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65

영어 조기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부동산 교육[김현아의 시티라이프]

부동산 일반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의 그의 저서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1988)를 통해 유치원에서 배운 기본적인 삶의 원칙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치원에서 배우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와 금융 그리고 부동산을 둘러싼 현실이다. 최근 방영된 한 드라마에서는 강남 조기교육 열풍과 조부모까지 나서 손자녀의 학원 라이딩을 돕는 모습을 보여줬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영어라는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을 보며 진짜 어른이 됐을 때 필요한 금융과 경제 교육은 언제 시작되는지 궁금해졌다. 2026년부터 우리나라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금융과 경제생활’이라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되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의무교육이 아닌 선택과목일 뿐이다. 이미 금융교육을 의무화한 나라들이 있다. 예컨대 캐나다(2004)‧싱가포르(2012)‧영국(2014)‧미국(2018)‧일본(2022)과 비교하면 한국은 많이 늦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교육의 핵심 구성 요소로 자리잡은 부동산 리터러시(Real Estate Literacy)이다.금융교육을 넘어선 부동산 리터러시의 필요성부동산 리터러시는 단순한 금융교육의 일부가 아니라, 개인의 주거 안정성과 자산 형성을 위한 필수적인 교육이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단순히 예산관리와 저축을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주택금융 신용관리, 임대차 계약 이해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캐나다는 금융소비자청(FCAC)이 주도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금융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고등학생들에게는 ▲주택담보대출 ▲보험 ▲신용 ▲부채 관리 등 부동산과 밀접한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 이민자나 저소득층, 노인 등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금융교육도 제공한다. 매년 11월을 ‘금융교육의 달’로 지정하여 국가 차원에서 국민의 금융 이해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적극적인 행보다.미국도 부동산 리터러시 교육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는 1970년대부터 주택 소유자와 임차인을 대상으로 재정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이런 노력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더욱 체계화됐다, 2010년 도드-프랭크 법(Dodd-Frank Act)에 따라 HUD 내에 주택상담실(Office of Housing Counseling, OHC)이 공식 설치됐다. 이 조직은 주택 상담 서비스를 공식화하고 전국의 HUD 승인 상담 기관을 통해 주택 구매자와 임차인을 대상으로 ▲금융 교육 ▲신용 관리 ▲계약 이해 ▲주거 유지 방안 등을 교육하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주택 상담사를 양성해 교육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노력도 빼놓지 않고 있다. 상담사들은 ▲주택 구매 과정 ▲재정 관리 ▲임대차 계약 등과 관련된 교육을 수행하며 주택 소유와 임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금융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03년 금융교육위원회(Financial Literacy and Education Commission, FLEC)라는 조직이 구성됐는데 국토안보부‧교육부‧주택도시개발부(HUD) 등 20여 개의 연방 기관이 협력해 국민의 금융 이해를 높이는 데 필요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임차인을 위한 렌터 리터러시의 중요성부동산 리터러시는 단순히 집을 사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임차인(렌터)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미국의 HUD는 ‘세입자 교육 가이드’를 배포하며 임차인을 위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가이드는 임대차 계약서 이해, 주택 유지 보수, 임대인과의 소통 방법 등을 포함하며, 임차인이 주거 불안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한다.특히 미국은 주택을 임차하는 사람의 신용도에 따라 임대 계약이 거부되거나 계약 조건이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거 불안정을 줄이기 위해 임차인의 신용 관리 및 계약 이해 능력을 높이는 교육은 필수적이다. 실제로 몇몇 주에서는 임차인 교육을 이수하면 임대 계약이 보다 원활해지는 경우도 있다. 영국도 임차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세입자를 대상으로 한 재무 교육에서 교육을 받은 가구가 자금 관리 능력을 향상시키고 저축을 늘리는 행동 변화를 보였다고 한다.한국에서 부동산 리터러시의 부재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전세사기’ 피해를 들 수 있다. 2023년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은 수많은 청년 세입자들에게 재정적으로 큰 피해를 안겼다. 문제는 단순히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것만이 아니다. 전세보증을 담당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또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아직도 전세사기는 들어봤어도 정확히 전세제도가 무엇인지 위험요소는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HUG는 피해 예방을 위해 홈페이지에 ‘안심전세포털’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전세사기의 유형과 대처 방안을 안내하고 있지만, 정보 제공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즉 부동산 리터러시의 강화이다.최근 정책평가연구원이 출시한 ‘나라살림 게임’이 흥미롭다. 사용자가 기획재정부 장관이 돼 예산 편성과 정책의 영향을 직접 체험하는 이 게임은, 재정 건전성 문제를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체험할 수 있게 돕는다. 만약 이처럼 게임을 활용한 부동산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교육의 효과는 훨씬 커질 것이다.영어보다 중요한 교육, 지금부터 시작해야우리는 영어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삶의 기반을 다지는 경제와 금융, 부동산 교육은 소홀히 하고 있다. 오늘날처럼 주거비용과 금융 부담이 큰 사회에서, 부동산 리터러시 교육은 생존을 위한 필수 능력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청년층과 임차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 노년층의 부동산 리터러시 문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다음 편에서는 노년층이 겪는 부동산 리터러시의 문제와 그 해결 방안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다음 편에 계속)

2025.03.29 09:00

4분 소요
부동산 '매매'의 기술?…시장 흐름과 제도 이해하고 투자와 자산관리까지 가능해야[김현아의 시티라이프]

