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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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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테서 대표의 ‘이 책’…“관점 비틀면 사업 방향 보여” [CEO의 서재]

이수현 테서 대표는 한의학을 공부하다 프로그래밍에 빠졌다. 테서를 공동 창업한 안재성 대표의 영향을 받았다. 안 대표는 프로그래밍과 관련한 분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다. 이 대표는 “안 대표와 프로젝트를 하나둘씩 하다 보니 ‘우리 사업을 해보자’라는 생각에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를 통해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것이 한의학도가 스타트업을 창업한 계기가 된 셈이다.그렇다고 처음부터 어떤 제품을 개발할지, 사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확고했던 것은 아니다. 방향을 잡도록 답을 준 것은 환자들이었다. 테서는 현재 인공지능(AI)으로 검진 결과를 해석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앱) 온톨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검진 결과를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암 환자들이 온톨을 사용한다. 암 환자가 주로 모인 커뮤니티를 통해 온톨이 입소문을 타 사용자는 점차 늘고 있다.창업의 계기는 기술로부터, 사업의 방향은 사람으로부터 얻었다는 이 대표는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저서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추천했다. 이 도서는 양자론에서 불멸의 업적으로 여겨지는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일화와 양자론의 탄생과 해석을 담고 있다. 양자역학의 발견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어떻게 바꾸는지 설명하는 도서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과학의 발견이 어떻게 철학의 관점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도서”라며 “이런 변화를 통해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기술과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저 또한 이 도서를 통해 인식의 폭을 넓히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으로 다음 문장을 꼽았다. “…그러나 세계의 양자적 속성에 대한 발견은, 물리적 물질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기초 물리학은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문법을 기술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의 일차적 성질을 지닌 운동하는 단순한 물질로 이루어진 문법이 아닙니다.세상에 스며 있는 맥락은 이 기본 문법에까지 미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기본적인 실체도 그것이 상호작용을 하는 대상의 맥락 없이는 기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설 발판이 없어집니다. 명확하고 일의적인 속성을 지닌 물질이 세계의 기본 실체가 아니라면, 그리고 인식의 주체도 자연 일부라면, 무엇이 세계의 기본 실체일까요?…(중략)… 우리 존재의 참된 본질이라고 할 궁극적이거나 신비로운 본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광대하고 서로 연결된 현상들의 집합일 뿐이며, 각각은 다른 것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주체와 의식에 대한 수백 년에 걸친 서양의 사변은 아침 공기에 닿은 서리처럼 사라집니다…”

2025.03.01 10:00

2분 소요
“가뜩이나 경제 어려운데”...은행권 노조 파업에 싸늘한 시선, 왜

은행

올 연말 금융권에서 노조 총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탄핵정국에 따른 외환·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시중은행 등 곳곳에서 갈등이 터져나오고 있다.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일각에선 업무에 차질을 빚어 소비자들의 불편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 노조는 오는 27일 총파업을 공식 예고했다. 이날 파업에는 전체 조합원 9485명 중 약 8000명 가량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은행 임직원 수가 약 1만 3000명인 것을 고려하면 전체 임직원의 약 61%가 이번 파업에 동참하는 셈이다. 기업은행 노조가 단독으로 총파업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앞서 12일 열린 쟁의 행위 찬반 투표에는 조합원 88%가 참여하고 그 중 95%인 6241명이 찬성했다. 노조는 기업은행이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시중은행 직원보다 임금이 30% 가량 적고 특히 정부의 총인건비 제한 탓에 1인당 약 600만원에 이르는 시간외근무 수당은 아예 지급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기업은행 노조 측은 “기업은행은 민간은행과 경쟁하며 최대 이익을 경신했다”며 “당기 순이익 2조7000억원을 기록한 노동자에게 상을 줘도 시원찮을 판에,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동일 노동을 제공하는 민간은행 대비 30%나 적은 임금을 주고 1인당 600만원씩 시간외근무 수당도 체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관계자는 “공공기관에 대한 기재부의 예산 통제는 단체교섭권을 파괴하는 위헌이자 국제협약 위반”이라며 “단체교섭권은 헌법상 기본권이자 보편적 국제원칙이다. ILO는 2023년에만 두 번 공공기관 예산에 관한 한국 기재부의 행태를 국제협약 위반으로 보고 시정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기재부는 듣지 않았다”라며 “이번 기업은행 총파업 사태는 기재부가 벌인 야만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앞서 같은 공공기관인 한국은행 노조도 지난 23일 성명을 내고 “기업은행 노조의 차별 임금을 바로 잡고 체불임금을 쟁취하기 위한 총파업 투쟁에 연대하겠다”고 선언했다. 한은 노조는 지난 23일 “기업은행 노동조합의 차별 임금을 바로잡고 체불임금을 쟁취하기 위한 대정부 임단투 총파업 투쟁에 연대할 것을 선언한다”며 “정부는 기업은행이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시중은행 대비 30% 낮은 임금을 책정하면서 시장원리에 따른 적정한 노동의 보상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우리 한은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 급여 예산 통제를 받는 모든 공공 부문 노동자에게 동일한 굴레로 모두가 함께 질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이번 파업으로 고객들의 불편함 역시 예상된다. 주로 대면 상담을 통한 대출 상담 등에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연말 정산 시즌을 앞둔 가운데, 기업 고객들이 서류 제출 및 회계 처리 과정에서 불편함을 호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사측은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이미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파업 당일 비조합원의 연차 사용 자제 요청’을 공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측이 고금리로 수익을 극대화하고도 이익을 고객이나 직원들과 나누지 않는다고 지적한다”며 “일각에선 억대연봉을 받는 직원들이 파업에 나선 데에 대해 지적이 줄곧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2024.12.26 17:59

3분 소요
오겜부터 한강 노벨상·로제 APT까지...K-콘텐츠의 경제적 가치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K-콘텐츠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2024년 한강 작가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블랙핑크 소속 가수 로제의 노래 ‘아파트’(APT)는 전 세계적인 K-팝 열풍에 힘을 실어줬다.‘K-콘텐츠’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를 의식한 개념이다. 동아시아의 범주에 머무는 한류보다 더 확장된 개념으로 글로벌 시장의 특성이 반영된다. K-콘텐츠에서 ‘콘텐츠’는 디지털 콘텐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K-팝·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오리지널 시리즈·웹툰 등으로 대표된다. 또 스마트 모바일 환경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모바일 환경이 급진전되면서 더욱 K-콘텐츠의 해외 진출과 성과가 커진 것이 사실이다. K-콘텐츠의 달라진 세계적 위상으로 경제적 가치가 더욱 커졌다. 특히 2024년은 어느 때보다 K-콘텐츠가 부각된다.K-콘텐츠의 천문학적인 경제적 가치K-콘텐츠의 성과는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쉽게 엿볼 수 있다. 넷플릭스가 2024년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글로벌 시청시간 상위 100개 작품 가운데 K-콘텐츠는 15개였다. 전 세계에 학교 폭력의 문제의식을 높인 드라마 ‘더 글로리’는 6억2000만 시청시간으로 3위에 랭크가 됐다. 2023년 상반기 넷플릭스의 비영어권 TV 시리즈 가운데 한국 작품의 시청시간 비중은 38.5%에 이르렀다. 영어권을 포함한 전체 TV 시리즈 가운데에서는 14.6%의 비중을 보였다.넷플릭스 측은 “전 세계 넷플릭스 회원의 무려 80% 이상이 K-콘텐츠를 시청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는 지난 3분기 기준 2억8272만명이다. 약 2억명의 가입자가 K-콘텐츠를 보는 셈이다. 이는 아태지역의 성장세가 견인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아태지역 유료 가입자는 228만명 증가했다.넷플릭스 2024년 3분기 순이익은 2023년 같은 기간 대비 40.9%나 늘었다. 그 배경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무도실무관’과 예능 ‘흑백요리사’의 글로벌 인기가 있었다. 이미 2023년 넷플릭스는 향후 4년간 K-콘텐츠에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을 중심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2021년 11월 공식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는 3년 동안 40개 이상의 한국 오리지널 작품을 선보였다. 2023년 디즈니+에서 론칭된 상위 15개 오리지널 콘텐츠 가운데 9개가 K-콘텐츠였다. 디즈니+ 오리지널 흥행작 60%가 한국 작품이라는 것이다.2025년 디즈니+에서 선보일 아태지역 K-콘텐츠는 무려 10개에 이른다. 이는 전체 디즈니 라인업의 20.8%에 해당한다. 이런 적극적인 결정의 배경과 이유는 한국만의 탄탄한 스토리에 배우들의 연기, 완벽한 연출까지 3박자가 어울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인 것이 2023년 현지 오리지널 콘텐츠 최대 흥행작 ‘무빙’이다. 월트디즈니 측이 “K-콘텐츠는 진정성 있는 스토리와 세계적 수준의 제작 역량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이어가며 주목받고 있다”고 언급한 부분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디즈니+는 과거의 성과에만 안주하지도 않는다. 범죄물에 집중했던 모습과 달리 사극과 메디컬 스릴러 등을 처음으로 시도한다. 시대극이나 추리극 등 다양한 장르로도 K-콘텐츠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K-팝 분야의 성과 역시 대단하다. K-팝 시장 규모는 연간 12조7000억원(92억달러)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해외 매출이다. 2023년 K-팝 시장의 해외 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데이터로 살펴본 K-팝 해외 매출액 동향’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3년 K-팝 해외 매출액은 2022년보다 34.3% 증가한 1조2377억원으로 잠정 추계된다. K-팝 시장 해외 매출액이 1조원을 넘은 사례는 처음이다. 긍정적인 것은 K-팝 주요 시장이었던 아시아 외에도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스트리밍 매출액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이 다변화하는 양상이므로 매우 고무적이다.K-팝 아이돌 팬덤 산업 규모도 상당하다. 국제음반산업협회의 2023 세계 음반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상위 10개 중 5개가 K-팝이었다. 2023년 IBK투자증권 자료에 따르면 ▲하이브 ▲SM ▲JYP ▲YG 등 주요 엔터테인먼트 4개사의 코어 팬덤 규모는 약 350만명으로 추산된다. 업계에서는 K-팝 아이돌 팬덤 산업의 규모를 약 8조원으로 추정한다.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벌어 들이는 저작권료 또한 어마어마하다.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이 발표한 ‘2024년 글로벌 징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에서 징수한 음악 저작권료는 약 2억7900만유로(약 4165억원)다. 이는 2022년과 비교해 9.6% 증가한 것이다.한정판 앨범과 콘서트 앨범 등이 K-팝 팬의 수요 증가와 함께 급증했다. 코로나 19 엔데믹으로 공연 사용료 징수 규모도 늘었다. 라이브 공연과 콘서트 투어가 회복됐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거둬들인 공연 사용료는 약 507억원, 2022년과 비교하면 약 22% 늘었다.K-콘텐츠를 논할 때 웹툰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웹툰 기업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까지 한 상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기준 국내 유통 웹툰 수는 9528개다. 2023년 같은 기간(5350개) 대비 78% 늘어난 것이다.다만 유료 결제가 줄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2024년 웹툰 월평균 지출 비용 가운데 5000원 미만이 55.7%로 집계됐다. 지난해 46.4%보다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웹툰에 지출하는 전체 비용이 줄어든다는 얘기다.구체적으로 보면 1000~3000원 미만이 2023년 18.1%에서 23%로 증가했다. 1000원 미만도 2023년 9.1%에서 14.1%로 증가했다. 반면 3000~5000원 미만은 2023년 19.2%에서 18.6%로 줄었다. 이런 수치를 보면 웹툰에 쓰는 지출이 줄어 한계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외에서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를 보면 콘텐츠는 제작 및 유통이 중요하지만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지속해서 활용하는 산업적 모색과 전략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에 따르면 지난 14년간 K-콘텐츠 산업은 매출은 2.4배, 수출은 5.7배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콘텐츠 IP 산업 매출 규모는 34조4710억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6년 기준 예상 매출액이 46조9840억원에 이르며, 향후 3년간 36.3%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전 세계로 번진 K-콘텐츠...앞으로의 미래는?K-팝을 즐기는 세계 10~30대의 인구학적 특성을 생각하면 8조원의 팬덤 규모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특히 청소년기에 팬덤의 구성원이 되면 상당 기간 록인(lock-in) 효과가 발생하고 점차 경제적 구매력이 상승하면서 코어 팬덤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다만 현재 Z 세대의 특성은 한 팬덤에만 머물지 않고 크로스 팬덤의 경향을 보인다. 그렇기에 K-팝이 특정 아이돌그룹에 집중하기보다는 하나의 장르이자 브랜드 가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K-팝 위기론에 대한 대응이 심화할 것이다. K-팝이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이브의 설립자 방시혁 의장은 “K-팝에서 K를 떼야 한다”고 했다. 이는 한국보다는 무국적성을 함의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면서 융합과 조화가 이뤄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그라데이션 K(Gradation K)의 심화를 말할 수도 있다.물론 생각해야 할 화두도 주목받는다. 블룸버그는 “이런 변화 때문에 K-팝이 실제로 무엇인지, 왜 해외에서 열렬한 팬을 확보했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며 “K-팝이 인기를 끈 것은 매력적인 가사 때문인지, 한국어 가사와 한국 문화의 독특함 때문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변해도 해외 팬들이 K-팝을 원할지 의문”이라고 했다.한국적인 개성과 정체성에서 벗어날 때 지금의 K-팝 위상이 유지되거나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될 수 있다. 다만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K-팝 해외 시장의 다변화, 신인들의 활약, 꾸준한 해외 진출 노력 등을 고려한다면 해외 매출액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는 앞으로도 기본적인 원리가 될 것이다.K가 빠진 콘텐츠의 시도는 다른 오리지널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티빙·웨이브 합병이 임박한 가운데 규모의 경제 즉, 메가 OTT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독보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토종 OTT와 글로벌 OTT를 막론하고 두 가지 축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시즌제나 스핀오프를 통해서 친숙한 콘텐츠를 연장하거나 새로운 오리지널 시리즈의 도전과 시도는 멈추지 않는 것이다.특히 시즌제를 통해서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활발해질 것이다. 갈수록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선택이 이용자들에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올 4분기 최고 기대작인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공개도 전에 2025년 1월 열리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티브이(TV) 드라마상 후보로 지명됐다. 이는 지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런 오징어 게임 모델을 꾀하는 사례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웹툰의 경우는 특히 동남아시아나 일본 지역에서의 선전이 예상된다. 다만 전반적으로 전문 유료 웹툰의 충성도 높은 원작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웹툰의 장점과 드라마의 장점을 절묘하게 메시 업(Mash up)하는 전략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진다. 당연히 노하우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2024.12.14 11:00

