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12

화장품으로 대박 낸 다이소…이제는 ‘패션’ 노린다

유통

‘1000원숍’ 이미지를 완벽히 지운 모습이다. ‘초저가’를 앞세운 생활용품점 아성다이소(다이소)가 뷰티 분야에서 신흥 강자로 떠오르더니 이제는 패션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유통업계가 중국 이커머스의 초저가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균일가 전략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다이소는 특화 품목을 늘려가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2022년 본격적으로 뷰티 시장을 공략한 다이소는 지난해부터 사업 영역을 패션으로 확대하며 외형 성장에 나섰다. 뷰티 카테고리의 성과로 지난해 처음 매출 3조원을 돌파한 다이소가 올해 패션 부문을 업고 매출 4조원을 달성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가성비 통했다…‘품절 대란’ 뷰티템 보니다이소가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때는 2022년 4월 네이처리퍼블릭과 협업해 ‘식물원’을 선보이고 나서부터다. 다이소는 저렴한 가격에 품질까지 갖춘 화장품을 대거 내놓기 위해 ‘네이처리퍼블릭’·‘다나한’·‘클리오’·‘투쿨포스쿨’·‘VT코스메틱’·‘손앤박’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다. 지난 4월 말 기준 현재 운영 중인 브랜드만 약 34여개에 달하며, 총 315여개의 품목을 판매 중이다.이 중에서도 ‘품절 대란’을 일으킨 브랜드는 VT코스메틱과 손앤박이다. 지난해 10월 VT코스메틱의 ‘리들샷’을 시작으로 다이소 뷰티 제품이 소비자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켰다. 이후 지난 3월 출시한 손앤박의 ‘아티 스프레드 컬러 밤’ 또한 온·오프라인 물량이 전부 소진됐다. 해당 제품은 명품 브랜드 ‘샤넬’의 립앤치크밤과 비슷한 발색과 제형이지만 가격은 3000원으로 저렴해 입소문을 탔다. 다이소의 지난해 기초·색조화장품 매출은 전년 대비 약 85% 신장했고 지난 1분기(1~3월) 매출도 전년 대비 150% 늘었다. 특히 리들샷은 지난해 10월 판매를 시작해 초도입고 물량이 약 2주 만에 완판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리들샷이 속한 기초화장품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대비 약 165%나 뛰었다. 이 같은 매출 증가세에 입점 브랜드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21년 입점한 브랜드는 4곳에 불과했으나, 2022년 7곳, 2023년 19곳, 올해(4월 말 기준)는 8곳이 다이소에 신규 입점했다. 다이소 관계자는 “가성비를 중시하는 MZ세대들에게 ‘균일가 브랜드 뷰티용품’이라는 점을 어필했고, 연령별 피부 타입에 따른 전 연령층 브랜드의 뷰티용품도 같이 기획해 다양한 연령층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다이소의 뷰티 부문 확대에 화장품업계 또한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특히 VT코스메틱과 손앤박 등의 흥행 사례로 인해 뷰티 브랜드들의 입점 문의가 쇄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이소에 입점하기만 해도 다이소 전국 1500여개 매장에 제품이 판매돼 무시할 수 없는 파급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다이소와 중소 뷰티 브랜드가 협업해 다이소 전용 세컨드 브랜드를 선보이지만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디지털 마케팅 기업 메조미디어의 ‘2024년 소비 트렌드 시리즈-초저가 소비’ 리포트에 따르면 19~49세 여성 소비자 중 다이소 화장품을 구매해 봤다고 응답한 사람은 41%였고, 이 가운데 만족했다는 답변은 72%에 달했다. 다이소 화장품을 산 이유로는 ▲1위 가격 대비 성능이 좋아서 69% ▲2위 가격이 저렴해서 48% ▲3위 품질이 뒤떨어지지 않아서 32% 등 순이었다.플리스에 냉감 의류까지…SPA 대항마 되나뷰티에 이어 패션 카테고리 또한 다이소의 무기로 꼽힌다. 브랜드 영향력이 적은 이너웨어와 양말 출시를 시작으로 지난해 겨울에는 5000원짜리 방한화부터 플리스, 발열 내의 등을 내놔 기능성 의류부터 일상복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해 11월 출시한 플리스는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출시와 동시에 품절 대란이 이어졌다. 패션 카테고리를 꾸준히 강화한 결과 지난해 의류 매출은 전년 대비 약 160% 뛰었다. 다이소는 이번 여름 시장을 겨냥, ‘초냉감’이란 의류 라인을 더하면서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들을 위협하고 있다. 유니클로의 ‘에어리즘’·탑텐 ‘쿨에어’·스파오 ‘쿨테크’ 등 냉감 의류 상품이 여름 시즌 히트템으로 자리 잡았는데, 여기에 다이소가 ‘균일가’를 내세워 경쟁에 가세했다. 통상 초냉감 원단은 일반 원단에 비해 비싼데, 다이소는 불필요한 유통 과정을 줄이고 판촉비를 절감해 가격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다이소의 패션 카테고리 강화 배경에는 객단가를 높이고, 매장 내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한 전략이 깔려있다. 의류를 최저가로 구매하면서 다른 제품의 추가 구매 또한 유도하기 용이하다. 앞으로도 다이소는 패션뿐 아니라 뷰티 분야 영향력 확대를 통해 제품 카테고리군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다이소 관계자는 “과거 패션·뷰티 분야의 매출 비중이 낮았으나 인기를 얻으면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앞으로도 전 카테고리에서 새로운 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고객들에게 다양한 쇼핑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4.06.17 07:00

4분 소요
“샤넬 넌 버릴게 없구나”…'샤넬 단추’ 40만원에 당근에서 팔리는 사연

유통

“샤넬 정품 단추 팔아요.” 최근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샤넬 단추’, ‘루이비통 단추’ 등 명품 단추를 판매한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명품 옷에 부착된 단추만 판다는 것인데 단추 디자인과 선호하는 색에 따라 통상 6~7개에 40만~70만원 정도에 거래 중이다. 명품 가방과 옷도 아닌 단추가, 그것도 몇십만원에 거래되는 이유는 뭘까. ━ 귀걸이 된 샤넬 단추…“16만원에 팔아요” 패션업계에 따르면 샤넬, 루이비통 등 명품 단추를 리폼해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 등 악서사리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이 유행하고 있다. 중고거래나 빈티지샵을 통해 명품 단추를 구매한 뒤 목걸이, 귀걸이 혹은 가방의 심볼로 제작하거나 아예 완성된 단추 액세서리를 구입하는 것이다. 현재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디자인과 연식이 다른 명품 단추들이 거래되고 있다. 한 판매자는 “정품이라 뒷면 음각이 뚜렷한 귀걸이로 재탄생했다”면서 “16만원에 팔겠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판매자는 연식이 오래된 샤넬 스커트에 장식으로 붙어 있는 단추 6개를 판매했다. 이 판매자는 “샤넬의 대표 색과 디자인인 까만색 배경에 흰색 로고 단추”라면서 “단추 6개를 40만원에 판다”고 썼다. ━ 제니‧조이가 리폼해 착용한 목걸이, 인기 아이템으로 입소문 명품 단추 리폼은 일부 연예인들 사이에서 먼저 유행했다. 레드벨벳 조이, 블랙핑크 제니 등이 리폼한 목걸이를 착용한 뒤 일상 사진을 공개하면서 입소문이 났고 패션업계에선 하나의 아이디어 상품, 혹은 착한 소비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면서 인기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이 서비스는 단연 MZ세대에게 인기다.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다 같은 모양이 아닌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 차별화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 정품 액세서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명품 목걸이 구매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게 두 번째다. 일반적으로 샤넬 매장에서 판매하는 목걸이는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이에 반해 단추로 만든 명품 목걸이는 10만~20만원 가격에 판매되고 있어 5분의1, 10분의1 가격에 구매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오래된 제품을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착한 소비를 지향한다는 측면도 있다. 한 소비자는 “매장 가격에 구매는 못하겠고 가품은 사용하기 싫은 마음인데, 샤넬 단추를 이용해 목걸이로 재탄생시킨 제품을 발견했다”면서 “어차피 매장 제품도 도금인 데다, 단추가 정품이라고 하니 크게 다른 점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를 오래된 명품 가방을 리폼해 최신 디자인으로 재탄생 시키는 가방 리폼의 진화 단계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리폼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명품을 손대 ‘짝퉁’(모조품)을 만든다는 인식 탓이다. 명품 리폼은 명품 고유 가치를 훼손하고 짝퉁을 양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명품을 새롭게 향유했다는 또 하나의 재미와 트렌드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미지 소모가 가속화 될 수 있어 난처하겠지만 명품 리폼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쇼핑백, 단추에 이어 리폼 대상은 다양하게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2021.12.18 15:00

2분 소요
스포츠웨어의 카멜레온

산업 일반

폴로 셔츠는 테니스·골프 등의 운동복뿐만 아니라 일상복으로도 꾸준한 사랑 받아 작은 칼라가 달린 피케(벌집 모양으로 올록볼록하게 가공한 면직물) 원단의 반소매 셔츠. 스포츠웨어 중에 이렇게 널리 사랑받는 아이템이 또 있을까? 요즘 이 셔츠는 여러 스포츠 종목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골프장의 카트와 잔디밭에서는 골프 셔츠가 되고, 켄타우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괴물) 같은 스포츠맨들이 말을 타고 타구봉을 휘두를 때는 폴로 셔츠가 된다. 랠프 로렌의 고객도 폴로 셔츠라고 부른다. 또 매년 6월 런던 퀸스 클럽의 잔디 코트와 윔블던 센터 코트에 영국인의 이목이 집중될 때면 이 셔츠는 테니스 셔츠로 둔갑한다.하지만 이름을 뭐라고 부르든 이 셔츠는 세계 지도자들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편안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 입는 옷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아이템은 재계에서도 사랑받는다. 회사 로고가 새겨진 배낭과 폴로 셔츠는 기업의 1박2일 세미나와 연례 단합대회의 상징이 됐다.이 셔츠는 또 아버지들의 여름 옷장에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다. 주말이면 집집마다 열리는 바비큐 파티에서 맥주병을 손에 들고 폴로 셔츠를 입은 아버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보편화되다 보니 이 셔츠가 원래 정식 스포츠웨어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운동과 그에 적합한 의상이라는 개념이 매우 현대적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진지함의 중요성’에 나오는 부유하고 게으른 독신남 앨저넌은 이렇게 말한다. “운동이라고? 맙소사! 신사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네.”와일드는 1895년 그 희곡을 썼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13년엔 운동(특히 테니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이 테니스 경기를 주제로 한 발레 ‘유희(Jeux)’를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했다. 의상은 디아길레프와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레옹 박스트가 맡았다.2010년 가을 런던의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에서 러시아 발레단에 관한 전시회가 열렸다. 미술사학자 존 볼트는 카탈로그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 ‘유희’에서 테니스 선수들이 입은 단색의 기능적인 스포츠웨어는 아방가르드 미술가 류보프 포포바와 구성주의 디자이너 바르바라 스테파노바가 제안한 간편의상과 흡사했다.”디아길레프는 구성주의 스타일의 스포츠웨어를 문화의 선봉에 세우기로 마음먹었던 듯하다. 1924년 초연한 발레 ‘푸른 기차(Le Train Bleu)’에서도 그런 의상을 채택했다. ‘푸른 기차’는 장 콕토가 만든 유명한 단막 발레(당시에는 댄스 오페레타로 불렸다)로 제목을 코트 다 쥐르행 특급열차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발레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무용수들은 코코 샤넬이 스포츠웨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디자인한 의상을 입었다. 이것은 테니스와 골프, 수영 등 당시의 개인 스포츠 열기를 반영한다.그해 20세의 테니스 선수 르네 라코스트가 프렌치 오픈에서 우승했다. 샤넬은 패션쇼 무대에서, 라코스트는 테니스 코트에서 의상의 선풍을 일으켰다. 라코스트는 요즘 프로 스포츠 선수들처럼 훈련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경기에 적합한 의상을 선택했다. 거추장스런 긴 소매 버튼업(위부터 아래까지 단추로 잠그는 스타일) 셔츠 대신 단추가 윗부분에만 몇 개 달리고 칼라가 부드러운 반소매 셔츠를 입었다.라코스트가 1926년 미국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당시 입었던 이 헐렁하고 편안한 셔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30년대 초에는 니트 제조업자 앙드레 질리에가 라코스트의 디자인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은 ‘테니스, 골프, 해변’ 어디서 입어도 좋다는 문구로 홍보됐다.벌집처럼 올록볼록하게 가공한 피케 원단이 이 디자인에 안성맞춤이었다. 신축성이 좋고 부드럽고 가벼우며 편안하고 통기성도 좋다. 디자인 역시 실용적이었다. 뒤쪽이 더 긴 스타일은 바지 안에 넣어 입었을 때 격렬하게 움직여도 빠져 나오지 않는 장점이 있다. 또 골이 지게 짠 칼라는 세우기가 쉬워 목이 햇볕에 타는 걸 막을 수 있다.가슴에 있는 작은 악어 로고는 매우 훌륭한 마케팅 효과를 냈다. 이 로고는 라코스트의 경기 결과를 놓고 악어가죽 여행가방이 걸린 내기가 벌어진 뒤 그에게 붙은 별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이 있다(라코스트의 경기 스타일이 과감해서, 혹은 그의 코가 커서 악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라코스트는 악어 로고가 새겨진 테니스 셔츠를 입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셔츠는 캐주얼하면서도 고급스럽고 깔끔한 스타일의 상징이 됐다.이 셔츠는 클래식한 스포츠웨어에서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재빠르게 탈바꿈했다. 1930년대 중반에는 프랑스 유명 휴양지 리비에라 해안의 공식 복장이 되다시피 했다. 1935년 한 신문 기자는 이렇게 썼다. “폴로 셔츠가 성별의 구분을 없애고 계층간의 평등을 이룩했다. 넥타이가 사라지고 개성이 자취를 감췄다. 리비에라 해안은 소련이 선망하는 공산주의를 구현했다.”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기자는 폴로 셔츠가 소련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괴로웠을 듯하다. 게다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도 딸기와 크림, 소나기처럼 여전히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

