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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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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 산불 피해 복구 위해 10억원 기부

유통

균일가 생활용품점 아성다이소는 경상도 및 울산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10억원을 기부했다고 31일 밝혔다.이번 구호 성금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전달되며, 산불 피해 지역 복구 및 이재민 지원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아성다이소 관계자는 “사상 최악의 산불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피해 지역이 하루빨리 복구되고 모든 분이 일상을 되찾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한편 아성다이소는 연말 도계 탄광촌 지역을 방문해 도계 지역 가정과 아동센터에 연탄과 등유, 행복박스 등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5억여원 상당의 생활용품을 기탁한 바 있다.

2025.03.3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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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2년차 내비 데이터 보니…편의점 방문 두 배 늘었다 [체크리포트]

유통

카카오모빌리티가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카카오내비’ 사용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2년 차, ‘편의점’을 목적지로 한 이동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지난 29일 공개한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 2021’에 따르면 올해 3~8월 편의점을 목적지로 주행한 이동량이 2019년 동기 대비 10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 대비 2020년 증가율(35%)보다 71%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이번 조사에서 카카오내비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소매, 식당, 레저, 문화, 여행, 숙박 등 6개 카테고리로 분류, 이동량 변화를 살폈다. 2019년 3~8월 대비 2021년 3~8월의 증감을 비교 분석했다. 소매 분야에선 편의점의 이동량 증가가 가장 컸고 면세점(-57%)의 이용량이 크게 감소했다. 보고서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집콕족 소비패턴도 계속됐다”고 평가했다. 레저 분야에선 골프용품점 방문이 크게(80%) 늘었고, 수영장(-42%)이 줄었다. 아웃도어 활동을 위한 이동이 늘었지만 실내 운동 시설로 이동이 크게 줄었단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숙박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아웃도어 활동인 글램핑장 방문이 123% 늘어난 반면, 콘도·리조트 방문은 6% 줄었다. 식당, 문화, 여행 분야에선 카페(79%), 자동차극장(142%), 드라이브코스(80%) 등의 이동이 늘었고, 뷔페(-41%), 영화관(-39%), 축제(-66%) 등의 방문이 줄었다. 보고서는 “작년과 비교할 때 문화생활 수요는 회복 조짐은 있으나 여전히 위축된 모습”이라며 “여행은 북적이는 여행지보다 드라이브코스와 국립공원 등의 방문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2021.12.04 14:00

2분 소요
‘동물병원 갈때만’ 탈 수 있는 현대차 펫택시

자동차

현대자동차그룹이 출시한 ‘펫택시’ 서비스가 지정된 동물병원이나 동물용품점 방문 등 제한된 용도로만 서비스된다. 펫택시서비스의 합법성이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불법성 논란 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현대차그룹은 26일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모빌리티 서비스 M.VIBE(엠바이브)를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이 서비스 기획, 운영 플랫폼 개발 및 차량 개조를 맡았고 마카롱택시 운영사인 KST모빌리티가 서비스 운영을 담당할 예정이다. 공개된 M.VIBE 서비스는 기존의 예상대로 반려동물 운송에 방점이 찍힌 모빌리티 서비스로 출시됐는데, 전기차를 펫택시 용도로 개조해 서비스에 투입하는 등 기존의 펫택시와 서비스 차별화를 위한 노력이 담겼다. 서비스 운영 방식에서 주목할 건 M.VIBE가 기존의 펫택시와는 달리 ‘제한된 이동 서비스’만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M.VIBE 서비스는 연계된 동물병원‧반려동물용품점‧호텔 등에 예약을 하고 방문할 때만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연계된 업체는 레스케이프 호텔, 이리온동물병원, 24시청담우리동물병원, 펫닥 브이케어, 하울팟 등이다. 이외에 한강 동반 산책을 위한 서비스도 제한적으로 운영된다. 모빌리티 서비스의 확장을 고려한다면 이런 서비스 제한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모빌리티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 M.VIBE의 범위를 제한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국내 모빌리티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서비스의 용도를 제한한 것은 향후 발생할지 모를 택시업계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여객이 동승하는 펫택시 서비스에 대해 충분히 반발하는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만큼, 반려동물에 집중한 서비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평가했다. 실제 현행 운영되는 펫택시는 서비스의 합법성 여부가 불명확한 상황이다. 펫택시는 2018년 개정된 ‘동물보호법’에서 만들어진 ‘동물운송업’으로 운영된다. 동물보호복지 온라인 교육을 수료하면 누구나 운송을 할 수 있다. 문제는 필연적으로 동물 뿐만이 아닌 ‘여객’의 이동이 동반된다는 점이다. ━ 한정된 수요로 인한 확장성 제한은 과제 동물운송업에는 여객의 동반 탑승에 대한 규정은 없으며,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선 여객운수사업권자가 아닌 사람의 유상여객운송을 금지하고 있다. 앞서 카풀이나 ‘타다’ 서비스처럼 택시업계 등이 펫택시에 반발하고 나설 경우 법적인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셈이다. 실제 택시업계에선 펫택시 서비스의 합법성 등을 두고 내부적으로 의견을 종합하고 있다. 만약 펫택시 서비스에 대해 법적 판단이 이뤄진다면 M.VIBE 서비스는 다른 펫택시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반려동물 서비스’와 연계한 운송서비스만을 제공했으므로 ‘반려동물의 이동성 증대’라는 사업의 목적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M.VIBE 사업모델의 문제는 한정된 수요로 인한 확장성의 제한이다. 여기에 요금도 택시와 동일한 수준이라 수익성도 의문점이다. M.VIBE의 서비스 가격은 기본요금이 1만원이지만 기본 요금 이상의 거리에선 서울 택시와 동일한 요금이 부과된다. 다만 물품 동반 배송 등의 서비스를 통해 수익성을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반려견이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 병원 등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주문한 물품을 전달해주는 형태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M.VIBE 서비스는 서비스 대상의 확장보다 서비스 고도화에 방점이 찍혀있다”며 “규제 등으로 앞길이 보이지 않던 국내 모빌리티 서비스 업계에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2021.04.26 17:29

