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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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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인투셀 상장 코앞...신약 개발社 증시 입성 채비

바이오

국내 신약 개발 기업이 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잰걸음에 나선다. 한국거래소가 자금을 창출할 여력이 없는 신약 개발 기업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이들 기업이 올해 상장 문턱을 넘어설지 주목된다.1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오름테라퓨틱과 인투셀, 오가노이드사이언스, 제노스코, 이뮨온시아 등 국내 신약 개발 기업이 올해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절차를 밟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와 빅딜을 연달아 성공시킨 오름테라퓨틱은 최근 수요예측을 마쳤고, 내달 4~5일 일반공모를 시작한다. 항체-약물 접합체(ADC) 대표 기업 인투셀은 예비심사를 청구한 지 5개월 만인 이달 초 예비심사청구를 승인받았다.상장 문턱에 가까워진 기업들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상업화해 중장기적인 자금 확보 라인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자금 확보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오름테라퓨틱은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와 버텍스 등 해외 빅파마에, 인투셀은 삼성바이오에피스, ADC테라퓨틱스에 자사 기술을 수출했다. 투자자들이 신약 개발기업의 자금 확보 능력에 주목하는 것은 과거와는 다르게 기업을 깐깐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풀이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할 때는 바이오 기업이 주목받으며 신약 개발에 자금을 쏟는 투자자가 많았다. 하지만 감염병 대유행이 끝난 이후 투자시장은 최근 몇 년간 쪼그라들었고, 적자를 지속하는 신약 개발 기업에 희망 없이 자금을 대줄 투자자도 사라졌다. 기업 입장에서도 자금을 확보할 별도의 창구가 없다면 회사를 운영하기 어려워졌다.반도체 팹리스 업체 파두를 비롯해 일부 기업의 뻥튀기 상장 논란이 불거진 점도 그동안 국내 신약 개발 기업의 상장을 막았다. 한국거래소 등이 신약 개발 기업에 앞으로의 실적을 예측할 수 있는 여러 근거 자료를 요구하며 상장 요건도 빡빡해졌다. 기업의 실적보다 성장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기술특례상장도 제도 도입 초기보다 현재 신약 개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었다. 이마저도 신약 개발 기업 대비 매출을 올리기 나은 의료기기 제조 기업이 해당 제도를 통해 지난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제약·바이오 기업 중 3분의 2다.오가노이드사이언스·이뮨온시아 등 대기이런 가운데 오름테라퓨틱과 인투셀 등 국내 신약 개발 기업이 기술력과 성장성을 입증해 국내 증시에 안정적으로 입성할지 주목된다. 뚜렷한 성과를 낸 신약 개발 기업이 수월하게 상장 절차를 밟는다면 다른 제약·바이오 기업의 상장 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올해 상장 기업의 수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그동안 증권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준비해 온 국내 신약 개발 기업의 걸음이 빨라질지도 기대된다.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국내 IPO 시장은 지난해 신규 상장 공모 규모가 크게 늘었고, 올해는 신규 상장 기업의 수도 큰 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신규 상장 기업의 첫날 가격 제한폭이 기존보다 확대된 지 1년 이상 지나, 주가수익률과 공모확정가도 안정되고 있다"라고 했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제약·바이오를 비롯한 신성장 분야의 기업들이 계속 상장에 도전하고 있다"라며 "올해 신규 상장 기업 수와 공모 금액 규모도 지난해보다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오름테라퓨틱과 인투셀 외 상장 절차를 밟고 있는 국내 신약 개발 기업도 상장 문턱을 넘기 위해 잰걸음 중이다. 오가노이드 개발 기업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로부터 코스닥시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상장예비심사를 승인받았다.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유종만 대표가 2018년 설립한 기업으로, 줄기세포로 만든 '유사 장기' 오가노이드를 개발한다.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오가노이드 자체를 재생치료제로도 개발 중이다.유한양행의 신약 개발 자회사 이뮨온시아도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해 예비심사를 청구한 상황이다. 이뮨온시아는 2016년 설립된 항체 기반 면역항암제 개발 전문 기업으로, 유한양행이 지분의 67%를 보유하고 있다. 이뮨온시아의 사업 모델은 핵심 기술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데 집중해, 이를 다른 기업에 초기에 기술 이전하는 것이다. 중국 기업 3D 메디슨에 파이프라인을 기술 수출한 바 있다. 향후 상장을 통해 확보할 자금도 연구개발(R&D)에 쏟는다.

2025.02.01 08:00

3분 소요
깐깐해진 바이오 상장 문턱…그래도 IPO 전망은 ‘맑음’

바이오

경기 침체와 파두 사태 등으로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이 경직됐지만, 몇몇 바이오 기업은 예정대로 상장 절차를 밟고 있다.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뒤 승인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상황에서도 기술력과 사업성을 앞세워 시장의 호응을 얻으려는 기업들이다.파두 사태 불구, 증시 입성 수요↑올해 국내 증시에 상장하기 위해 한국거래소(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은 온코크로스와 셀비온·토모큐브·다원메닥스·쓰리빌리언·파인메딕스·온코닉테라퓨틱스·넥셀 등이다. 이 중 온코크로스는 올해 1월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지만, 대다수의 다른 기업은 올해 4월 이후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다. 거래소 등이 국내 상장 기업들에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고 알려진 만큼, 상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뒤 상장 절차를 밟자는 판단에서다.국내 증시에 상장한 기업 수는 지난해와 비슷한 모습이다. 파두 사태로 기업들의 상장 문턱은 높아졌지만, 국내 증시에 입성하려는 수요가 여전히 높아서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증시(유가증권시장(코스피)·코스닥시장·코넥스시장)에 신규상장한 기업의 수는 5월 22일 기준, 스팩·리츠를 제외하고 22곳이다. 국내 증시에 신규상장한 기업의 수는 매년 1월부터 5월까지 같은 기준으로 2023년 27곳, 2022년 25곳, 2021년 38곳, 2020년 10곳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는 동안 시장에 자금이 돈 2021년을 제외하면 매년 20여 곳의 기업이 새롭게 증시에 입성했다. 바이오 기업도 마찬가지다. 올해 국내 증시에 상장한 국내 바이오 기업은 스팩·리츠를 제외하고 5월 22일을 기준으로 오상헬스케어와 아이엠비디엑스, 디앤디파마텍 등으로 3곳이다. 국내 증시에 상장한 국내 바이오 기업도 매년 1월부터 5월까지 같은 기준으로 2023년 4곳, 2022년 3곳, 2021년 9곳, 2020년 3곳이 상장했다. 다만 당장 적자를 내는 기업도 많다. 특히 많은 기업이 상장 문턱을 밟은 2021년에 상장했던 상당수의 바이오 기업들은 적자 상태다. 라이프시맨틱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23년 한 해 각각 96억원, 1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네오이뮨텍도 같은 기간 4260만 달러(약 582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진시스템의 2023년 한 해 영업손실도 95억원이다.기업의 대다수가 제대로 된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어, 거래소가 상장 기준을 깐깐하게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오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탈(VC)의 한 관계자는 “파두의 뻥튀기 상장 사태 이후 평가가 매우 타이트해졌다”며 “당초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통해 국내 증시에 입성한 1세대 바이오 기업이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이는 것은 물론, 사업에서도 좋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실적·전망 좋은 기업엔 자금 몰려다만 올해 국내 IPO 시장 전망이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상장에 성공한 기업에는 시장의 관심이 몰리고 있어서다. 기술특례상장제도로 상장하려는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파두 사태의 개선방안도 가닥을 잡은 모습이다. 거래소는 상장 도전 기업의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상장예비심사 과정의 개선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금감원도 IPO 주관업무와 관련한 작업반을 꾸려 파두 사태와 같은 뻥튀기 상장을 방지하도록 하는 개선방안을 최근 내놨다. IPO 주관업무에 대한 내부통제와 기업실사, 공모가액 산정, 영업 관행, 증권신고서 작성 등과 관련한 개선방안이다.올해 상장한 기업들이 호실적을 냈다는 점도 흥행 전망의 요인으로 꼽힌다. 오상헬스케어는 올해 초 진행한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99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희망 공모가 밴드 상단을 넘긴 2만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이후 진행된 일반청약에서 2126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고, 5조2600억원의 청약 증거금을 끌어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코로나19 관련 매출 비중이 높았던 기업이지만, 지난 한 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점이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오상헬스케어는 생화학과 분자, 면역 등 체외진단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회사다. 디앤디파마텍은 최근 전 세계 바이오 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의 당뇨·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해 국내 증시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GLP-1 계열의 의약품이다. 디앤디파마텍은 올해 4월 진행한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희망 공모가 밴드 상단을 초과한 3만3000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는 국내외 기관 2181곳이 참여했고, 경쟁률은 849대 1을 기록했다. 일반청약 경쟁률도 1544대 1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청약 증거금은 7조원에 달한다.