부동산 일반

요즘 ‘○○ 리터러시(Literacy)’라는 단어가 다양한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리터러시(literacy)란 ‘읽고 쓰는 능력’인 문해력을 의미하는데, 사회가 변화하면서 그 개념과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단순히 문자를 해독하는 수준을 넘어 텍스트 이면의 의미를 파악하는 ‘비판적 리터러시’, 그리고 개인이 사회문화적 소통을 위한 종합적 사고력을 갖추는 ‘문화적 리터러시’ 까지 그 개념이 넓어졌다. 또한 ▲디지털 ▲미디어 ▲금융 ▲건강 등 실생활에 밀접한 분야와 결합하여 리터러시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리터러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는 정보의 폭발적 증가와 기술 발전의 가속화가 단순한 지식 격차를 넘어 개인 간의 기회 격차(Opportunity Gap)와 경제적 격차(Economic Divide)를 더욱 심화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역시 예외가 아니다.부동산 리터러시, 매매의 기술 넘어 투자‧자산 관리까지부동산은 단순한 재화가 아니라 삶의 공간이자 자산이며, 주거 안정과 자산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부동산 리터러시는 단순한 부동산 매매 기술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주택금융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관련 법률과 제도를 알고 투자와 자산관리를 할 수 있는 종합적인 역량을 의미한다. 청년과 신혼부부들에게 주거정책과 금융 지원제도가 존재하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아는 것과 그 기회를 실제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주택 마련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설사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거래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의 경우에는 다양한 피해에 노출될 수 있다. 최근 전세사기에서도 주된 피해계층은 청년들이었다.얼마 전 지인의 자녀 결혼소식을 들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결혼식 대신 그 비용을 종자돈 삼아 정부의 신혼희망타운 주택에 청약할 계획이라고 한다. 워낙 집값이 비싸지고 고금리에 대출을 받기도 어려운 환경이지만, 정부가 신혼부부에 한해 지원하는 공공주택은 가격과 금융지원(대출 한도와 금리)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청약을 위해 혼인신고도 미리 했다고 한다. 과거 결혼은 하되 혼인신고를 미루었던 세태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그 동안 많은 청년들이 주택마련의 어려움 때문에 결혼도 출산도 포기해야 했던 모습에 비하면 다소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비단 신혼부부뿐 아니라 20대 청년층에서도 정부의 청년임대주택에 대한 지원에 힘입어 부모로부터 독립과 자립을 계획하려는 사례를 자주 목격한다. 아직 이들을 위해 공급하는 주택의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이런 정보를 얻고 실제로 활용하는 이들에게 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부동산만큼 자산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도 없을 것이다. 집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의 자산격차는 말할 것도 없다. 집을 소유하더라도 어떤 지역의 집을 소유했는가에 따라 한 개인의 자산규모와 거주이전의 선택지가 달라진 지는 한참 됐다. 다수의 연구자료에 의하면 부모가 주택을 소유한 경우, 자녀가 주택 취득 확률이 더 높고 특히 수도권에서 그 영향이 더 크다고 한다. 자녀의 소득보다 부모의 주택 소유 여부가 자녀의 주택소유에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해외 연구를 살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고 있다는 현실을 주변에서 목격할 때마다 청년세대의 ‘N포’가 수긍이 된다. 청년들이 무수히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美, 정부가 부동산 교육미국에서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연체와 차압(Foreclosure)을 줄이기 위해, 정부 차원의 부동산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전세사기보다 더 크고 치명적이었던 ‘서브 프라임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와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주택 구매자와 임차인을 위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한다. ▲대출 비교 방법 ▲계약서 이해 ▲신용 점수 관리 ▲차압 방지 전략 등을 교육하고 있다. 특히, 청년층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재정교육 및 주택 소유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주택 구매자 대상 교육을 받은 경우 대출 연체율이 19~50%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부동산 리터러시는 개인의 재정 안정뿐만 아니라, 주택 소유 유지와 장기적인 경제적 자립에도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부동산 리터러시가 부족하면 무리한 대출 선택, 전세 사기 피해, 부적절한 계약 체결 등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개인의 자산 형성 기회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정부지원‧체계적 지식‧정보 투명성 강화 필요그렇다면 우리는 부동산 리터러시를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까? 부동산 리터러시를 키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을 넘어, 체계적인 금융·법률 지식을 갖추고, 신뢰할 만한 자료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의 지원 정책과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며, 부동산 정보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부동산 리터러시가 실제로 어떻게 자산 형성과 기회 격차에 영향을 미치는지, 해외의 교육 프로그램과 정책적 대응 사례는 어떤지, 그리고 우리가 실생활에서 부동산 리터러시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다음에 계속)

2025.03.15 18:00

4분 소요
도시를 바꾸는 철도 지하화의 정치와 경제[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산업 일반

