일부 개X 같은 중개사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을 너무나 잘 믿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 말이 틀렸는가? 부동산 시장의 흐름부터 배워야 할 것 아닌가. 그러려면 경제신문이나 경제주간지 하나 정도는 반드시 종이로 구독하여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고? 당신 눈에 들어오는 제목의 기사만 읽을 텐데? 당신 눈에 숨어 있는 기사들은 지면을 펼쳐 볼 때나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당신 나이와 상관없이 부동산에 대해서는 미리미리 그렇게 공부 좀 하여라. 이미 20여 년 전에 “부동산에 빨리 눈 떠라” 하면서 무엇부터 배워야 할지도 말하지 않았던가(‘세이노의 가르침’ 707쪽). 2. 부동산 경매 이야기동아일보 칼럼 연재의 마지막 회(2001년 9월 12일)에서 나는 아래 글을 쓴 바 있다.“작년에 서울 강남에서 지은 지 2년 된 빌라트가 경매시장에 나왔는데 대지와 건물에 대해 모두 저당이 잡혀있었으나 대지에 대한 저당권 문제만큼은 낙찰자가 해결해야 하는 특별매각조건이 붙어있었다. 결국 대지권 없이 건물 소유권만 갖게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이런 집은 재산권 행사에 지장이 있어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입찰에 참여하여 감정가의 반값에 낙찰받았다.”그 특별매각조건은 대지 지분에 대해 근저당이 과도하게 잡혀 있는 별도 토지등기가 낙찰자에게 인수된다는 것이었다. 즉 대지 근저당권자가 경매낙찰가에서 대지분 가격을 분배하여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경매로 인해 소멸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경매 전문가들은 모두 위험한 물건이라고들 한다. 위험한 것은 맞다.대지에 대한 근저당은 건설사가 대위 등기한 것이었다. 등기부의 복잡한 기재 내용들을 살펴보니 건물분 소유권자는 A이고 대지지분의 소유자는 실제로는 A와 B였으나 등기법적으로는 A였다. A와 B는 모두 건설사에 대한 채무가 있는 상태에서 C에게 대지지분의 양도 계약을 하였으나 집합건물에서 건물분 소유자와 대지분 소유자가 다를 수는 없으므로 C의 명의로 등기가 되지는 못한 상태였다. 건설사가 대지지분에 설정한 채권최고액은 8억5000만원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낙찰받았던 금액은 4억2000만원 정도였다. 낙찰 후 내게 지대(대지사용료)를 청구한 자가 있었을까? 없었다. 등기부상 경매물건 소유자는 법적으로 A였고 낙찰된 부동산의 직전 소유자가 낙찰자에게 지대를 청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근저당권자였던 건설사에서 내게 대지지분을 사라고 권유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하려면 C가 동의하여야 하는데 C는 등기부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채권자나 채무자도 아니었고, 경매 낙찰가가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입찰하려는 사람으로 추정되었다.(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몇 %나 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이곳을 전세금 4억원에 임대하고는 이 물건이 세월이 지난 후 다시 경매되도록 하고자 했다. 왜? 이런 집합건물이 세월이 지나 다시 경매로 나올 때는 이미 이전 경매에서 특별매각조건을 낙찰자가 인수하는 조건으로 경매가 진행되었으므로(그 조건이, 근저당권자에게 돈을 실제로 주고 대지지분에 대한 별도 등기를 반드시 해지시키라는 것은 전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건물분과 대지분의 소유자는 동일인으로 간주된다. 결국 두 번째 경매에서는 대지분에 대한 별도의 등기는 사라지고 감정가에서의 건물분과 대지분의 비율대로 낙찰가가 분배되어 대지분 근저당권자에게 지불된다. 결국 1차 경매에서는 전세금 수준의 비용으로 낙찰을 받고, 전세금을 받은 후 세월을 기다렸다가 다시 경매로 처리되게 낙찰자가 “자의적으로” 만들면 큰돈을 투자하지 않고서도 부동산 가격 인상분 정도는 그대로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좀 지난 후 이루어진 두 번째 경매에서 낙찰자는 C였다. 내가 회수한 돈은 전세금 등을 제외하고 약 1억9000만원이었는데 투자 기간이 예상보다는 길었지만 세금 등을 포함하여 4000만원 정도 투자하고 거둔 수익으로는 괜찮았다.자, 내가 동아일보에 특별매각조건 관련하여 칼럼을 쓰고 나서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내게 이 경매와 관련하여 질문한 자가 있었을까? 한 명도 없었다. 오늘 날짜로 검색하여 봐라. 토지별도등기 인수라고 하는 특별매각조건이 있는 경우 2번의 경매를 이용하여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단 한 명이라도 글을 올리거나 책에 쓴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22년 전 칼럼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돈이 돈을 버는구나’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지식이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다. 먼저 지식을 쌓고 사람들이 지식 부족으로 입찰을 꺼리는 경쟁이 약한 물건을 찾아라.” 지식을 쌓으라는 말은 스스로 공부하라는 뜻이다. 경매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의 책이 아니라 경매법 자체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책부터 먼저 읽고 공부하여라. 등기법 역시 경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법원공무원교육원 교수였던 분이 쓴 ‘집합건물의 등기’(신언숙·육법사)인데 오래전에 절판되었다. 절판된 책의 중고품을 몇만원씩 지불하고 사는 사람을 나는 평상시에 도서관을 가까이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 본다. 대한민국에서 출판된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전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협약된 도서관에 가면 지정된 PC에서 국립중앙도서관의 도서 원문을 볼 수 있고 대부분 복사도 가능하다. 협약된 도서관은 공공도서관·대학도서관·전문도서관 등이 있는데 당신이 사는 동네에도 틀림없이 있을 작은도서관(전국에 약 7500개나 있다)도 협약 도서관이고 해외에 있는 외국 도서관들 중에도 협약 도서관이 있다. 작은도서관에서 절판된 책을 읽다가 보유하고픈 부분을 복사하는 데 드는 비용은 A4 1장당 40원이므로 2쪽씩 인쇄하면 1쪽당 20원이다. 법적으로는 책의 3분의 1분량 정도만 복사가 허용된다.(나는 국회도서관도 몇 번 이용한 경험이 있는데 민간인용 주차장이 너무 멀다.) 전세 사기 문제가 심각하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동산중개사들을 불러 교육을 시키는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계약을 맺고 임대차 계약을 맺은 후, 주인이 바뀌면 HUG에서 임대 조건이 바뀐 것으로 치부하여 보증금 반환을 거부할 수 있으니, 임차인에게 매달 등기부등본을 떼 보고 주인이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하도록 안내하라고 한다고 들었다(다중언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공인중개사 MINO가 알려주었다). 미쳤나? 대한민국에서 매달 자기가 사는 집 등기부등본을 떼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외국인 임차인은? 그것보다는 집주인이 바뀌면 자동으로 임차인과 HUG에 알람이 가도록 시스템을 바꾸거나, 시스템 변경에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면 모든 임대차계약서에 “부동산 소유권이 변경되는 계약이 발생하면 계약일로부터 3일 이내에 임차인과 HUG에게 동시 통보하여야 한다. 이를 어기는 경우 임대인은 이러저러한 벌을 감수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강제 삽입되도록 하면 어떨까? 3. 사업과 장사 이야기1980년대 말, 여름 길거리에 있는 건물 지하 1층의 식당이나 찻집 같은 곳을 가게 되면 대부분 퀴퀴한 냄새가 났다. 지하층 벽체에 스며든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생기면서 나는 냄새였고 습기를 제거하는 전기 제습기를 설치하면 해결될 문제로 보였다. 그 당시 청계천과 용산 전자상가들의 상점들에서는 미국 월풀(Whirlpool)의 제습기가 판매되고 있었는데 가격이 40만원대 후반이었다. 나는 경쟁력 있는 제습기를 수입하여 판매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월풀 제습기를 하나 구입하여 사용자 입장에서 꼼꼼히 살펴보았다(제습기의 작동 원리 및 부품들의 기능 등을 배우고, 마케팅 측면에서 월풀 제습기에 있는 약점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약점이 없으면 포기하려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긴다고 하지 않던가). 제습기는 거의 대부분 바닥에 놓게 되므로 전원 스위치나 제습 강도를 조정하는 스위치 같은 것은 모두 상부에 있어야 할 텐데 월풀 제습기의 스위치들은 사용자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제습기 전면에는 물 세척이 가능한 공기필터가 있고 하부에는 습기를 빨아들여 응축시킨 물이 고이는 물통이 있었다. 물통이 가득 차면 표시등이 켜져서 물통을 비워야 함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물통을 비우려면 벽체 가까이에 놓은 무거운 제습기를 앞으로 잡아당긴 뒤 그 후면에서 물통을 빼내야 하는데 제습기 본체에 바퀴가 달려있기는 하지만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을 빼내는 과정에서 물이 출렁거렸고 상당히 번거롭게 느껴졌다. 물통을 빼내는 곳이 제습기 전면에 있고, 응축된 물이 직접 건물 내 배수구로 나가도록 할 수 있는 호스 연결구가 뒷면에 있는 제품이 훨씬 더 좋아 보였다. 디자인도 월풀의 고전적 디자인보다는 모던한 디자인의 밝은 색상이 더 좋아 보였다. 제습 용량은 크기에 따라 달랐지만 회사별 차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 페더스(Fedders)의 제품이었다.그 제품을 즉시 수입했을까? 사업이 그렇게 쉽게 진행되겠는가? 법적으로 복병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판매용 전기용품은 수입 이전에 KC 안전 인증을 받아야 수입 통관을 할 수 있었다. 안전인증을 받는 과정은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했으며 사후서비스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도 밝혀야 했는데 나에게는 버거운 과제였다(현재 수입 하이브리드 슈퍼카 중에는 충전 코드에 대한 안전 인증이 쉽지 않기에 이미 인증을 받은 국산 제품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그 당시 알게 된 것: AC(교류) 전원을 사용하지 않는 DC(직류) 전기용품은 안전 인증이 면제되었기에 AC를 DC로 바꾸어 주는 트랜스를 이미 인증받은 국산으로 제공하면 된다는 것. 이를테면 워터픽(구강세정기)같은 경우 220V용이면 수입판매하는 데 애를 먹지만 직류용인 경우는 국산 트랜스를 끼워 팔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오디오 스피커 같은 것은 앰프에 물리는 것이므로 안전 인증이 없다는 것(이런 규정들이 요즘은 전자파 문제 때문에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자, 어쨌든 제습기는 AC 전원을 사용하여야 했다(그 당시는 110V와 220V가 혼용되던 시기였다). 나는 관세청의 품목별 수입 제한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두꺼운 관세품목 분류표(HS code) 책자를 구입하여 살펴보았고 거기서 제습기는 전기사용량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KC 안전 인증이 면제되는 산업용으로 분류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페더스의 제습기 중에서 하루 제습량이 가장 큰 제품 한 종류만을 수입하기로 하고 페더스 본사의 아시아 담당자와 접촉하였다. 여름이 오기 전, 컨테이너 1개분을 꽉 채운 제습기가 도착하였다. 당시 내 사무공간까지의 도착 가격은 제습기 1대당 25만원 선이었고 판매가격은 경쟁사 제품과 비슷하게 48만원으로 정했으며 기존에 컴퓨터나 음향 설비를 판 곳과 도서관들에 안내문을 먼저 돌렸다. 청계천이나 용산 전자상가에는 단 1대도 위탁판매용으로 전달하지 않았고 할인판매도 금지하였다. 판매 방식은 방문 구입 혹은 현금이체(화물발송비 별도)만 하였고 불티나게 팔렸기에 추가 수입을 부랴부랴 하였다. 판매가 잘된 이유는 경쟁사 제품의 약점들을 정확하게 파고들면서 무료 사후서비스를 무려 5년으로 해주었기 때문이다(퀴즈: 나는 무슨 배짱으로 5년을 내걸었을까?) 구매자가 고장 난 제품을 가져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30분 이내에 수리해 전달하며 3회 이상 고장이 나면 신품 교환 조건이었다. 실제로 고장 난 제품이 들어오면 신품에서 겉 케이스만 제거하여 교환한 후 바꿔주었고(15분도 안 걸렸다) 손님이 간 후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지를 체크하였는데 내부에 있는 컴프레셔는 삼성이 만든 것이었음도 그때 알았다.제습기 판매로 1년마다 서울 맨션아파트 한 채 값 이상의 수익을 올린 지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페더스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의 큰 회사에서 내가 수입하던 물량의 2배를 수입 약정하겠다면서 독점권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미원통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포기하겠다고 했다. 물량을 키우려면 용산과 청계천에 상품을 도매가격으로 깔아야 하고 전담 영업사원도 지정하여야 하며 외상값을 못 받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결국 물량을 2배로 키워도 내 손에 쥐어지는 수익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중단하기에는 수익이 컸기에 멕시코로 날아가서 페더스의 남미 담당자와 접촉하였다. 큰 조직일수록 영업 담당자들은 서로 정보 공유를 안 하므로 남미 담당자는 나에 대해 전혀 몰랐고 손쉽게 물건을 주문할 수 있었다. 컨테이너들이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것을 한국으로 보낸 뒤 귀국하였고 더 이상 가져올 물건도 없었으므로 천천히 느긋하게 팔았다(물량을 2배로 늘려 수입하겠다고 한 그 회사에서 그 후 따로 물건을 들여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나의 방해 공작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미수금 발생은 전혀 없었고 나는 5년 서비스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이 이야기에서 내가 독자들에게 알려주려는 내용은 첫째 어 이게 왜 없지? 하는 자각, 둘째 경쟁제품의 약점 파악, 셋째 법적 장애물을 뛰어넘는 지식, 넷째 많이 파는 것이 장땡은 아니라는 것, 다섯째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5년 무상서비스 약속 준수이다. 장사는 어떨까? 이미 내가 내 책에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사람들 대다수가 망하여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고도 했다. 어느 독자가 그 흔하디흔한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오픈하였는데 몇 개월도 안 되어 대박이 났음을 전해왔다. 그 비법이 무엇이었을까?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좁은 길로 간 것뿐이었다. 정말로 비법이기에 공개하기 어렵다(내게 묻지 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장사를 할 때 남들 하는 것처럼 하면 망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약속은 지켜야 약속이다. 몇몇 독자가 내게 알려준 내용: 어떤 온라인 강의를 “100% 환불보장”이라고 하여 들었는데 막상 환불 신청을 하니 아래와 같이 답이 왔단다.“100% 환불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전체 강의를 수강 및 미션을 수행하세요. 2.배운 내용을 실전에서 실행하세요. 3.xxx 대표가 직접 수업에 배웠던 지식에 대하여 질문드리겠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모두 답변을 완벽하게 하세요. 4.그럼에도 삶의 변화가 없었다면 환불해 드립니다.”그래서 찾아보니 제목은 ‘ 돈이 따라오는 억대 소득의 자수성가법’이고 화면을 넘기면 ‘EVENT2 100% 환불보장제’라는 제목으로 “환불보장제 적용”이라는 구호를 여러 개 배경에 깔아놓고 강사 얼굴이 나오면서 “수강 후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면 100% 환불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나온다. 다시 화면을 넘기면 “안 되면 진짜 말씀하세요. 100% 환불보장”이라는 글 밑에 강사 얼굴이 나오고 “수업을 모두 수강하고 성과가 나지 않는 경우는 100% 환불해 드리겠습니다”고 나온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100% 환불기준”은 마지막 화면 하부까지 가야 지금까지 나왔던 글씨들보다 훨씬 작은 글씨로 나온다(부동산이나 보험 광고에서 자기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아주 작은 글씨로 써 놓는 것과 유사하다). “100% 환불기준”을 읽은 후 쌍욕이 전혀 나오지 않고 말 그대로 100% 환불보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애초부터 환불 약속을 지킬 생각은 있었을까? 아무도 환불을 받아 가지 못했으므로 100% 모두 만족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도대체 누가 이렇게 광고하는 것일까? 심리전문가를 자칭하며 자기 강의만 들으면 인생이 바뀐다고 말하는 박세니다(강의 중에 박세니가 “세이노 그 사람 돈 많으면 뭐해, 정신과 다니는데”, “세이노가 그렇게 돈 많이 벌어봤자 매일 정신병약 먹고 있는데 무슨 소용이야”라고 틈틈이 걱정해 준다는 제보도 받았다. 내가 내 책에서 대장동 사건으로 불안해져서 정신과를 다녔다고 한 얘기 때문인 듯싶다. 그때 정신과 의사인 동창을 찾아갔더니 여러 가지 심리 조사와 몇 차례 상담 후 이렇게 얘기했다. “의사로서 뭘 해줘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너에게는 어떤 약도 의미가 없다. 심리 조사에서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나오는 너 같은 사람을 나는 처음 본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런 네가 관련되지도 않은 정치적 부패 사건에 불안해하며 이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다. 네가 왜 그거까지 걱정을 하냐.” 어쨌든 현재 3가지 비타민과 가벼운 고지혈증 약을 매일 먹는 나에게 박세니는 정신병약까지 먹이고 싶은가 보다).100% 환불보장은 일정 기간 이내에 구매자가 불만족하면 무조건 100% 환불하는 것이지 구매자가 판매자의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처음일 것이기에 확실히 박세니는 선구자인 것 같고 “100% 환불보장”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최면을 일단 걸어 놓고 마지막에 그 환불조건을 작은 글씨로 표시하는 것 역시 최면을 강조하는 박세니답다. 4. 보험보험은 위험 대비용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 나는 이견이 전혀 없으나 보험을 대여섯 개씩 드는 것은 보험설계사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본다. 꼬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보험회사가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고 수익을 만들어 내는지는 알아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보험사들의 비밀 하나부터 얘기하자. 오래전 12월이 되면 나는 계좌에 20억원 정도 준비해 놓곤 하였다. 그때가 되면 유명 보험사 지점장들로부터 청탁이 들어왔는데 12월 31일 이전에 5억원을 입금하면 즉시 5000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1년 후 5억원에 대해 은행 정기예금보다 조금 더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것이었다(5000만원은 그 당시 백화점 대형봉투 하나에 만원권으로 모두 들어갔다). 