7분 소요
[세이노 칼럼 단독 공개] ‘세이노의 가르침’ 못다 한 이야기

전문가 칼럼

인연이란 참 놀랍다.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을 돌아보며 ‘세이노 열풍’을 주목하기로 했다.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의 글을 직접 소개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올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세이노의 가르침’을 쓴 저자는 잘 알려졌다시피 1955년생 1000억원대 자산가다. 대외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의 문장처럼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우며 대화가 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선입견이었다. ‘어른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보고 자란 기자 홀로 가진 착각이기도 했다. 취재하며 느낀 그는 까탈이 아닌 세심함을, 고집이 아닌 신념을 지닌 어른이었다. 상대방의 의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인물이란 평도 인상에 남는다. 세이노는 책 ‘세이노의 가르침’의 각주 성격인 이 글을 보내며 첫 문장에 “인터뷰 요청은 사양하였으나 20여 년 전 이코노미스트에 글을 쓴 인연조차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이 글을 인터뷰 대신 쓴다”고 했다. 본지는 잊고 있던 인연의 소중함을 필자가 일깨워준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1713호(12.4~10) 커버스토리로 시작한 ‘세이노 열풍’ 기획을 이렇게 저자가 직접 쓴 글로 매듭지을 수 있게 됐다. 힘든 한 해였다. 내년은 더욱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어른’ 세이노의 글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남이 떠먹여 주는 숟가락에는 독이 묻어 있기 마련…직접 손을 놀려라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미래에 보유하고픈 자산 규모를 구체적으로 말하곤 한다. 이를테면 “나는 10년 후에 100억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라는 식이다. 나는 어땠을까? 결혼 후 최우선 목표는 집 하나 장만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에게 숫자로 표시되는 목표는 전혀 없었고 “한 달에 1000만원을 벌자” 같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혼자 벌레처럼 살면서 복권을 사던 시절에는 미래의 내가 부자로 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이후에는 내 두뇌에서 그런 상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1년 후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내가 계획하는 미래는 길어야 3개월 정도였고, 오로지 고객의 신뢰를 쌓아가면 수입은 늘어날 것이라고만 믿었다. 그러던 중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경매 직전의 아파트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출을 끼고 샀다. 그 후 사업에 재정적 어려움도 많았으나(7000만원 받을 어음이 부도난 일도 있었다) 아파트 매입 5년 후 면적이 2배인 다른 아파트를 현금 구매 후 이사한 뒤에도 금전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았고 그저 모으고 정기예금만 했다. 어느 날 부채 없이 보유 현금이 20억원이 되자 은행 금리가 연 10% 이상 되었던 시절이었기에 이자 범위 안에서 돈을 쓰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몇억 부자가 되자는 그런 생각은 꿈속에서도 하지 않으면서 사업과 투자를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2·3년에 한 번 정도 자산을 살펴보니 부채는 전혀 없이 자산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운도 따라주었지만, 사업과 투자를 제대로 한 덕분이고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자세히 얘기한 적은 외환위기 당시의 달러 투자와 전동 현수막 걸이 이외에는 거의 없는 듯싶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돈의 액수를 목표로 삼지 않았던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목표액을 채우려다 보면 사람들에게거짓말이나 뻥튀기도 할 것이고 직원들에게 야박한 월급이나 주면서도 최대한 부려 먹고자 했을 것이며 그 결과, 나의 인티그리티(Integrity·머릿속에서 옳다고 믿는 생각들과 행동이 엇갈림 없이 하나된 상태, ‘세이노의 가르침’ 186쪽)는 박살 나면서 나 자신이 내가 침 뱉던 대상으로 변하여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모습이 구역질 날 정도로 역겨워져서 나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빨리 벌려고 하면 돈을 못 번다는 말이 진리라고 믿는다. 어쨌든 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일부는 종종 내게 질문한다. 시간을 아껴 자기 개발을 해 종잣돈을 모으라는 것은 알겠는데 ‘종잣돈을 모은 후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째서 총론은 이야기하면서 각론은 알려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숟가락으로 돈을 떠먹여 주기를 바라는 자들이고 비싼 강의 하나 잘 들으면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기연과 비급을 얻게 되어” 팔자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어리석은 닭대가리들이다. “남이 떠먹여 주는 숟가락에는 돈이 아니라 독이 묻어 있다”(내 책을 출판한 차보현 대표의 말이다)는 것을 왜들 그렇게 모를까?나를 개인적으로도 알고 있는 오상익 오간지프로덕션 대표가 MZ세대이면서도 대학교 강의에서 내 책을 교재로 사용하기에 ‘어째서 세이노는 총론만 얘기하고 각론은 얘기하지 않는지’를 설명해 보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세이노는 종잣돈을 모으라고 하면서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 쌓인 돈이 부자가 될 종잣돈이라고 말하지만, 종잣돈의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 것인가, 종잣돈의 기준과 가치는 독자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몇천이 종잣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몇억이 종잣돈이 될 수 있다. 종잣돈의 금액이 다르듯이 돈을 모으는 기간도 다르다. 독자마다 수입이 다른데 어찌 모으는 기간이 같겠는가.● 종잣돈은 독자의 가치관과 처한 환경, 우선순위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부자마다 부자가 된 과정이 다르듯, 종잣돈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공통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이노는 독자가 어떠한 상황인지, 독자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모르기에 종잣돈의 활용법에 대하여서는 침묵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종잣돈을 모으는 단계까지는 일종의 보편적 방식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르침을 준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타인에게만 의존하면 독자 생존할 수 없다. 세이노가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여 주었다면 1인치씩 전진하는 걸음(종잣돈을 증식하려는 노력)은 철저히 독자의 몫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줄 아는 독자라면 누군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종잣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스스로 깨칠 것이다. ● 영화 ‘위플래쉬’(Whiplash)에서 앤드류의 음악은 플래처 선생의 채찍질(Whiplash)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와 맞서 싸우고 필사적으로 분투하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지휘자 플래처는 앤드류가 전혀 모르는 곡으로 교묘히 바꿔 그를 함정에 빠뜨리지만, 앤드류는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카라반’(Caravan)을 당당하게 독주하며 폭군 플래처까지 흥분시킬 정도로 최고 스윙을 폭발시킨다. 즉, 영화에 나오는 앤드류처럼 독자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만의 게임(인생)’을 만들어 나가라는 것이 세이노의 진짜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맞다. 종잣돈에 대한 얘기도 맞고, 스스로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도 맞다. 영화 ‘위플래쉬’는 드러머인 주인공 앤드류가 최악의 갑질 폭군인 선생 밑에서 끝없는 경멸과 모욕과 멸시를 당하지만 결국은 그 선생을 이겨내며 음악적 성취를 이루는 이야기이다. 사업을 하면서 나도 그런 갑질을 하곤 했지만, 격려와 칭찬은 물론 두둑한 보너스도 잊지 않았기에 플래처의 내리꽂기만 하는 교육방식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은 크게 공감하며 흥미롭게 보았다.1970년대 말, 20대 초반이었던 내가 미군 부대 안의 대학에 다니면서 학원과 기독교 관련 서적 번역으로 돈을 벌고 있던 때의 일이다. 번역일을 꽤나 하며 우쭐하던 시기에 어느 기독교계 대형출판사에 번역 지원을 하였더니 짧은 영문 자료를 시험 삼아 번역하여 오라고 했다. 제목은 데올로구메논(theologoumenon). 조직신학 용어인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힌트를 좀 얻으려고 여러 도서관을 뒤져봤지만 내가 받은 원문이 독일어 신학백과사전 ‘사크라멘툼 문디’(Sacramentum Mundi)의 영어번역본에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만 미군 군종장교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결국 몇 주 동안이나 끙끙대며 헤매다 직역으로 원고지 15매 정도를 번역하고 그 출판사의 번역 총책임자에게 직접 제출했다. 그분은 내 원고지 몇 매를 읽다가 휙 내 얼굴에 집어 던지면서 짜증 섞인 음성으로 “이걸 번역이라고 했어요?”라고 내뱉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모욕을 당한 것에 자존심이 상하고 ‘독일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건데 헤매는 게 당연한 거 아냐?’하는 생각에 그냥 나가버릴까 하는 충동도 순간적으로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내 실력이 너무나도 창피했다. 내 원고는 내가 읽어도 이해가 안 되었으니까. 나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원고지들을 모은 뒤 벌게진 얼굴로 공손히 말했다. “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분이 플래처 선생과 다른 점은 아주 무뚝뚝했지만 “한번 해보시겠어요?”라고 내게 물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종로서적에서 당시 독일 유학 중이던 고영민 목사가 번역한 조직신학 책과 그 책의 원서를 동시에 구입했고, 그 뒤 번역문을 원문과 한 문장씩 대조하며 한 달 이상을 철저히 혼자서 나만의 게임을 했다(원서 저자가 ‘루이스 벌콥’이었는지 ‘찰스 하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번역서로는 두 저자의 조직신학을 모두 읽었다). 그 다음 데올로구메논의 의미를 이제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번역 일감을 받으러 그곳에 다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번역 원고가 그대로 최종 원고로 인정받는 사람으로 올라섰다. 1. 부동산 이야기사람들이 투자 각론을 알고자 하는 분야는 부동산·주식(채권 포함)·사업·장사일 것이다. 가장 많은 질문이 들어오는 분야는 부동산인데 사람들은 나를 전국구 부동산 상담사 정도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전혀 아니다. 나는 내가 탐내는 물건이나 내가 보유한 물건과 관련하여서만 공부하지, 전국의 부동산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당신이 갖고 있거나 구매하려는 부동산에 대해 내게 메일을 보내 봤자 내가 오랜 시간을 투자해 그 지역에 대해 조사할 리는 전혀 없으므로 시원한 답은 결코 줄 수 없다.(법적인 문제로 인해 메일을 보내는 독자들도 꽤 있는데 내가 힌트 한두 마디 정도는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법을 새로 공부하여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될 것이다.) 내가 부동산 하나를 사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곤 하였는지 당신은 모를 거다. 한 번은 100여 개 이상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며 소유주의 나이, 관계회사 재무제표, 대출 상황 등을 전부 분석한 후 마음에 드는 것들만 추려낸 적도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마음에 드는 매물이 나오기까지 3년을 계속 지켜보다가 매입하기도 했다. (비단 부동산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나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것과 관련된 것들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변기에 앉아서 한 시간 이상을 서류에 몰두한 적도 가끔 있었는데 직원은 내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은 줄로 착각하여 작은 소동이 일어났던 적도 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왜 그렇게까지 파고드느냐고 묻기도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냐고까지 하는데, 사실이 뭔지도 모르고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생각하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자칫 고통 속에서 처절한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다. 솔깃한 얘기일수록 들리는 대로 믿어 버리기 쉬운데,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서 뒤쪽에 쓰겠다.)