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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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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공짜 여행' 끝...입국 시 1만3000원 받는다

국제 이슈

인도네시아 최대 관광지 발리가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1인당 약 1만3000원의 '관광 기여금'을 받기 시작했다. 15일(현지시간)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발리주 정부는 전날부터 발리에 들어오는 외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15만루피아(1만2825원)의 발리 관광 기여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는 발리 정부가 지난해 지역 문화와 환경 보호, 인프라 투자 등을 자금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관광 기여금은 발리를 여행하는 동안 1회만 내면 되며 출국 후 재입국할 경우 다시 내야 한다. 웹사이트나 스마트폰 앱 러브 발리에서 신용카드 등으로 결제할 수 있다.지불이 완료되면 이메일 등으로 납부를 증명할 수 있는 QR코드를 받게 되며 발리 공항이나 항구에서 이를 제시하면 된다. 공항이나 항구에 도착해서 납부할 수도 있지만 혼잡할 수 있어 미리 온라인을 통해 지불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대사관 측은 설명했다.외국인이라도 외교관이나 관용여권 소유자, 항공 승무원, 장기체류비자 소유자(KITAS·KITAP), 골든 비자, 유학 비자 등의 소지자는 면제된다. 이들은 발리에 도착해 관광 기여금 납부 카운터에서 여권과 비자를 제시하면 된다.

2024.02.15 21:51

1분 소요
도시와 마이스 산업 그리고 경쟁력[김현아의 시티라이브]

부동산 일반

2024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57번째를 맞이하는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로 시끌벅적하다. 각국의 주요 기업 임직원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 장차관, 정치인 등 CES 참여 인원도 매년 늘고 있다. 이 시즌만큼은 SNS의 주요 인플루언서들의 CES 목격담으로 시끌시끌하다. 2024년 CES에는 3500여 개의 글로벌 기업과 14만명 정도의 관람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시회는 1967년에 처음 시작됐고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2015년부터인데 첨단 기술 트렌드쇼의 브랜드가 되어 버렸다. 보통 이런 전시회를 개최하려면 14만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 및 음식점 그리고 교통 시스템 등 제반 인프라가 수반되어야 한다.도시관광의 큰손 인센티브 관광여기서 잠깐 도시의 MICE 산업에 대해 알아보자. MICE란 Meetings(회의), Incentives(인센티브 관광), Convention (컨벤션), Exhibitions(전시)의 약자이다. MICE는 회의 시설·숙박·교통·쇼핑·관광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융복합 비즈니스 트래블로 개최 도시와 국가에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측면에서 그 영향이 크다.MICE 산업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대규모 국제회의(또는 전시) 참가자들은 일반 관광객보다 약 2배를 지출하고, 평균 체류 일수도 더 길다고 한다. 특히 일반관광과 달리 이러한 행사들은 계절변화의 영향도 적어 관광도시의 비수기 마케팅 차원에서 접근되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 소규모 전시나 국제회의는 점차 온라인으로 대체되거나 축소되고 있지만 거대규모 전시나 국제회의는 오히려 더 활발하다. 그래서 이런 행사가 수반하는 해당 도시의 관광 이득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전 세계 도시들은 규모가 크고 브랜드가 있는 국제회의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브랜드가 있는 전시회들은 보통 개최 장소를 옮기지 않고, 특정 도시에 있는 전시시설에 장기계약을 한다. 전시행사 자체가 도시의 브랜드가 되기도 하며, 최첨단 지식의 교류와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플랫폼이 도시의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전시일수록 유치경쟁이 치열하다.인센티브 관광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포상적 성격의 여행이다. 업무의 성과와 효율을 높여 동기와 사기를 북돋우려는 수단으로 여행경비를 개인이 아닌 기업이 지불한다. 그렇다 보니 여행상품을 회사가 직접 기획한다. 기업이 기획하는 여행이다 보니 대규모 전시나 국제회의 등과 병행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이번 CES에 국내기업관들이 규모를 확대하면서 기업별로 수천 명이 행사에 참여한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확인은 안 되지만 이들 중에는 한해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관광과 결합한 출장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1월의 라스베이거스의 풍경을 상상해 보라. 전시회 하나로 어마어마한 관광객과 외국인들이 그 도시에 몰려들 것이다. 이들이 머무르며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이 지역경제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 경쟁력, 도시의 정체성 확인이 우선돼야이제 대도시의 물류 흐름은 온라인에 정복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마다 근린상가나 쇼핑센터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호소한 지 오래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회복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을 비롯한 외부인의 경우는 다르다. 아무리 온라인 소비시대가 되었어도 어떤 낯선 도시를 방문했을 때 숙소에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철저하게 오프라인 상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인구가 감소하는 도시에 생활 인구 개념을 적용해 외부인의 장기체류와 방문을 늘리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범위를 넓혀서 글로벌 차원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CES 시즌을 맞아 소비수준과 목적이 다소 이색적인 인센티브 관광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개인이 비용을 지불하는 일반관광은 경제적 상황이나 날씨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렇지만 기업이 지불하는 인센티브 관광의 경우는 다르다. 문제는 기업이 인센티브 관광을 통해 제공하려는 콘텐츠를 어떤 도시가 갖고 있는가, 누가 그 콘텐츠를 구성할 수 있는가 라는 점이다. 여기서 D MC(Destination Management Company)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인센티브 투어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들이다. 이들은 개최지에 대한 다양한 관광자원·교통·F&B·쇼핑·산업시찰 등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한 전문지식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주요 도시들의 정체성과 브랜드를 끊임없이 찾고 때로는 그 형성을 돕는다. 도시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 유치(그것도 반도체, 대기업 등), MICE 산업 등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도시의 정체성 부족이다. 이제 기업을 유치하고 국제회의를 유치한다고 도시의 정체성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의 정체성이 있어야 기업을 유치하고, 국제회의나 대형 전시를 유치할 수 있다. 부산의 해양, 제주의 자연, 대전의 과학 등 지역의 이미지와 경쟁력이 먼저다. 대부분이 반문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아무것도 없는 도시들은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느냐고,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도시는 없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이제 도시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숨은 장점과 특징을 발견하고 그걸 브랜드화하는 능력, 그리고 그걸 마케팅 할 수 있을 때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부를 창출하고, 더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도 CES와 같은 정례적이며 상징적인, 대형 전시나 국제회의 또는 공연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2024.01.12 09:10

4분 소요
LG유플러스, 외국어 홈페이지 오픈 …요금납부·소액결제 가능

IT 일반

LG유플러스는 외국인 고객의 통신 서비스 사용 경험 혁신을 위해 고객센터를 거치지 않고도 요금 수납, 일시정지 해제 등 통신 서비스 업무를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영문 버전 외국어 홈페이지를 오픈했다고 20일 밝혔다.법무부 출입 국통계자료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입국한 장기체류 외국인은 약 81만명으로 2021년 36만명에 비해 약 122% 증가했다. LG유플러스는 최근 급증하는 국내 장기체류 외국인 고객을 위해 영어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모바일 기반의 외국어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자사 고객센터 앱인 ‘당신의 U+’에도 순차적으로 적용한다.외국어 홈페이지 제작에 앞서 LG유플러스가 전화와 채팅으로 접수된 외국인 고객의 의견을 수렴·분석한 결과 요금 즉시 납부, 소액결제 내역 확인 및 차단/해제 등 기본적인 통신 서비스 업무가 70% 가까이 차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외국인 고객이 대부분의 업무를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외국어 홈페이지를 제작했다고 LG유플러스는 설명했다.이번에 오픈한 외국어 홈페이지는 가입 정보 조회, 실시간 사용량 조회와 함께 요금 즉시 납부, 데이터 주고받기, 소액결제 차단 및 해제, 유심 일시정지 및 해제 등 기본적인 통신 서비스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업무 처리 중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외국어 채팅 상담 서비스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외국어 홈페이지에서는 통신 서비스 업무 처리 이외에도 멤버십 할인, 결합 상품 할인, 이벤트 등 고객이 받을 수 있는 혜택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멤버십의 경우 국문 버전의 ‘U+멤버스’ 앱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발급된 바코드를 이용해 GS25편의점, 뚜레쥬르, 파리바게뜨 등 제휴사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뿐만 아니라 서류 제출 등 대면 업무가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구글맵’을 기반으로 고객 위치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매장을 알려주는 위치 서비스도 추가했으며, 통신 서비스 이용 경험 및 국내 체류 시 필요한 정보를 고객 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기능인 ‘talk+’ 탭도 신설했다.아울러 LG유플러스는 고객 사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홈페이지 계정 외에도 토스, 카카오톡, 네이버, 애플 계정으로도 간편하게 로그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구글 계정 연동도 추가될 예정이다.LG유플러스는 상반기 내 영어 외에도 중국어, 베트남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외국어 버전 홈페이지를 선보일 예정이다.김유진 LG유플러스 글로벌통신사업담당은 “외국인 고객이 통신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있어 불편함을 줄이고, 사용 경험 혁신을 위해 외국어 홈페이지를 마련했다”며 “통신 관련 업무 처리를 넘어 국내 체류 외국인에게 필요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외국어 홈페이지가 생활 편의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23.04.20 13:05