2024.06.01 11:00

3분 소요
[세이노 칼럼 단독 공개] ‘세이노의 가르침’ 못다 한 이야기

전문가 칼럼

인연이란 참 놀랍다.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을 돌아보며 ‘세이노 열풍’을 주목하기로 했다.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의 글을 직접 소개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올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세이노의 가르침’을 쓴 저자는 잘 알려졌다시피 1955년생 1000억원대 자산가다. 대외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의 문장처럼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우며 대화가 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선입견이었다. ‘어른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보고 자란 기자 홀로 가진 착각이기도 했다. 취재하며 느낀 그는 까탈이 아닌 세심함을, 고집이 아닌 신념을 지닌 어른이었다. 상대방의 의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인물이란 평도 인상에 남는다. 세이노는 책 ‘세이노의 가르침’의 각주 성격인 이 글을 보내며 첫 문장에 “인터뷰 요청은 사양하였으나 20여 년 전 이코노미스트에 글을 쓴 인연조차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이 글을 인터뷰 대신 쓴다”고 했다. 본지는 잊고 있던 인연의 소중함을 필자가 일깨워준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1713호(12.4~10) 커버스토리로 시작한 ‘세이노 열풍’ 기획을 이렇게 저자가 직접 쓴 글로 매듭지을 수 있게 됐다. 힘든 한 해였다. 내년은 더욱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어른’ 세이노의 글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남이 떠먹여 주는 숟가락에는 독이 묻어 있기 마련…직접 손을 놀려라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미래에 보유하고픈 자산 규모를 구체적으로 말하곤 한다. 이를테면 “나는 10년 후에 100억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라는 식이다. 나는 어땠을까? 결혼 후 최우선 목표는 집 하나 장만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에게 숫자로 표시되는 목표는 전혀 없었고 “한 달에 1000만원을 벌자” 같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혼자 벌레처럼 살면서 복권을 사던 시절에는 미래의 내가 부자로 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이후에는 내 두뇌에서 그런 상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1년 후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내가 계획하는 미래는 길어야 3개월 정도였고, 오로지 고객의 신뢰를 쌓아가면 수입은 늘어날 것이라고만 믿었다. 그러던 중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경매 직전의 아파트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출을 끼고 샀다. 그 후 사업에 재정적 어려움도 많았으나(7000만원 받을 어음이 부도난 일도 있었다) 아파트 매입 5년 후 면적이 2배인 다른 아파트를 현금 구매 후 이사한 뒤에도 금전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았고 그저 모으고 정기예금만 했다. 어느 날 부채 없이 보유 현금이 20억원이 되자 은행 금리가 연 10% 이상 되었던 시절이었기에 이자 범위 안에서 돈을 쓰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몇억 부자가 되자는 그런 생각은 꿈속에서도 하지 않으면서 사업과 투자를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2·3년에 한 번 정도 자산을 살펴보니 부채는 전혀 없이 자산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운도 따라주었지만, 사업과 투자를 제대로 한 덕분이고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자세히 얘기한 적은 외환위기 당시의 달러 투자와 전동 현수막 걸이 이외에는 거의 없는 듯싶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돈의 액수를 목표로 삼지 않았던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목표액을 채우려다 보면 사람들에게거짓말이나 뻥튀기도 할 것이고 직원들에게 야박한 월급이나 주면서도 최대한 부려 먹고자 했을 것이며 그 결과, 나의 인티그리티(Integrity·머릿속에서 옳다고 믿는 생각들과 행동이 엇갈림 없이 하나된 상태, ‘세이노의 가르침’ 186쪽)는 박살 나면서 나 자신이 내가 침 뱉던 대상으로 변하여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모습이 구역질 날 정도로 역겨워져서 나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빨리 벌려고 하면 돈을 못 번다는 말이 진리라고 믿는다. 어쨌든 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일부는 종종 내게 질문한다. 시간을 아껴 자기 개발을 해 종잣돈을 모으라는 것은 알겠는데 ‘종잣돈을 모은 후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째서 총론은 이야기하면서 각론은 알려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숟가락으로 돈을 떠먹여 주기를 바라는 자들이고 비싼 강의 하나 잘 들으면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기연과 비급을 얻게 되어” 팔자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어리석은 닭대가리들이다. “남이 떠먹여 주는 숟가락에는 돈이 아니라 독이 묻어 있다”(내 책을 출판한 차보현 대표의 말이다)는 것을 왜들 그렇게 모를까?나를 개인적으로도 알고 있는 오상익 오간지프로덕션 대표가 MZ세대이면서도 대학교 강의에서 내 책을 교재로 사용하기에 ‘어째서 세이노는 총론만 얘기하고 각론은 얘기하지 않는지’를 설명해 보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세이노는 종잣돈을 모으라고 하면서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 쌓인 돈이 부자가 될 종잣돈이라고 말하지만, 종잣돈의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 것인가, 종잣돈의 기준과 가치는 독자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몇천이 종잣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몇억이 종잣돈이 될 수 있다. 종잣돈의 금액이 다르듯이 돈을 모으는 기간도 다르다. 독자마다 수입이 다른데 어찌 모으는 기간이 같겠는가.● 종잣돈은 독자의 가치관과 처한 환경, 우선순위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부자마다 부자가 된 과정이 다르듯, 종잣돈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공통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이노는 독자가 어떠한 상황인지, 독자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모르기에 종잣돈의 활용법에 대하여서는 침묵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종잣돈을 모으는 단계까지는 일종의 보편적 방식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르침을 준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타인에게만 의존하면 독자 생존할 수 없다. 세이노가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여 주었다면 1인치씩 전진하는 걸음(종잣돈을 증식하려는 노력)은 철저히 독자의 몫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줄 아는 독자라면 누군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종잣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스스로 깨칠 것이다. ● 영화 ‘위플래쉬’(Whiplash)에서 앤드류의 음악은 플래처 선생의 채찍질(Whiplash)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와 맞서 싸우고 필사적으로 분투하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지휘자 플래처는 앤드류가 전혀 모르는 곡으로 교묘히 바꿔 그를 함정에 빠뜨리지만, 앤드류는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카라반’(Caravan)을 당당하게 독주하며 폭군 플래처까지 흥분시킬 정도로 최고 스윙을 폭발시킨다. 즉, 영화에 나오는 앤드류처럼 독자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만의 게임(인생)’을 만들어 나가라는 것이 세이노의 진짜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맞다. 종잣돈에 대한 얘기도 맞고, 스스로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도 맞다. 영화 ‘위플래쉬’는 드러머인 주인공 앤드류가 최악의 갑질 폭군인 선생 밑에서 끝없는 경멸과 모욕과 멸시를 당하지만 결국은 그 선생을 이겨내며 음악적 성취를 이루는 이야기이다. 사업을 하면서 나도 그런 갑질을 하곤 했지만, 격려와 칭찬은 물론 두둑한 보너스도 잊지 않았기에 플래처의 내리꽂기만 하는 교육방식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은 크게 공감하며 흥미롭게 보았다.1970년대 말, 20대 초반이었던 내가 미군 부대 안의 대학에 다니면서 학원과 기독교 관련 서적 번역으로 돈을 벌고 있던 때의 일이다. 번역일을 꽤나 하며 우쭐하던 시기에 어느 기독교계 대형출판사에 번역 지원을 하였더니 짧은 영문 자료를 시험 삼아 번역하여 오라고 했다. 제목은 데올로구메논(theologoumenon). 조직신학 용어인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힌트를 좀 얻으려고 여러 도서관을 뒤져봤지만 내가 받은 원문이 독일어 신학백과사전 ‘사크라멘툼 문디’(Sacramentum Mundi)의 영어번역본에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만 미군 군종장교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결국 몇 주 동안이나 끙끙대며 헤매다 직역으로 원고지 15매 정도를 번역하고 그 출판사의 번역 총책임자에게 직접 제출했다. 그분은 내 원고지 몇 매를 읽다가 휙 내 얼굴에 집어 던지면서 짜증 섞인 음성으로 “이걸 번역이라고 했어요?”라고 내뱉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모욕을 당한 것에 자존심이 상하고 ‘독일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건데 헤매는 게 당연한 거 아냐?’하는 생각에 그냥 나가버릴까 하는 충동도 순간적으로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내 실력이 너무나도 창피했다. 내 원고는 내가 읽어도 이해가 안 되었으니까. 나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원고지들을 모은 뒤 벌게진 얼굴로 공손히 말했다. “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분이 플래처 선생과 다른 점은 아주 무뚝뚝했지만 “한번 해보시겠어요?”라고 내게 물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종로서적에서 당시 독일 유학 중이던 고영민 목사가 번역한 조직신학 책과 그 책의 원서를 동시에 구입했고, 그 뒤 번역문을 원문과 한 문장씩 대조하며 한 달 이상을 철저히 혼자서 나만의 게임을 했다(원서 저자가 ‘루이스 벌콥’이었는지 ‘찰스 하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번역서로는 두 저자의 조직신학을 모두 읽었다). 그 다음 데올로구메논의 의미를 이제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번역 일감을 받으러 그곳에 다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번역 원고가 그대로 최종 원고로 인정받는 사람으로 올라섰다. 1. 부동산 이야기사람들이 투자 각론을 알고자 하는 분야는 부동산·주식(채권 포함)·사업·장사일 것이다. 가장 많은 질문이 들어오는 분야는 부동산인데 사람들은 나를 전국구 부동산 상담사 정도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전혀 아니다. 나는 내가 탐내는 물건이나 내가 보유한 물건과 관련하여서만 공부하지, 전국의 부동산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당신이 갖고 있거나 구매하려는 부동산에 대해 내게 메일을 보내 봤자 내가 오랜 시간을 투자해 그 지역에 대해 조사할 리는 전혀 없으므로 시원한 답은 결코 줄 수 없다.(법적인 문제로 인해 메일을 보내는 독자들도 꽤 있는데 내가 힌트 한두 마디 정도는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법을 새로 공부하여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될 것이다.) 내가 부동산 하나를 사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곤 하였는지 당신은 모를 거다. 한 번은 100여 개 이상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며 소유주의 나이, 관계회사 재무제표, 대출 상황 등을 전부 분석한 후 마음에 드는 것들만 추려낸 적도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마음에 드는 매물이 나오기까지 3년을 계속 지켜보다가 매입하기도 했다. (비단 부동산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나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것과 관련된 것들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변기에 앉아서 한 시간 이상을 서류에 몰두한 적도 가끔 있었는데 직원은 내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은 줄로 착각하여 작은 소동이 일어났던 적도 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왜 그렇게까지 파고드느냐고 묻기도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냐고까지 하는데, 사실이 뭔지도 모르고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생각하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자칫 고통 속에서 처절한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다. 솔깃한 얘기일수록 들리는 대로 믿어 버리기 쉬운데,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서 뒤쪽에 쓰겠다.)당신이 부동산 투자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였다 할지라도 갓난아이 우유 먹이듯이 누군가 떠먹여 주기를 바란다면 조만간 사기나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 대부분의 사람은 복잡한 등기부등본 분석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친구들이나 부동산중개업소 혹은 강의팔이들이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다가 부동산을 매입한다. 전세 사기범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 역시 사람들이 일부 개X 같은 중개사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을 너무나 잘 믿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 말이 틀렸는가? 부동산 시장의 흐름부터 배워야 할 것 아닌가. 그러려면 경제신문이나 경제주간지 하나 정도는 반드시 종이로 구독하여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고? 당신 눈에 들어오는 제목의 기사만 읽을 텐데? 당신 눈에 숨어 있는 기사들은 지면을 펼쳐 볼 때나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당신 나이와 상관없이 부동산에 대해서는 미리미리 그렇게 공부 좀 하여라. 이미 20여 년 전에 “부동산에 빨리 눈 떠라” 하면서 무엇부터 배워야 할지도 말하지 않았던가(‘세이노의 가르침’ 707쪽). 2. 부동산 경매 이야기동아일보 칼럼 연재의 마지막 회(2001년 9월 12일)에서 나는 아래 글을 쓴 바 있다.“작년에 서울 강남에서 지은 지 2년 된 빌라트가 경매시장에 나왔는데 대지와 건물에 대해 모두 저당이 잡혀있었으나 대지에 대한 저당권 문제만큼은 낙찰자가 해결해야 하는 특별매각조건이 붙어있었다. 결국 대지권 없이 건물 소유권만 갖게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이런 집은 재산권 행사에 지장이 있어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입찰에 참여하여 감정가의 반값에 낙찰받았다.”그 특별매각조건은 대지 지분에 대해 근저당이 과도하게 잡혀 있는 별도 토지등기가 낙찰자에게 인수된다는 것이었다. 즉 대지 근저당권자가 경매낙찰가에서 대지분 가격을 분배하여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경매로 인해 소멸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경매 전문가들은 모두 위험한 물건이라고들 한다. 