당신이 부동산 투자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였다 할지라도 갓난아이 우유 먹이듯이 누군가 떠먹여 주기를 바란다면 조만간 사기나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 대부분의 사람은 복잡한 등기부등본 분석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친구들이나 부동산중개업소 혹은 강의팔이들이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다가 부동산을 매입한다. 전세 사기범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 역시 사람들이 일부 개X 같은 중개사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을 너무나 잘 믿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 말이 틀렸는가? 부동산 시장의 흐름부터 배워야 할 것 아닌가. 그러려면 경제신문이나 경제주간지 하나 정도는 반드시 종이로 구독하여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고? 당신 눈에 들어오는 제목의 기사만 읽을 텐데? 당신 눈에 숨어 있는 기사들은 지면을 펼쳐 볼 때나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당신 나이와 상관없이 부동산에 대해서는 미리미리 그렇게 공부 좀 하여라. 이미 20여 년 전에 “부동산에 빨리 눈 떠라” 하면서 무엇부터 배워야 할지도 말하지 않았던가(‘세이노의 가르침’ 707쪽). 2. 부동산 경매 이야기동아일보 칼럼 연재의 마지막 회(2001년 9월 12일)에서 나는 아래 글을 쓴 바 있다.“작년에 서울 강남에서 지은 지 2년 된 빌라트가 경매시장에 나왔는데 대지와 건물에 대해 모두 저당이 잡혀있었으나 대지에 대한 저당권 문제만큼은 낙찰자가 해결해야 하는 특별매각조건이 붙어있었다. 결국 대지권 없이 건물 소유권만 갖게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이런 집은 재산권 행사에 지장이 있어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입찰에 참여하여 감정가의 반값에 낙찰받았다.”그 특별매각조건은 대지 지분에 대해 근저당이 과도하게 잡혀 있는 별도 토지등기가 낙찰자에게 인수된다는 것이었다. 즉 대지 근저당권자가 경매낙찰가에서 대지분 가격을 분배하여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경매로 인해 소멸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경매 전문가들은 모두 위험한 물건이라고들 한다. 위험한 것은 맞다.대지에 대한 근저당은 건설사가 대위 등기한 것이었다. 등기부의 복잡한 기재 내용들을 살펴보니 건물분 소유권자는 A이고 대지지분의 소유자는 실제로는 A와 B였으나 등기법적으로는 A였다. A와 B는 모두 건설사에 대한 채무가 있는 상태에서 C에게 대지지분의 양도 계약을 하였으나 집합건물에서 건물분 소유자와 대지분 소유자가 다를 수는 없으므로 C의 명의로 등기가 되지는 못한 상태였다. 건설사가 대지지분에 설정한 채권최고액은 8억5000만원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낙찰받았던 금액은 4억2000만원 정도였다. 낙찰 후 내게 지대(대지사용료)를 청구한 자가 있었을까? 없었다. 등기부상 경매물건 소유자는 법적으로 A였고 낙찰된 부동산의 직전 소유자가 낙찰자에게 지대를 청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근저당권자였던 건설사에서 내게 대지지분을 사라고 권유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하려면 C가 동의하여야 하는데 C는 등기부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채권자나 채무자도 아니었고, 경매 낙찰가가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입찰하려는 사람으로 추정되었다.(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몇 %나 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이곳을 전세금 4억원에 임대하고는 이 물건이 세월이 지난 후 다시 경매되도록 하고자 했다. 왜? 이런 집합건물이 세월이 지나 다시 경매로 나올 때는 이미 이전 경매에서 특별매각조건을 낙찰자가 인수하는 조건으로 경매가 진행되었으므로(그 조건이, 근저당권자에게 돈을 실제로 주고 대지지분에 대한 별도 등기를 반드시 해지시키라는 것은 전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건물분과 대지분의 소유자는 동일인으로 간주된다. 결국 두 번째 경매에서는 대지분에 대한 별도의 등기는 사라지고 감정가에서의 건물분과 대지분의 비율대로 낙찰가가 분배되어 대지분 근저당권자에게 지불된다. 결국 1차 경매에서는 전세금 수준의 비용으로 낙찰을 받고, 전세금을 받은 후 세월을 기다렸다가 다시 경매로 처리되게 낙찰자가 “자의적으로” 만들면 큰돈을 투자하지 않고서도 부동산 가격 인상분 정도는 그대로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좀 지난 후 이루어진 두 번째 경매에서 낙찰자는 C였다. 내가 회수한 돈은 전세금 등을 제외하고 약 1억9000만원이었는데 투자 기간이 예상보다는 길었지만 세금 등을 포함하여 4000만원 정도 투자하고 거둔 수익으로는 괜찮았다.자, 내가 동아일보에 특별매각조건 관련하여 칼럼을 쓰고 나서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내게 이 경매와 관련하여 질문한 자가 있었을까? 한 명도 없었다. 오늘 날짜로 검색하여 봐라. 토지별도등기 인수라고 하는 특별매각조건이 있는 경우 2번의 경매를 이용하여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단 한 명이라도 글을 올리거나 책에 쓴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22년 전 칼럼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돈이 돈을 버는구나’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지식이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다. 먼저 지식을 쌓고 사람들이 지식 부족으로 입찰을 꺼리는 경쟁이 약한 물건을 찾아라.” 지식을 쌓으라는 말은 스스로 공부하라는 뜻이다. 경매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의 책이 아니라 경매법 자체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책부터 먼저 읽고 공부하여라. 등기법 역시 경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법원공무원교육원 교수였던 분이 쓴 ‘집합건물의 등기’(신언숙·육법사)인데 오래전에 절판되었다. 절판된 책의 중고품을 몇만원씩 지불하고 사는 사람을 나는 평상시에 도서관을 가까이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 본다. 대한민국에서 출판된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전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협약된 도서관에 가면 지정된 PC에서 국립중앙도서관의 도서 원문을 볼 수 있고 대부분 복사도 가능하다. 협약된 도서관은 공공도서관·대학도서관·전문도서관 등이 있는데 당신이 사는 동네에도 틀림없이 있을 작은도서관(전국에 약 7500개나 있다)도 협약 도서관이고 해외에 있는 외국 도서관들 중에도 협약 도서관이 있다. 작은도서관에서 절판된 책을 읽다가 보유하고픈 부분을 복사하는 데 드는 비용은 A4 1장당 40원이므로 2쪽씩 인쇄하면 1쪽당 20원이다. 법적으로는 책의 3분의 1분량 정도만 복사가 허용된다.(나는 국회도서관도 몇 번 이용한 경험이 있는데 민간인용 주차장이 너무 멀다.) 전세 사기 문제가 심각하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동산중개사들을 불러 교육을 시키는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계약을 맺고 임대차 계약을 맺은 후, 주인이 바뀌면 HUG에서 임대 조건이 바뀐 것으로 치부하여 보증금 반환을 거부할 수 있으니, 임차인에게 매달 등기부등본을 떼 보고 주인이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하도록 안내하라고 한다고 들었다(다중언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공인중개사 MINO가 알려주었다). 미쳤나? 대한민국에서 매달 자기가 사는 집 등기부등본을 떼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외국인 임차인은? 그것보다는 집주인이 바뀌면 자동으로 임차인과 HUG에 알람이 가도록 시스템을 바꾸거나, 시스템 변경에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면 모든 임대차계약서에 “부동산 소유권이 변경되는 계약이 발생하면 계약일로부터 3일 이내에 임차인과 HUG에게 동시 통보하여야 한다. 이를 어기는 경우 임대인은 이러저러한 벌을 감수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강제 삽입되도록 하면 어떨까? 3. 사업과 장사 이야기1980년대 말, 여름 길거리에 있는 건물 지하 1층의 식당이나 찻집 같은 곳을 가게 되면 대부분 퀴퀴한 냄새가 났다. 지하층 벽체에 스며든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생기면서 나는 냄새였고 습기를 제거하는 전기 제습기를 설치하면 해결될 문제로 보였다. 그 당시 청계천과 용산 전자상가들의 상점들에서는 미국 월풀(Whirlpool)의 제습기가 판매되고 있었는데 가격이 40만원대 후반이었다. 나는 경쟁력 있는 제습기를 수입하여 판매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월풀 제습기를 하나 구입하여 사용자 입장에서 꼼꼼히 살펴보았다(제습기의 작동 원리 및 부품들의 기능 등을 배우고, 마케팅 측면에서 월풀 제습기에 있는 약점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약점이 없으면 포기하려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긴다고 하지 않던가). 제습기는 거의 대부분 바닥에 놓게 되므로 전원 스위치나 제습 강도를 조정하는 스위치 같은 것은 모두 상부에 있어야 할 텐데 월풀 제습기의 스위치들은 사용자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제습기 전면에는 물 세척이 가능한 공기필터가 있고 하부에는 습기를 빨아들여 응축시킨 물이 고이는 물통이 있었다. 물통이 가득 차면 표시등이 켜져서 물통을 비워야 함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물통을 비우려면 벽체 가까이에 놓은 무거운 제습기를 앞으로 잡아당긴 뒤 그 후면에서 물통을 빼내야 하는데 제습기 본체에 바퀴가 달려있기는 하지만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을 빼내는 과정에서 물이 출렁거렸고 상당히 번거롭게 느껴졌다. 물통을 빼내는 곳이 제습기 전면에 있고, 응축된 물이 직접 건물 내 배수구로 나가도록 할 수 있는 호스 연결구가 뒷면에 있는 제품이 훨씬 더 좋아 보였다. 디자인도 월풀의 고전적 디자인보다는 모던한 디자인의 밝은 색상이 더 좋아 보였다. 제습 용량은 크기에 따라 달랐지만 회사별 차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 페더스(Fedders)의 제품이었다.그 제품을 즉시 수입했을까? 사업이 그렇게 쉽게 진행되겠는가? 법적으로 복병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판매용 전기용품은 수입 이전에 KC 안전 인증을 받아야 수입 통관을 할 수 있었다. 안전인증을 받는 과정은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했으며 사후서비스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도 밝혀야 했는데 나에게는 버거운 과제였다(현재 수입 하이브리드 슈퍼카 중에는 충전 코드에 대한 안전 인증이 쉽지 않기에 이미 인증을 받은 국산 제품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그 당시 알게 된 것: AC(교류) 전원을 사용하지 않는 DC(직류) 전기용품은 안전 인증이 면제되었기에 AC를 DC로 바꾸어 주는 트랜스를 이미 인증받은 국산으로 제공하면 된다는 것. 이를테면 워터픽(구강세정기)같은 경우 220V용이면 수입판매하는 데 애를 먹지만 직류용인 경우는 국산 트랜스를 끼워 팔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오디오 스피커 같은 것은 앰프에 물리는 것이므로 안전 인증이 없다는 것(이런 규정들이 요즘은 전자파 문제 때문에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자, 어쨌든 제습기는 AC 전원을 사용하여야 했다(그 당시는 110V와 220V가 혼용되던 시기였다). 나는 관세청의 품목별 수입 제한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두꺼운 관세품목 분류표(HS code) 책자를 구입하여 살펴보았고 거기서 제습기는 전기사용량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KC 안전 인증이 면제되는 산업용으로 분류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페더스의 제습기 중에서 하루 제습량이 가장 큰 제품 한 종류만을 수입하기로 하고 페더스 본사의 아시아 담당자와 접촉하였다. 여름이 오기 전, 컨테이너 1개분을 꽉 채운 제습기가 도착하였다. 당시 내 사무공간까지의 도착 가격은 제습기 1대당 25만원 선이었고 판매가격은 경쟁사 제품과 비슷하게 48만원으로 정했으며 기존에 컴퓨터나 음향 설비를 판 곳과 도서관들에 안내문을 먼저 돌렸다. 청계천이나 용산 전자상가에는 단 1대도 위탁판매용으로 전달하지 않았고 할인판매도 금지하였다. 판매 방식은 방문 구입 혹은 현금이체(화물발송비 별도)만 하였고 불티나게 팔렸기에 추가 수입을 부랴부랴 하였다. 판매가 잘된 이유는 경쟁사 제품의 약점들을 정확하게 파고들면서 무료 사후서비스를 무려 5년으로 해주었기 때문이다(퀴즈: 나는 무슨 배짱으로 5년을 내걸었을까?) 구매자가 고장 난 제품을 가져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30분 이내에 수리해 전달하며 3회 이상 고장이 나면 신품 교환 조건이었다. 실제로 고장 난 제품이 들어오면 신품에서 겉 케이스만 제거하여 교환한 후 바꿔주었고(15분도 안 걸렸다) 손님이 간 후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지를 체크하였는데 내부에 있는 컴프레셔는 삼성이 만든 것이었음도 그때 알았다.제습기 판매로 1년마다 서울 맨션아파트 한 채 값 이상의 수익을 올린 지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페더스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의 큰 회사에서 내가 수입하던 물량의 2배를 수입 약정하겠다면서 독점권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미원통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포기하겠다고 했다. 물량을 키우려면 용산과 청계천에 상품을 도매가격으로 깔아야 하고 전담 영업사원도 지정하여야 하며 외상값을 못 받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결국 물량을 2배로 키워도 내 손에 쥐어지는 수익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중단하기에는 수익이 컸기에 멕시코로 날아가서 페더스의 남미 담당자와 접촉하였다. 큰 조직일수록 영업 담당자들은 서로 정보 공유를 안 하므로 남미 담당자는 나에 대해 전혀 몰랐고 손쉽게 물건을 주문할 수 있었다. 