당연히 나는 응하였고 연말을 기다리기까지 했다(이걸 몇 년이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 5000만원은 수십 명의 보험설계사 수수료로 떼어놓은 금액이었는데 보험설계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자영업자 신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던 시기였음에도 그런 일이 가능하였다는 것은 세무서나 감독기관도 잘 모르는 구석이 보험사들에 있었다는 뜻이고 지금도 여전히 일부는 남아있지 않을까?예를 들어, 혹시 기존 보험은 해지하고 새 상품으로 갈아타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걸 보험업법에서는 자사 승환이라고 하는데, 타사 승환도 있다. 자사 승환은 가입자의 금전적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가입 나이도 늘어나 예전보다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기에 6개월 이내의 자사 승환은 불법으로 금지되고 있음에도 기간에 상관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 보험사에도 이익이 되고 설계사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환 요청은 일단은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보험은 크게 생명·손해·질병 관련으로 분류된다. 보험사에 가장 이익이 되는 분야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하는 생명보험이다(보험료는 가장 비싸지만 갑자기 죽을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생명보험 영업은 기본적으로 인맥을 바탕으로 한다. 당신이 보험을 들게 된 것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찾아와 권유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보험설계사는 없는 돈에 수입차를 사서 골프도 치러 다니고 명품도 걸치며 종교모임은 물론 갖가지 행사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 인맥이 없는 경우에는 보험 가입에 관심이 있는 고객명단(DB)을 회사에서 받는다. 그 명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예를 하나 든다면 홈쇼핑에서 “상담만 받아도 사은품을 준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의 정보가 분석·집약되어 DB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허접한 DB도 만들어지고 좋은 DB도 만들어지게 된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1만원 할인쿠폰을 준다는 것도 당신이 예뻐서 쿠폰을 주는 것이 아니다. 여러 유명 생명보험사들이 그 전속 대리점 및 “모집위탁계약을 체결한 자”(보험설계사를 의미한다) 등에게 줄 DB를 만들고자 당신의 개인정보를 얻으려고 1만원 이상을 지불하기 때문이다(확신하건대 그 DB 중 일부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불법적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회사에서 준 DB에 의존하면 영업 수당도 줄어들고 인맥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그만두는 설계사들이 계속 나온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설계사들이 끊임없이 충원되어야 하니 고수익을 내세워 유인하는 것이다.요즘 보험설계사들은 생명보험의 하나인 종신보험을 상속세 절세용으로 국세청이 추천하는(또는 인정하는) 방법이라고 너도나도 선전하면서(인터넷 검색하여 봐라) 국세청이 발행한 ‘세금 절약 가이드’에 최적의 상속세 마련 방법으로 소개되었다고까지 말한다. 정말? 내가 2020년·2021년·2022년·2023년도의 ‘세금 절약 가이드’를 뒤져보았지만 “자녀 명의로 보장성 보험을 들어 놓는” 것이 여러 가지 상속세 납세자금대책 중 하나로 언급되어 있을 뿐이지 종신보험이 최적의 상속세 마련 방법으로 소개되었다는 것은 완전 뻥이다. 왜 뻥을 칠까? 그게 보험설계사에게 가장 고액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상품이어서 그렇다. 어느 정도나 수수료를 주기에 그럴까?(종신보험이 상속세 대비책이 되려면 보험료를 반드시 소득이 이미 있는 자녀나 배우자가 납부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결국 종신보험은 상속인들이 자기들 돈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보험금을 받아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피상속인이 빠른 시일 내에 사망할수록 유리하고 오래 살수록 불리하다.) 박세니의 ‘억대소득 세일즈맨 양성-박세니마인드코칭 삼성생명 협업프로젝트’를 보면 “억대소득 세일즈맨이 되는 기회를 드리려고”한다면서 선발 과정을 이렇게 명시했다. 요즘(2023년 11월) 박세니의 오프라인 강의는 ‘강의만족도 98%, 강의추천률 98%’을 내세우면서 초급·중급·고급 과정이 165만원이며 최면반이 따로 있다. 입금하면 ‘박세니마인드코칭 수강안내(환불규정안내)’를 알림톡 등으로 받게 되는데 납입한 강의료는 강의 시작일 3일 전 ‘오후 5시 이후 환불·변경 불가’로 나오며 “100% 환불”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매주 중급반과 고급반 강의 후에 있는 미팅에서는 삼성생명 WM(Wealth Management·자산관리이지만 실제는 보험상품 판매다) 영업직원들이 십여 명 참석하여 보험영업을 권유한다. “고급반 수업도 보험영업에 도움 되는 내용 위주이며 ‘삶을 바꾸려면 높으신 분을 최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최근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 제보해 주었다.2023년 6월 22일, 인스타그램에서 박세니는 4월부터 삼성생명의 파트너가 되어 제자들을 연결시켰다고 하면서 4월에 11명으로 시작해 26명이 합류하였고 삼성생명보험으로부터 6월 21일 2692만5135원을 첫 소득으로 입금받았다고 하였다. 파트너가 되었다는 말은 삼성생명의 보험설계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보험설계사를 삼성에서는 FC(Financial Consultant)라고 하지만 회사마다 제각각이어서 영문 호칭이 15개 이상이고 재무상담사·금융전문가·인생상담사 등으로도 부르지만 좀 더 멋있게 보이려고 지어낸 것들일 뿐이고 법적으로는 모두 다 보험상품을 파는 보험설계사이다. FC는 보험사의 직원이라기보다는 자영업을 하는 개인사업자이며 관리자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관리자인 경우에는 자기 밑에 영업조직을 두며 그 조직원들의 활동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게 되는데 박세니는 이 경우에 해당된다. 박세니는 삼성생명 본부장으로부터 8월 11일 ‘경력도입 우수 FC’ 특별상을 받은 사진도 올리면서 “억대 소득 정도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경력도입’이란 다른 회사에서 보험설계사를 했던 경험자를 삼성생명에 들어오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박세니가 “억대소득 정도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억대소득을 달성하는 대표적 방법은 상속세 걱정을 하고 있을 부유층 고객이 종신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다(그래서 박세니가 “높으신 분을 최면에 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월 1000만원을 납부하는 종신보험에 가입하도록 한 보험설계사는 도대체 수수료를 얼마나 받게 될까? 법적으로는 월 납입액의 12배인 1억2000만원이 상한선이지만 법인보험대리점(GA)의 경우 보험사로부터 이른바 ‘시책비’(판매촉진비)를 별도로 받아서 보험설계사에게 그 이상을 지급하기에 2억원 정도도 받는다. 보험 가입자가 1년 이상만 보험료를 납부하는 한 그 수수료는 설계사의 수입으로 남는다. 속된 말로 1년에 1명의 부자만 가입시키면 놀고먹을 수 있게 되고, 심지어 누군가 가입한 것처럼 만들어 놓고 자기 돈으로 1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후 1년 후 해지하여도 수수료가 남을 수 있다(이른바 차익거래라고 한다. 보험업계에서는 물론 금감원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은 하는데… 글쎄다). 삼성생명은 GA 자회사들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박세니가 소속된 삼성생명 ‘헤리티지 센터’는 헤리티지(유산)라는 명칭이 암시하듯이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다. 생명보험 영업조직은 리쿠르팅(채용)-교육-영업으로 이어지는 경로 관리가 핵심이며 일종의 다단계적 성격으로 자신이 만든 조직의 보험설계사 실적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게 되는데 조직이 커지고 실적이 올라가면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이다. 박세니는 FC로 활동하면서 소위 제자들을 리쿠르팅하여 영업에 투입 활용하는 것이다. 중도 포기자가 생기면 새로 인원을 채워 놓으면 된다. 어째서 그 제자들은 생명보험사 영업직 입사 면접은 웬만하면 다 합격하는 것이고 보험 영업방식은 유튜브에 엄청나게 많은데도 박세니의 교육 강의에 돈까지 낸 후 자기 수수료의 일부가 박세니에게 할당되도록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박세니의 말대로 했더니 높으신 분이 최면에 잘 걸려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놀랍고 고마워서?).박세니 강의의 뼈대는 멘탈 프로그램을 팔면서 삼성생명에서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는 구체적 취직 제안까지 하는 것임을 볼 때, 삼성생명 입사를 미끼로 ‘쎈멘탈 판매’ 등 개인 장사를 직접 연계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문제가 될 텐데 삼성의 준법감시팀이나 윤리경영팀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을 보면 좀 놀랍다. 게다가 박세니의 강의는 주로 ‘돈을 벌고 최고가 되는 것’을 자기 최면과 타인 최면을 통해 이루라는 것인데, 자기 최면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타인 최면은 “높으신 분을 최면에 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서 나오듯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심리적 지배) 같은 시도이고 처음 만난 여자에게 최면을 시도하여 뭔 짓을 하려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다(이 글을 읽고 종신보험이 보험설계사에게 그렇게나 수당을 많이 주는데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과연 그 보험이 운영될까를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눈이 떠진 것이다). 5. 주식주식에 대해서는 2008년 10월 11일 딱 한 번 다음 카페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삼성전자가 내 관심사고 포스코는 아니다”라고만 언급한 바 있다. 그 당시 그 말을 하고 나서 후회를 정말 많이 하였는데 내가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 주식을 사도록 유도한 것과 다름없는(그래서 주가가 더 오르도록 유도하여 수익을 더 보려는) 행동이 아닌가 하는 자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조차 90% 이상이 이 주식이 좋다는 식이며 목표주가를 높이 잡는다. 왜? 주식 거래량이 늘어나야 자기네 이익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리딩방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모두가 그런 심보로 주식을 추천한다. 아 물론 그런 심보를 역이용하여 초단타 위주로 하면 좀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세이노라는 이름으로 쓰는 글을 통해 내 사익이 증가한다면 나 자신이 X 같은 나쁜 놈으로 전락하게 됨을 잘 안다. 언젠가 L 및 K 재벌가 사람들(손자들)의 작전회의에 각 한 번씩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것은 ‘결국 개미들이 밥이 되는구나’였고 1원도 가담하지 않았다. 약 1년 후 K 재벌의 직계 가족이 구속되고 몇 개월 후 L 재벌의 직계 가족도 구속되었는데 내가 양쪽 모두 가담했다면 가중 처벌을 크게 받았을 듯싶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그 작전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를 K 재벌에 연결해줬던 동창 녀석은 15억원 정도를 날렸다. 내가 개미들에게 하고픈 말: 주식으로 큰 수익이 났을 경우 당신이 똑똑하고 주식투자 재능이 있어서 돈을 번 것은 절대 아니므로 전업투자자가 되겠다는 개꿈은 갖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게 전업투자를 하다가 배우자도 모르게 엄청난 빚을 진 후 내게 ‘어찌하오리까’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비정상적으로 수익이 발생하고 있으면 빨리 처분하여야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계속 집어넣는 짓도 절대 하지 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성경 말씀도 있다(야고보서 1:14). 통정 거래로 주가를 끌어올렸다가 폭삭 망한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 하한가 사태에서 무려 1500명의 의사들이 위임 매매를 하였던 것도 ‘욕심에 끌려 미혹’당한 것이다. 이때 역시 내게 수백억원을 날렸는데 어찌하오리까 메일을 보낸 독자가 있었다.거듭 강조하는 것이지만 주식 투자는 여유 자금으로 하여야 하는 게임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이길 확률은 10%도 안 된다. 그래서 내가 20여 년 전에 썼던 글은 아직도 유효하다. “편안하게 빨리 돈 벌고 싶어서 애를 태우는 자들이여. 평생 가난의 괴로운 숯불이 이마 위에 올려지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채권은 어떨까? 채권은 인터넷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식 정보보다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다. 국고채는 자본차익(금융투자수익)이 비과세이기에(2025년부터 과세되는 것으로 예고되어있다) 종종 종합소득세율이 이미 40% 이상 되는 경우에는 정기예금 이자 수익보다 세후 실수령액이 더 높다. 즉 종합소득세율이 낮은 경우에는 좋은 투자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좋은(회사가 망할 가능성이 아주 낮은) 회사채는 개미들에게는 기회가 잘 안 간다. 2023년 11월 2일 대한항공 회사채 수요예측이 흥행에 성공하였다는 기사가 그다음 날 떴다. 수요예측은 증권사나 투자사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큰손들에게만 연락하여 예상 투자액을 물어보지 개미들에게는 전화도 안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잣돈이 모이면 좋은 회사채들은 정기예금보다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으므로 경제기사를 평소에 꼼꼼히 잘 읽어나가라. 요즘은 인터넷 뱅킹에서 10만원으로도 채권투자가 가능하므로 경험을 쌓아가며 소소한 기회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홍콩 H지수 ELS의 헤지자산 74% 정도는 국내 채권이므로 ELS의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상반기에는 그 시점에서도 만기가 남아있는 채권들이 ELS 자산 현금화를 위해 쏟아져 나올지 여부도 주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다만 나는 ELS, ELB, DLB, DLS 등등 금융공학자들이 만든 상품들은 가까이하지 않는 고집이 있다.) 6. 팩트를 보는 법2014년 12월 5일 발생한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된 내 글을 내 책에서 읽고 나서(541쪽), 마카다미아를 봉지째로 주는 것으로 서비스 매뉴얼이 바뀌었는데 그것을 조현아 부사장이 모르고 있었고 세이노도 모르고 있었다는 내용이 종종 독자 메일로 오곤 하였다. 그래서 내 책 17쇄부터는 552쪽에 ‘손님에게 알레르기가 있으면 먹지 않을 것이므로 봉투째 준다는 얘기를 누가 하던데, 나는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기 일등석에서 항공사를 불문하고 그런 경우를 경험한 바 없다’고 첨언하였고, 실상을 좀 더 조사해 봤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언론의 기자들이 팩트(Fact·사실)를 제대로 못 보고 비틀어 보도한 전형적인 가짜 뉴스였으며 나무위키나 위키백과도 대동소이했고,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하는가’ 책이 생각나는 사건이었다.(팩트를 골라내는 법을 알게 되면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에서도 유리하여진다.)아마 당신은 그 비행기에서 승무원의 땅콩 서비스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조현아가 서비스 매뉴얼이 바뀐 것을 모르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 매뉴얼이 바뀐 것을 알고는 사무장에게 화살을 돌려 화풀이를 한 것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땅콩을 봉지째 주는 대한항공 홍보영상 장면도 있다고 하여 나도 봤는데 광고 영상을 찍는 사람들은 화면이 예쁘게 나오는 것에 신경을 쓰지 서비스 매뉴얼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문제의 발단이 비행기 이륙 전 조현아에게 객실 승무원이 승객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마카다미아(언론에서는 땅콩, 콩, 너츠 등으로 표기했다)를 봉지째로 전달한 것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날 회사 내부 이메일로 인증받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블라인드’의 대한항공 게시판에는 이런 내용이 떴다고 한다(동아일보 2014-12-10).“음료와 마카다미아 너츠를 줄 때 봉지째 주느냐? 규정이 뭐냐?(규정은 음료를 요청한 승객에게 마카다미아 너츠를 봉지째 보여주고, 먹겠다고 하면 갤리에 들어가서 뜯어서 작은 그릇에 담아줌)…갤럭시노트 10.1을 꺼내 규정을 보여줌.(당연히 잘못이 없는 객실 승무원)…”2014년 12월 10일 한겨레신문은 서비스 매뉴얼을 단독 입수하여 “조현아의 딴죽? 승무원은 ‘매뉴얼’대로 했다”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10일 <한겨레>가 단독 입수한 대한항공의 ‘일등석(FR/CL) 웰컴 드링크 SVC(서비스) 시 제공하는 마카다미아 너츠 SVC 방법 변경’ 공지를 보면, 승무원은 “음료와 함께 마카다미아 너츠를 포장 상태로 준비하여 보여준다(showing)”고 명시돼있다. 이어 “마카다미아 너츠를 원하는 승객에게는 그릇에 담아 가져다드릴 것을 안내해 드린 후, 갤리(Galley)에서 버터볼(작은 그릇)에 담아 준비하여 칵테일 냅킨과 함께 음료 왼쪽에 놓아드린다”고 돼 있다.이 매뉴얼 변경이 공지된 것은 2012년이다. 변경 내용은 승객에게 ‘봉지째 마카다미아 너츠를 보여주라’고 한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 다만 그 뒤 원하는 승객에게 갖다줄 때 ‘봉지째 제공’하던 것을 ‘그릇에 담아 제공’하도록 바꾼 것이 전부다. 미주노선을 운항한 적이 있는 복수의 대한항공 승무원은 “지난 5일 뉴욕발 항공기 승무원이 봉지째 너츠를 갖다 보여줬다면 이런 매뉴얼에 어긋나지 않는다.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2014년 12월 10일 경향신문은 대한항공 측은 승무원의 ‘잘못’을, 노조 측에서는 조현아 부사장의 ‘착각’을 주장하고 있음을 보도하였다.“여전히 말이 엇갈리고 있지만 승무원이 1등석에 타고 있던 조현아 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 견과류를 봉지째 건네자 조 부사장이 그릇에 담아오지 않았다고 지적을 했다는 게 대한항공 측의 설명이다. 반면 노조 측은 “드실 것”인지 승객에게 물어보기 위해 규정대로 봉지를 들고 갔는데 조현아 부사장이 화부터 낸 것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그리고 하루 뒤인 2014년 12월 11일 경향신문은 그 매뉴얼의 영어 원문을 보여주면서 아래와 같이 보도하였다.“…당시 문제가 된 것은 마카다미아를 어떻게 서비스하느냐였다. 승무원은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갔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에 대해 왜 봉지를 뜯은 뒤 마카다미아를 버터볼(그릇)에 담아오지 않았느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지난 10일 입수한 대한항공의 일등석 객실 서비스 매뉴얼을 보면 “웰컴 드링크 서비스 시 음료와 함께 마카다미아넛을 포장 상태로 준비해 보여준다”고 돼 있다. 