위험한 것은 맞다.대지에 대한 근저당은 건설사가 대위 등기한 것이었다. 등기부의 복잡한 기재 내용들을 살펴보니 건물분 소유권자는 A이고 대지지분의 소유자는 실제로는 A와 B였으나 등기법적으로는 A였다. A와 B는 모두 건설사에 대한 채무가 있는 상태에서 C에게 대지지분의 양도 계약을 하였으나 집합건물에서 건물분 소유자와 대지분 소유자가 다를 수는 없으므로 C의 명의로 등기가 되지는 못한 상태였다. 건설사가 대지지분에 설정한 채권최고액은 8억5000만원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낙찰받았던 금액은 4억2000만원 정도였다. 낙찰 후 내게 지대(대지사용료)를 청구한 자가 있었을까? 없었다. 등기부상 경매물건 소유자는 법적으로 A였고 낙찰된 부동산의 직전 소유자가 낙찰자에게 지대를 청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근저당권자였던 건설사에서 내게 대지지분을 사라고 권유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하려면 C가 동의하여야 하는데 C는 등기부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채권자나 채무자도 아니었고, 경매 낙찰가가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입찰하려는 사람으로 추정되었다.(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몇 %나 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이곳을 전세금 4억원에 임대하고는 이 물건이 세월이 지난 후 다시 경매되도록 하고자 했다. 왜? 이런 집합건물이 세월이 지나 다시 경매로 나올 때는 이미 이전 경매에서 특별매각조건을 낙찰자가 인수하는 조건으로 경매가 진행되었으므로(그 조건이, 근저당권자에게 돈을 실제로 주고 대지지분에 대한 별도 등기를 반드시 해지시키라는 것은 전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건물분과 대지분의 소유자는 동일인으로 간주된다. 결국 두 번째 경매에서는 대지분에 대한 별도의 등기는 사라지고 감정가에서의 건물분과 대지분의 비율대로 낙찰가가 분배되어 대지분 근저당권자에게 지불된다. 결국 1차 경매에서는 전세금 수준의 비용으로 낙찰을 받고, 전세금을 받은 후 세월을 기다렸다가 다시 경매로 처리되게 낙찰자가 “자의적으로” 만들면 큰돈을 투자하지 않고서도 부동산 가격 인상분 정도는 그대로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좀 지난 후 이루어진 두 번째 경매에서 낙찰자는 C였다. 내가 회수한 돈은 전세금 등을 제외하고 약 1억9000만원이었는데 투자 기간이 예상보다는 길었지만 세금 등을 포함하여 4000만원 정도 투자하고 거둔 수익으로는 괜찮았다.자, 내가 동아일보에 특별매각조건 관련하여 칼럼을 쓰고 나서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내게 이 경매와 관련하여 질문한 자가 있었을까? 한 명도 없었다. 오늘 날짜로 검색하여 봐라. 토지별도등기 인수라고 하는 특별매각조건이 있는 경우 2번의 경매를 이용하여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단 한 명이라도 글을 올리거나 책에 쓴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22년 전 칼럼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돈이 돈을 버는구나’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지식이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다. 먼저 지식을 쌓고 사람들이 지식 부족으로 입찰을 꺼리는 경쟁이 약한 물건을 찾아라.” 지식을 쌓으라는 말은 스스로 공부하라는 뜻이다. 경매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의 책이 아니라 경매법 자체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책부터 먼저 읽고 공부하여라. 등기법 역시 경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법원공무원교육원 교수였던 분이 쓴 ‘집합건물의 등기’(신언숙·육법사)인데 오래전에 절판되었다. 절판된 책의 중고품을 몇만원씩 지불하고 사는 사람을 나는 평상시에 도서관을 가까이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 본다. 대한민국에서 출판된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전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협약된 도서관에 가면 지정된 PC에서 국립중앙도서관의 도서 원문을 볼 수 있고 대부분 복사도 가능하다. 협약된 도서관은 공공도서관·대학도서관·전문도서관 등이 있는데 당신이 사는 동네에도 틀림없이 있을 작은도서관(전국에 약 7500개나 있다)도 협약 도서관이고 해외에 있는 외국 도서관들 중에도 협약 도서관이 있다. 작은도서관에서 절판된 책을 읽다가 보유하고픈 부분을 복사하는 데 드는 비용은 A4 1장당 40원이므로 2쪽씩 인쇄하면 1쪽당 20원이다. 법적으로는 책의 3분의 1분량 정도만 복사가 허용된다.(나는 국회도서관도 몇 번 이용한 경험이 있는데 민간인용 주차장이 너무 멀다.) 전세 사기 문제가 심각하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동산중개사들을 불러 교육을 시키는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계약을 맺고 임대차 계약을 맺은 후, 주인이 바뀌면 HUG에서 임대 조건이 바뀐 것으로 치부하여 보증금 반환을 거부할 수 있으니, 임차인에게 매달 등기부등본을 떼 보고 주인이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하도록 안내하라고 한다고 들었다(다중언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공인중개사 MINO가 알려주었다). 미쳤나? 대한민국에서 매달 자기가 사는 집 등기부등본을 떼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외국인 임차인은? 그것보다는 집주인이 바뀌면 자동으로 임차인과 HUG에 알람이 가도록 시스템을 바꾸거나, 시스템 변경에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면 모든 임대차계약서에 “부동산 소유권이 변경되는 계약이 발생하면 계약일로부터 3일 이내에 임차인과 HUG에게 동시 통보하여야 한다. 이를 어기는 경우 임대인은 이러저러한 벌을 감수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강제 삽입되도록 하면 어떨까? 3. 사업과 장사 이야기1980년대 말, 여름 길거리에 있는 건물 지하 1층의 식당이나 찻집 같은 곳을 가게 되면 대부분 퀴퀴한 냄새가 났다. 지하층 벽체에 스며든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생기면서 나는 냄새였고 습기를 제거하는 전기 제습기를 설치하면 해결될 문제로 보였다. 그 당시 청계천과 용산 전자상가들의 상점들에서는 미국 월풀(Whirlpool)의 제습기가 판매되고 있었는데 가격이 40만원대 후반이었다. 나는 경쟁력 있는 제습기를 수입하여 판매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월풀 제습기를 하나 구입하여 사용자 입장에서 꼼꼼히 살펴보았다(제습기의 작동 원리 및 부품들의 기능 등을 배우고, 마케팅 측면에서 월풀 제습기에 있는 약점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약점이 없으면 포기하려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긴다고 하지 않던가). 제습기는 거의 대부분 바닥에 놓게 되므로 전원 스위치나 제습 강도를 조정하는 스위치 같은 것은 모두 상부에 있어야 할 텐데 월풀 제습기의 스위치들은 사용자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제습기 전면에는 물 세척이 가능한 공기필터가 있고 하부에는 습기를 빨아들여 응축시킨 물이 고이는 물통이 있었다. 물통이 가득 차면 표시등이 켜져서 물통을 비워야 함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물통을 비우려면 벽체 가까이에 놓은 무거운 제습기를 앞으로 잡아당긴 뒤 그 후면에서 물통을 빼내야 하는데 제습기 본체에 바퀴가 달려있기는 하지만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을 빼내는 과정에서 물이 출렁거렸고 상당히 번거롭게 느껴졌다. 물통을 빼내는 곳이 제습기 전면에 있고, 응축된 물이 직접 건물 내 배수구로 나가도록 할 수 있는 호스 연결구가 뒷면에 있는 제품이 훨씬 더 좋아 보였다. 디자인도 월풀의 고전적 디자인보다는 모던한 디자인의 밝은 색상이 더 좋아 보였다. 제습 용량은 크기에 따라 달랐지만 회사별 차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 페더스(Fedders)의 제품이었다.그 제품을 즉시 수입했을까? 사업이 그렇게 쉽게 진행되겠는가? 법적으로 복병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판매용 전기용품은 수입 이전에 KC 안전 인증을 받아야 수입 통관을 할 수 있었다. 안전인증을 받는 과정은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했으며 사후서비스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도 밝혀야 했는데 나에게는 버거운 과제였다(현재 수입 하이브리드 슈퍼카 중에는 충전 코드에 대한 안전 인증이 쉽지 않기에 이미 인증을 받은 국산 제품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그 당시 알게 된 것: AC(교류) 전원을 사용하지 않는 DC(직류) 전기용품은 안전 인증이 면제되었기에 AC를 DC로 바꾸어 주는 트랜스를 이미 인증받은 국산으로 제공하면 된다는 것. 이를테면 워터픽(구강세정기)같은 경우 220V용이면 수입판매하는 데 애를 먹지만 직류용인 경우는 국산 트랜스를 끼워 팔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오디오 스피커 같은 것은 앰프에 물리는 것이므로 안전 인증이 없다는 것(이런 규정들이 요즘은 전자파 문제 때문에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자, 어쨌든 제습기는 AC 전원을 사용하여야 했다(그 당시는 110V와 220V가 혼용되던 시기였다). 나는 관세청의 품목별 수입 제한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두꺼운 관세품목 분류표(HS code) 책자를 구입하여 살펴보았고 거기서 제습기는 전기사용량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KC 안전 인증이 면제되는 산업용으로 분류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페더스의 제습기 중에서 하루 제습량이 가장 큰 제품 한 종류만을 수입하기로 하고 페더스 본사의 아시아 담당자와 접촉하였다. 여름이 오기 전, 컨테이너 1개분을 꽉 채운 제습기가 도착하였다. 당시 내 사무공간까지의 도착 가격은 제습기 1대당 25만원 선이었고 판매가격은 경쟁사 제품과 비슷하게 48만원으로 정했으며 기존에 컴퓨터나 음향 설비를 판 곳과 도서관들에 안내문을 먼저 돌렸다. 청계천이나 용산 전자상가에는 단 1대도 위탁판매용으로 전달하지 않았고 할인판매도 금지하였다. 판매 방식은 방문 구입 혹은 현금이체(화물발송비 별도)만 하였고 불티나게 팔렸기에 추가 수입을 부랴부랴 하였다. 판매가 잘된 이유는 경쟁사 제품의 약점들을 정확하게 파고들면서 무료 사후서비스를 무려 5년으로 해주었기 때문이다(퀴즈: 나는 무슨 배짱으로 5년을 내걸었을까?) 구매자가 고장 난 제품을 가져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30분 이내에 수리해 전달하며 3회 이상 고장이 나면 신품 교환 조건이었다. 실제로 고장 난 제품이 들어오면 신품에서 겉 케이스만 제거하여 교환한 후 바꿔주었고(15분도 안 걸렸다) 손님이 간 후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지를 체크하였는데 내부에 있는 컴프레셔는 삼성이 만든 것이었음도 그때 알았다.제습기 판매로 1년마다 서울 맨션아파트 한 채 값 이상의 수익을 올린 지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페더스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의 큰 회사에서 내가 수입하던 물량의 2배를 수입 약정하겠다면서 독점권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미원통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포기하겠다고 했다. 물량을 키우려면 용산과 청계천에 상품을 도매가격으로 깔아야 하고 전담 영업사원도 지정하여야 하며 외상값을 못 받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결국 물량을 2배로 키워도 내 손에 쥐어지는 수익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중단하기에는 수익이 컸기에 멕시코로 날아가서 페더스의 남미 담당자와 접촉하였다. 큰 조직일수록 영업 담당자들은 서로 정보 공유를 안 하므로 남미 담당자는 나에 대해 전혀 몰랐고 손쉽게 물건을 주문할 수 있었다. 컨테이너들이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것을 한국으로 보낸 뒤 귀국하였고 더 이상 가져올 물건도 없었으므로 천천히 느긋하게 팔았다(물량을 2배로 늘려 수입하겠다고 한 그 회사에서 그 후 따로 물건을 들여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나의 방해 공작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미수금 발생은 전혀 없었고 나는 5년 서비스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이 이야기에서 내가 독자들에게 알려주려는 내용은 첫째 어 이게 왜 없지? 하는 자각, 둘째 경쟁제품의 약점 파악, 셋째 법적 장애물을 뛰어넘는 지식, 넷째 많이 파는 것이 장땡은 아니라는 것, 다섯째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5년 무상서비스 약속 준수이다. 장사는 어떨까? 이미 내가 내 책에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사람들 대다수가 망하여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고도 했다. 어느 독자가 그 흔하디흔한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오픈하였는데 몇 개월도 안 되어 대박이 났음을 전해왔다. 그 비법이 무엇이었을까?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좁은 길로 간 것뿐이었다. 정말로 비법이기에 공개하기 어렵다(내게 묻지 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장사를 할 때 남들 하는 것처럼 하면 망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약속은 지켜야 약속이다. 몇몇 독자가 내게 알려준 내용: 어떤 온라인 강의를 “100% 환불보장”이라고 하여 들었는데 막상 환불 신청을 하니 아래와 같이 답이 왔단다.“100% 환불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전체 강의를 수강 및 미션을 수행하세요. 2.배운 내용을 실전에서 실행하세요. 3.xxx 대표가 직접 수업에 배웠던 지식에 대하여 질문드리겠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모두 답변을 완벽하게 하세요. 4.그럼에도 삶의 변화가 없었다면 환불해 드립니다.”그래서 찾아보니 제목은 ‘ 돈이 따라오는 억대 소득의 자수성가법’이고 화면을 넘기면 ‘EVENT2 100% 환불보장제’라는 제목으로 “환불보장제 적용”이라는 구호를 여러 개 배경에 깔아놓고 강사 얼굴이 나오면서 “수강 후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면 100% 환불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나온다. 다시 화면을 넘기면 “안 되면 진짜 말씀하세요. 100% 환불보장”이라는 글 밑에 강사 얼굴이 나오고 “수업을 모두 수강하고 성과가 나지 않는 경우는 100% 환불해 드리겠습니다”고 나온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100% 환불기준”은 마지막 화면 하부까지 가야 지금까지 나왔던 글씨들보다 훨씬 작은 글씨로 나온다(부동산이나 보험 광고에서 자기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아주 작은 글씨로 써 놓는 것과 유사하다). “100% 환불기준”을 읽은 후 쌍욕이 전혀 나오지 않고 말 그대로 100% 환불보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애초부터 환불 약속을 지킬 생각은 있었을까? 아무도 환불을 받아 가지 못했으므로 100% 모두 만족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도대체 누가 이렇게 광고하는 것일까? 심리전문가를 자칭하며 자기 강의만 들으면 인생이 바뀐다고 말하는 박세니다(강의 중에 박세니가 “세이노 그 사람 돈 많으면 뭐해, 정신과 다니는데”, “세이노가 그렇게 돈 많이 벌어봤자 매일 정신병약 먹고 있는데 무슨 소용이야”라고 틈틈이 걱정해 준다는 제보도 받았다. 내가 내 책에서 대장동 사건으로 불안해져서 정신과를 다녔다고 한 얘기 때문인 듯싶다. 그때 정신과 의사인 동창을 찾아갔더니 여러 가지 심리 조사와 몇 차례 상담 후 이렇게 얘기했다. “의사로서 뭘 해줘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너에게는 어떤 약도 의미가 없다. 심리 조사에서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나오는 너 같은 사람을 나는 처음 본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런 네가 관련되지도 않은 정치적 부패 사건에 불안해하며 이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다. 네가 왜 그거까지 걱정을 하냐.” 어쨌든 현재 3가지 비타민과 가벼운 고지혈증 약을 매일 먹는 나에게 박세니는 정신병약까지 먹이고 싶은가 보다).100% 환불보장은 일정 기간 이내에 구매자가 불만족하면 무조건 100% 환불하는 것이지 구매자가 판매자의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처음일 것이기에 확실히 박세니는 선구자인 것 같고 “100% 환불보장”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최면을 일단 걸어 놓고 마지막에 그 환불조건을 작은 글씨로 표시하는 것 역시 최면을 강조하는 박세니답다. 