2분 소요
생산비 부담에 허리 휘는 수출기업…

산업 일반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원‧부자재 수급 차질과 물류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무협)는 전국 중소·중견 무역업체 CEO 342명의 의견을 담은 정책제언 보고서 '새 정부에 바라는 수출현장의 목소리'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했다고 18일 밝혔다. 무역업계는 보고서를 통해 “공급망·물류·마케팅·경영환경·탄소중립 대응에 있어 정부의 발 빠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히는 점은 범용 반도체의 수급 불안이다. 반도체 공급난이 다른 산업에도 완제품 생산 차질 등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한 기업은 글로벌 대기업에서 반도체를 수급받아야 하는데 6개월 뒤에야 주문 물량의 10% 정도만 받을 수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다른 기업으로부터 반도체를 납품받으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새로 제품 설계를 해야 하는 등 시간·비용이 추가로 드는 상황이다. 차량용 배터리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또 다른 회사는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 수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생산 가능 물량의 10% 정도만 생산 중이다. 최근 중국 완성차 대기업 밴더사로 등록되면서 수주 물량이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늘었지만, 수출에 심각한 차질을 빚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원부자재 수급난에 무역협회는 "대기업이 자사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소기업 원부자재 수급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해당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수출용 원재료 수입에 대한 부가가치세 납부유예제도와 수입할당관세 적용을 확대해 무역업체의 비용 부담을 완화해줄 것 등을 건의했다. 기업 소비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도 수출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RE100에 참여하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자사 공급망에 참여하는 기업에 탄소 중립과 관련한 요구를 강화하면서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한 자동차 부품기업은 RE100을 선언한 글로벌 완성차 업계와 거래 중인데, 재생에너지 사용을 포함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국내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없어 해외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무역협회는 탄소배출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중소기업의 재생에너지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 및 체류 정상화까지 한시적으로 인건비를 경감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시급하다고 경영계는 말한다. 특히 숙련된 기능 인력에 대한 비자 발급을 확대해 기업별 고용 가능 인원수를 늘리는 등 평가 기준 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숙련기능인력은 점수제 비자(E-7-4)를 통해 연간 약 1200여명을 선발하고 있지만, 기업별로 고용 가능한 인원수는 최대 5명으로 제한돼 있다. 이에 평가 기준(연간소득, 보유자산, 숙련도, 학력, 근속 기간 등)을 완화해 비자발급을 늘리고 장기체류인력 확대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김병유 무역협회 회원서비스본부장은 "보고서에 담긴 업계 애로를 해소하고 건의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산업부와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무역규제와 애로를 상시 접수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희 기자 leoybh@edaily.co.kr

2022.07.18 18:32

3분 소요
“오미크론 막기 위해” 오늘부터 가나·잠비아발 입국 제한

정책이슈

정부가 오늘(10일)부터 가나·잠비아에서 한국으로 오는 단기체류 외국인의 입국을 막는다. 이 조치는 16일 24시까지 시행할 예정이다. 이들 국가에서 오는 내국인과 장기체류 외국인은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10일간 시설에 격리한다. 국내 도착 전 유전자증폭(PCR) 검사에 따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음성확인서를 받아야 하고, 국내 도착 후 1일·5일차와 격리해제 전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검사받아야 한다. 코로나19의 신종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서다. 앞서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8일 제72차 해외유입상황평가관계부처 회의와 제2차 신종변이대응 범부처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가나와 잠비아를 입국제한 국가로 추가 지정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0시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모잠비크·레소토·말라위·보츠와나·에스와티니·짐바브웨 8개 국가를 방역강화국가·위험국가·격리면제 제외국가로 지정했다. 지난 3일에는 나이지리아를 입국제한 국가로 추가 지정했다. 이번에 정부가 새로 가나와 잠비아 2개국을 추가하며 입국제한 조치를 시행 중인 국가는 총 11개국으로 늘어났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조치는 최근 가나와 잠비아의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 발생, 지역사회 전파 양상, 해당 국가의 예방접종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위험도를 평가해 이번 조치의 연장을 포함한 추가적인 방역 강화조치 필요성도 지속 검토할 예정이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2021.12.10 06:01

1분 소요
모든 내·외국인 입국자, 백신 접종했어도 10일 격리한다

정책이슈

정부가 오늘(3일)부터 2주간 내국인을 포함한 모든 해외 입국자에 대해 예방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10일 격리조치를 시행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추가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한 조치다. 앞서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국내에서 첫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가 발생한 1일 해외유입 상황평가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조치를 결정했다. 이번 조치로 3일부터 16일까지 2주간 해외에서 들어오는 모든 여행자는 국적이나 예방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10일간 격리된다. 내국인과 장기체류 외국인은 자택 등에서 10일간 자가격리를 한다. 이들은 입국 전후로 총 3회(입국 전, 입국 후 1일 차, 격리 해제 전)의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단기체류 외국인은 정부가 마련한 임시생활시설에서 10일간 격리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3일 0시부터 나이지리아를 방역강화국가·위험국가·격리면제제외국가로 추가 지정한다. 나이지리아에서 출발한 단기체류 외국인에 대해서는 국내 입국을 제한한다. 내국인과 장기체류 외국인은 임시생활시설에서 10일간 격리를 진행한다. 이들은 입국 전후로 총 4회(입국 전 입국 후 1일차, 입국 후 5일차, 격리 해제 전) PCR 검사를 받게 된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2021.12.03 06:00