3분 소요
[‘섹스토이’ 산업 대중화 될까] 바뀌는 성 인식, 대로변으로 나오는 성인용품점

산업 일반

글로벌 시장은 급성장 지속… ‘성적 대상화’ 말고 ‘기능성’ 집중해야 남·녀 자위기구, 러브 젤, BDSM(결박·구속·사디즘·마조히즘) 용품 등을 취급하는 성인용품 판매점이 음침한 골목길을 넘어 번화가 대로변으로 나오고 있다. 유통 대기업의 매장 한 켠에도 성인용품 코너가 속속 마련된다. 성인용품, 이른바 섹스토이의 산업화 가능성을 전망하는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성인용품’의 정의는 모호하다. 글로벌 시장에선 자위기구와 BDSM 용품 등을 ‘섹스토이’로 구분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산업이다. 글로벌 통계정보 사이트 스태티스타(statista)는 2019년 기준 글로벌 섹스토이 시장을 286억4000만 달러로 집계했다. 스태티스타는 이 시장이 지속 성장해 2026년에는 52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한국 시장은 이제야 막 피어나는 시점으로 평가된다. 아직 시장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된 것이 없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음지에서만 머무르던 시장이 이제 막 양지에 올라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산업으로 자리 잡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 번화가는 물론 대기업 유통채널도 진입 최근 몇 년 새 성인용품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잡은 성인용품점’이다. 2017년 이태원에 문을 연 ‘레드컨테이너’가 대표적이다. 성인용품 도매업체 코스모스가 운영하는 이 매장은 붉은색 컨테이너 모양으로 꾸며져 행인들의 시선을 끈다. 이태원을 시작으로 명동, 동대문, 신촌, 홍대, 연남동, 잠실새내, 신림 등 내로라하는 번화가 대로변에 매장을 꾸렸고 이제 수도권을 넘어 지방 대도시에도 진출하고 있다.대기업이 운영하는 유통채널에도 성인용품 매장이 들어섰다. 신세계 이마트가 만든 삐에로쑈핑과 일렉트로마트에 성인용품점 ‘센스토이’가 입점한 것. 이마트가 최근 삐에로쑈핑의 철수 의사를 밝히면서 일부 매장은 사라지지만 일렉트로마트에 입점한 매장은 영업을 지속할 예정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밀레니얼 세대,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성윤리 의식을 지닌 소비자가 성인용품 시장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며 “이들에게 성인용품점이란 스포츠용품 전문점과 유사하게 인식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른바 ‘섹스 로봇’ 시대가 오면 성인용품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성인용품 사업자들은 지금과 같은 사업 여건이 갖춰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자위기구 등의 용품은 정식으로 수입을 할 수조차 없었다. 음란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국 1세대 성인용품 사업자로 통하는 A씨는 “정식으로 수입을 하고 매장을 내서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관에서 판매하는 등 음성적인 시장을 통해 유통됐다”며 “이렇게 유통된 물건은 품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쌌고, 안전사고로 이어지는 등 사회적 부작용이 컸다”고 말했다.성인용품 업계 종사자들은 섹스토이의 수입을 위해 끊임없이 법정 싸움을 벌였고, 결국 섹스토이에 대한 합법적 수입이 가능한 환경이 됐다. 대법원은 2009년 7월 여성용 진동 자위기구에 대해 “비록 성기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더라도 물건 자체가 사회통념상 일반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거나 정상적인 성적수치심을 해쳐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수입 통관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여성의 성기를 모방한 남성용 자위기구는 2003년 대법원에서 불법 판결을 받았지만 2014년 대법원은 유사한 재판에서 이를 음란물로 보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 발 더 나아가 대법원은 지난해 6월에는 “성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사용을 목적으로 한 성기구의 수입 자체를 금지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리얼돌’의 수입도 사실상 허가한 상태다. ━ 기기 혁신도 글로벌 시장 지속적 성장 요인 하지만 합법적 유통이 가능하다고 해서 성인용품 시장이 양성화 됐다고 보긴 어렵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면 산업화로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리얼돌을 비롯한 ‘섹스토이’는 여전히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인격이나 감정이 없는 물건처럼 취급하는 현상(성적 대상화)을 부추긴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시민단체가 리얼돌은 물론이고 남성·여성의 성기를 대상화 한 성인용품이 성적 대상화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성인용품 업체들이 공개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성인용품 시장에는 글로벌 브랜드가 ‘메기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 한국법인을 만든 텐가 코리아가 대표적이다. 텐가 코리아는 한국 시장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정확한 매출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70%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올해 텐가 코리아의 정식 온라인몰을 통해 판매된 제품 수만 18만5000개에 달한다.판매량보다 더 주목할 점은 성인용품 시장 양성화에 나서는 텐가 코리아의 전략이다. 이 회사는 최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팝업 스토어를 만드는 등 성인용품의 양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텐가 코리아 측은 “팝업 스토어는 고객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며 “조만간 또 팝업스토어를 열 예정이며 상설매장 설립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텐가 코리아는 2018년 성인용품 회사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대규모 기자간담회를 열기도 했다.텐가 코리아가 이렇게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성 대상화’ 논란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사실 섹스토이의 성 대상화와 관련한 논란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법적으로 제재를 받지는 않지만 논란은 상존한다. 하지만 이같은 논란에서 텐가는 예외다. 이유는 외형만 봐서는 이 제품이 성인용품이라는 것을 유추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자위용품을 주력으로 하는 텐가 제품의 외형은 볼링핀이나 튜브, 달걀 등의 형태를 띄고 있다.예컨대, 텐가의 베스트셀링 제품인 볼링핀 모양의 ‘오리지널 버큠 컵’의 외부 디자인은 손에 잡기 적절한 정도로 만들어졌다. 내부의 구조 역시 여성의 성기 모양을 본뜬 것이 아니라 촉각적으로 적절한 자극을 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상부의 공기구멍 역시 기능을 강조한 디자인이다. 자동차 엔지니어 출신인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가 자동차 엔진 실린더의 움직임을 보고 고안한 것이라는 게 텐가 코리아의 설명이다. 텐가 코리아 측은 “텐가의 제품들은 촉각적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능성에 집중해 디자인 됐다”고 설명했다. 텐가의 활동지침에는 “여성이나 남성의 성기를 대상화한 제품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텐가의 이 같은 제품 철학은 글로벌 섹스토이 시장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워치는 글로벌 섹스토이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 이유를 분석하며 기기의 혁신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마켓워치는 “(섹스)토이는 성적인 흥분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장치가 아니라 신체 자체와 그 기구에 대한 반응”이라며 “그러므로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분석했다.최근 국내 성인용품 시장에 스타트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도 대중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개팅 앱 ‘글램’을 개발한 큐피스트는 최근 ‘로마(loma)’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로마 오리지널 브랜드로 출시된 ‘캔들’과 ‘머핀’ 등은 기능과 편의성 등으로 최상의 사용경험을 주는 데 집중한 제품이다. ━ “란제리·코스메틱 접합으로 매장 출입 망설임 줄여” - 강현길 코스모스(레드컨테이너 운영사) 대표 Q. 레드컨테이너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요?“20년 넘게 성인용품 도매업을 해오면서 적은 투자금으로 소매업에 도전했다가 사라지는 악순환을 지켜 보았다. 그래서 시내 중심에 규모가 큰 성인용품점을 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테스트 마켓을 운영한다고 생각하고 이태원 1호점을 열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손님들이 매장 밖에 줄을 설 줄은 몰랐다. 정확한 매출을 공개하긴 어렵지만 오픈하고 6개월 간 매월 30% 넘게 매출이 올랐다.”Q. 사업 전개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지금은 레드컨테이너의 입점을 희망하는 건물들이 많이 있지만 처음에는 가게를 얻는 것부터 어려웠다. 성인용품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건물주가 거부하거나 주변 상인이 반대하기도 했다. 성인용품 산업 전체를 놓고 보면 규제가 모호하다는 점이 힘들다. 규제가 모호한 탓에 온라인 플랫폼들이 현행법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체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Q. 다른 성인용품점과 차별점은.“레드컨테이너는 ‘성인생활용품점’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타 성인용품점은 주로 도매업체에서 납품 받은 성인용품만을 판매하는데, 레드컨테이너는 브랜드를 활용한 PB상품을 제작해 판매한다. 또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를 직접 수입·유통하기도 한다. 성인용품 외 콘돔, 마사지젤, 향수, 바디용품, 임신테스트기 등을 직접 주문자위탁생산(OEM)해 다양한 카테고리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마사지젤, 페로몬 향수 등 ‘러브 코스메틱’ 제품은 중국으로 꾸준히 수출하고 있어 면세점에 전문코너를 오픈했을 정도다. 레드컨테이너를 만든 이후 해외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고 꾸준한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다. 해외에서도 레드컨테이너와 같이 시내 한복판에 대형 매장이 존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레드컨테이너는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홍대에 ‘레드스타일’이라는 섹시 란제리 멀티숍을 오픈하기도 했다. 남녀 란제리를 진열하고 맨 윗층에선 레드컨테이너의 베스트셀러 성인용품 및 러브 코스메틱을 판매한다. 란제리 매장을 접합해 성인용품 출입을 망설였던 고객들이 좀더 쉽게 매장에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Q. 국내 오프라인 성인용품점 시장 가능성은.“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현재 레드컨테이너는 전국에 직영점 9곳을 포함해 14곳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몇 년 간의 데이터를 분석해 봤을 때 새로운 인구 유입이 많은 상권에서 매출이 지속 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한국 시장에 성인용품을 경험하지 못한 인구가 더 많은데, 그들 중 레드컨테이너를 새로 발견하고 방문하는 인구가 늘수록 매출은 더 상승할 것이다. 올해 초 문을 연 대구 경산점을 시작으로 기존에 수도권에 집중 됐던 매장을 비수도권으로 분산하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Q. 성인용품 시장 대중화 노력은.“레드컨테이너 브랜드를 일반에 알리기 위해 마케팅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제품을 개발할 때도 초보자 또는 입문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에 주력한다. 갤러리와 레드컨테이너 매장을 합친 복합문화 전시관 ‘레드갤러리’, 클럽에서 진행하는 ‘레드옥타곤’ 파티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대중이 성인용품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또 꾸준한 기부 등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학교 등에서 필요로 하는 성교육 교보재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성인용품의 대중화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후원할 계획이다.” ━ “최적화 제품 개발까지 폐기한 모델만 743개” - 안재원 큐피스트(로마) 대표 Q. 소개팅 앱으로 성공했는데 성인용품 시장 진출 계기는.“두 사업간 직접적인 시너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큐피스트를 창업할 때부터 가졌던 목표는 ‘사랑에 대한 혁신’이었다. 소개팅 앱 글램을 통해 사랑에 필요한 ‘관계’에 혁신을 찾고자 했고, 섹스토이 브랜드인 ‘로마(Loma)’를 통해선 사랑과 성에 대한 인식을 좀 더 솔직하게 바꾸고자 했다. 로마는 ‘Love myself(나 자신을 사랑하자)’의 줄임말이다. 자위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로마가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성에 솔직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Q. 다른 성인용품 회사들과 차별점은.“기존의 남성용 섹스토이가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기에 바빴던 반면 로마 오리지널 브랜드 첫 제품인 ‘로마 캔들’은 총체적인 경험의 최상화에 집중해 개발됐다. 연구를 통해 패턴을 설계했다. 남성용 섹스토이는 개인이 선호하는 경험이 상이한데, 어떤 제품을 경험하더라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291명의 베타테스터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제품을 개발했다. 최적화된 제품에 도달하기까지 폐기한 제품 수가 743개나 된다. 섹스토이 건조 관리를 위한 로마 드라이스틱은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카테고리의 제품이다. 남성용 섹스토이는 세척 후 남은 습기 때문에 내구성과 청결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를 개발했다. 현재 중국과 한국에서 디자인특허 출원이 완료됐다. 로마는 또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맞춰 제품을 추천하는 실시간 상담 서비스도 진행한다. 처음 성인용품에 입문하는 대부분의 고객은 어떤 제품이 본인과 가장 잘 맞는지 모른다. 상시로 고객들의 성향과 제품 피드백을 받으며, 처음 입문하는 고객도 본인과 맞는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집중할 방침이다.”Q. 성인용품 시장 대중화 노력은.“성인용품은 누구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청소년보호법에 의거한 성인용품 규제로 인해 적극적으로 알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활성화하는 로마앤유 서포터즈를 올해 초 출범했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성과 자위에 대한 자유와 인식이 억압되어 있는 여성, 장애인, 군인, 성소수자 등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구상 중이다.”로마 브랜드를 어떻게 운영할건가.“최고의 경험과 합리적인 가격의 신상품을 출시하는 데 집중하겠다. 패키지 개봉부터 사용, 사용 후 관리까지 총체적인 경험의 최상화를 위해 제품 혁신을 지속할 것이다.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 다양한 범주의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 아직도 오르가즘을 한 번도 못 느껴본 여성의 비율이 30%에 달한다고 한다. 그만큼 성에 대한 개인의 권리 추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많은 고객이 제품을 실제로 보고 만져보고 싶다는 의견을 주고 있어 로마스토어 오프라인 매장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향후에는 해외 시장에도 진출하고 싶다. 특히 우리와 같이 보수적인 문화에 변화가 찾아오는 국가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2020.03.01 18:00

9분 소요
반려동물 업계 트렌드 “브랜드보다 성분”