이어 “승객이 마카다미아넛을 원하면 갤리(음식을 준비하는 곳)에서 버터볼(그릇)에 담아 칵테일 냅킨과 함께 음료 왼쪽에 놓는다”고 돼있다. 2012년부터 이 매뉴얼대로 서비스해오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매뉴얼을 잘못 알았다는 것이다.”2014년 12월 19일 경북매일신문 기사 내용: “조현아는 자신이 탄 비행기에서 땅콩을 봉지째로 줬다는 이유로 사무장을 내리라고 지시해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이 공항에 내린 후 비행기가 출발하게 했다. 비행기 기내 규정은 땅콩을 요청한 승객에게 땅콩을 봉지째 보여주고, 먹겠다고 하면 갤러리에 들어가서 뜯은 후 작은 그릇에 담아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 사무장이 했던 행동은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다.” 조현아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결국 구속 기소되었다. 2015년 1월 16일 경향신문이 조현아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입수하여 분석한 단독 기사에 의하면 12월 5일 현지시간 0시 43분 “승무원 견과류 봉지째 쟁반에 받쳐 제공. 조 전 부사장 승무원에게 ‘매뉴얼 가져오라’ 지시. 박창진 사무장 매뉴얼 담긴 태블릿 PC 가져오자 조 전 부사장 격분”으로 언급된다. 0시 53분에는 “조 전 부사장, 승무원 김 씨의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박 사무장에게 ‘당신 잘못이야. 네가 내려’ 지시”하였다고 한다.즉 승무원이 봉지째 쟁반에 받쳐 제공했음이 분명하므로 경향신문의 12월 11일자 기사는 틀린 뉴스가 되고 경향신문 12월 10일자 기사에서 나온 노조의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른 것이 된다.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공소장은 물론 여러 기사에서 “조 전 부사장, 승무원 김 씨의 잘못 없었다는 것 알면서도”라고 하거나 “뒤늦게 조 전 부사장은 변경된 매뉴얼에 따라 김 씨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을 알게 됐다. 이번에는 적반하장격으로 박 씨에게 ‘화살’을 돌렸다”는 식으로 나온다. 과연 그럴까?(참고로 “조 전 부사장 격분” 이유는 승무원들이 서비스를 준비하는 공간(갤리)이 바로 앞에 있고 그곳에 종이 매뉴얼이 있는데 사무장이 태블릿PC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비행기 이착륙 시 승무원이 하는 안내방송 역시 제아무리 고참 승무원일지라도 종이 매뉴얼을 보면서 하는 것이고 종이 매뉴얼들은 언제나 그것이 필요한 장소에 놓여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격분”할 만한 것이었냐고? 그 판단은 당신이 어떤 조직에서 그 정도 지위에 올라갔을 때까지 유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격분” 이후의 행동들은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2015년 2월 2일 2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무려 11시간이나 계속된 결심공판법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언론보도를 축약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과연 기자들이 11시간 동안 그곳에 계속 있었을까? 검사의 질문들은 동아일보에서 상세히 보도했으므로 궁금하면 찾아봐라.)경인일보(2015년 2월 2일)조현아는 기내에서의 행동이 여승무원 김 모 씨의 서비스 위반으로 인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박창진 사무장이 매뉴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사건의 원인제공을 승무원과 사무장이 했다는 것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승무원의 서비스가 매뉴얼과 다르다고 생각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매뉴얼을 찾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조현아는 기소된 이후 진행된 두 차례 공판 동안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것과 달리 조심스럽긴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진술했다. 특히 그는 당시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 방식이 ‘명백한 서비스 매뉴얼 위반’이라고 강조했다.조현아 전 부사장은 당시 여승무원이 ‘웰컴 드링크’를 서비스한 것과 관련해 “웰컴 드링크는 매뉴얼에 ‘오더 베이시스’(Order Basis)라고 설명돼 있는데, 이는 승객이 원하는 것을 물어보면 갖다 주는 것”이라며 “하지만 여승무원은 (물어보지 않은 채) 물을 갖다 주면서 콩과 빈 버터 볼을 갖고 왔고, 이는 분명한 매뉴얼 위반”이라고 밝혔다.이는 앞서 박창진 사무장이 증인신문에서 “관련 매뉴얼이 작년 12월 초 ‘봉지째 보여주며 먹을지 묻고, 먹겠다고 하면 작은 그릇에 담아 제공’으로 개정됐고, 이는 조 전 부사장의 결재로 공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 것과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다.동아일보(2015년 2월 3일)결심공판에서 조 전 부사장은 어떤 부분이 위반이냐는 질문에 “자신은 물을 갖다달라고 했는데 물과 함께 견과류를 가져왔기 때문에 매뉴얼 위반”이라고 답했다. 이는 사건 초기 조 전 부사장이 “견과류를 봉지째 보여주면서 의향을 물은 부분”을 문제 삼으며 “승객 의향을 먼저 물어본 뒤 종지에 담아 서비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달라진 대목이다.본보 보도(지난해 12월 15일자 A14면)와 재판 시 공개된 매뉴얼에 따르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 출발편에는 견과류 서비스 관련 내용이 없다. 세계 공항은 보안 규정에 따라 항공기 문이 닫히기 전까지 주류와 음식을 담아놓는 실(seal·카트의 봉인)을 열 수 있는 곳(실 오픈 가능)과 열지 못하는 곳(실 오픈 불가)으로 나뉜다. 케네디 국제공항은 ‘실 오픈 불가’ 공항인데 조 전 부사장은 사건 초기 ‘실 오픈 가능’ 공항에서 사용하는 매뉴얼에 근거해 사무장과 승무원의 서비스가 틀렸다고 한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이 착각한 부분이다. 주간동아(2015년 2월 29일) “당시 물을 갖다 달라는 저의 말에 승무원은 콩과 빈 버터볼 종지를 가져왔습니다. 명백한 매뉴얼 위반입니다. 서비스가 매뉴얼과 틀리다고 생각해 확인하기 위해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매뉴얼을 찾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뒤에 있었던 저의 행동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조선비즈(2015년 2월 6일) 검찰이 피고인 심문에서 “사건의 발단이 승무원이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조 전 부사장은 “분명히 매뉴얼에 따라 (마카다미아를) 가져 오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고 답했다. 나무위키에서는 “2007년 이후에는 봉지를 들고 가서 보여주고 취식 여부를 물어본 뒤 먹겠다고 하면 까서 접시에 담아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승무원은 이 지침을 완벽하게 준수했다”고 나온다.위키백과에서는 “이륙하기 전에 대한항공 객실본부장이었던 조현아 부사장이 접시 위가 아닌 뜯어지지 않은 봉지 속에 있는 마카다미아를 객실 승무원으로부터 받았다…마카다미아 서비스 규정을 잘 알지 못했던 조현아는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빌미로 객실 승무원을 심하게 질책하였고”라고 나온다.결국 진실은 ①먼저 손님에게 봉투째 보여준 뒤 ②원하는 승객에게는 봉투를 까서 그릇에 담아 제공하는 게 매뉴얼이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그 당시 객실 승무원은 ①에서의 보여주는 행위를 하지 않은 채 접시에 봉투째 담아 전달한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가?땅콩회항의 발단이 된 서비스 문제를 내가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것은 조현아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갖가지 소문 속에서 팩트를 판별하는 능력 훈련을 스스로 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자기만의 게임을 하게 된다. 물론 당시 조현아가 남편과 아들에게 욕하고 소리 지르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저 사람은 평소에도 저렇게 행동하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조현아가 “격분”한 동기가 어디에 있든 간에, 사람들은 어차피 조현아를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찍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적어도 기자들만큼은 상황을 추종하려고 하지 말고, 설령 독자들의 미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팩트를 써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팩트를 비틀어 보도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 덕분에 안하무인의 재벌 가족들에게 경종이 울리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 동영상에서나 땅콩회항에서나 왜 조현아가 그렇게 행동하였는지를 나는 안다. 조직 내에서 지위가 높아지면 언행이 변하게 됨을 나 역시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현대의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이 공사 현장에 나타나 자주 따귀를 때리거나 정강이를 걷어찼다는 뉴스 말미에 갑질 논란 따위는 전혀 없이 일을 철저히 하려는 그의 의지를 칭송하는 내용이 나오던 시절에 청춘을 보낸 사람이다. 그런 내가 다국적 기업에서 승승장구할 때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어린 딸들과 무슨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딸들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전화로 누구에게나 야야 하며 소리 지르고 화를 내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번개를 맞는 느낌을 받았다. 내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할 사람들은 가족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에게 내가 잘못하고 있음을 말하는 직원을 보배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 시기였다. 어떤 조직에서든 고위직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경험적 조언: ①가족에게 뭔가를 지시하려고 하지 말아라. 가족은 당신의 하급 직원이 아니며 가족에게 당신은 직장 상사가 아니다. 청소가 이게 뭐냐, 냉장고 정리가 왜 이 모양이냐 같은 말은 회사에서나 통하는 말이므로. 먼저 가족이 하는 말에 귀부터 기울여라. ②당신을 분노하게 만든 직원이 있으면 즉시 “10분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해라. 그 10분간 분노를 가라앉힌 후 사근사근 대화하거나 이메일로 감정 표현 없이 팩트만 전달하여라. 개인적으로 나는 이 방법이 내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체험하여 왔다. 곽상도 아들 50억원 퇴직금 수수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때 나는 “아니 도대체 팩트가 뭔데 무죄야?”라는 생각에 판결문 속 사실관계를 며칠 동안 분석하였고 뇌물이라고 판단하였다. 때마침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 이 사건을 주로 이야기하는 조건으로 지난 4월 출연하여 뇌물이라고 판단한 근거들을 팩트를 통해 설명하였다. 우리 사회가 뇌물을 주고받는 부패한 사회가 되어선 안 된다는 점 외에도 개개인이 정치적 성향을 떠나 팩트가 무엇인가 알아내려는 노력 역시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어서였다. 12월 19일 ‘곽상도 50억원 뇌물수수’ 건에 대한 2심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독자들과 함께 그 추이를 지켜보고자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3.12.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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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에이플레이어파트너스 대표 “청년주택? 살만하게 지어야 보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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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시행의 시대’다. 대형 개발사업이 성공을 이어가는 한편, 소위 꼬마빌딩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건축주를 꿈꾸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오래된 주택을 신축·리모델링하는 붐이 일며 입지가 좋은 서울 단독·다가구 시세도 급등한 지 오래다. 지난 1일 가 노후 주택 개발사업에 선구안을 가지고 포트폴리오를 쌓아온 이상현 에이플레이어파트너스 대표를 만났다. 에이플레이어파트너스는 자체사업 및 컨설팅을 통해 오피스·근린·원룸 건물 등으로 개발하는 회사다. 이 대표는 1인가구 증가를 몸소 경험하면서 10년 전 소규모 시행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 드디어 사업비 600억원 규모 ‘사당역 2030 청년주택’의 첫 삽을 뜰 예정이다. “‘흙수저’로 태어나 맨 몸으로 일어났다”는 40대 중반 젊은 사업가의 머릿속엔 점증하는 청년 주거문제와 도시 노후화에 대한 자신만의 해법이 자리하고 있었다. 노후 주택 개발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일선 부동산에서 근무할 당시 신림동에 청년 1인가구 수요와 혼자 사는 집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경험한 뒤 사업을 결심하게 됐다. 그때부터 청년 주거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어려서부터 작은 분식집을 하시는 부모님과 단칸방에 살 정도로 넉넉지 못했다. 신혼집도 보증금 3000만 원짜리 월세에서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큰 사업을 할 수는 없었고 관악구, 금천구 구옥을 리모델링하는 작은 공사부터 출발해 규모를 키워가게 됐다. 현재는 언주역, 논현역 등 강남권에 근린생활시설·사옥용 건물을 공급하고 있다. 1년에 이런 건물을 7~8개 정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유독 기억에 남거나 자랑하고픈 프로젝트가 있나? 첫 개발사업이 나 스스로 건물주가 되는 프로젝트였다. “가난한 집 아들은 평생 가난하게 산다”는 식의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싶었다. 몇 년간 건축기술이나 공법, 레버리지(leverage)를 일으키는 방식을 배워서 스스로 ‘디벨로퍼(developer)’가 된 셈이었다. 하지만 사업 초기에 비용을 아끼려고 건축설계사 등 전문가 도움 없이 혼자 진행하다가 시공회사한테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웃음) 좁은 주택가 현장에서 공사를 하다보면 이웃과 일조권 분쟁 같이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초보 건축주들에게 몇 푼 더 아끼려고 하기보다 최소한 인허가 절차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축설계사 같은 전문가와 협업하는 것을 추천한다. 결국 그런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주에게 건물 시공·하자보수·관리·임대 등에서 최고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는 회사를 창업하게 됐다. 에이플레이어(A-player)가 파트너가 된다는 상호명도 그런 의미에서 나왔다.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인터넷에서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에 대한 서울시 공고를 보고 기회라고 생각했다. 우선 주택공급이 부족한 서울에서 청년을 위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자체인 서울시에 공공임대를 공급하는 것이어서 공사할 때 생길 수 있는 민원 같은 문제 처리가 조금 더 수월할 것으로 봤다. 이미 인허가 과정을 마치고 빠르면 10월 중 착공을 기다리고 있다. 에이플레이어파트너스가 짓는 청년주택과 다른 청년주택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 세대가 원룸이 아니라 대부분 방과 거실이 분리된 ‘투베이’ 형식으로 지어진다. 일반적인 원룸이나 오피스텔, 청년 주택도 4~5평짜리 답답하고 밀폐된 구조가 많다. 같은 면적을 작게 쪼개서 팔고 임대할수록 수익이 더 남기 때문에 기업으로서 당연하다. 우리 회사는 실거주자가 집에서 일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수익보다 우리가 지은 주택의 가치를 지키기로 했다. 그래서 250~300세대 나올 수 있는 건물에 152세대를 입주시키려 한다. 청년 주거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철학이 있는 것 같다. 부동산 사업을 하다 보니 1인가구 사이에도 양극화가 심하다는 점을 느낀다. 요즘 강남에선 분양가격이 비싼 하이앤드 오피스텔이 나오는데, 다른 한 편에선 돈 없는 청년들이 최저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곳에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겨우 월세를 내고 있다. 이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고 실제로 실험 차원에서 이미 진행하고 있는 사업도 있다. 실험 차원에서 하고 있는 것은 어떤 사업인가? 고려대학교 EMBA에서 진행한 과제를 바탕으로 구체화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관악구에 30호 정도 작은 규모로 집을 짓고 대학생들을 입주 시킨 다음, 월세를 재능기부로 납부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스폰서가 지정한 탈북학생 및 유공자자녀들에게 입주자 본인이 음악 전공이면 악기 레슨, 수학을 잘하면 수학 과외를 하도록 해서 1시간 당 수업료를 계산해 월세를 대체하는 ‘재능공유 주택 플랫폼’이다. 로타리클럽, 특수임무유공자회부터 금천구, 동작구 등 지자체도 업무협약을 통해 스폰서로 참여한다. 기숙사나 청년주택을 지으면 동네에서 반대를 할 수 있어서 일단은 소규모로 조용하게 시작하려고 한다. 청년주택이나 노후주택가 개발에 대해 반대나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대학 기숙사 건립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동네 임대인들이 임차수요를 빼앗기는 측면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나는 청년주택이 들어서는 것이 결국 지역 상권 등을 성장시키는 측면에서 주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물론 대부분 노후 주택가 개발은 좁은 공간이 각각 개발되기 때문에 공원이나 주차공간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난개발에 그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새로 지은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본능이다. 결국 수요가 있는 한 이런 개발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자체나 정부에서 구획을 정해 업자들이 여러 구옥을 한 번에 개발할 수 있도록 규모를 키워주고 일종의 기부채납을 받는 식으로 지하주차장이나 부대시설을 만드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주거문제를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하고픈 말은? 청년은 언제까지나 가난하고 임대주택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식의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어렵지만 나도 언젠가 아파트,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한다. 최근 청년·무주택자의 주택 구입에 대한 대출 규제도 풀렸다. 한편으로는 정부에서 서울에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했으면 한다. 개발 수익성이 없어 개발이 되지 않는 노후 주택가에 용적률을 풀어준다든가 하는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민보름 기자 min.boreum@joongang.co.kr