2016.07.25 10:47

4분 소요
아울렛의 ‘슈퍼 마리오’ 아시아 지존 넘본다

유통

아울렛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시절이었다. 공장들이 떠나 황량한 구로공단에 대형 아울렛을 열었다. 최근 3관을 오픈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러나 홍성열 회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최첨단 패션 아울렛(Outlet)을 표방한 건물의 외양이 요상하다. 건물 옥상엔 적색 굴뚝이 우뚝 섰고, 입구 앞쪽에도 오색 조명의 굴뚝 조형물이 있다. 건물 외관 적벽돌에는 구로공단에 첫발을 내딛고 산업발전을 이끌어 왔던 업체와 인물 이름이 새겨져 있다. 5500개 단추로 완성한 사과 조형물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지난 9월 오픈한 마리오아울렛 3관에는 구로공단에서 디지털단지로 변화한 이 지역의 역사가 담겨있다.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은 “3관이 세워진 자리는 1970~1980년대 대한민국 수출역군이었던 가발과 의류 공장들이 있던 자리”라며 “3관 건물은 구로공단의 정통성을 계승하면서 아울렛 컨셉트가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상전벽해(桑田碧海). 구로·가산산디지털단지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구로공단은 1977년 당시 우리나라가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할 때 10억 달러(10%)를 수출한 ‘산업의 메카’였다. 검은 연기는 이곳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현재 첨단IT·패션유통단지로 탈바꿈했다. 특히 가리봉오거리 일대는 국내 최대 패션단지가 됐다. 마리오아울렛 외에도 W몰·한섬팩토리·제일모직 아울렛 등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매출 1조원 규모의 ‘가산 패션단지’를 이루고 있다. 그 중심에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이 있다.아울렛이란 이름조차 낯설었던 시절인 2001년 그는 구로공단에 정통 패션 아울렛을 세웠다. 그리고 이 지역을 전국 최대 패션단지로 키웠다. 그의 별명은 ‘Mr. 아울렛’이다. 10월 16일 홍 회장과 만나기 전 한 시간 남짓 마리오아울렛 3관을 둘러봤다. 전체적인 느낌은 소비자의 최신 니즈를 반영하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였다. 넓은 매장과 효율적인 동선에서 10여년 동안 아울렛을 운영한 내공이 느껴졌다.3관 오픈 후 매출·방문객 신기록지하4층·지상13층 규모의 3관은 ‘세계적 수준의 아울렛을 만들겠다’는 홍 회장의 의도대로 백화점과 쇼핑몰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정통 패션 매장은 물론이고 국내 아울렛 업계 최초로 침대와 주방가구 등 라이프스타일 매장이 입점했다. 토이아울렛을 비롯해 키즈테마파크·북카페·뷰티샵·패션아카데미 등 각종 편의시설도 들어섰다.유명 레스토랑이 들어선 12·13층도 손님들로 붐볐다. 특히 해외 명품 브랜드가 입점한 ‘마리오 명품관’이 눈에 띄었다. 코치, 버버리는 단독관으로 운영하고 있고 샤넬·구찌·프라다·루이비통·펜디·발리·돌체앤가바나·지방시·입셍로랑·끌로에 등 60여 수입 명품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다. 명품시계 및 선글라스 매장은 편집숍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매장을 둘러보다 보면 3관에 대한 고객들의 기대를 몸으로 느낄 정도니까요. 아울렛이 촌스러움을 벗었다는 목소리도 있고 백화점 내부를 걷는 것 같다는 얘기도 들려요. 충성고객은 물론이고 새로운 고객 유입도 늘고 있습니다.”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에 힘과 신명이 느껴졌다. 마리오아울렛 3관 오픈 사흘 동안 일일 매출 기록을 경신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마리오에 따르면 9월21일 오픈 이후 사흘 동안 매출 60억원, 방문객 77만명을 기록했다. “마리오아울렛은 이미 올해 초 내방고객 90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또 최근 5년 동안 높은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고요. 3관 오픈으로 평일 10만명 이상, 주말에는 20만명의 고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내년엔 매출 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죠.”홍 회장은 30년 넘게 패션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1980년 7월 형제들에게 200만원을 빌려 편물기 4대를 산 후 직원 4명과 함께 서울 대방동에 니트 공장을 차렸다. 당시만 해도 국내 의류업체들은 대부분 외국 바이어들이 시키는 대로 제품을 생산하는 ‘삯바느질’ 수준에 머물러있었다. 그는 새로운 디자인의 니트를 생산하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일했다고 한다. 그 결과 1985년 니트 브랜드 ‘까르뜨니트’를 출시했다.“일본 바이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니트 사업가의 길로 접어들게 됐어요. 1989년 일본 게이오백화점에 까르뜨니트를 론칭했고, 국내 백화점에도 25개의 매장을 냈죠. 니트가 겨울철에만 입는 옷이란 개념을 깨고 사계절 내내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했던 게 통했어요. 구로공단에 공장과 사옥을 짓고, 스웨터 내수 판매와 수출에 주력했습니다.”당시 일본 바이어들은 홍 회장을 ‘슈퍼 마리오’라고 불렀다. 80년대 중반 일본에선 닌텐도 사가 개발한 게임 캐릭터 슈퍼 마리오가 인기였다. 바이어들 사이에 “마리오제품을 수입하면 다 팔린다. 홍 회장은 슈퍼 마리오”라는 말이 나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문 약속을 지키고 제품에 작은 하자가 생겨도 일본까지 직접 찾아가 해결한 게 주효했다. 상식 뒤엎은 선택이 성공 원동력그가 국내 최초로 아울렛을 설립한 것은 상품 재고와 유통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홍 회장은 “업체들은 재고를 처리하고 소비자들은 싸게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며 “외국을 돌아보고 선진 유통업인 아울렛이 우리나라에서도 성공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마침 외환위기로 구로공단의 공장이 매물로 쏟아져 나왔다. 넓은 공장과 매장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홍 회장은 ‘지금이 공장 부지를 살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주변에선 무모한 일이라며 모두 말리는 분위기였어요. 당시 외환위기와 맞물려 금융 환경이 좋지 않았고, 또 유동인구가 없는 구로 지역에 대형 매장을 만드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지적이었죠. 당시 까르뜨니트 매장도 전국 60개 중 12개가 부도가 날 정도로 심각한 순간이었으니까요.”모두가 몸을 사리던 때에 홍 회장은 자신의 판단을 믿고 밀어부치기로 했다. 주변에서 위태롭게 지켜보는 속에 마리오아울렛 1관이 2001년 오픈했다. 홍 회장의 확신이 옳았다는 것은 곧 확인됐다. 1관을 오픈한 지 3년 만인 2004년 마리오아울렛 2관을 열었다. 입점을 희망하는 브랜드가 많아진 데다 1관에 선보이지 못했던 신규 카테고리를 들여오기 위해서였다. 2001년 첫해 500억원이던 매출은 2004년 1200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2100억원까지 상승했다. 10년 만에 4배 이상 커진 것이다.이처럼 상식을 뒤엎는 홍 회장의 선택은 마리오아울렛 성장의 원동력이다. 패션과 유통을 ‘원스톱 시스템’으로 묶은 게 좋은 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제조 공장은 지방이나 상권 바깥에 있고, 판매시설은 도심에 자리 잡는게 맞다. 하지만 그는 공장과 매장이 한 곳에 있으면 물류비와 임대료를 줄여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2관에 제조와 판매를 모은 것도 그 때문이다.“국내 패션 생산업체들 대부분 영세하던 시기였어요. 허름한 변두리 지하실 같은 열악한 공장에서 옷을 만드는게 안타까웠죠. 그래서 ‘위층에서 만든 제품을 아래층에서 파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어요. 좋은 상품을 생산해 고객이 많이 사면 그 이익이 다시 우리 회사에 돌아오게 되니까 서로 좋은거죠.”사업이 술술 잘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패션타운을 완성하기까지 “공장 지대에 유통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는 정부 규제로 기나긴 줄다리기를 했다. “처음에는 담당 공무원들이 말도 못할 정도로 고압적이었고, 법 해석 관계없이 무조건 불법이라고 그래요. 심지어 마리오 입주계약 해지됐으니 마리오와 거래를 중단하라고 산업단지공단이 5개 은행에 공문을 보낸 일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3관을 짓는데 8년이나 걸렸어요.”하지만 그 일대에 패션타운이 형성되고 고객과 돈이 몰리면서 규제도 약해졌다. “고비를 넘어오면서 느낀 점은 속임수를 쓰지 않는 정도경영은 이긴다는 겁니다. 잠깐의 이익을 위한 순간의 속임수는 결국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기업간 약속은 신뢰로 이어지고 고객과의 약속은 품질을 통해서 나타나죠.”마리오아울렛의 가장 큰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홍회장은 “경기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질 좋은 상품을 착한 가격에 구매하려는 가치소비 성향이 트랜드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아울렛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명품 라인업으로 중국인 관광객 유치최근 서울·경기권에 아울렛이 속속 등장하면서 시장은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대형 백화점들이 자본력을 앞세워 유동인구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유통환경은 거의 포화상태로 치닫고 있어요. 대형 유통업체의 무분별한 시장진출이 염려스럽습니다. 하지만 가산패션단지는 그 규모나 교통 면에서 전국적인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곳도 접근성이 떨어지면 자주 찾기 어렵죠. 대형 할인마트의 경우 짐이 무거우니 차를 몰고 가야지만 의류는 좀 사도 쇼핑백이 가볍고 그 자체가 패션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대중교통으로도 쇼핑이 가능하다는 얘기죠.”가산패션단지는 하루 평균 12만 명의 서울·경기권 시민이 이용하는 1·7호선 환승역인 가산디지털단지역이 5분 거리에 있다. 남부순환도로·시흥대로·서부간선도로와 바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경부고속철도 광명역과도 15분 거리에 있는 사통팔달의 중심지다. 홍 회장은 “1관 오픈 때부터 ‘김포공항 20분, 인천 30분, 평택 40분’ 광고 카피를 썼다”며 “멤버십 고객 60만 명을 분석해 보면 충청권에도 상당한 숫자가 있다. 가산패션단지를 광역 상권화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최근 알뜰형·실속형 소비가 유행하면서 프리미엄 아울렛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또한 마리오아울렛이 넘어야 할 산이다. 신세계첼시가 경기도 여주시와 파주시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연 데 이어 롯데백화점도 올해 4월 파주시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오픈했다. 롯데는 서울역사 콩코스백화점에 내년 초 롯데 아울렛을 열 예정이다. 최근엔 현대백화점도 인천 송도와 한강 아라뱃길 김포터미널에 아울렛 부지를 확보하고 프리미엄 아울렛 시장에 뛰어들었다.홍 회장은 “국내 고객은 물론이고 중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3관 오픈과함께 2층에 ‘마리오 명품관’을 마련했다. “백화점과는 가격으로, 서울 외곽의 프리미엄 아울렛과는 손쉬운 접근성으로 대적할 생각입니다. 명품브랜드 매장의 수수료율을 15% 내외로 대폭 낮추고, 각 브랜드도 마진을 최대한 낮춰 국내 최저가로 판매할 겁니다. 저희 매장에서는 루이비통이나 샤넬은 면세점 수준, 다른 해외 명품 브랜드는 면세점보다 싸게 살 수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서비스도 강화했다. 중국·일본·동남아시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택스 리펀드 서비스와 외국어 안내표지 등을 제공한다. 또 관광버스가 들어올 수 있도록 주차 공간도 확보했다. “그동안 외국인 관광객을 받고 싶어도 버스를 주차할 곳이 없어 힘들었습니다. 이번에 1400여대가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지난 5월 국내 아울렛 업계 최초로 중국 관광청으로부터 CNTA 품질인증을 받기도 했죠. 앞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CNTA(국가여유국) 품질인증은 2009년 중국 관광청이 불공정·강제 여행과 쇼핑 관행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품질서비스 인증제도다. 3관 오픈에 맞춰 새로 단장한 1관 코스메틱 아울렛도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매장이다. 이곳에서는 신상 화장품을 최고 50%까지 할인해서 판다.명동·동대문 뛰어넘는 ‘공단의 꿈’업계에서는 홍 회장에 대해 ‘강단이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격이 세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그는 “두 가지 다 맞다”고 했다. “중요한 결정을 아마추어와 할 수는 없는 거죠. CEO는 필요에 따라 독불장군이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해야 할 결정, 해야 할 실행에는 강단과 고집이 필요합니다. 성격이 강하다고 욕해도 할 수 없습니다.”그는 사업 신념이 정직과 신뢰라고 했다. 이를 밑거름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성공이라고 하기에는 과분하죠. 하지만 지금까지 정직과 신뢰로 사업을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수해로 수출물량이 침수 피해를 입었을 때는 일본 바이어들이 제게 그 신뢰를 보여주었습니다. 외환위기 때 오히려 디자인을 혁신하고 물량을 보강하는 공격경영으로 위기를 넘었습니다. 위기가 기회라고 생각한 겁니다. 이후 넓은 부지를 구로에 확보하고 아울렛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제 모든 사업의 시작과 끝은 정직과 신뢰입니다.”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촬영 도중 홍 회장은 3관 건물 외벽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건물 외벽 적벽돌에는 마산방직·시대복장 등 과거 공단에 있던 회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는 “구로공단은 산업화의 주역이었으나 외환 위기 때 황폐화 됐다. 그러나 아울렛을 시작으로 가산패션타단지로 변모했다. 이 역사를 해외 관광객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그는 마리오아울렛 3관 오픈 후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민관이 힘을 모아 이 지역에 패션IT 문화거리를 조성하고 구로공단 역사박물관을 만들어 산업 관광 코스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산패션단지를 명동, 동대문패션타운 못지않은 쇼핑 명소로 키우겠다는 포부다.