모든 건축물이나 구축물을 지하화하는 데는 생각보다 큰 비용이 소요된다. 지하공사는 지상공사에 비해, ▲굴착 ▲지하수 처리 ▲지반 보강 등 추가적인 공정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사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비용을 다 지불하면서 각종 도시개발을 추진한다면 아마 이를 감내할 수 있는 도시나 지자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민간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고 제도와 행정으로 사업비를 조달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때로는 주민들이나 환경단체의 반대로 사업이 지연되기도 하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치적 역량에 달렸다. 세계 주요 도시들의 사례를 보면 철도 지하화 사업의 가장 일반적인 자금조달 방식은 민간자금 유치다. 철도 지하화로 새롭게 조성되는 지상 부지의 개발권과 개발 후 이용권으로 수익을 담보하는 구조다. 지하 공사비가 많이 들수록 민간사업자는 고밀개발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공원이나 주차장 등의 공공 공간 확보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그래서 이경우 공공부문은 행정과 계획에 관여하며 일부 자금을 넣는 민-관협력방식(PPP, Public-Private Partnership)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관 협력 방식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세밀한 부분까지 챙겨야 한다. 공공성 확보와 민간사업자의 과도한 이익 추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 찾기의 열쇠는 결국 공공(정부)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철도 지하화 사업 관련 민관협력 방식의 디테일을 살펴볼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이중 수익 모델: 철도회사의 도시개발 전략일본 오사카의 ‘우메다 화물선 지하화 프로젝트’는 가장 일반적인 공공-민간 협력 사업(PPP) 중 하나로 꼽힌다. 이 프로젝트는 오사카역 인근 지상 철도를 지하화한 뒤 철도 부지를 재개발해 상업시설 및 오피스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정부는 JR서일본이라는 철도 운영 회사와 민간 부동산 개발사 등 민간 투자사들이 철도 부지 상부 개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했다. 높이 제한이나 용적률 등 다양한 도시계획 규제를 완화하고 그곳의 개발을 허용한 것이다. 그 수익으로 지하화 공사비용을 충당하게 했다. 일부 재정 투입이나 세금 감면 등과 같은 혜택은 사업 이익에 비해 투자 비용이 더 클 때 공공 부분이 민간사업자에게 제공하는 수익 보정 방식이다.특이한 점이 있다면 일본의 철도 지하화 사업은 사철(私鐵)이라 불리는 민간 철도 회사들의 역할이 컸다는 점이다. 일본의 사철들은 철도 지하화 사업을 통해 여러 가지 경제적, 경영적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우메다 화물선 지하화와 같은 프로젝트는 단순한 철도 시설 개선이 아니라 철도 회사들에 도시 개발과 부동산 사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원래 일본 사철 회사들은 단순한 철도 운영에만 의존하지 않고 부동산 개발과 연계된 사업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철도 지하화로 인해 기존 철도 노선이 차지했던 지상 공간을 개발하면 그곳에 ▲백화점 ▲쇼핑몰 ▲오피스빌딩 ▲호텔 ▲주거 단지 등 다양한 부동산 사업을 할 수 있는데 이는 기존의 철도 수익(승객 운송) 외에 부동산 임대 및 판매 수익을 추가로 창출하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다른 도시들의 경우에도 철도 지하화 사업에는 철도운영주체(공사 등)들의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철도 위에 초고층 빌딩 건축, 허드슨 야드의 해법 최근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미국 뉴욕 ‘허드슨 야드(Hudson Yards) 프로젝트’는 허드슨 강변에 낙후된 철도 역사와 주차장, 공터가 있던 곳을 민간과 공공이 협력해 대규모 복합개발을 이뤄낸 대표적 사례다. 뉴욕시가 설립한 허드슨 야드 개발 공사, 허드슨 야드 기반 시설 공사가 마스터플랜 수립과 기반 시설 투자 등을 총괄했다. 민간사업자는 체인 릴레이티드 컴퍼니스가 참여해 11만3057m2(3만4200평) 부지에 ▲오피스 ▲아파트 ▲호텔 ▲판매 ▲공연예술센터 등 16개 초고층 타워와 광장, 공원 길이 들어서는 총사업비 약 250억달러(약 35조원)의 사업이다. 당연히 민간의 참여가 절실했다.이 프로젝트는 철도 차량기지의 운영을 지속하면서 그 위에 건축물을 세우는 첨단 건설 공법을 활용했다. 선로 위에 거대한 플랫폼을 설치해 그 위에 건축물을 세우는 방식이다. 선로 사이사이에 파일(pile)을 설치하고 그 위에 구조물을 지지하는 기초를 구축해 건축물의 하중을 분산시키는 공법인데 장기간 철도 운영을 중단하지 않고 공사를 할 수 있어서 주목을 받았다. 땅값이 비싼 뉴욕에서 이 프로젝트는 제한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기존 인프라와 조화를 이뤄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주목할 점은 첨단기술 이외에도 다양한 정책과 제도가 사용됐다는 것이다.대표적으로 개발권 양도(TDR) 제도가 있다. 뉴욕시는 허드슨 야드 지역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특정 구역의 개발 밀도를 높일 수 있도록 밀도가 낮은 토지의 개발권을 인접한 부지로 이전하는 TDR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개발자들은 추가적인 건축 용적률을 확보(최대 3300%)할 수 있었다. 이는 프로젝트의 경제적 타당성을 높이고 지역 개발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게 됐다. 서울시가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용적이양제도와 유사한 방식이다. 물론 뉴욕시는 추가 용적률을 허용하고 그에 상응하는 저렴한 주택과 임대주택, 공원 등을 확보하기도 했다.꼼꼼하고 주도적인 공공의 역할, 선투자와 개발이익 환수프랑스 파리 ‘리브고슈 프로젝트 (Paris Rive Gauche Project)’ 는 파리의 철도 차량기지(오스테를리츠역 주변)를 지하화하고, 상부에 주거·업무·문화 공간을 조성한 사업이다. 지하화 후 개발될 상부 부지를 미리 판매해 초기 자금을 확보한 뒤 개발 이후 토지 가치 상승에 따른 개발 이익의 일부를 추가로 공공이 환수한 사례다. 추가 이익은 대부분 이 지역의 인프라 조성에 재투자 되도록 설계됐다. 단순히 개발권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화 후 부동산 가치 상승을 예상하고 사후 조치까지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철도 지하화 사업을 도시계획과 연계함은 물론 장기적 관점으로 가치 상승((LVC, Land Value Capture)을 예측하고 이를 사업비용으로 관리 활용하는 것이다.철도 지하화를 단순 교통 프로젝트가 아니라 도시개발과 연계된 장기적인 공공투자로 인식한 사례들은 더 있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이다. 이는 도시 공간을 재구성하는 장기적인 계획이었다. 사업 주체는 독일 연방정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정부, 슈투트가르트시 정부, 그리고 독일철도회사(Deutsche Bahn)가 공동으로 추진했다. ▲철도기지의 구조를 개선해 열차의 속도를 높이는 철도 현대화 사업 ▲유럽 주요 고속철도 노선(파리-브라티슬라바)을 연결하는 허브로의 개발 ▲기존의 터미널 역을 지하로 옮겨 십자형 직통형 역으로 전환 ▲16개의 기존 노선을 8개의 지하 노선으로 통합 ▲새로운 지하 연결망 구축 등 유럽 내 주요 철도노선의 현대화와 효율화를 포함하는 도시 전체의 철도 인프라 개선 계획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공공이 먼저 주체적으로 인프라 투자에 나섰고 민간투자는 도시개발 분야 등에서만 진행이 됐다.철도 지하화, 명분과 실리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아직 밑그림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철도 지하화 사업들은 앞으로 다양한 접근을 통해 큰 비용이 드는 문제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단순히 철도만 지하화하고 그 상부에 주택이나 공원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도시의 특색에 따라 도시 인프라를 재편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도시계획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래서 명분도 명확해야 하고 공공의 이익도 분명해야 한다. 정치의 힘은 바로 그런 것이다. 비용을 제도와 정책, 그리고 지혜로 감내하는 것이다.

2025.03.02 12:00

5분 소요
단절에서 연결로…철도 지하화가 바꿀 도시의 미래[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산업 일반

지금은 대부분의 철도가 도심 중앙을 관통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최초로 건설된 철도들은 대부분 도시의 경계부(다른 도시와의 경계, 기존 모도시의 외곽)에 설치됐다. ‘오늘날의 터미널 같은 역’에서 출발하고 도착한 것이다. 이는 철도시설 자체가 막대한 부지를 필요로 하는 데다 철도에서 야기되는 소음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시가지가 밀집된 도심으로 철도시설을 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철도는 초기에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장거리 교통수단이었다가 지하철 건설이 가능해지면서 도시 내부의 이동 수단이 됐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리와 런던의 주요 기차역 역시 처음에는 도시 외곽 경계에 지상 철도로 배치됐다가 이후에 지하화하거나 지하철 네트워크를 추가로 확장한 경우다. 그런 측면에서 지하철의 탄생은 도시 교통에 엄청난 혁명을 가져온 것이나 다름없다. 최초의 지하철은 영국 런던에서 시작됐는데, 동력이 증기여서 매연과 안전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철도의 동력이 전기로 바뀌면서 지하철도의 성장과 확산은 가히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지금도 지하철 노선에 위치해 있거나, 도보로 접근 가능한 역세권 지역은 집값이나 임대료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연히 높다. 이렇듯 도시 내 위치에 상관없이 철도는 도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도시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도심을 관통하는 지상철도는 도시 발전을 오히려 저해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 철도로 생활권이 단절되거나 분리되고 소음이나 먼지 발생 등 주거 환경을 열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철도 부지 주변은 소음이나 안전상의 이유로 주변 시가지와 적정 거리를 둬야 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토지 이용의 불합리성이나 낭비도 크다. 그래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는 기존의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고 그 상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미 우리나라도 곳곳에서 폐선 부지를 공원 등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생겼다. 이제는 서울을 비롯한 광역지자체들이 폐선이 아니라 운행 중인 도심 관통 지상철도를 지하화하려는 도시공간구조 고도화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철도 지하화, 상부공간은 새롭게 활용하는 전략대도시권의 지상철도를 지하화하고 그 상부 부지에 공원 등 공공시설이나 주택, 상업시설 등에 복합적으로 자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공간을 만들기가 확대되고 있다. 만약 철도 상부 공간을 시민들이 사용하고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돌려줄 수 있다면 이는 매우 매력적인 일일 것이다. 특히 교통흐름과 도시 연결성(connectivity)이 향상돼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는 효과가 크다. 철도 폐선을 공원화해 성공한 사례는 이미 많다. 서울의 경의선 숲길은 도시 공간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주변 지역 상권 활성화를 견인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그동안 불편함에도 철도에 순응하던 주민들이 경의선 숲길을 체험하면서 더 나은 주거 환경을 경험했다. 상권이 활성화되고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철도 지하화에 대한 요구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해외 도시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본 도쿄 시부야 ▲프랑스 파리 리브고슈 ▲미국 뉴욕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 ▲독일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 등은 철도가 점유하던 공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전환해 주민들에게 새로운 공공 공간을 제공한 바 있다. 서울시는 시내 지상철도 전 구간을 지하화하고 그 상부를 대규모 녹지 공원으로 만들거나 복합 개발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 도심을 잇는 길이 약 68㎞, 면적 122만㎡에 달하는 선로 부지에 대규모 녹지 공원을 조성하고 면적 171.5만㎡의 역사 부지는 업무·상업·문화 시설로 복합 개발할 계획이다. 지하화 대상지는 도심 중앙 ‘서빙고역’을 기준으로 경부선 일대, 경원선 일대로 총 2개 구간 내 6개 노선과 총 39개 역사다. 사업비는 총 25조6000억원이다. 부산은 경부선 11.7㎞ 구간을, 인천은 경인선 인천역~구로역 구간 22.6㎞의 지하화를 제안한 상태다. 다른 광역시도 지하화 추진 협의회를 발족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지하화 사업모델을 구상 중이다. 지하화 장점에도 막대한 비용 부담은 문제철도 지하화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와 지자체들의 노력은 지난 1월 31일 ‘철도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 마련으로 힘을 얻을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도 지난해 12월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하며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단순히 폐선 부지를 활용하는 경우와 달리 기존 철도를 지하화하는 것은 막대한 공사비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이번 특별법에는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독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철도 지하화 사업에 재정 지원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민간 참여를 유도하고 해당 철도 상부 공간의 용도 변경을 통해 사업비를 조달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 역시 철도 지하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수 십조 원의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 용도지역을 변경해서 개발하는 것이 전제라고 밝혔다. 서울역, 용산역 등 도심지의 역사 부지는 상업지역으로 변경하고 노량진역처럼 규모가 비교적 작은 곳들은 인근의 용도지역 등을 감안해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하는 것이 큰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는 용도 변경을 해주고 민간사업자는 상부 공간 및 인근 지역의 부동산을 개발해 그 이익을 철도 지하화 사업 비용으로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다분히 부동산 경기 의존적이며 인구성장을 전제로 한 자금조달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사업비 조달 방식으로 과연 철도 상부 공간에 얼마만큼이나 공원 같은 공공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많은 주민이 원하는 공원 조성은 수익이 발생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관리 비용이 들어간다.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업 공간이나 주거 공간으로 고밀 개발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부동산 경기가 받쳐줄 때만 가능하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사업비를 조달할 수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

