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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까지 아플 줄 몰랐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가 출범한 뒤, 중국 내부에서 떠돌던 말이다. 미국의 거센 압박에 당시 중국은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아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이렇게 계속 때릴 줄 몰랐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마지막까지 중국 내부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약할 줄 몰랐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박한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외교통상학부 초빙교수(중국경제관측연구소 소장)의 전언이다.박 교수는 전 코트라(KOTRA) 중국지역본부장을 지낼 만큼, 중국통으로 평가 받는다. 그가 보는 중국은 전과 다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중국 정부도 나름의 전략을 바탕으로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는게 그의 진단이다. 또 깊어지는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적절한 대응책을 펼쳐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양날의 검, ‘아메리카 퍼스트’먼저 박 교수는 트럼프의 강경한 대중국 정책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당 정책에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 압박은 중국 경제와 수출 환경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서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이 되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가속화 할 수 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박 교수는 “트럼프의 강경한 대중국 정책은 양날의 검이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며 “무역 압박은 가뜩이나 불안한 중국 경제와 수출 환경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하이테크 분야 제재 확대는 중국의 핵심 산업정책을 뒤흔들 수 있고 대만 문제를 고강도 압박 카드로 사용한다면 군사적 긴장이 팽팽하게 고조된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중국에 기회 요인이란 측면도 있다”며 “보호무역 정책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가속할 것이며, 일방주의적 접근은 미국의 동맹국 관계를 악화시켜 중국의 외교적 공간을 넓혀줄 수 있다. 또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장기적으로 중국의 상대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미국이 중국에 대한 앞박 수위를 높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여러 요인들 중 핵심은 미국이 중국보다 높은 ‘경제적 우위’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이점을 얻기 위해 중국에 고강도 압박을 가한다는 것이다.그는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정책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에 맞서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지키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며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을 억제해 미국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려는 속내도 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함으로써 국제 질서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지키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다만, 중국에 대한 견제 정책이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박 교수는 “견제 정책이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특히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과 경제 성장 둔화, 혁신 역량 저하 등이 우려된다. 중국의 보복 관세는 미국의 수출 감소와 글로벌 공급망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美·中 힘겨루기에 남겨진 韓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이에 박 교수는 미중 리스크를 대응하기 위해 기술 경쟁력 확보 뿐만 아니라, 수출 시장 다변화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 찾아왔다고 조언했다.박 교수는 “최근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한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며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인데,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전체 수출의 19.5%를 차지했다. 그 중 78%가 중간재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은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최근 무역 갈등과 관세 정책 변화로 인해 이러한 무역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 한국이 타격을 받게 되는 구조”라며 “한국은 이러한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해 기술 경쟁력 강화, 수출 시장 다변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적극 나서야 한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 개선과 협력을 통해 다각도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조언했다.박 교수는 중국이 한국을 활용하듯, 한국도 중국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는 크게 ▲전략적 협력 ▲균형 잡힌 외교 ▲ 실용주의 접근 ▲소프트파워 활용 등 4가지가 있다고 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그는 “거대 중국 시장을 활용해 한국 기업의 진출 기회를 모색하고,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며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활용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중국의 건설적 참여를 유도해야한다”며 전략적 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당부했다.이어 “미·중 경쟁 구도에서 보다 정교한 접근이 요구된다”며 “한·중·일 FTA와 RCEP 등 지역 경제 협력 체제를 활용해 중국과의 관계를 양자 구도에서 벗어나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접근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끝으로 그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K팝,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를 통해 중국 내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제고하고, 학술 및 청년 교류 등을 통해 양국 간 상호 이해를 증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 전략을 가능한 범위에서 단계별로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