1분 소요
‘내전과 평화’ 누구의 말이 옳은가

산업 일반

주류 언론 못 믿겠다며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찾아간 서방의 여행객 통해 아사드 정권이 가짜뉴스 퍼뜨려 영국 신부, 미국 학생, 스코틀랜드 남작부인이 포함된 일행이 국경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우스갯소리의 서두처럼 들리지만 그 문제의 국경은 결코 농담거리가 아니다. 레바논과 시리아를 분리하는 국경이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을 통해 보고 들은 시리아 내전 뉴스에 회의를 품은 그들은 ‘진실’과 ‘실상’을 알고 싶어서 시리아를 방문하려 했다.지난해 일이다. 그들 일행은 서방에서 시리아에 가려 했거나 실제로 그곳에 도착한 수백 개의 여행 그룹 중 하나였다. 대다수는 시리아 정부로부터 직접 비자를 받았다. 시리아 여행을 인도한 사람은 영국 남부 작은 도시 윈체스터의 성공회 목사 앤드루 애시다운이었다. 그는 2014년 이래 그런 여행으로 최소 9차례 시리아를 방문했다. 애시다운이 시리아 방문에서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 것은 약 2년 전 예기치 않게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만났을 때였다.서방인 대다수는 아사드 대통령을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애시다운이 그에게서 받은 인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레바논-시리아 국경에서 발이 묶인 그는 시간을 떼우고자 일행에게 아사드 대통령과 만난 일을 흥분하며 돌이켰다. “그는 장엄함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정말 내겐 큰 영광이었다. 서방의 언론이 진실을 그토록 왜곡할 수 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시리아 내전은 2011년 시작된 이래 비폭력적인 반정부 운동에서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전쟁으로 바뀌었다. 유엔에 따르면 정부군과 반군 양측 모두 성폭행과 고문을 자행했다. 그런 잔혹한 만행으로 인구의 절반이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현재 500만 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이 해외에 거주한다.국제 인권단체들은 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정부군과 그들의 동맹인 러시아군이 시리아에서 민간인을 가장 많이 학살했다고 지적한다. 드럼통에 폭약을 넣어 만든 급조폭발물 ‘통폭탄’을 마구잡이로 투하했고, 병원과 의료시설을 표적 삼아 공격했으며, 화학무기를 사용했고, 반군을 굶겨 항복시키기 위해 비인도적인 봉쇄 작전을 서슴지 않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가장 최근의 예로 반군에 점령당했던 구역을 정부군이 잇따라 탈환하면서 수도 다마스쿠스 부근의 동구타에선 지난 2월 중순 이래 민간인 1100명 이상이 희생됐다.언론이 이 전쟁을 취재하기는 처음에도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어려워졌다. ‘국경 없는 기자회’의 조사에 따르면 시리아는 지난해 기준으로 언론 탄압이 세계에서 4번째로 심한 나라다(1~3위는 북한, 에리트레아, 투르크메니스탄 순이었다).서방 기자들은 시리아에 들어가기조차 힘들다. 알자지라(카타르에 본부를 둔 위성방송)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을 포함한 특정 매체는 시리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비자를 받았다고 해도 기자는 시리아 정부의 감시원과 동행해야 하며 부정적인 기사를 쓰면 재입국할 수 없다.현지에서 취재하는 서방 기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시리아의 동맹국인 러시아·이란 소속 매체들과 소셜미디어에서 선전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졌다. 시리아 정권을 지지하는 논평가들은 ‘화이트 헬멧(White Helmets)’으로 불리는 시리아 시민방위대 같은 인도주의 단체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고 화학무기 공격으로 숨진 어린이들의 사진을 두고 ‘배우들의 연기’라고 주장했다.정보를 둘러싼 이 싸움에서 서방 여행객이 갈수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 대다수는 아사드 대통령이 자신의 뜻대로 반군 단체들을 다룰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여행 비용을 스스로 지불하지만 시리아 정부가 나서서 그들의 비자를 발급해 주고 일정을 짜주며 대화 상대가 돼준다.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 정권을 지지하기 위해 서방인이 현지를 방문하는 것은 사실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90년 미국 외교관으로 시리아에 주재한 적 있는 앨버토 퍼낸데스는 그런 사례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당시 여러 서방인이 그런 목적으로 소련을 방문했다. 퍼낸데스는 “독재정권이 제공하는 정보를 그대로 믿고 현지를 여행하며 독재정권에 기꺼이 이용당하는 일은 그 이후에도 계속 있었다”며 “지금의 시리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그런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은 동기도 다양하고 현지에 대한 지식 수준도 천차만별이지만 뉴스위크가 만난 그들은 한결같이 서방 언론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또 그들은 현지를 직접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 온라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호주에 사는 미국인 미겔 발렌수엘라(29)는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서방 언론의 일방적인 소식만 접한다고 느끼고 지난해 초 시리아에 직접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2년 전엔 이란을 방문했는데 그 여행을 통해 외국인 혐오부터 지도부 불신까지 이란에 관해 가졌던 갖가지 선입견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발렌수엘라는 시리아에 관해서도 내전 상황과 역사 등에 관해 더 많이 공부하면서 외부 세계가 아사드 대통령을 오해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됐다.발렌수엘라는 “주류가 아닌 대안 매체를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먼저 여행전문 웹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부터 살펴봤다.” 그는 그 사이트에 올려진 이런 글을 발견했다. ‘시리아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이고 그곳 사람들은 너무나 자유롭다. 잔혹한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라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다.’그 다음 그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시리아를 방문한 사람들을 찾아봤다. 소셜미디어에 자주 글을 올리고 대안 매체 또는 러시아 국영 미디어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자칭 운동가들과 시민 기자들을 발견했다. 발렌수엘라는 그들의 말이 신빙성 있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그는 시드니의 시리아 영사관에서 비자를 신청했지만 계속 거절당하자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인터넷에서 ‘시리아 여행’을 검색했을 때 자말 다우드라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다우드는 팔레스타인계 호주인 운동가로 2013년 잠시 호주에서 활동한 위키리크스당의 일행을 이끌고 시리아를 여행했다.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를 설립한 호주 출신 언론인 줄리언 어산지의 아버지 존 십턴도 그 여행에 참가했다. 3년 뒤 다우드는 ‘호주 사회정의 네트워크’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시리아 여행을 주선하기 시작했다. 