2025.02.15 09:00

4분 소요
속도의 역설…빠른 열차·멀어진 역[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정책이슈

최근 개통된 GTX-A 노선은 수도권의 교통체계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초고속 광역철도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 열차 이동 시간 이외에 소요되는 역까지의 접근성, 환승저항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파주 운정에서 강남 삼성역까지 20분대에 도착하는데 열차를 타기 위한 전후 활동의 시간들은 여전하거나 오히려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대심도 철도의 접근과 환승 저항 평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대심도 철도의 접근 저항(철도를 이용하기 위해 역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적, 물리적 노력과 심리적 부담)은 평균 차내 시간의 5.18배까지 길어질 수 있다고 하니 예견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환승 저항(한 교통수단에서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탈 때 발생하는 불편함과 부담)도 차내시간의 1.01배 정도이니 접근과 환승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최첨단의 고속철도는 그저 ‘빛좋은 개살구’에 그칠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철도는 자동차와는 달리 문전 서비스(door to door)가 어렵기 때문에 출발지에서 역까지의 접근성과 다른 철도노선과의 환승 편의성이 매우 중요하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는 속도 향상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건설기간 단축과 토지보상비를 최소화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심도 지하공간에 건설되고 있다. 따라서 접근 저항(집에서 역까지, 역입구에서 개찰구를 거처 탑승플랫폼까지)이 해결되지 않으면 원래의 의도와 목표달성에 차질이 예상된다. 정치나 정책 일선에서 일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 앞에 (고속)철도 역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철도나 도로의 노선은 자연 지형과 공사 여건, 비용과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한 최적의 노선으로 결정해야 하지만 이런 주민들의 요구로 종종 우회·연장되기도 한다. 나 역시 모든 사람이 집 앞에 역을 만들어 달라는 주장을 ‘지역이기주의’로 평가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좀 생각이 달라졌다. 이는 주요 교통수단으로의 접근성 개선에 게으른 정치가 만들어낸 ‘절규’다. 경기도는 이제 인구 1400만 명에 근접하며 거대해지고 있지만 곳곳이 대중교통에서 소외된 ‘교통섬’이 되고 있다. 철도, 버스든 뭐라도 연결해달라는 “뭐라도 마을”로 명명되는 곳들 역시 적지 않다. 이들의 외침은 절규에 가깝다.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거점역과 연결해주지 않으니 내 집 앞으로 철도노선을 끌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인터모달리즘(Intermodalism) 원칙교통공학·교통계획을 다루는 교과서에서는 교통계획을 수립할 때 인터모달리즘 추구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인터모달리즘이란 다양한 교통수단(도로·철도·해운·항공 등)을 효율적으로 연계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화물이나 사람을 중단 없이 이동시키는 통합 교통 운영체계를 의미한다. 이는 교통수단의 효율성을 높여 ▲비용절감 ▲시간단축 ▲안전성 향상 등을 목표로 하며 나아가 환경친화적이고 경제적인 운송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철도정책에서는 철도와 다른 교통수단과의 연계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철도를 처음 건설할때부터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장기 교통계획을 수립한다. 문제는 특별법(택지개발특별법 등)으로 그때 그때 수립되는 대규모 주택단지개발이다. 당초 계획에 없던 대규모 주택단지가 개발 되면 철도나 교통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또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로 야기되는 교통문제에 대한 대책을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거꾸로다. 집부터 짓고 교통문제는 나중이다. 과거 나라살림이 팍팍했을 때에는 택지개발을 통한 개발이익으로 교통시설투자를 했으니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이런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교통시설 확보는 늘 후순위다. 집부터 짓고 보자는 식이다.3기 신도시가 계획되면서 GTX 역이 추가됐다. 고속열차는 안전성 확보와 속도 유지를 위해 직선화가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신도시 개발이 발표될 때마다 노선이 추가되고 우회하느라 당초 직선화 노선이 조금씩 수정되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GTX 건설 기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막상 개통이 되면 환승시설이나 시스템은 그때부터 마련한다고 분주하다. 기나긴 건설 기간에 과연 일선 행정부나 정치인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싶다.복합환승시스템을 갖춘 스마트역세권 개발 시급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기존 지하철 역사에도 엘리베이터 탑승 수요가 늘어났다. 지상 역입구에는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공사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철도의 속도뿐만 아니라 철도이용을 위한 접근 속도와 편리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엘리베이터는 협소하고 에스컬레이터 설치는 여전히 느리다. 신도림역이나 대곡역의 경우 여러 지하철 노선이 정차하는 환승역인데도 불구하고 역사와 플랫폼 공간이 비좁다. 이는 이용자를 불편하게 하고 안전까지도 위협한다. 이제 철도정책은 새로운 노선보다 기존 노선의 효율성을 높이고 접근성과 환승 저항을 낮추는 운영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낡은 역사를 스마트하게 바꾸는 ‘역사 재건축’이 필요하다. 여기서 역사 재건축이란 단지 낡은 역을 넓히고 새로 짓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를 재건축한다는 것은 기존 승객의 이동 패턴을 분석해서 동선을 단순·최적화해 혼잡을 줄이는 설계가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시대 흐름에 맞춰 인공지능(AI)와 사물인터넷(Iot)를 활용할 수 있다. 역내 혼잡도를 관리하고 승객들에게 최적의 동선을 제안하는 스마트역 시스템의 구축도 포함된다. 특히 수도권 30분 출퇴근 시대를 여는 GTX개통에 맞춰 GTX의 거점역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다. 그래서 앞으로 개통되는 GTX는 개통되자마자 30분 출퇴근시대를 바로 체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GTX-A 노선의 삼성역 개통이 늦어진 것 매우 아쉽지만 스마트역으로의 준비를 위한 시간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바로 준비해야 한다. ‘빛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2025.01.26 07:00