4. 보험보험은 위험 대비용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 나는 이견이 전혀 없으나 보험을 대여섯 개씩 드는 것은 보험설계사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본다. 꼬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보험회사가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고 수익을 만들어 내는지는 알아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보험사들의 비밀 하나부터 얘기하자. 오래전 12월이 되면 나는 계좌에 20억원 정도 준비해 놓곤 하였다. 그때가 되면 유명 보험사 지점장들로부터 청탁이 들어왔는데 12월 31일 이전에 5억원을 입금하면 즉시 5000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1년 후 5억원에 대해 은행 정기예금보다 조금 더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것이었다(5000만원은 그 당시 백화점 대형봉투 하나에 만원권으로 모두 들어갔다). 당연히 나는 응하였고 연말을 기다리기까지 했다(이걸 몇 년이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 5000만원은 수십 명의 보험설계사 수수료로 떼어놓은 금액이었는데 보험설계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자영업자 신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던 시기였음에도 그런 일이 가능하였다는 것은 세무서나 감독기관도 잘 모르는 구석이 보험사들에 있었다는 뜻이고 지금도 여전히 일부는 남아있지 않을까?예를 들어, 혹시 기존 보험은 해지하고 새 상품으로 갈아타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걸 보험업법에서는 자사 승환이라고 하는데, 타사 승환도 있다. 자사 승환은 가입자의 금전적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가입 나이도 늘어나 예전보다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기에 6개월 이내의 자사 승환은 불법으로 금지되고 있음에도 기간에 상관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 보험사에도 이익이 되고 설계사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환 요청은 일단은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보험은 크게 생명·손해·질병 관련으로 분류된다. 보험사에 가장 이익이 되는 분야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하는 생명보험이다(보험료는 가장 비싸지만 갑자기 죽을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생명보험 영업은 기본적으로 인맥을 바탕으로 한다. 당신이 보험을 들게 된 것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찾아와 권유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보험설계사는 없는 돈에 수입차를 사서 골프도 치러 다니고 명품도 걸치며 종교모임은 물론 갖가지 행사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 인맥이 없는 경우에는 보험 가입에 관심이 있는 고객명단(DB)을 회사에서 받는다. 그 명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예를 하나 든다면 홈쇼핑에서 “상담만 받아도 사은품을 준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의 정보가 분석·집약되어 DB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허접한 DB도 만들어지고 좋은 DB도 만들어지게 된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1만원 할인쿠폰을 준다는 것도 당신이 예뻐서 쿠폰을 주는 것이 아니다. 여러 유명 생명보험사들이 그 전속 대리점 및 “모집위탁계약을 체결한 자”(보험설계사를 의미한다) 등에게 줄 DB를 만들고자 당신의 개인정보를 얻으려고 1만원 이상을 지불하기 때문이다(확신하건대 그 DB 중 일부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불법적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회사에서 준 DB에 의존하면 영업 수당도 줄어들고 인맥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그만두는 설계사들이 계속 나온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설계사들이 끊임없이 충원되어야 하니 고수익을 내세워 유인하는 것이다.요즘 보험설계사들은 생명보험의 하나인 종신보험을 상속세 절세용으로 국세청이 추천하는(또는 인정하는) 방법이라고 너도나도 선전하면서(인터넷 검색하여 봐라) 국세청이 발행한 ‘세금 절약 가이드’에 최적의 상속세 마련 방법으로 소개되었다고까지 말한다. 정말? 내가 2020년·2021년·2022년·2023년도의 ‘세금 절약 가이드’를 뒤져보았지만 “자녀 명의로 보장성 보험을 들어 놓는” 것이 여러 가지 상속세 납세자금대책 중 하나로 언급되어 있을 뿐이지 종신보험이 최적의 상속세 마련 방법으로 소개되었다는 것은 완전 뻥이다. 왜 뻥을 칠까? 그게 보험설계사에게 가장 고액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상품이어서 그렇다. 어느 정도나 수수료를 주기에 그럴까?(종신보험이 상속세 대비책이 되려면 보험료를 반드시 소득이 이미 있는 자녀나 배우자가 납부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결국 종신보험은 상속인들이 자기들 돈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보험금을 받아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피상속인이 빠른 시일 내에 사망할수록 유리하고 오래 살수록 불리하다.) 박세니의 ‘억대소득 세일즈맨 양성-박세니마인드코칭 삼성생명 협업프로젝트’를 보면 “억대소득 세일즈맨이 되는 기회를 드리려고”한다면서 선발 과정을 이렇게 명시했다. 요즘(2023년 11월) 박세니의 오프라인 강의는 ‘강의만족도 98%, 강의추천률 98%’을 내세우면서 초급·중급·고급 과정이 165만원이며 최면반이 따로 있다. 입금하면 ‘박세니마인드코칭 수강안내(환불규정안내)’를 알림톡 등으로 받게 되는데 납입한 강의료는 강의 시작일 3일 전 ‘오후 5시 이후 환불·변경 불가’로 나오며 “100% 환불”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매주 중급반과 고급반 강의 후에 있는 미팅에서는 삼성생명 WM(Wealth Management·자산관리이지만 실제는 보험상품 판매다) 영업직원들이 십여 명 참석하여 보험영업을 권유한다. “고급반 수업도 보험영업에 도움 되는 내용 위주이며 ‘삶을 바꾸려면 높으신 분을 최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최근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 제보해 주었다.2023년 6월 22일, 인스타그램에서 박세니는 4월부터 삼성생명의 파트너가 되어 제자들을 연결시켰다고 하면서 4월에 11명으로 시작해 26명이 합류하였고 삼성생명보험으로부터 6월 21일 2692만5135원을 첫 소득으로 입금받았다고 하였다. 파트너가 되었다는 말은 삼성생명의 보험설계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보험설계사를 삼성에서는 FC(Financial Consultant)라고 하지만 회사마다 제각각이어서 영문 호칭이 15개 이상이고 재무상담사·금융전문가·인생상담사 등으로도 부르지만 좀 더 멋있게 보이려고 지어낸 것들일 뿐이고 법적으로는 모두 다 보험상품을 파는 보험설계사이다. FC는 보험사의 직원이라기보다는 자영업을 하는 개인사업자이며 관리자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관리자인 경우에는 자기 밑에 영업조직을 두며 그 조직원들의 활동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게 되는데 박세니는 이 경우에 해당된다. 박세니는 삼성생명 본부장으로부터 8월 11일 ‘경력도입 우수 FC’ 특별상을 받은 사진도 올리면서 “억대 소득 정도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경력도입’이란 다른 회사에서 보험설계사를 했던 경험자를 삼성생명에 들어오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박세니가 “억대소득 정도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억대소득을 달성하는 대표적 방법은 상속세 걱정을 하고 있을 부유층 고객이 종신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다(그래서 박세니가 “높으신 분을 최면에 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월 1000만원을 납부하는 종신보험에 가입하도록 한 보험설계사는 도대체 수수료를 얼마나 받게 될까? 법적으로는 월 납입액의 12배인 1억2000만원이 상한선이지만 법인보험대리점(GA)의 경우 보험사로부터 이른바 ‘시책비’(판매촉진비)를 별도로 받아서 보험설계사에게 그 이상을 지급하기에 2억원 정도도 받는다. 보험 가입자가 1년 이상만 보험료를 납부하는 한 그 수수료는 설계사의 수입으로 남는다. 속된 말로 1년에 1명의 부자만 가입시키면 놀고먹을 수 있게 되고, 심지어 누군가 가입한 것처럼 만들어 놓고 자기 돈으로 1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후 1년 후 해지하여도 수수료가 남을 수 있다(이른바 차익거래라고 한다. 보험업계에서는 물론 금감원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은 하는데… 글쎄다). 삼성생명은 GA 자회사들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박세니가 소속된 삼성생명 ‘헤리티지 센터’는 헤리티지(유산)라는 명칭이 암시하듯이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다. 생명보험 영업조직은 리쿠르팅(채용)-교육-영업으로 이어지는 경로 관리가 핵심이며 일종의 다단계적 성격으로 자신이 만든 조직의 보험설계사 실적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게 되는데 조직이 커지고 실적이 올라가면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이다. 박세니는 FC로 활동하면서 소위 제자들을 리쿠르팅하여 영업에 투입 활용하는 것이다. 중도 포기자가 생기면 새로 인원을 채워 놓으면 된다. 어째서 그 제자들은 생명보험사 영업직 입사 면접은 웬만하면 다 합격하는 것이고 보험 영업방식은 유튜브에 엄청나게 많은데도 박세니의 교육 강의에 돈까지 낸 후 자기 수수료의 일부가 박세니에게 할당되도록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박세니의 말대로 했더니 높으신 분이 최면에 잘 걸려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놀랍고 고마워서?).박세니 강의의 뼈대는 멘탈 프로그램을 팔면서 삼성생명에서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는 구체적 취직 제안까지 하는 것임을 볼 때, 삼성생명 입사를 미끼로 ‘쎈멘탈 판매’ 등 개인 장사를 직접 연계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문제가 될 텐데 삼성의 준법감시팀이나 윤리경영팀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을 보면 좀 놀랍다. 게다가 박세니의 강의는 주로 ‘돈을 벌고 최고가 되는 것’을 자기 최면과 타인 최면을 통해 이루라는 것인데, 자기 최면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타인 최면은 “높으신 분을 최면에 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서 나오듯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심리적 지배) 같은 시도이고 처음 만난 여자에게 최면을 시도하여 뭔 짓을 하려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다(이 글을 읽고 종신보험이 보험설계사에게 그렇게나 수당을 많이 주는데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과연 그 보험이 운영될까를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눈이 떠진 것이다). 5. 주식주식에 대해서는 2008년 10월 11일 딱 한 번 다음 카페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삼성전자가 내 관심사고 포스코는 아니다”라고만 언급한 바 있다. 그 당시 그 말을 하고 나서 후회를 정말 많이 하였는데 내가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 주식을 사도록 유도한 것과 다름없는(그래서 주가가 더 오르도록 유도하여 수익을 더 보려는) 행동이 아닌가 하는 자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조차 90% 이상이 이 주식이 좋다는 식이며 목표주가를 높이 잡는다. 왜? 주식 거래량이 늘어나야 자기네 이익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리딩방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모두가 그런 심보로 주식을 추천한다. 아 물론 그런 심보를 역이용하여 초단타 위주로 하면 좀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세이노라는 이름으로 쓰는 글을 통해 내 사익이 증가한다면 나 자신이 X 같은 나쁜 놈으로 전락하게 됨을 잘 안다. 언젠가 L 및 K 재벌가 사람들(손자들)의 작전회의에 각 한 번씩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것은 ‘결국 개미들이 밥이 되는구나’였고 1원도 가담하지 않았다. 약 1년 후 K 재벌의 직계 가족이 구속되고 몇 개월 후 L 재벌의 직계 가족도 구속되었는데 내가 양쪽 모두 가담했다면 가중 처벌을 크게 받았을 듯싶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그 작전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를 K 재벌에 연결해줬던 동창 녀석은 15억원 정도를 날렸다. 내가 개미들에게 하고픈 말: 주식으로 큰 수익이 났을 경우 당신이 똑똑하고 주식투자 재능이 있어서 돈을 번 것은 절대 아니므로 전업투자자가 되겠다는 개꿈은 갖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게 전업투자를 하다가 배우자도 모르게 엄청난 빚을 진 후 내게 ‘어찌하오리까’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비정상적으로 수익이 발생하고 있으면 빨리 처분하여야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계속 집어넣는 짓도 절대 하지 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성경 말씀도 있다(야고보서 1:14). 통정 거래로 주가를 끌어올렸다가 폭삭 망한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 하한가 사태에서 무려 1500명의 의사들이 위임 매매를 하였던 것도 ‘욕심에 끌려 미혹’당한 것이다. 이때 역시 내게 수백억원을 날렸는데 어찌하오리까 메일을 보낸 독자가 있었다.거듭 강조하는 것이지만 주식 투자는 여유 자금으로 하여야 하는 게임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이길 확률은 10%도 안 된다. 그래서 내가 20여 년 전에 썼던 글은 아직도 유효하다. “편안하게 빨리 돈 벌고 싶어서 애를 태우는 자들이여. 평생 가난의 괴로운 숯불이 이마 위에 올려지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채권은 어떨까? 채권은 인터넷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식 정보보다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다. 국고채는 자본차익(금융투자수익)이 비과세이기에(2025년부터 과세되는 것으로 예고되어있다) 종종 종합소득세율이 이미 40% 이상 되는 경우에는 정기예금 이자 수익보다 세후 실수령액이 더 높다. 즉 종합소득세율이 낮은 경우에는 좋은 투자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좋은(회사가 망할 가능성이 아주 낮은) 회사채는 개미들에게는 기회가 잘 안 간다. 2023년 11월 2일 대한항공 회사채 수요예측이 흥행에 성공하였다는 기사가 그다음 날 떴다. 수요예측은 증권사나 투자사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큰손들에게만 연락하여 예상 투자액을 물어보지 개미들에게는 전화도 안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잣돈이 모이면 좋은 회사채들은 정기예금보다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으므로 경제기사를 평소에 꼼꼼히 잘 읽어나가라. 요즘은 인터넷 뱅킹에서 10만원으로도 채권투자가 가능하므로 경험을 쌓아가며 소소한 기회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홍콩 H지수 ELS의 헤지자산 74% 정도는 국내 채권이므로 ELS의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상반기에는 그 시점에서도 만기가 남아있는 채권들이 ELS 자산 현금화를 위해 쏟아져 나올지 여부도 주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다만 나는 ELS, ELB, DLB, DLS 등등 금융공학자들이 만든 상품들은 가까이하지 않는 고집이 있다.) 6. 팩트를 보는 법2014년 12월 5일 발생한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된 내 글을 내 책에서 읽고 나서(541쪽), 마카다미아를 봉지째로 주는 것으로 서비스 매뉴얼이 바뀌었는데 그것을 조현아 부사장이 모르고 있었고 세이노도 모르고 있었다는 내용이 종종 독자 메일로 오곤 하였다. 