컨테이너들이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것을 한국으로 보낸 뒤 귀국하였고 더 이상 가져올 물건도 없었으므로 천천히 느긋하게 팔았다(물량을 2배로 늘려 수입하겠다고 한 그 회사에서 그 후 따로 물건을 들여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나의 방해 공작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미수금 발생은 전혀 없었고 나는 5년 서비스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이 이야기에서 내가 독자들에게 알려주려는 내용은 첫째 어 이게 왜 없지? 하는 자각, 둘째 경쟁제품의 약점 파악, 셋째 법적 장애물을 뛰어넘는 지식, 넷째 많이 파는 것이 장땡은 아니라는 것, 다섯째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5년 무상서비스 약속 준수이다. 장사는 어떨까? 이미 내가 내 책에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사람들 대다수가 망하여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고도 했다. 어느 독자가 그 흔하디흔한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오픈하였는데 몇 개월도 안 되어 대박이 났음을 전해왔다. 그 비법이 무엇이었을까?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좁은 길로 간 것뿐이었다. 정말로 비법이기에 공개하기 어렵다(내게 묻지 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장사를 할 때 남들 하는 것처럼 하면 망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약속은 지켜야 약속이다. 몇몇 독자가 내게 알려준 내용: 어떤 온라인 강의를 “100% 환불보장”이라고 하여 들었는데 막상 환불 신청을 하니 아래와 같이 답이 왔단다.“100% 환불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전체 강의를 수강 및 미션을 수행하세요. 2.배운 내용을 실전에서 실행하세요. 3.xxx 대표가 직접 수업에 배웠던 지식에 대하여 질문드리겠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모두 답변을 완벽하게 하세요. 4.그럼에도 삶의 변화가 없었다면 환불해 드립니다.”그래서 찾아보니 제목은 ‘ 돈이 따라오는 억대 소득의 자수성가법’이고 화면을 넘기면 ‘EVENT2 100% 환불보장제’라는 제목으로 “환불보장제 적용”이라는 구호를 여러 개 배경에 깔아놓고 강사 얼굴이 나오면서 “수강 후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면 100% 환불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나온다. 다시 화면을 넘기면 “안 되면 진짜 말씀하세요. 100% 환불보장”이라는 글 밑에 강사 얼굴이 나오고 “수업을 모두 수강하고 성과가 나지 않는 경우는 100% 환불해 드리겠습니다”고 나온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100% 환불기준”은 마지막 화면 하부까지 가야 지금까지 나왔던 글씨들보다 훨씬 작은 글씨로 나온다(부동산이나 보험 광고에서 자기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아주 작은 글씨로 써 놓는 것과 유사하다). “100% 환불기준”을 읽은 후 쌍욕이 전혀 나오지 않고 말 그대로 100% 환불보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애초부터 환불 약속을 지킬 생각은 있었을까? 아무도 환불을 받아 가지 못했으므로 100% 모두 만족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도대체 누가 이렇게 광고하는 것일까? 심리전문가를 자칭하며 자기 강의만 들으면 인생이 바뀐다고 말하는 박세니다(강의 중에 박세니가 “세이노 그 사람 돈 많으면 뭐해, 정신과 다니는데”, “세이노가 그렇게 돈 많이 벌어봤자 매일 정신병약 먹고 있는데 무슨 소용이야”라고 틈틈이 걱정해 준다는 제보도 받았다. 내가 내 책에서 대장동 사건으로 불안해져서 정신과를 다녔다고 한 얘기 때문인 듯싶다. 그때 정신과 의사인 동창을 찾아갔더니 여러 가지 심리 조사와 몇 차례 상담 후 이렇게 얘기했다. “의사로서 뭘 해줘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너에게는 어떤 약도 의미가 없다. 심리 조사에서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나오는 너 같은 사람을 나는 처음 본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런 네가 관련되지도 않은 정치적 부패 사건에 불안해하며 이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다. 네가 왜 그거까지 걱정을 하냐.” 어쨌든 현재 3가지 비타민과 가벼운 고지혈증 약을 매일 먹는 나에게 박세니는 정신병약까지 먹이고 싶은가 보다).100% 환불보장은 일정 기간 이내에 구매자가 불만족하면 무조건 100% 환불하는 것이지 구매자가 판매자의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처음일 것이기에 확실히 박세니는 선구자인 것 같고 “100% 환불보장”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최면을 일단 걸어 놓고 마지막에 그 환불조건을 작은 글씨로 표시하는 것 역시 최면을 강조하는 박세니답다. 4. 보험보험은 위험 대비용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 나는 이견이 전혀 없으나 보험을 대여섯 개씩 드는 것은 보험설계사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본다. 꼬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보험회사가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고 수익을 만들어 내는지는 알아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보험사들의 비밀 하나부터 얘기하자. 오래전 12월이 되면 나는 계좌에 20억원 정도 준비해 놓곤 하였다. 그때가 되면 유명 보험사 지점장들로부터 청탁이 들어왔는데 12월 31일 이전에 5억원을 입금하면 즉시 5000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1년 후 5억원에 대해 은행 정기예금보다 조금 더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것이었다(5000만원은 그 당시 백화점 대형봉투 하나에 만원권으로 모두 들어갔다). 당연히 나는 응하였고 연말을 기다리기까지 했다(이걸 몇 년이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 5000만원은 수십 명의 보험설계사 수수료로 떼어놓은 금액이었는데 보험설계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자영업자 신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던 시기였음에도 그런 일이 가능하였다는 것은 세무서나 감독기관도 잘 모르는 구석이 보험사들에 있었다는 뜻이고 지금도 여전히 일부는 남아있지 않을까?예를 들어, 혹시 기존 보험은 해지하고 새 상품으로 갈아타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걸 보험업법에서는 자사 승환이라고 하는데, 타사 승환도 있다. 자사 승환은 가입자의 금전적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가입 나이도 늘어나 예전보다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기에 6개월 이내의 자사 승환은 불법으로 금지되고 있음에도 기간에 상관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 보험사에도 이익이 되고 설계사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환 요청은 일단은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보험은 크게 생명·손해·질병 관련으로 분류된다. 보험사에 가장 이익이 되는 분야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하는 생명보험이다(보험료는 가장 비싸지만 갑자기 죽을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생명보험 영업은 기본적으로 인맥을 바탕으로 한다. 당신이 보험을 들게 된 것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찾아와 권유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보험설계사는 없는 돈에 수입차를 사서 골프도 치러 다니고 명품도 걸치며 종교모임은 물론 갖가지 행사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 인맥이 없는 경우에는 보험 가입에 관심이 있는 고객명단(DB)을 회사에서 받는다. 그 명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예를 하나 든다면 홈쇼핑에서 “상담만 받아도 사은품을 준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의 정보가 분석·집약되어 DB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허접한 DB도 만들어지고 좋은 DB도 만들어지게 된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1만원 할인쿠폰을 준다는 것도 당신이 예뻐서 쿠폰을 주는 것이 아니다. 여러 유명 생명보험사들이 그 전속 대리점 및 “모집위탁계약을 체결한 자”(보험설계사를 의미한다) 등에게 줄 DB를 만들고자 당신의 개인정보를 얻으려고 1만원 이상을 지불하기 때문이다(확신하건대 그 DB 중 일부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불법적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회사에서 준 DB에 의존하면 영업 수당도 줄어들고 인맥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그만두는 설계사들이 계속 나온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설계사들이 끊임없이 충원되어야 하니 고수익을 내세워 유인하는 것이다.요즘 보험설계사들은 생명보험의 하나인 종신보험을 상속세 절세용으로 국세청이 추천하는(또는 인정하는) 방법이라고 너도나도 선전하면서(인터넷 검색하여 봐라) 국세청이 발행한 ‘세금 절약 가이드’에 최적의 상속세 마련 방법으로 소개되었다고까지 말한다. 정말? 내가 2020년·2021년·2022년·2023년도의 ‘세금 절약 가이드’를 뒤져보았지만 “자녀 명의로 보장성 보험을 들어 놓는” 것이 여러 가지 상속세 납세자금대책 중 하나로 언급되어 있을 뿐이지 종신보험이 최적의 상속세 마련 방법으로 소개되었다는 것은 완전 뻥이다. 왜 뻥을 칠까? 그게 보험설계사에게 가장 고액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상품이어서 그렇다. 어느 정도나 수수료를 주기에 그럴까?(종신보험이 상속세 대비책이 되려면 보험료를 반드시 소득이 이미 있는 자녀나 배우자가 납부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결국 종신보험은 상속인들이 자기들 돈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보험금을 받아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피상속인이 빠른 시일 내에 사망할수록 유리하고 오래 살수록 불리하다.) 박세니의 ‘억대소득 세일즈맨 양성-박세니마인드코칭 삼성생명 협업프로젝트’를 보면 “억대소득 세일즈맨이 되는 기회를 드리려고”한다면서 선발 과정을 이렇게 명시했다. 요즘(2023년 11월) 박세니의 오프라인 강의는 ‘강의만족도 98%, 강의추천률 98%’을 내세우면서 초급·중급·고급 과정이 165만원이며 최면반이 따로 있다. 입금하면 ‘박세니마인드코칭 수강안내(환불규정안내)’를 알림톡 등으로 받게 되는데 납입한 강의료는 강의 시작일 3일 전 ‘오후 5시 이후 환불·변경 불가’로 나오며 “100% 환불”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매주 중급반과 고급반 강의 후에 있는 미팅에서는 삼성생명 WM(Wealth Management·자산관리이지만 실제는 보험상품 판매다) 영업직원들이 십여 명 참석하여 보험영업을 권유한다. “고급반 수업도 보험영업에 도움 되는 내용 위주이며 ‘삶을 바꾸려면 높으신 분을 최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최근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 제보해 주었다.2023년 6월 22일, 인스타그램에서 박세니는 4월부터 삼성생명의 파트너가 되어 제자들을 연결시켰다고 하면서 4월에 11명으로 시작해 26명이 합류하였고 삼성생명보험으로부터 6월 21일 2692만5135원을 첫 소득으로 입금받았다고 하였다. 파트너가 되었다는 말은 삼성생명의 보험설계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보험설계사를 삼성에서는 FC(Financial Consultant)라고 하지만 회사마다 제각각이어서 영문 호칭이 15개 이상이고 재무상담사·금융전문가·인생상담사 등으로도 부르지만 좀 더 멋있게 보이려고 지어낸 것들일 뿐이고 법적으로는 모두 다 보험상품을 파는 보험설계사이다. FC는 보험사의 직원이라기보다는 자영업을 하는 개인사업자이며 관리자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관리자인 경우에는 자기 밑에 영업조직을 두며 그 조직원들의 활동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게 되는데 박세니는 이 경우에 해당된다. 박세니는 삼성생명 본부장으로부터 8월 11일 ‘경력도입 우수 FC’ 특별상을 받은 사진도 올리면서 “억대 소득 정도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경력도입’이란 다른 회사에서 보험설계사를 했던 경험자를 삼성생명에 들어오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박세니가 “억대소득 정도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억대소득을 달성하는 대표적 방법은 상속세 걱정을 하고 있을 부유층 고객이 종신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다(그래서 박세니가 “높으신 분을 최면에 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월 1000만원을 납부하는 종신보험에 가입하도록 한 보험설계사는 도대체 수수료를 얼마나 받게 될까? 법적으로는 월 납입액의 12배인 1억2000만원이 상한선이지만 법인보험대리점(GA)의 경우 보험사로부터 이른바 ‘시책비’(판매촉진비)를 별도로 받아서 보험설계사에게 그 이상을 지급하기에 2억원 정도도 받는다. 보험 가입자가 1년 이상만 보험료를 납부하는 한 그 수수료는 설계사의 수입으로 남는다. 속된 말로 1년에 1명의 부자만 가입시키면 놀고먹을 수 있게 되고, 심지어 누군가 가입한 것처럼 만들어 놓고 자기 돈으로 1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후 1년 후 해지하여도 수수료가 남을 수 있다(이른바 차익거래라고 한다. 보험업계에서는 물론 금감원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은 하는데… 글쎄다). 삼성생명은 GA 자회사들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박세니가 소속된 삼성생명 ‘헤리티지 센터’는 헤리티지(유산)라는 명칭이 암시하듯이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다. 생명보험 영업조직은 리쿠르팅(채용)-교육-영업으로 이어지는 경로 관리가 핵심이며 일종의 다단계적 성격으로 자신이 만든 조직의 보험설계사 실적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게 되는데 조직이 커지고 실적이 올라가면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이다. 박세니는 FC로 활동하면서 소위 제자들을 리쿠르팅하여 영업에 투입 활용하는 것이다. 