2012.11.02 15:05

8분 소요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서 영감을 얻을까

산업 일반

‘가브리엘 샤넬’ 혹은 ‘마드모아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코코’라고 불렸던 여자. 그 다양한 호칭만큼이나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샤넬은 현대 여성 패션의 윤곽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미디어라는 용어가 채 발달하기 전부터 이미 ‘미디어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매력적인 여자의 이름은 이제 브랜드에서 더 나아가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1937년 마드모아젤 샤넬의 모습. 진정한 성공은 운명적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았으며, 여성의 의상을 바꾼 혁명가인 샤넬은 이렇게 말했다.옷을 입고 디자인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검은 옷은 장례식에서만 입는다는 고정관념을 바꿔 평상복으로 입었으며, 당시 스포츠웨어로만 활용되던 여성용 팬츠를 일상복으로 입은 거의 최초의 여자도 바로 샤넬이었다.남성용 승마 재킷과 남성용 트위드 재킷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여성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샤넬의 대담함은 ‘Less is More’라는 패션철학에서 드러난다.심플한 블랙 드레스를 입은 코코 샤넬 앞에서 온갖 보석과 장식을 주렁주렁 달았던 당시 여자들은 오히려 초라해졌으니! 연인이었던 보이 카펠의 손에 이끌려 한 파티에 갔을 때 보석으로 치장한 여자들을 보고 샤넬은 기죽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마치 보석상을 통째로 들고 온 것 같네요!”프랑스의 소설가 콜레트는 이런 샤넬을 보고 ‘꺼질 수 없는 오베르뉴의 화산’이라고 불렀다.비록 한 여인으로서 소시민적 행복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대담하고도 열정적이었던 샤넬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며 모든 여성이 한번쯤 동경했을 법한 로망이다. 이는 샤넬이라는 이름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기도 하다.고아원에 버려졌던 코코 샤넬배냇저고리부터 남달랐을 것 같았던 샤넬. 하지만 뜻밖에도 그녀의 출생은 불우했다. 샤넬은 1883년 8월 19일, 프랑스 오베르뉴 지역 소뮈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람둥이 행상이었고 어머니는 가난한 처녀였다. 12년 후, 어머니는 가난과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샤넬과 그녀의 언니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 버려졌다.1900년에 그들은 다시 물랭 지역에 있는 한 수녀원으로 옮겨졌고, 이후에는 근처에 사는 막내 이모 아드리엔과 함께 살게 되었다. 이처럼 어렸을 때 어머니의 불행한 삶을 목격한 샤넬은 평범한 가정을 갖는 대신 평생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된다. 1903년, 갓 20세가 된 샤넬은 한 혼수용품과 갓난아기 용품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무대에서 노래를 했다.당시 그녀가 부르던 노래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 덕분에 코코라는 이름은 그녀의 애칭이 되었다. 25세가 되던 해, 부르주아 집안 출신의 젊은 보병 장교인 에티엔 발상을 만난다. 에티엔 발상은 샤넬을 데리고 말과 많은 친구에게 둘러싸여 한량 생활을 누리던 로얄리유로 떠났다.그곳에서 샤넬은 전혀 새로운 자유에 눈뜨게 된다. 당시 승마장에는 19세기 스타일의 몸을 꼭 조이는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훗날 샤넬은 이 광경을 ‘치렁치렁한 장식으로 여성의 곡선이 사라지고 아름다움은커녕 육체가 질색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샤넬의 단순하고 보이시한 룩은 이런 여성들과 대조되어 매우 파격적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일생에 진정한 사랑으로 기억되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보이 카펠. 둘은 로얄리유를 떠나 파리로 돌아온다. 샤넬은 보이 카펠의 도움을 받아 갤러리 라페에트 백화점에 모자 가게를 낸다.그녀는 평범한 밀짚 모자를 새롭게 장식해 판매했는데, 로얄리유에서 만나 샤넬의 옷차림을 눈여겨보던 사교계 친구들이 그녀의 가게에 몰려들었다.정열적인 사랑과 사업 ▎메릴린 먼로의 잠옷으로 유명해진 향수 ‘샤넬 넘버5’. 앵글로 색슨계의 폴로 선수이자 뛰어난 사업가인 보이 카펠은 우아한 신사였다. 그는 샤넬과 정열적인 사랑을 나눴다. 두 사람의 격정적인 연애를 모티브로 폴 몰랑이라는 소설가는 라는 작품을 쓸 정도였으니! 보이 카펠은 샤넬에게 도빌에 있는 공토 비롱 거리에 새로운 숍을 차려 주었다. 이미 샤넬의 모자는 유명해졌지만 그녀는 모자 사업의 성공에 머물지 않았다. 당시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해 전쟁이 시작되고 물자난이 심각해지자 낡은 로디에 저지 소재를 사들였다. 이는 남자들의 속옷을 만들 때 사용되는 부드러운 천으로 샤넬은 이것을 사용해 헐렁하고 자유로운 여성용 스포츠웨어를 만들었다.당시 전쟁 때문에 남성 못지않게 거친 일을 해야 했던 여성들에게 이런 옷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여성의 치마 길이는 짧아졌고 장식도 거의 사라졌으며 모자도 심플해졌다. 그것은 바로 샤넬의 전공분야였다. 1915년 샤넬은 비아리츠에 두 번째 숍을 열었다. 당시 종업원 수도 60명으로 늘어났다. 하퍼스 바자(Harper’s Bazzar)라는 뉴욕 태생의 패션잡지가 그녀의 옷을 소개해 샤넬의 이름은 유럽을 넘어 대서양을 건너갔다. 당시 보이 카펠이 “장난감을 준다는 것이 자유를 주고 말았군!”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대담한 슬라브적 감성을 얻다 ▎1913년 도빌에서 가브리엘 샤넬. 1919년 전쟁은 막을 내렸다. 20세기의 눈부신 혁명들이 용틀임하듯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해 12월, 샤넬의 불행이 시작됐다. 그토록 사랑했던 보이 카펠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 그녀는 한동안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친구인 미시아 세르는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예술가 무리에 가브리엘을 소개했다. 미시아 세르는 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1900년 초의 시인, 화가들의 연인이기도 했다. 1920년 베네치아 여행 도중 그녀는 샤넬에게 러시아의 유명한 미술 평론가이자 루스 발레단의 설립자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소개하는데 그를 통해 러시아 황제의 조카이며 11세 어린 디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을 만나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역시 샤넬의 디자인적 감성에 영향을 미친다. 샤넬 컬렉션의 자수와 바로크 스타일의 주얼리, 향수에 대한 아이디어나 영감은 이 당시 영감을 받은 것이 많다. 1921년, 오늘날 샤넬 하우스의 본사가 있는 파리 캉봉 거리 31번지에 새 매장을 낸다. 1935년에는 캉봉 거리에 있는 5개 건물에 40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게 되었다. 매년 아틀리에에서는 2만8000여 개의 모델이 제작되었고 이 의상은 프랑스뿐 아니라 전 유럽과 미국, 극동 지역까지 판매되었다. N˚5, 그 매혹의 숫자샤넬은 향수를 몹시 만들고 싶어했다. 흔해빠진 향수가 아닌,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그녀는 모스크바의 랄레 밑에서 일하던 유명한 화학자 에르네스트 보에게 조향을 맡겼다. 그는 프로방스 그라스(Grasse) 지방의 재스민향에 과감하게 알데히드를 더했다. 향수 제조에 알데히드를 사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에 80여 가지 요소를 더해 매우 미묘하면서도 추상적인 다섯 가지 향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 향을 작은 병에 담아 마드모아젤 샤넬에게 줬는데, 샤넬은 5라는 숫자 라벨이 붙은 병을 택했다. 그 유명한 N˚5 향이 태어난 순간! 샤넬의 모던한 감각은 향수병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향수병들이 매우 화려했던 것에 비해 N˚5는 과감하게 사각형으로 디자인된 크리스털 병이었다. 여기에 흰 바탕에 검은색으로 ‘Chanel’과 숫자 ‘5’가 쓰여 있을 뿐. 이후 1922년에 N˚22가 나왔고, 1924년에는 ‘Parfums Chanel’이라는 새로운 향수 회사를 세웠다. 1925년 가르데니아(Gardenia), 1926년에 브와 데 질(Bois des Iles), 1927년 퀴르 드 뤼스(Cuir de Russe) 등 샤넬의 이름을 단 향수가 왕성하게 쏟아져 나왔다. 당시 샤넬은 머리를 단발로 짧게 자른 최초의 여성이 되기도 했다. 창백한 피부가 유행했던 당시 그녀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고 브론즈 빛 피부를 자랑스럽게 드러냈다. 이처럼 샤넬은 새로운 개념의 ‘미의 기준’을 만들어냈고, 이는 아직까지 많은 여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8세기의 저택이 즐비한 포부르 생토노레(Faubourg Saint-Honor) 29번가에 세워진 샤넬 하우스는 막스 야콥, 장 콕토, 게이몽드 라디게 등 20세기 파리의 명사들의 모임 장소였다. 시인이자 늘 단정한 더블 브레스트 재킷에 멋진 셔츠, 넥타이를 매고 다녔던 피에르 르베르디. 그 역시 샤넬을 흠모했는데, 이후 그는 연인으로서의 끈을 놓은 뒤에도 친구로 남아 샤넬의 격언집을 쓰기도 했다. 1922년에는 장 콕토가 를 극으로 개작했는데 피카소가 무대 디자인을, 샤넬은 의상 디자인을 해 세기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같은 해 샤넬은 조각가인 자크 리프쉬츠에게 자신의 반신상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다음 해에는 마리 로랑생에게 초상화를 맡겼는데, 이 초상화는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그즈음 샤넬은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바로 세기의 스캔들이라 불리는 웨스트민스터 공과의 만남. 웨스트민스터 공과의 사랑 ▎1928년 보트 위에 서 있는 샤넬과 웨스트민스터 공. 웨스트민스터 공은 당시 영국 사람 중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윈스턴 처칠의 친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재력과 권력은 그를 지독하게 수줍어하는 성격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가 대담한 성격의 샤넬에게 매혹되었던 것. 웨스트민스터 공을 만난 1926년에서 1931년 사이, 샤넬의 의상은 더욱 세련되고 모던해졌다. 영국풍이 가미된 트위드 재킷, 스포티한 코트, 편안한 정장 등을 선보였고, 코코 샤넬 본인도 이때부터 검은색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무려 5년이나 지속된 두 사람의 관계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로 웨스트민스터 공과의 관계도 깨지고 만다. 훗날 샤넬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면 그와 결혼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으며, 그 다음에는 꼭 이런 말도 덧붙였다고. “그랬다면 난 영국의 성에 갇혀 곰팡이나 피우고 있었겠지. 말년에 두 번씩 여왕에게 절을 하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1924년, 샤넬은 패션 컬렉션을 위한 액세서리를 디자인했다. 요즘에야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액세서리 컬렉션이 흔한 것이 되었지만, 당시 디자이너가 액세서리를 만들어 ‘토털룩’을 제시하는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그녀가 액세서리를 디자인하는 방식 역시 독특했다. 샤넬은 소장하고 있던 많은 보석을 세팅에서 과감히 떼어낸 후 진흙으로 본을 뜨고 여기에 진짜 보석 대신 준보석들을 박아 넣었다. 당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에게 과시하려는 듯한 유행병은 나를 메스껍게 한다!” 진짜 보석이 아닌 준보석으로 완성된 진주 귀걸이, 체인 팔찌, 샤넬 심벌의 귀걸이, 컬러스톤 브로치, 새틴 리본, 카멜리아 등의 액세서리는 대담했고 시크했다. 특히 건축학을 전공한 스타일리스트이자 멋진 일러스트 작품을 수없이 남긴 폴 이리브와 샤넬이 사랑에 빠졌을 때, 이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결합해 멋진 작품들이 나왔는데 특히 주얼리에서 많았다. 1931년, 샤넬은 미국 영화사 초청으로 할리우드로 갔다.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 같은 대스타와는 개인적인 친분까지 쌓으며 의상을 조언해주기도 했다. 라는 영화의 여주인공인 글로리아 스완슨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샤넬에게는 할리우드가 맞지 않았다. 스타들이 부리는 변덕에 그녀는 도무지 즐겁지 않았다. 미국 매스컴이 ‘가장 위대한 패션’이라고 극찬하며 그녀를 부추겼지만 샤넬은 파리로 돌아왔다. 전쟁, 그리고 은퇴와 복귀1935년 여름, 샤넬의 연인인 폴 이리브는 테니스 경기를 한 직후부터 쇠약해졌다. 이리브는 이제껏 만난 남자들에게는 없는 예술적인 재능으로 샤넬을 매혹시킨 남자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샤넬을 큰 슬픔에 빠지게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샤넬 주위에는 여전히 멋진 친구가 있었고 이미 부와 명예, 권력을 쥐었음에도 고독은 점점 깊어갔다. 1936년 샤넬은 생토노레 거리에 있는 저택을 떠나 리츠 호텔로 옮겼다. 1939년 그녀는 장 르노의 작품 에서 영화 의상을 만들며 겨우 힘을 냈는데, 당시 설상가상으로 전쟁이 다시 터졌다. 샤넬은 캉봉 거리의 부티크 하나를 남겨놓고 모두 문을 닫았다. 파리에 남은 그녀는 리츠 호텔에 은둔했고, 캉봉 거리에 남아있는 황량한 숍의 창문과 벽에 자신이 만든 옷을 걸어 가리고 침묵 속에 살았다. 날마다 그녀는 독일 병사들이 기나긴 줄에 끼어 애인이나 아내에게 줄 선물로 N˚5 향수를 사려고 기다리는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 줄은 샹젤리제의 올림피아 극장에 이르기까지 길게 늘어섰다. 예순에 가까운 샤넬은 나치 당원이자 독일의 외교관이었던 한스 군터 폰 딘클라게와 사랑에 빠졌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 군인을 애인으로 둔 탓에 샤넬은 체포되기도 했지만, 웨스트민스터 공이나 윈스턴 처칠 등 유력 인사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당시 샤넬에게 남겨진 것은 향수와 메이크업 사업뿐이었다. 어느덧 샤넬은 70세가 되었다. 파리에서 샤넬은 잊혀진 지 오래, 크리스찬 디올이 프랑스 패션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1956년 2월 5일, 그녀는 캉봉 거리의 매장을 다시 열고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첫 컴백 무대는 실패였다. 이듬해 두 번째 재기 패션쇼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금세기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주는 패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금색 단추에 가장자리를 트리밍한 슈트, 심플한 실크 블라우스, 우아한 커스텀 주얼리, 골드 체인의 핸드백, 끝부분이 블랙인 베이지 슈즈 등 오늘날 전 세계 거리를 수놓은 샤넬 스타일이 완성된 것이다. 1971년 죽음이 그녀를 찾아왔을 때는 홀로 리츠 호텔에 있었다. 그날은 샤넬 하우스의 정기휴일인 일요일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컬렉션 발표일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칼 라거펠트의 시대1983년 샤넬 하우스는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에게 레디 투 웨어, 오트 쿠튀르와 액세서리의 수석 디자이너를 제안했다. 1984년, 샤넬 하우스는 ‘코코’라는 향수를 내놓으며 칼 라거펠트의 캉봉 매장 도착과 함께 판매되었다. 이는 샤넬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과거를 본보기로 더 나은 미래로 나간다’. 종종 괴테의 말을 인용하곤 하는 칼 라거펠트는 누구보다 대담하고 형식에 치우치지 않는 여성이었던 샤넬의 위대한 유산을 이어받기에 적당한 사람으로 보인다. 현재 샤넬 패션은 전 세계 주요 도시의 131개 매장에서 샤넬 여사의 고상한, 동시에 자유로운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있다.