그래서 내 책 17쇄부터는 552쪽에 ‘손님에게 알레르기가 있으면 먹지 않을 것이므로 봉투째 준다는 얘기를 누가 하던데, 나는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기 일등석에서 항공사를 불문하고 그런 경우를 경험한 바 없다’고 첨언하였고, 실상을 좀 더 조사해 봤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언론의 기자들이 팩트(Fact·사실)를 제대로 못 보고 비틀어 보도한 전형적인 가짜 뉴스였으며 나무위키나 위키백과도 대동소이했고,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하는가’ 책이 생각나는 사건이었다.(팩트를 골라내는 법을 알게 되면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에서도 유리하여진다.)아마 당신은 그 비행기에서 승무원의 땅콩 서비스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조현아가 서비스 매뉴얼이 바뀐 것을 모르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 매뉴얼이 바뀐 것을 알고는 사무장에게 화살을 돌려 화풀이를 한 것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땅콩을 봉지째 주는 대한항공 홍보영상 장면도 있다고 하여 나도 봤는데 광고 영상을 찍는 사람들은 화면이 예쁘게 나오는 것에 신경을 쓰지 서비스 매뉴얼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문제의 발단이 비행기 이륙 전 조현아에게 객실 승무원이 승객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마카다미아(언론에서는 땅콩, 콩, 너츠 등으로 표기했다)를 봉지째로 전달한 것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날 회사 내부 이메일로 인증받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블라인드’의 대한항공 게시판에는 이런 내용이 떴다고 한다(동아일보 2014-12-10).“음료와 마카다미아 너츠를 줄 때 봉지째 주느냐? 규정이 뭐냐?(규정은 음료를 요청한 승객에게 마카다미아 너츠를 봉지째 보여주고, 먹겠다고 하면 갤리에 들어가서 뜯어서 작은 그릇에 담아줌)…갤럭시노트 10.1을 꺼내 규정을 보여줌.(당연히 잘못이 없는 객실 승무원)…”2014년 12월 10일 한겨레신문은 서비스 매뉴얼을 단독 입수하여 “조현아의 딴죽? 승무원은 ‘매뉴얼’대로 했다”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10일 <한겨레>가 단독 입수한 대한항공의 ‘일등석(FR/CL) 웰컴 드링크 SVC(서비스) 시 제공하는 마카다미아 너츠 SVC 방법 변경’ 공지를 보면, 승무원은 “음료와 함께 마카다미아 너츠를 포장 상태로 준비하여 보여준다(showing)”고 명시돼있다. 이어 “마카다미아 너츠를 원하는 승객에게는 그릇에 담아 가져다드릴 것을 안내해 드린 후, 갤리(Galley)에서 버터볼(작은 그릇)에 담아 준비하여 칵테일 냅킨과 함께 음료 왼쪽에 놓아드린다”고 돼 있다.이 매뉴얼 변경이 공지된 것은 2012년이다. 변경 내용은 승객에게 ‘봉지째 마카다미아 너츠를 보여주라’고 한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 다만 그 뒤 원하는 승객에게 갖다줄 때 ‘봉지째 제공’하던 것을 ‘그릇에 담아 제공’하도록 바꾼 것이 전부다. 미주노선을 운항한 적이 있는 복수의 대한항공 승무원은 “지난 5일 뉴욕발 항공기 승무원이 봉지째 너츠를 갖다 보여줬다면 이런 매뉴얼에 어긋나지 않는다.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2014년 12월 10일 경향신문은 대한항공 측은 승무원의 ‘잘못’을, 노조 측에서는 조현아 부사장의 ‘착각’을 주장하고 있음을 보도하였다.“여전히 말이 엇갈리고 있지만 승무원이 1등석에 타고 있던 조현아 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 견과류를 봉지째 건네자 조 부사장이 그릇에 담아오지 않았다고 지적을 했다는 게 대한항공 측의 설명이다. 반면 노조 측은 “드실 것”인지 승객에게 물어보기 위해 규정대로 봉지를 들고 갔는데 조현아 부사장이 화부터 낸 것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그리고 하루 뒤인 2014년 12월 11일 경향신문은 그 매뉴얼의 영어 원문을 보여주면서 아래와 같이 보도하였다.“…당시 문제가 된 것은 마카다미아를 어떻게 서비스하느냐였다. 승무원은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갔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에 대해 왜 봉지를 뜯은 뒤 마카다미아를 버터볼(그릇)에 담아오지 않았느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지난 10일 입수한 대한항공의 일등석 객실 서비스 매뉴얼을 보면 “웰컴 드링크 서비스 시 음료와 함께 마카다미아넛을 포장 상태로 준비해 보여준다”고 돼 있다. 이어 “승객이 마카다미아넛을 원하면 갤리(음식을 준비하는 곳)에서 버터볼(그릇)에 담아 칵테일 냅킨과 함께 음료 왼쪽에 놓는다”고 돼있다. 2012년부터 이 매뉴얼대로 서비스해오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매뉴얼을 잘못 알았다는 것이다.”2014년 12월 19일 경북매일신문 기사 내용: “조현아는 자신이 탄 비행기에서 땅콩을 봉지째로 줬다는 이유로 사무장을 내리라고 지시해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이 공항에 내린 후 비행기가 출발하게 했다. 비행기 기내 규정은 땅콩을 요청한 승객에게 땅콩을 봉지째 보여주고, 먹겠다고 하면 갤러리에 들어가서 뜯은 후 작은 그릇에 담아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 사무장이 했던 행동은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다.” 조현아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결국 구속 기소되었다. 2015년 1월 16일 경향신문이 조현아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입수하여 분석한 단독 기사에 의하면 12월 5일 현지시간 0시 43분 “승무원 견과류 봉지째 쟁반에 받쳐 제공. 조 전 부사장 승무원에게 ‘매뉴얼 가져오라’ 지시. 박창진 사무장 매뉴얼 담긴 태블릿 PC 가져오자 조 전 부사장 격분”으로 언급된다. 0시 53분에는 “조 전 부사장, 승무원 김 씨의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박 사무장에게 ‘당신 잘못이야. 네가 내려’ 지시”하였다고 한다.즉 승무원이 봉지째 쟁반에 받쳐 제공했음이 분명하므로 경향신문의 12월 11일자 기사는 틀린 뉴스가 되고 경향신문 12월 10일자 기사에서 나온 노조의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른 것이 된다.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공소장은 물론 여러 기사에서 “조 전 부사장, 승무원 김 씨의 잘못 없었다는 것 알면서도”라고 하거나 “뒤늦게 조 전 부사장은 변경된 매뉴얼에 따라 김 씨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을 알게 됐다. 이번에는 적반하장격으로 박 씨에게 ‘화살’을 돌렸다”는 식으로 나온다. 과연 그럴까?(참고로 “조 전 부사장 격분” 이유는 승무원들이 서비스를 준비하는 공간(갤리)이 바로 앞에 있고 그곳에 종이 매뉴얼이 있는데 사무장이 태블릿PC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비행기 이착륙 시 승무원이 하는 안내방송 역시 제아무리 고참 승무원일지라도 종이 매뉴얼을 보면서 하는 것이고 종이 매뉴얼들은 언제나 그것이 필요한 장소에 놓여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격분”할 만한 것이었냐고? 그 판단은 당신이 어떤 조직에서 그 정도 지위에 올라갔을 때까지 유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격분” 이후의 행동들은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2015년 2월 2일 2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무려 11시간이나 계속된 결심공판법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언론보도를 축약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과연 기자들이 11시간 동안 그곳에 계속 있었을까? 검사의 질문들은 동아일보에서 상세히 보도했으므로 궁금하면 찾아봐라.)경인일보(2015년 2월 2일)조현아는 기내에서의 행동이 여승무원 김 모 씨의 서비스 위반으로 인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박창진 사무장이 매뉴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사건의 원인제공을 승무원과 사무장이 했다는 것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승무원의 서비스가 매뉴얼과 다르다고 생각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매뉴얼을 찾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조현아는 기소된 이후 진행된 두 차례 공판 동안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것과 달리 조심스럽긴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진술했다. 특히 그는 당시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 방식이 ‘명백한 서비스 매뉴얼 위반’이라고 강조했다.조현아 전 부사장은 당시 여승무원이 ‘웰컴 드링크’를 서비스한 것과 관련해 “웰컴 드링크는 매뉴얼에 ‘오더 베이시스’(Order Basis)라고 설명돼 있는데, 이는 승객이 원하는 것을 물어보면 갖다 주는 것”이라며 “하지만 여승무원은 (물어보지 않은 채) 물을 갖다 주면서 콩과 빈 버터 볼을 갖고 왔고, 이는 분명한 매뉴얼 위반”이라고 밝혔다.이는 앞서 박창진 사무장이 증인신문에서 “관련 매뉴얼이 작년 12월 초 ‘봉지째 보여주며 먹을지 묻고, 먹겠다고 하면 작은 그릇에 담아 제공’으로 개정됐고, 이는 조 전 부사장의 결재로 공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 것과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다.동아일보(2015년 2월 3일)결심공판에서 조 전 부사장은 어떤 부분이 위반이냐는 질문에 “자신은 물을 갖다달라고 했는데 물과 함께 견과류를 가져왔기 때문에 매뉴얼 위반”이라고 답했다. 이는 사건 초기 조 전 부사장이 “견과류를 봉지째 보여주면서 의향을 물은 부분”을 문제 삼으며 “승객 의향을 먼저 물어본 뒤 종지에 담아 서비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달라진 대목이다.본보 보도(지난해 12월 15일자 A14면)와 재판 시 공개된 매뉴얼에 따르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 출발편에는 견과류 서비스 관련 내용이 없다. 세계 공항은 보안 규정에 따라 항공기 문이 닫히기 전까지 주류와 음식을 담아놓는 실(seal·카트의 봉인)을 열 수 있는 곳(실 오픈 가능)과 열지 못하는 곳(실 오픈 불가)으로 나뉜다. 케네디 국제공항은 ‘실 오픈 불가’ 공항인데 조 전 부사장은 사건 초기 ‘실 오픈 가능’ 공항에서 사용하는 매뉴얼에 근거해 사무장과 승무원의 서비스가 틀렸다고 한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이 착각한 부분이다. 주간동아(2015년 2월 29일) “당시 물을 갖다 달라는 저의 말에 승무원은 콩과 빈 버터볼 종지를 가져왔습니다. 명백한 매뉴얼 위반입니다. 서비스가 매뉴얼과 틀리다고 생각해 확인하기 위해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매뉴얼을 찾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뒤에 있었던 저의 행동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조선비즈(2015년 2월 6일) 검찰이 피고인 심문에서 “사건의 발단이 승무원이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조 전 부사장은 “분명히 매뉴얼에 따라 (마카다미아를) 가져 오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고 답했다. 나무위키에서는 “2007년 이후에는 봉지를 들고 가서 보여주고 취식 여부를 물어본 뒤 먹겠다고 하면 까서 접시에 담아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승무원은 이 지침을 완벽하게 준수했다”고 나온다.위키백과에서는 “이륙하기 전에 대한항공 객실본부장이었던 조현아 부사장이 접시 위가 아닌 뜯어지지 않은 봉지 속에 있는 마카다미아를 객실 승무원으로부터 받았다…마카다미아 서비스 규정을 잘 알지 못했던 조현아는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빌미로 객실 승무원을 심하게 질책하였고”라고 나온다.결국 진실은 ①먼저 손님에게 봉투째 보여준 뒤 ②원하는 승객에게는 봉투를 까서 그릇에 담아 제공하는 게 매뉴얼이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그 당시 객실 승무원은 ①에서의 보여주는 행위를 하지 않은 채 접시에 봉투째 담아 전달한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가?땅콩회항의 발단이 된 서비스 문제를 내가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것은 조현아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갖가지 소문 속에서 팩트를 판별하는 능력 훈련을 스스로 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자기만의 게임을 하게 된다. 물론 당시 조현아가 남편과 아들에게 욕하고 소리 지르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저 사람은 평소에도 저렇게 행동하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조현아가 “격분”한 동기가 어디에 있든 간에, 사람들은 어차피 조현아를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찍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적어도 기자들만큼은 상황을 추종하려고 하지 말고, 설령 독자들의 미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팩트를 써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팩트를 비틀어 보도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 덕분에 안하무인의 재벌 가족들에게 경종이 울리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 동영상에서나 땅콩회항에서나 왜 조현아가 그렇게 행동하였는지를 나는 안다. 조직 내에서 지위가 높아지면 언행이 변하게 됨을 나 역시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현대의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이 공사 현장에 나타나 자주 따귀를 때리거나 정강이를 걷어찼다는 뉴스 말미에 갑질 논란 따위는 전혀 없이 일을 철저히 하려는 그의 의지를 칭송하는 내용이 나오던 시절에 청춘을 보낸 사람이다. 그런 내가 다국적 기업에서 승승장구할 때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어린 딸들과 무슨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딸들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전화로 누구에게나 야야 하며 소리 지르고 화를 내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번개를 맞는 느낌을 받았다. 내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할 사람들은 가족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에게 내가 잘못하고 있음을 말하는 직원을 보배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 시기였다. 어떤 조직에서든 고위직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경험적 조언: ①가족에게 뭔가를 지시하려고 하지 말아라. 가족은 당신의 하급 직원이 아니며 가족에게 당신은 직장 상사가 아니다. 청소가 이게 뭐냐, 냉장고 정리가 왜 이 모양이냐 같은 말은 회사에서나 통하는 말이므로. 먼저 가족이 하는 말에 귀부터 기울여라. ②당신을 분노하게 만든 직원이 있으면 즉시 “10분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해라. 그 10분간 분노를 가라앉힌 후 사근사근 대화하거나 이메일로 감정 표현 없이 팩트만 전달하여라. 개인적으로 나는 이 방법이 내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체험하여 왔다. 곽상도 아들 50억원 퇴직금 수수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때 나는 “아니 도대체 팩트가 뭔데 무죄야?”라는 생각에 판결문 속 사실관계를 며칠 동안 분석하였고 뇌물이라고 판단하였다. 때마침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 이 사건을 주로 이야기하는 조건으로 지난 4월 출연하여 뇌물이라고 판단한 근거들을 팩트를 통해 설명하였다. 우리 사회가 뇌물을 주고받는 부패한 사회가 되어선 안 된다는 점 외에도 개개인이 정치적 성향을 떠나 팩트가 무엇인가 알아내려는 노력 역시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어서였다. 12월 19일 ‘곽상도 50억원 뇌물수수’ 건에 대한 2심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독자들과 함께 그 추이를 지켜보고자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3.12.11 07:00