싱글룸 숙박에 항공료 제외한 비용이 850달러였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시리아 비자가 나온 뒤에 돈을 지불하면 된다는 말에 발렌수엘라는 믿음이 간다고 생각했다. 다음 여행은 ‘부활절과 시리아 독립기념일, 알레포 승리를 축하하는 일정’으로 광고됐다. 알레포를 점령한 반군을 잔인한 포위작전으로 강제 해산시킨 것을 시리아 정부는 ‘승리’라고 부르지만 유엔은 ‘전쟁범죄’라고 본다. 발렌수엘라는 그 여행에 신청했다.좀 이상한 일은 여행 주최측이 그에게 기자출입증을 만들어줬다는 사실이다. 발렌수엘라는 기자가 아니라 식품보조제 회사를 운영하는 중소기업 사업자지만 그 출입증엔 다우드의 언론사에서 일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의 일행이 알레포와 다마스쿠스를 방문하는 동안 시리아 국영통신사 사나(SANA)가 그들을 취재하며 보고 들은 것에 관한 인터뷰를 해달라고 자주 요청했다. 미국의 경제제재에 따라 폭등한 식료품 가격에 관한 시리아 주민의 우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발렌수엘라는 “그런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시리아 사람들의 저력에 놀랐다”고 말했다. “전쟁의 영향을 실감할 수 있었다.”시리아를 방문한 여행객 중 일부는 현지인을 도우려는 강한 열의를 보인다. 그들은 시리아의 자선사업에 기부한다. 어느 암호화폐 팬은 비트코인을 사용해 미국의 경제제재를 우회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10월 시리아를 여행한 한 아일랜드인은 현지 소녀의 심장수술 비용을 댔다. 또 몇몇은 영어 교사로 자원봉사하기 위해 시리아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다(장기체류 비자를 받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그와 대조적으로 뉴스위크가 인터뷰한 시리아 난민 대다수는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들은 서방인의 그런 여행에 관해 듣고는 혼란스러워하고 낙담했다. 전 가족을 데리고 다마스쿠스를 탈출한 한 시리아인은 “그들이 잘 모르겠지만 그건 아사드 정권의 선전술책”이라고 말했다(그는 보복이 두렵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시리아를 방문한 그 서방인은 현지인을 돕고 싶고 시리아의 상황을 체험하고 싶어 하지만 정확한 실상을 알지 못한다. 아사드 정권은 시리아인 50만 명을 죽였다. 또 내전으로 시리아 국토의 80%가 폐허로 변했다.”시위를 촬영하다가 체포돼 2년 징역형을 산 홈스 출신의 젊은 시리아인 배우 잘랄 만도는 시리아 정권이 언제나 거짓말을 잘했다고 지적했다. “내가 옥살이를 할 때 많은 재소자가 시리아 정권과 화해하고 싶어 했다. 그런 사람을 많이 봤는데 결국 그들은 고문당해 죽었다. 아사드 정권은 그들을 속여 환상을 심어 주려 한다.” 시리아 공무원은 선전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들은 시리아 정부가 승리하도록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싸움에선 시리아 공보부가 선봉이다. 다마스쿠스에서 여행 가이드 40년 경력을 가진 가산 차히네는 공보부가 여행 사업을 더 쉽게 만들어준다며 고마워했다. 지난해 10월 다마스쿠스 바브 투마 구역의 한 부티크 호텔 뜰에서 서방 여행객들에 둘러싸인 그는 자신이 언제든 시리아의 ‘공식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구역의 여행 가이드는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추정했다.내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리아의 관광산업은 국내총생산(GDP)에서 12%를 차지했다. 다마스쿠스는 지구상 가장 역사적인 도시 중 하나로 세계 최대의 모스크가 있으며 여행 가이드 출신도 많다. 따라서 차히네는 여행산업이 다시 시작되는데 감격했다. 그는 실제로 소규모 단체여행객들이 매일 도착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보고 싶어 한다. 시리아 정부와 아사드 정권 지지자들은 그런 여행객을 통해 자신들의 정보를 외부에 전할 수 있다.”친시리아 선전의 주요 채널은 소셜미디어다. 그런 여행길에 오른 서방인 중 다수는 여행 중 찍은 사진과 느낀 소감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시리아를 여러 번 방문한 사람들은 팔로어가 상당히 많다. 애시다운은 페이스북 팔로어가 2500명 이상이다. 영국 태생인 바네사 빌리(자칭 ‘독립 언론인’)는 트위터에서 2만 5000명의 팔로어를 거느린다. 크렘린의 입장을 대변하는 방송 러시아 투데이 웹사이트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캐나다인 에바 바틀렛의 팔로어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합쳐 7만5000명 이상이다. 이들 3명은 비슷한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화이트 헬멧’을 비난함으로써 평판을 떨어뜨리는 것이 그중 하나다. 그들은 시리아에 가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영국 신문 가디언이나 BBC 방송 같은 주류매체보다 자신들이 전하는 소식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대다수 기자들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말한다. 또 분석가들은 그런 서방인의 시리아 방문기가 소셜미디어만이 아니라 아사드 정권이 종교적 소수자들 편이라는 선전을 믿는 일부 기독교 단체에 의해서도 증폭된다고 지적한다. 미국 외교관 출신인 퍼낸데스는 “소셜미디어 공간은 아주 놀랍다”고 말했다. “착하고 무심한 사람들이 외부에서 잘 모르는 현실을 알려주기도 하고 현실을 완전히 왜곡하기도 한다.”시리아 국경에서 애시다운 일행은 점차 서로에 관해 더 잘 알게 됐다. 대다수는 기독교인이고 일부는 중동이 처음인 사람들이었다. 전쟁 지대를 체험한 사람은 없었다. 애시다운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이 여행에 관해 알게 됐다는 한 이혼녀는 이번 여행에 드는 비용 1900달러(항공료 제외)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 받은 자녀 학자금 일부를 전용했다고 말했다. 2명은 여행 중 사망할 경우에만 개봉될 수 있는 편지를 가족에게 남겼다.그러나 그들 일행의 시리아 비자를 발급 받아 갖고 있던 애시다운의 연락책(시리아 정부의 고위 관리)이 이상하게도 나타나지 않았다. 요르단강 서안의 감리교회 장로인 존 하워드는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레바논 동부 베카계곡의 헤즈볼라 장악 지역 발벡에 있는 로마 시대 신전 유적지를 거닐며 “연락책이 사라진 것이 단순히 실수일까 아니면 무슨 음모가 있을까?”라고 빈정거렸다. “그게 문제가 아닌가?”그곳에서 발이 묶인 나흘째 정오께 애시다운은 베이루트로 돌아가는 계획을 논의하며 위스키를 돌렸다. 일행들은 실망했다. 일부는 조용히 의문을 제기했다. 주류 언론의 보도가 실제로 정확한 게 아닐까? 아사드 정권이 국민을 잔혹하게 억압하면서 정보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닐까?그러다가 일주일이 지났지만 비자를 나눠주겠다던 그 시리아 고위 관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여행객들(멀리 남미에서 날아온 사람도 있었다)은 낙담한 채 그곳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아사드 정권 지지자들이 잇따라 레바논으로 건너와 그들을 만났다.아그네스 마리암 수녀가 그중 한 명이었다.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레바논 출신인 마리암 수녀는 2013년 동구타의 화학무기 공격에 관한 독자적인 취재 보도로 유명하다(그녀는 탐사 취재 경험이 없다). ‘화이트 헬멧’이 찍었다는 그 사진은 조작된 것이며 사망했다는 아이들은 마취로 연출된 장면이라고 주장했다.그녀는 애시다운의 일행들에게 시리아 반군이 ‘테러리스트’이며, 주류 언론은 ‘마피아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시리아 난민의 유럽 유입을 일으킨 배후는 아사드 정권이 아니라 서방의 이슬람화를 갈망하는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자신의 가설을 제시했다. 또 그녀는 BBC 방송이 시리아 내부 상황을 거짓말한다고 비난했다.마리암 수녀의 그런 주장을 듣던 애시다운의 일행 중 대다수는 공감한다는 뜻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면 마리암 수녀의 메시지를 전파하겠다고 약속했다.- 샐리 헤이든 뉴스위크 기자