2021.09.0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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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 팝콘 심리학] 당신도 혹시 ‘이세계 꼰대’?

산업 일반

새로운 시대를 인정하지도, 배우려 들지도 않는다면 ‘맞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린 시절 가끔 식욕 부진을 겪곤 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끼니를 대충 먹이지는 않으셨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식단이 원인이었을 듯하다. 어쨌든 전혀 입맛이 없는 상태로 밥상을 맞이할 때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는 밥상이었다.그때 나는 지금 내가 다른 곳 혹은 다른 상황에 있다는 상상을 했다. 예를 들어, TV에서 본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거나, 무인도에 갇혀서 며칠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식의 상상이었다. 그런 상상을 하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밥과 반찬이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최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만화나 소설의 소재 중 하나가 소위 ‘이세계물(異世界物)’이다. 현대 일본에 살던 주인공이 어떤 이유에서 다른 세상에 떨어진다는 식의 이야기다.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마크 트웨인의나 C.S.루이스의 루이스 캐럴의 같은 작품들을 통해 잘 알려진 장르이기도 하다. ━ 日 만화·소설 소재로 ‘이세계물(異世界物)’ 유행 이 일본식 ‘이세계물’에서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살던 세상에서는 평범한 음식·편의기술이 그가 이동한 곳에서는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이나 상상도 할 수 없이 대단한 기술로 대접받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는 점이다.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 설계사가 우연히 현대 일본의 목욕탕으로 타임슬립을 한다는 설정의 한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로마인 주인공은 일본의 평범한 대중목욕탕 기술에 경이를 느끼고 이를 고대 로마 목욕탕 건축에 적용해서 성공한다. 로마제국의 황제마저도 그의 작품에 감탄을 멈추지 못한다. 일본에는 싸구려 목욕탕에도 다 있는 시설인데! 다른 작품에서는 일본의 음식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된장국이나 고로케 같은 음식이 주인공의 세상에서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인 것처럼 모두를 감동시키기도 한다.주로 중세 유럽 같은 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런 이야기들은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인프라가 과거의 기준으로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부각시킨다. 그런 장면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 밥맛을 되살리기 위해 상상에 빠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런 만화나 소설을 즐겁게 소비하는 일본인들의 심정도 그 시절의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다.생각해보면 ‘이세계’는 우리 현실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십여 년 전, 2030년대 한국의 미래를 예측하는 연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싱귤래리티’와 ‘뉴럴링크’의 현황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지만, 당시엔 인공지능이 스스로 발전하고 인간의 뇌에 칩을 연결한다는 건 말 그대로 딴 세상 이야기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만난 미래학자들 중 어느 누구도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그뿐인가.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많은 것들이 30년 전 혹은 70년 전에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우리 가정에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이후부터다. 그 전까지 에어컨은 그저 흑백 TV속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 TV는 리모컨이 아니라 로터리 채널을 돌려 수신 주파수를 맞췄고 말이다. 통신도 마찬가지다. 1960년에 전화 보급률은 1000명당 4대 수준이었다. 1980년대까지도 마을 전체에 전화가 설치된 집이 한 두 가구에 불과한 곳이 여전했다. 그러던 시절 사람들의 눈에는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지금 세상은 ‘이세계’와 다름없을 것이다.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처음으로 PC를 사용했다. 타자기로 글을 쓰던 나에게 글을 얼마든지 쓰고 지우고 오려다 붙일 수도 있는 워드프로세서는 정말 마법의 기술 같았다. 단기사병으로 근무하며 배운 엑셀 사용법은 지금도 숫자 계산에 아둔한 나에게는 딴 세상에서 전해진 선물이었다. 인터넷 이전과 이후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개별 저장용량이 중요했던 모든 스마트 기기들은 이제 구름처럼 떠있는 가상의 저장 공간을 사용하고 심지어 그 구름 속에서 작업까지 한다.반대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 몇 십 년 전 한국이 ‘이세계’다. 요즘 아이들에게 전화는 납작한 사각형의 물체다. 요즘 아이들이 전화통화를 의미하는 아이콘이 왜 그런 모양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컴퓨터에서 작업하던 파일을 저장하는 명령 아이콘이 왜 그 모양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플로피 디스크라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이들은 국제화된 세상이 당연하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원어민 교사에게 영어를 배웠고 대부분은 한두 번 정도 외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 친척이나 친구들 중에 외국인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릴 적부터 인터넷 강의를 삶의 일부처럼 경험했던 이들의 눈에는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온라인 강의 속 교수들에게서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닌, 내가 뭔가 가르쳐줘야 할 것 같은 초보자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한국의 직장은 이런 ‘다른 세상 사람들’이 충돌하는 곳이다. 온갖 스펙으로 무장한 21세기의 신입사원들이 20세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최근 조직 문화에서 일어나는 격변들은 대부분 그 충돌의 결과다. 이 충돌에서 이전 세대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건 결코 승리가 아니다. 기성세대의 세상이 ‘이세계’이고, 지금 세대의 세상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LG가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했다. 그 분야를 아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잠재력도, 스마트폰 사업이 이전의 휴대폰 사업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던 결과라고들 말한다. 기성세대의 세상이 아득바득 승리하면 이렇게 된다. ━ 지나간 자기들 세상을 현재로 소환하려는 ‘꼰대’들 만화나 소설 속에서는 늘 주인공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 독자들은 당연히 자신이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일 수 있다. 내 역할은 낙후된 세상에서 태어나 신문물에 감동 감화하는 조연에 불과할 수도 있는 거다. 문제는 그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벌어진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시대를 인정하지도, 배우려 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한심했던 자기 시절을 들이대며 존경심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이미 지나간 자기들 세상을 다시 현재로 소환하려 든다. 그와 같은 시도를 하는 이들을 다른 말로 ‘꼰대’라고 부른다. 당신은 어떤가.※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 , 등을 썼고 , , 등을 번역했다.

2021.04.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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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 팝콘 심리학 - 당신도 혹시 ‘이세계 꼰대’?

전문가 칼럼

한국의 직장은 이런 ‘다른 세상 사람들’이 충돌하는 곳이다. 온갖 스펙으로 무장한 21세기의 신입사원들이 20세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린 시절 가끔 식욕 부진을 겪곤 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끼니를 대충 먹이지는 않으셨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식단이 원인이었을 듯하다. 어쨌든 전혀 입맛이 없는 상태로 밥상을 맞이할 때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는 밥상이었다. 그때 나는 지금 내가 다른 곳 혹은 다른 상황에 있다는 상상을 했다. 예를 들어, TV에서 본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거나, 무인도에 갇혀서 며칠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식의 상상이었다. 그런 상상을 하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밥과 반찬이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최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만화나 소설의 소재 중 하나가 소위 ‘이세계물(異世界物)’이다. 현대 일본에 살던 주인공이 어떤 이유에서 다른 세상에 떨어진다는 식의 이야기다.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마크 트웨인의 〈아서왕 궁전의 양키〉나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작품들을 통해 잘 알려진 장르이기도 하다. 이 일본식 ‘이세계물’에서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살던 세상에서는 평범한 음식‧편의기술이 그가 이동한 곳에서는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이나 상상도 할 수 없이 대단한 기술로 대접받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는 점이다. ━ 日 만화‧소설 소재로 ‘이세계물(異世界物)’ 유행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 설계사가 우연히 현대 일본의 목욕탕으로 타임슬립을 한다는 설정의 한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로마인 주인공은 일본의 평범한 대중목욕탕 기술에 경이를 느끼고 이를 고대 로마 목욕탕 건축에 적용해서 성공한다. 로마제국의 황제마저도 그의 작품에 감탄을 멈추지 못한다. 일본에는 싸구려 목욕탕에도 다 있는 시설인데! 다른 작품에서는 일본의 음식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된장국이나 코로께 같은 음식이 주인공의 세상에서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인 것처럼 모두를 감동시키기도 한다. 주로 중세 유럽 같은 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런 이야기들은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인프라가 과거의 기준으로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부각시킨다. 그런 장면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 밥맛을 되살리기 위해 상상에 빠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런 만화나 소설을 즐겁게 소비하는 일본인들의 심정도 그 시절의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 거다. 어쨌거나 이런 소설이나 만화를 통해서라도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만족할 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리라. 생각해보면 ‘이세계’는 우리 현실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십여 년 전, 2030년대 한국의 미래를 예측하는 연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싱귤래리티’와 ‘뉴럴링크’의 현황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지만, 당시엔 인공지능이 스스로 발전하고 인간의 뇌에 칩을 연결한다는 건 말 그대로 딴 세상 이야기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만난 미래학자들 중 어느 누구도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뿐인가. 국민의 70% 이상이 농어업에 종사하던 1970년대까지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정말로 딴 세상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많은 것들이 30년 전 혹은 70년 전에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우리 가정에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이후부터다. 그 전까지 에어컨은 그저 흑백 TV속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 TV는 리모컨이 아니라 로터리 채널을 돌려 수신 주파수를 맞췄고 말이다. 통신도 마찬가지다. 1960년에 전화 보급률은 1000명당 4대 수준이었다. 1980년대까지도 마을 전체에 전화가 설치된 집이 한 두 가구에 불과한 곳이 여전했다. 그러던 시절 사람들의 눈에는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지금 세상은 ‘이세계’와 다름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처음으로 PC를 사용했다. 타자기로 글을 쓰던 나에게 글을 얼마든지 쓰고 지우고 오려다 붙일 수도 있는 워드프로세서는 정말 마법의 기술 같았다. 단기사병으로 근무하며 배운 엑셀 사용법은 지금도 숫자 계산에 아둔한 나에게는 딴 세상에서 전해진 선물이었다. 인터넷 이전과 이후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개별 저장용량이 중요했던 모든 스마트 기기들은 이제 구름처럼 떠있는 가상의 저장 공간을 사용하고 심지어 그 구름 속에서 작업까지 한다. 반대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 몇 십 년 전 한국이 ‘이세계’다. 요즘 아이들에게 전화는 납작한 사각형의 물체다. 요즘 아이들이 전화통화를 의미하는 아이콘이 왜 그런 모양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컴퓨터에서 작업하던 파일을 저장하는 명령 아이콘이 왜 그 모양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플로피 디스크라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이들은 국제화된 세상이 당연하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원어민 교사에게 영어를 배웠고 대부분은 한두 번 정도 외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 친척이나 친구들 중에 외국인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릴 적부터 인터넷 강의를 삶의 일부처럼 경험했던 이들의 눈에는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온라인 강의 속 교수들에게서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닌, 내가 뭔가 가르쳐줘야 할 것 같은 초보자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 지나간 자기들 세상을 현재로 소환하려는 ‘꼰대’들 한국의 직장은 이런 ‘다른 세상 사람들’이 충돌하는 곳이다. 온갖 스펙으로 무장한 21세기의 신입사원들이 20세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최근 조직 문화에서 일어나는 격변들은 대부분 그 충돌의 결과다. 이 충돌에서 이전 세대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건 결코 승리가 아니다. 기성세대의 세상이 ‘이세계’이고, 지금 세대의 세상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LG가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했다. 그 분야를 아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잠재력도, 스마트폰 사업이 이전의 휴대폰 사업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던 결과라고들 말한다. 기성세대의 세상이 아득바득 승리하면 이렇게 된다. 만화나 소설 속에서는 늘 주인공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 독자들은 당연히 자신이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일 수 있다. 내 역할은 낙후된 세상에서 태어나 신문물에 감동 감화하는 조연에 불과할 수도 있는 거다. 문제는 그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벌어진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시대를 인정하지도, 배우려 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한심했던 자기 시절을 들이대며 존경심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이미 지나간 자기들 세상을 다시 현재로 소환하려 든다. 그와 같은 시도를 하는 이들을 다른 말로 ‘꼰대’라고 부른다. 당신은 어떤가. ***필자 소개 ***