중도 포기자가 생기면 새로 인원을 채워 놓으면 된다. 어째서 그 제자들은 생명보험사 영업직 입사 면접은 웬만하면 다 합격하는 것이고 보험 영업방식은 유튜브에 엄청나게 많은데도 박세니의 교육 강의에 돈까지 낸 후 자기 수수료의 일부가 박세니에게 할당되도록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박세니의 말대로 했더니 높으신 분이 최면에 잘 걸려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놀랍고 고마워서?).박세니 강의의 뼈대는 멘탈 프로그램을 팔면서 삼성생명에서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는 구체적 취직 제안까지 하는 것임을 볼 때, 삼성생명 입사를 미끼로 ‘쎈멘탈 판매’ 등 개인 장사를 직접 연계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문제가 될 텐데 삼성의 준법감시팀이나 윤리경영팀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을 보면 좀 놀랍다. 게다가 박세니의 강의는 주로 ‘돈을 벌고 최고가 되는 것’을 자기 최면과 타인 최면을 통해 이루라는 것인데, 자기 최면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타인 최면은 “높으신 분을 최면에 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서 나오듯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심리적 지배) 같은 시도이고 처음 만난 여자에게 최면을 시도하여 뭔 짓을 하려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다(이 글을 읽고 종신보험이 보험설계사에게 그렇게나 수당을 많이 주는데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과연 그 보험이 운영될까를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눈이 떠진 것이다). 5. 주식주식에 대해서는 2008년 10월 11일 딱 한 번 다음 카페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삼성전자가 내 관심사고 포스코는 아니다”라고만 언급한 바 있다. 그 당시 그 말을 하고 나서 후회를 정말 많이 하였는데 내가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 주식을 사도록 유도한 것과 다름없는(그래서 주가가 더 오르도록 유도하여 수익을 더 보려는) 행동이 아닌가 하는 자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조차 90% 이상이 이 주식이 좋다는 식이며 목표주가를 높이 잡는다. 왜? 주식 거래량이 늘어나야 자기네 이익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리딩방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모두가 그런 심보로 주식을 추천한다. 아 물론 그런 심보를 역이용하여 초단타 위주로 하면 좀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세이노라는 이름으로 쓰는 글을 통해 내 사익이 증가한다면 나 자신이 X 같은 나쁜 놈으로 전락하게 됨을 잘 안다. 언젠가 L 및 K 재벌가 사람들(손자들)의 작전회의에 각 한 번씩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것은 ‘결국 개미들이 밥이 되는구나’였고 1원도 가담하지 않았다. 약 1년 후 K 재벌의 직계 가족이 구속되고 몇 개월 후 L 재벌의 직계 가족도 구속되었는데 내가 양쪽 모두 가담했다면 가중 처벌을 크게 받았을 듯싶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그 작전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를 K 재벌에 연결해줬던 동창 녀석은 15억원 정도를 날렸다. 내가 개미들에게 하고픈 말: 주식으로 큰 수익이 났을 경우 당신이 똑똑하고 주식투자 재능이 있어서 돈을 번 것은 절대 아니므로 전업투자자가 되겠다는 개꿈은 갖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게 전업투자를 하다가 배우자도 모르게 엄청난 빚을 진 후 내게 ‘어찌하오리까’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비정상적으로 수익이 발생하고 있으면 빨리 처분하여야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계속 집어넣는 짓도 절대 하지 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성경 말씀도 있다(야고보서 1:14). 통정 거래로 주가를 끌어올렸다가 폭삭 망한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 하한가 사태에서 무려 1500명의 의사들이 위임 매매를 하였던 것도 ‘욕심에 끌려 미혹’당한 것이다. 이때 역시 내게 수백억원을 날렸는데 어찌하오리까 메일을 보낸 독자가 있었다.거듭 강조하는 것이지만 주식 투자는 여유 자금으로 하여야 하는 게임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이길 확률은 10%도 안 된다. 그래서 내가 20여 년 전에 썼던 글은 아직도 유효하다. “편안하게 빨리 돈 벌고 싶어서 애를 태우는 자들이여. 평생 가난의 괴로운 숯불이 이마 위에 올려지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채권은 어떨까? 채권은 인터넷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식 정보보다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다. 국고채는 자본차익(금융투자수익)이 비과세이기에(2025년부터 과세되는 것으로 예고되어있다) 종종 종합소득세율이 이미 40% 이상 되는 경우에는 정기예금 이자 수익보다 세후 실수령액이 더 높다. 즉 종합소득세율이 낮은 경우에는 좋은 투자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좋은(회사가 망할 가능성이 아주 낮은) 회사채는 개미들에게는 기회가 잘 안 간다. 2023년 11월 2일 대한항공 회사채 수요예측이 흥행에 성공하였다는 기사가 그다음 날 떴다. 수요예측은 증권사나 투자사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큰손들에게만 연락하여 예상 투자액을 물어보지 개미들에게는 전화도 안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잣돈이 모이면 좋은 회사채들은 정기예금보다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으므로 경제기사를 평소에 꼼꼼히 잘 읽어나가라. 요즘은 인터넷 뱅킹에서 10만원으로도 채권투자가 가능하므로 경험을 쌓아가며 소소한 기회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홍콩 H지수 ELS의 헤지자산 74% 정도는 국내 채권이므로 ELS의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상반기에는 그 시점에서도 만기가 남아있는 채권들이 ELS 자산 현금화를 위해 쏟아져 나올지 여부도 주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다만 나는 ELS, ELB, DLB, DLS 등등 금융공학자들이 만든 상품들은 가까이하지 않는 고집이 있다.) 6. 팩트를 보는 법2014년 12월 5일 발생한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된 내 글을 내 책에서 읽고 나서(541쪽), 마카다미아를 봉지째로 주는 것으로 서비스 매뉴얼이 바뀌었는데 그것을 조현아 부사장이 모르고 있었고 세이노도 모르고 있었다는 내용이 종종 독자 메일로 오곤 하였다. 그래서 내 책 17쇄부터는 552쪽에 ‘손님에게 알레르기가 있으면 먹지 않을 것이므로 봉투째 준다는 얘기를 누가 하던데, 나는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기 일등석에서 항공사를 불문하고 그런 경우를 경험한 바 없다’고 첨언하였고, 실상을 좀 더 조사해 봤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언론의 기자들이 팩트(Fact·사실)를 제대로 못 보고 비틀어 보도한 전형적인 가짜 뉴스였으며 나무위키나 위키백과도 대동소이했고,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하는가’ 책이 생각나는 사건이었다.(팩트를 골라내는 법을 알게 되면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에서도 유리하여진다.)아마 당신은 그 비행기에서 승무원의 땅콩 서비스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조현아가 서비스 매뉴얼이 바뀐 것을 모르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 매뉴얼이 바뀐 것을 알고는 사무장에게 화살을 돌려 화풀이를 한 것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땅콩을 봉지째 주는 대한항공 홍보영상 장면도 있다고 하여 나도 봤는데 광고 영상을 찍는 사람들은 화면이 예쁘게 나오는 것에 신경을 쓰지 서비스 매뉴얼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문제의 발단이 비행기 이륙 전 조현아에게 객실 승무원이 승객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마카다미아(언론에서는 땅콩, 콩, 너츠 등으로 표기했다)를 봉지째로 전달한 것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날 회사 내부 이메일로 인증받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블라인드’의 대한항공 게시판에는 이런 내용이 떴다고 한다(동아일보 2014-12-10).“음료와 마카다미아 너츠를 줄 때 봉지째 주느냐? 규정이 뭐냐?(규정은 음료를 요청한 승객에게 마카다미아 너츠를 봉지째 보여주고, 먹겠다고 하면 갤리에 들어가서 뜯어서 작은 그릇에 담아줌)…갤럭시노트 10.1을 꺼내 규정을 보여줌.(당연히 잘못이 없는 객실 승무원)…”2014년 12월 10일 한겨레신문은 서비스 매뉴얼을 단독 입수하여 “조현아의 딴죽? 승무원은 ‘매뉴얼’대로 했다”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10일 <한겨레>가 단독 입수한 대한항공의 ‘일등석(FR/CL) 웰컴 드링크 SVC(서비스) 시 제공하는 마카다미아 너츠 SVC 방법 변경’ 공지를 보면, 승무원은 “음료와 함께 마카다미아 너츠를 포장 상태로 준비하여 보여준다(showing)”고 명시돼있다. 이어 “마카다미아 너츠를 원하는 승객에게는 그릇에 담아 가져다드릴 것을 안내해 드린 후, 갤리(Galley)에서 버터볼(작은 그릇)에 담아 준비하여 칵테일 냅킨과 함께 음료 왼쪽에 놓아드린다”고 돼 있다.이 매뉴얼 변경이 공지된 것은 2012년이다. 변경 내용은 승객에게 ‘봉지째 마카다미아 너츠를 보여주라’고 한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 다만 그 뒤 원하는 승객에게 갖다줄 때 ‘봉지째 제공’하던 것을 ‘그릇에 담아 제공’하도록 바꾼 것이 전부다. 미주노선을 운항한 적이 있는 복수의 대한항공 승무원은 “지난 5일 뉴욕발 항공기 승무원이 봉지째 너츠를 갖다 보여줬다면 이런 매뉴얼에 어긋나지 않는다.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2014년 12월 10일 경향신문은 대한항공 측은 승무원의 ‘잘못’을, 노조 측에서는 조현아 부사장의 ‘착각’을 주장하고 있음을 보도하였다.“여전히 말이 엇갈리고 있지만 승무원이 1등석에 타고 있던 조현아 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 견과류를 봉지째 건네자 조 부사장이 그릇에 담아오지 않았다고 지적을 했다는 게 대한항공 측의 설명이다. 반면 노조 측은 “드실 것”인지 승객에게 물어보기 위해 규정대로 봉지를 들고 갔는데 조현아 부사장이 화부터 낸 것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그리고 하루 뒤인 2014년 12월 11일 경향신문은 그 매뉴얼의 영어 원문을 보여주면서 아래와 같이 보도하였다.“…당시 문제가 된 것은 마카다미아를 어떻게 서비스하느냐였다. 승무원은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갔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에 대해 왜 봉지를 뜯은 뒤 마카다미아를 버터볼(그릇)에 담아오지 않았느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지난 10일 입수한 대한항공의 일등석 객실 서비스 매뉴얼을 보면 “웰컴 드링크 서비스 시 음료와 함께 마카다미아넛을 포장 상태로 준비해 보여준다”고 돼 있다. 이어 “승객이 마카다미아넛을 원하면 갤리(음식을 준비하는 곳)에서 버터볼(그릇)에 담아 칵테일 냅킨과 함께 음료 왼쪽에 놓는다”고 돼있다. 2012년부터 이 매뉴얼대로 서비스해오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매뉴얼을 잘못 알았다는 것이다.”2014년 12월 19일 경북매일신문 기사 내용: “조현아는 자신이 탄 비행기에서 땅콩을 봉지째로 줬다는 이유로 사무장을 내리라고 지시해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이 공항에 내린 후 비행기가 출발하게 했다. 비행기 기내 규정은 땅콩을 요청한 승객에게 땅콩을 봉지째 보여주고, 먹겠다고 하면 갤러리에 들어가서 뜯은 후 작은 그릇에 담아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 사무장이 했던 행동은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다.” 조현아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결국 구속 기소되었다. 2015년 1월 16일 경향신문이 조현아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입수하여 분석한 단독 기사에 의하면 12월 5일 현지시간 0시 43분 “승무원 견과류 봉지째 쟁반에 받쳐 제공. 조 전 부사장 승무원에게 ‘매뉴얼 가져오라’ 지시. 박창진 사무장 매뉴얼 담긴 태블릿 PC 가져오자 조 전 부사장 격분”으로 언급된다. 0시 53분에는 “조 전 부사장, 승무원 김 씨의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박 사무장에게 ‘당신 잘못이야. 네가 내려’ 지시”하였다고 한다.즉 승무원이 봉지째 쟁반에 받쳐 제공했음이 분명하므로 경향신문의 12월 11일자 기사는 틀린 뉴스가 되고 경향신문 12월 10일자 기사에서 나온 노조의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른 것이 된다.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공소장은 물론 여러 기사에서 “조 전 부사장, 승무원 김 씨의 잘못 없었다는 것 알면서도”라고 하거나 “뒤늦게 조 전 부사장은 변경된 매뉴얼에 따라 김 씨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을 알게 됐다. 이번에는 적반하장격으로 박 씨에게 ‘화살’을 돌렸다”는 식으로 나온다. 과연 그럴까?(참고로 “조 전 부사장 격분” 이유는 승무원들이 서비스를 준비하는 공간(갤리)이 바로 앞에 있고 그곳에 종이 매뉴얼이 있는데 사무장이 태블릿PC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비행기 이착륙 시 승무원이 하는 안내방송 역시 제아무리 고참 승무원일지라도 종이 매뉴얼을 보면서 하는 것이고 종이 매뉴얼들은 언제나 그것이 필요한 장소에 놓여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격분”할 만한 것이었냐고? 그 판단은 당신이 어떤 조직에서 그 정도 지위에 올라갔을 때까지 유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격분” 이후의 행동들은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2015년 2월 2일 2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무려 11시간이나 계속된 결심공판법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언론보도를 축약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과연 기자들이 11시간 동안 그곳에 계속 있었을까? 