36분 소요
‘IPO 첫 집단소송’ 예고된 파두…“기관은 웃고 개미는 울고”

증권 일반

기업공개(IPO) 당시 1조원이 넘는 몸값으로 기대를 모았던 파두가 ‘뻥튀기 상장’ 논란으로 연일 시끄럽다.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지 3개월 만에 충격적인 실적 부진으로 주가가 폭락하며 개미(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주관사를 상대로 집단 소송에 돌입하며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파두는 지난 7월 IPO를 진행하면서 2분기와 3분기 매출이 ‘제로’로 떨어질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파두는 지난 8월 7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회사)다. 미국의 빅테크 등에 반도체를 납품한다는 소식 등이 호재로 작용해 올해 국내 최초로 조 단위 상장에 성공했다. 상장일 시가총액(시총) 1조3263억원을 기록했다. 파두는 금융당국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올해 연간 매출액 자체 추정치로 1202억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은 지난 8일 3분기 실적 공시 이후 잿빛으로 바뀌었다. 실제 실적을 열어보니 매출액은 2분기(4∼6월) 5900만원, 3분기(7∼9월) 3억2000만원에 그쳐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180억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시장은 실망감을 넘어 ‘사기 상장’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적 쇼크에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9일 하한가로 직행한데 이어 10일에는 21.93% 주가가 하락했고, 14일에도 6.98% 빠지며 종가기준 17만710원을 기록했다. 14일 기준 주가는 공모가(3만1000원) 대비 반토막이 났고, 한 때 2조원까지 갔던 시총은 80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 들었다. 파두 측은 지난 13일 입장문을 통해 “예상을 뛰어넘은 낸드 및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시장의 침체와 데이터센터들의 내부 상황이 맞물려 SSD 업체들 대부분이 큰 타격을 입었고, 당사 역시 이를 피하지 못했다”며 “최근의 당사의 실적 침체는 이러한 시장 상황에 기인했으며, 기존 고객사들이 파두 제품을 타 제품으로 교체했다는 우려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4분기에는 기존 고객사들로부터의 발주가 이미 재개됐음을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의 불신은 가시지 않았다. 특히 파두는 자체적으로 추정한 경영실적을 기재한 증권신고서를 지난 6월 30일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이후 7월 13일 한차례 정정을 거쳤지만, 추정 매출액은 그대로였다. 이미 2분기 잠정실적을 가늠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회사와 주관사가 고의로 실적쇼크를 숨겼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구체적인 액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당기 매출 추정치나 오는 3분기에 다가올 불확실성 정도는 인지가 가능한 상태였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또 있다. 지난 7월 중순에 제출한 증권정정신고서와 첨부된 기업실사 보고서 등에 ‘동사 사업은 안정적인 수주 현황을 유지하고 있어 영업활동이 악화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매출액의 계석적인 증가와 수익성 개선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등을 기재했는데, 주주들은 이 같은 내용이 허위라고 보고 있다. 이에 상장 예비 심사를 진행한 한국거래소와 상장 주관을 맡은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의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파두에 투자한 주주들이 주관증권사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여 사태의 심각성은 더 커지고 있다. 파두 IPO 관련 집단소송을 준비 중인 법무법인 한누리 측은 “매출 집계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7월 초에는 이미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매출을 적어도 파두는 알았을 것이고 주관증권사들도 2분기 잠정실적을 요구했을 것이므로 당연히 알았을 것”이라며 “상장·공모 절차를 중단하고 수요예측이나 청약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어 “공시자료에 의하면 파두 IPO는 총 27만6692명이 1937억원을 투자했으므로 피해주주는 최소한 수만 명 이상이고 손해액은 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번 소송은 IPO와 관련한 첫 증권 관련 집단 소송으로 기록될 것이다”고 언급했다. 주주들의 피해가 커지는 사이 상장 전 초기 투자자들은 이미 엑시트(Exit‧자금 회수)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포레스트파트너스가 설정한 펀드들은 이달 2∼8일 집중적으로 파두 주식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했다. 파두가 장 마감 뒤 충격적인 실적을 공시하던 지난 8일에도 장내 매도는 이뤄졌다. 이에 3분기 실적 공시 이후 주가 급락을 그대로 감당해야했던 개인투자자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한편 논란이 확산되자 금융감독원은 파두의 IPO 과정에서 위법 소지 여부가 있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파두와 상장 주관사 NH투자증권과 공동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이 상장 심사 당시 제출한 실적 추정치가 적정했는지, 고의로 실적을 부풀린 것은 아닌지 살필 계획이다.

