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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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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명예회장 별세…기술 효성 이끈 ‘미스터 글로벌’

산업 일반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회장과 함께 효성그룹을 일궈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재계의 큰 별’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숙환으로 영면했다. 향년 89세(1935년생).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일본 와세다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하고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당초 대학교수를 꿈꿨으나 1966년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중 부친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귀국, 효성물산에 입사하며 기업인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동양나일론 울산공장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는 향후 효성그룹 성장의 기틀이 됐다는 평가다.1973년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하면서 화섬사업 기반을 다졌고, 1975년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을 인수해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했다. 이후 1982년 효성중공업 회장직을 물려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은 장남인 조석래 명예회장에게 효성을 물려줬고, 차남 조양래 한국타이어 명예회장과 삼남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에게는 각각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의 경영을 맡겼다.조 명예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혁신과 주력 사업 부문의 글로벌화를 이끌며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기술을 중시해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2006년에는 이를 효성기술원으로 개편했다. 이는 효성의 대표 제품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이 탄생하는 원동력이 됐다. 효성은 1997년 자력으로 스판덱스 상업화에 성공했고, 2011년에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고성능 탄소섬유를 세계 3번째,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하며 효성은 전 세계 50여개 제조·판매 법인과 30여개 무역법인·사무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조 명예회장은 국제관계에도 밝아 민간외교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풍부한 국제 인맥을 바탕으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 경제인들과 활발히 교류했고,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한중재계회의 등 재계의 국제 교류단체를 이끌며 주요 교역 상대국과의 가교 역할도 적극 펼쳤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에는 양국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고자 양국 재계 인사들과 미국 행정부·의회의 유력 인사들을 만나고 다니는 등 민간외교의 중심에 섰다.국내 대표 경제단체인 전경련에서 1987년부터 2007년까지 20년간 부회장을 지낸 데 이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회장을 맡아 국내 재계의 ‘얼굴’ 역할도 자처했다. 2017년 발간된 조 명예회장의 팔순 기념 기고문집에는 재계의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의 일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정부에 적극 의견을 밝히는 조 명예회장을 두고 ‘재계 지도자’라 칭했고,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미스터 글로벌’이라고 불렀다.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인 조현준 회장과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 삼남 조현상 부회장 등이 있다.

2024.03.29 19:32

2분 소요
재벌가 3세·연예인까지 ‘대마’ 무더기 적발… ‘태교여행’ 중 흡연도

정책이슈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피우고 판매한 혐의 등을 받는 부유층 자제, 연예인 등 수십여 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신준호 부장검사)는 26일 남양유업 창업주 손자 홍모(40)씨, 고려제강 창업자 손자 홍모(39)씨 등 10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대마)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남양유업 창업주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 차남의 아들인 홍씨는 지난해 10월 대마를 주변에 유통하고 소지·흡연한 혐의를 받는다.고려제강 창업주인 고(故) 홍종열 회장의 손자인 홍씨는 여러 차례 대마를 사고팔거나 흡연한 혐의로, 대창기업 이동호 회장의 아들(36)은 모두 8차례 대마를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3인조 가수 그룹 멤버인 미국 국적의 가수 안모(40)씨는 대마 매수·흡연·소지뿐 아니라 실제 재배한 혐의까지 받았다.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7명 중엔 효성그룹에서 분리된 DSDL의 이사 조모(39)씨가 포함됐다.조씨는 창업주 고(故) 조홍제 회장의 손자다. 조씨는 지난해 1∼11월 네 차례 대마를 구매해 흡연한 것으로 드러났다.JB금융지주 일가인 임모(38)씨와 전직 경찰청장 아들 김모(45)씨 등도 대마를 유통하고 흡연했다가 불구속기소 됐다.검찰은 해외로 도주한 한일합섬 창업주 손자 김모(43)씨 등 3명은 지명수배했다.이번 사건은 지난해 9월 경찰이 대마 재배 등 혐의로 알선책 김모(39)씨를 구속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보완수사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검찰은 김씨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며 직접수사에 착수했고, 그의 메시지·송금내역·우편물 등을 추적한 끝에 그의 알선으로 대마를 유통·흡연한 연루자들을 밝혀냈다. 이들에게서 대마를 산 3명은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수했다.이들 대부분은 해외 유학 중 대마를 접하고, 귀국한 뒤에도 대마를 끊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는 어린 자녀와 함께 사는 집안에서 대마를 재배하거나, 임신한 아내와 ‘태교 여행’을 하다가 대마를 흡연하는 등 중독성과 의존성이 심각한 상태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검찰은 “대마는 중독성이 더욱 강한 다른 마약류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며 “앞으로도 대마 유통 사범을 철저히 수사해 국내 대마 유입과 유통 차단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3.01.26 10:46