검사의 질문들은 동아일보에서 상세히 보도했으므로 궁금하면 찾아봐라.)경인일보(2015년 2월 2일)조현아는 기내에서의 행동이 여승무원 김 모 씨의 서비스 위반으로 인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박창진 사무장이 매뉴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사건의 원인제공을 승무원과 사무장이 했다는 것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승무원의 서비스가 매뉴얼과 다르다고 생각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매뉴얼을 찾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조현아는 기소된 이후 진행된 두 차례 공판 동안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것과 달리 조심스럽긴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진술했다. 특히 그는 당시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 방식이 ‘명백한 서비스 매뉴얼 위반’이라고 강조했다.조현아 전 부사장은 당시 여승무원이 ‘웰컴 드링크’를 서비스한 것과 관련해 “웰컴 드링크는 매뉴얼에 ‘오더 베이시스’(Order Basis)라고 설명돼 있는데, 이는 승객이 원하는 것을 물어보면 갖다 주는 것”이라며 “하지만 여승무원은 (물어보지 않은 채) 물을 갖다 주면서 콩과 빈 버터 볼을 갖고 왔고, 이는 분명한 매뉴얼 위반”이라고 밝혔다.이는 앞서 박창진 사무장이 증인신문에서 “관련 매뉴얼이 작년 12월 초 ‘봉지째 보여주며 먹을지 묻고, 먹겠다고 하면 작은 그릇에 담아 제공’으로 개정됐고, 이는 조 전 부사장의 결재로 공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 것과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다.동아일보(2015년 2월 3일)결심공판에서 조 전 부사장은 어떤 부분이 위반이냐는 질문에 “자신은 물을 갖다달라고 했는데 물과 함께 견과류를 가져왔기 때문에 매뉴얼 위반”이라고 답했다. 이는 사건 초기 조 전 부사장이 “견과류를 봉지째 보여주면서 의향을 물은 부분”을 문제 삼으며 “승객 의향을 먼저 물어본 뒤 종지에 담아 서비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달라진 대목이다.본보 보도(지난해 12월 15일자 A14면)와 재판 시 공개된 매뉴얼에 따르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 출발편에는 견과류 서비스 관련 내용이 없다. 세계 공항은 보안 규정에 따라 항공기 문이 닫히기 전까지 주류와 음식을 담아놓는 실(seal·카트의 봉인)을 열 수 있는 곳(실 오픈 가능)과 열지 못하는 곳(실 오픈 불가)으로 나뉜다. 케네디 국제공항은 ‘실 오픈 불가’ 공항인데 조 전 부사장은 사건 초기 ‘실 오픈 가능’ 공항에서 사용하는 매뉴얼에 근거해 사무장과 승무원의 서비스가 틀렸다고 한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이 착각한 부분이다. 주간동아(2015년 2월 29일) “당시 물을 갖다 달라는 저의 말에 승무원은 콩과 빈 버터볼 종지를 가져왔습니다. 명백한 매뉴얼 위반입니다. 서비스가 매뉴얼과 틀리다고 생각해 확인하기 위해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매뉴얼을 찾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뒤에 있었던 저의 행동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조선비즈(2015년 2월 6일) 검찰이 피고인 심문에서 “사건의 발단이 승무원이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조 전 부사장은 “분명히 매뉴얼에 따라 (마카다미아를) 가져 오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고 답했다. 나무위키에서는 “2007년 이후에는 봉지를 들고 가서 보여주고 취식 여부를 물어본 뒤 먹겠다고 하면 까서 접시에 담아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승무원은 이 지침을 완벽하게 준수했다”고 나온다.위키백과에서는 “이륙하기 전에 대한항공 객실본부장이었던 조현아 부사장이 접시 위가 아닌 뜯어지지 않은 봉지 속에 있는 마카다미아를 객실 승무원으로부터 받았다…마카다미아 서비스 규정을 잘 알지 못했던 조현아는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빌미로 객실 승무원을 심하게 질책하였고”라고 나온다.결국 진실은 ①먼저 손님에게 봉투째 보여준 뒤 ②원하는 승객에게는 봉투를 까서 그릇에 담아 제공하는 게 매뉴얼이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그 당시 객실 승무원은 ①에서의 보여주는 행위를 하지 않은 채 접시에 봉투째 담아 전달한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가?땅콩회항의 발단이 된 서비스 문제를 내가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것은 조현아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갖가지 소문 속에서 팩트를 판별하는 능력 훈련을 스스로 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자기만의 게임을 하게 된다. 물론 당시 조현아가 남편과 아들에게 욕하고 소리 지르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저 사람은 평소에도 저렇게 행동하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조현아가 “격분”한 동기가 어디에 있든 간에, 사람들은 어차피 조현아를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찍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적어도 기자들만큼은 상황을 추종하려고 하지 말고, 설령 독자들의 미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팩트를 써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팩트를 비틀어 보도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 덕분에 안하무인의 재벌 가족들에게 경종이 울리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 동영상에서나 땅콩회항에서나 왜 조현아가 그렇게 행동하였는지를 나는 안다. 조직 내에서 지위가 높아지면 언행이 변하게 됨을 나 역시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현대의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이 공사 현장에 나타나 자주 따귀를 때리거나 정강이를 걷어찼다는 뉴스 말미에 갑질 논란 따위는 전혀 없이 일을 철저히 하려는 그의 의지를 칭송하는 내용이 나오던 시절에 청춘을 보낸 사람이다. 그런 내가 다국적 기업에서 승승장구할 때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어린 딸들과 무슨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딸들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전화로 누구에게나 야야 하며 소리 지르고 화를 내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번개를 맞는 느낌을 받았다. 내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할 사람들은 가족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에게 내가 잘못하고 있음을 말하는 직원을 보배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 시기였다. 어떤 조직에서든 고위직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경험적 조언: ①가족에게 뭔가를 지시하려고 하지 말아라. 가족은 당신의 하급 직원이 아니며 가족에게 당신은 직장 상사가 아니다. 청소가 이게 뭐냐, 냉장고 정리가 왜 이 모양이냐 같은 말은 회사에서나 통하는 말이므로. 먼저 가족이 하는 말에 귀부터 기울여라. ②당신을 분노하게 만든 직원이 있으면 즉시 “10분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해라. 그 10분간 분노를 가라앉힌 후 사근사근 대화하거나 이메일로 감정 표현 없이 팩트만 전달하여라. 개인적으로 나는 이 방법이 내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체험하여 왔다. 곽상도 아들 50억원 퇴직금 수수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때 나는 “아니 도대체 팩트가 뭔데 무죄야?”라는 생각에 판결문 속 사실관계를 며칠 동안 분석하였고 뇌물이라고 판단하였다. 때마침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 이 사건을 주로 이야기하는 조건으로 지난 4월 출연하여 뇌물이라고 판단한 근거들을 팩트를 통해 설명하였다. 우리 사회가 뇌물을 주고받는 부패한 사회가 되어선 안 된다는 점 외에도 개개인이 정치적 성향을 떠나 팩트가 무엇인가 알아내려는 노력 역시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어서였다. 12월 19일 ‘곽상도 50억원 뇌물수수’ 건에 대한 2심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독자들과 함께 그 추이를 지켜보고자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3.12.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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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아이디어 탈취 vs 보편적 기술” 양측 입장 들어보니 [롯데헬스vs알고케어 진실공방]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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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헬스케어 사업을 전담하는 롯데헬스케어가 스타트업 ‘알고케어’의 아이디어 탈취 논란에 휩싸였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관련 증거확보에 나선 가운데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주목된다. 알고케어 측은 롯데헬스케어가 자사의 제품 아이디어를 탈취해갔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롯데헬스케어 측은 사실무근이라 반박하고 있다. 문제가 된 제품은 롯데헬스케어가 최근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2023’에 공개한 ‘캐즐’이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에 따르면 2021년 9월 롯데헬스케어는 ‘뉴트리션 엔진’(알고케어가 개발한 영양제 분배기)건과 관련해 투자 제안을 건넸다. 정 대표는 “롯데헬스케어에서 구성 품목, 사업 모델 관련 의료법 등 규제 내역과 제품의 특허 등 지식재산권 관련 정보 등도 얻어갔다”고 밝혔다. 하지만 롯데헬스케어에서 CES에 알고케어의 제품과 똑 닮은 ‘캐즐’을 내놓기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두 기업이 내놓은 제품은 카트리지 방식의 영양제 디스펜서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됐다.알고케어 측이 밝힌 자사 아이디어의 가장 큰 차별화 지점은 ‘카트리지 남은 양을 인식하는 기술’이다. 영양제 정보와 토출 시기 등이 자동으로 입력되고, 교체 시기도 자동으로 계산되며, 밀폐된 구조로 영양제를 최상의 상태로 보존할 수 있다. 밀봉된 카트리지에 별도의 토출 유닛을 결합하는 구조, 메모리칩을 통해 카트리지 정보와 유통기한 등을 기기와 통신할 수 있다는 점이 알고케어 카트리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정 대표는 “롯데헬스케어 측에서 거듭 ‘탈취를 할 마음은 없으니 오해는 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했다”며 “그럼에도 여러 슬롯의 카트리지를 위에서 아래로 꽂아놓는 구조, 카트리지의 결합유닛 장치의 구조와 원리, 디스펜서의 컨셉과 디자인 등을 그대로 베껴갔다”고 지적했다. 반면 롯데헬스케어 측은 “보편적 기술”이라며 이러한 의혹 제기를 전면 반박하고 있다.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롯데헬스케어의 카트리지는 일반적으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RFID 스티커를 케이스 윗면에 부착하는 형식”이라며 “유통업계에서 도소매 상품관리시 사용하는 바코드 스티커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개인 맞춤형으로 건강기능식품(영양제 등)을 추천하고, 디스펜서를 활용하여 섭취하도록 하는 모델이 소위 ‘정수기’처럼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이에 대해 정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RFID 스티커, 메모리칩은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수단’일 뿐”이라며 “핵심은 롯데헬스케어 측이 ‘카트리지 형태의 뉴트리션 보틀 및 이를 장착하여 작동하는 뉴트리션 엔진’이라는 핵심 아이디어를 탈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특허 문제와 관련해서도 공방이 이어졌다. 알고케어는 자사의 카트리지 및 디스펜서를 특허 출원한 상태다.롯데헬스케어는 “디스펜서 관련 당사의 권리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특허심판원에 소극적 권리범위 확인심판을 청구해 심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정 대표는 “롯데헬스케어가 확인심판을 청구한 대상은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기술이 아닌, 앞서 기존에 내놓은 바 있는 특허”라고 반박했다.한편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건 인지 즉시 기술침해 행정조사 전담 공무원과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소속 전문가인 변호사를 파견해 중소기업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중기부는 피해기업이 기술침해 행정조사와 기술분쟁조정을 신청하면 신속히 조정이 성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조정 불성립 시 소송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이어 “새 정부는 기술탈취에 따른 중소기업 피해를 신속하고 실질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을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라며 “기술탈취 피해구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강화하고 법원 자료요구권 신설 등 법·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2023.01.20 16:00