산업 일반

펫의 가족화, 프리미엄 제품과 양질의 사료 요구하는 소비자 등이 펫 산업의 변화 이끄는 변수다 펫(반려동물) 산업 지출이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면서 2020년에는 9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려동물의 증가, 펫의 가족화, 프리미엄 제품과 양질의 사료를 요구하는 사육자 등 펫 산업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여러 가지다. 올해 예상되는 다음의 펫 관련 지출 트렌드와 함께 그런 변수들이 영향력을 더해간다. ━ 신제품과 기술향상 촉발하는 혁신 미국반려동물산업협회에 따르면 펫 사육 가구가 8500만에 육박하며 지난 40년 사이 펫 소유가 전체 가구의 56%에서 68%로 증가했다. 이 같은 사육 가구의 증가가 시장에서의 혁신을 견인해 특화 간식, 씹는 간식(bully sticks), 비타민, 건강보조제, 전자훈련 장비 등 각종 신상품과 전문상품을 탄생시켰다. 성공적인 소매유통업체들은 재고를 조정하고 이런 제품에 매장 공간을 더 많이 할당해 수요 증가에 부응했다.아울러 소비자는 기술을 활용해 소셜미디어에서 자신들의 반려동물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들의 반려동물을 모니터한다. 갖가지 활동 트래커, 건강·영양 앱, 반려동물 돌보미 앱, 스마트 완구, 반려동물 모니터링 카메라 등이 등장했다. 반려견 산책과 펫의 행동에 관한 보고서 공유를 위해 앱을 활용하고 사람들의 자택 방문을 환영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펫 서비스가 부상할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하나의 생활방식이며 소비자는 기술친화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들의 반려동물을 남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 브랜드 비중 낮아지고 제품 내용 중요해진다 소비자가 자신들의 펫 용으로 양질의 고급 재료를 주문하기 때문에 프리미엄 펫 상품 수요는 꾸준하다. 그러나 유명 브랜드나 특정 유명 브랜드의 비중은 낮아지고 “내 반려동물에 무엇이 최선일까?”의 중요성이 커진다. 신세대는 자기 브랜드의 스토리와 제품성분이 무엇이고 평판이 어떤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들은 포장 속에 어떤 내용물이 들었는지, 원료의 산지가 어디인지, 불필요한 인공 성분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지 알고자 한다. 아울러 요즘엔 사람들이 대중매체의 광고 캠페인보다 지역의 리뷰와 추천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특정 브랜드에 매몰되기보다는 자신이 잘 아는 제품을 더 소상히 알고자 한다. ━ 펫을 반려 삼은 밀레니엄 세대와 ‘펫 소셜’의 증가 밀레니엄 세대는 사상 최고의 펫 소유 세대다. 자녀 출산을 미루고 물질적인 것보다 체험에 더 관심을 갖는다. 자신들의 펫과 하는 삶을 체험하고자 한다. 그들의 부모는 가정에서 펫과 함께 성장하며 ‘펫을 아꼈다’. 밀레니엄 세대는 반려동물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던 과거 세대와 크게 다르다.사람들은 자택과 반려동물용품점 안팎에서 자신들의 펫과 어울리는 남다른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애완견과 5㎞ 달리기부터 아트쇼나 자동차쇼 같은 이벤트에 함께 참석하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미 많은 호텔·쇼핑센터·작업장·음식점이 펫 친화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펫의 가족화와 프리미엄 사료 반려동물을 기르는 자신들의 펫을 가족으로 간주하며 자기 자식만큼 잘 대해주려 한다. 그에 따라 미국의 최근 건강·웰니스 트렌드가 펫 소매유통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건강과 성분에 대한 의식이 갈수록 높아진다. 천연 개껌(chew treats)을 포함한 천연·유기농 제품 판매뿐 아니라 고급 미용관리 옵션도 증가한다. 실제로 전문식품, 천연·유기농 제품이 펫 소매유통 업종 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할 뿐 아니라 소비자가 기꺼이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려는 제품 분야이기도 하다.마찬가지로 펫 사육자들은 펫의 무병장수를 돕는 비타민과 건강보조제뿐 아니라 마사지·물리요법·카이로프랙터(척추 헬스케어 전문가) 등과 같은 운동성 관련 요법 등 펫을 위한 대안적 건강제품도 모색하고 있다. ━ 오프라인 매장이 소매유통 체험 향상시킨다 전자상거래와 월 단위 펫 회원제 서비스의 부상은 펫 사육자들이 물품을 직접 배달 받는 편리한 방법을 제공했다. 나아가 소매유통 체험을 고급화할 뿐 아니라 고객이 있는 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쇼핑 방식으로 부응하기 위해 온라인 주문과 주문품 점내 픽업 등을 추가하는 상점이 늘어난다. 오프라인 상점은 단순히 편리함을 뛰어넘어 남다른 제품구색과 각 제품에 관해 스마트하게 설명하는 능력을 갖춰 서비스와 고객 체험을 차별화해야 한다.소매유통 업체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로 고객이 적정가의 사료 구입 외에 매장을 방문할 온갖 구실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사료구입뿐이라면 대다수 쇼핑객은 온라인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소매유통 업체들은 펫 소유 체험을 더 쉽게 만들어 주려면 몇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매장들은 반려동물과 어울리는 고객 감사 이벤트와 기회, 지역 입양, 무료 제공 서비스 같은 고객의 다른 욕구에도 부응해야 한다. 요즘의 반려동물 주인들은 자신들과 펫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장소를 찾으며 진정한 교감을 원한다. ━ 전문점과 독립 소매유통업체 통해 새 브랜드 자리잡아 이 분야는 진화를 거치는 중이다. 지난 5~8년 사이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많은 브랜드가 대중적인 채널로 전환했다. 현재 성숙 단계의 유명 브랜드들이 점유율을 키워 상품 보급을 확대하는 추가적인 경로를 찾기 시작했다. 이는 판매 채널을 제한해 온라인 영업을 않기로 한 신흥 브랜드들에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열어준다.이들 새 브랜드는 온라인 판매를 하는 대형 브랜드에 합류하는 대신 모든 월마트와 식료품점에서 자신들의 진짜 스토리를 소유하며 전문사료 매장과 독립 매장을 고수하기로 했다. 따라서 과거 신참자들이 이용할 수 있던 것보다 많은 소매유통업체를 방문할 수 있게 됐다. 소매유통업체들은 사람들이 어디서든 구입할 수 있는 제품 진열공간을 줄이고 차별화된 전략을 가진 브랜드에 문호를 개방할 것이다. 5~10년 뒤에는 신흥 브랜드들의 점유율이 늘어나고 대형 브랜드들이 쇠퇴해도 이상할 게 없다.- 크리스 롤랜드※

2019.01.2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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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섹스가 만났을 때