2018.04.2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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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KCHON | 북촌의 주인들 - 왕의 기운 흐르는 곳에 한옥으로 세컨드하우스

산업 일반

서울 종로구 북촌은 조선시대 사대부 집권세력이 모여 살던 곳이다. 최근엔 기업 오너 일가와 부유층, 예술계 리더들이 대거 둥지를 틀었다. 직접 살기보다는 별장이나 갤러리 등 세컨드하우스로 활용한다. 가회동 31번지 일대는 고급 한옥이 즐비하다. “쏘 뷰티풀! 판타스틱!” 지난 7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마을. 한옥이 줄지어 늘어선 좁은 골목길에 외국인 관광객들의 탄성이 터졌다. 그들은 한옥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최근 북촌 골목길은 관광객으로 늘 붐빈다. 집으로 향하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어느 새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코스가 됐다. 프랑스에서 온 한 관광객은 “한국에 오기 전 인터넷으로 북촌을 미리 접했는데 실제로 보니 훨씬 아름답다”며 “도심 한가운데 이런 전통 가옥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고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북촌은 조선시대 백악산이라 불린 북산 아래 터를 잡은 마을이다. 이후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으로 불렸다. 행정구역상 가회동과 송현동, 안국동, 삼청동, 사간동, 계동, 소격동, 재동 일부가 속한 북촌에는 현재 1233동의 한옥이 남아 있다. 북촌은 조선시대 사대부 등 상류층이 살던 마을이다. 그래서 아직도 멋진 기와를 앉힌 한옥이 많다. 반면 역관이나 의관, 궁중 나인 등 중인이 많았던 경복궁 너머 서촌의 한옥은 소박한 형태를 띠고 있다. 터줏대감 김승연 회장 한화타운 조성조선시대 사대부가 사라진 자리엔 최근 새로운 지도층 인사들이 둥지를 틀었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가와 예술인, 부유층이 북촌에 속속 입성하고 있는 것. 우선 기업 오너 일가가 눈에 띈다. 포브스코리아가 등기부등본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비롯해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 홍라희 리움 관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 등이 북촌에 한옥집을 마련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산사쓰식품 회장과 크라운제과 창업자 2세인 윤영주 가회헌 사장도 북촌 사람이다.예술가들 진출도 눈에 띈다. 특히 지난해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하면서 국내 미술관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다. 북촌 일대에 자리한 전시공간은 50여 개 정도. 아트선재센터, 금호미술관 등 미술관을 비롯해 대형화랑인 현대·국제·학고재 외에도 이화익·PKM·조선·트렁크·도올·리씨·공근혜·빛 등 20여 곳이 기획전 위주로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인사동이 관광객 대상의 공예품매장, 식당가로 변모하면서 북촌이 새로운 미술동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북촌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옥을 가진 이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헌법재판소에서 감사원 방향으로 오르는 언덕길 왼쪽에 자리한 김 회장의 집은 ‘가회동 1번지’로 통한다. 김 회장은 1960년대부터 북촌에서 살아온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김 회장과 그의 동생 김호연 빙그레 최대주주,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 등 한화 일가는 북촌에 총 1만6848㎡(5100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 김동관 실장은 삼청동 35번지 주택과 가회동 임야 2620㎡(792평)를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아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의 북촌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2006년부터 북촌마을의 영세민을 위해 매년 쌀 240포대(포대당 10㎏)를 기증한다. 노인정 어르신들이 야유회를 갈 때마다 버스를 대절해 주기도 한다.한화는 2000년대 들어서 김 회장 집 주변 언덕에 한옥을 현대식으로 꾸민 한화외교단지를 조성했다. 15채 규모로, 붉은 한옥식 기와에 발코니와 마당 등 서양식 주택 형태를 접목한 대표적인 한옥형 주택이다. 볕이 잘 들고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외국인들 사이에선 명품 주거지로 통한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소 대표의 말이다.한화외교단지 관리사무소 직원은 전화통화에서 “과거엔 한화 임원들이 거주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외교관과 외국계 기업 임원, 장기체류 중인 바이어들이 살고 있다”며 “관광코스 끝자락에 위치해 조용하고 인근 한옥들 또한 깔끔한 편이라 입주 외국인들이 상당히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북촌에 대저택을 갖고 있다. 신 회장은 2011년 12월 가회동주민센터 뒷골목 ‘백인제 가옥’ 바로 옆 한옥을 샀다. 대지면적 482.6㎡(145평), 건물면적 265.7㎡(80평) 한옥 건물의 당시 매매가격은 45억원이었다. 신 회장의 집은 헌법재판소 삼거리에서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다.1977년에 가회동에 이사 온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도 가회동에 자그마한 한옥 몇 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5년 이후 아내와 아들 명의로 옆집을 사들이고 있다. 이 회장의 장녀 이윤혜씨 역시 가회동에 15억원 상당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홍라희 리움 관장도 2009년과 2010년 가회동 31번지에 나란히 붙은 한옥 두 채를 매입했다. 리뉴얼 공사를 통해 한 채로 만들었다. 최은영 한진홀딩스 회장도 북촌의 주인이다. 최 회장은 가회동 1번지 주택을 2011년 4월 10억원에 매입했다. 최 회장은 게스트하우스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자택으로 바꾸었다.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의 장모인 구훤미 오성로지스 대표도 2011년 7월 계동 76번지 지상 3층 지하 1층 건물을 매입하면서 북촌마을 주민이 됐다. 구 대표는 건물 리모델링 후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 거래 당시 매매가는 약 70억원으로 알려졌다. 구 대표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여동생이다. 그의 딸 김선혜씨가 이해욱 부회장과 결혼하면서 LG와 대림산업의 연을 맺었다.북촌 일대에서 단일 주택 규모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산사쓰식품 회장의 한옥이다. 신 회장은 1986년 창덕궁과 맞붙은 원서동의 대지 1120㎡(340평) 한옥을 사들였다. 신 회장은 슬하에 2남2녀를 두었는데 큰딸이 전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의 부인 신유나씨이다. 신 회장은 자신의 집과 맞붙은 대지 52평짜리 한옥을 지난 1999년에 사들인 뒤 둘째딸인 리나씨에게 2006년 증여하기도 했다.신 회장의 집은 연중 비어 있는 날이 더 많다고 한다.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신 회장이 한국에 체류할 때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주변 공인중개소에 따르면 지난해 집을 매물로 내놨지만 워낙 평수가 큰데다 일반인이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라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북촌에 기업 오너 일가 등 부유층이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이후다. 당시 북촌에 한옥을 마련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매물이 딸릴 정도였다고 한다. 주로 서울 강남 일대 초고층주상복합이나 아파트 등 번잡한 주거지에 살던 이들이 북촌을 찾았다. 5~6년 전에도 한 차례 물갈이가 이뤄졌다. 한옥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북촌이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강남의 큰손과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반대로 터줏대감들은 집을 팔고 아파트 혹은 전원주택으로 이주했다.등기부상 손 바뀜이 자주 일어나는 시점도 2002년 이후다. 재미있는 점은 가회동 한옥마을은 2005년 이전에, 삼청동과 맞닿은 한옥마을은 2005년 이후에 주인이 바뀌었다. 특히 가회동과 삼청동을 잇는 언덕에 위치한 가회동 31번지 일대가 노른자위로 떠올랐다. 북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입지인데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궐의 기운을 받는다는 풍수 덕분이다.부유층의 북촌 입성 대열에는 서미갤러리의 홍송원 대표도 끼어있다. 그가 가회동에 터를 잡으면서 ‘부유층 사모님’의 가회동 러시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1996년 5월 서미갤러리 터를 사들였다. 이어 2001년, 2003년 남편과 아들 명의로 인근 땅을 사들여 현재의 서미갤러리타운을 만들었다. 이후 홍 대표는 갤러리와 카페 부지를 지인들에게 소개했고, 부유층의 한옥 구입도 연결했다. 지난해 봄 미국 작가 로버트 테리안 전시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서미갤러리는 현대카드에 5년간 임대했다. 집값 너무 올라 진입 장벽 우려북촌에 입성한 부유층들은 대부분 나란히 붙은 주택을 구입해 리모델링한다. 공인중개소 등에 따르면 한옥마을은 주로 한적한 겨울에 리모델링이 많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도 발생한다. 무늬만 한옥으로 변질되는 것. 실제로 일부 한옥은 기존 건물을 아예 밀어버리고 건물의 밑부분을 콘크리트로 채웠다. 그리고 담장 밖으로 드러난 부분만 목재와 기와로 마감했다. 또 경사진 길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처마 곡선도 집주인이 지하층을 높게 지어 사실상 2층집을 만들면서 파괴됐다.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할 한옥의 담벼락과 처마가 들쭉날쭉한 이유다.가회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강남 등지에서 온 사람들은 직접 살기보다는 별장이나 갤러리 등 세컨드하우스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주인은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허다하다는 것. 가회동 33번지 골목에서 만난 한 주민은 “우리 골목에도 기업 회장 일가 집이 있는데 어쩌다 불이 켜져 있을 뿐 사람 드나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가끔 외국인들이 나오는 걸 보면 기업의 영빈관으로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부유층의 한옥마을 투자가 이어지면서 북촌 일대 한옥 가격도 크게 오르고 있다. 실제로 북촌 일대 시세는 주택시장 불경기에도 아랑 곳 않고 상승세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3.3㎡당 700만원 선이었던 한옥 시세는 최근 3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위치가 좋은 곳은 3.3㎡당 5000만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전세의 경우 99㎡ 기준으로 3억원이 넘는다.중앙고등학교 인근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한옥 열풍이 불면서 부동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66㎡대 낡고 허름한 한옥조차도 전세를 얻으려면 2억5000만원은 줘야 한다”며 “사실 겨울에 춥고 주차도 불편해 실거래가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비싼 건축비 역시 북촌마을 입성의 걸림돌이다. 일반주택은 3.3㎡당 300만~400만원이 들지만 한옥은 아무리 저렴해도 600만원을 넘어선다. 소목장, 와공(기와공사 인력) 등 인건비가 높기 때문이라는 게 시공업체의 설명이다. 기계화된 시공이 불가능하고 자재를 규격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천정부지로 오른 상가건물 임대료도 북촌을 삭막하게 만드는 요소다. 관광객 유입이 많아지자 입주를 문의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기존에 전세로 입주해 있던 사람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한옥이나 도로변 작은 매장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예술가와 장인들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가회동성당 인근의 한 공예품매장 주인은 “건물 주인이 올해 임대료를 두 배 가까이 올렸다”며 “애써 일궈 놓은 곳이라 떠나기도 쉽지 않아 올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예술계에서는 북촌이 서울 동숭동 대학로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북촌이 막뜨기 시작한 초기에 골목에 온기를 불어넣었던 아마추어 작가들이 하나둘 쫓겨나고 있기 때문이다.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우려도 크다. 대한항공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터에 7성급 관광호텔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북인사마당 건너편인 이곳은 북촌 한옥마을, 덕성여중과 맞붙어 있다. 소규모 공방 자리에 밀고 들어오는 프랜차이즈 매장들도 북촌의 고풍스런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이 같은 우려 탓에 최근 서울시와 종로구는 주민이 주도적으로 북촌 한옥마을을 가꾸고 지킬 수 있도록 ‘북촌협의회’를 창립했다. 주민대표 12명, 전문가 7명, 행정 공무원 6명으로 구성된 협의회에서 북촌의 관광지·상업화 문제같은 현안을 논의하고 주민 간 갈등을 조정한다.