3분 소요
‘억 대 주담대’ 있는 국민, 내년부터 추가대출 어려워

부동산 일반

내년 1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강화되면서 기존에 1억원 이상 대출이 있는 차주들이 이번 대출규제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특히 최근 내 집 마련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일명 ‘영끌족(대출을 영혼까지 끌어 집을 산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이 급증해 국민 상당수가 추가 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이 공개한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내년에 개인별 DSR 규제로 인해 대출 제한을 받을 차주가 기존 대출자의 29.8%에 달할 전망이다. NICE평가정보가 밝힌 9월 말 가계대출 차주 수는 총 1990만명으로 이중 대출액 1억원이 넘는 593만명이 그 대상이다. 올해기준 국내 인구가 5174만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인구의 1/10을 넘는 수준이다. 총 대출액 2억원을 넘는 차주는 13.2%로 약 263만명이다. 지난 10월 발표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총 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하는 대출자, 7월부터는 1억원을 초과하는 대출자에 대해 차주단위 DSR 2단계(40%) 규제가 적용된다. 만약 차주의 연봉이 4000만원이라면 내년부터 DSR 40%를 적용 받아 연간 원리금 합계 1600만원까지 대출액이 제한된다. 제2금융권에선 연간 2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일례로 평균에 가까운 ‘보편적 차주(NICE 신용평점 840∼880점, KCB 신용평점 796∼845점)’가 주택담보대출 2억원을 30년만기 분할상환, 변동금리 조건으로 빌렸을 때 연간 1255~1400만원(월 105~120만원)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이 상태에서 내년 강화되는 DSR을 적용 받으면 상한까지 남은 원리금이 200~300만원에 불과해 신용대출 1000만원도 받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총 대출액이 1억원을 넘는 차주를 연령 분포별로 보면 올해 9월 말 기준 60대 이상이 16.1%, 20대 이하가 4.8%로 나타났다. 두 연령대가 총 20%, 124만명에 달한다. 이들 연령대는 30~40대 등 타 연령에 비해 소득이 적은 편이라 추가 대출이 아예 불가한 사례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민국 의원은 “DSR 규제 확대 도입 및 금리 인상 등 계속되는 대출 규제 강화로 소득이 적은 서민과 실수요자들이 대출 절벽에 내몰리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의 무리한 대출 총량 줄이기로 인해 자금 실수요자에 대한 과도한 제약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민보름 기자 min.boreum@joongang.co.kr

2021.12.21 10:51

2분 소요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 “통일 없으면 한강의 기적도 쇠퇴”

국제 이슈

지난 8월 16일 후반기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이 시작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우리 군은 혹시 모를 무력시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지난달 27일 남북 통신 연락선 복원으로 남북 관계 경색이 다소 완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한미연합훈련 실시에 반발한 북측이 남북 통신선 정기 소통에 불응하는 등 경색 국면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핵 위협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자유 등의 중요한 원칙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공론화해 국제사회의 압박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 원리를 담은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지난 13일 유튜브 생중계 형식으로 열린 ‘2021 원코리아국제포럼 하이레벨 플레너리’에 참석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통일 한국을 위한 비전 공유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 코리안 드림이 적합한 비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코리안 드림은 우리나라의 건국 시조인 단군의 건국이념이자 시민의 권리와 자유 등의 보편 원리가 담긴 홍익인간을 기초로 한 남북통일 비전을 말한다.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은 “홍익인간 이상은 5000년의 한국 문화와 역사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며 “홍익인간 이상이 한국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시금석과 도덕적 나침반의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홍익인간 이상은 보편 원리에 근거해 생명력‧내구력과 범주 면에서 현재의 이념적 분열을 훨씬 초월하는 이타적인 비전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미국 외교·안보 분야 대표 학자인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창립자는 “홍익인간 원칙에 중점을 둔 코리안 드림은 정부의 독점 영역을 넘어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코리안 드림의 가장 주목할 만하고 독창적인 측면 중에 하나는 통일 한국을 위한 비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라며 “통일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을 이끌 비전”이라고 평가했다. 휴야 왕 중국과세계화센터 창립자 겸 회장 역시 “코리안 드림 접근법은 사회‧문화 캠페인을 통해 통일에 대한 인식을 높였고, 통일에 대한 노력과 한국인의 일상생활을 접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 “北 인권 문제 공론화, 독재 정권 변화 열쇠”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코리안 드림 비전 공유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 비전을 지렛대 삼아 북한 인권 문제 등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가 다소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한반도 비핵화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 인권 문제를 적극 공론화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압박을 확대하자는 지적이다. 김영 미국 하원 의원(미국 의회 한국연구모임 공동의장)은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 상황을 직시하고 적극 대응하는 것만이 김정은 정권 변화에 대한 약속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문현진 의장은 “지속적인 국제 여론의 압박으로 많은 정부가 움직여 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이 종결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코리안 드림에 기초한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북한의 인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압박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제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 공론화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실제 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통일연구원이 26년 동안 매년 발간해온 북한 인권 백서 관련 예산은 감소하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통일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북한 인권 백서 관련 예산‧결산 자료에 따르면, 북한 인권 백서 발간을 위한 예산은 지난해 6903만2596원에서 올해 1580만2336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북한 주민 인권 문제 못지않게 한반도 비핵화도 중대한 문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윌리엄 파커 미국 동서연구소 전 최고경영자(CEO)는 “북의 핵 보유는 세계 다수 국가에 위협”이라며 “북 핵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단기간 핵보유국이 될 것이고 중국 또한 핵무기 증산으로 방어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통일 한국 대비한 경제 구조 변화” 필요 문현진 의장은 통일이 한국 경제의 한계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이렇게 가능한 보상들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경제 구조가 신속하게 변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 한국 이전에 규제 개혁으로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해 충분한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중은행을 민영화해 창업가 정신을 가진 개인과 중소기업 등에 금융 지원을 하자는 것이 문 의장의 방안이다. 특히 그는 “제가 말하는 금융 개선이 이뤄지면 한국은 마치 뉴욕과 런던이 대서양권의 허브인 것처럼 환태평양의 허브가 돼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며 “그렇게 한국은 북한과 역내에서 개발에 필요한 국제자본을 창출하고 유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에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이뤄진다면, 이를 북한 주민의 자유‧인권을 위한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교황의 방북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한에서의 종교적 자유, 인권, 자유 민주주의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며 “교황 방북을 통해 북한에도 종교 자유의 싹이 다시 움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2021.08.19 14:46

4분 소요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 “민주주의 토대는 인권‧자유 보장하는 보편 원리”