2010.03.05 15:20

9분 소요
Only One을 찾아서

산업 일반

1926년 인도 펀자브의 ‘파리’로 알려진 토후국 카푸르탈라의 왕 자갓지트 싱은 177캐럿짜리 육각형 에메랄드가 중앙에 박힌 왕관을 카르티에에 주문했다. 명품 전문가인 싱은 카르티에를 비롯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최고 고객이었다. 또 그는 아주 엄격한 고객으로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실현하는 데 직접 참여까지 했다. 그의 증손자로 현재 카푸르탈라의 왕세자인 티카라자 샤트루지트 싱은 “증조부님은 카르티에에게 어떤 것을 만들어 달라며 직접 스케치까지 해서 줬다”고 돌이켰다. “그 스케치가 아직도 카르티에의 금고 안에 보관돼 있다. 그 왕관이 카르티에가 만든 것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이런 맞춤 주문은 소수의 부호, 주로 왕족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돈과 욕구만 있다면 누구든 맞춤형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다. 원하는 모든 제품의 세부사항을 제시해 맞춤형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씀씀이가 큰 억만장자들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예를 들면 특급요트 매출은 1999년부터 2004년 사이 80% 늘었다) 수퍼부자들이 차별화를 원하는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그들은 최신 모델의 롤렉스 손목시계나 페라리 스포츠카 또는 프라다 백으로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주로 진취적인 디자이너가 만들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고, 다른 아무도 가질 수 없는 맞춤 제작 상품을 원한다. “대량제조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리즈 골드윈이 말했다. 골드윈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영화제작사를 이끈 새뮤얼 골드윈의 손녀로 영화감독, 보석 디자이너, 그리고 명품전문가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다섯 가지보다 진짜 잘 만들어진 한 가지를 구입하는 게 더 현명한 투자다. 복고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돈이 많다’는 과시적인 삶에서 벗어나 개인화된 서비스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맞춤형 라이프스타일로 가는 길은 주로 남성 정장에서 시작된다. 새빌 로는 가장 유명한 고급 남성 맞춤복 브랜드다. 지금도 구미의 야심만만한 신입사원이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바로 새빌 로 정장이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 남성복의 전통적인 세계를 부활시키는 데 앞장선 디자이너는 톰 포드다. 포드는 고풍스러운 스타일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 구치에서 일한 적이 있는 포드는 구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가죽 제품으로 1990년대의 명품 유행에 불을 댕긴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뉴욕에 자기 이름을 단 매장을 내고 명품 남성복을 선보였다. 포드는 맞춤복에 초점을 맞출 시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일반대중이 가질 수 없는 제품을 원하는 럭셔리 전문가들의 마지막 미개척지이기 때문이다. 톰 포드 남성 정장에는 2900달러부터 시작하는 기성복도 있지만 포드가 정력을 쏟는 분야는 맞춤 남성 정장이다. 맞춤 정장 한 벌의 가격은 최고 8600달러다. 또 와이셔츠는 350가지 색상, 35가지 천, 10가지 칼라 형태, 두 가지 커프 스타일로 제작된다. 포드의 매장은 쇼핑을 격조 높은 체험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매장 안에 집사가 있고, 맞춤 손님만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기성복은 유리로 된 방에 진열돼 있다. “남성 정장은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수단”이라고 포드가 e-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모든 선택이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맞춤 정장이나 맞춤 구두를 제작하려면 스케치를 하고, 재단을 하고, 손바느질을 하고, 마무리질을 하는 등 수많은 공과 시간이 든다. 이 모든 노력의 보람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 구매자에게 별도의 아무런 노력 없이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갖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초점은 디자이너나 패션하우스가 아니라 그 정장을 입는 남자 자신이다.” 다시 말해 맞춤 명품은 자기 내면의 본질을 세련되게 표출해 준다는 의미다. 이런 포드의 생각은 아주 매력적인 판촉 주제로서 고객이 맞춤 제품에 거액을 쓰도록 유도한다. 맞춤 시장에 진출한 남성복 디자이너는 포드만이 아니다. 떠오르는 디자이너 톰 브라운은 정확한 손바느질과 단순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매출 중 약 50%가 맞춤복에서 나온다. 인도에서는 타룬 타힐리아니와 로히트 발 같은 고급 남성복 디자이너 거의 모두가 맞춤복 때문에 사업을 계속하고 있을 정도다. 그들의 부유한 고객들은 빽빽한 사교 모임 스케줄에 맞추려고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의상을 수십 벌씩 갖춰 놓으려 한다. 수퍼부자들은 일단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나면 그 다음은 탈 것으로 눈을 돌린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용 요트와 비행기가 공학과 디자인 양쪽에서 더욱 탐나는 사치품이 됐다. 항공우주공학자 버트 루탄은 자기 회사 스케일드 컴포지츠를 통해 30년 이상 비행기를 주문제작 해 왔다. 그는 2004년 민간 자본으로 개발한 우주선 스페이스십원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준궤도 우주선의 소규모 편대를 만들기 위해 그와 제휴했다. 루탄은 수직 이륙이든 세계일주든 고객의 어떤 요구에도 부응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회사를 선전하는 법이 없다. 그의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는 고객이라면 이미 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트의 세계에는 월리가 있다. 고객이 원하는 사양대로 요트를 주문제작 하는 그는 가장 사치스럽고 공학적으로 잘 설계된 배를 만든다. 바다를 누비는 이탈리아 스포츠카라고 할 만하다. 최근 작품 월리아일랜드는 전장이 108m며 1000㎡ 갑판에 대형 정원과 수영장, 여러 개의 헬기착륙장 ,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어떤 시설도 갖출 수 있어 ‘기가요트’란 별명을 얻었다. 월리아일랜드는 최대 수용 손님이 24명이고 승무원 40명이 승선할 수 있으며 도서관·영화관·스파·체육관을 갖췄고, 상시 주거도 가능하다. 소유자들에게 어디를 가든 럭셔리에 흠뻑 빠진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그런 사치를 누리는 대가가 약 1억2700만 유로라는 소문이 있다. 맞춤 디자인은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트 쿠튀르는 한 세기 넘게 세상에 둘도 없는 의상을 원하는 부유한 귀부인들을 위해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왔다. 오늘날 디자이너 여성복의 세계는 상당히 위축됐다. 발렌티노·이브생로랑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은퇴했고, 제작 과정에 필요한 시간과 돈을 기꺼이 투자하려는 고객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상류사회 여성들은 아직도 샤넬, 라크루아, 크리스티앙 디오르 같은 패션하우스에 수십만 달러를 들여 우아한 야회복을 주문한다. 오랜 고객들이 사라지면서 이제는 중동과 러시아에서 새로운 고객들이 생겨난다. 그들은 새로 얻은 부를 자랑하고, 새로 찾은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물질적 풍요를 추구한다. 디자인 여성복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탐내는 것이 명품 보석 치장품이다. 그라프, 카르티에, 반 클리프 & 아르펠스 같은 보석 세공 전문기업들은 희귀한 보석에 장인의 솜씨를 가미해 명성을 얻었다. 매출의 대부분은 준보석류와 보석이 박힌 시계류의 대중시장 수요에서 올리지만 개인 맞춤형 제작주문도 받는다. 이들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수준이 뛰어난 회사들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제작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인도의 왕족 대다수가 고객인 가족 보석세공회사 젬 팰리스는 인도 전역에 지점을 갖고 있다. 보석 디자이너 문누 카슬리왈은 인도 라자스탄주 주도 자이푸르의 본사에서 고객들(볼리우드의 젊은 여배우와 사교계 명사 포함)에게 자기 가족이 공들여 만든 진기한 제품들을 보여준다. 부드러운 법랑질처럼 셔츠 소매와 잘 어울리고 색상도 일치하는 루비 커프단추 하나, 또는 다이아몬드 원석 수백 캐럿을 엮은 거대한 목걸이 하나의 가격은 수십만 달러나 한다. 카슬리왈의 고객들은 인내심이 있어야 좋은 제품을 얻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나를 제작하는 데 5년이나 걸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내심에 대한 보답은 자신을 표현해 주는 박물관 전시품 수준의 명품이다. 흔히 보이는 카르티에 탱크 시계와 달리 모임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갖고 있지 않는 장식품이다. 럭셔리의 진화는 맞춤형 핸드백의 부상에서 잘 드러난다. 맞춤형 에르메스의 악어가죽 켈리 백과 아스프레이의 악어가죽 케이스는 가격이 수만 달러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제품은 곧바로 알아볼 수 있고 쉽게 눈에 띈다는 사실 때문에 싫어하는 상류사회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그런 ‘최신 유행’ 백을 사려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보다는 예컨대 영국의 브라허 엠덴에 주문해서 만든, 구슬 장식이 정교한 백을 선호할지 모른다. 그런 명품의 매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데 있다. 선명한 로고나 그럴듯한 광고에 끌려 넘어간 패션 희생자라는 불안감 없이 개성을 잘 표현해 주는 액세서리다. 새로운 맞춤형 운동은 이제 상품을 넘어 체험으로까지 연장된다. 음식은 럭셔리 중에서 가장 덧없는 품목일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 요리사를 고용하는 것이 자연식을 하는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퍼부자들은 특이한 개인의 식성에 맞추고, 또 멋진 만찬 파티를 열기 위해 개인 요리사를 고용한다. 지난 3년 동안 미국의 개인 요리사는 22%나 늘어 약 5500명에 이른다고 미국개인요리사협회의 CEO 겸 사장인 케일 케너기가 말했다. 저명 요리사 마루트 시카는 빌 클린턴 같은 VIP 손님이 참석하는 만찬을 위해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메뉴를 짠다. 그가 만든 요리 중에는 인도 무굴제국식 케밥이 있다. 진주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얹고 24K 금엽으로 장식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시카는 고객이 특별히 좋아하는 것과 특별히 싫어하는 것을 피해 가는 데 능숙해 아무리 엄격한 기준에도 잘 맞춘다. “사람들의 식성은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육류의 특정한 부위만 먹고 어떤 사람은 소금을 싫어하며, 어떤 사람은 아주 희귀한 칠리만 찾는다”고 시카는 말했다. 가격은 1인당 최고 1200달러다. 시카는 무엇이 그 정도 값을 치르도록 하는지 잘 안다. “사람들이 왜 일등석을 타고, 왜 귀한 와인을 마실까? 음식은 이와 같은 무형의 럭셔리다. 내가 만든 비싼 음식을 사람들이 찾는 것은 내가 몇 시간이나 며칠을 거기에 쏟았기 때문이고, 특정 고객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먹는 즐거움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맞춤형 시장의 진화 사례 중 가장 극단적인 것은 라 프티트 메종이 제공하는 개집일지 모른다. 주인 집의 축소판부터 시작해 견공의 혈통에 맞는 예술적인 스타일(예컨대 생베르나르 종을 위해서는 ‘진품’ 스위스 샬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복잡한 견공 왕궁에는 매입형 조명, 냉난방 장치, 건식벽체 내부, 맞춤형 가구 등이 완비돼 있다. 최대 3만5000달러인 이 호화판 개집은 수퍼부자와 중상층(中上層)의 돈 씀씀이가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준다. 수퍼부자들은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라이프스타일을 찾는 데 주저하지 않고 돈을 쓴다. 대중용 럭셔리 상품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가 크게 늘면서 진정으로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은 더욱 특별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찾는다. 골드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손에 넣으려는 심리가 섬세한 ‘인간미’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디자이너 의상에서는 안감에도 특별한 뭔가가 있다. 외부에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개성의 표현이다. 앞면에 커다란 버클이 달린 구치 백을 드는 것과는 정반대 개념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은밀한 사치를 따라 하기 전까지는 그 말이 옳은 듯하다.

