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브랜드에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드라마 못지 않게 흥미롭고, 동화처럼 환상적이다. ‘샤넬의 성’에도 이런 크고 작은 이야기를 더해주는 유명인들이 있다. 특이한 점은 샤넬 성주도 그 어떤 셀레브리티 못지 않게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다. 유겐 텔러, 폴 스미스 등 패션 전시로 관심을 모았던 대림미술관에 또 한번 젊은 세대들이 모여들고 있다. 2012년 3월 18일까지 열리는 칼 라거펠트 사진전(Work in Progress-Karl Lagerfeld Photography Exhibition)을 보기 위해서다. 조용히 입 소문을 듣고 많은 관람객이 다녀갔다.1938년 독일에서 태어난 칼 라거펠트. 패션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는 샤넬,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인 동시에 포토그래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샤넬, 펜디 등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브랜드는 물론이고 아디다스, 돔 페리뇽, 디올 옴므 등 광고와 잡지 화보도 촬영하고 있다. 쉰 살이 다 돼 포토그래퍼로 데뷔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1984년 샤넬의 수장이 됐는데, 87년에 촬영한 샤넬의 컬렉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디자이너뿐 아니라 마케터로서 그가 가진 능력은 가히 동물적이다. 18개월 동안 42kg을 감량했을 때 ‘에디 슬러먼이 디자인한 디올 옴므의 슈트를 입기 위한 다이어트였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이 다이어트 경험담을 『칼 라거펠트 다이어트』라는 책으로 묶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H&M과 같은 저가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협업으로도 화제를 불러 일으켰는데, 이 때도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빅 사이즈의 옷은 만들지 않겠다고 공언해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젊은 패션 아이콘인 릴리 알렌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주며 그의 감각은 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포토그래퍼로서 화제도 많다. 아이팟만 10개 이상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칼 라거펠트. 대림미술관에 전시된 오노 요코의 사진 ‘The Story of my long life’는 아이패드로 촬영한 후 출력해 다시 촬영한 것이다. ‘포토마통’이라는 옛날 지하철 역에 있던 구식 즉석 사진기를 구해와서 톱 모델을 촬영했고, 장쯔이의 사진을 로이 리히텐슈타인 풍의 이미지로 작업하기도 했다. 브래드 크로닉(Brad Koenig), 밥티스트 지아비코니(Baptiste Giabiconi)와 같은 세계적인 남자 모델들은 그의 카메라 앞에서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완벽하게 발가벗는다. 몇 개의 아바타를 가졌다면 모를까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이 모든 일을 칼 라거펠트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 거뜬히 해내고 있다.그렇게 노는 듯, 장난치듯, 즐기듯 찍은 400여 점의 사진이 지금 통의동 대림미술관에 걸렸다. 라거펠트의 피사체로 대중 앞에 완벽히 무장해제 된 채로 전시된 라거펠트 인맥을 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대체되지 않으려면 달라져야 한다칼 라거펠트가 편애해 마지않는 또 하나의 인물은 바로 프랑스의 여배우 안나 무글라리스(ANNA MOUGLALIS)다. 라거펠트는 “그녀는 쟌느 모로의 목소리, 안나 마그나니의 강인함, 에바 가드너의 자태를 지녔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스 혈통에 모델 출신의 배우인 안나 무글라리스는 엄밀히 말해 미인이 아니다. 하지만 아마도 ‘지구에서 샤넬이 가장 어울리는 여자’일 것이다. 큰 키, 짙은 갈색 머리, 브라스 밴드 같은 허스키한 목소리, 느긋한 태도, 남성과 여성성 사이를 오가는 신비로운 느낌까지…. 안나 무글라리스는 “다른 것에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달라져야만 한다”고 말했던 마드모아젤 샤넬의 철학에 꼭 들어 맞는다. 그녀가 샤넬의 트위드 재킷과 클래식한 펌프스를 소화한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아무도 그러지 않을 때 그녀는 샤넬 재킷을 데님 팬츠와 매치 했다. 