국제 이슈

21세기를 맞은 지 약 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전 세계는 질병‧전쟁 등으로 시름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 등 전 세계를 둘러싼 질병과 전쟁의 위험은 여전해 보인다. 코로나19 재확산은 또 다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고,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은 폭력적인 종교 극단주의의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종교계와 학계 등에선 자유‧평등 등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기본권의 중요성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초국가적 권리인 천부인권이란 보편 원리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정부의 초석이었던 이 보편 원리가 분열과 반목을 끊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 15일 유튜브 생중계 형식으로 개최된 ‘2021 글로벌피스컨벤션 본회의’에 참석한 종교계와 학계 등의 주요 인사는 인간의 보편 원리를 강조했다.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의장은 기조연설에서 “평화 실현을 위한 인류의 공동 노력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기본권과 자유권의 근본으로 세우고, 가정에서부터 영적 혁명과 관계 교육을 하는 것이 인류가 직면한 난제 해결의 근본적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한 하나님 아래 하나의 세계’라는 비전을 통해 천부인권의 주요 가치인 종교‧양심의 자유를 교육해 관계 개선 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문 의장의 구상이다. 마르코 비니시오 세레조 전 과테말라 대통령도 특별연설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인간 존엄성의 가치에 대한 고려가 확대되면서 신(神) 아래 한 가족 비전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 끊이지 않는 분쟁, 세계화의 두 얼굴 ━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선 세계화가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나, 정반대로 반목과 분열을 야기하는 부작용도 낳았다고 평가했다.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강대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 여기에 인종, 민족, 종교, 문화 등에 대한 다소 급진적인 통합이 일부 집단의 분노를 야기해 민족주의, 폭력적 종교 극단주의 등으로 확산됐다는 지적이다. 실제 세계화 이후에도 민족주의, 종교 극단주의 등으로 촉발된 분쟁은 끊이질 않았다. 오히려 최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으로 민족‧종교 등을 뿌리에 둔 분쟁이 더욱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많은 상황이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이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분리 독립 움직임을 확산시킬 것이란 관측이다. 독일과 영국 정부 등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에 대해 “국제 사회의 실패”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특히 민족과 종교 등으로 인한 분쟁이 끊이질 않자, 일부 국가들이 첨단 기술 등을 활용해 자국민을 통제하는 문제도 불거졌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로 중국이 꼽힌다. 샘 브라운백 미국 국무부 국제종교자유 전 특임대사는 올해 글로벌피스컨벤션 본회의에서 “종교 자유와 관련해 중국이 가장 우려스럽다”며 “기술 발전으로 중국 내에서 감찰과 사살이 자행되고 있고, 특히 디지털 화폐 개발로 향후 중국 정부가 모든 상황을 감시하고 행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트리나 란토스 스웨트 인권‧정의를 위한 란토스재단 대표는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로 볼 때 중국이 종교와 인권 자유 면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라고 주장했다. ━ 특정 종교‧과학에 대한 믿음 넘어 보편 원리 공유해야 문 의장은 이번 글로벌피스컨벤션 본회의에서 우리가 향후 어떤 원리와 가치 등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혼돈의 길이 아닌 평화와 번영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 특정 종교나 과학에 대한 맹목적 확신으로는 전 세계를 둘러싼 다양한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 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인용하면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로부터 확고한 불가침의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문구로 보편 원리에 근거한 정치 토대가 세워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 시점에 이 같은 원칙에 기초하지 않는 세계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 반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편 원리를 이해‧공유하기 위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외교‧통일 전문가들은 보편 원리에 대한 공유가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이 미국의 독립선언문에 담긴 천부인권이란 보편 원리와 맞닿아 있다는 논리다. 홍익인간을 근간으로 ‘코리안 드림’이란 비전을 공유해 남북통일을 꾀하지는 것이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한국열린사이버대 석좌교수)은 이번 본회의에서 “현재 북한은 정치경제적으로 분단 이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며 경제뿐만 아니라 통치력 측면에서 상당한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같은 상황 탓에 북한 인민들은 통일이 돼야 구제받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짙어지고 있다”며 “통일 비전인 코리안 드림을 가장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서인택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공동상임대표도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에는 다양한 문화와 전통이 있는데, 결국 우리 정체성은 홍익인간”이라며 “홍익인간을 뿌리에 둔 코리안 드림이란 비전이 많은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통일 방식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경영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비핵화 통일이라는 한반도 비전은 홍익인간의 이상을 전 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시작점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의장은 “보편 원리와 가치를 근본으로 통일된 나라의 꿈인 코리안 드림에 대해 말해왔다”며 “북한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무신론적 공산주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지적했다. 또 “오랫동안 인위적으로 갈라진 한국인들이 보편 원리에 기초해 통일을 이룬다면 그 영향력은 엄청나게 대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2021.08.19 14:38

4분 소요
[가습기살균제 참사 10년] 종합적 개선 없이 툭하면 특별법부터 발의

산업 일반

갈수록 증가해 20대 국회서 1275건… 땜질식 처방, 포퓰리즘 부작용 우려 #. 제41조(소멸시효에 관한 특례)가습기살균제 건강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민법 제766조제2항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가 발생한 날부터 3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한다.2018년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이 개정안에서 특별한 부분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30년까지 늘려 잡았다는 것이다.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까지 행사할 수 있지만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한해 예외를 인정했다. ━ 쏟아지는 특별법…근본 해결책 고민 아쉬워 전문가들은 화학 물질에 의한 피해의 경우 단기간에 증세가 나타나지 않고, 원인 규명이 어려워 이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특별법 제정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법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으로는 또 다른 유해 화학물질 관련 문제를 해결하거나 피해자를 구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성구 기업소비자전문가협회 이사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유해 화학물질이나 방사선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문제가 발현하는 사건들이 있다.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할 일반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특별법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성격이 짙다”며 “모든 문제를 특별법에만 의존해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실제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문제는 꾸준히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이랜드월드가 수입해 판매하는 뉴발란스의 초등학생 책가방에서 환경호르몬이 기준치 이상 검출돼 리콜이 결정됐다. 2020년 12월에는 영유아용 아기 욕조 제품에서 기준치의 600배가 넘는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되기도 했다. 당시 욕조 배수구 마개에서 검출된 화학물질은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다.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 때 쓰이는 화학 첨가제인데, 간 손상과 생식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사용 중단과 환불 조치’를 내렸지만, 유해성과 인체에 미치는 피해 등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같은 해 11월에는 국내에 유통된 생리대 전체 품목 중 97%가 넘는 제품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돼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시민단체 소비자와함께의 박명희 대표는 “수십년 뒤 이런 사건에서 문제가 파생돼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생겨도 현행법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며 “소비자 안전에 관한 종합적이고 기본적인 법을 만든 뒤에 부족한 부분을 특별법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국회는 문제가 터지면특별법만 만드는 데 그치고 있다”고 했다.이런 지적에도 국회에서는 특별법 발의 건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 통계를 보면 18대 국회에서 발의한 특별법 관련 법안(개정안 포함)은 733건, 19대 832건, 20대 국회에서는 1275건으로 집계됐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특별법을 남발하면 기존 법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 현재 법률에 한계가 있다면 종합적인 개선을 고민해야지 땜질식 처방만 내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문제만 불거지면 20~30개씩 특별법 발의가 쏟아지는데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 기존 법체계 위협, 포퓰리즘 변질 우려도 일각에서는 ‘특별법’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가 포퓰리즘 성격의 특별법을 제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2년 추진됐던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 특별조치법안(저축은행 특별법안)’이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 특별법은 부실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돈을 맡긴 사람들이 원금 손실 위기에 처하자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1인당 5000만원(원리금 기준)까지만 보호받을 수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려 하자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다가 결국 무산됐다.당시 전국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종합금융협회 등 5개 금융단체는 저축은행 특별법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금융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현행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대상이 아닌 5000만원 초과 예금과 후순위 채권을 보상해주는 것은 예금자보호제도의 근간과 법치주의의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가덕도신공항특별법(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특별법은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하면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할 수 있는 특례 조항을 담고 있다. 국가재정법 38조 1항에 따르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은 예타 조사를 받아야 한다. 국토부가 추산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비용이 최대 28조6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예타 조사를 면제하는 것이 특혜라는 지적도 받았다.국토교통부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에 반대 입장을 내놨다. 국토부는 ‘가덕도 신공항 검토 보고서’를 통해 항공 안전사고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국제선만 이전할 경우 항공기 운영 효율성이 떨어지고 환승객 동선 등이 증가해 어렵다고 밝혔다. 또 대규모 산악 절취, 해양매립, 환경 보호구역 훼손 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를 근거로 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회의원 181명의 찬성으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최준선 교수는 “해외에서는 새로운 법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년 간 토론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무턱대고 특별법을 쏟아내기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2021.04.0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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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 팝콘 심리학] ‘저지른’ 행동이 당신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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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신념은 전파되며 강화… 제3자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현명 '더 헌트(The Hunt)’는 덴마크 영화감독 토마스 빈터버그의 2012년 작품이다. 007 시리즈 ‘카지노 로얄’의 악당 르쉬프로 잘 알려진 배우 매즈 미켈슨이 주인공 루카스로 출연한다. 영화는 마을 토박이이자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가 우연한 계기로 아동 성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쓰면서 겪게 되는 집단적인 폭력, 그리고 그가 이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다. 이를 통해 한번 찍혀버린 낙인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특히 우리의 태도와 행동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전달한다.이 영화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다. 원래 좋은 영화는 여백이 많고 관객 각자가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도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뻔하디 뻔한 교훈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기 전에 100까지 세어라”, “한번 내뱉은 말은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다” 등 격언들은 모두 생각은 많이 하더라도,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옮길 때는 조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내 말과 행동은 남들에게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의 올가미 역할을 한다. 내가 저지른 행동에 나의 생각이 끌려가는 꼴이 벌어지는 것이다.이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이 저지른 첫 번째 실수는 옳은 것 같지만 틀린 명제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에 의존했다는 점이다. 사건의 시작인 아이의 증언은 사실 둘이었다. 루카스가 자기를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증언과, 그런 일이 없었다는 증언. 한 아이가 두 이야기를 했음에도 사람들은 첫 번째 이야기만 믿는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상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 상상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건을 조사할 때는 아이의 증언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황증거도 세심하게 검증해야 한다. ━ 잘못된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비슷한 일이 실제로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상담과정에서 많은 환자들이 자기가 어릴 적에 부모나 친지에게 성추행이나 학대를 당했다고 기억했던 것이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고소 고발과 수사가 벌어졌다. 그런데 조사결과 대부분의 경우 환자들의 기억은 사실이 아니었다.집에 지하실이 없는데 지하실이 있다고 기억하는 이 영화 속 아이처럼. 이후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oftus)라는 심리학자는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실험을 통해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암시에 의해 창조되는지를 보여줬다. 실험 내용은 간단했다. 피험자들에게 “당신 어릴 적에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요청한 거였다. 그러자 실제로는 쇼핑몰에서 길을 잃어본 적 없던 피험자들이 자기가 쇼핑몰에서 엄마를 놓치고 어떤 심경이었는지를 술술 불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이럴진대, 어린아이들이 오죽하랴.두 번째 실수는 사실이 확인되기 전에 행동부터 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일단 루카스를 범죄자로 판단 내린 마을 사람들은 경찰 조사 결과 루카스가 무죄임이 확인되었음에도 루카스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만약 동네 사람들이 루카스를 손쉽게 범죄자로 단정 짓지 않고 최종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법원의 무죄 판결 후에 루카스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는 훨씬 쉬웠을 것이다.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는 이미 다들 루카스를 배척하는 행동을 저질러 버린 다음에야 나왔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착하고 무고한 마을 동료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건 어렵다. 차라리 경찰 조사가 불완전해서 범죄자가 풀려났다고 믿는 쪽이 심리적으로 더 쉽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시간이 지나도 루카스에 대한 잘못된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아마 이들 중에서도 루카스를 적극적으로 가해했던 사람일수록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 태도를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려들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질 테고, 그럴수록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는 혼자만 믿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필요로 하게 될 테니까. 모든 잘못된 신념은 이런 식으로 강화된다. 즉,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옳지 않기 때문에 강력하게 전파되고 강화되는 것이다.얼마 전까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두고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이 일은 미국 사상 최초의 국회의사당 점거까지 벌어질 정도로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에도 그 잘못된 믿음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던 이들이 많았다. 이제 트럼프가 정식으로 퇴임하고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니 이들의 태도는 바뀌었을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고수한다. 선거결과는 조작되었고 트럼프가 정당한 재선 대통령이지만 어떤 악의 세력에 의해 바이든이 취임했다는 식이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아예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는다.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 바둑·장기판, 주식투자도 ‘객관화’ 중요 아마도 그 차이는 당사자의 수치심이 얼마나 덜 발달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이 일에 깊이 개입했느냐에 따라서도 행동은 달라진다. 누구든 어떤 상황맥락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을수록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더 어렵다.이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은 잘못을 저지른 이는 루카스의 ‘절친’이자 사건 당사자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는 이 일에 자의든 타의든 가장 많이 개입한 사람이다. 반면에 유일하게 루카스의 결백을 믿어주고 도움을 주던 이는 오히려 루카스와는 별로 친하지 않던 친구였다. 그는 제3자였기에 객관적일 수 있었다.지금은 극단적인 대립과 극단적인 판단이 난무하는 시대다. 미미한 근거만으로 누군가의 존재 가치를 결정지을 만한 일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릴수록 이 영화 속 마을사람들처럼 멍청한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런 때일수록 한발 떨어져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제3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현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건 사건의 해석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장기판에서도, 심지어 주식투자에서도 마찬가지로 통한다.※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 , 등을 썼고 , , 등을 번역했다.

2021.02.2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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