산업 일반

오르가슴 경험하지 못한 10~15% 여성 위한 스마트 바이브레이터 ‘라이오니스’, 질 내 움직임 측정해 절정의 패턴 파악한다 리즈 클린저는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지난 4년간 개발해온 바이브레이터를 꺼낸다. 둥근 머리 아래 탄력적인 클리토리스 자극봉이 있는 연한 청회색 도구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손잡이에는 쉽게 눈에 띄는 곳에 단추가 2개 달려 있다. 그녀는 “우리는 그것을 호기심쟁이의 바이브레이터로 부른다”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보통 바이브레이터같이 디자인했지만 사용 후 앱과 동기화해 결과가 어떤지 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우리는 미국 맨해튼 중심가 공동작업공간의 소파에 앉아 있다. 우리 주변에는 온통 남자들뿐이다. 바로 뒤 개인 책상에 한 남자가 앉아 노트북 컴퓨터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긴 나무 테이블에 몇 명이 더 모여 있다. 이유는 뻔하겠지만 그들은 가끔씩 우리 쪽을 힐끔거린다.클린저(29)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다.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바이브레이터’ 라이오니스(Lioness) 제조사의 CEO 겸 공동창업자다. 말하자면 여성의 질에 쓰는 피트니스 트래커다. 배송비를 제외한 가격이 229달러인 라이오니스에는 4개의 센서가 달려 있다. 2개는 골반저(pelvic floor) 패턴 측정용, 1개는 온도 측정용, 나머지 하나는 움직임 감지용이다. 그리고 사용 후 데이터를 앱으로 전송해 이용자가 자신의 성적 반응을 탐구하고 오르가슴 패턴을 파악해 파트너와 대화하도록 한다.“이게 오르가슴이에요!” 클린저가 아이폰을 손에 들고 앱에 표시된 그래프의 가장 높고 넓은 봉우리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래프는 골반저 움직임을 초 단위로 측정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동 추이를 볼 수 있고 오르가슴 동안 일종의 패턴이 나타난다.” 앱은 또한 이용자의 오르가슴을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내고(고동 치는 동그라미들), 섹스 일기 또는 사용 중의 느낌을 기록(알코올이나 커피 소비를 추적)할 수 있게 하고, 이용자의 성적 흥분 패턴을 다른 이용자의 데이터와 비교해 바이브레이터의 새로운 사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보도 자료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오르가슴 패턴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라이오니스를 윗쪽으로 기울이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성생활을 더 잘 이해하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트너와 더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목표라고 클린저 CEO는 말한다. 하지만 그 많은 데이터로 여성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까? 클린저 CEO는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침실의 IT가 어느 정도라야 많다고 할까?기술과 섹스의 만남은 라이오니스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투자자와 기술자들은 섹스의 즐거움을 더 해주겠다며 깜찍한 이름을 가진 스마트 제품을 다수 내놓았다. 러브라이프 크러시(Lovelife Krush, 149달러)는 케겔 운동(골반저근 강화 운동)용 핏비트인 셈이다. 센서가 내장돼 골반저 근육의 압력·통제력·지구력을 측정한다. 내년 초 출시예정인 바지니(VaGenie)도 거의 비슷한 기능이다. 둘 다 전용 앱과 연동한다. 피에라(199~249달러)는 가벼운 자극과 부드러운 흡입력으로 섹스 전 혈행과 피부 윤활을 개선해 여성의 흥분을 돕는다. 애프터글로 바이브레이터(Afterglow vibrator, 129달러)는 펄스웨이브 광기술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흥분하도록 돕는다.” 하반신마비 환자, 장애인과 관절염환자용 바이브레이터도 있다.이들 스마트 섹스완구는 속도조절 기능과 패턴이 더 많고 방수도 된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20달러짜리 표준 바이브레이터보다 더 낫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게다가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다. 2014년 위-바이브(We-Vibe)는 앱과 연동하는 바이브레이터로 폰섹스에 혁명을 불러왔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동안 또 한 사람이 옆방이나 지구 반대편에서 그것을 제어할 수 있게 했다. 이 제품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위-바이브를 개발한 캐나다 업체 스탠더드 이노베이션스는 최근 집단 소송을 당해 375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했다. 그들은 앱을 이용해 고객의 바이브레이터 이용방식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의혹을 샀다. 여성 중 10~15%가 오르가슴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통계를 더 심각한 문제로 여기는 시각도 있을지 모른다. 마이클 크리크먼은 “자신의 클리토리스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여성도 많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이자 성의학 부인과 의사이며 미국 성교육자·카운슬러·치료사협회(AASECT) 인증 임상 섹스 카운슬러로 ‘서던캘리포니아 성건강·서바이버십 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약 10년 동안 뉴욕시에 있는 메모리얼 슬로운-케터링 암센터의 성의학·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그는 “오르가슴이 전에는 천둥과 번개 치는 듯했는데 지금은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같다는 말을 폐경기 여성들로부터 때때로 듣는다”고 말했다. “커플들은 성적 권태기를 맞는다. 치료의 일환으로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해 여성이 변화에 적응하고 약간의 성적탐구를 통해 성경험을 강화하도록 돕기도 한다.”치료용으로든 쾌락용으로든 바이브레이터 시장은 수십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시장조사 업체 테크나비오에 따르면 미국의 섹스 웰니스(웰빙과 조화) 시장은 2015년 61억3000만 달러에 달했으며 2020년에는 97억50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2015년 섹스 완구 판매는 27억7000만 달러로 그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요즘에는 갖가지 형태·사이즈·색깔 그리고 온갖 페티시(특정 신체부위나 사물에 대한 성적 집착) 또는 욕구에 맞춰 완구가 출시된다. 섹스 완구는 1860년대 후반~1870년대 조시 테일러라는 미국인 의사가 증기 마사지·진동 테이블 특허를 출원하면서 처음 등장한 이후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그 뒤 1880년대 조셉 모티머 그랜빌이라는 영국인 의사가 배터리로 작동되는 무게 18㎏의 바이브레이터를 발명했다. 20세기로 넘어갈 즈음 바이브레이터는 재봉틀·선풍기·주전자·토스터에 이어 다섯번 째로 전동화되는 가정용품이 됐다. 당시 바이브레이터는 대체로 신경발작·졸도부터 산부인과 질환과 불안까지 여성의 갖가지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됐다. 그리고 대부분 어떻게든 쾌락과 관련 있다기보다는 파괴의 도구에 더 가까워 보였다.1920년대 들어서자 여성지와 가정 관련 매체들이 ‘모든 고통을 완화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거의 신비에 가까운 바이브레이터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1968년 히타치가 선보인 540g 30㎝ 짜리 개인용 마사지기 매직 완드(Magic Wand, 마법의 지팡이)는 사랑 받는 섹스 완구 겸용으로 쓰이게 됐다. 지난 수십 년 사이 바이브레이터는 마침내 미국 가정의 어두운 양말장에서 벗어나 양지로 나왔다. 1989년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맥 라이언은 요란한(그러나 가짜) 오르가슴으로 뉴욕시의 한 만찬 레스토랑을 정적에 빠뜨렸다. 잠시 후 가까이 앉아 있던 머리 희끗희끗한 나이든 여성이 웨이터에게 “나도 저 여자가 먹는 걸로 하겠어요”라고 말해 쾌감이 젊은이만의 특권이 아님을 우리 모두에게 상기시켜줬다. 1990년대 초 여성들의 터퍼웨어 파티(Tupperware parties, 식품보존용 밀봉용기 판매원이 가정을 방문해 여는 상품설명회)가 섹스 완구 파티로 바뀌었다. 그리고 1998년 미국인의 사랑을 받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캐리·서맨사·샬롯·미란다)은 한 에피소드에서 토끼 귀 모양의 클리토리스 자극봉이 달린 새 바이브레이터의 장점을 찬양하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이거 핑크색이야, 여아용!”이라는 샬롯의 말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오늘날 기술은 남녀의 성관계 그리고 쾌락의 체험 방식(혼자서든 파트너와 함께든)에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 전역에서 18~60세 여성 3800명의 표본을 추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여성의 절반가량이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한다. 그런 여성은 부인과 검진을 받고, 자기진단을 하고, 애정관계에 더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비율이 더 높다. 그러나 정말로 오르가슴 도표를 작성해 시간대별로 비교할 필요까지 있을까. 정말로 라이오니스가 필요할까?임상심리학자 겸 성건강 선구자 레슬리 쇼버는 “자신의 성적 흥분을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오르가슴에 잘 오르지 못하는 여성에게는 이것을 통해 받는 바이오피드백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섹스와 생식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암환자와 생존자 대상의 디지털 건강 업체 윌2러브(Will2Love)를 설립했다. “그러나 일반 여성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면서 ‘앱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할까? 그것은 수행불안(performance anxiety, 특정 행위의 실패에 대한 불안)을 조장할 뿐이다. 여성은 항상 성관계 중 ‘내 파트너가 만족하고 있을까? 내가 너무 늦게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여념이 없다. 근육 긴장 패턴을 통해 언제나 똑같이 얻기 원하는 성경험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근사한 성경험은 파트너가 어떻게 하는지 또는 혼자라면 어떤 판타지를 갖고 있는지에 좌우되지 근육수축이 더 오래 지속되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크리크먼 박사도 같은 생각이다. 뉴스위크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라이오니스 웹사이트의 글을 소리 내 “시간대별 흥분과 오르가슴 패턴을 추적함으로써 자신의 몸에 무엇이 효과적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읽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두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애정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다. 사람의 경험은 사람과의 상호작용과 피드백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질의 온도와 그 변화에 신경 쓰게 될까? 애정관계가 너무 기계적으로 변하는 건 아닐까? 굳이 말하라면 성관계라는 개념에서 인간적인 측면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섹스와 기술은 이미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생리 측정 앱 클루를 이용해 14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5명 중 1명은 앱을 이용해 섹스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조사에선 앱을 이용해 자신의 성행위를 측정한다는 답변도 40%에 달했다(섹스 또는 데이트 상대 물색에 앱을 이용하는 비율 34%보다 높다). 