2021.04.1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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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없는 한 달’ 도전 왜 실패했나

산업 일반

시간과 돈 많이 들고, 일상생활용품 대부분이 플라스틱 제품이라 완전 사용하지 않기는 거의 불가능해 유사 이래 인간은 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애썼다. 그 욕구는 모든 인간이 타고난 듯하다. 동물이 자기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본능을 이끄는 것과 똑같은 신경화학적 작용 때문에 인간도 지구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고 믿는 전문가도 있다.어쩌면 인류가 그토록 많은 플라스틱(비닐)을 지구에 남기기로 작정한 듯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플라스틱은 자연분해되기까지 500~1000년이 걸리기 때문에 오래도록 남는다. 따라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거의 모든 플라스틱 조각은 완전 소각으로 사라진 일부를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지구상에 존재한다. 그러니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할수록 우리가 이 지구에 흔적을 남기기가 더 쉽다.물론 이 가설을 더 끌고 나갈 수 있지만 거기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인간이 진정으로 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면 지구와 그 위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보존해야 마땅하지만 그들을 오히려 큰 위험에 빠뜨리는 수단에 그토록 많이 투자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왜 우리는 그토록 터무니없는 식으로 행동할까? 플라스틱이 지구에 얼마나 해로운지 뻔히 알면서 왜 계속 플라스틱을 사용할까?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을 때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적어도 나의 플라스틱 사용을 어느 정도라도 정당화할 수 있는 답은 찾을 수 없었다.그래서 ‘플라스틱 없는 7월(Plastic Free July)’ 도전에 관해 듣자마자 곧바로 신청했다. ‘플라스틱 없는 사회 재단(Plastic Free Foundation)’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2011년 호주에서 시작돼 지금은 매년 세계 170여 개국에서 수백만 명이 참가한다. 7월 한 달 동안 쇼핑비닐백과 빨대, 테이크아웃 컵 등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거부’함으로써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로 생긴 운동이다.그러나 이 도전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처럼 나도 사용 거부 대상을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에만 국한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내가 거의 모든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실패담을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알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도전에서 내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을 먼저 밝히지 않는다면 그건 독자에 대한 나의 직무 태만일 것이다. 내가 이 도전에 실패한 원인이 뭘까? 이 글을 쓰는 데 사용하는 키보드가 한 예다. 신용카드, 헤어드라이어,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지하철 시스템의 많은 부분 등 내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다른 많은 제품처럼 이 키보드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세계의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제품 대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플라스틱 오염의 인식 제고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플라스틱 오션스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매년 새로 생산되는 플라스틱 양은 3억t 이상이며, 그중 절반은 일회용이고, 90% 이상은 재활용될 가능성이 없다.플라스틱은 주로 우리 주변의 수많은 큰 물건을 만드는 데 사용되지만 아주 작은 물건도 우리는 걱정해야 한다. 환경전문 온라인매체 에코워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매년 플라스틱(비닐) 봉지 약 5000억 장과 페트 생수병 350억 병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이 도전에 나서기 오래전부터도 나는 비닐봉지부터 생수병, 커피 컵, 그리고 샴푸와 헤어 컨디셔너 병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거나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 도전을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현대사회의 소비자에게 플라스틱 사용이 강요되는 현 상황의 문제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특히 늘 다니는 식료품점에 갔을 때 거의 모든 제품을 포장하는 데 비닐이 사용되는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자연적인 자체 외피(껍질)로 보호되는 채소와 과일도 거의 전부 비닐로 포장됐다. 비닐로 포장되지 않은 과일과 채소에도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외피에 작은 플라스틱 브랜드 라벨이 거의 보이지 않게 찍혀 있었다. 그 채소와 과일을 생산한 곳과 이력이 들어 있는 라벨이다. 즉석식품과 스낵, 음료, 냉동식품의 용기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또 계산대에 가면 비닐 봉투를 사겠느냐고 점원이 묻는다.플라스틱 없이 지내기로 하면서 의도치 않은 얻은 혜택도 있었다. 식단이 상당히 건강하게 바뀌었다. 슈퍼마켓의 스낵 코너에 가면 플라스틱 포장이 가득해 그곳을 피하고 집에서 조리할 때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채식주의자인 나는 대형 식료품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식품이 많지 않지만 플라스틱을 피하려다 보니 그마저 사는 식품이 절반 이상 줄었다. 따라서 내 저녁 식사 접시에는 가지·브로콜리·토마토 등 주로 포장되지 않은 몇 가지 과일과 채소가 전부였다. 채식주의자의 단백질원으로 주로 사용되는 두부도 포기했다. 내가 가는 식료품점에선 모든 두부 제품의 포장에 조금이라도 플라스틱이 사용되기 때문이었다.식품을 포장하지 않고 벌크로 판매하는 가게가 플라스틱 포장을 사용하는 대형 식료품점의 긍정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동네에는 그런 곳이 없어서 나는 시장에서 파는 비포장 식품을 주로 애용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식사를 해결하는 문제에서 플라스틱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집에서 직접 음식을 조리하는 것이었다. 도시락을 쌀 시간이 없는 날 우연히 점심거리를 사 먹었지만 거기엔 대다수 일회용 커피 컵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플라스틱 코팅이 들어 있었다. 그 일 이후로는 식사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만이 플라스틱 없는 생활을 더 쉽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플라스틱 없이 사는 것을 쉽게 만드는 데는 시간 외에 돈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여유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수제 화장품회사 러시가 판매하는 비누 막대형 샴푸와 컨디셔너, 모이스처라이저부터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대나무 칫솔을 비롯해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세척제품까지 비(非) 플라스틱 제품은 일반적으로 플라스틱 제품보다 더 비싸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친환경 시장은 가격이 비싸다. 왜 그럴까? 일부 친환경 기업가는 그런 제품의 수요가 비교적 크지 않아 일반 제품처럼 가격을 낮추면 사업을 지탱할 수 없다고 말했다.한편 러시 같은 친환경 대기업은 자사 제품이 더 비싼 것은 “윤리적인 출처에서 조달하는 최고 품질의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러시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렇게 자랑했다. “우리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을 올리기 위한 과잉 포장과 광고, 비싼 마케팅, 대규모 유통·저장 시설에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러시 고객은 윤리적인 출처(가능한 한 유기농)에서 조달하는 최고 품질의 재료와 수작업으로 정성껏 만드는 제품에 합당한 가격을 치른다.”그 결과 나는 러시의 ‘제이슨 앤 더 아건 오일’ 샴푸 바 약 50g짜리를 10.95달러(약 1만3000원)에 샀다. 그보다 가격이 더 낮은 대안은 아직 찾지 못했다. 목욕·미용 제품의 경우 대부분 플라스틱 없는 제품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제품은 치약과 치실, 데오도란트였다. 일부 치약은 최소한의 플라스틱 포장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도전 기간 한 달이 거의 다 지나서야 100% 플라스틱 없는 치약을 찾을 수 있었다. 벤 앤 애나스 천연치약이었다. 이 제품은 포장에도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치약 제조에도 미세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제품은 일반 치약 브랜드만큼 사용 후 입안이 상쾌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대로 쓸만해서 도전 행사가 끝난 뒤에도 몇 주 동안 계속 사용했다. 지오가닉스도 플라스틱 포장을 사용하지 않는 치약(리필이 가능한 유리병에 넣어 판매한다)과 치실을 제공한다.물론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나의 일상생활에서 양치 제품만이 어려움을 준 건 아니었다. 내가 도전에 완전히 실패한 일상생활의 한 측면이 있다. 생리 문제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생리대가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디바 컵’이 한 가지 대안이다. 이 제품은 재사용 가능한 실리콘 생리컵으로 한 번에 12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또 뉴욕에 본부를 둔 THINX는 전통적인 생리대 제품의 대안으로 착용할 수 있는 재사용 가능한 속옷을 판매한다. 나는 그런 노력을 높이 사면서도 그 어느 제품도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플라스틱 애플리케이터가 없어 기존 제품보다는 약간 더 친환경적인 탐폰을 선택했다.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한다. 언젠가는 나도 용기를 내어 좀 더 지속가능한 대안 제품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위생용품이 전 세계의 플라스틱 문제에 추가로 안기는 부담에 일조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스가 발표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탐폰이 58억 개였다(전 세계 탐폰 판매량의 3분의 1에 해당한다).마지막으로 플라스틱 없는 생활의 실천에서 나의 욕심만큼 이루지 못한 또 다른 측면은 여행이었다. 안타깝게도 예약된 카리브해 가족여행이 도전 기간인 7월과 맞물렸다. 따라서 나는 항공 여행으로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현지에 도착해서는 플라스틱 컵에 화려한 색상의 플라스틱 빨대를 꽂아 주는 감미로운 칵테일의 유혹에 시달렸다.그런 유혹에 맞서려고 스테인리스 스틸 머그잔과 스테인리스 스틸 빨대, 대나무 스푼과 포크, 나이프를 여행 가방에 싸 갔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런 광경을 보면서 나는 매일 우리가 소비하는 플라스틱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또 비행기 안에서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지 않은 기내식과 스낵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나섰다가 비행기가 난기류로 흔들리는 바람에 혼이 나기도 했다. 여행 내내 나처럼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재사용 가능한 컵이나 도구를 준비해온 여행객의 수를 보고 작은 위안을 얻었다. 이전엔 관심을 쏟지 않아서 몰랐을 수도 있지만 그 수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많아 보였다.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이 도전이 실제로 내게 보여준 것은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고,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거나 좀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플라스틱을 우리 생활에서 완전히 없애는 문제에서 우리가 갈 길이 아직 너무나 멀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지구에 우리의 유산을 남기는 데 진정으로 신경 쓴다면 플라스틱을 줄이려는 노력이 우리의 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건강한 지구가 있어야 그런 유산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찬탈 다 실바 뉴스위크 기자※

2019.10.0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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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50억 벌 생산 ‘청바지’의 배신