2014.08.14 17:00

7분 소요
OUTLOOK 2014 - 지분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이 뜬다

산업 일반

증권, 투자자, 규제당국이 가세하면서 급속도로 전문화될 전망 2013년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 인터넷 등을 통해 다수의 개인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특히 2013년 가을 미국은 증권 기반 크라우드펀딩 규칙을 발표하고 광고 금지를 완화했다. 그리고 킥스타터같은 주요 사이트에 사기 우려가 만연하기도 했다. 그뒤 더 큰 관심을 끌었다.다음은 크라우드펀딩 전문가들이 제시한 2014년 전망이다. 주식을 2000달러 또는 1만 달러 단위씩 일반 투자자들에게 매각함으로써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 대략 2014년 중순에는 합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1 잠재적인 크라우드펀딩 주식공모(IPO)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일반인이 온라인으로 다른 소액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기반이다. 그중 한 인기 플랫폼의 IPO가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고 페퍼 해밀턴사 증권 변호사 브라이언 콘이 내다봤다. 인디고고나 킥스타터 같은 기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가 그 주역이 될 수도 있다. 또는 ‘부채 크라우드펀딩’으로도 알려진 개인간 대출(peer-topeer lending)이 크라우드펀딩 알선 서비스의 최초 IPO와 관련될 수도 있다고 콘이 말했다.개인간 대출과 관련해선 규제가 허술하며 채무불이행에 따르는 문제를 잘 모르는 대출자에게 위험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허용하는 주가 늘어남에 따라 개인간 대출 업체의 출범도 가능해졌다. “개인간 대출(일종의 부채 크라우드펀딩)이 눈부신 성장을 계속할 것”이라고 콘이 말했다. “대출시장의 다양한 틈새를 겨냥한 포털이 더 많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업적 그리고 영세 기업의 당사자간 대출이 첫 선을 보일 전망이다.”인디고고와 킥스타터 같은 사이트는 주로 기부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콘에 따르면 주식 기반 크라우드펀딩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자신들의 알려진 브랜드를 수익으로 연결시키려는 목적이다. 인디고고는 자사 사이트의 주식 크라우드펀딩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2013년 7월 밝혔다. 킥스타터는 이 문제에 관해 논평을 거부했다. 킥스타터는 IPO를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2012년 CEO 페리 첸이 말한 적이 있다.2 크라우드펀딩의 전문화 그에 따른 광고와 PR 물결크라우드펀딩을 통한 기업 주식공모나 제품출시에 증권·투자자·규제당국이 개입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전문화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크라우드펀딩 벤처회사들이 일반 기업에 더 가까워지면서 자금규모가 커짐에 따라 마케팅 전문가들을 두게 될 가능성이 크다.크라우드펀딩 PR 전문가 로버트 호스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크라우드펀딩은 사실상 제품출시의 그럴싸한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주식 크라우드펀딩이 합법화되면 사람들이 기존 사이트에서 하는 30일간의 캠페인과 달라지게 된다. IPO를 앞둔 기업들이 하듯 기업체 창업에 더 가까워지게 된다.”호스킨스는 보통 5000달러를 받고 30일간의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의 홍보를 돕는다. 2013년에 20명의 고객이 확보됐다고 추정하는 그는 크라우드펀딩 기업가들이 더는 소셜미디어에만 홍보를 의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시장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체가 하는 식으로 광고와 마케팅에 돈을 들여야 한다”고 호스킨스가 말했다. “광고가 범람하게 된다.”몇몇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들이 이미 선수를 쳤다.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리얼티 모굴이 대표적이다. 자신들의 플랫폼을 홍보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빌보드 광고계약을 하고 비행기를 이용한 공중문자 광고방안을 검토했다.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사모(private placements) 자본조달 광고에 대한 10년여의 금지조치를 2013년 초 해제했다. 다수의 기업이 일반대중을 상대로 투자유치 광고를 하는 길을 열어줬다.호스킨스는 또한 누군가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의 보편적인 평가 및 추천 시스템을 개발하리라고 예상한다. 특정 프로젝트에 누가 투자했는지, 그리고 페이스북에서처럼 누가 그 프로젝트를 “좋아” 했거나 또는 “싫어” 했는지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는 웹사이트 방문자수와 인기도로 서열을 매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목록을 관리한다.크라우드펀딩과 관련해 뜨는 다른 소규모 산업으로는 크라우드체크처럼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에 대한 실사(due diligence) 서비스도 포함될 수 있다. 소비자 보호운동가들은 크라우드펀딩이 사기에 짓눌리지 않을까 우려한다. 미숙한 투자자가 경험이 없거나 사기꾼 같은 기업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SEC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하는 기업들의 자율준법 컨설팅 서비스(compliance services)도 존재한다.3 부동산 크라우드펀딩이 계속 부상한다리얼티 모굴이나 프라디지 네트워크 같은 선발 업체들의 시장점유율 경쟁은 계속된다. 그러는 동안 크라우드펀딩 부동산 투자의 인기는 2014년에도 계속 상승세를 탈 전망이다. “부동산이 계속 시장을 주도한다”고 콘이 말했다. 그는 부동산 투자의 가시적인 측면이 사기 우려를 덜어준다고 지적한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개인자본가나 개발업자의 후원을 받아 대규모 부동산 거래에서 마지막 단계의 “마무리”를 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프라디지 네트워크의 CEO 로드리고 니뇨는 2013년 연말연시에 활자매체와 온라인 광고 등을 통해 자신의 부동산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 회사는 주로 뉴욕에서 일련의 개발 프로젝트를 계약할 계획이다. 거기서 크라우드펀딩 투자자들의 자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2015년까지 뉴욕에서 최고 5건의 계약을 더 발표할 것으로 그들은 예상한다. 최근의 프로젝트 하나는 AKA 월스트리트로 알려진 장기체류 호텔이다. 6개국의 외국인 투자자 70명으로부터 크라우드펀딩으로 2500만 달러를 조달했다. 1억7500만 달러 규모의 또 다른 ‘17 존’ 프로젝트는 최소 10만 달러 단위로 크라우드펀딩 자금을 모집한다.프라디지 네트워크는 자격을 갖춘 투자자들의 자금만 받는다. 당국의 정의에 따르면 연봉 20만 달러 이상 또는 순자산 100만 달러 이상인 사람들이다. 이 회사는 현재 건축 중인 콜롬비아 보고타의 최고층 빌딩 건축자금 1억7100만 달러를 크라우드펀딩으로 조달했다. 이는 자금의 일부를 크라우드펀딩으로 조달한 6개 부동산 포트폴리오 중 하나다.불과 3년 동안 5200명의 투자자로부터 2억6500만 달러를 조성했다. “대형 메트로폴리탄 지역에서 글로벌 수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내 관심 대상이다.” 니뇨가 자신의 확장 계획에 관해 말했다. 그의 신축 빌딩들이 아직 개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투자수익률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수익률이 10%를 웃돌리라고 추정한다.소규모의 부동산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들도 상당한 성장세를 보였다. 2013년 6월 출범한 샌프란시스코의 리얼티셰어즈는 11월 중순까지 1200명의 등록 투자자들을 통해 70만 달러를 조달했다. 이 회사는 4개 주의 부동산에 집중해 왔지만 앞으로 시카고·뉴욕·네바다·시애틀 등지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CEO 나브 애트월은 “2014년에는 플랫폼이 다른 플랫폼을 인수하며 많은 통합이 이뤄질 전망”이라며 크라우드펀딩 공간에 넘쳐나는 참여자들을 그 증거로 들었다. 부동산 특정의 크라우드펀딩 규정은 많은 자본이 드는 산업에서 엄격한 자본조달 한도를 완화해 호재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2014.01.02 18:06