2023.11.15 15:20

3분 소요
‘알짜 IPO’ 기업들의 ‘엇갈린 운명’…옥석 가리는 투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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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기업공개(IPO) 시장이 조 단위 ‘대어급’ 실종으로 미지근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옥석 가리기가 뚜렷해지며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금융당국의 IPO 모니터링이 강화로 증권신고서 정정 사례가 속출하며 이달에만 9개 기업이 상장에 나서는데 투자자들의 엇갈린 투자심리에 기업들이 수요예측에서 상반된 성적표를 받고 있다. 모니터랩, 일반청약 경쟁률 올해 ‘역대 최대’ 기록…트루엔도 흥행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모니터랩은 지난 3~4일 진행한 수요예측 결과 공모가를 희망범위(7500~9800원) 상단인 9800원으로 확정했다. 총 1823개 기관이 참여하며 최종 경쟁률은 1715.4대 1로 나타났다. 이는 올해 진행된 IPO 시장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로, 유아 가구 전문기업 #꿈비(1773 대 1)는 3개월 만에 1등 자리를 내줬다. 2005년 설립된 모니터랩은 웹 방화벽이 주력 제품인 보안 전문 기업이다. 클라우드 기반 구독형 보안 서비스인 ‘아이온클라우드(AIONCLOUD)’가 주요 제품이다. 주된 수입원은 네트워크 보안 분야에서 발생하지만 공모 과정에서는 클라우드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기업가치 산출 과정에서 오는 2025년 클라우드 관련 매출 비중이 50%까지 증가할 것으로 가정했다. 지난해 말 기준 매출은 141억 원, 영업이익이 11억 원인데 회사는 2025년까지 매출을 3배 이상 늘리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세카스 시장이 최근 5년간 연평균 25% 이상 성장하고 있다는 점 등 모니터랩의 높은 성장성이 투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KB증권은 “모니터랩은 인터넷 트래픽 급증에 유동적으로 대처 가능한 클라우드 보안 기술 보유로 시장 성장에 따른 수혜가 가능하다”며 “다만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한 서버 투자 비용 증가에 따른 수익성 악화 가능성 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인공지능(AI) 영상감시 솔루션 전문기업 트루엔도 일반청약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 8~9일 이틀 간 일반투자자 대상으로 공모 청약을 진행한 결과 1481.84대 1의 최종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고, 증거금 약 5조5569억원을 모았다.앞서 트루엔은 지난달 27일과 28일 양일간 기관투자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에서도 경쟁률 1688.87대 1을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회사는 수요예측 결과를 바탕으로 공모가를 희망범위(1만~1만2000원) 최상단인 1만2000원으로 확정했다.트루엔은 글로벌 영상감시 시장의 빠른 확장 속도를 기회 요인이라 보고, 엣지 AI(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상장 후 지속 성장을 이룬다는 목표다. 다양한 사업 영역에 적용 가능한 고도화된 영상감시 솔루션을 통해 시장 다각화를 이루는 동시에 해외 거점을 활용한 신규시장 확대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강경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루엔은 엣지 AI 카메라, IP 카메라(디지털 카메라), 영상 스트리밍솔루션 등 공공분야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공공시장 내 AI 카메라 적용 증가에 따른 수혜가 전망된다”고 평가했다. 씨유박스는 두 자릿수 경쟁률에 그쳐…공모일정 겹치면 눈치싸움 불가피 같은 기간 수요예측을 진행한 씨유박스는 경쟁률이 두 자릿수에 그쳤다. 총 578개 기관이 참여해 86.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대부분 하단 이하로 가격을 써내며 최종 공모가는 주당 1만5000원으로 확정했다. 공모가 범위(1만7000~2만3200원) 하단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참여 건수 기준 약 72%가량이 밴드 하단인 1만7200원 미만의 가격을 써냈다. 업계에선 시장 상황의 차이가 희비를 갈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니터랩은 사이버 보안 업계에서 독보적인 클라우드 보안 경쟁력을 보유했지만, 씨유박스는 주력 부문인 얼굴 인식 시스템 분야에 국내외 경쟁사가 다수 존재해 기관들의 참여가 낮았다는 분석이다. 씨유박스와 모니터랩의 사례처럼 최근 IPO를 예고한 기업들의 공모일정이 겹치면 투자자 모집을 둘러싼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말도 나온다. 와인수입사 나라셀라와 친환경 마감재 기업 진영이 오는 22~23일, 백신개발 전문업체 큐라티스와 화장품 기업 마녀공장 25~26일로 각각 청약 날짜가 겹쳤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5월에만 9개 기업 상장이 예정돼있는 가운데 중소형 IPO도 종목별로 옥석 가리기가 나타나고 있다”며 “오는 7월부턴 ‘뻥튀기 청약’도 제재될 것으로 예고돼 공모 타이밍에 대한 기업들의 눈치싸움이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IPO 예정 기업들의 엇갈린 성적표를 두고 “증권 시장의 불안함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4월의 국내 IPO 시장은 대어급 및 일부 종목의 공모 지연 등에 따라 이달 기관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종목이 제한적인 것도 특정 기업의 낮은 경쟁률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23.05.1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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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 창고’서 시작해 IPO까지 도전…기가비스, 올해 코스닥 최대어 등극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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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창업 이후 은행에서 한 차례도 돈을 빌리지 않는 ‘무차입 경영’을 이어왔습니다. 이번 상장을 통해 두 발 앞선 기술력으로 시장을 선도해 투자자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올해 상반기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로 꼽히는 기가비스가 증권신고서 정정을 거쳐 코스닥 상장에 시동을 걸었다. 강해철 기가비스 대표는 10일 IPO 기자간담회에서 “상장을 통해 기술 격차를 넓혀 글로벌 반도체 검사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기가비스는 광학기술을 통해 반도체 기판의 내층을 검사하고 수리하는 업체다. 반도체 기판의 패턴 결함을 검사하는 자동광학검사설비(AOI)와 검출된 불량 패턴을 수리하는 자동광학수리설비(AOR)가 대표 제품이다. 신고서에 대만계 회사→중국 회사로 표기 변경…중국 매출 비중 30% 달해당초 5월 3~4일로 예정된 기가비스의 기관 수요예측은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증권신고서의 내용 보충을 요구하면서 일정이 미뤄져 18일쯤 진행될 전망이다. 기가비스가 금감원으로부터 정정 요구를 받은 부분은 증권신고서에 적혀 있던 대만계 첨단 반도체기판 제조업체 ZDT를 중국 회사로 분류해 위험 요소를 제대로 알리라는 부분이다. 기가비스는 중국 및 글로벌 고객사들의 중국 소재 공장에 제품 납품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 비중의 29.9%가 중국에서 나와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으로 인한 영향이 투자시 고려해야 할 위험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회사 측은 지난해 새로 거래를 튼 중국 기업에 대해 향후 성장과 밀접한 고객사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반도체 지원법을 발효하고 중국 등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에서 미국의 보조금을 받는 회사가 반도체 설비를 구축하는 것을 금지했다. 아직 기가비스가 제조하는 반도체 기판 검사장비는 규제 대상이 아니지만, 반도체 기판까지 확대돼 중국 수출이 제한되면 매출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단 분석이다.현재 글로벌 반도체 업황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강 대표는 “기가비스가 속한 사업 영역은 비메모리 반도체 부분으로, 현재 부진을 겪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시장과는 차이가 있다”며 “인텔이나 TSMC, AMD, 퀄컴, 애플 쪽의 제품과는 달라 사업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고, 반도체 업황 둔화도 체감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기가비스에 따르면 고성능 반도체 기판을 만드는 업체는 전 세계에 10개 회사밖에 없다. 기가비스 측은 “반도체 기판 검사 및 수리 설비와 설비 프로그램을 모두 자체 개발하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며 “AOI, AOR 등 다양한 설비를 하나의 라인으로 묶어 완전 자동 운영되는 인라인(Inline) 무인화 설비는 업계 최고의 설비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기가비스는 인라인 설비를 비롯해 ▲반도체 기판 회로선폭 3㎛(마이크로미터) 검사설비(AOI) ▲반도체 기판 회로선폭 5㎛ 수리설비(AOR)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3㎛ 검사 설비(AOI)는 일본, 대만, 미국 등 글로벌 대형 고객사에 시제품으로 출시됐고, 5㎛ 수리 설비(AOR)은 글로벌 최상급 패키지 기판 제조사에 공급 중이다.뻥튀기 창고서 시작, 매출 1000억원 회사 되기까지…‘무차입 경영기조’ 이어가 삼성전기 출신인 강 대표는 자동화설비팀에서 함께 일하던 엔지니어 5명과 함께 기가비스를 창립했다. 창업 초기엔 금전적 여유가 없어 뻥튀기 공장 창고에 회사를 설립하고 삼성전기 때 받던 월급의 70%만 받으며 일했지만, 기술력을 쌓아 업계에서 인정을 받으며 사업을 점차 키웠다. 무엇보다 은행에서 한 차례도 돈을 빌리지 않는 ‘무차입 경영’ 기조를 창업 이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기가비스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각각 127%, 176% 성장한 997억원, 439억원이다. 2020년부터 영업이익률 35% 이상을 유지하며 안정적 재무 상태를 유지 중이다. 강 대표는 “2021년은 코로나19 및 주요 고객사 공장 화재로 인해 일시적으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감소했지만 2022년 해외 수주 증가를 통해 다시 회복했다”고 설명했다.강 대표는 “수주잔고가 2020년 말 182억원에서 2022년 말 1228억원까지 증가하면서 공장 가동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평균 납기도 상승했다”며 “이번 상장을 통해 조달된 자금의 상당 부분을 공장 증설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한편 기가비스 공모 주식주는 221만8258주이며 희망 공모밴드는 3만4400~3만9700원이다. 총공모 예정금액은 763억~881억원이고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은 약 4360억원~5032억원이다. 5월 9~10일 수요예측을 진행하고 15~16일 일반청약을 진행할 예정이며 상장 주관사는 삼성증권이다.