2008.06.03 11:13

7분 소요
스타보다 바쁜 스타일리스트

산업 일반

연예인들 멋 내기 도와주는 패션 전문가의 손에 명품 브랜드 흥망이 달렸다 비 내리는 지난 2월 어느 날 오전, 퍼닌슐러 베벌리 힐스 호텔의 한 스위트룸. 레이철 조(36)가 휙 들어섰다. 마치 방 주인이라도 되듯 당당했다. 로베르토 카발리 재킷과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 차림에 클로에 벨트를 매고 굽이 13㎝인 롱부츠를 신은 조는 얼른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유명한 구두 디자이너 지미 추는 사교계 명사와 연예인, 또는 조 같은 일급 스타일리스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려고 그 방을 예약했다. 조는 아카데미 시상식 주간에 열릴 수많은 만찬과 파티에 신고 갈 구두를 빌리려는 고객들을 대신해 그곳에 들렀다. 보티첼리의 그림에 나올 법한 긴 고수머리가 앞을 가리지 않도록 고개를 흔들면서 샴페인을 홀짝이는 수많은 가짜 금발녀 곁을 지나 침실로 직행했다. 그곳에는 가구가 치워지고 대신 긴 테이블들이 놓였다. 테이블마다 위험할 정도로 높고 엄청 비싼 여성용 구두가 수십 켤레씩 진열됐다. “샐마(샐마 하이예크)가 신을 사이즈 6짜리가 필요하다”고 조는 뉴저지 북부 억양으로 지미 추 매장에서 나온 직원에게 지시했다. 조는 끈 달린 금색 가죽 뾰족구두를 집어 들더니 이어 은색, 동색의 다른 구두를 지목하면서 여배우 겸 대본작가 줄리 델피용으로 예약했다. 검은색 플랫폼 슈즈(굽이 두꺼운 구두)도 두 켤레 골랐다. “이 플랫폼에 보석 장식 되나요?” 그가 날카롭게 물었다. 지미 추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재빨리 적었다. 조는 배우나 가수 등 연예계 스타들의 복장을 관리하는 대가로 하루 수천 달러씩 버는 할리우드의 일류 스타일리스트다. 10년 전만 해도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영화 시사회, 자선행사, 시상식 프로그램이 급증하고, 게다가 파파라치, 연예인 전문잡지, 연예오락 텔레비전 쇼 등이 급증하면서 스타들은 일주 내내 하루 24시간 언제라도 방금 패션잡지에서 나온 듯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홍보 담당, 개인 비서, 트레이너, 요리사와 마찬가지로 스타일리스트도 할리우드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됐다. 스타일리스트는 패션쇼에 참석하고 고객에게 가장 최신의 멋지고 섹시한 의상을 입히려고 끊임없이 쇼핑을 다닌다. 큰 행사가 있을 땐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연예인 고객에게 옷을 입혀주고 보석을 달아주며 천 허리띠를 올바르게 졸라매준다. 그 역할로 이들은 명품산업의 중요한 구성원이 됐다. 규모가 1570억 달러에 이르는 명품산업은 루이뷔통, 구치, 프라다, 디오르, 샤넬 같은 기업들이 지배한다. 이 회사들은 대부분 1세기 전 아름답게 만든 수공품을 부자들에게 파는 1인 가게로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재계 거물들이 많은 명가를 인수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계적 브랜드로 키웠다. 명품 브랜드는 이윤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저급시장을 확대했다. 중산층 고객을 노려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선글라스, 핸드백 등의 비교적 저가 상품을 내놓는다. 라스베이거스나 와이키키 같은 관광명소에 수천 개의 매장을 신설했다. 이월상품을 소매가의 50~75%에 파는 할인점도 열었다. 명품 기업들은 폭넓은 고객층을 겨냥해 광고예산도 대폭 늘렸다. 구치의 경우 광고비 지출이 1993년의 590만 달러(수입의 2.9%)에서 1999년에는 8600만 달러(수입의 7%)로 늘었다. 그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 1994~99년 사이 구치의 매출은 2억6400만 달러에서 12억 달러로 늘었다. 2004년이 되자 최고경영자 로버트 폴릿은 20억 달러인 구치의 수입을 2011년까지 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이 회사는 그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다가간다. 신상품 개발, 할인점 신설, 광고비 증액에도 불구하고 명품 브랜드가 가장 싸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방식은 자기네 옷을 연예인들에게 입히는 일이다. “배우를 제대로 골라 붉은 카펫을 걸으면서 디자이너 이름을 자꾸 말하게 만들면 재미를 보게 된다”고 구치 그룹의 홍보실장을 지낸 리자 쉬크가 말했다. “그 규모는 엄청나다.” 조 같은 스타일리스트는 자신의 힘을 잘 안다.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 모두 “100만 달러어치의 무료 광고”가 된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배우가 패션 매상을 올려주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조앤 크로퍼드가 1932년 영화 ‘레티 린턴(Letty Lynton)’에서 에이드리언이 디자인한 하얀 이브닝가운을 입고 나오자 메이시 백화점에선 그것을 본뜬 옷이 50만 점이나 팔렸다. 그레이스 켈리가 1956년 모나코 왕자 레이니어 3세와 결혼식을 올릴 때 입은 드레스는 역사상 가장 많은 복제품을 낳았다. 할리우드 황금기에 스타들은 영화사 전속 의상 디자이너가 골라주는 옷을 입고 야간행사 나들이를 했다. 그것이 1950년대 들어 변했다. 소위 할리우드 반독점 판례로 알려진 대법원 판결로 영화사의 사업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배우와 마찬가지로 의상 디자이너를 더 이상 계약으로 묶어두지 못하게 됐다. 그들은 대신 자유의 몸이 되어 이 영화 저 영화 전전했다. 영화사 전속 디자이너가 공짜로 멋진 의상을 대주지 않자 스타들은 시사회나 시상식용 의상을 손수 구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문제는 대다수 스타의 안목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느긋하게 사는 도시로 유명한 로스앤젤레스가 문제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편하게 입는 법은 알아도 정식으로 차려 입는 법은 아무도 몰랐다. 벳시 블루밍데일이나 낸시 레이건 같은 사교계 명사들에게는 여전히 제임스 갈라노스 같은 디자이너가 있어 캘리포니아 남부 복식문화에 맞게 입혀줬지만 대다수 연예인은 스스로 알아서 입었다. 그러다 보니 처참한 몰골이 연출되기도 했다.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 스판덱스 자전거 바지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나타나 붉은 카펫을 밟은 드미 무어의 모습을 누가 잊겠는가? 연예인들에게는 선배들 못지않게 우아하게 옷을 입혀줄 높은 안목을 갖춘 안내자가 필요했다. 조르조 아르마니가 기꺼이 그 일을 맡았다. 아르마니는 1970년대에 등장해 공업도시 밀라노를 하루아침에 패션 중심지로 탈바꿈시킨 이탈리아 신세대 기성복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었다. 잘생기고 차분한 아르마니는 소위 소프트수트를 개발했다. 감청색, 검은색, 진회색의 딱딱한 영국식 모직, 플라넬 복장을 버리고 대신 린네르, 울저지, 직조직물 등의 가볍고 부드러운 천을 선호했다. 그는 원래 남성복 전문이었으나 이내 여성 정장으로도 눈길을 돌렸다. “당시는 여권운동 시대였다”고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여성들은 작은 드레스나 몸에 딱 맞는 작은 정장을 넘어서는 옷, 다시 말해 힘과 권력을 제공하는 옷이 필요했다.” 아르마니의 할리우드 정복은 당시 무명이던 리처드 기어라는 배우가 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나오면서 시작했다. 아르마니의 소프트수트는 기어의 거만한 걸음걸이와 함께 펄럭였다. 몸에 딱 맞는 셔츠가 근육질인 기어의 상반신을 뚜렷이 살려주면서 그가 정장차림으로도 편안하고, 심장이 멈출 정도로 섹시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 영화로 패션디자이너 아르마니의 명성은 높아졌지만 회사의 미국 매출액은 1400만 달러로 세계 매출액의 10%에 불과했다. 아르마니는 미국 배급망을 확대하는 동시에 더 넓은 고객층에게 다가갈 방안이 필요하며, 스타들에게 자기 옷을 입히면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사람이 내 옷을 제대로 입어야 했다”고 그는 말했다. 아르마니는 뉴욕에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동생인 리 래지윌을 “특별행사 코디”로 고용했다. 래지윌은 발레, 오페라, 자선행사 등 가는 곳마다 아르마니를 입고 다녔다. 머지않아 카메라에 자주 잡히는 그의 사교계 친구들 역시 아르마니를 입기 시작했다. 아르마니는 할리우드에서 발이 넓은 사교면 편집자 출신 완다 맥대니얼을 고용했다. 그는 마리아 슈라이버가 1986년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결혼식을 올릴 때 신부들러리를 섰었다. 맥대니얼은 보수적인 재치와 할리우드 감각을 적당하게 고루 갖춘 사람으로서 할리우드 인사들이 아르마니를 입게 만드는 일이 임무였다. 맥대니얼은 연예인들의 홍보 담당, 매니저, 에이전트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아르마니는 곧 할리우드 제작자, 간부, 실력 있는 브로커들의 유니폼이 됐다. 맥대니얼은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 후 월척을 낚았다. 당시 조디 포스터가 ‘피고인(The Accused)’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포스터는 밀라노에서 쇼핑을 하다가 산 드레스를 입고 나왔는데, 엉덩이에 커다란 장식이 달린 하늘색 호박단 무도회 가운이었다. “모두들 꼴불견이라고 한마디씩 했다”고 맥대니얼은 돌이켰다. 즉시 포스터에게 전화 걸어 다음해 시상식 때 아르마니 드레스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 “포스터는 ‘기왕 그러려면 내 평생 그래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스터에겐 머지않아 동료들이 생겼다. 1990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 맥대니얼은 제시카 탠디, 레나 올린, 댄 애크로이드, 톰 크루즈, 덴절 워싱턴, 스티브 머피, 제프 골드블럼, 데니스 호퍼, 사회자 빌리 크리스털에게 옷을 대줬다. 미셸 파이퍼의 경우는 옷만 골라줬을 뿐 아니라 파이퍼가 옷에 어울리지 않게 초라한 보석을 걸고 나타났을 때 자신의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빼서 손가락에 끼워줬다. 위민스웨어데일리는 그날 행사를 “아르마니 시상식”이라 불렀다. 매출이 급증했다. 1990~1993년 아르마니의 전 세계 수입은 4억4200만 달러로 두 배 뛰었다. “맥대니얼 혼자서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당시 랠프 로렌의 서부 영업담당으로 일했던 제니퍼 마이어가 말했다. 경쟁자들이 그 전략을 본뜨려 들었다. 라이벌 패션 명가들이 맥대니얼을 빼내려 했지만 그는 아르마니를 떠나지 않았다. 캘빈 클라인은 베벌리윌셔 호텔에서 서부 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선 멕 라이언, 골디 혼 등의 선택된 연예인이 그의 옷을 할인가에 샀다. 디자이너들이 파리나 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스타들을 초대해 맨 앞줄에 앉히기 시작했다. 여행비가 공짜인 데다가 옷도 거저 줬다. 1993년 8월의 인스타일을 필두로 연예인들의 스타일만 취급하는 잡지들이 창간되면서 그런 연예인 구애작전의 규모도 커갔다. 보그나 하퍼스바자 같은 패션 잡지가 표지에 모델 대신 연예인 얼굴을 싣기 시작했다. “요컨대 연예인을 실어야 훨씬 잘 팔린다는 이야기”라고 보그 편집장 애너 윈투어가 말했다. 1990년대 초 패션 명가들은 연예인을 직접 유인했다. 연예인 구애작전을 펴는 디자이너가 늘어나면서 연예인들은 늘어나는 선택범위를 놓고 고를 머리 좋은 안내자가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전속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연예인 대신 매장에 가서 옷, 보석, 구두를 고른다. 스타일리스트 중에는 패션 잡지의 기자로 일하면서 촬영이나 카탈로그 제작차 모델에게 옷을 입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 일은 꼼꼼하게 해야 한다. 스타가 홍보투어에 나설 경우 스타일리스트는 복장을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조의 말에 따르면, “브래지어에서 구두에 이르기까지”)이 가득한 노트북을 작성한다. 그 안에는 어떤 행사에 어떤 옷을 입을지, 비가 오면 무엇을 입을지 다 적혀 있다. “여배우들은 예쁘기는 해도 옷 입는 법을 모른다”고 패션 홍보 전문사 피플스레볼류션의 창립자인 켈리 커트론이 말했다. “‘가빈치’가 아니라 ‘지방시’라고 디자이너 이름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모르기 때문에 옷 입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구두를 신고 걷는 법도 가르친다. 그들의 능력으론 너무 벅찬 일이다. 그래서 스타일리스트가 필요하다. 전에 영화사가 했던 일을 대행하는 것이다.” 스타일리스트들은 머지않아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자신이 패션스타가 됐다. 제시카 패스터는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킴 베이싱어에게 에스카다의 담황록색 실크 호박단 이브닝가운을 입혔고, 미니 드라이버에게는 핼스턴의 선홍색 저지 일자 드레스를 입히고 거기에 어울리는 모피 숄을 두르게 해 이름을 날렸다. 미크 재거의 애인이며 190㎝가 넘는 장신에 칠흑 같은 머리를 자랑하는 로렌 스콧은 모델 출신으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맞춤패션 스타일이다. 그의 주고객은 니콜 키드먼이다. 모델에서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변신한 필립 블로크는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가는 할리 베리에게 당시 무명의 레바논 출신 디자이너 엘리 사브가 만든 사롱처럼 생긴 포도주색 치마와 가운을 입혔다. 그날 여우주연상을 탄 베리는 베스트드레서 명단에도 오르고 동시에 사브도 졸지에 파리 일류 디자이너 수준으로 뛰었다. 조는 업계에서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일리스트다. 린제이 로한, 니콜 리치, 미샤 바턴, 제시카 심슨 등이 고객이다. 뉴저지에서 자란 조는 보그를 읽기 시작했고 열세 살 때 처음 루이뷔통 가방을 샀다.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공부했고, 정신과 전문의가 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대신 YM 매거진에 취직해 패션 편집부장까지 승진한 뒤 프리랜서가 됐다. 머지않아 백스트리트 보이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엔리크 이글레시아스 등이 그의 고객이 됐다. 일 때문에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일부 고객들의 지나치게 마른 몸매 때문에 소위 조 복제품으로 불리는 그들을 버려놓지 않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조는 고객들에게 다이어트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의 일부 고객은 원래 스타일이 멋지기 때문에 약간의 도움만으로 복장이 완성된다. 그런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봐줘야 멋진 모습이 만들어지는 사람도 있다. 하루 6000달러를 받고 조가 그 일을 해준다. 티셔츠와 청바지만 입던 사람을 명품 패션을 걸친 멋쟁이로 둔갑시킨다. “그 여자들은 아침에 집을 나와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사진을 찍힌다”고 조가 말했다. 뉴욕 디자이너 마이클 코스의 말마따나 “레이철은 그 여자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사러 갈 때 멋있게 보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시상식 시즌이 되면 조는 하루 300통의 전화와 200개의 e-메일을 받는다. 부자들이 자기네 딸을 데리고 파리에 가서 쇼핑해주는 대가로 2만 달러까지 제의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임박하면 그와 두 조수는 거의 하루종일 일한다. 2006년 시상식 때 조는 가장 거물급 고객인 키이라 나이틀리의 옷을 직접 골라 입혔다. 베라 왕이 디자인한 한쪽 어깨에 걸치는 포도주색 호박단 이브닝가운이었다. 두 조수는 다른 고객들에게 보냈다. “지퍼가 고장나거나 단추가 떨어지는 등 비상사태에 대처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조는 말했다. 그의 고객들이 리무진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수백만 달러가 왔다갔다 한다. 커튼사가 2004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24세 여성의 27%가 옷 살 때 연예인들을 보고 힌트를 얻는다고 말했다. 1994년에는 15%였다. 25~34세 연령대에서는 1994년의 10%에서 2004년에는 18%로 뛰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급변한다. 2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 주간에 추문이 터졌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소수의 스타가 붉은 카펫을 밟을 때 입어주는 대가로 명품 브랜드에서 10만 달러 이상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사실 “붉은 카펫 수입”이라 이름 붙은 그런 일은 소리는 나지 않지만 점점 관행으로 자리잡아간다. 할리우드의 대형 에이전시에는 연예인이 공식 행사에 나갈 때 입을 옷을 놓고 명품 브랜드와 협상을 벌이는 에이전트들이 있다. “돈을 내고 자기네 전속 스타에게 옷을 입힐 의향이 있느냐는 에이전트들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스타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 할리우드의 한 명품 브랜드 대표가 말했다. 업계 인사들은 붉은 카펫 수입이 머지않아 정체상태에 이르러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들의 위력과 고객 기반이 크게 떨어지리라고 내다본다. 조는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다. 멋 내는 재주를 활용해 다른 일들을 벌였다. ‘멋 내기 백과사전(Style A to Zoe: The Art of Fashion, Beauty, & Everything Glamour)’이라는 패션 안내서를 썼다. 올가을 출간 예정이다. 주디스 리버 브랜드로 만들 핸드백의 디자인도 맡았다. 핼스턴 브랜드와도 디자인 컨설턴트 계약을 맺었다. 옷장에서 연예인들 옷 골라주는 데 보내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의 도움을 원하는 잠재 고객은 줄지 않는다. 어쨌든 멋을 외면하는 날은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2007.09.27 14:53