4분 소요
속도가 도시를 바꿀까[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전문가 칼럼

2024년 사회·경제·정치적 혼란과 불확실성의 바통을 이어받은 2025년, 수도권 출퇴근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바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의 개통이다. 아직 전 구간이 아니라 부분 개통이지만 GTX는 대한민국 교통, 특히 수도권 도시간 이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수도권내 출퇴근자들의 통근피로도를 낮춰 삶의 질을 향상한 것은 물론이고 주요 거점역이 속해 있는 도시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GTX는 기존 도시철도와 어떤 점이 얼마나 다를까? GTX는 대도시권의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광역급행철도다. 정차하는 역이 줄어 표정속도가 80~100㎞/h로 일반 도시철도(평균 30㎞/h, 급행 약 39~44㎞/h)보다 2배 이상 빠르다. 표정속도란 정차 시간을 포함한 전체 소요 시간으로 거리를 나눈 값을 말한다. 그동안 버스로 90분, 승용차로 70분 걸리던 거리를 GTX로는 약 20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된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고양시 일산서구는 GTX-A 노선의 킨텍스역이 위치하고 있다. 기존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성남시 가천대에 출근하려면 중간에 한 번 환승하고도 총 1시간 40분이 걸린다. 그런데 GTX 전 구간이 개통되면 40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킨텍스역에서 서울역까지만 탑승해 보니 순수하게 GTX를 타고 이동한 시간은 17분 40초 정도, 기존 열차를 타고 고양시 서쪽에서 동쪽 시계(서울 경계)를 벗어나는 시간의 1/3도 되지 않았다. 정말 신기했다. 대심도 철도이다 보니 지상에서 승강장까지의 이동거리가 길어 고속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직은 탑승객이 그리 많지 않아 이용할 만했다. 하지만 향후 이용객이 많아지면 역 안에서의 이동시간과 혼잡도 문제는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진짜 문제는 GTX가 정차하는 거점역까지의 접근성이다. 아직 기존 버스노선의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아 거점역 바로 인근주민이거나 기존 지하철 환승객이 아니면 GTX역까지의 접근시간이 오히려 GTX 탑승시간보다 오래 걸렸다. 필자 역시도 킨텍스역에서 서울역까지 18분이 걸리지 않았는데 집에서 킨텍스역까지 도보로 22분이나 걸어가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주는 편리함은 서울과의 거리감을 줄이고 수도권 외곽 도시들에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주어 지금부터 전 구간 개통 이후가 기대된다. GTX-A가 바꾸는 수도권의 미래,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계획대로라면 GTX-A는 수도권 외곽 지역과 서울 주요 거점을 30분 이내로 연결해 수도권 전체를 하나의 통합된 생활권으로 재편할 예정이다. 아래 표는 우리나라 GTX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영국 ▲프랑스 ▲일본의 광역급행철도를 간략하게 비교 정리한 내용이다. 이들과 비교해 봐도 GTX의 속도는 획기적이다. 먼저 엘리자베스 라인은 런던 동서 지역을 잇는 고속철도로, 2009년 착공해 2022년 첫 개통까지 13년이 걸렸다. 파리의 광역급행철도(Réseau Express Régional, RER) 역시 파리 외곽에 조성된 5개의 신도시가 라데팡스 중심업무지구(CBD)와 직접 연계되도록 건설된 것으로 1977년부터 개통돼 그 역사가 깊다. RER은 기존 파리 시내를 관통하던 지하철과 기존 지선철도를 통합한 것이지만, 교외로 연결하는 메트로 14개 노선과 연계하여 총 5개의 노선이 운영되고 있다. 지금은 파리순환철도망(GPE, Grand Paris Express) 건설이 추진 중이다. 이들 광역급행철도들은 전 구간이 완공되기까지 대부분 10여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완공 이후에도 기존 노선이나 환승 교통 수단과의 연계, 요금시스템 정비 등 다양한 보완 작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교외주거단지를 개발하면서 교통인프라와 시스템의 선투자 없이 아파트만 먼저 건설했다. 그래서 신도시가 입주를 시작해도 주민들의 교통문제는 입주 후 최소 10년 정도가 지나야 어느 정도 해소됐다. 지금 건설되고 있는 신도시들도 여전히 비슷한 상황이다. GTX-A가 여는 30분 출퇴근 시대는 분명 이전보다 수도권 이동과 교류를 촉진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교통 여건 때문에 일자리와 교류가 부진했던 지역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반대로 어떤 지역은 급행철도가 오히려 지역소비수요를 인근 거점도시로 이동시키는 빨대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잔여 노선의 신속한 착수 ▲주요 거점역으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버스노선 정비 ▲복합환승공간 조성 등 비거점지역의 소외를 최소화하는 도시재구조화 전략이 필요하다. GTX 개통의 효과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속도가 바꾸는 도시의 효능을 극대화하고 그것을 시민들의 삶의 질에 투영하려면 진짜 할 일은 지금부터다.(다음편에 계속)