라이오니스에 불리한 소식은 성적 만족 측정에 앱을 이용한 비율은 3%에 불과하다는 점이다.그러나 클린저 CEO는 여성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성적 경향을 탐구하려 한다는 사실에 기대를 건다. 그녀는 미국 중서부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스튜디오 아트와 철학을 공부한 뒤 금융회사에 취업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1년 뒤 회사를 그만두고 섹스완구 파티를 열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파티에서 누군가 ‘G 스팟(질 내 강렬한 성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뭐지? 내 몸 어디에 있는 거야?’ 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또 한번은 결혼 전 여성의 ‘독신생활 쫑파티(bachelorette party)’에서 예비신부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 좋은 방법 없어? 이게 정상인 거야?’ 그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클린저 CEO는 고등학교 때 처음 으슥한 CD점에서 바이브레이터를 현찰로 구입했다고 말했다. “대단히 불편한 경험이었다. 멋진 디자인의 고급 바이브레이터가 다양하게 구비된 성인용품점 베이브랜드가 아니었다. 온통 플라스틱 소재에 젤리 형태 제품들과 클리토리스 자극봉들뿐이었다. 나는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바이브레이터를 만들고자 했다. 더 빠르거나 강하게 만들기보다는 디자인을 개선하고 구입방식과 경험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위-바이브 소송이 스마트 바이브레이터 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상황에서 클린저 CEO는 연구팀과 함께 이용자에게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고 수집된 모든 데이터의 익명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녀는 “민감한 데이터를 취급할 때의 모든 관행에 덧붙여 우리 측에서 데이터에 접근할 때 의도적으로 이용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설정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양동이에 담긴 이용자 데이터에서 개인 정보 걸러내 데이터 ‘호수’에 쏟아버리는 데 비유한다. 일단 호수에 버려지면 어떤 ‘물’이 어떤 양동이에 담겼었는지 알아내기 어렵다.”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그 모든 데이터로 자기 오르가슴의 그래프와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것 외에 정확히 무슨 일을 할까? 클린저 CEO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신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훗날 이 정보를 이용해 더 맞춤형의 지침과 지식을 제공하고 여성의 성적 경향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미군에 근무하며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에 거주하는 조앤 로(31)는 라이오니스 제품의 초기 베타 테스터로 자원했다. “라이오니스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이해하는 과정의 공포감을 덜어준다.” 오르가슴을 경험하지 못한 10~15%의 여성 그리고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했다며 클린저 CEO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예비 신부에게는 라이오니스가 무엇보다 필요한 물건인지도 모른다.- 애비게일 존스 뉴스위크 기자

2017.09.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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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는 ‘켈트의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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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싱 스트리트’의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다녀왔다. 아일랜드 감독 존 카니(41)가 1980년대 더블린을 배경으로 만든 자전적 뮤지컬 영화다. 카니 감독은 시사회가 시작되기 전 내게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더블린의 관객이 이 영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초조하다고 말했다.‘싱 스트리트’는 매력적이고 희망적인 뮤지컬이다. 하지만 활기찬 오늘날의 더블린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1980년대는 더블린의 많은 젊은이가 가난과 경기침체를 피해 영국과 미국, 호주로 떠나간 암울한 시기였다.“더블린은 1980년대와 확연히 달라졌다”고 카니 감독은 말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당시 더블린은 1950년대의 영국 같았다. 건축과 미학적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그랬다. 그때까지도 교회가 학교를 운영했다. 모두가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오늘날 더블린은 국제적이고 다문화적인 도시가 됐다.”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카니 감독과 젊은 출연진(여주인공 라피나 역을 맡은 내 딸 루시도 포함됐다)이 무대로 나와 답례했다. 더블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돌아보는 게 불편하지 않은 듯했다.‘싱 스트리트’는 ‘켈트의 호랑이’(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아일랜드를 일컫던 말) 시절 훨씬 이전을 배경으로 한다. 1990년대 중반 아일랜드는 유럽연합(EU)의 투자와 부동산 거품을 바탕으로 유럽 최빈국 중 하나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거품이 꺼졌다. 2009년 1월 아일랜드의 정부 부채는 유로존에서 가장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내가 지난번에 더블린을 방문했을 때는 2011년 국가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아일랜드 정부 채권을 ‘투자부적격(정크)’ 등급으로 강등한 직후였다. 당시 더블린에서 살던 내 친구들은 충격과 절망에 빠졌었다. 난 그 사이 더블린이 얼마나 변했는지 직접 느껴보려고 거리로 나섰다. 더블린과 아일랜드는 그때의 충격에서 서서히 헤어나오고 있었다.이제 아일랜드는 유럽의 IT 수도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구글과 페이스북, 페이팔, 마이크로소프트, 이베이의 유럽 본부가 이곳에 있다. 그리고 더블린에는 훌륭한 레스토랑도 꽤 있다. 런던이나 파리 등 요리의 수도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EU 각국과 그 밖의 지역에서 유입된 젊은이들은 이 도시에 전에 없던 국제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었다.예전에 낙후됐던 리피 강 북쪽의 브로드스톤 지역엔 새로운 바와 카페들이 들어서 활기가 넘쳤다. 더블린은 커피 문화가 특히 발달했다. 카페 대다수가 현지인이나 외국 젊은이들에 의해 운영되며 값이 저렴하다. 캐펄 거리에 있는 ‘브러더 허버드’ 같은 인기 레스토랑들은 가격에 맞는 신선한 재료를 쓰는 데 중점을 둔다. 이 레스토랑의 ‘메네멘’(휘저은 페타 요거트와 구운 피망, 붉은 양파를 곁들인 터키 전통식 스크램블드 에그)은 맛이 일품이다.한 친구를 통해 알게 된 프랑스인 음식 블로거 겸 음식 투어 가이드 케티 엘리자베스가 나를 브러더 허버드로 안내했다. 엘리자베스는 켈트의 호랑이 시절 더블린에 왔다. 당초 6개월만 머물 예정이었지만 더블린 남자와 사랑에 빠져 눌러살게 됐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음식이 형편없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주로 패스트푸드였고 값이 비싼 소위 ‘고급 레스토랑’도 닭고기와 연어, 소고기 등 메뉴가 뻔했다. 하지만 요즘 이곳의 레스토랑들은 현지에서 생산된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엘리자베스는 이전에 성인용품점이 몰려 있던 캐펄 거리가 지금은 고급 레스토랑의 중심지가 됐다고 말했다. 브러더 허버드에서 식사를 마친 뒤 그녀는 거기서 몇 집 건너 있는 케이크점 ‘카메리노’로 나를 안내했다. 이탈리아계 캐나다인 카리나 카메리노가 2014년 말 문을 연 곳이다. 케이크와 빵이 잔뜩 쌓인 카운터 뒤에 서 있던 카메리노가 상점을 열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난 원래 인사 전문가로 일했는데 주말 시장에서 케이크를 구워 팔다가 아예 이 길로 나섰다.” 현재 그녀는 직원 8명을 고용해 상점에서 파는 모든 케이크와 빵을 직접 만든다.최근 아일랜드는 레스토랑과 음식 붐이 일면서 관광사업도 급성장했다. 요즘은 아일랜드를 찾는 관광객의 국적이 매우 다양해졌다. 30년 전 해외 관광객의 70%를 차지하던 영국인의 비율이 지금은 30%로 떨어졌다. 관광의 유형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미국인 관광객의 4분의 3이 ‘친구와 친척 방문(VFR)’을 목적으로 입국했다. 하지만 요즘은 대다수 관광객이 아일랜드에 혈연이나 지연이 없는 사람들로 교외의 친척 집에 머물기보다는 더블린의 호텔 객실 4만8000개 중 하나를 예약할 확률이 높아졌다.더블린의 매력이 집중된 리피 강 남쪽으로 돌아와서 리버티스 지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한때 가죽 가공업과 양모업의 중심지였다. 그곳에서 위스키 업체를 운영하는 잭 틸링을 만났다. 지난해 더블린에서 125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위스키 증류업체를 설립한 틸링은 이 도시가 지속가능한 경기회복을 이뤄나간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틸링의 집안은 아일랜드에서 대대로 위스키 제조업에 종사해 왔다. 그의 조상 월터 틸링은 1782년 더블린에 가문 최초의 증류주업체를 세웠다. 또 그의 아버지 존은 라우스 카운티에서 ‘쿨리 디스틸러리’를 거의 30년 동안 운영하다 2012년 미국 위스키 회사 짐 빔에 매각했다.틸링에 따르면 현재 ‘틸링 위스키’는 증류주업체인 동시에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개업 첫해에 방문객 4만 명을 유치했다. 이곳에는 레스토랑과 시음장, 틸링 위스키와 브랜드 T셔츠, 에이프런, 휴대용 술병, 마멀레이드 등을 파는 상점이 있다.19세기 말~20세기 초 아일랜드 위스키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증류주였다고 틸링은 알려줬다. “하지만 1916년 부활절봉기(영국에서 독립하기 위한 아앨랜드 공화주의자들의 무력 항쟁), 1919~1921년 독립전쟁, 1922~1923년 내전으로 내수시장이 약화됐다”고 그는 말했다. “게다가 1920~1933년 미국의 금주령으로 위스키 산업이 심하게 위축됐다. 우린 자동차 충돌 사고를 당해 절벽 아래로 떨어진 거나 다름없었다.”영국 스카치위스키협회(SWA)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 스카치위스키 판매량은 연간 약 9500만 상자이며 그중 4000만 상자는 미국, 2100만 상자는 캐나다에서 생산된 것이다. 아일랜드의 연간 위스키 판매량은 700만 상자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틸링은 “오늘날의 더블린을 대표하는 위스키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더블린은 하이테크가 발달한 국제적이고 세련된 도시다. 우리는 위스키를 만들 때 리피 강의 강물을 끌어다 쓴다. 진짜 더블린 물로 제대로 된 더블린 위스키를 만들고자 한다.”카니의 말대로 더블린은 ‘싱 스트리트’의 배경이 된 예전의 그곳과는 많이 달라졌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블린에서의 마지막 저녁 이 도시의 가장 오래된 펍 ‘스완’에서 기네스 맥주를 마시면서 ‘예전의 더블린에 대해서도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엄 보인턴 뉴스위크 기자