산업 일반

자원 낭비와 환경·인권 재앙의 원인… 물 사용 90% 줄일 수 있는 ‘지놀로지아’ 같은 안전한 처리 방식 개발해야 근년 들어 가장 두드러진 패션 추세는 ‘패스트패션’이다.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한 디자인, 대량생산에 따른 비교적 저렴한 가격, 빠른 상품 회전율로 승부하는 패션을 가리킨다. 그러나 저널리스트인 데이나 토머스는 최근 펴낸 책 ‘패셔노폴리스(Fashionopolis: The Price of Fast Fashion and the Future of Clothes)’에서 패스트패션이 극심한 낭비와 환경·인권의 재앙을 가져온다며 그 폐해를 고발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옷은 연간 약 800억 벌이다. 그 많은 옷을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물과 독성 화학물질이 필요하다. 또 세계 인구 중 6분의 1이 의류 산업에 종사한다. 그들 대다수는 아주 낮은 급여를 받으며 위험하고 열악한 조건에서 일한다. 게다가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졌다가 팔리지 않고 남는 옷은 쓰레기 처리장이나 매립지로 향한다. 이런 생태계 피해, 노동 착취, 쓰레기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희망은 있다. 소비자·의류업체·혁신가들이 지속 가능성을 위한 다양한 방식을 추구한다. 중고의류 구입, 대여, 재사용 가능한 섬유로 재활용, 주문형 3D 프린팅 의류, 생물 소재를 이용하는 바이오패브리케이션(biofabrication), 리쇼어링(reshoring, 해외의 자국 기업을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정책), 자연섬유 사용, 구입 자제 등이 그 예다. 특히 환경과 사람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의류가 청바지다. 다음의 ‘패셔노폴리스’ 발췌문에서 토머스는 세계에서 가장 흔하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청바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짚으면서 그 생산에 따르는 병폐 중 일부를 고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청바지를 입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아마 어제 입었거나, 그도 아니면 내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인류학자들은 어느 시점에서든 세계 인구의 절반이 청바지를 입는다고 추정한다. 연간 청바지 생산량이 50억 벌이다. 평균적으로 미국인은 청바지 7벌을 갖고 있으며, 매년 4벌을 새로 구매한다.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내가 청바지를 발명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고 고백했다. “자기표현, 겸허함, 성적 매력, 단순성 등 내가 의류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이 청바지 하나에 들어 있다.”속옷과 양말 같은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면 청바지가 가장 흔한 의류다. 2013년 4월 23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근교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던 곳의 8층짜리 건물 라나 플라자가 붕괴하면서 근로자 1134명이 사망하고 2500명이 부상했을 때(현대 사상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의류공장 사고였다) 그들 중 다수는 청바지 생산에 종사하고 있었다. 또 청바지는 미국 섬유·의류 제조 부문의 근간이었지만 리바이스가 공장을 해외로 옮기면서 미국의 섬유 산업이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아울러 청바지는 처음 만들어질 때나 한참 입고 난 뒤 버려졌을 때도 많은 환경 오염을 일으킨다. 이처럼 청바지는 패션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잘못된 점 전부를 아우른다. ━ 내 맨살과 캘빈 청바지 사이에 뭐가 있을까 청바지를 만드는 데 쓰이는 질긴 면직물인 데님은 과거엔 흔히 옷에 사용하는 천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1870년대 초 재단사 제이컵 데이비스가 직물 공급업자인 리바이 스트라우스에게 자신의 가장 최근 디자인을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천에 스트레스가 많이 가해지는 부분에 금속 리벳을 박은 작업용 바지였다. 데이비스는 스트라우스에게 특허 출원 비용 68달러를 부담해주면 동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거기서 전설적인 리바이 스트라우스 앤 컴퍼니(리바이스)가 탄생했다. 리바이스는 지금도 청바지의 대부분을 디자인하고 판매하며, 사상 최고로 성공한 의류 브랜드 중 하나가 됐다.청바지의 인기는 약간씩 계속 오르다가 1970년대 들어 예기치 않았던 급상승 기류를 만났다. 미국 뉴욕시의 의류 산업 중심지 세븐스 애브뉴(7번가)였다. 여성 해방운동과 간편복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패션 추세를 만들어냈다. 이른바 ‘명품’ 청바지였다. 캘빈 클라인은 “청바지는 섹스”라며 “꽉 조일수록 더 잘 팔린다”고 말했다.클라인은 1980년 당시 15세의 배우 겸 모델이었던 브룩 실즈를 청바지 광고에 캐스팅했다. “내 맨살과 내 캘빈 청바지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실즈는 캘빈 클라인 청바지와 회갈색 블라우스 차림으로 팔다리를 펼치고 앉아 앳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 광고가 너무 야하고 자극적이라는 판단에 ABC, CBS의 뉴욕 방송국은 방영을 취소했다. 그러나 그 마법은 이미 작동했다. 클라인은 그 광고가 처음 방영된 그다음 주에 캘빈 클라인 청바지 40만 벌, 그 뒤로는 매달 200만 벌을 팔았다. 그러면서 청바지 판매가 기록을 거듭 경신했다. 1981년 한 해 동안 청바지가 5억 벌 이상이 팔렸다. ━ 닳은 효과 낸 완벽한 청바지를 위해 1970년대까지 판매된 청바지는 대부분 뻣뻣한 원단 그대로인 ‘비방축’ 가공 데님을 사용했다. 그런 청바지를 입기 편하도록 부드럽게 만들려면 오랜 시간 계속 입어야 했다. 6개월 정도 입어야 편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2년 이상 입으면 단과 호주머니 가장자리가 해어지고, 무릎 부분이 살짝 찢어져 터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데님 천의 푸른색이 바래면서 바지 앞부분의 지퍼 부분에서 하얀 섬유가 고양이 수염처럼 나타난다. 그처럼 청바지를 기막힐 정도로 멋지게 만들려면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그러다가 1980년대 스톤워싱이 유행하면서 상황이 또 바뀌었다. 스톤워싱은 비방축 가공된 청바지를 산업용 세탁기에 부석과 함께 넣어 돌려 충분히 닳은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로스앤젤레스의 간편복 브랜드 게스는 청바지를 7시간 동안 스톤워싱하는 시스템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했다). 물과 에너지 등의 자원 낭비와 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환경 피해가 큰 방식이다. 때로는 산성 물질, 사포, 줄을 사용해 과거 오랫동안 입어 마모된 것 같은 효과를 내기도 했다. 이 작업 전체가 ‘마무리(finishing)’로 이름 붙여졌고, ‘세탁장’(하루 수천 벌의 청바지를 처리하는 거대한 시설)에서 이뤄졌다.일부 세탁장은 첨단 기술을 사용하며 엄격한 안전·환경 기준을 따른다. 특히 미국에서 청바지 ‘마무리’ 작업 센터로 부상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많은 시설이 그렇다. 하지만 대다수는 매우 열악하다. 지난해 4월 어느 날 아침 베트남 호찌민 시티에서 목격한 청바지 공장이 그랬다. ━ 숨기고 싶은 치부 베트남은 15년 전만해도 농업이 경제의 기반을 이뤘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으로 섬유·의류 제조업이 수출의 약 16%를 차지하면서 해외에서 3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섬유·의류 제조업체가 약 6000개에 이르고, 250만 명이 그 업종에서 일한다. 전문가들은 내년이 되면 베트남의 의류 수출 규모가 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그곳 청바지 공장에선 대부분의 작업이 ‘마무리’다. 2012년 베트남의 청바지 매출은 6억 달러였다. 2021년엔 그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호찌민 시티 외곽의 산업단지에 낡은 창고 같은 공장이 있었다. 그 육중한 철문 뒤에서 약 200명의 젊은 베트남인이 일했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비쳤고, 수은주는 37℃까지 쉽게 올랐다. 거대한 선풍기가 돌아갔지만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금속 테이블과 수레 위에 암청색 청바지가 높이 쌓여 있었다. 티셔츠와 바지(대부분 청바지) 차림의 젊은 베트남인들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대형 세탁기 24개에 그 청바지를 집어넣었다. 바닥에는 감청색 물이 철벅거렸다. 그들은 장갑을 끼지 않아 손이 검게 얼룩져 있었다.일부 세탁기는 구식이라 청바지 1㎏(3벌)을 세탁하려면 물 약 20ℓ가 필요했다. 하지만 청바지 1㎏ 세탁에 물 약 4ℓ를 사용할 정도로 신식인 세탁기도 있었다. 안내자는 내게 “얼마나 낭비가 심한 작업인지 업자들도 잘 안다”고 설명했다. 한 청바지 전문가는 “그들은 지구의 건강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청바지 가공처리에만 관심 있다”고 말했다.청바지에 낡고 닳은 효과를 내는 작업실에선 젊은 남녀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청바지의 무릎과 허벅지 부분을 사포로 문지르고 있었다. 마치 목수가 나무를 다듬는 것 같았다. 일부는 먼지 흡입을 막기 위해 의료용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대다수는 그냥 작업했다. 그들의 작업 속도는 놀라웠다. 청바지 한 벌을 다듬는데 1분이 채 안 걸렸다. 집중력이 대단했다. 한번 실수하면 임금이 그만큼 줄어든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그들은 하루 청바지 400벌 이상을 사포로 처리했다. 그들은 초과근무를 제외하고도 주 6일을 일했다.그들은 수작업자들이었다.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자들은 속도가 더 빨랐다. 한 여성은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거대한 치과용 드릴 같이 생긴 기계로 반바지를 처리했다. 소음이 매우 날카로웠다. 그녀는 10초 만에 반바지 한 벌의 앞뒤 호주머니 부분과 단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1분이면 6벌이 완성됐다. 그렇게 온종일 작업했다.중국 광둥성 신탕의 청바지 세탁장도 여건이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신탕은 ‘세계의 청바지 수도’로 불린다. 그곳에 있는 공장과 작업장 3000개에서 약 20만 명의 근로자가 매년 청바지 3억 벌을 가공한다. 하루 약 80만 벌꼴이다. 그 지역의 하수처리장은 수년 전 폐쇄됐다. 현재 그 공장들은 염색 폐수를 주강의 지류인 동강으로 그냥 방류한다.동강의 물은 너무 혼탁해 수중 생물이 살 수 없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강바닥 퇴적물의 납, 구리, 카드뮴 농도가 상당히 높다고 지적했다. 신탕의 거리는 푸른 먼지로 덮였다. 의류 공장 직원 다수는 피부 발진과 불임, 폐 감염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 친환경적인 마무리 작업도 있다 닳은 효과를 내도록 처리된 청바지가 계속 전 세계 시장을 이끌며 생태계와 인류 건강에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 청바지 마무리 작업을 어떻게 해야 그런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을까? 지금처럼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는 세계에선 호찌민 시티의 노동력 착취 공장에서 내가 목격한 것 같은 끔찍함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활동하는 데님 산업 컨설턴트인 호세 비달과 그의 조카 엔리케 실라는 더 깨끗하고 안전한 3단계 청바지 처리 방식인 ‘지놀로지아(Jeanologia)’를 개발했다. 사포와 표백제 과망간산칼륨 사용을 대체하는 레이저 처리, 화학약품 없이 직물을 바래게 하는 오존 처리, 그리고 미세한 ‘나노버블’을 사용해 물 사용을 90% 줄일 수 있는 ‘e플로’ 세탁 시스템을 가리킨다.일반적으로 청바지 한 벌의 마무리 작업에 물 70ℓ, 전기 1.5㎾, 화학약품 150g이 필요하다. 전부 합하면 매년 물 3억5000만ℓ, 전기 75억㎾(독일 뮌헨이 1년에 사용하는 전력량), 화학약품 75만t에 이른다. 지놀로지아 시스템은 에너지 소비를 33%, 화학약품을 67%, 물 사용을 최대 71% 줄일 수 있다. 청바지 한 벌에 물 한 컵씩 절약한다고 이 회사는 자랑한다.실라는 실험실로 나를 안내해 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줬다. 레이저실에서 청바지는 10~11초 만에 닳은 효과를 완벽하게 냈다. 과거 리바이스 501 청바지를 3년 동안 열심히 입은 뒤에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다음 드라이어처럼 생긴 텀블러가 오존을 사용해 청바지의 색이 바래게 만들었다. 실라는 마무리 작업에 성층권 오존(‘좋은 오존’)을 사용하면 “20분 안에 청바지를 한 달 동안 햇볕에 내놓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에너지와 물 사용도 기존의 처리 과정에서 필요한 양의 일부면 충분하다.마지막으로 우리는 세탁실을 둘러봤다. ‘e플로’ 기계가 미세한 버블로 청바지를 세탁하는 과정이었다. 실라는 “나노버블이 천을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색조를 추가하는 동시에 부석 없이 스톤워싱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또 그 후엔 물을 사용해 처리할 필요가 없어 사용된 물을 한 달 동안 재활용할 수 있다. 실라는 “아직 물 사용 ‘제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 목표에 근접한다”고 말했다.나는 호찌민 시티에서 지놀로지아 시스템을 사용하는 세탁장을 찾아 그 과정이 상업적인 규모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봤다. 안내원은 “지놀로지아 시스템이 생산 과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그런 공장 하나만 해도 중국의 여러 대형 공장이 처리하는 청바지 양의 절반 정도를 가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찌는 열기와 스트레스, 사포 문지르는 소리, 쉴 틈 없는 청바지 잡아 던지기 같은 분주함도 전혀 없었다.효율이 너무 높아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느냐고 묻자 안내원은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작업이 로봇에 의해 이뤄질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공장은 직원을 정리해고하지 않고 “정교한 기계를 사용하고 관리하는 작업에 투입한다”고 안내원이 말했다.스페인 발렌시아에서 그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을 4개월에 걸쳐 훈련한 ‘레이저 디자인 전문가’들은 전 세계에 파견돼 현장을 감독하고 직원을 교육한다. 지놀로지아 시스템이 이처럼 장점이 많은데도 청바지 마무리 작업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갭, H&M, 사라, 유니클로, PVH, VP 코프, 리바이스 같은 청바지 메이저 업체를 설득하는 길뿐이다.실라는 “우리가 청바지를 가공하고 처리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 “옷 절대 쓰레기로 버리지 마라” - ‘패셔노폴리스’의 저자 데이나 토머스 인터뷰 이 책을 쓰게된 동기는?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봉제공장 붕괴 사건이 너무 끔찍했다. 세계화된 오늘날의 세계에선 의류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의 공급사슬이 인류와 자연 양쪽 모두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통해 패션 산업의 이런 어두운 면을 드러내면 소비자가 “이제 이런 파괴적인 행동은 그만하자!”라고 말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지금까지 어떤 옷을 가장 잘 샀다고 생각하는가?1992년 갭에서 구매해서 지금까지 입는 흰색 코튼 셔츠 4장이다. 낡아 옷깃 부분이 해졌지만 아주 단단하게 만들어진 두꺼운 셔츠다. 갭이 ‘패스트패션’으로 나가기 전에는 판매하던 제품이었다.옷장에 청바지가 몇 벌 있나?일곱여덟 벌 있다. 일부는 1980년대에 구매한 것이다. 지금은 십대인 딸아이가 입는다. 그 빈티지 청바지는 오리지널 리바이스라서 길들이는 데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 색이 바래고 부드러워지고 호주머니 부분이 해지게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일부는 그동안 아래쪽을 잘라 반바지로 만들었다. 나는 청바지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입는다.옷을 살 때 무엇에 가장 신경 쓰는가?첫째는 품질이다. 나는 늘 천 아래에 손을 대보고 투명한지 살핀다. 손이 비칠 정도로 투명하면 사지 않는다. 둘째는 스타일이다. 보통은 세월이 흘러도 문제없는 스타일을 선택한다. 나는 자주 1990년대부터 가진 옷을 꺼내 보는데 스타일 면에서 20년 이상이 지났다는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소비자로서 유행 패션과 환경 보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가능하면 유기직물 제품을 구입하라. 오래 입을 수 없는 옷은 아예 사지 마라. 세 번 입고 버리는 습관은 빨리 버려야 한다. 옷이 너무 오래돼 작아졌거나 싫증 난다면 중고 의류로 팔거나 기증하라. 절대 쓰레기로 버리지 마라. 특별한 행사에 입는 옷은 대여하는 게 좋다.패션 산업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년 뒤에는 어떤 추세가 살아남을까? 그때는 패션 산업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리라고 생각하는가?의류의 미래는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소재 혁명에 좌우되리라 생각한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목화에서 얻은 면과 천연물감이 주류가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유전자 변형 목화로 만드는 면과 합성 물감을 만드는 화학회사들이 너무 막강하다. 또 순환경제가 자리 잡을 것 같다. 면과 폴리에스테르가 끊임없이 재생될 것이다. 재판매와 대여가 소매 시장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소비를 부추기고 규모의 경제를 따르는 현재의 사업 관행을 유지한다면 결국 사양길로 접어들 것이다.의류를 포함해 일상생활에서 재활용을 어떻게 실천하나?시골집에 유기농 텃밭과 알을 낳는 암탉 두 마리가 있다. 텃밭용으로 퇴비를 만들어 사용한다. 파리와 런던에선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집에선 숯 스틱 필터를 사용하는 블랙앤블럼 물병을 쓰고, 다닐 땐 내가 애지중지하는 스웰보틀 물병을 휴대한다. 공식적인 자리에 나갈 때는 옷을 대여한다. 주로 농민 장터를 찾고, 가능하면 유기농 식품을 구매한다. 시장에 갈 때는 바구니나 캔버스 백, 캐디 가방을 가져간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소등한다. 여행할 때 기차와 비행기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난 기차를 탄다. 걸을 수 있다면 걷는다.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생각인가?글쎄, 나도 그걸 알고 싶다.- 데이나 토머스