2025.01.11 11:59

3분 소요
지방소멸 위기…대학은 지역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전문가 칼럼

대학을 상아탑(象牙塔, Ivory Tower)이라고 부르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1960~80년대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대학이 학문과 사상,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공간으로 인식됐다. ‘진리의 상아탑’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점점 대학이라는 존재가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도피의 성격이 강조된 상아탑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산업과 노동의 생태계를 뒤흔드는 시대, 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1990년대 초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대학의 역할이 변화하고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기업가적 대학(Entrepreneurial University)’은 그런 고민의 결과로 등장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는 순수 학문도 중요하지만 학문 중점 연구에서 탈피해 연구의 성과가 상업화(특허, 제품 및 공정혁신)로 연결되고 사회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실용적 교육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프랑스의 소피아앙티폴리스 등과 같이 첨단산업클러스터의 성장을 경험한 지역의 중심에는 늘 경쟁력을 갖춘 기업가적 대학이 있었다. 물론 대학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와 기술에 중점을 둔다는 것에 더 많은 기대와 지지가 생겼다. 이제는 대학이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지역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유럽 대학들은 지역사회와 연계된 ‘대학의 사명’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 대학들은 지역 혁신 시스템의 핵심 주체로 지역의 경제적 가치 창출을 대학의 제3소명이라고 본 것이다. EU차원의 다양한 공모사업이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제로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EU는 구조기금을 통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 대학들이 지역혁신체계(RIS)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일본 ‘교토-대학센터’·프랑스 ‘학술상점’ 대학의 도시, 학생의 도시로 불려왔던 일본 교토시(京都市)는 1994년부터 일본 최초로 지방자체단체-대학 연계조직인 ‘교토-대학센터’를 설립했다. 2010년부터는 별도의 재단법인으로까지 성장했다. 이 단체는 교토시의 ‘매력있는 지역 만들기’, ‘다양한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과 대학생이 지자체와 연계 협력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토에서 생활하는 대학생과 지역 상점(시장) 상인, 지역 어린이들까지 자기 지역의 문제를 공유하고 그 해결에 참여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다. 이런 활동들은 지역문제 해결에 대한 충분한 의견수렴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주민들이 시 행정이나 제도에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시 행정에 대한 일방적인 불만보다 건설적인 대안에 더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리옹의 학술상점(Boutique des sciences)도 매우 흥미롭다. 학술상점은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의뢰한 지역문제 중 일반 대중의 이해관계와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는 과제들을 선정해 리옹시와 그 지역 소재 대학의 대학원생, 연구자들이 함께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지역사회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선정된 과제들을 학술연구로 추진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문제 토론회, 학술축제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시행정에서 버스 노선이나 특정 시설의 유치‧설치를 두고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과 반목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지역서비스의 수혜자인 지역주민들이 의사결정 과정을 잘 모르거나 배제되기 때문이며 또한 충분한 논의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민과 연구자들이 함께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중소도시에서 청년의 유출이 이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일자리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할 일과 역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정과 가치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기업이 주는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다면 떠나지 않을 것이다.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지방의 살길은 대기업 유치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기업은 수가 제한돼 있고, 본사 이전 등에는 상당한 기회비용과 경영상의 결단이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이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고용 없는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지역경제 살기기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학‧지역주민‧지방정부 상생하는 생태계 필요MZ 세대들은 직장과 집의 거리가 가까운 직주근접을 넘어 직주일체(일종의 재택근무)를 선호한다고 한다. 종신고용이나 풀타임 직업보다 유연하고 가치 지향적인 일자리를 선호한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신노년층도 마찬가지다. 은퇴 이후에도 일하고 싶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는 파트타임을 선호한다. 기왕이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자리를 원한다. 비록 직장에서는 은퇴를 했지만 지역사회에서까지 은퇴를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배우고 기회를 모색한다. 현재 대학 정원의 빈 공간을 채우는 건 이런 신노년 세대들의 열정이다. 이제 대학들은 졸업 후 대학과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이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일과 평생교육에 적극적인 성인학습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유럽과 북미의 여러 대학은 고령친화대학(Age-Friendly University: AFU)이라는 새로운 대학의 운영방식이자 정책을 통해 지역사회 고령자들에게 평생학습을 비롯한 다양한 복지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와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청년층을 위해서는 대학 캠퍼스 안에 학생들을 위한 주거공간과 기업의 연구, 실험공간까지 아우르는 ‘대학도시’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노년층을 위해서는 대학이 지닌 전문성과 유무형의 인프라를 활용 평생학습은 물론 ▲복지 ▲보건 ▲여가 ▲문화 ▲일자리 ▲스포츠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지역소멸이나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답이 지역대학의 생존과 새로운 역할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4.12.29 11:00

4분 소요
‘대학과 지역’의 선택, 공멸이냐 공생이냐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전문가 칼럼

저출생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에 위기감이 느껴진 지는 이미 꽤 됐다. 그러나 대학의 위기도 수도권이냐 비수도권이냐 하는 지역에 따라, 혹은 규모에 따라 온도 차가 크게 나타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교육 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중심으로 본 소규모 대학의 현황과 개선 과제)에 의하면 모집 정원 500명 이하인 소규모 대학 48개교의 2022년 신입생 충원율은 76.01%로 2019년보다 10.6%포인트 하락했다고 한다. 중규모(3.16%p 하락)나 대규모 대학(0.61%p 하락)들에서도 충원율이 하락했지만, 소규모 대학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전국 4년제 사립대의 신입생 미충원 규모는 1만 507명이었는데 이 중 91.5%가 비수도권에서 나타났다.교육부는 매년 정부 ‘재정지원가능대학’과 ‘재정지원제한대학’을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 포함되는지가 대학의 생존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번 재정지원가능대학으로 선정되는 대학 중 소규모 대학은 10%에도 못 미친다. 반면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선정된 학교 중 소규모 대학은 점점 늘고 있다. 중소 규모의 지방 사립대의 생존 위기가 무척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들 대학들은 이미 부족한 정원을 외국인이나 성인 학습자로 메우고 있지만 재정지원이 중단되면 사실상 버티기가 어렵다. 폐교는 시간문제인 셈이다.지역대학 폐교되면 지역 인구 감소 불가피,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안돼이미 대도시에서도 저출생으로 초등학교가 폐교되거나 폐교 위기에 놓인 곳이 적지 않다. 그나마 초등학교는 학교 용지가 넓지 않고, 주거지역 내 공공시설로의 활용 가치가 커 폐교 이후의 대안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지방의 사립대학이 폐교할 경우 그 문제 해결은 간단하지 않다. 대학교가 폐교되거나 운영이 축소되면 지역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지역경제에도 치명적이다. 대학은 지역 내 고용 창출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수 ▲직원 ▲연구원뿐 아니라 대학과 연계된 ▲식당 ▲카페 ▲숙박업 ▲상점 등 많은 서비스 산업이 영향을 받는다. 이들의 소비가 사라지면 지역 경제는 당장 타격을 받는다. 지금도 대학을 마치면 대도시로 청년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이마저도 사라진다면 지방의 인구 유출은 심각하게 진행될 것이다. 대학교는 지역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서 기능한다. 폐교 시 ▲도서관 ▲예술 공연 ▲강좌 등 지역 주민이 누리던 문화적 혜택이 사라진다. 동시에 지역 주민들에게 상실감을 주며 지역 정체성과 활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의 획일적인 대학평가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특별한 설립 목적을 가지고 오랜 전통을 이어왔던 소규모 사립대학의 경우 일방적인 취업률이나 충원율로 학교의 존립 여부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국가재정지원으로 연명할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대학·지자체, 상생에 사명감 가져야‘지역과 대학의 상생’이라는 이슈는 이미 대학의 역할과 기능전환이 대두됐던 1990년대부터 논의돼 왔다. 전통적인 대학의 역할을 ‘교육-연구-사회봉사’에서 경제, 사회 문화적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임무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변화로 주요 선진국의 대학들은 대학의 연구 과제가 지역문제 해결, 지역발전 수요와 연계돼 있다. 여기에는 지역 산업과의 산학협력을 통한 기여도 포함된다.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진국의 경우 쇠퇴한 산업도시의 도시재생에 해당 지역 대학의 주도적인 역할이 매우 컸다. 물론 해당 지자체와의 유기적인 협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협력의 중심에는 지역혁신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s)라는 개념이 대학과 지역개발에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또한 지역대학의 생존과 발전 문제는 교육의 문제를 넘어 지역 전체의 경제 및 사회발전과 직결돼 있음을 대학이나 지자체, 시민들이 서로 인정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유럽 국가와는 달리 수도권 일극 체제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심화는 ▲인력수급 ▲지식 전달 ▲창업 루프의 작용을 막아 지역대학의 혁신역량에 격차를 유발한다. 이로 인해 지역대학의 지식 전달 창출이 부진하게 되면 또다시 해당 지역혁신 생태계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악순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방 소멸과 지방대학소멸은 서로를 가속하고 있다.대학 관계자나 지역 정치인, 행정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면 모두가 이 악순환의 구조 탓을 한다. “지방정부의 의지나 인식이 아직도 약하다” “지방이나 대학 모두 재정적 자립이 되지 않아 그럴 여유가 없다” “대학이나 지방정부가 뭘 하고 싶어도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권한이 없다” 등이다. 이러다가 막상 지역대학이 폐교 위기에 몰리면 그제야 목소리를 낸다. 사후약방문이다.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혁신 중심 대학 지원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s Education‧RISE) 가 약 2조원의 예산으로 재편돼 시행될 예정이다. 이는 지방 살리기 정책의 하나로 그동안 분산돼 시행하던 지방대 활성화 사업, 산학연 협력 선도대학 육성 사업(LINC 3.0) 등 8개 사업을 통합하고 대학 행·재정 지원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기는 것이다. 여기에 지역 생태계를 거점으로 과감한 혁신을 선도하는 세계적 수준의 지방대학을 육성하는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이는 인구절벽-지역 소멸이라는 대학과 지역 앞에 놓은 난제 해결에 ‘지방정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다음에 계속)