4분 소요
[reporter at large] 인권운동가의 겸손한 희망

헬스케어

오랫동안 가택연금 생활을 해오던 중국의 시각장애인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은 얼마전 탈출을 감행했다. 내 오랜 친구이기도 한 그가 내게 탈출 과정을 설명했을 때 난 이런 농담을 했다. “시각장애가 당신의 비밀무기였네요(Blindness was your secret weapon).” 한살 때부터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그는 달빛이 비치지 않는 밤을 탈출 시점으로 택했다. 그에겐 어둠이 일상이기 때문이다.여성과 장애인의 권익옹호에 앞장서는 천은 산둥(山東)성 린이(臨沂)현 둥스구(東師古)촌에서 1년 반 이상을 법적인 근거도 없이 가택연금 상태로(under extralegal house arrest) 지내왔다. 그리고 그 이전 몇 년 동안은 감옥살이를 했다. 천과 그의 부인이 집에서 나가거나 바깥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려 할 때면 공안원들이 그들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그들을 방문하려는 사람들 또한 폭행당했다.지난 4월 22일 밤 11시쯤 감시원들이 잠들자 천은 집의 담을 타고 기어올라갔다. 하지만 역시 감시원들이 지키고 있던 옆집 마당으로 떨어져 탈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뻔했다. 도망갈 곳이 없었던(With nowhere to run) 그는 이웃 사람이 무거운 마당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잔뜩 긴장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이웃집 지붕 위로 기어올라갔다. 이웃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천은 다시 살금살금 아래로 내려와 자유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started his mad dash to freedom).탈출의 여정은 정말 험난했다(It was a grueling flight). 그다음 19시간 동안 천은 감시원 수십 명의 눈을 피해가며 여러 개의 담을 더 넘었다. 수없이 바닥에 넘어지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 오른쪽 발 뼈가 세 군데나 부러졌다. 그 후 탈출 여정은 한층 더 힘겨워졌다. 천은 며칠 후 병원 침상에서 나와 통화하던 중 “(당시)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일어서거나 걸을 수가 없어서 무릎으로 기었다.” 돌투성이 땅바닥을 몸부림치듯 기어서 움직이던 그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다(lost track of time). 주변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꼼짝 않고 있었다(froze in place). 아무도 자신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 때만 몸을 움직였다. “바람이 불거나 감시원이 휴대전화로 음악을 들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기어가기 시작했다.”마침내 미리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한(Reaching an agreed-upon rendezvous) 천은 난징(南京) 출신의 인권운동가 허페이룽(何培蓉)을 만났다. ‘펄(Pearl)’이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 이 젊은 여교사는 택배원으로 위장해 경계가 삼엄한 그 마을에 들어왔다. 이전에 그녀는 가택연금 중인 천과 그의 부인을 만나려다가 폭력배 같은 감시원들에게 매를 맞고 돈을 털렸다. 그리고 지금은 천을 자신의 트럭에 태워 480km 떨어진 베이징까지 데려갈 구출요원(rescuer)으로 그곳에 왔다(서방의 한 운동가와 함께 천의 트레이드마크인 조종사용 선글라스를 인권의 상징으로 만든 허는 나중에 당국에 체포돼 며칠 동안 구금됐다 풀려났다). 베이징에 도착한 천은 친구들, 그리고 동료 운동가들과 함께 숨어 있다가 주중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그는 이 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unwittingly) 미·중 간에 매우 심각한 외교 위기를 촉발했다.난 2001년 ‘맨발의 변호사들(barefoot lawyers, 당시 무시하지 못할 세력으로 떠오르던 중국의 독학 변호사들)’에 관한 뉴스위크 기사를 쓰면서 천을 처음 만났다. 우리의 우정은 뜻밖의 장소(베이징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시작됐다. 천은 카페라테를 마시는 여피족들 사이에서 자신이 사는 작은 마을의 제지공장이 강물을 오염시켜 물고기와 거북이들이 죽고, 마을 어린이들이 발진을 일으킨 이야기를 들려줬다. 천은 마을 주민 36명이 베이징으로 가서 중앙정부에 탄원서(petition)를 올리도록 도왔다. 제지공장의 뒤를 봐주는 지방 관리들(local cadres)의 징계(discipline)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우리가 베이징에 오는 걸 원치 않았다”고 천은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승리했다. 제지공장이 생산을 중단했다.천이 주중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1989년 중국 반체제 천체물리학자 팡리지(方勵之)의 망명 당시가 떠올랐다. 톈안먼 사태 이후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한 팡은 13개월의 협상 과정을 거쳐 서방으로 떠났다(지난 4월 6일 세상을 떠난 팡은 여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당시 경제력이 약하고 정치적으로 고립돼 있던 중국에 미국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하지만 현재 미국 정부 관리들은 그때보다 자신감이 커진 중국 정권을 상대해야 한다. 어쨌든 천의 미국 대사관 피신은 중국과 미국 양측 모두에 어려운 문제를 제기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미·중 고위급회담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었고, 양국 외교관들은 타결점을 찾으려고 밤낮없이(around the clock) 협상을 계속했다.6일간의 집중적인 협상 끝에 마침내 합의가 이뤄졌다. 천과 그의 가족은 중국에 남되 해안 도시 톈진(天津)으로 이주해 천이 원한다면 그곳에서 법률 공부를 할 수 있고(내가 알기로는 그가 늘 꿈꾸던 일이다), 당국은 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천은 휠체어에 탄 채 미소 띤 얼굴로 대사관에서 나왔다. 사진 기자들은 천이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와 포옹하고 게리 로크 주중 미 대사와 손잡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고위급회담을 위해 막 베이징에 도착한 클린턴은 이 합의가 “천의 선택과 미국의 가치관(his choices and our values)”을 반영한 결과라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천은 내게 나중에 일이 이상하게 꼬이면서(things started to unravel) “대사관측으로부터 내가 그곳에서 떠나기를 바라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천은 의학적 처치(medical treatment)를 위해 옮겨진 베이징의 병원에서 부인 위안웨이징(袁偉靜)과 두 자녀(10세의 천커뢰이와 6세의 천커스)를 다시 만났다. 하지만 동네 폭력배들이 그의 부인을 이틀 동안 의자에 묶어놓고 심문하면서 천이 미 대사관에서 나오지 않으면 그녀를 때려죽이겠다고 협백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재회의 기쁨도 사라졌다. 천은 또 자신이 탈출한 뒤 친척과 지지자들이 행방불명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는 앞서 중국에 남아 있겠다고 분명히 말했다(expressly said). 하지만 병원으로 옮겨진 뒤 미국 관리들이 가버리고 연락도 안 되자 가족의 안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나와 전화 통화를 할 때 자신이 중국을 떠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가족과 함께 힐러리 클린턴이 탑승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그는 말했다. 정치적 망명(political asylum)이라는 말은 애써 피했다. “가족과 함께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다. 그리고 좀 쉬고 싶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렇게 대담한 탈출을 감행한 사람으로서는 겸손한 희망(a humble wish)이었다.산둥성의 성도 지난(濟南)에서 160km나 떨어진 시골 마을 둥스구에서 태어난 천은 침술사(acupuncturist)와 안마사(masseur)가 되는 훈련을 받은 뒤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4세가 되던 1996년 베이징으로 가서 중앙정부 당국에 장애인은 법적으로 세금을 면제받도록 돼 있는데도 자신의 가족은 부당하게 세금을 부과받는다고 호소했다. 그의 가족은 결국 세금을 환급받았고(received a tax refund) 곧 다른 장애인 농부들이 천에게 법적 조언을 구하려고 모여들었다.1990년대 말 천은 독학으로 법률을 배운 농부들(소위 ‘맨발의 변호사들’)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폭력적인 지방 관리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제지공장을 상대로 한 환경 투쟁 이후 천은 서방의 언론, 외교관, 비정부기구(NGO)들과 접촉해 마을 주민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돕는 운동을 펼쳤다. 주중 영국 대사관이 180m 깊이의 새 우물을 파는 자금을 대는 데 동의하자 천은 작은 마을 둥스구가 이뤄낸 일에 자부심을 느꼈다(“그곳은 워낙 오지라 TV 전파 수신도 잘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비가 오면 TV가 안 나온다”).