2분 소요
‘3세’ 조현범 한국타이어 신임 회장…경영권은 잡았지만 산너머 산

CEO

한국앤컴퍼니그룹이 본격적인 '3세 경영'에 들어간다. 조현범 한국인컴퍼니 사장의 회장 승진으로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일단락 됐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한국앤컴퍼니는 지난 22일 단행한 정기인사에서 조현범 한국앤컴퍼니사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조양래 회장은 그룹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조현식 부회장은 한국앤컴퍼니㈜ 고문을 맡게 될 예정이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은 효성그룹 창업자인 고(故) 조홍제 명예회장을 시작으로 한국앤컴퍼니의 조양래 명예회장(2세), 조현범 신임 회장(3세)으로 이어지게 됐다. 한국앤컴퍼니는 1980년대 효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계열 분리를 통해 독립했다. 당시 효성그룹은 조홍제 명예회장의 장남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한국앤컴퍼니의 전신인 한국타이어는 차남인 조양래 명예회장이 물려받았다. 이번에는 조양래 명예회장의 차남인 조현범 회장이 한국앤컴퍼니 경영 전면에 부상한 것이다. 조현범 신임 회장의 승진이 주목받는 것은 3세 경영 외에도 ‘형제 갈등’의 종지부가 될 수 있다는 해석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조양래 명예회장은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자신이 보유한 한국앤컴퍼니 지분 23.56%를 넘겼다. 이를 통해 조현범 사장은 한국앤컴퍼니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난 3분기 한국앤컴퍼니 분기보고서를 보면 현재 조현범 회장의 지분은 42.03%, 장남인 조현식 고문의 지분은 18.93% 수준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조양래 명예회장의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조 명예회장에 대한 성년 후견 심판을 신청하면서 불거졌다. 조 이사장은 “부친의 결정이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내려진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정신건강센터, 신촌 세브란스 병원 등이 감정을 거절했고 분당서울대병원도 최근 ‘감정촉탁진행불가’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명예회장의 정신 감정 결과에 따라 성년 후견 심판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형제간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인사로 그룹 회장이 정해지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잡음은 사그라들게 된 셈이다. ━ 꺼지지 않은 노사갈등 불씨, 조현범 회장의 해결과제 조현범 신임 회장은 당장 기업의 실적을 책임져야 한다. 천연고무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타이어업계에 불어 닥친 파고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 측에 따르면 천연고무 가격은 1톤당 172만원에서 기준 210만원으로, 합성고무 가격은 합성고무 가격은 176만원에서 219만원으로 올랐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장기화하면서 신차 생산이 줄었고, 이 때문에 수출·신차용 타이어 매출도 타격을 받고 있다. 대한타이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타이어 3사가 올해 3분기에 수출한 자동차용 타이어는 총 1195만9000개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 줄어든 수치다. 북미 지역으로의 3분기 수출액도 14.6% 감소했다. 노조와의 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난달 24일부터 이어졌던 노조 파업이 임금 협상 등을 거쳐 최근 마무리됐지만, 조합원이 반발하고 있어 갈등의 불씨가 남은 상황이다. 지난 21일 한 언론은 한국타이어 노동조합이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노조위원장의 해임 안건을 의결했다고 전했다. 노사 임금 단체 협상을 직권으로 처리한 데 따른 조합원들의 불만이 해임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타이어 노조 측은 본지와 통화에서 “자세한 사항을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타이어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 문제는 제품 단가 인상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지만, 총파업 등 노조와 갈등이 다시 불거지면 공급에 불안을 느낀 거래처가 돌아설 수 있다”며 “문제를 차분히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2021.12.23 17:58