2016.08.1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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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바이크’로 미국 횡단하다

산업 일반

맨해튼에서의 직장 생활에 권태를 느낀 태넌하우스는 출근하던 공용자전거로 5개월 간 19개 주를 약 4860㎞ 달려지난해 여름 어느 날 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살고 있는 제프리 태넌하우스는 공용 자전거 보관소의 시티 바이크(공용 자전거) 자물쇠를 풀었다. 뉴욕 시민의 공용 자전거 이용 회수는 하루 약 3만5000회에 달한다. 보관소는 주로 맨해튼과 브루클린 주변에 300여 곳이 분산돼 있다. 시티 바이크는 뉴욕의 최신, 그리고 유행을 선도하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적어도 하늘을 나는 호버보드가 등장할 때까지는 말이다. 태넌하우스는 연간 회원권을 구입했다. 한 번에 45분씩 시티 바이크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는 방금 선택한 시티 바이크가 신제품처럼 보였기 때문에 몹시 들떠 있었다. 자신의 블로그에 ‘바퀴살이 반짝거리고 벨 소리는 천사들을 불러낼 듯했다’고 썼다.천사를 불러내는 능력은 실상 시티 바이크가 자랑하는 기능은 아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자전거 공유 시스템을 도입한 지난 2년 사이, 시티뱅크의 후원을 받아 은행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자전거가 무겁고(20㎏), 느리다(관광객·옐로캡과의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3단 기어가 최고)는 비아냥도 있었다. 태넌하우스가 찾아낸 최신 모델은 원래 모델보다 약간 더 빠르고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설명이 있었다.태넌하우스는 2번 대로를 따라 달렸다. 20번가에서 시티 바이크를 주차시키던 한 여성을 보고는 멈춰 섰다. “실례합니다.” 그는 그녀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내일 이 자전거로 미국 횡단여행을 할 계획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그녀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려면 큰돈이 들 걸요.” 그녀가 태넌하우스에게 말했다. “자전거가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도 못할 거구요.”50점짜리 답이었다. 태넌하우스는 45분 사용 제한시간을 약 3600시간 넘긴 데 대해 1200달러의 과징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자전거는 캘리포니아까지 탈 없이 달렸다. 오클라호마 주 클레어모어 근처에서 펑크 한 번 난 게 전부였다. 태넌하우스도 털사 외곽에서 얼굴을 한 번 얻어맞았지만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털사는 공교롭게도 태넌하우스가 다시는 맨해튼에서 살지 않겠다는 확신이 섰을 때 그가 미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점 찍은 도시였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인 프랭클린 버튼(37)은 같은 날 남녀 한 명씩이 관련된 또 다른 폭행사건 이후 체포됐다. 한편 태넌하우스는 얼굴에 약간 멍이 들었지만 의기소침하지 않고 계속 서쪽을 향해 전진했다.그는 사건 후 인스타그램에 ‘의사가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하더라’며 ‘나는 웨버스 레스토랑의 냉동 루트 비어(탄산음료)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말한대로 했다. 달리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지난 1월의 어느 날 오후 태넌하우스는 자신이 컨트리 바이크로 개명한 자전거를 타고 캘리포니아 주 샌타모니카의 부두에 도착했다. 샌타모니카의 새 자전거 공유 프로그램 브리즈 회원들로 이뤄진 일단의 그룹이 그를 맞았다. 서던캘리포니아 주 공영 라디오 회원사인 KCRW의 프로그램 진행자 프랜시스 앤더튼도 그 자리에 있었다.앤더튼은 “하루 약 60~100㎞씩 5개월 간의 자전거 여행을 막 마친 사람치고는 아주 편안해 보였다”고 전하며 그가 19개 주 약 4860㎞를 달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한 “영웅적인” 여행이라고 평한 중학교 교사도 인터뷰했다. 교사는 “그냥 시티 바이크 한 대를 잡아타고 계속 페달을 굴러 끝없이 전진하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탄성을 올렸다.“아는 사람이야!” 내가 모닝 커피를 홀짝이다가 아내에게 소리쳤다. 사진 속 인물은 바로 태넌하우스였다. 뉴욕포스트 신문 지면에서 현대 문명의 가장 혈색 좋은 불평분자들의 자전거 라이더 행렬 속에서 그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태넌하우스와 나는 다트머스대학 동창이었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사교모임(유대인, 희극배우, 아카펠라)에 가입했고, 맨해튼 거리에서 마주치면 상투적으로 ‘밥 한 번 먹자’는 약속을 하곤 했다.졸업 후 연락이 끊긴 채 세월이 흘렀다. 서로 자기 일에 바빴다. 그는 아마도 센트럴 파크가 내다보이는 발코니를 가진 맨해튼 아파트에서 거주할 만한 직업을 갖고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실상 그는 눈 씻고 봐도 대도시의 화려함은 찾을 수 없는 소박한 브루클린 고층빌딩 밀집지역에서 거주했다. 그가 학교 졸업 후 괌에서 인명구조원으로 일하며 궁색하게 지냈다는 사실도 나는 전혀 몰랐다. 또 뉴욕으로 돌아온 뒤 모든 뉴요커가 화염병을 던지고 싶어 하는 빨간색 2층 버스의 여행 가이드가 됐다는 사실까지도.포스트 기사에는 ‘계속 달려, 친구(Ride On, Man)’라는 제목 아래 웨스트 버지니아 주 경계에서 태넌하우스가 의기양양한 포즈를 취한 사진이 실렸다. 그는 이벤트 플래너로 일하던 중 권태를 느껴 아파트 임대 계약을 해지하고 소지품을 챙겨 시티 바이크에 작은 트레일러를 달고 서부로 향했다. 생면부지 이방인들의 친절에 의지해 숙소를 해결했다. 여행 시작 후 3주 동안은 만사형통인 듯했다. 하지만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델라웨어를 지날 즈음 “뜨거운 햇빛을 막으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달리는 그의 모습에 놀란 주민이 그를 테러범으로 신고했다.”나는 남은 커피를 마시고 일어섰다. 마치 젖은 회색 담요처럼 열기가 뉴욕시 상공을 덮고 태양의 윤곽을 흐릿하게 하는 8월이었다. 갓난아기 얼굴을 들여다보고 아내에게 키스한 다음 여느 날처럼 아침 거리로 나섰다. 지하철 역에 도착할 무렵 제프리 태넌하우스의 이야기는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그러나 며칠 뒤 털사 폭행사건 이후의 기사가 다시 포스트에 실렸다. 우리는 그의 여정을 선망의 눈으로 따르며 태넌하우스가 영원히 벗어나고 있던 평범한 일상에서 짧은 순간이라도 탈피하고 싶었다.피플·가디언·뉴욕 같은 매체에서 태넌하우스의 여행을 기사로 다뤘다. 그는 이젠 마음이 변해 뉴욕보다 털사를 더 좋아하게 됐지만 뉴욕 잡지는 그들이 이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를 꼽았다. 태넌하우스에 관한 거의 모든 언론 보도가 그의 라이딩을 매력적이면서도 기이한, 칭송하면서도 따라 하지는 말아야 할 것으로 묘사했다. 끊임없이 미 대륙을 달리는 영화 속 ‘포레스트 검프’에도 많이 비유했다. 이런 기사들은 그를 지능보다는 지구력이 뛰어난 순진남 이미지로 비춘다. 인스타그램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야 할 매력적인 바보 말이다.내 생각은 많이 다르다.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색적이긴 해도 태넌하우스의 선택은 모아 놓은 돈을 몽땅 털어 텍사스 주 오스틴에 베이컨 시식 센터를 여는 것만큼 이색적이진 않지 싶다. 그의 선택은 일상성을 상당히 간직한 일상 탈출이었다.최근 태넌하우스가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이번에는 비행기편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를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났다. 그는 주말 자전거 동호인을 금방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일주 사이클 대회) 출전선수로 변신시키는 고가의 장비나 명품 로드 바이크(포장도로용 자전거)를 구입하는 건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고 내게 말했다. 시티 바이크를 타고 맨해튼 다리 건너 출퇴근할 때가 그의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극이나 보람 없는 일상에서의 휴식시간이었다. 그래서 가장 즐거운 일로 자신의 하루를 채우기로 했다. 이는 대담할 뿐 아니라 타당한 결정이었다. 중학교 선생님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중학교 선생님들 말씀이 우리 대다수가 인정하려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맞지 않던가?불행했던 괌에서의 생활 외에도 태넌하우스는 세계를 상당히 많이 돌아다녔다(중동·동남아·남미 등). 그러나 부모님들은 그가 미국 횡단 여행 계획을 밝혔을 때 펄쩍 뛰며 말렸다고 한다. 털사 기습공격 사건 말고는 부모님들의 우려는 실현되지 않았다. 도로 위에서 두어 차례 자동차에 위협을 받기는 했지만 맨해튼 브로드웨이를 자전거로 달린 사람에겐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태넌하우스는 도중에 WarmShowers.org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무한한 듯한 친절에 의지했다. 자전거 여행자들을 무료로 숙소를 제공하려는 사람들과 연결시켜주는 단체다. 한번은 뉴저지 주 해안에선 해변 별장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주 블라이드에선 낚시용품점 앞의 ‘매리어트’라는 별명을 가진 트레일러 신세를 졌다. 그의 여행에는 놀라울 정도로 미국 중부의 색깔이 강하다. 하루 약 100㎞를 자전거로 달리는 건 물론 힘든 일이지만 태넌하우스가 먹고 마신 햄버거와 수제 맥주를 보고 있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그 두 가지에 관한 기록을 유별나게 많이 올렸다.그는 백수 생활을 만끽하는 아이비리그 출신 실업자였다. 미국 초기 개척자들처럼 불굴의 정신으로 서부를 향해 꾸준히 페달을 밟는 진정한 미국인이었다.태넌하우스가 뉴멕시코 주를 통과할 즈음 나는 도시 기획자 팀 설리번의 신저 ‘서부로 가는 길들(Ways to the West)’을 읽고 있었다. 설리번은 4년 전 오클랜드에서 살 때 서부와 갈수록 멀어진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동차 창문을 통해서만 서부를 바라봤기 때문이라는 판단이었다. 그에 따라 “자동차 없이 서부를 관통하는 도로 여행”에 착수했다. 주로 자전거로 이동하고 일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는 태넌하우스와 비슷하게 지루함, 방향감각 상실, 그리고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곳을 직접 돌아볼 수 있었다.3주 동안 이어진 설리번의 여행은 태넌하우스와는 여러 모로 달랐다. 설리번의 여행은 서부의 변화하는 인프라를 탐구한다는 명확하게 규정된 목적에 따라 용의주도하게 계획됐다(콜로라도 주 덴버의 경전철, 아이다호 주 보이시의 자전거 길 등). 자전거도 썩 튼튼하지 않았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기본적인 유사성이 있다. 끊임없는 행동을 통해서만 땅의 근본적인 혼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윌리엄 리스트 히트문은 포드 이코노라인 밴을 이용한 미국의 뒷길 탐사에 관한 그의 고전 ‘블루 하이웨이(Blue Highways)’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여행자가 얻는 것은 통찰이 아니라 한동안 돌아다닐 힘뿐인지도 모른다.” 잭 케루악도 소설 ‘길 위에서’(민음사 펴냄, 2009년)에서 ‘갈 곳은 없지만 어디든 발길 향하는 곳이 곧 목적지’라고 설파했다. 부단한 이동보다 더 미국적인 특성은 없을지 모른다.자전거 애호가들이 완전 채식주의자들처럼 멋없는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그런 고정관념에 집착해 태넌하우스의 행동이 철면피한 시티 바이크 절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를 비난한다. 어떤 위선적인 블로거는 “캘리포니아 주 경계에서 그를 맞이해야 할 사람들은 뉴욕 주 경찰이었다”고 호통을 쳤다. 그를 중절도죄로 잡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티 바이크 측도 그의 여행을 썩 반기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이 기사를 포함해 태넌하우스에 관한 논평 요구에 대부분 응하지 않았다.비영리단체 트랜스포테이션 올터너티브스의 폴 스틸리 화이트 대표는 이런 비판을 일소에 부치며 태넌하우스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핵심적인 문제를 간과한다”고 말한다. 화이트 대표는 “그는 영웅”이라며 도시의 잔소리꾼들과 자전거 공유 이상주의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태넌하우스가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만났다. CBS 방송 대담 프로 ‘스티븐 콜베어의 레이트 쇼’의 게스트로 출연해 녹화를 마친 참이었다. 하지만 다른 게스트에게 밀려 그의 녹화분이 언제 방송될지는 몰랐다. 미국 횡단여행에 사용했던 자전거를 아직 갖고 있었다. 어쨌든 과징금은 치렀으니까 문제는 없다. 시티 바이크 보관소에 세워둘 수 있지만 그럴 경우 맨해튼 동부에서 서부 사이를 단조롭게 왕복하는 여느 두 바퀴 자전거와 다름없어진다. 과거의 영광은 반복적인 일상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아니다, 너무 많은 길을 달려 왔고 아직 갈 길이 너무 많다. 그리고 아직 털사가 있었다.