2024.12.14 10:00

4분 소요
‘제2의 도시’의 운명…성장과 쇠퇴 그리고 도전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전문가 칼럼

도시의 규모 분포를 설명하는 이론 중에 ‘순위-규모 법칙(Rank-Size Rule)’이 있다. 이는 도시의 인구규모가 도시의 순위에 반비례한다는 개념이다. 도시 인구뿐만 아니라 단어 사용빈도, 경제적 분포 등 여러 사회현상에도 적용된다.(Zipf’s Law라고도 한다) 도시 분포의 경우 국가의 산업이나 발전상태, 정치시스템 등의 다양한 변수 때문에 이 법칙을 모두 적용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제외한 비교적 많은 국가에서 제1도시와 제2도시간에 이 법칙이 유효하다는 평가다. 이 법칙은 제2의 도시의 인구가 제1도시 인구의 1/2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도 80년대 초반까지는 이 법칙이 작동했다. 당시 제2의 도시였던 부산의 인구가 서울의 절반 정도였다. 그러나 경제가 고도화되고 서울 및 수도권으로 인구 집중이 심화하면서 이 법칙은 깨지고 만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제1도시가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와 큰 경제력을 가지는 초집중형 모델인 종주도시 이론(Primate City Theory)의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제1도시는 수도이다. 그리고 제2도시는 해안을 낀 산업과 교역 기능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지리적 여건으로 물류의 거점이거나 제조의 거점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경쟁국가의 생산성이 더 높아지면 한 국가의 경제중심지였던 제2도시는 쇠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실제로 거의 모든 제2의 도시들이 이런 위기를 겪었거나 위기에 처해있다. 1990년대 한국과 일본의 성장으로 위기를 겪었던 유럽과 미국의 주요 제조업 중심 도시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중국의 부상으로 우리나라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특히 저출생과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그 해법을 찾는 것이 과거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쇠퇴 위기를 혁신과 변화의 기회로 삼은 도시들은 주력산업을 내주고도 새로운 경쟁력으로 제2의 도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도시들은 제2도의 도시 지위를 다른 도시들에게 넘겨주기도 한다. 과연 제2도시들의 생존전략을 무엇이었을까스웨덴의 제2도시 예테보리의 생존전략스웨덴은 북유럽국가 중 가장 많은 인구(1050만, 2023년 기준)를 가진 나라이다. 제1도시는 수도인 스톡홀롬(인구 100만명)이며 제2의 도시가 바로 예테보리(G teborg, 인구 60만명)이다. 위에서 언급한 순위-규모 이론에 근접하고 있다. 예테보리는 스웨덴 서부 해안에 위치해 있다. 자동차‧조선업을 기반으로 한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1970~80년대를 거치며 유럽의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은 모두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말뫼의 눈물’은 스웨덴의 조선업 쇠퇴가 얼마나 도시경제에 타격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실제 이 당시 유럽은 높은 실업율로 위기를 겪었는데 이 위기를 극복한 도시들은 모두 산업 및 경제구조의 재편과 산업다변화, 환경친화를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도시로의 변모에 성공한 경우이다. 예테보리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예테보리가 전통적인 조선업과 제조업 중심의 도시에서 첨단기술과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산업구조로 전환하는데 성공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약점에 매몰되지 않고 강점을 극대화한 정부와 민간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조선업 불황과 글로벌 경쟁심화는 유럽과 미국의 주요 도시에 많은 타격을 줬다. 그러나 예테보리가 북유럽 최대의 항구도시라는 지리적 잇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즉 스칸디나비아와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무역 중심지로의 역할이 여전히 유효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테보리는 지리적 잇점을 활용해 산업을 고도화하고 문화와 관광 등의 서비스 산업성장의 지렛대로 삼았다. 자동차 제조 대신 자동차의 첨단기술(전기차로의 신속한 전환, 배터리 산업, 자율주행, 커넥티드 카 등)로 부가가치를 높였으며 문화와 관광을 자산으로는 하는 서비스 산업을 확대했다.찰머스 공과대학과 예테보리 대학교 등 세계적 연구기관들이 혁신기술을 지원한 덕도 컸다. 스웨덴 정부와 예테보리 시는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장기적 안목과 계획으로 이러한 일들을 꾸준히 추진해 나갔다. 마침 EU가 심혈을 기울였던 지속가능도시 및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수혜를 받아 많은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예테보리가 받을 수 있었던 점도 있다. 친환경 정책과 지속가능성을 도시 전략 중심에 두고 ▲신재생 에너지 ▲전기차 ▲스마트 시티 기술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고용프로그램의 개편과 재교육 기회 증대, 스타트업 육성 등 신생기업 지원에도 많은 정책과 예산이 투입됐다. 특히 연구기관과 기업간의 협력모델을 강화하여 연구와 산업이 융합되도록 했다.관광산업을 고도화시킨 점도 주목해볼 지점이다. 예테보리는 ▲예술 ▲음악 ▲요리 ▲디자인 등 문화적 요소를 강화해 다양한 국제행사를 유치하거나 개최하고 도시의 브랜드를 강화했다. 최근 MICE 산업이 성장하는 도시 중 예테보리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런 꾸준한 노력의 성과라고도 볼 수 있다.부산의 위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이 서울과 인구격차가 순위-규모 법칙을 벗어난 지는 꽤나 오래됐다. 1988년 서울 인구가 1000만명을 달성했을 때 부산의 인구는 390만명으로 서울과의 격차도 더 커졌지만 이미 인구가 정점(peak)을 지난 상황이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은 인천과 인구수 차이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만약 지금처럼 수도권 집중현상이 이어지면 우리나라의 제2도시는 바뀔수도 있다.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의 인구감소 원인에는 저출생도 있지만 청년층들의 이탈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바로 산업구조 재편에 기술지원과 전문인력 양성을 담당해야 할 지방대학의 위기로도 이어지고 있다.(다음에 계속)