한쪽 팔에는 샤넬 백을, 다른 쪽 팔에는 파리 시내를 누빌 때 이용하는 모페드(모터 달린 자전거)를 탈 때 쓰는 헬멧을 걸고 다니는 모습은 요즘 많이 사용되는 ‘프렌치 시크’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잘 대변해준다.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 또한 착실히 쌓아왔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끌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의 ‘나이트캡(Nightcap)’, 필립 그랑드리유(Philippe Grandrieux)의 ‘새로운 인생(A New Life)’, 미셸 플라시도(Michele Placido)의 ‘범죄 소설(Romanzo Criminale)’ 등에서 열연했다. 일상 생활에서 그렇듯 영화에서도 그녀는 샤넬을 입었다. 안나 무글라리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옛날 여배우들은 은막과 일상 모두에서 자신을 스타일링해주던 디자이너들의 옷에 충실했죠.”샤넬과 안나 무글라리스의 만남은 많은 결과물로 나왔다. 2002년 샤넬은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든 향수 ‘알뤼르 센슈얼(Allure Sensuelle)’을 만들었다. 이 향수 광고를 통해 다시금 샤넬과 안나 무글라리스의 덧셈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증명했다. 2005년 샤넬 파인주얼리에서 선보인 ‘메다이유(Medailles)’ 목걸이, 2006년 샤넬에서 선보인 핸드백 등 안나 무글라리스는 샤넬과 칼 라거펠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되었다. 2009년에는 영화 ‘샤넬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COCO CHANEL & IGOR STRAVINSKY)’를 통해 샤넬을 연기한 안나 무글라리스를 만나볼 수 있었다.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와 샤넬은 자신들의 기록과 컬렉션을 제작진에게 기꺼이 개방해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샤넬을 빛낸 뮤즈우리에게도 낯익은 배우 오드리 또뚜(Audrey Tautou)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샤넬의 뮤즈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 역시 영화 ‘샤넬 이전의 코코(COCO AVANT CHANEL)’ 를 통해 코코 샤넬을 연기했다는 것. 영화 ‘샤넬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샤넬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면 ‘샤넬 이전의 코코’는 샤넬이라는 가난한 여성이 독학을 통해 수습 디자이너가 되고, 이후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차근차근 조명한다.오드리 또뚜는 이 영화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운명을 직접 일구려는 여성이라면 코코 샤넬의 젊은 모습에 공감하게 됩니다. 젊지만 교육을 받지 못했던 한 여성이 세상에 나가 자신의 독특한 생각을 굽히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에 공감이 가죠. 이 영화의 현대성을 구축해주는 부분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배역 섭외가 왔을 때 저는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승낙했습니다.” 샤넬과 칼 라거펠트는 이 영화에도 지원을 했다. 그들은 샤넬이 보관하고 있는 문서와 컬렉션을 열람할 수 있도록 했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위해 보관하고 있던 40여 벌의 의상을 대여해주기도 했다. 배경이 된 파리 깡봉 거리의 매장뿐 아니라 모델 20여명의 메이크업, 그리고 수많은 파인 주얼리 제품도 모두 진짜 샤넬 매장, 샤넬 제품이었다.‘패션만 했으면 지겨웠을 것’이라고 말하는 칼 라거펠트. 그는 이런 명언도 남겼다. “변화는 살아남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다(Change is the healthiest way to survive).” 알리 맥그로우(Ali McGraw), 로렌 허튼(Lauren Hutton), 까뜨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 캐롤 부케(Carole Bouquet), 이네스 드 라 프레상쥬(Ignes de la Fressange), 클라우디아 쉬퍼(Cluadia Schiffer), 바네사 파라디(Vanessa Paradis), 케이트 모스(Kate Moss),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까지…. 칼 라거펠트의 철학을 입증이라도 하듯, 샤넬을 대표하는 셀레브리티는 수십 년 동안 계속 새로워졌다. 단골 고객과 함께 브랜드도 나이 들기 일쑤인 국내 패션 브랜드가 주목해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