2016.06.27 11:09

8분 소요
[새 먹거리 찾는 유통 대기업들] 대형·지역밀착·전문화 … 맞춤형으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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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인천 송도동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이하 현대송도). 영업이 시작되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인근 주민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삼송빵집이나 조앤더주스 등 현대백화점에서 인기 있는 식음료 매장은 물론이고, 키즈카페나 가전 매장 등에도 고객이 몰렸다. 현대송도 측은 프리오픈 첫 날인 이날 방문한 고객 수를 약 4만 명으로 집계했다. 송도는 국제 학교와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 등이 있고 소비 수준이 높아 ‘인천의 강남’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동안 대형마트 2곳 외에는 쇼핑 공간이 거의 없었다. 이를 겨냥한 곳이 바로 현대송도다. ‘강남스러움’을 콘셉트로 하는 현대송도에는 명품이라 불리는 패션 브랜드가 페라가모·멀버리 등 40여 개정도 밖에 없다. 대신 일상용품의 고급화를 꾀했다. 지하 1층 베이커리에서는 한 조각에 6700원짜리 케이크를 파는 한편, 한 대에 1000만원이 넘는 LG 시그니처 TV도 진열했다. 식재료도 일본 기꼬만 간장 등 수입 식재료를 집중적으로 비치했다. 특히 소비자들을 압도한 것은 넓은 쇼핑공간과 동선이다. 일반 축구장(7000㎡) 크기의 약 7배 수준인 영업면적 4만 9500㎡(약 1만5000평) 규모로, 동선을 따라 아웃도어·가전·먹거리 등이 카테고리별로 나란히 입점해 있다. 메인 매장 격인 지하 1층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2시간이 족히 걸린다. ━ 대형 쇼핑몰 전쟁터로 변한 송도 지금은 롯데마트·홈플러스가 각축전을 벌이는 와중에 현대송도가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고급화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2~3년 뒤면 대형 유통 업체의 쇼핑몰 전쟁이 이어진다. 유통의 영원한 맞수인 롯데와 신세계그룹은 현대송도 인근에 대형 쇼핑몰을 짓는다. 롯데그룹은 2019년 송도 인천대입구역 인근에 ‘롯데몰 송도’를 오픈한다. 21층 규모의 대형 쇼핑몰로 롯데시네마·호텔이 동시에 들어설 예정이다. 신세계그룹도 롯데몰 인근 부지에 신세계백화점·이마트 등이 입점한 복합쇼핑몰을 짓는다. 이랜드도 인근에 쇼핑몰을 추진하고 있다. 대부분 2019년을 전후해 오픈할 것으로 보인다.송도 외에도 경기도 하남시 역시 쇼핑몰 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핫 플레이스’다. 신세계그룹이 오는 9월 경기 하남시 신장동 일대에 ‘스타필드 퍼스트 하남’(이하 스타필드)이라는 복합 쇼핑몰을 열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세계의 경쟁상대는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나 야구장”이라면서 여가형 쇼핑을 강조해온 정용진(48)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꿈이 실현되는 첫 공간이다. 복합쇼핑몰의 이름도 ‘고객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스타 같은 공간’이라는 뜻으로 정 부회장이 직접 지었다. 아직 스타필드 내에 호텔 건립 계획이 나오지 않아 호텔과 유통, 레저를 아우르는 복합공간이라 하기에는 약간 아쉬움이 남지만, 장기적으로는 호텔 건립 등이 가능할 전망이다.부지 면적만 11만7990㎡(약 3만5700평)에 달하는 스타필드는 ‘신세계 월드’라 할 수 있다. 이마트를 제외한 신세계그룹 대부분의 브랜드가 들어간다. 신세계백화점·트레이더스(창고형 할인점)는 물론이고, 총 10개의 전문관이 들어선다. ‘정용진판 이케아’라 불리는 생활용품점 더 라이프, 피규어·키덜트 상품 전문 가전매장 일렉트로마트, 애견 전문 매장 몰리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업계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피코크 백화점’이라 불리는 PK마켓이다. 이마트의 고급 자체브랜드(PB) 간편가정식 브랜드인 ‘피코크’를 백화점 형태로 꾸민 매장과 다양한 푸드코트가 들어선다. 이마트 관계자는 “정확한 콘셉트 확정을 위해 일본 등을 다니며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또 이마트의 보급형 PB ‘노브랜드’ 전문 매장도 들어선다. 유통가에서는 “신세계그룹에서 파는 모든 것이 독립 매장처럼 꾸며질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정용진 부회장이 전문관 콘셉트에 자신감을 얻은 건 지난해 5월 경기 일산에 오픈한 ‘이마트타운’의 성공 사례가 계기가 됐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마트와 트레이더스가 최초로 한 곳에 동시 입점한 것은 물론, 일렉트로마트·더라이프·몰리스·피코크키친 등 당시 이마트가 신규 개발한 전문관이 몽땅 들어왔다. 이마트타운은 지금도 주말이면 주차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객이 몰린다. 그중에서 일렉트로마트는 일산 이마트타운, 해운대 센텀시티,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이어 판교에 4호점이 5월 3일 오픈했다. 이마트 전문관으로서는 첫 단독 매장이다.백화점 업계에서는 요즘 ‘전문관’이 화두다. 백화점 오프라인 매장으로는 매출 성장에 한계가 있는데다, 매출 증대를 위해 출점하는 아웃렛도 무작정 늘리기에는 부지나 상권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은 신성장동력으로 ‘미니 매장’을 내세웠다. 지난 3월 오픈한 롯데 엘큐브 1호점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 이세탄백화점이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컴팩트 전문점’의 개념을 도입했다. 이세탄백화점은 이세탄 미러(고급 화장품), 이세탄 살롱(명품 잡화 등) 등 113개 전문점을 운영하며 지난해 기준 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 젊은층 겨냥 ‘미니 매장’ 내세우는 롯데백화점 홍대 엘큐브 1호점에는 롯데백화점 본점에 있는 패션의류·잡화·캐주얼·화장품 등 브랜드 20여 곳이 입점했다. 흔한 ‘백화점식 나열’ 대신 콜라보레이션 위주의 체험형 공간으로 꾸몄다. 의류를 입어보고 화장품을 써보는 등 공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젊은 매장으로 운영한다. 롯데백화점 측은 “관광객이나 20~30대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엘큐브에서는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라인프렌즈’ 매장도 인기다. 명동 롯데 영플라자에서도 중국인 관광객 등 많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매장이다. 엘큐브 1호점은 오픈 후 1개월 간 방문객 10만 명, 매출 8억원을 기록했다. 롯데는 체험을 강화한 엘큐브 2호점을 비롯해 다양한 미니 백화점 출점을 검토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화장품 매장이나 잡화 편집숍 등의 형태가 거론되고 있다.AK플라자도 4월 신사동 가로수길에 ‘오피셜 할리데이’, 홍대에 ‘태그 온’ 등 2곳의 라이프스타일 전문점을 열었다. 오피셜 할리데이는 AK플라자 패션사업부의 ‘쿤’을 리뉴얼한 패션 편집매장이다. 젊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새로운 느낌의 패션 아이템을 제시한다. 영업면적 1029㎡ 짜리 5층 건물로, 카페와 소품, 편집, 팝업스토어 등이 들어서 있다. 오피셜 할리데이가 ‘가로수길 느낌 편집숍’이었다면 태그온은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를 위한 홍대 편집 숍이다. 4층짜리 매장에 디퓨저, 디자인 조명, 천연화장품 등 생활 소품과 패션 아이템 등을 판매한다. 많은 제품이 개당 2만~5만원대로 가성비를 따져서 진열하는 것이 특징이다.백화점 업계에서 미니 매장의 맏형격으로는 신세계의 분더샵이 꼽힌다. 청담점 등에서 고급스러운 패션 아이템을 편집매장 형태로 꾸며 인기를 끌고 있다. ━ ‘식음료 올인’ 지역 밀착형 쇼핑몰도 눈길 지역의 특성을 살려 작지만 강한 점포를 운영하는 업체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예가 동대문의 신흥 명소로 떠오른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점(이하 현대동대문)이다. 지난 3월 오픈 이후 하루에 2만~4만명의 소비자가 이곳을 찾는다. 당초 이곳은 현대백화점그룹 내부에서도 성공 가능성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주변에 두타·밀리오레·APM 등 대형 동대문 패션몰이 있는데다, 구 케레스타 건물에 입주해 역세권에서는 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의외의 대성공을 이뤄낸 비결은 식음료 차별화에 있었다. 동대문의 타깃 지역인 동대문·종로·성북구 인근 주민들은 인근에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프리미엄급 쇼핑몰이 필요했다. 하지만 명동 롯데·신세계백화점은 다소 멀었고, 롯데마트 청량리점이나 이마트 하월곡점 등 인근 대형마트만으로는 약간 부족함이 느껴졌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를 고급화 먹거리로 정면 돌파했다. 국내 최초로 빙그레의 바나나우유를 활용한 전문 카페 ‘옐로 카페’를 오픈한 것은 물론, 빙수 매장 밀탑이나 허니버터칩 카페 ‘해태로’ 등을 입점시키는 등 먹거리 차별화를 꾀했다. 청담동에 본점이 있는 고급 키즈카페 ‘릴리펏’은 주중에도 1시간씩 대기를 해야 입장이 가능할 정도다.현대동대문 지하 1층에 있는 ‘YG 존’도 인기다. 이곳에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 한류 스타들의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132㎡ 규모로, 매달 한 팀의 아티스트를 정해서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매달 YG 소속 아티스트 한 팀을 골라 노트·메모장·티셔츠 등 캐릭터 상품과 한정판 음반, 애장품 등을 파는 식이다.최근 오픈한 롯데피트인 산본도 ‘지역 밀착형’ 콘셉트를 적용했다. 지상 10층 영업면적 2만4500㎡(7400평)의 비교적 작은 건물이지만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이점을 최대한 살렸다. 산본 지역은 1기 신도시 5곳(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중 유일하게 쇼핑 공간이 부족한 곳으로 꼽힌다. 산본역사에 있는 뉴코아와 인근에 있는 이마트가 전부다. 이 때문에 지역 밀착형으로 매장을 꾸몄다. 산본 지역에 유일한 유니클로 대형 매장을 입점시키고, 매장 7~9층에는 후쿠오카 함바그, 로봇김밥, 키무카츠 등 강남과 홍대의 유명 맛집을 유치했다. 매장 10층에는 롯데시네마가 들어왔고, 6층에는 유아동 매장과 애완동물 매장이 있다. 롯데피트인 산본을 운영하는 롯데자산개발 관계자는 “입점 매장 구성 단계에서 인구 분포를 철저히 고려했다”고 말했다. 군포시 20~30대의 인구 비율(지난해 기준 30.1%)이 전국 평균치(27.9%)보다 높고, 또 9세 이하 유아동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 중 10%를 넘어 인근 의왕, 과천에 비해 높다는 결과를 감안한 ‘맞춤형 출점’ 전략이다.유통 업계에서는 앞으로 대형화·지역밀착·쪼개기 등 지역별로 차별화된 쇼핑몰 입점 트렌드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 유통 관계자는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이제는 백화점·대형마트 등 일방적인 점포 출점으로는 성공을 담보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한정된 소비자 수요를 잡기 위한 다각화된 점포와 차별화된 상품 경쟁은 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도(인천)=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2016.05.0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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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식스의 부활 비결] 런닝화·스니커즈로 세계를 매료시키다