2019.09.16 12:03

11분 소요
성적 관심의 ‘동의’와 ‘거부’ 사이

산업 일반

교수와 제자의 관계가 도를 넘을 때 피해자는 언제 어떻게 자신의 의사 밝혀야 할까 도나 프레이타스 박사는 ‘타이틀 나인(Title IX, 미국 교육계에서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제정된 법률)’ 연구자인 동시에 대학에서 ‘이성 관계 속의 성 동의’를 주제로 강연하는 강사다. 다음은 그녀의 회고록 ‘성 동의: 원치 않는 관심의 체험기(Consent: A Memoir of Unwanted Attention)’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회고록에서 그녀는 대학원 시절 논문 지도교수로서 멘토가 돼줄 것으로 기대했던 한 신부로부터 원치 않는 성적 관심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스토킹 당한 경험을 돌이킨다. 그녀는 또 성 동의가 무엇인지, 대학에서 교수와 제자 사이, 또는 직장에서 부하직원과 상사 사이에서 그 동의가 어떻게 복잡해질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프레이타스는 회고록에서 처음엔 그 교수가 자신의 연구에 관심을 보여 고마운 마음에서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고 돌이킨다. 그러다가 그 교수의 관심이 갈수록 부적절하고, 심지어 사악한 행동으로 발전했다. 결국 그 교수는 그녀에게 매일 수많은 편지를 보냈고, 툭하면 집이나 연구실로 전화를 걸었으며, 예고도 없이 그녀의 아파트에 불쑥 나타났다. 그녀는 그가 창을 통해 아파트를 들여다보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그녀에게 함께 연극을 보러 가자고 졸랐고, 주말이면 멀리 조용한 곳에 놀러 가자고 집요하게 종용했다. L신부(지금도 그녀는 그 교수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나이 차이가 큰 젊은 여성과 연애하는 성직자에 관해 자신이 쓴 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계속 물었고, 그녀에게 키스하려 했으며, 급기야 말기 투병 중인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연락하기 시작했다.프레이타스는 정서적으로 괴롭힘에 시달렸다. 그녀의 물리적인 공간이 끊임없이 침범당했다. L신부는 프레이타스에게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강요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미래는 그의 평가와 직접 연결돼 있었다. 그는 프레이타스가 받는 수업 중에서 여러 필수 과목을 가르쳤다. 그녀의 박사 논문 통과와 미래의 교수직 추천에 그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프레이타스는 처음엔 자신의 불편한 느낌을 믿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그의 행동이 멘토로서 갖는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L신부의 도를 넘는 관심이 갈수록 집요해지면서 그녀는 그의 그런 행동이 갖는 강박적인 면을 더는 부인할 수 없었다.결국 대학 당국에 신고하자 학교 측은 그 교수를 징계하겠다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학교 측은 ‘타이틀 나인’의 규정에 따라 법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180일 만기 시효가 지날 때까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변호사를 동원해 그녀는 L신부와 접촉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학교 측과 합의했다. 그렇다면 L신부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교수 생활을 계속했다. 프레이타스는 졸업 후 강사가 된 직후 여러 학회에서 그를 봤다. 그녀가 교수직을 포기하고 저술과 강연에 전념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물론 L신부는 무슨 이유인지 설명도 없이 그녀를 교수로 추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프레이타스는 이 책을 왜 썼을까? 그녀는 “계속 침묵하는 것은 터무니없으며 내 마음에 독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혀를 잘라 내주고 얻은 해방 이 이야기는 원칙상 내가 해선 안 된다. 내 멘토가 나를 더는 괴롭히지 않도록 대학 당국이 막아주고, 또 약간의 피해 배상금을 받는 대가로 나는 지금 이야기하려는 여러 사건이 일어난 적 없는 체하기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기로 합의했다. 영원히 입을 다물겠다고 말이다.당시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에 서명해야 하는지에 개의치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L신부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의 멘토가 돼야 마땅했을 남자, 대학원 시절부터 그 이후의 직업적인 장래까지 나의 길잡이가 돼줘야 했을 남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로부터 해방될 수만 있다면 그들이 내게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안겨줄 생각이었다.놀랍게도 그들이 원했던 건 내 목소리였다. 말도 안 되지만 나는 그들이 원하는 내 목소리를 기꺼이 넘겨줬다. 대학 사무실에서 나의 혀를 잘라내 그것을 넘겨받는 것이 본업인 여성에게 건네줬다. 훤한 대낮에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스스로 내 혀를 잘라냈다. 피가 흐르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옆 교실에서 공부하며 읽은 여권운동 관련 책에 따르면 나는 여성이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을 넘겨줬다.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나는 나 자신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대학 사무실에 갔을 때도 학생의 연약한 몸을 희생시켜서라도 학교와 교수를 보호하려는 매정한 사람들을 내가 마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내가 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입학한 이 대학, 나에게 희망과 빛의 등대가 돼야 마땅한 이 학교가 스토킹의 두려움 없이 수업을 받고 싶다는 여학생의 가장 기본적인 소원을 이뤄주는 대가로 그 여학생에게 목에서 성대를 제거하라고 요구할 정도로 저질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사실 그런 경험을 한 게 나만이 아니다. 미국 어디서든, 어떤 대학이나 직장이든, 심지어 좋은 일을 하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든다고 번드르르하게 자랑하는 회사에도 피가 철철 흐르는 여성의 혀로 가득한 파일 캐비넷이 있다. 캐주얼한 복장, 정장, 패션 감각 있는 스커트 차림을 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우리에게서 넘겨받은 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완전히 적법하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일말의 동정심 없이 원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우리를 불구로 만들면서 늘 하던 일인 듯이 행동한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에게 몸을 맡긴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여성의 혀는 그들에게 상당히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혀를 그냥 갖고 있도록 허용하면 말이다. 기관과 직장, 회사는 그런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에게 혀를 잘라내 넘겨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이 우리 몸에서 캐낸 그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갖기 위해 거액을 지불하는 것도 마다치 않는 이유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이 그 혀를 되찾는 것을 보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지금도 나는 되찾은 내 혀에 적응하는 중이다. 내 혀가 아직도 입 안에서 두툼하고 생소하게 느껴진다. ━ “이 부근에 올 일이 있었어” L신부가 내 아파트 밖에서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창의 높이가 보도와 같은 반지하 아파트였다. 나는 현관문에 달린 우편함에 든 우편물을 가지러 갔다가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는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소를 짓지도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추운 날이었다. 2월 말이나 3월 초였다. 그는 그냥 그곳에 서서 작은 유리창을 통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를 만나러 온다는 얘기도 없었고, 그날 그 시간에 내가 집에 있는지, 내 집에 들러 안부를 물어도 되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그곳에 왔다.그는 내 아파트에 들어오면서 “이 부근에 올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날 조지타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했다는 설명이었다. 어쩌면 다른 신부들과 만남이었을 수도 있고, 필요한 책을 대출하러 도서관에 간 것일 수도 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볼 일이 전혀 없이 단지 내 아파트 부근에 오기 위해 핑계를 댔을 수도 있다.하지만 한참 뒤에야 내가 그에게 아파트 주소를 알려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기가 쉽지 않은 곳에 있는 아파트였기에 길 안내가 필요했을 텐데 난 우리 집이 어디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대학원에 있는 내 개인 서류에서 주소를 찾아본 게 분명했다. 나의 담당 교수였고 당시엔 학과장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서 주소를 찾아 메모지에 옮겨 적은 다음 정확한 위치를 알아보려고 동네를 샅샅이 돌아봤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그렇게 찾아올 수가 없었다. GPS나 구글 맵이 나오기 한참 전인 1990년대였기 때문이다. ━ 생존자이면서 피해자 ‘이중 정체성’ 대학원에서 1년이 지나갔다. L신부는 집에 있는 내게 툭하면 전화를 걸었다. 반지하 아파트에서도 그랬고, 새집으로 옮겼을 때도 그랬다. 내가 이사를 해도 어떻게 알았는지 새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그는 새 주소만이 아니라 다음 학기의 내 수업 시간표까지 알고 있었다. 이사한 뒤에도 그가 계속 전화를 걸어오자 나는 지나친 집착이고 스토킹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더는 생각하지 않고 덮어두려고 노력했다. 그해 여름 나는 아주 바빴다. L신부는 내게 자주 편지를 보냈다. 새 주소로도 편지가 배달됐다. 끊임없이 배달되는 그의 편지에 나는 익숙해졌다. 처음엔 편지를 읽었다. 그다음은 받아서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고는 내 새 사무실의 창턱에 따로 쌓아뒀다.그는 전화도 계속했다. 때로는 매일, 어떤 때는 하루 한 번 이상 전화를 걸었다. 편지도 늘어났다. 때로는 하루 세 통도 받았다. 난 더는 그의 편지를 즉시 개봉하지 않았다. 대다수는 아예 뜯지도 않았다. 그냥 사무실 창턱에 계속 쌓아 올렸다. 그렇게 쌓인 편지가 100통 가까이 됐다. 거의 전부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 편지들이 창턱 여기저기로 흘러내렸다. 그곳에 있는 그 편지들을 보기가 너무 싫었다. 그 편지들이 마치 나를 조롱하는듯했다. 결국 산더미를 이룬 그의 편지들을 감당할 수 없어 쓰레기통을 창턱 아래로 가져와 한쪽 팔로 편지들을 쓸어 쓰레기통에 담았다.여러 면에서 나는 한 사람이 아니다. 같은 몸, 같은 심장, 같은 마음, 같은 영혼을 가진 두 여자로 분리돼 있다. 한쪽은 공적으로 자신만만하고 권위 있는 나다. 박사 학위를 가진 연구자이자 강사, 저술가다. ‘타이틀 나인’과 성폭력을 포함해 대학 교내 성문제에 관한 나의 연구물은 널리 인용되고 있다.다른 한쪽은 여전히 숨겨진 나다. 불안해하고, 2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나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그 일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도록 내버려 뒀고, 나도 그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나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나다. 이런 나의 사회생활은 L신부에 의해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얼룩졌다. 그의 자제할 수 없는 성향, 부적절한 행위를 그만둘 수 없는 성향으로 내 삶은 영원히 달라졌다. 그는 시선은 늘 나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시선을 떨쳐낼 수 없었다.나는 생존자이면서도 피해자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이런 이중 정체성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모두 다 내가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에 관해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피해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오로지 생존자로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몸을 움츠리는 피해자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나는 다른 사람에게, 또 가장 암울한 순간의 내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모든 것은 그의 잘못이며, 그가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고 말이다. 내가 나를 탓하진 않는다고 말이다. 나는 연극에서 맡은 역할의 대사를 연습하듯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계속 연습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내가 실제로 믿는 때는 잠깐뿐이다. 나머지 시간 동안 내 마음은 의구심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동료들과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신이 가르치는 여학생 한 명과 함께 앉아 있고, 그녀로부터 당신의 경우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녀에게 뭐라고 말할 건가? 비록 부분적이라도 그녀의 잘못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없다”가 그 질문의 당연한 답변이다. 나는 내 학생에게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여성의 그런 경험에 관해 들으면 나는 그녀는 전혀 잘못이 없다고 믿는다.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잘못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다.그런데 내가 나의 경우를 생각하면 왜 명백하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걸까? 왜 나는 수치스러운 피해자에서 자랑스러운 생존자로 가뿐이 올라설 수 없을까? 서로 경쟁하는 이 두 개의 자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이 가능한 일이긴 할까?지금 우리는 여성과 여자아이를 표적으로 삼는 성적 괴롭힘과 공격이 언제 어디서나 너무나 흔하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트라우마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동안 나타나는 자아의 분리를 헤아려야 할 필요가 있다. 피해를 본 여성은 자신에게 끔찍한 일이 없었다는 듯이 견뎌낼 수 있도록 훌륭한 연기자와 뛰어난 거짓말쟁이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두 개의 자아와 두 개의 뇌, 수년 동안 간직해야 할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데 따르는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잘못한 사람이 자신일 수 있다는 느낌, 그것이 자아 인식에 주는 피해, 자신에 관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우리 사회는 ‘성 동의’를 아주 간단한 개념으로 만들었다. ‘노’라는 단 하나의 단어처럼 ‘동의’도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자신과 서로를 속이고 있다. 누군가의 행동을 중지시키는 것이 ‘노’라는 단어 하나를 말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쉽다면, L신부의 행동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진 않았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노’라는 단어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 대가를 나는 아직도 치르는 중이다.내가 그 경험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동의’와 ‘거부’가 무한히 복잡하고 끊임없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두 사람이 서로 간의 관계에 얽혔을 때는 특히 그렇다.- 도나 프레이타스※ ━ “더는 비밀 혼자 간직할 수 없었다” - ‘성 동의: 원치 않는 관심의 체험기’를 쓴 도나 프레이터스 인터뷰 왜 지금 이 책을 내기로 결심했나?‘대학 교내의 성 동의: 선언(Consent on Campus: A Manifesto)’이라는 책을 쓸 때 ‘성 동의’에 관한 나의 주장이 내가 대학원 시절 겪은 일을 상세히 되짚지 않고서는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내겐 큰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나의 학문적인 연구와 캠퍼스 행동주의를 내가 오래전 겪었던 일과 연결하지 않았다. 그래서 랩톱에서 새 문서를 열어 쓰던 책과는 별도로 나의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더는 이 비밀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지금은 어떻게 그 경험을 공개적으로 쓰고 강연할 수 있는가?계속 침묵하는 것은 터무니없으며 내 마음에 독이 된다고 판단했다. 교수의 스토킹을 학교가 막아주는 대가로 내가 그런 일이 없었던 듯이 입다물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내가 그냥 받아들였던 게 잘못이었다.현재 괴롭힘이나 스토킹을 겪고 있는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믿을 만한 사람에게 터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 있는 나의 능력을 문제의 교수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내가 그에게 가진 모든 의심이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고 의심하도록 나를 유도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내가 괜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걸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 두려웠고, 또 그를 곤경에 처하게 하기도 두려웠다. 따라서 그러지 않으려면 혼자서만 생각하고 대처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솔직히 밝히는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교내 괴롭힘이나 스토킹을 신고하는 문제와 관련해 여성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나는 의무적인 신고 정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는 일을 털어놓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무적인 신고는 대학이 기록을 유지하고 캠퍼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처하도록 한다는 면에서 좋은 아이디어처럼 생각된다. 또 학교도 비밀을 유지하고 신고 과정이 어렵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이 겪지 않고서는 폭로하거나 신고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기 힘들다. 나의 경우 20여 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다 뭔가를 약간 추가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두려워진다. 그래서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일을 오히려 비밀로 간직할 가능성이 더 크다.‘타이틀 나인’의 장단점은 무엇인가?교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과 성희롱, 성적인 괴롭힘에 학교가 대처하도록 하고 예방 교육을 하도록 의무화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의무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에 화가 난다. 또 캠퍼스 안에서 ‘타이틀 나인’을 실천하는 방식도 형편없다. ‘성 동의’와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것이 ‘예스’는 ‘예스’, ‘노’는 ‘노’라는 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생각한다. 또 학생들에게 ‘타이틀 나인’에 관한 교육을 한 번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성폭력을 근절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성 동의’의 진정한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성직자의 아동 성학대와 관련해 가톨릭 교회 내부의 은폐가 드러났을 때 자신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느꼈는가?내가 겪은 일이 가톨릭 성직자의 성학대 스캔들과 연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확신이 서진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나에게 일어난 일을 대학이 은폐한 것과 같은 수법을 사용했다. 내 경험이 그들에게 선례가 됐다고 생각하면 속이 메스꺼워진다.근년 들어 ‘미투’ 운동이 그처럼 강한 힘을 얻은 이유는?교내 성폭력이 수년 동안 시선을 끌면서 ‘미투’ 운동의 발판이 됐다고 생각한다. 영화 ‘헌팅 그라운드’, 또 컬럼비아대학에서 자신을 성폭행한 남학생의 처벌이 지지부진하자 이에 항의하고자 자신이 사용하던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나와 교내에서 항의 퍼포먼스를 펼친 에마 설코위츠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나는 현재 좀 더 기다리며 지켜보자는 생각이다. 캠퍼스나 직장의 성폭력에 관한 공공 논의가 시작됐다. 이건 아주 중요하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동안 우리가 모두 꼭꼭 숨겼던 이런 일을 밝히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현시점이 중대한 개혁의 시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많은 여성이 자신을 성적으로 공격한 사람이라고 지목하는 남자를, 또 그 자신도 그런 행동을 자랑하는 남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런 현실은 우리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준다.앞으로 계획은?수영하고, 요리하고, 먹고, 평생 좋아하는 사람과 어울려 지내고 싶다. 또 내 회고록의 제목이 너무 어둡고 뻔해 사람들이 제목을 물을 때 어떻게 더 잘 말해줄 수 있을지 생각 중이다. 지난 학기에 회고록 강의를 했는데 학생들에게 내 회고록 제목은 말해주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그 제목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내년에는 내가 쓴 성인용 소설이 처음 나올 예정이다. 제목은 ‘로즈 나폴리타노의 아홉 개의 삶(The Nine Lives of Rose Napolitano)’이다.회고록에서 밝힌 사건들 이후로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원치 않는 전화나 스팸 메일을 차단하는 앱을 사용하는가?난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 아직도 똑똑한 ‘스마트폰’이 아니라 바보 같은 ‘덤폰’을 갖고 있다. 그래서 원치 않는 전화가 잘 걸려오진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아주 개인적인 성향으로 변했다. 소셜미디어가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연결성과 공개성은 내게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그래서 난 소셜미디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메러디스 울프 샤이저 뉴스위크 기자