3분 소요
조현준 회장 “대변혁의 시대, 고객요구 따라 민첩해져야”

CEO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임직원에게 고객의 소리(VOC·Voice of Customer)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어질리티(Agility·민첩함)’ 전략을 강조하고 나섰다. 2일 효성그룹에 따르면 조현준 회장은 이날 창립 55주년을 하루 앞두고 창립기념사를 발표했다. 해당 기념사에는 급격한 시장 변화와 기술 발전에 대응해 그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담겼다. 조 회장은 “기존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며 완전히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고, 디지털 전환과 탄소 중립 에너지 혁신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며 “인류의 생활방식이 급변하면서 시장 변화와 기술 발전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기업은 순식간에 도태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제가 경영활동의 근간으로 꾸준히 강조해온 것이 VOC”라며 고객의 필요사항을 경청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략적이고 치밀한 VOC 활동을 통해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우리의 나아갈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강조된 것이 바로 ‘어질리티’라는 개념이다. 조 회장은 “고객을 만족시키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실천에 옮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기민하고 영리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어질리티가 조직 전체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올해 사상 초유의 팬데믹 여파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효성의 저력으로 잘 헤쳐 나올 수 있었다”며 “열정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임직원을 독려하기도 했다. 효성그룹은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회장이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설립한 이래 올해로 55년을 맞이하게 됐다. 조현준 회장은 조석래 명예회장에 이은 효성그룹 3세로 2017년 그룹 회장직에 취임했다. 민보름 기자 min.boreum@joongang.co.kr