산업 일반

10년에 걸쳐 ‘뚝’하고 성장이 멈춘 스포츠슈즈 명문 브랜드가 있었다. 그대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새 힘차게 세계 시장을 향해 뛰고 있었다. 바로 아식스다. 도쿄 오모테산도 한쪽 골목길에 서있는 검은색 건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빨려가듯 들어간다. 외벽에 검은 먹으로 호랑이 무늬가 그려진 건물에선 일본풍의 모던함과 화려함이 느껴진다. 이곳은 바로 ‘오니츠카타이거 오모테산도점’이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일본 최대 스포츠용품 기업인 아식스가 왕년의 명작 스니커즈를 복원해 내놓은 제품이다. 이곳은 오니츠카타이거의 플래그십 스토어다.1층 중앙에 설치된 대형 소파엔 신발을 신어보려는 외국인들로 붐빈다. 영어·중국어·태국어 등 외국어가 난무하는 매장 안은 에어컨을 가동해도 열기가 가득하다. 그들이 앞다퉈 구매하려는 오니츠카의 스니커즈는 1만엔(9만4000원)대가 대부분이다. 세부적인 곳까지 일본에서 가공한 ‘니폰 메이드’ 시리즈는 3만엔(약 28만원)을 호가한다. 그럼에도 외국인 관광객은 스니커즈가 담긴 쇼핑백을 한아름 안고 가게 문을 나선다. 월 평균 방문객 수가 3만~4만명에 이를 만큼 인기다. 엄청난 인기몰이에 아식스는 올 봄 시부야에도 매장을 열었다. ━ 자존심 회복에 성공한 일본 스니커즈의 전설 소비자를 매료시키는 것은 오니츠카뿐만 아니다. 아식스 브랜드로 판매하는 런닝화도 최근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최고 점유율을 자랑한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민 마라톤 대회인 뉴욕 시티 마라톤에서는 올해 아식스 제품 착용률이 전년 보다 50% 가까이 늘었다(아식스 자체 조사).오니츠카와 아식스 두 브랜드의 세계 시장 진격으로 매출은 착실하게 늘었다. 최근엔 과거 일본 내 선두를 다퉜던 미즈노의 1.8배까지 확대됐다. 또한 미즈노는 해외 판매 비중이 30% 정도에 머무는 탓에, 엔화 하락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실적이 악화됐지만 해외 판매 비중이 80% 이상인 아식스는 엔화 하락이 순풍으로 작용했다. 올해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매출 4000억엔(약 3조75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세계 스포츠용품 시장 3위권인 독일의 퓨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올 1월에는 오니츠카·아식스에 이어 제3의 브랜드인 ‘아식스 타이거’를 투입했다. 1980~90년대 인기였던 경기용 슈즈를 새로 디자인해, 패션에 중점을 뒀다. 오니츠카만큼 유행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아식스보다 일상에서 착용할 수 있는 이미지다. 미국 스포츠 캐주얼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 브랜드다. 프랑스와 일본의 유명 편집샵과 협업한 모델이 출시 당일 매진되는 등 빠르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오야마 모토이 사장은 “케냐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며 “그곳에 회사를 짓고 수출을 시작하는 것이 어떨지 생각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취임 이후 시가총액을 3배로 늘린 리더의 시야에는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소비 시장이 들어온다. 그는 창업자 오니츠카 기하치로의 사위다. 주로 비주류 부문이나 적자 사업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던 그는 2008년 사장에 취임한 이후 아식스가 명성을 되찾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대리점 의존 줄이고 소비자 직접 공략 오니츠카는 1949년 일본에서 첫 농구화를 발매했다. 이 시기 아식스는 고품질의 신발로 전 세계 운동선수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업계 공룡인 나이키의 출발점 역시 오니츠카의 미국 판매 대리점이었다. 그러나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이 전설적인 회사는 1990년 초반부터 약 10년간 긴 침체에 빠졌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버블 붕괴의 영향으로 스키, 골프용 품을 비롯해 스포츠 용품 판매가 전반으로 부진했던 것이고, 또 하나는 수익원인 학교 대상 체육용품의 쇠퇴였다. 사실 이것은 아식스의 기업문화를 좀먹는 원인이기도 했다. 체육용품은 기본적으로 도매상을 통해 전국 스포츠용품점으로 팔려나간다. 학교나 지도자에게 한번 지정되면, 안정적으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강력한 판로다. 이 때문에 아식스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용품 브랜드가 대리점 루트에 크게 의존했다.그러나 1980년대 이후 나이키 에어조던이나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와 같은 해외 브랜드의 신발이 크게 히트했다. 이후 일본 젊은이들은 학교나 시합에서 아식스를 착용해도 밖에서는 해외 브랜드를 애용하게 됐다. 그럼에도 아식스는 예전처럼 묵묵히 체육이나 경기용 신발만 판매했다. “당시 우리 회사의 최고 고객은 대리점이었다. 대리점 창고로 골판지 상자에 상품을 실어 보내면 매출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리점의 눈치를 항상 살폈고, 백화점 등 새로운 판로 거래는 잘못된 것이라는 분위기가 짙었다.” 과거 일본 내 판매에 관여했던 사원은 그렇게 회상한다.실적 위기에 몰리자 아식스는 정리해고를 실시하고, 골프용품 시장에서 철수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덕분에 적자는 어느정도 해소됐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매년 연 매출 1300억~1400억엔을 맴도는 암흑기를 보냈다. 완전히 구식으로 치부돼 되살아나긴 힘들어 보였다. 이 암담한 시대에 오야마 사장은 워킹슈즈 사업총괄부장을 담당했다. 런닝슈즈와 달리 비주류의 신규 영역이었다. 그만큼 스포츠용품 도매 외에 새로운 판로를 개척할 여지가 있었다.바로 그 때 오야마 사장은 신주쿠 이세탄(도쿄의 대형 백화점) 본점의 이탈리아 구두 담당 바이어가 “오니츠카를 부활시켰으면 좋겠다”고 한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세탄의 바이어는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이 유통 업계 제일이라고 정평이 나있었다. 이 말을 가슴에 새긴 채 그는 2001년에 유럽 법인 사장에 취임했다. 때마침 이탈리아 현지 매니저도 “오니츠카를 다시 만들자”고 이야기했다.아식스는 2002년 일본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 오니츠카를 되살렸다. 브랜드는 예전과 같았지만 판로 통제를 철저히 했다. 판매처를 부티크나 편집샵에 한정해 패션 신발이란 이미지를 키웠다. “대형 스포츠용품 체인에서 사고 싶다고 말해도 팔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일본이라면 빔즈(BEAMS, 일본의 유명 편집숍) 정도면 괜찮다는 정도랄까?”(오야마 사장). 이듬해인 2002년, 할리우드 영화인 에서 여주인공인 우마 서먼이 노랑색 오니츠카(상품명 타이치)를 신고 나와, 오니츠카는 해외 트렌디세터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사실 해외에서의 존재감 회복에는 사전 작업이 있었다. 바로 1998~2000년에 히지카타 마사오 상무가 판매 촉진 부문을 담당할 당시 전개한 런닝슈즈 판매 확대 프로젝트 ‘트라이 윈즈’가 그것이다. 일본과 미국, 유럽 시장에서의 판매 확대를 목표로 독자적인 충격 흡수재를 탑재한 ‘겔 1050’를 전략 모델로 내세웠다. 가격은 8900엔(약 8만7000원). 당시 보통 런닝슈즈가 1만엔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저렴했다. 아식스는 이 제품을 스포츠용품점보다 백화점, 대형 편집숍에 대량으로 판매했다. 매장 집기도 세계적으로 통일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덕분에 ‘겔 1050’은 단일 상품으로 100만족 이상을 판매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 도전 때문에 ‘아식스는 끝난 브랜드’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었다. ━ “잘 나가는 지금이 구조조정 적기” 오야마 사장이 오니츠카 복원과 함께 힘쓴 것이 유럽 법인의 흑자화다. 흑자화를 가로막은 것은 바로 거액의 미수입금. 매출이 늘어도 대리점으로부터 회수가 늦어져 수천만~수억엔의 자금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유통 과정이 복잡한 유럽에서 자금 회수를 고민하는 일본 브랜드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오야마 사장은 ‘(원래) 그런 시장이니까’라고 포기하지 않았다. 담당자를 교체하고, 재무를 일원화하는 등 개혁을 단행했고, 단 2년 만에 유럽 법인은 흑자로 전환했다. 개혁이 결실을 맺으면서 2005년 아식스는 처음으로 해외 매출이 일본 매출을 웃돌게 됐다. 사람도 조직도 한번 성공을 체험하면, 도전을 주저하지 않게 되는 모양이다. 이후 아식스는 뉴욕·도쿄·파리 등 인기 마라톤 대회에 잇따라 스폰서를 자청하고 나선다. 동시에 브랜드 매장과 자주 경영 매장(본사가 상품 진열대 등을 통제할 수 있는 매장) 출점 등에 힘을 쏟았다. 특히 플래그십 스토어는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5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등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런던은 하이드파크, 뉴욕은 센트럴파크 가까이에 매장을 내 아식스에 익숙하지 않은 러너들을 대상으로 쇼룸 효과를 노렸다. 스스로 판로를 관리하게 되면서 비용은 크게 늘었지만 그만큼 새로운 고객이 생겼다. 덕분에 지금의 아식스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 엄청난 성공스토리를 쓰고 있는 올 3분기 아식스는 의외로 19년 만에 정리해고에 착수했다. 일본 국내 사업 담당 직원이 대상이다. 이 부문 종업원의 20%에 달하는 350명에게 희망 퇴직 의사를 물었다. ‘이렇게 실적이 좋은데 어째서 사람을 자르는 것인가?’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종업원 사이에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정리해고는 스포츠용품 톱 브랜드로 가겠다는 오야마 사장의 결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식스가 일본 1위, 세계 3위 수준이라 해도, 매출 약 3조8000억엔(약 37조원) 규모인 나이키, 2조엔(약 19조원) 규모의 아디다스와는 격차가 크다. 2강뿐만이 아니다. 현재 세계 스포츠용품 시장은 라이징 스타인 미국의 언더 아머(UNDER ARMOUR)를 주목하고 있다. 1996년 창업한 신흥 브랜드지만 적당한 가격과 독특한 디자인을 무기로 쑥쑥 성장하고 있다. 매출이 과거 5년간 3배로 늘었다. 지난해 매출은 약 3700억엔(약 3조5000억원)에 달한다. 아식스가 상위 기업을 따라잡으면서 신흥 세력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제품이나 매장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수익력이 필수적이다. 앞서 말한 정리해고에 의한 비용절감 효과는 연 25억엔(약 235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사실 아식스가 과감하게 개혁에 나선 곳은 일본만이 아니다. 호주에 있는 스포츠용품점 점주 부부가 지난 7월, 오야마 사장에게 탄원할 목적으로 아식스 본사가 있는 고베를 방문했다. 이 매장은 아식스 제품을 30년 동안 판매해왔는데, 올해 들어 상품 공급이 중단됐다고 한다. 아식스 측은 ‘염가 판매 등을 계속하며 (회사 측에서) 요청한 시책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공급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부부는 오야마 사장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비추어볼 때 오야마 사장의 경영 판단은 ‘운명공동체’라는 말로 종업원이나 거래처와의 결속력을 강조한 창업자 오니츠카와는 다른 면이 있는 듯하다. 시대가 변하고, 공격 대상도 달라지는 가운데, 강함과 유함을 동시에 지닌 오야마 사장의 수완은 어디까지 위력을 발휘할 것인가?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 오야마 모토이 아식스 사장 - 아식스타이거로 새 영역 개척 이번 분기 실적도 좋다. “미국에서 실적이 좋아진 게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 중국을 비롯한 대만·홍콩·싱가포르·인도 등 신흥국 시장 매출도 좋아졌다.” 특히 중국에서 급성장 중인데? “미국에서 인기를 끈 상품을 중국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일련의 흐름이 멈추면 언제든 적자로 돌아설 우려가 있다. 조만간 현지 생산, 현지 판매 전환을 검토 중이다. 3년 전 기용한 홍콩인 리더와 또 다른 홍콩 출신 인재를 투입해, 관리 계열과 판매 계열로 역할을 나눠 공동 경영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중국 전 지역에서 골고루 선전할 수 있도록 마케팅 투자를 늘려갈 방침이다.” 현재 아식스 회생의 기반이 된 것은 유럽 재건이다. 2001년 유럽에 갔을 당시 매우 힘들었을 텐데. “2003년 누적 적자를 전부 해결했다. 대리점의 미수금이 쌓여있었다. 처음 2년 정도는 매일 같이 그걸 회수하러 다녔다. 그다음은 사람 관리였다.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출장을 다니는 직원들이 꽤 있었다. 나라별로 관리 체제도 제멋대로였다. 본부가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게 주요했다.” 2002년 오니츠카타이거 브랜드를 부활시켰는데. “부활까진 3단계가 있었다. 우선 미국에서 돌아온 1991년 봄에 있었던 일이다. 가죽 구두도 소재나 모양을 바꿔 일본에서 발매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제안했더니, 가죽구두 부문은 스트라이프(아식스 특유의 마크)를 쓰지 말라는 경영진의 말에 물거품이 됐다. 도쿄 구두 담당 바이어에게 부활 조언을 들은 게 그 다음이다. 이 때도 담당 부서에 건의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유럽 법인 사장에 취임하고 나서 다시 제안했고, 부활이 정식으로 결정됐다. 그 이후 유럽 주도로 브랜드 방향성이나, 판매 전략을 결정해갔다.” 올림픽 골드파트너 계약도 했는데 광고선전비 비율은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릴 생각인지? “나이키나 아디다스의 광고선전비 비중은 2000년 이후 줄곧 10%를 넘는다. 아식스도 12% 이상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에, 10% 이상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다.” 미국의 언더 아머가 위협적이다. “그들은 의류가 중심이다. 우리는 신발로 확실히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최근 투입한 아식스타이거도 틀림없이 잘 될 것으로 본다. 오니츠카타이거가 유럽형이라면 아식스타이거는 미국의 스포츠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제품이다. 상품군을 다양화해 아식스와 오니츠카에서 취급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것이다.”

2015.11.0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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