2019.09.09 11:02

13분 소요
[홍병기가 만난 사람 |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일 속에서 사람 풀지 말고 사람 속에서 일 풀어야”

바이오

함께 가는 것이 경영의 기본… 리더는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판단하는 자리 원희목(65)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대 약대 출신으로 서울 강남지역에서 개업 약사로 20여 년간 활동하면서 대한약사회 회장까지 지냈다. 그러다 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을 지낸 뒤 사회보장정보원장 등을 거쳐 2017년 3월부터 제약바이오협회장 직을 맡고 있는 만능 CEO형 인물이다.최근 코오롱·신라젠 등에서 잇따라 터진 대형 악재 속에도 풍랑 속의 선장처럼 한국 제약업계의 혁신을 부르짖으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원 회장을 만나 한국 제약업계를 이끌고 있는 그의 삶과 생각을 들어봤다. ━ 바이오제약협회장 3년째 맡아 제약업체와는 인연이 없어 보인다. 어떤 연유로 국내 제약업계를 대표하는 수장 격인 협회장 직을 맡게 됐나.“약사가 직업이다 보니 젊어서부터 약국을 운영하며 제약회사와 관련된 업무를 많이 해봐서 낯설지 않았었다. 의원 시절인 2012년 제약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한 적 있다. 앞으로 연구개발(R&D) 중심으로 제약업체를 바꿔야 한다며 신약개발 투자 제약사를 혁신형 기업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는데 당시로선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때 나를 눈여겨봤던 업계의 요청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됐다.”최근 제약업계의 현안이 많다. 무엇이 문제인가.“제약업을 미래 동력산업이라고 말하지만 기본적으론 고위험, 고수익 산업이다. 1가지의 기초 물질 조사에서 시작해 완전한 신약 개발로 이어지기까지는 1만분의 1의 확률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모든 것을 걸고 시도하고 도전해야 한다. 인류가 생명을 연장하고 건강을 유지해온 것도 바로 이런 시도와 도전을 끊임없이 해온 결과 아닌가. 이 과정에서 장애물에 막혀 무너지는 사례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한국 제약업계에 재앙이 일어난 것으로만 보지 말았으면 한다. 신약 개발 강국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으로 이해해달라.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많이 나올 수도 있다. 무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도전을 수없이 시도해야만 신약 강국이 될 수 있다. 실패를 격려하고 그것을 디딤돌로 치고 나가야 한다.”앞으로 협회는 어떤 업무에 주력할 방침인가.“우선 오는 3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협회와 보건산업진흥원, 보건복지인력개발원 등과 공동 주관으로 제약기업 등 80개사가 참여하는 ‘2019 한국 제약바이오산업 채용박람회’가 열린다. 현장에서 채용이 이뤄질 예정이어서 9000여 명 이상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협회의 본격적인 행보라는 의미가 있다. 새로운 추세에 발맞춰서 협회 내에 ‘인공지능(AI) 신약개발 지원센터’도 개설했다. 앞으로 이를 재단법인화해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약 개발의 플랫폼으로 육성시켜 나갈 계획이다. 국내 제약 업체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해 2021년까지 글로벌시장 진입을 위한 정부간(G2G) 협약도 추진중이다. “개인사를 이야기해보자.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약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고교 시절 어떤 대학엘 가야 하나 하고 고심했었다. 내 성격에 맞춰서 하고 싶은 일을 찾다보니 약사가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친 김에 세계적인 약을 개발해보겠다는 꿈을 정하고 약대 진학을 결심한 것이다.”약국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았겠다.“보건의료 전문 직종들이 다 그렇듯이 약사도 그 생활에 일정한 스펙트럼이 정해져 있어 다소 답답할 수 있다. 나는 그 속에서도 나름대로 자기 경험을 확장시키는 일에 흥미를 느꼈었다. 인문학 전공자에 비해 좁고 깊은 공부를 하는 셈이랄까. 어떤 일이 주어지고 최선을 다해 매일 매일 그것을 하다보니 ‘가보니까 거기에 있더라’ 하는 식으로 시간이 흘러갔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한약조제권 분쟁, 의약분업, 약대 6년제 전환 등의 뜨거운 현안들이 쉴 틈없이 줄줄이 이어졌었다.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일에 열심히 몰두하다 보니 꿈에도 생각이 없었던 약사 회장까지 맡게 됐다.” ━ 강남 요지에서 15년 동안 약사로 활동 강남 요지에서 오랜 동안 약국을 운영했었는데 돈도 많이 벌었겠다.“서초동 제일생명 사거리 근처에서 15년간 약국을 열었다. 그러다 보니 강남지역의 변천사를 완전히 꿰고 있을 정도다. 당시엔 길목의 좋은 자리는 약국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약국이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았던 업종이었다는 이야기다. 나도 나름대로 특효약을 제조해 돈을 많이 벌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자리는 약국 대신 프랜차이즈 업종으로 다 바뀌더라. 내가 약국하던 자리도 이젠 토스트 프랜차이즈 업장으로 바뀌었다. 의약분업 이전 약사가 고객과 직접 상담해서 약을 제조해 팔던 시절에서 의약분업으로 인해 의사 처방에 따른 제조로 바뀌자 약제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약국과 병원과의 커플링이 강해지면서 병원과 협업하는 형태로 공간이 재배치되기 시작했다.”원 회장이 처음에 약국을 연 곳은 강원도 속초였다. 당시 간호장교였던 부인의 근무지인 그곳까지 함께 따라와서 첫 약국을 시작했던 로맨스의 사나이였다. 그가 제조했던 위장약이 동해안 선원들 사이에 히트를 치면서 돈을 벌게 됐다. 그러다 서울 강남으로 자리를 옮겨서 약국을 개업하게 된 것이다.생각나는 일화가 있을 법하다.“약국 문을 막 열었던 30여년 전 일이다. 앙상한 체구의 한 젊은 여자가 약국 안으로 업혀서 들어왔다. 병원이란 병원을 다 다녀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자꾸 살이 빠지고 힘이 없어 죽을 지경이라고 호소하더라. 뾰족한 비방이 없던 터라 위장기능 개선제 등의 처방으로 약을 지어주면서 ‘안심해라. 괜찮아질 거다”라는 말로 계속 위안했다. 그런데 몇 달 뒤 그녀가 살이 제법 올라 건강해진 모습으로 찾아와선 내 약을 먹고 나서 몸이 다 나았다며 거듭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대중적인 약을 지어줬을 뿐인데도 병이 완치됐다는 말에 내가 오히려 고맙더라. 그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명약이란 어떤 효과보다는 약에 대한 믿음을 갖고 정성껏 약을 복용한 결과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무슨 약을 먹더라도 환자가 약을 신뢰하고 정확한 시간에 꼬박꼬박 먹어야만 약효가 나는 법이란 이야기다. 세상살이가 바로 그렇지 않나.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신뢰가 있어야 비로소 변화가 일어나더라.”여러 조직의 장을 거치면서 항상 염두에 뒀던 리더십의 철학이 있었다면.“리더에겐 그때 그때의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사안이 벌어지거나 상황이 일어날 때 어떤 방향으로 일머리를 잡아야 하는가 하는 판단이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구체적인 해결책에 대한 결정은 논의를 거쳐서 정할 수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는 판단은 리더의 몫이다. 리더는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판단하는 자리다. 처음엔 구성원들 사이에 생각이 모두 달라도 리더의 판단을 놓고 브레인 스토밍을 거치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종종 임원들에게 ‘내가 회장이라고 생각하라’고 강조하곤 한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바로잡는 것은 리더의 몫이고, 그 방향으로 일을 어떻게 꾸려 가느냐 하는 것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의사결정을 내릴 때엔 모두가 동지가 되고 속된 말로 ‘공범’이 돼야한다.“리더가 방향을 미리 정해 놓으면 독선적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리더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방향을 바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한 방향만 죽자고 고집할 필요가 없다. 시점이나 시각이 바뀌면 정해놨던 방향이 안 맞을 수 있다. 리더가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남들이 이야기해주면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중구난방일 때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리더가 해야 할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유연하게 토론하고 나와 다른 생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경영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리한다면.“경영은 함께 가는 것이다. 평소 ‘일 속에서 사람을 풀지 말고 사람 속에서 일을 풀어라’라는 말을 되새기곤 한다. 사람은 일의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라 일이 끝나도 그 사람은 계속 남아 있게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수렴하고,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직장 내에서 ’폭탄’이라 불리는 사람까지 내 식구라고 생각하고 안아줄 때에 다른 직원들 모두가 ‘나도 품어주겠구나’하고 이곳이 나의 터전이라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조직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 책임도 크지만 그런 사람을 만들어 낸 조직도 문제가 있다. 집단과 조직의 책임을 공유하게 되면 따뜻한 직장이 된다. 어차피 해야 할, 주어진 일이라면 모두가 하고 싶은 일로 만들어 나가라.”일에만 매달리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나름 즐기는 취미가 있다면.“(한참 생각하더니) 글쎄. 운동이라고나 할까. 플랭크, 스쿼트, 팔 굽혀펴기 3종 세트를 매일 아침·저녁에 거르지 않고 한다. 플랭크는 1분씩 3세트, 스쿼트는 50회씩 3세트, 팔 굽혀펴기는 20회 3세트, 이렇게 목표를 정해 놓고 한다.”평소 주말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두 딸이 출가해서 손주가 4명이다. 손주들이랑 놀아주고, 종종 가까운 친구들과 만나는 게 유일한 낙이다.”한 때 애주가였던 원 회장은 건강이 나빠져 2005년 간 이식수술을 받았다. 그렇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친구들과 만나면 술잔을 나누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그는 “술은 함께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과 나눠야 한다. 술 먹고 실수하는 사람과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술을 나누면서 마음이 풀려서 오랜 동안 만난 사이처럼 친해지는 ‘무장해제’의 효과를 즐겨야지, 술에 홀딱 빠지거나 술을 마실수록 남을 무장시켜선 안 된다는 게 그만의 독특한 음주 철학이다.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꼽는다면.“귀가 후엔 항상 아내와 20∼30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다. 어떤 주제를 정해서 얘기하기보다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나 가족들 이야기를 주로 한다. 결혼 후 40여 년간 계속해온 일과다. 사회적으로 바쁘게 지낼 때도 매일 아내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어떤 해답을 얻기보다는 ‘오늘’ 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의미를 정리할 수 있다.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면 그 하루의 의미를 제대로 짚어보질 못하질 않나. 하루동안 열심히 몰두하며 훔뻑 달아올랐던 자신에게 촉촉하게 물을 뿌려주는 시간이다. 현재의 어려움을 ‘별 게 아니다’라며 극복하며 위안을 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 4대가 한 집에 모여 사는 대가족 예찬론자 그는 친어머니(92)와 장모(87) 두 분을 20여 년째 함께 모시고 살고 있다. 큰 딸 가족까지 4대가 2층 양옥의 한 집에서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 예찬론자다.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은 요즘 보기 드문 집안 풍경이다.“모두 모여 한 공간에서 함께 살다 보니 사는 게 힘들어도 힘들다고 쉽게 말할 수 없더라. 힘든 것보다 서로 위로 받고, 얻는 점이 더 많다. 어르신들의 길을 보면 우리의 길이 보인다. 미래의 내가 보인다는 이야기다. 내가 점점 늙어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늙어서 죽게 되는 자연의 섭리를 식구들이 이해하게 된다. 아버님과 장인 어른도 집에서 함께 모시다 자연의 섭리대로 돌아가셨다. 내 어머니는 5년 전부터 기력이 쇠해서 자리에 누우셨는데도 매일 밤 8시반 만 되면 항상 내게 전화를 걸어 ‘어디 있느냐. 빨리 들어와라’며 자식 걱정을 한다. 이게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나만의 애장품은.“허. 뭐가 있을까. 보물이 있다면 아마도 막내 처남이 내게 기증해준 ‘간’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으니까.”존경하는 인물은.“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황당한’ 도전을 시도했던 그의 인생철학을 존경한다. 모두가 말리는 일에 ‘당신 해봤어’라고 반문하며 ‘왜 해보지 않고 안된다는 이야기부터 하느냐’며 꿋꿋하게 일을 밀어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일을 먼저 치고 나가는 도전정신에서 새로운 것으로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교훈을 항상 떠올린다.” ━ 10%만 가능성 있어도 포기하지 말아야 최근에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책은.“알랭드 보통의 이다.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던져주는 책이다. 특히 ‘인간이 불안을 느낄 때는 나와 같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나보다 먼저 갈 때’라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흔히들 입사 동기가 나보다 빨리 승진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무능하다기보다는 그것이 주는 박탈감 때문이다. 조직에서 쳐지는 사람을 항상 이해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그래도 현대인은 항상 불안하다. 나만의 불안 극복법은 무엇인가.“나 역시 항상 불안하다고 느끼곤 한다. 특히 정치판에 들어갔을 때가 더욱 심했다. 동료 의원들에 비해 언론에서 자주 다뤄주지 않을 때마다 내가 처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까지 들더라. 그러다 어느 날 인생이란 긴 틀에서 길게 보면 한줌의 명성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적인 명성을 얻는 데 연연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정치가 아닌 정책을 펼치자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누가 보던 말든 내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게 됐다. 아직도 그때 그 생각을 후회하지 않는다.”창업이나 취업에 도전하려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10%만 가능성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90%가 됐다고 해도 방심하지 마라. 도전과 그 결과에 대해 항상 생각하라. 10%의 가능성만 남아 있어도 10명 중 1명은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잘 되도 잘 되는 게 아니고 못 되도 못 되는 게 아니다. 잘 나갈 때엔 항상 함정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나 끝났어’하고 절망할 때가 바로 기대고 올라 갈 수 있는 돌멩이가 있고, 치고 나갈 구멍이 있는 법이다. 주저앉으면 보이지 않는다.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 글씨로 본 나의 좌우명 - “실천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다” 원희목 회장의 좌우명은 ‘행불무득(行不無得)’(사진)이다. 실천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다는 뜻이다. 그는 이 문구를 붓글씨로 직접 써서 액자로 만들어 사무실 벽에 걸어놓고 매일 그 뜻을 곱씹는다. “이것저것 재면서 평생 ‘간’만 보지 말고, 단 하나라도 변화를 추구해야만 내 생애 동안 뭔가를 하나 얻어갈 수 있다”는 그의 지론을 담은 말이다.필적 분석 전문가인 구본진 변호사는 그의 필체에 대해 “글씨에 능한 편”이라며 수준 높은 글씨라고 평가했다. 한 획으로 한 글자를 모두 쓰는 연면형의 글씨가 특징이다, 이는 사물이나 사회를 종합적, 분석적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행(行)’, ‘득(得)’의 마지막 획의 끝부분이 삐쳐 올라간 것은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하지만 글씨의 세로 길이나 기초선에 변화가 있는 것은 일관성이나 예측 가능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변화가 어느 정도 한계 내에서만 이뤄지고 있어서 강함과 부드러움, 보수와 혁신의 조화가 잘 이뤄지는 긍정적인 면도 드러난다는 게 구 변호사의 분석이다.※ 홍병기 경제전문기자 -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사회부·산업부 기자와 경제부 정책·금융·증권팀장 등으로 일선 취재현장을 두루 거친 뒤 JTBC 보도국 취재담당 부국장, 중앙일보 선데이담당 경제에디터 등을 역임했다. 의 저서를 냈다.

2019.08.3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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