10분 소요
The Good Life

산업 일반

Warm And Fuzzy 따뜻하고 포근하게 코코 샤넬은 모자만 팔던 부티크 매장의 취급 품목을 늘리기로 마음먹자마자 곧바로 스웨터를 선택했다. 스웨터는 용도가 다양하고 푸근하다. 그리고 여자들은 스웨터가 아무리 많아도 더 필요한 모양이다. 그후 니트가 샤넬의 주력상품이 됐다. 올 시즌에는 스웨터의 인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벨트형, 단추형, 지퍼형, 묶는 형 등 이들 니트 제품은 코트나 드레스로 또는 사무실 주변에서는 겉옷 대신 입어도 좋다. 샤넬의 현재 컬렉션은 스웨터 드레스 2종으로 둘 다 고급스러우면서도 편안함을 살렸다. 자두색 양모-저지 재킷과 검은색 드레스에 캐시미어로 놀랍도록 섹시하게 변화를 준 모델이다(3351달러, 2758달러, chanel.com). 세계 최대의 캐시미어 제조사 로로 피아나의 스웨터 드레스와 재킷은 종류가 많다. 종종 두 가지를 세트로 내놓기도 한다. 양모 미니드레스와 코트는 푸근함과 맞춤 재단을 결합해 스웨터 유행의 정신을 살렸다(1595달러, 2500달러, loropiana.com). 다른 일류 디자이너들은 최고급 양모 몇 가지를 사용해 대담하고 특이한 멋을 추구한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촘촘하고 따뜻해 보이는 니트를 이용해 달걀 모양의 스웨터-코트를 만들어 장난스럽고 꾸밈 없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육중한 은색 지퍼를 택한 품목도 있다(3795달러, stellamccartney. com). 말로(Malo)도 차분한 색조, 털이 많은 섬유, 반듯하고 각진 재단으로 비슷하게 장난스러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소재는 모두 캐시미어다(1300~2000달러, malo.it). 소냐 리키엘의 가장 돋보이는 스웨터 한 벌 세트는 빨간색이다. 뜨개질한 나비 매듭과 주름 장식이 특징이다(스커트 905달러, 망토 1558달러, soniarykiel.fr). 가일스 디콘도 올시즌 대담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의 올리브색 드레스는 허리에서 묶는 스타일로 포켓이 달렸다. 아주 두툼한 뜨개질로 슬리핑백을 입는 느낌이다. 전용 웹사이트는 없지만 닥스(daks. com)의 신임 개발팀장이며 style.com에 가을 컬렉션이 소개됐다. 버버리의 ‘육중한’ 스웨터 드레스는 상대적으로 날렵해 보인다(826달러, uk.burberry.com). 그래도 포근하다. The Maximalist 이보다 더한 사치는 없다 LOCUS PLETHORE 캐나다의 신형 로커스 플레토레(퀘벡 폭탄이라고도 불린다)는 순전히 탄소섬유로 만들어졌다. 굉음을 내는 8.2짜리 8기통 엔진을 자랑하지만 부속 프레임이 없어 차체가 아주 견고하다. 가격은 무려 31만4000달러나 하지만 운전대를 잡아보려면 내년 여름까지 기다려야 한다. Down the Drain 배수구 덮개가 예뻐졌다 근사한 타일을 깔고 번쩍이는 유선형 수도꼭지를 달면 욕실이 고급스러워진다. 그러나 몇몇 고급용품 회사는 버리는 물도 반짝이고 화려하게 보이게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광채를 내는 마개와 하수구 덮개다. 무라노 하우스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수제 베네치아풍의 설비를 만든다. 가장 최근에 나온 보석 달린 세면대는 은, 금, 또는 백금을 입힌 고급 받침대 위에 유리를 깔고 에메랄드, 루비, 호박, 자수정 같은 귀금속을 박았다(muranohouse.com). 이 회사는 또 시계 역할도 하는 더 남성적인 배수구 덮개도 선보였다. 워치 웨이스트(Watch Waste)는 눈길을 끌 뿐 아니라 화장실에서도 언제나 시각의 확인이 가능하다. 애리조나에 있는 링커싱크도 흥미로운 장식 배수구 덮개를 다양하게 마련했다. 아름다운 구슬 박힌 조개 모양, 조각한 돌, 심지어 칠보(七寶)세공 덮개도 있다(linkasink.com). 칫솔질 할 때 눈이 즐거워진다. Luxury Can't Be Taught in Class 명품은 배워도 못 만든다 NICK FOULKES 기자 새 학기를 맞으니 내가 직업교육을 얼마나 불신했는지 기억난다. 물론 의학이나 대형 항공기 조종은 예외다. 그러나 명품만은 직업교육 과목이 되지 않도록 한계를 그어야 한다. 그렇다고 장인더러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건 사람들이 MBA가 만능인 양 떠받들면서 명품 세계에도 갈수록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명품은 교실에서 배우기 힘들다. 진정한 명품을 알아보는 안목은 평생 길러야 한다. 명품의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다고 생각하면(그리고 세계의 명품 브랜드가 한 무리의 무지한 사업가들 손에 운영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몸에서 기운이 쭉 빠진다. 영국의 고급 나이트클럽 소유주 마크 벌리가 지난 8월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좌절감이 더 심해졌다. 마크를 친구로 뒀으니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는 40여년 전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나이트클럽 애너벨스를 버클리 광장에 세웠다. 그리고 그후 10여 년마다 메이페어에서 마크스 클럽, 해리스 바, 배스&라켓스, 조지를 하나씩 설립해 나갔다. 문을 연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만의 특유한 감각이 남아 있다. 삶의 냉혹한 현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도록 아름답게 꾸며졌다. 마크는 완벽함의 추구를 자신의 삶이자 생활로 만들었다. 그는 명품은 미학과 인간공학의 복잡한 혼합체임을 이해했다. 내가 알기로는 레몬 반쪽을 모슬린 천으로 감싸 레몬을 짤 때 씨가 생선 위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영국에 소개한 사람도 그였다. 백개몬 세트는 그의 상징적인 작품이었다. 에르메스의 의뢰로 만들어진 이 세트는 주사위 굴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깔개 역할을 하는 태피스트리가 있어 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사업가 기질이 숨어 있었다. 1950년대 그는 런던에 에르메스 지점을 냈다. 1950년대 런던에 에르메스 지점을 냈다. 한 시즌에 악어 핸드백이 팔리지 않으면 보관했다가 다음해에 같은 가격에 팔아도 된다는 점이 명품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품질의 지속적인 가치를 구체적으로 정의한 셈이며 진정한 명품과 계절 유행 간의 차이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다. 이런 이유에서만이라도 그 모든 젊고 열성적인 MBA 학도들에게 마크 벌리의 생애와 작품을 공부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도 관심이 없다면 그가 숨지기 두어 달 전 자신의 클럽들을 1억 파운드에 팔았다는 소식을 알려주면 흥미를 가질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한 그는 MBA 학위가 없었다.

2007.09.27 14:39

4분 소요
The Good Life

산업 일반

Pearls Updated 진주 목걸이 할머니들이 했던 진주 목걸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참신한 디자인에 눈부신 보석을 결합한 현대의 목걸이는 고전적인 홑줄로부터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수세기는 아니더라도 내 평생 동안 진주 목걸이는 목에 덜렁 한 줄만 늘어뜨린 스타일이었다”고 전 세계에서 컬렉션을 판매하는 아사엘 인터내셔널의 살바도르 아사엘 회장은 말했다. “신세대는 다른 무엇, 젊어 보이면서 용도가 다양하고 어떤 날에도 어울리는 제품을 원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았다.” 아사엘의 로프 목걸이. 아사엘 하우스는 유고슬라비아 디미트리 왕자의 다양한 디자인 위에 온갖 유형과 색상의 진주를 활용하고 거기에 보석, 반보석(半寶石), 그리고 목재 같은 평범한 소재까지 결합한다. 로프 네클리스의 54알짜리 타히티 진주는 균형 잡힌 바로크풍에 무지개 광택을 띤 회색 제품이다. 18캐럿 옐로 골드의 바탕 위에 타원형 월장석, 루비 구슬이 함께 박혀 있다(6만 달러, assael. com). 이 같은 추세가 시작된 하나의 이유는 대량 공급되는 중국 민물 진주다. 굴이 아니라 홍합에서 생산되는 민물 진주는 이제 색상·모양·광택에서 바다 진주에 손색이 없다. 불가리가 새로 내놓은 진주 컬렉션 2종 중 하나인 사파이어 플라워 품목은 중국산 민물양식 진주와 무지개 색을 이루는 여러 색상의 사파이어로 만들어졌다. 플로라 18캐럿 옐로 골드와 다이아몬드 반지는 배 모양의 사파이어 다섯 개가 여러 색상의 꽃을 이루며 그 옆에 백색 진주 하나가 박혀 있다(8200달러, bulgari. com). 데이비드 유르만의 봄 컬렉션에서도 진주가 핵심을 이룬다. 순은과 18캐럿 금이 섞인 체인에 터키옥과 민물 양식 진주를 엮어 만든 목걸이 외에도 잉글랜드 남해에서 양식된 두툼한 초대형 진주를 엮어 만든 고전풍의 홑줄 목걸이가 대표적이다(줄 목걸이 1만3000~8만 달러, 체인 목걸이 3650달러, davidyurman. com). 티파니는 잠자리 컬렉션으로 고전적인 단순함에 파격적인 변화를 준다. 예컨대 흰색 민물양식 진주와 1.7캐럿 상당의 둥근 다이아몬드들을 결합해 반짝이는 석 줄짜리 잠자리 팔찌를 만들었다(9750달러, tiffany. com). 로라 깁슨은 컬러 진주와 다른 보석을 섞어 자신의 여성적인 디자인을 만든다. 대표적인 목걸이는 타히티 케시 진주, 런던 블루 토파즈, 남옥(藍玉), 조회장석(曹灰長石), 모거나이트를 결합해 푸른 바닷빛의 아름다운 명품을 창조했다(1만800달러, lauragibson. com). KARLA BRUNING 기자 The Sweet Smell of Sweat 땀냄새가 향긋해진다 방취제 반(Ban)의 향이 너무 평범한가? 아리드 익스트라 드라이가 따분하게만 느껴진다고? 이제 디자이너들이 자신들만의 특색있는 방취제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 직원회의에서는 자신 있게 팔을 들어올려도 좋다. 11월에 새로 나온 이브 생 로랑의 르옴므 방취제는 감귤나무와 사향의 산뜻한 느낌이 지속되지만 클리어 젤이 모두 그렇듯 1분 정도 지나야 마른다(24달러, sephora. fr). 얼루어 옴므 스포트 스틱은 샤넬의 같은 이름을 가진 화장수 제품이 잘 팔리자 그 이름을 빌린 제품이다(20달러, chanel.com). 아쿠아 디 파르마는 여러 가지 유니섹스 향으로 방취제를 만든다. 그중 특정 매니어층을 확보한 콜로니아는 민감성 겨드랑이에 적합한 무알코올 제품이다(30달러, hqman.com). 반 클리프&아르펠스 퍼스트 방취제 스프레이는 1976년에 나온 원조 제품의 꽃향기를 더 약화시켰다. 까막까치밥나무, 재스민, 바닐라 향이 은은하게 난다(45달러, sephora.fr). Grape Escapes 나파 밸리에서 포도주 관광 즐기자 앞으로 몇 주 동안 나파 밸리는 본격적인 수확철을 맞는다. 찾아가려면 지금이 최적기다. 현지의 포도주 양조업자들이 많이 드나드는 고급 리조트 메도우드에 숙소를 정하라(1박에 525달러부터, meadowood.com). 아니면 이곳의 식당에서 식사만 하면서(3코스에 60달러부터) 현지인들과 잘 사귀면 개인적으로 포도원에 초대받는 경우도 있다. 그게 뜻대로 안 되더라도 실버라도 트레일에 있는 마이너 패밀리 포도원을 방문하자(구경 무료, minerwines.com). 거기서 맛좋은 피노 누아, 샤르도네이, 카버네 쇼비뇽을 시음한 뒤 맞춤 견학을 요청하자. 밭에서 채취된 포도 송이가 포도 알을 분리하는 기계를 거쳐 (말만 잘하면 작업 체험도 가능하다) 으깨는 장치로 이동한 다음 발효통에 이르는 과정을 구경한다. 안락한 시음실도 있다. 그리고 끝으로 신디 폴슨의 최신 카페 고 피시에 들러 현지 농산물, 고급 초밥, 다양한 해산물 메뉴를 즐기자. 여기서는 사케 대신 현지산 포도주를 택하는 편이 좋다. Be at One With Your Porsche 몸의 일부를 움직이는 듯한 걸작 포르셰 밖에 나와 놀자는 속삭임이 마당 차고에서 끊임없이 들려온다. 따분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 매혹적으로 예쁘고 자그마한 터보 쿠페의 부름에 응한다. 운전석에 올라 몇 바퀴 돌자 속삭임이 비명으로 바뀐다. 이것이 차에서 나는 소린가, 아니면 내가 지르는 소린가. 이 공학기술의 걸작은 정지상태에서 3.4초 만에 160km 속도에 이르는 순간 가속력을 자랑한다. 차에 장착된 스포트 단추는 통근 운전자를 정열의 화신으로 변신시킨다. 그 단추를 누르면 완충장치가 팽팽하게 긴장하면서 자세를 낮춰 질주 태세를 갖춘다. 상상해 보라. 3.6ℓ, 6기통, 쌍발 터보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480마력의 힘을. 그러나 이 터보 자동차는 정교하고 예리한 조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 회전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차는 벌써 돌기 시작한다. 도로의 감각, 그리고 차와 운전자 간의 의사소통이 완벽하다. 이 모든 가속 성능에 각종 안전장치도 함께 갖췄다. 트랙션 컨트롤(발진·가속시 타이어의 공전을 방지하는 장치), ABS(자동제어장치), 고도의 안정성 관리 장치, 사륜 구동 장치, 전방과 측면 에어백 등. 놀이공원의 요란한 청룡열차를 궤도에서 뜯어내 도로를 달리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2006.11.21 14:04