2024.11.30 07:00

4분 소요
한국에도 중소도시의 새로운 기회가 올까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전문가 칼럼

이론 물리학자인 제프리 웨스트(Geoffrey West)는 그의 저서 ‘스케일(Scale)’에서 도시를 대표적인 ‘규모의 경제’ 사례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도시는 규모가 커질수록 경제적 생산성(GDP‧특허 수)과 혁신이 비례 이상으로 증가하는 초선형 스케일링(Superliner Scaling) 법칙이 나타난다고 했다.생물체는 몸집이 커질수록 단위당 에너지 소비가 비례 이하로 증가하는 것과 달리 기업과 도시는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단위당 자원 사용이 효율적이 돼 기반 비용과 에너지 소비가 오히려 줄어드는 반면, 상호작용과 혁신의 기회는 많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대도시들은 이런 성장패턴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도시의 규모가 너무 비대해질 경우 생물체와 같이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즉 도시가 지나치게 커지면 ▲인프라 유지비용 폭증 ▲경제활동의 효율성 저하 ▲환경파괴와 자원 고갈 ▲혁신의 둔화가 일어나면서 스케일의 법칙이 반대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이는 도시를 인간과 환경이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하는 유기체(Organic Structure)로 본 많은 철학자와 도시학자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팬데믹 이후 전 세계의 대도시 중 일부는 유기체로 자정작용을 자의 반 타의 반 경험하고 있다.고물가 고금리가 고착되고 있는 대도시의 삶, 가성비를 고민하다요즘 모두가 불경기라고 한다. 특히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이 매출 부진으로 속앓이하고 있다고 한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명품소비도 주춤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딱 한 곳(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늘 사람이 붐비는 곳이 있다. 바로 ‘다이소’ 매장이다.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해지고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을 중시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비단 생필품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지면서 대도시의 주거비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이다. 비록 우리나라 서울은 팬데믹 기간 집값이 더 많이 올랐지만, 서울을 떠나 좀 더 저렴한 주거비를 지불할 수 있는 도시로 이동하는 수요가 늘었다. 팬데믹 기간(2020년 1월~2021년 10월) 동안 서울에서는 총 15만 1310명의 인구가 순유출됐다. 반면 같은 기간 경기도는 30만 1281명의 인구가 순유입됐다. 글로벌 대도시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미국에서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원격 근무의 확산 ▲대도시의 높은 생활비 ▲더 나은 삶의 질 추구 등의 경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중소도시로 이동했다. 물론 이 역시도 완전한 ‘도시 탈출’ 현상이라기보다는 대도시 주변의 중소도시나 교외 지역으로의 이동이 주를 이루었다.이뿐만이 아니다. 대도시의 화려한 상징으로 여겨졌던 명품 브랜드들이 중소도시에서 매장을 열고 있다. 아직은 팝업스토어나 리조트 안의 매장으로 소비계층을 확대하려는 마케팅전략의 일부분이지만 MICE 산업도 중소도시로 개최 장소를 이전하는 등 중소도시를 향한 시장과 산업의 관심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분위기다. MICE란 기업 회의(Meeting)‧인센티브관광(Incentive tour)‧국제회의(Convention)‧전시(Exhibition))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첫머리를 딴 것을 말한다.UN은 2015년부터 지속가능한발전 목표 실행을 위해 중소도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기술 발전으로 거리 극복과 이동에 큰 혁신이 일어난 것도 영향을 준다. 제조업 중심에서 지식 및 기술 기반 산업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세계 각국의 중소도시들은 이런 기업들의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특별한 경험을 찾아 이동하는 MZ세대들의 부상과 로컬리즘의 부활이 중소도시의 매력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얼마 전 나는 서점에서 주요 국가의 중소도시 여행에 대한 서적을 꽤 여러 권 발견했다. 대도시 위주의 여행도 좋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도시를 찾아 여행하려는 수요가 많아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물가인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호텔비, 식음료비 등이 상대적으로 비싼 대도시보다는 물가가 저렴한 중소도시에서 경비가 더 저렴한 이유도 있다. 그런데 꼭 비용만이 문제는 아니다. 대도시가 주는 첨단과 편리함도 좋지만 ‘색다른 경험’을 찾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MICE 산업도 마찬가지이다.중소도시로 향하는 MICE 행사, 새로운 기회 될까중소도시에 대한 MICE 산업의 관심은 코로나 19이전부터 시작됐다. 각종 국제 행사의 유치경쟁이 치열해지자 좀 더 적은 예산으로 더 큰 경험의 가치를 누리게 하는 가성비 전략이 필요했다. 통상 뉴욕‧런던‧홍콩과 같은 일선 도시(1 tier cities)를 선호하던 대규모 행사들이 미국 내 이선‧삼선 도시들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비용 절감’이었다.일선 도시에서의 대규모 행사 비용에 비해 중소도시에서 개최할 경우 30~40% 정도 경비가 절감된다고 하니 행사 주체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소도시로의 대규모 행사가 이동하는 데는 비경제적 이유도 많아졌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세계의 대도시 모습들은 대동소이하다. 마천루는 형태만 다를 뿐 이제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도시가 주는 첨단 문화와 서비스는 기술과 통신의 발달로 그 혜택이 평평해졌다. 대도시라고 더 특별하지 않다. 대신 중소도시는 여전히 지역 색이 남아 있고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음식 등 컨텐츠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고 있다.우리나라 도시들은 모두가 서울과 경쟁한다. 서울이 그만큼 사람과 자본을 끌어모으는 자석(Magnet)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서울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주요 대도시의 도시 전략이나 경제정책을 보면 서울과 대동소이하다. ‘따라 하기’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모방’이 아닌 ‘차별화’가 필요한데 앞으로 소개할 세계 주요국의 중소도시의 부상 사례와 전략이 단서와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다음에 계속)

2024.11.17 06:00

4분 소요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1781호 (2025.4.7~13)

이코노북 커버 이미지

1781호

Klout

Kl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