내가 천을 만났을 때 그는 반체제 인사로 보이지 않았다(그가 반체제 인사가 된 건 나중 일이다). 그런데도 당국은 이미 그가 외국인들과 접촉하는 걸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2001년 8월 우리가 베이징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영국 대사관과 함께하는 장애인 돕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려고” 1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그곳에 도착했다. 천은 “영국 대사관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뒤” 자신이 중국 공안원들에게 조사를 받았다고 조용히 내게 털어놨다. “그들은 내게 ‘그들과 어떻게 접촉하게 됐느냐?’고 물었다.”몇 년 뒤 천이 다시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내게 누군가 자신에게 읽어준 안후이성(安徽省) 농촌 지역의 분쟁에 관한 중국 책 한 권을 읽으라고 요청했다. “그곳 공안원들은 몽둥이로 주민들을 때리고 나서 ‘내가 당신을 때렸느냐?’고 물었다. 한 남자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공안원들이 그를 때려죽였다”고 천은 말했다. “그는 나 같은 운동가였다.” 천은 그 책을 읽고 나서 직접 책(중국 농촌의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원고 내용을 작은 녹음기에 녹음하거나 자신의 동생에게 불러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컴퓨터가 필요한데 한 대 빌려줄 수 있느냐?”고 그가 내게 물었다. 난 자선단체에 기부하려던 낡은 컴퓨터 한 대를 천에게 주었다. 그와 헤어지면서 컴퓨터의 부피와 무게가 걱정된 나는 “들고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천은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smiled and waved me away).2005년 천은 다른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엔 산둥성 린이현 당국의 가족계획 운동에 반대하고 나섰다. 당국은 정부의 한자녀 정책에 발맞춰 주민들에게 낙태와 불임시술(abortions and sterilizations)을 강요했다. 중국법에는 그런 잔인한 조치가 금지돼 있지만 수많은 농촌 여성이 임신 말기에도 낙태를 강요당했다. 도망치는 사람들은 구금돼 고문을 당했다. 천은 이런 폭력을 널리 알리는 운동을 시작하고 피해자들을 대신해 집단소송(a class-action lawsuit)을 제기했다. 린이현 당국은 천이 “반(反)중국” 세력과 결탁했다고 비난했다. 이듬해 천은 ‘기물파손(damaging property)과 군중동원(organizing a mob)을 통한 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천의 변호사들은 재판장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그는 감옥에서 4년 이상을 보냈다. 2010년 9월 석방됐을 때 그는 당국이 자신의 농가를 또 다른 종류의 감옥으로 만들어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금속 시트로 유리창을 가렸고 감시원들이 외부와의 접촉을 모두 차단했다. 인권단체들이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을 때 천과 그의 부인은 감시원들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이런 가혹한 대우는 당국의 보복 의지를 나타낸다고 천은 말했다.천은 오랫동안 이렇게 살았다. 그의 부인과 아이들까지 그의 어둠을 나눠가진(sharing his darkness) 셈이다. 그래서 그는 탈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천은 병이 난 척하며(Feigning illness) 몇 주일 동안 자리에 누워 지냈다. 그가 탈출을 감행할 때쯤엔 감시원들이 그의 몸이 쇠약해져 움직일 기력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려는 속셈이었다.베이징에 도착한 천은 친구들과 동료 운동가 후자(胡佳), 그리고 그의 부인 정진옌(曾金燕)에게 연락했다. 유럽의 의원들과 화상회의를 하던 도중 중국의 인권 기록을 비난한 혐의로 3년 동안 감옥 살이를 한 후는 도망자 천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의 부인 정이 트위터에 올린 글에 따르면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들 부부는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천은 또 반체제 미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의 친구들도 만났다. 아이웨이웨이는 지난해 감옥에서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베이징을 떠나는 것이 금지됐다. 아이웨이웨이는 천과 만난 적이 없지만 내가 그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자신의 상황이 천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우리 두 사람 다 자신이 한 활동 때문에 박해받았다(suffered persecution due to our work)”고 아이웨이웨이는 말했다. 그의 전화가 도청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그는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최선의 해결책이 뭘까?”라고 그는 물었다. “우리 같은 상황에서는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 한 대다수가 중국에 남아서 중국인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싶어한다. ... 하지만 천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미국 관리들이 6일간의 협상 끝에 천을 대사관 밖으로 데리고 나왔을 때 그는 미국인들이 병원에서 자신과 함께 있어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병실로 옮겨지고 나서 그들은 모두 가버렸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몇 시간이 흘러(Hours ticked by) 저녁식사 시간이 훌쩍 지났다. 천과 위안, 그리고 어린 두 자녀는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병원 직원에게 음식을 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했지만 가져다주지 않았다.” 천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미 대사관 관리들에게 서너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고립됐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부인이 받았던 가혹한 대우(harsh treatment), 그리고 최근 자신의 집 주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와 전기 울타리(electrified fencing)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천은 나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미 대사관에 내 말을 꼭 전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12시간 뒤 천은 내게 다시 전화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난 여전히 중국을 떠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이전보다 목소리가 차분했다. 그날 아침 로버트 왕 미국 대사대리가 병원에 다녀갔다. 천과 대화를 나누는 건 허용되지 않았지만 병원 밖에 주차된 대사관 차량에 탑승한 그의 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천은 외부와 연락이 어렵다는 점을 염려했다. 그는 “외부와 전화 통화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내 전화기가 고장났거나 통화가 어떤 식으로든 방해를 받는 듯하다.” 그는 새 휴대전화기를 구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미 대사관 측은 중국 당국이 전파방해(to jam his signal)를 시도할 경우를 우려해 천에게 4대의 휴대전화기를 주었다. 그러나 병원 밖에 있던 한 대사관 직원이 천과 두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곧바로 전화가 끊겼다. 미국의 한 고위 관리에 따르면 그 다음엔 아예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천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중국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뒤 그의 목소리는 미 의사당 안에 크고 분명하게 울렸다. 중국 위기에 관한 의회 청문회가 진행되는 레이번 의원회관에서 차이나 에이드(미국에 본부를 둔 기독교 비영리단체)의 봅 푸 대표가 자신의 휴대전화기를 마이크에 갖다댔다. 천은 자신의 병상에서 미국 의원들을 향해 직접 말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의 앞날이 걱정된다고 말했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쉬지도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그 직후 난 천의 부인 위안과 통화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낙관적으로 들렸다. 중국 정부가 천이 법률 공부를 위해 미국에 가는 것을 허락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위안에게 천이 학생 비자를 신청할 예정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병원으로 와서 이야기해요. 이 전화기로 통화하는 건 안전하지 않아요. 새 휴대전화기를 한 대 구해주세요. 전화 걸 데가 많아요.”

2012.05.0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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