4분 소요
NewsWeekPlus

산업 일반

White: So Worn Out 색깔있는 웨딩 드레스 인기몰이 This June, when Amanda Moore, 25, gets married in Beverly Hills, Fla. , she intends to wear a black gown with pink daisy accents. Black, she says, is !slimming, and pink matches a special necklace from her great-grandmother. ?y mother-in-law was the only one who was, like, ‘Oh, my gosh, you have to call the church and make sure it? OK??(She did. It is.) 아만다 무어(25)는 오는 6월 미국 플로리다주 베벌리힐스에서 결혼한다. 무어는 결혼식에서 분홍색 데이지 무늬를 박은 검은 웨딩가운을 입을 생각이다. 검은색은 몸을 !날렵해 보이게 만들 뿐 아니라 분홍색은 증조모에게서 물려받은 아주 특별한 목걸이와 잘 어울린다. “시어머니만 ‘아니, 뭐라고? 교회에 전화해 괜찮은지 물어봐야 돼’라고 말씀하셨다.” 무어는 교회에 문의했고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다. Moore? not alone in @bucking #altar etiquette. Jeffrey Moore, a senior vice president at wedding-dress superretailer David? Bridal, says 20 percent of its gowns now include color; they were all white (or ivory) just three years ago. The stores now carry 32 accent hues, including apple red and pool blue. (Toni DeLisi, owner of Memorable Events in Ramsey, N. J., says half of her brides accent with colors like ice blue.) There is color in 16 of 31 gowns in Vera Wang? spring ?6 collection. 무어뿐 아니라 전통적 #결혼 예법에 @반항하는 사람은 많다. 웨딩 드레스 초대형 소매업체 데이비즈 브라이들의 제프리 무어 수석 부사장은 지금은 웨딩 드레스 중 20%는 색깔 있는 드레스라고 말했다. 3년 전만 해도 전부 하얀색(아니면 아이보리색)이었다. 데이비즈 브라이들은 현재 32가지 각기 다른 색깔의 무늬가 있는 드레스를 판매한다. 사과처럼 빨간색과 깊은 물처럼 짙푸른 색도 포함된다(미 뉴저지주 램지에서 메모러블 이벤츠 가게를 운영하는 토니 들리시는 신부 고객의 절반이 담청색 같은 색채 무늬를 넣는다고 전했다). 뉴욕의 유명 웨딩 드레스 디자이너 베라 왕의 2006년 봄 컬렉션에서도 31벌 가운데 16벌에 색깔이 들어갔다. Weddings aren? as traditional now, and that ?trickles down?to apparel, says Moore. The trend in ?destination weddings?also helped spur the pro-color ^contingent. Typical brides pay $1,056 for a dress, according to the Conde Nast Bridal Group? American Wedding Survey. At that price, the desire to look good &trumps tradition, and blinding white may not be a bride? best color. Lynna Heathman, 47, of Wentz-ville, Mo. , wore a red gown for her beach wedding in Hawaii. ?here are certain colors you feel happy in,?she says. And it? OK if white? not one of them. KAREN SPRINGEN 요즘의 결혼식은 전통을 타파한다. 그런 추세가 의상에도 “$흘러들어간다”고 무어가 말했다. ‘%휴양지 결혼’ 추세도 유색 웨딩 드레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콘데 나스트 브라이들 그룹의 아메리칸 웨딩 서베이에 따르면 대개 신부들은 웨딩 드레스에 1056달러를 지불한다. 그 정도 가격에서는 아름다워 보이려는 욕망이 전통을 &압도한다. 눈부신 흰색은 신부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아닐지 모른다. 미주리주 웬츠빌에 사는 리나 히스먼(47)은 얼마 전 하와이에서 해변 결혼식을 올릴 때 붉은색 드레스를 입었다. “사람마다 드레스를 입었을 때 기분 좋은 색이 있다”고 히스먼이 말했다. 흰색이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제는 괜찮다. Where the Indies Are 인디 밴드 축제의 메카 Madonna announced recently that she would play the seventh annual Coachella festival next month ?and !legions of underground-music fans @went into mourning. ?ADONNA??????????????wrote Jamesc2929 on Ezboard . com. ?hat the F***!!! This is an insult to those who have supported the Coachella Idea from the start. I was waiting to see if you added Death Cab, Morrissey, Kasabian, the Strokes, and now we get the Material b---h. What a #let down.? 최근 마돈나는 다음달 열리는 제7회 코첼라 연례 축제에서 공연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음악팬들이 @애도를 표했다. “마돈나라고?????????????” 유명한 토론 사이트 이지보드에 Jamesc2929라는 이름의 누리꾼이 적었다. “무슨 xxx인가!!! 코첼라 축제의 정신을 처음부터 지지해온 사람들을 모독하는 일이다. 나는 데스 캡, 모리세이, 카사비안, 스트로크스 같은 밴드가 출연하기를 고대했는 데 ‘머티리얼 xx년’(마돈나의 별명이 ‘머티리얼 걸’이다)이 나온다니. 정말 #허탈하다.” So where does a guy in a retro Pixies T shirt go when the premier indie festival lets him down? To Chicago for the two-day-long Pitchfork festival in July. Sponsored by music Web site pitchforkmedia. com, the festival $features 36 bands, like the Mountain Goats, who truly aren? signed to major %labels. There? also Chicago? Intonation festival (June), sponsored by the ^snarky-but-&spot-on pop-culture magazine Vice. *Headliners include U. K. rapper The Streets. Both festivals run about $15 a day; Coachella is $85. That means money (left over for a new T shirt. LORRAINE ALI 올터너티브 록밴드 픽시스의 복고풍 티셔츠를 입는 사람이 최고의 인디 음악 축제에 실망했을 때는 어디를 가야 할까? 오는 7월 시카고에서 열리는 이틀간의 피치포크 축제가 제격이다. 음악 사이트 pitchforkmedia.com이 후원하는 이 축제에는 실제로 대형 %음반사와 계약을 거부하는 마운틴 고츠 같은 순수 인디 밴드 36개가 $참여한다. ^냉소적이면서도 &논평이 정확한 팝문화 잡지 바이스가 후원하는 시카고의 인토네이션 축제(6월)도 있다. *주요 참여 밴드에는 영국 래퍼 스트리츠가 포함된다. 입장료는 두 축제 모두 하루 약 15달러다. 반면 코첼라 입장료는 85달러다. 코첼라에 가지 않으면 (남는 돈으로 새 티셔츠를 한 벌 사게 된다는 말이다. Tip of the Week I lift weights and exercise regularly, but I? not building any muscle. What am I doing wrong? 역기를 들고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데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됐나? How? your form? New weight lifters who don? build muscle are probably using their back to pick up heavy weights, according to trainers. Instead, lift slowly so that your arm and chest muscles get worked through the entire exercise and keep the rest of your body stable. Those who want to bulk up like Arnold should perform two to three exercises per muscle about three times a week, with heavier weights and six to eight repetitions. Other factors that help: genetics, diet and good sleep. ROBERT STEIN 운동하는 자세가 어떤가? 운동을 처음 시작했는데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면 역기를 드는 데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트레이너들은 말한다. 등을 사용하지 말고 역기를 천천히 들어올려 팔과 가슴 근육이 계속 움직이도록 하고 몸의 나머지 부분은 그대로 유지하라. 아널드 슈워제네거처럼 근육질 남자가 되고 싶다면 자기 힘에 약간 버거운 역기로 근육 하나에 두세 가지 방식으로 6∼8회 반복하는 운동을 일주일에 약 세 번은 해야 한다. 근육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다른 요인은 유전적 특징, 식습관, 숙면 등이다. The Technologist Speak It in Chinese, Hear It in English 눈앞에 다가온 자동 통겧貶?시대 Alex Waibel doesn? understand Chinese, but he can read street signs when in Beijing. A team of engineers led by Waibel at Germany? Karlsruhe University has developed a !handheld device called the Sign Translator. It uses an @integrated camera and software that recognizes, and translates into English, about 3,000 Chinese characters. 알렉스 웨이블은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베이징에 가면 거리 표지판이 무슨 뜻인지 안다.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에서 웨이블이 이끄는 엔지니어 팀은 표지판 번역기라는 !휴대용 기기를 개발했다. 이 기기는 한자 약 3000자를 인식하고 영어로 번역해주는 소프트웨어와 @내장된 카메라를 이용한다. The Sign Translator is the #cutting edge of a raft of $breakthrough developments in translation technology %coming down the pipeline. Governments in Europe, rather than corporations, are driving much of the innovation ?and with good reason. Consider the European Union: in Brussels, the world? largest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operation spends more than $875 million a year ferrying information in and out of the bloc? 21 official languages. 표지판 번역기는 %현재 개발 중인 번역 기술 분야에서 나오는 수많은 $획기적인 발명품 중 #최첨단을 달린다. 유럽에서는 기업체보다는 정부 기관들이 그런 혁신을 주도한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유럽연합을 생각해 보자. 브뤼셀에서는 세계 최대 번역과 통역 작업에 연간 8억75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해 21개 공식 언어로 권역 내외에 정보를 전달한다. A three-year EU project called TC-STAR is pumping a10 million into language-software R&D. One grantee, Germany? Siemens, has developed software that recognizes spoken words, ^transcribes them, translates the transcription and then utters the translation by patching together syllables pre-recorded by native speakers in several languages. Siemens? Lecture Translator System will be installed first in the European Parliament, probably within two years. This system and others promise to &slash the cost of the European Commission? commitment to multilingualism ?and *undercut calls to make English the European bureaucracy? sole working language. 유럽연합의 3개년 계획인 TC-STAR는 언어 소프트웨어 연구 개발에 1000만 유로를 투입한다. 보조금 수혜자인 독일의 지멘스는 발음된 단어를 인식해 ^글자로 바꿔 번역한 다음 미리 녹음된 여러 언어 원어민의 음절을 결합해 다시 발음을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지멘스의 ‘강연 번역기 시스템’은 2년 정도 이내에 유럽 의회에 처음으로 설치될 전망이다. 이 시스템과 다른 개발품들에 힘입어 유럽 집행위원회는 다언어주의를 고수하는 비용을 &대폭 줄여서 영어를 유럽 행정기관의 단일 통용어로 삼자는 주장을 *무력화할 전망이다. Daimler Chrysler, another grantee, is (perfecting an )antidote to those goofy-looking headphones on display in places like the United Nations. Its ceiling-mounted ?udio-beam?speakers can shoot a cone of sound five meters to areas as small as a single seat. Bernard Smith, head of the Luxembourg-based TC-STAR program, jokes that the innovation is ?sychologically disturbing?because a listener ?queezing down a row of seats for a bathroom visit will be assaulted by a series of sound cones delivering different languages. Alternately, the Lecture Translation System will also provide wireless subtitle goggles for parliamentarians who prefer to read speeches. 또 다른 보조금 수혜자인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유엔 같은 장소에서 보이는, 마치 착용하는 사람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헤드폰을 )대체할 개발품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천장에 설치된 ‘음향 빔’ 스피커는 좌석 한자리의 작은 공간으로 음향을 5m 거리까지 내보낸다. 룩셈부르크에 본부를 둔 TC-STAR 프로그램 책임자인 버나드 스미스는 이 신기술이 “사람을 심리적으로 불안케 만들지 모른다”고 농담했다. 화장실을 가려고 愍美??헤치고 나아갈 때 각기 다른 언어로 전달되는 수많은 음향의 공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강연 번역 시스템’도 연설을 글로 읽기 원하는 의원들에게 무선 자막 고글을 제공할 예정이다. EU cash is also helping companies like Nokia, which is developing cell-phone software that translates and utters, in real time, dialogue in English and Chinese. Because the software transcribes what it translates, it also creates a written record of conversations, the better for e-mailing. Imre Kiss, an engineer at Nokia? lab in Tamteri, Finland, says ?ush from our customers?will likely translate into ?ollouts within two years. 유럽연합 보조금은 노키아 같은 회사들에도 지원된다. 노키아는 영어와 중국어 대화를 실시간으로 통역해 전달해주는 휴대전화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이 소프트웨어는 통역하는 내용을 글자로 전환하기 때문에 대화를 문서로 바꾸어 e-메일로 보내는데 보다 효과적이다. 핀란드 탐테리에 있는 노키아 연구실의 엔지니어 임레 키스는 “고객들의 압력으로” 2년 이내에 蚌탕┎걋?출시하게 될 듯하다고 말했다. Across the pond, NASA? Neuro-Engineering Laboratory, or NEL, is trying to bypass speech itself. The Mountain View, California-based lab is developing button-size electrodes that stick to the throat. By analyzing small electrical currents, the electrodes ?ecipher words that are mouthed ?but not pronounced. These ?ubvocal?words can then be delivered as written text, a written translation or strung together as speech with pre-recorded syllables. The prospect of selling phone calls that can? be overheard has made telecom companies ?rick up their ears. Two majors are in talks with the NEL, while Nokia runs its own program. The EU is devoting funds to similar research. 대서양 건너 미 항공우주국의 신경 엔지니어링 연구실(NEL)은 음성 자체의 우회를 시도한다.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있는 이 연구실은 목에 부착하는 단추 크기의 전극을 개발 중이다. 이 전극은 미세한 전류를 분석함으로써 발음되지 않고 발성 형태만 갖춘(소리없이 입만 움직이는) 단어들을 洑巒또磯? 이들 ‘하위 성음’ 단어들은 문서, 번역 문서나 미리 녹음된 음절들이 결합된 음성으로 전달된다. 도청이 불가능한 전화 서비스를 판매한다는 기대감에 전화회사들은 膚叩?솔깃해졌다. 주요 전화회사 두 곳이 NEL과 협상 중이며, 노키아는 독자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유럽연합도 비슷한 연구에 기금을 투입했다. Humans are still better at translation than machines ?people can at least ?rack (and understand) a joke. But at least machines are rapidly making the world more comprehensible. BENJAMIN SUTHERLAND 아직 기계보다는 사람이 번역을 더 잘한다. 사람은 적어도 浜遮是?