2023.05.1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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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IPO 북적이는데 하필 SG증권 사태가…청약 흥행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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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기업들의 IPO(기업공개)가 줄줄이 연기돼 이달에만 9곳의 기업이 코스닥 입성을 노리고 있다. 금융당국의 IPO 모니터링 강화로 기업들의 증권신고서 정정 사례가 속출하며 ‘재수’에 나선 기업들도 많아 5월 IPO 기업 수가 전달에 비해 크게 늘었다. 5월에만 9개 기업 IPO 진행…증권신고서 정정이슈로 ‘줄연기’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스팩을 제외한 총 9개 기업이 공모주 청약에 나선다. 지난달 3개 기업이 IPO를 진행한 것에 비해 크게 늘었고, 지난해 5월(4개)과 비교했을 때도 이달 IPO를 진행하는 기업 수가 두 배 이상 많다. 이달 IPO를 진행하는 기업은 △트루엔 △씨유박스 △모니터랩 △프로테옴텍 △기가비스 △진영 △나라셀라 △큐라티스 △마녀공장이다. 지난달 상장을 마무리한 기업은 마이크로투나노와 토마토시스템 두 곳에 그쳤다.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이달 코스닥 입성을 앞둔 가운데 트루엔을 제외한 나머지 8개 기업은 모두 한 번 이상씩 증권신고서 수정 과정을 거친 ‘재수생’들이다. 5월 IPO 기업 수가 크게 늘어난 이유도 이 때문이다.이들 중 대부분은 증권신고서에 시장 현황이나 리스크를 추가 기재했다. 오는 3~4일 수요예측을 진행하는 AI(인공지능) 얼굴인식 전문 기업 씨유박스는 AI 얼굴인식 시스템 시장의 주요 경쟁업체, 그동안의 유상증자 및 CB(전환사채) 발행 내용 등 투자 위험 요소를 추가했다. 기술특례 상장제도로 상장하는 모니터랩도 시장 상황과 규제 현황 등 내용을 추가하는 등 신고서 정정이 이뤄지며 수요예측 일정이 변경됐다. 모니터랩은 기업 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B2B SaaS) 전문 기업으로 증권신고서에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 매출 전망, 매출 구성 현황, 경쟁사 현황, 해외 진출 규제 현황 등을 추가했다. 체외진단 의료기 전문업체 프로테옴텍은 이번이 두 번째 신고서 정정으로 최신 실적, 신규 거래처 등 사업 현황을 대거 보충했다. 이번에는 첫 번째 증권신고서 정정 때도 고수했던 희망 공모가도 낮췄다. 이에 따라 프로테옴텍이 상장 성공 시 조달할 수 있는 자금도 줄었다. ‘고평가 논란’에 기업가치 산정방식을 변경한 기업도 있었다. 국내 와인기업 1호 상장사를 노리는 나라셀라는 처음 당초 나라셀라는 명품 사업이 주력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주류 사업이 핵심인 롯데칠성음료를 비교기업에 포함했다. 하지만 이후 고평가 논란에 휩싸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증권신고서를 정정하고 일정을 한 달가량 미뤘다. 나라셀라는 증권신고서 정정을 통해 비교기업을 대폭 수정했고 예상 시총을 7% 하향 조정했다. 이밖에 자진으로 증권신고서를 정정한 기업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기능성 플라스틱 시트 전문 기업 진영은 지난 3월 30일 증권신고서를 최초 제출한 이후 4월 두 차례에 걸쳐 증권신고서를 스스로 정정했다. 이 과정에서 매출처 현황, 차입금 현황 등이 담겼다. 새내기주 자금 조달 경쟁 치열…“SG사태 등으로 당국 심사 더 깐깐해질 것”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심사가 까다로워져 상장 일정을 연기한 기업들이 겹치면서 5월 공모주들의 자금 조달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달 공모주들의 대부분은 예상 시가총액 2000억원 이하의 소형주 중심이며 반도체기판 검사기업 ‘기가비스’만 유일하게 시총 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업계에선 금감원이 최근 외국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가 벌어지면서 공모주에 대해서도 증권신고서 심사를 더 철저하게 하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 금감원 측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강제할 수 있지만, 상장 후보 기업이 상장 주관사 등과 조율을 거쳐 자발적으로 증권신고서를 보완하는 형식이 일반적이다.금융투자협회도 오는 7월부터 공모주를 더 많이 배정받고자 납입 능력을 초과하는 물량을 신청하는 ‘뻥튀기 청약’을 제재할 것을 예고했다.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허수성 청약 방지 등 IPO시장 건전성 제고 방안’에 대한 후속 조치다. 허수성 청약을 근절하기 위해 새로운 규정에는 주관회사의 주금 납입 능력 확인방법이 신설됐다.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4월 IPO 시장은 기관수요예측을 거친 일반 상장 종목 수도 적었지만, 전달보다는 투자 심리가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판단한다”며 “그동안 기관수요예측 경쟁률과 동조화를 보이던 일반청약경쟁률은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보이며 과거 경쟁률보다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이어 “증권 시장의 불안함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4월의 국내 IPO 시장은 대어급 및 일부 종목의 공모 지연 등에 따라 기관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종목이 제한적인 것도 낮은 경쟁률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2023.05.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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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뻥튀기 청약 막는다…“기관투자자 주금 납입 능력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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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기업공개) 시장에서 기관 투자자들의 ‘허수성 청약’을 막기 위해 주급 납입 능력을 확인하기로 했다.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자본금보다 높은 금액을 써내는 ‘뻥튀기 청약’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금융투자협회는 5일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이하 ‘인수업무규정’)과 대표주관업무 등 모범기준 (이하 ‘모범기준’) 개정안을 예고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허수성 청약 방지 등 IPO 시장 건전성 제고 방안의 후속 조치다.먼저 인수업무규정 개정안에 따르면 기관 투자자 등의 주금 납입 능력 확인 방법을 신설하기로 했다. 수요예측 참여 건별로 기재한 자기자본 또는 위탁재산 자산총액 합계를 확인(기관투자자 확약서에 근거)하거나, 주관회사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내부규정·지침에 따라 확인한다.주금납입능력 초과도 막는다. 주금납입능력 초과 수요예측 참여 기관에 공모주 배정금지 및 불성실 수요예측등 참여자지정 등 제재 부과할 예정이다.공모주 우선배정도 연장한다. 올해 말 일몰 예정인 벤처기업투자신탁 및 고위험고수익투자신탁에 대한 우선배정 기간을 2025년 말까지로 재설정한다. 코스닥시장 공모 증자는 2024년 1월 이후 증권신고서 최조 제출 분부터 적용해 배정물량을 변경한다. 각각 30%에서 25%로 축소하고, 5%에서 10%로 확대한다.모범 기준 개정안으로는 수요 예측 기간을 기존 2영업일에서 5영업일로 연장하는 것도 권장하기로 했다. 다만 주금납입 능력 확인에 관한 사항은 오는 7월 1일 이후 증권신고서를 최초로 제출한 건부터 적용된다. 불성실 수요예측 등 참여자 지정은 계도 기간을 거쳐 내년 1월 1일 이후부터 실시된다.벤처기업 투자신탁 및 고위험고수익 투자신탁 배정 비율 변경은 내년 1월 1일 이후 증권신고서 최초 제출분부터 적용된다.이봉헌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본부장은 “주금납입능력 확인 등이 당장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일부 인기 공모주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던 허수성 청약과 단기주가 급등락을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2023.04.0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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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부진 속 IPO·장외시장도 ‘꽁꽁’ [새해에도 암울한 증권가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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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부진이 지속되면서 신규 상장을 준비하던 예비 상장사들도 비상이 걸렸다. 올해 상장을 철회한 기업 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내년 기업공개(IPO) 시장 분위기도 반전이 쉽지 않은 모양새다. 성장주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조(兆) 단위 기업가치로 주목받던 장외시장 대어들의 몸값도 하락세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장을 철회한 기업 수는 13곳(스팩 제외)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들어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을 철회했고 5월 태림페이퍼, 원스토어, SK쉴더스가 연달아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4분기에만 골프존커머스, 라이온하트스튜디오, 제이오, 밀리의서재, 바이오인프라, 자람테크놀로지 등 6곳이 연달아 상장을 중단했다. 지난해 4분기 SM상선,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 넷마블네오 등 단 3곳만 상장을 철회한 것과 대조적이다. 상장을 철회한 기업 대부분은 수요예측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자 대부분이 기업이 희망하던 공모가 수준보다 낮은 가격을 써내면서다. 금리 인상과 증시 부진, 자금조달 시장 경색 등으로 성장주에 대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결과다. 적정 기업가치를 평가받지 못한다고 판단한 기업들은 상장을 잠정 중단하고 내년이나 그 이후로 시기 조율에 나섰다. 가까스로 상장을 완주한 기업들도 수요예측 흥행에 줄줄이 실패했다. LG에너지솔루션, 수산인더스트리, 쏘카 이후 올해 네 번째(리츠 제외)로 코스피 상장에 도전한 바이오노트는 공모가를 희망밴드 하단(1만8000원)의 절반인 9000원으로 확정했다. 11월에 수요예측을 진행한 9개 기업 중 공모가를 희망밴드 하단 아래에서 결정한 회사는 6개사에 달했다. 기업 3곳 중 1곳은 공모가를 당초 예상치보다 낮은 수준에서 확정한 것이다. ━ 조 단위 대어 줄줄이 출격…투심 회복은 ‘글쎄’ 내년으로 상장 시기를 넘긴 기업들은 시장 분위기 반전을 고대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내년엔 컬리·골프존카운티와 케이뱅크의 경우 상장 예비심사 승인 유효 기간이 내년 2월과 3월 각각 만료됨에 따라 내년 1분기 중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상장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 기간에 상장하지 못하면 예비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모빌리티, LG CNS, SK에코플랜트, CJ올리브영 등 조 단위 대어들도 출격을 대기하고 있다. 예상 기업가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경우 10조원, 카카오모빌리티(8조원), LG CNS·SK에코플랜트(7조원), 케이뱅크(5조원), 컬리(4조원), CJ올리브영(2조원) 등이다. 올해 상장을 철회한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일뱅크, SK쉴더스, 원스토어 등도 상장 예비심사를 다시 받아 재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11번가, 오아시스, CJ올리브영 등도 증시 입성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내년에도 침체한 시장 분위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식시장 하락세가 내년 1분기까지 지속할 전망인 데다 자금조달 시장 경색이 여전해 투자심리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진형 DB금융투자 연구원은 “IPO 시장 침체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시중금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올해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 하락으로 투자금 회수를 하지 못하고 발이 묶인 기관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공모 규모가 400억원 이상인 중대형 IPO에 대해서 “공모가 밴드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지 않고서는 추진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냉랭한 분위기는 장외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비상장 주식거래 플랫폼인 증권플러스 비상장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 주가는 올 초 49만4000원에서 지난 19일 11만3000원으로 77.13% 급락했다. 간편결제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13만9000원에서 3만6700원으로 73.60% 하락했고, 야놀자는 9만5000원에서 4만6200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카카오모빌리티(-45.91%), 케이뱅크(-45.02%), LG CNS(-18.07%) 등 장외시장 대어들도 예외는 없었다. ━ 기관 뻥튀기 청약 손질…시장 분위기 바꿀까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지난 18일 발표한 개선된 IPO 제도가 시장 분위기를 바꿀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 태스크포스(TF) 논의와 의견수렴을 거쳐 ‘IPO 건전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기관의 수요예측 기간을 기존 2일에서 7일 안팎으로 늘리고, 주관사는 수요예측 참여 기관의 주금 납입 능력을 확인해 물량을 배정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금융당국은 수요예측에 임하는 기관의 ‘뻥튀기 청약’이 투자자 피해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기관투자자는 원하는 물량을 배정받을 목적으로 실수요 이상의 과도한 청약을 넣어온 관행이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 공모 당시 기관 주문액으로 무려 1경원이라는 비정상적 수요가 몰리기도 했다. 기관의 허수성 청약이 쏠리면서 수요예측 경쟁률은 2019년 417대1에서 2020년 830대1로 뛰었고, 올해 상반기엔 1330대1까지 치솟았다. 기관투자자의 의무보유 관행도 확대된다. 금융당국은 내년 중 ‘IPO 단기차익거래 추적시스템(가칭)’을 구축해 의무보유미확약 기관의 공모주 매도 내역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공모주 물량 배정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의무보유확약과 그에 따른 매도 내역에 따라 공모주 물량을 차등 배정하겠다는 것이다. 공모주의 상장 당일 가격 변동 폭도 현행 공모가 기준 63∼260%에서 60∼400%로 늘어난다. 공모주 상장 후 가격 급등락에 따른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신규 상장사의 경우 상장일 개장시간이 아닌 ‘최대한 많은 거래가 발생할 수 있는’ 균형가격 형성 시각에 거래가 시작된다. 일본에서는 상장 당일 공모가의 25~400%를 기준으로 시초가를 형성한다. 소수에 의한 거래기회 독점, 균형가격 발견 지연 등을 막기 위한 조치다. 금융당국은 “상장 당일 가격 변동 폭을 대폭 확대해 일시적으로 투자심리가 과열되는 현상을 막고, 소수 투자자의 투기적 베팅으로 쉽게 가격 변동 폭 상한에 도달하지 않게 될 것”이라며 “이번 방안으로 적정 공모가가 산정되고, 실제 수요와 납부 능력에 따라 공모주를 배정받을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허지은 기자 hurji@edaily.co.kr

2022.12.23 08:00

4분 소요
IPO 위축됐지만 개미 울리는 ‘뻥튀기 청약’ 제도 개선해야 [이코노 EYE]

증권 일반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자본금보다 높은 금액을 써내는 기관 투자자들의 ‘뻥튀기 청약’ 문제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냉각된 IPO(기업공개) 시장 위축 우려가 있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뻥튀기 청약’ 제도 개선은 필수적입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IPO 공모주 수요 예측 참여율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참여율이 늘어난 만큼 허수성 청약이 늘어 문제가 됐습니다. 공모희망 주식 수를 기관 대상 공모 예정 주식 수로 나눈 수요 예측 참여율은 지난 2017년 236대 1에서 지난해 1085대 1로 4배 넘게 급증했습니다. 기관 투자자의 불성실 수요예측 행위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9년 19건이었던 기관의 불성실 수요예측 참여 행위는 2020년 35건, 2021년 66건까지 늘어났습니다. 2020년부터 지난해 전체 불성실 수요예측 참여행위 중 투자일임업자·사모집합투자업자가 79건(78%)에 달했습니다. 특히 지난 1월 1경원이 넘는 주문 금액이 몰린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기관 청약이 불을 지폈습니다. 당시 LG엔솔 수요 예측은 20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LG엔솔 주식을 1주라도 더 받기 위해 기관들이 자본금보다 과도한 주식 매입 수량을 써냈기 때문입니다. 실제 LG엔솔 공모주 수요예측에 참여한 국내 680개 기관 중 80% 이상이 최대치인 9조5625억원치를 각각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수요 예측에선 1경5000조원에 달하는 주문 금액이 몰렸습니다. 680개 기관의 자본금 총액이 11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과도한 규모입니다. 순자산이 1억원에 불과한 자산운용사가 9조5000억원의 수요 예측을 제출하는 식입니다. 시장 일각에선 LG엔솔 공모 한 번으로 한 해 이익을 다 벌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올해 7월 성일하이텍 수요 예측에서도 142조원의 자금이 들어왔습니다. 당시 성일하이텍 공모가 최상단 기준 시가총액은 6135억원이었습니다. 시총 규모를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몰렸습니다. 거듭되는 허수성 청약을 막기 위해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허수 청약 시 배정 물량 축소 등 수요예측 제한 패널티를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주금 납입 능력을 초과해 허수로 청약하는 관행이 퍼져 있는 만큼 책임감을 강화해 자율적으로 기관 유형별 주금납입능력 판단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공모주를 배정받은 기관의 공모주 매도 내역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는 ‘IPO 트래킹 시스템’(가칭)으로 상장 직후 공모주를 단기 매도해 공모주 주가 하락을 주도하는 기관 투자자들의 플리핑(flipping·상장 직후 주식 매도)을 막기 위함입니다. 물론 이미 냉각된 IPO 시장이 더욱 침체될 것이라는 우려는 있습니다. 알맞은 몸값을 평가받기 위해 올해 상장을 미루거나 상장 철회를 결정한 기업들도 여럿입니다. 상반기 대어급으로 평가됐던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는 줄줄이 상장을 포기했습니다. 하반기 들어서도 플랫폼 기업인 밀리의 서재, 제이오, 골프존커머스, 라이온하트스튜디오 등 상장 철회를 결정했습니다. 기관 투자자 제약 등으로 공모주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허수 청약 시 배정 물량 축소 등 패널티 부여해야 그러나 IPO 투심이 악화돼도 개인 투자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위한 뻥튀기 청약 제도는 개선돼야 합니다. 뻥튀기 수요예측의 최대 피해자는 개인입니다. 기관 투자자의 뻥튀기 청약이 유리한 환경입니다. 일반 투자자 청약 때 개인이 50%의 증거금을 내는 것과 달리 기관투자자들은 증거금을 내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관이 가진 자본금보다 훨씬 많은 주문 금액을 써내는 등 ‘허수 청약’ 발생 가능성이 큽니다. 무조건 최대 물량을 청약하는 셈입니다. 뻥튀기 청약은 특정 공모주에 대한 합리적 투자 판단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기업 가치에 따른 수요예측 흥행이 아닌 뻥튀기 숫자로 IPO가 ‘흥행’으로 분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관 수요 예측에서 공모가가 최상단으로 결정되면 상장 이후 주가 급락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많은 주식을 확보한 기관 투자자들이 상장 첫날 물량을 쏟아낼 수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주가 손실이 커지면서 상장 후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LG엔솔 일반 청약 당시 개인투자자들은 60만원 ‘따상’을 기대하고 청약에 뛰어들었습니다. 뻥튀기 청약으로 과하게 기대감이 높아진 셈입니다. 당시 역대 최대 수요 경쟁률을 썼다는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LG엔솔은 상장 첫날 공모가(30만원)의 약 2배인 59만7000원에 시초가를 형성했습니다. 상장 바로 다음 날엔 45만원까지 고꾸라지며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제한 없는 수요 예측으로 부풀려진 공모가는 시장 혼란을 부추길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 가치와 무관한 고평가 논란과 뻥튀기 청약이 아닌 알맞게 평가받을 수 있는 IPO 시장이 조성돼 투자 심리가 회복되길 기대해 봅니다. 홍다원 기자 daone@edaily.co.kr

2022.12.0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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