하고 농담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세상은 기계 덕분에 빠르게 이해하기 쉬워져간다. The Chinese Start to Shimmy Just a few years ago, complimenting a Chinese woman on her !stomach could earn a man a @punch in his. In fact, her #belly was unlikely to be visible at all, given the country? conservative social attitudes. But a new fad is changing all that: belly dancing. In May 2005, 24-year-old Beijing yoga instructor Zhao Meng opened the Many Belly Dance School with two other dance teachers, holding classes in a $dilapidated apartment. Many Belly now has eight franchised schools in the capital, and gyms from Shanghai to Xian offer belly-dancing classes. ?hinese women love beauty, and belly dancing helps them become more beautiful,?says Zhao. ?t is the oldest and most beautiful dance in the world.?Indeed, belly dancing has existed for a long time, even in China. For centuries, it has been performed in western Xinjiang province. But that doesn? mean the new trend ?inspired more by international belly-barers like Shakira and Korean singer Shim Mina than history ?has been accepted by everyone. Chinese feminists, in particular, are %conflicted. They see belly dancing as a means of ^exploiting women, but also recognize that it could help Chinese women change the way they &perceive themselves in a conservative society. ? few months ago I would have been ashamed if a foreigner saw my bra,?says 28-year-old Beijing resident Lu Yiwei, arguing that belly dancing has made her more confident. ?ow, who cares? You?e already seen my belly!? QUINDLEN KROVATIN 중국에 부는 벨리 댄싱 열풍 바로 몇 년 전만 해도 남성이 중국 여성의 !배를 칭찬하면 @매를 버는 행위였다. 보수적인 사회 풍토 때문에 여성들이 자신의 #배를 외부인들에게 내보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유행이 그런 관습을 바꾸는 중이다. 바로 벨리 댄싱이다. 2005년 5월 베이징 요가 사범 자오멍(24)은 2명의 무용 교사와 함께 매니 벨리 댄스 스쿨을 개설하고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서 교습을 시작했다. 이제 매니 벨리는 베이징에 강습소 8개를 운영하며, 상하이에서 시안까지 중국 대도시 대다수의 체육관이 벨리 댄싱 교습을 한다. “중국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벨리 댄싱은 그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고 자오는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서깊고 가장 아름다운 춤이다.” 실제로 벨리 댄싱은 중국에서조차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벨리 댄싱은 서부 신장 자치구에서 수세기에 걸쳐 공연돼 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가 이 새로운 유행을 환영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중국의 벨리 댄싱 붐은 역사보다는 샤키라 같은 국제 벨리 댄서들과 한국 가수 심민아(월드컵 미녀)에 의해 촉발됐다. 특히 중국의 여권운동가들이 %상충된 견해를 드러낸다. 그들은 벨리 댄싱을 여성 ^착취 수단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벨리 댄스가 보수적 사회에서 중국 여성들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 역시 인정한다. “몇 달 전만 해도 외부인들에게 내 브래지어를 보이면 수치를 느꼈을 것”이라고 베이징에 사는 루이웨이(28)가 말했다. 그러나 벨리 댄싱을 통해 이젠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주장이다. “아무렴 어때요? 이미 사람들이 내 배를 봤는데요 뭘!” Science and Your Health Health for Life M.D.: Beyond the Horizon Is immortality achievable? 불로장생 얼마나 가능할까? Are the dangers of advancing medicine too far ever taken into consideration? What happens when there is no more sickness and people live so long that we overpopulate the planet? How far is too far? DR. ANTHONY L. KOMAROFF of Harvard Medical School: I agree with you that longer lives and larger populations could cause problems. This is particularly true in overpopulated parts of the world, where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live in hunger and squalor. While discovering how to extend the healthy human life span, we also need to make major advances in cheap energy and food production. Otherwise we risk making the problems of overpopulation and uneven distribution of resources even worse. 의학의 과도한 발전에 따르는 위험성이 검토된 적이 있나? 이 세상에 질병도 없고 사람들이 너무 오래 살아 지구가 미어터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어느 정도가 과도한 발전일까? 하버드 의대 앤서니 L 코마로프 박사: 사람들이 오래 살아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 여러 문제가 야기되리라는 우려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과 불결한 환경에 사는 인구과잉 지역에서 특히 그렇다. 우리는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을 발견해내는 동시에 그와 병행해 값싼 에너지와 식품을 생산하는 데서도 획기적인 진전을 이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구 과잉, 자원의 불공평한 분배 등의 문제가 더욱 악화될 위험이 크다. Key Word of The Week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SCO)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주 황급히 중국을 방문했다. 2000년 취임 이래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애초엔 6월 상하이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 때 방문할 예정이었다. 일정을 앞당긴 표면적 이유는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러시아의 해’ 개막행사 참석이다(내년엔 모스크바에서 ‘중국의 해’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딴 데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인도 ‘끌어안기’에 자극받아 전략적 협력 파트너인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과시하려는 행보라는 설명이다. 부시는 3월 초 인도를 방문해 원전 기술 제공을 약속한 데 이어 전략적 동반자 관계까지 맺었다. 게다가 3월 중순엔 호주 시드니에서 일본·호주와 3국 안보회담을 개최해 중국 포위망을 좁혔다. 러시아의 위기감은 십분 이해된다. 1999년엔 옛 소련권의 체코·폴란드·헝가리가 NATO에 가입했고, 2004년엔 러시아 코앞의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이 유럽연합(EU)과 NATO의 일원이 됐다. 게다가 시민혁명으로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는 늦어도 2008년까지 NATO 가입을 목표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지난해 중국·인도와 각각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해 미국과 일본을 긴장시켰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노리는 초강대국 미국의 경제·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막아야 하는 처지의 중국에 러시아의 위기감은 오히려 기회다. 이런 공통의 위기감으로 발족한 지역 간 기구가 SCO다. 2001년 6월 15일 6개 회원국(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간의 신뢰와 우호 증진, 정치·경제·과학기술·문화 분야 협력 관계 구축, 역내 평화와 안보를 목적으로 태동했다. 정상회담은 매년 러시아 알파벳 순서에 따라 돌아가면서 개최되며 사무국은 베이징에 뒀다. 2001년 9·11 테러 이후엔 역내 테러척결센터를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 설립했다. 정상회담의 공식 언어는 중국어와 러시아어다. SCO는 중국의 도시 이름이 붙여진 첫 번째 지역 협력·안보기구인 동시에 중국이 주도적 역할을 맡은 최초의 지역기구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 2위 석유 수출국 러시아는 안정적 에너지 공급처를 확보했고, 세계 2위 석유 수입국 중국은 안정적 공급원을 확보했다. 시베리아산 천연가스가 최초로 중국에 수출되는 길도 함께 열렸다. 이와 함께 양국 정상은 이란 핵 문제와 북핵 문제를 정치와 외교로 풀어야 한다는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SCO는 특히 이란 핵 문제에 관해선 미국과 서유럽이 주도하는 강경책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란 입장을 줄곧 유지해왔다. 다분히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대목이다. 중·러 관계는 더할 나위 없는 밀월관계를 맞았다. 리후이(李輝)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는 “양국은 주요 국제 현안 논의에서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이노(Sino)-러시아’ 시대의 본격 개막은 왠지 불안한 앞날을 예고한다 (뉴스위크 한국판 2006년 3월 29일자 20쪽 참조). 강태욱 tkang@joongang.co.kr Stepping Stones for Learning English Should We Export Illness or Health? 질병은 예방하고 건강은 세계화하자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P)는 최근 미국에 오는 이민자들이 본토에서 태어난 사람들보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훨씬 좋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머문 기간이 길수록 점차 건강이 나빠져간다. Why? When people move here, they rapidly !forgo their own healthier @diets and lifestyles. Unfortunately, other countries are beginning to eat like us, live like us and die like us. #Chronic diseases have gone from being among the least common to the most frequent causes of premature death and disease in most of the developing world. A globalization of illness is occurring that is almost completely preventable. 아시아식 식습관과 생활방식은 관상심장병, 당뇨, 고혈압, 비만, 전립선암, 유방암 등의 진전을 막거나 심지어 역전시키는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Incorporate more fruits, vegetables, whole grains, legumes, soy products and fish in your diet. 가능한 한 자주 가족·친구와 함께 집에서 식사하라. Consume less $saturated fat, trans fats and %refined carbs. 카놀라·참깨 등 식물성 기름을 소량 사용해 요리하라. Use animal protein as a ^condiment rather than a main course. 생선을 더 많이 먹고 육류를 적게 섭취하라. Strengthen your family and community ties. 더 많이 걷고 더 적게 먹어라. Love more. Stress less. 신앙생활을 하라. I?e been consulting with food companies such as PepsiCo, McDonald?, ConAgra, Safeway and Del Monte. I thought that if they would make and market foods that are tasty, convenient and healthful, educate people about the powerful health benefits of nutrition and lifestyle, and use their considerable marketing resources to make it fun, sexy, &crunchy and *hip to eat this way, this could make a powerful difference in the lives of millions worldwide. 그렇게 하는 일이 옳을뿐더러 수익성도 좋다. 따라서 모두에게 득이 되는 ‘지속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펩시코는 자사 매출 성장의 3분의 2가 건강 식품에서 나왔다고 발표했다. 맥도널드는 과일·호두 샐러드의 인기가 너무 좋자 세계의 기업 중에서 사과를 가장 많이 구매한다. 콘아그라의 건강 식품은 지난해 15억 달러어치나 팔렸다. 희한하게도 건강 식품과 건전한 생활방식이 미국에서 많이 쏟아져 나오면서(예를 들면 맥도널드의 아시안 샐러드) 아시아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식단과 문화의 힘을 더욱 절감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질병 대신 건강을 세계화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Dean Ornish, M. D. Corrections & Pitfalls 지난 호의 오역을 바로잡고 독자 여러분의 독해력 향상을 위해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보다 명료한 번역과 의미 파악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오역하기 쉬워요 2006년 2월 22일자 Europe (31쪽 첫 번째 칼럼 11째 줄) 유럽의 이슬람 정책 강경해질까 Pointing the Finger When Hamas called for the Muslim world to calm down last week, European officials hoped they? turned a corner. They? been looking frantically for a way out of the clash of civilizations sparked by the publication of cartoons caricaturing the Prophet Muhammad. Danish Embassies were burned in Damascus and Beirut. Afghan riots led to at least 11 deaths. Another protester was shot in Kenya. Any voice of moderation was welcome. But there was not, in fact, much optimism in Brussels. 지난주 하마스가 이슬람 세계에 분노를 가라앉히라고 촉구했을 때 유럽 관리들은 사태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기를 바랐다. 그들은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를 풍자한 만화 게재로 촉발된 문명의 충돌을 피하려 최선을 다해왔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와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는 덴마크 대사관이 불탔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적어도 11명이 시위 도중 사망했다. 케냐에서도 한 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 모두 자제를 바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사실 브뤼셀은 별로 낙관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여기서 Brussels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자체를 가리키지 않는다. 브뤼셀에 위치해 있는 유럽연합(EU)을 가리킨다. 정치·시사 영문 기사를 읽다 보면 이처럼 그 나라의 수도가 그 나라 정부를 가리키는 예가 많이 나온다. Washington은 미국 정부, Seoul은 한국 정부, Beijing은 중국 정부를 가리킨다. Ex. Washington rejected all the proposals made by Pyongyang(미국 정부는 북한 정부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사실 유럽연합 관리들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2006년 2월 15일자 The Good Life (78쪽 첫 번째 칼럼 3째 줄) 올 봄은 여성미 넘치는 레이스 스타일로 Lace Makes the Woman If you associate ?rochet?with the afghan your grandmother made, then it? definitely time to update your image. Dresses, tops and jackets made of lace and crochet are filling shop windows for spring. Big-name designers from Miu Miu to Chanel are promoting the soft and feminine look on their catwalks. ‘크로셰’라고 하면 할머니가 뜨시던 숄이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이미지를 쇄신해야 할 때다. 올 봄의 의상 가게 쇼윈도는 레이스와 크로셰로 만든 드레스, 탑, 재킷으로 채워져 간다. 미우미우에서 샤넬까지 유명 디자이너들이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강조한다. update your image라고 하면 ‘네 이미지 좀 바꿔봐’라는 뜻이 떠오른다. 옷을 새로 사든지 말투를 바꾸든지 새로운 이미지를 갖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으로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네 머릿속에 있는 크로셰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수정하라’는 뜻이다. 사실 문법적으로는 두 가지 해석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여기서는 두 번째 해석이 옳다. 그렇다면 패션 감각을 현대식으로 다시 조정해야 한다. 바로잡습니다 2006년 1월 18일자 Israel (61쪽 위 첫 번째 칼럼 3째 줄) 이스라엘의 심장 Heart of a Nation Now the acting prime minister, Olmert has sometimes made public proposals far beyond anything Sharon was prepared to sacrifice. He even flirted with relinquishing parts of East Jerusalem. Many Likud members recoiled from such talk, but it didn? do any harm to Olmert? credibility as a peacemaker. He is no Sharon, but his proximity to the stricken leader could prove a comfort in uncertain times. 현재 총리 대행을 맡은 올메르트는 샤론이 희생을 각오한 수준보다 훨씬 더 앞서나간 대중적 제안을 감행하곤 했다. 한 예로 동예루살렘의 몇몇 지역을 포기하는 방안도 고려했다. 리쿠드당의 동료 다수는 그런 협상을 거부했지만 조정자로서 올메르트의 믿음직한 이미지는 전혀 해를 입지 않았다. 그는 샤론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시기엔 병상에 누운 지도자와 거의 흡사하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줄지 모른다. 사전에 보면 proximity는 ‘(장소·시간·관계 등의) 근접, 접근’이라고 나와 있다. 외양이 유사하다는 표현을 하려면 similarity, 혹은 resemblance를 써야 한다. proximity는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뜻이다. 그는 샤론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시기엔 병상에 누운 지도자와 가깝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줄지 모른다.

2006.03.31 10:14

2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