2021.11.02 14:52

2분 소요
순혈과 순익

산업 일반

가족은 아시아에서 널리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기업집단과 유명 상표의 핵심이다. 대한민국 삼성 그룹과 이 씨 가문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국경을 넘어 뻗어가는 자신들의 기업 제국을 이용하여 본국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가 가문은 많다. 포브스는 이들 가문의 영향력을 알아보고, 또한 승계 및 경영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살펴보자는 의미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50개 가문의 목록을 만들었다.여기에서는 최소한 3대에 걸쳐 부를 형성한 가문만을 다루었다. 따라서 최초로 공개되는 이 목록에서는 홍콩의 리자청 일가처럼 한 나라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가문도 제외된다. 리자청의 아들들은 경영 일선에 있지만 손주들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이 목록에 포함된 가문 중 대부분은 세대 교체시에도 집단을 유지했지만, 기업을 분할하거나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린 가문도 있다. 예컨대 인도의 암바니 가문 항목에서는 2002년 부친의 사망 후 유산 대부분을 상속한 무케시와 아닐 형제를 묶어 설명했지만, 이 둘은 사업(및 기타 여러 가지)을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인도 가문은 50개 중 14개를 차지하여 어떤 기준에서 보든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다.본지는 이 목록을 만들기 위하여 500개 이상 가문의 정보를 면밀히 검토하고 수십 개 가문을 평가했다. 순자산 기준은 29억 달러 이상이 되었다. 자산 가치 평가에 적용된 주가와 환율은 9월 25일자 기준이다.해당 기업의 주식은 대부분 상장되어 있어, 한 가문이 경영권을 확보한 경우에도 여전히 외부 주주에게 책임을 진다. 인도 부르만 가문처럼 전문경영인을 영입한 경우라 해도 세대간 승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50개 가문 중 거의 반은 중국계지만, 개방경제 체제 안에서 수십억 달러를 동원할 수 있게 된 첫 번째 세대가 역사가 일천한 기업집단을 경영하고 있는 중국 본토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가문은 이 중에 없다. 중국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앞으로도 이들 가문은 부를 유지하고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할 것이다. ━ 1. 삼성 이병철 가문 266억 달러대한민국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폐암으로 사망한 지난 8월, 이 씨 일가는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한데 모였다. 이들 대가족이 한 곳에 모이는 일은 드물었다. 삼성의 역사는 부유한 지주의 아들인 이병철이 1938년에 대구에서 작은 상회를 설립했을 때 시작되었다. 창업주가 1987년 사망한 후 아들 이건희가 회장이 된 삼성그룹은 1990년대 들어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그룹, 한솔그룹 등 오늘날 이 씨 일가의 2·3세대가 경영하는 4개 기업집단으로 분할되었다. 일가 15명 이상이 경영하는 55개 기업의 매출액은 총 3350억 달러다. ━ 2. 리 가문 241억 달러홍콩광동주에서 태어나 1948년 홍콩으로 이주한 리자 오지가 처음 손댄 사업은 귀금속 거래와 환전이었다. 그는 다른 7명과 함께 자신의 첫 부동산 회사인 이터널 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하고 샤틴 호텔 재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이후 그는 궈더성(5위), 펑징시와 함께 순훙카이를 세웠다. 1973년에는 스스로 헨더슨 개발을 설립했다. 1976년에 설립된 자회사 핸더슨 부동산은 이후 홍콩과 중국 최대 부동산회사로 성장했다. 관광, 가스, 투자 역시 그의 관심분야다. 자녀인 피터, 마틴, 마거릿은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피터는 중국 본토 사업을 관장하고, 마틴은 홍콩을 담당한다. 외손녀 크리스틴 리가 헨더슨의 포트폴리오 리스 부서 임원으로 근무하는 등 3세대가 경영 수업을 받는 중이다. ━ 3. 암바니 가문 215억 달러인도장남인 무케시가 뭄바이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을 짓기 몇 십 년 전, 디루바이 암바니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예멘의 한 주유소에서 일했다. 그는 1957년 인도로 돌아와 향신료와 실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그의 회사인 릴라이언스 텍스타일 인더스트리가 1968년에 출시한 섬유 브랜드 비말은 큰 인기를 끌었다. 2002년 디루바이가 사망한 후 두 아들 무케시와 아닐은 서로 불화를 겪고, 이후 제국은 분할되었다. (도입부 참조) 무케시의 쌍둥이 자녀인 아들 아카시와 딸 아이샤는 통신회사인 릴라이언스지오인포컴과 릴라이언스리테일의 이사로 일한다. 아닐의 아들인 자이 안몰은 릴라이언스캐피탈에서 일한다. ━ 4. 체아라와논 가문 199억 달러태국세계 최대급의 사료 및 가축 공급자인 차른 뽁판드(약자 CP) 그룹은 방콕의 차이나타운에서 시작되었다. 치아 엑 초르와 촌차른 체아라와논 형제는 처음으로 자기 가게를 열고 중국에서 수입한 종자를 태국 농가에 판매했다. 지금은 치아 엑초르의 아들인 다닌이 그룹을 이끌며 그의 세 형제 및 기타 친척이 일가의 재산을 나눠 갖는다. 그의 세 아들 모두 활동 중이며, 앞으로 다닌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수빠끼찌는 CP그룹의 부회장으로서 중국 영업과 투자부문을 관장한다. 마찬가지로 CP그룹 부회장인 수파차이는 태국 3위 통신사업자인 트루코퍼레이션의 사장 겸 CEO이며, 나롱은 CP로터스코퍼레이션의 부회장이다. 다닌과 사촌지간인 끼앗 체아라와논 역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 5. 궈 가문 195억 달러홍콩궈 가문의 부동산 제국은 홍콩의 마천루에서 중국 본토 내 700만㎡ 이상의 부동산에까지 뻗어 있다. 궈더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하여 1969년에 펑징시, 리자오지(리쇼키)와 함께 순훙카이를 창업했다. 1972년에는 순훙카이부동산을 상장했다. 1990년 그가 사망한 후에는 아들들이 회사를 물려받았다. 장남 월터는 CEO 겸 회장을 역임하다 2008년에 가족들의 압력을 받아 사임했다. 그 후에는 그의 동생인 토머스와 레이먼드가 함께 회장 자리에 앉아 공동 경영했다, 2014년 12월에는 토머스가 시 공무원을 매수한 죄로 5년형을 선고받고 사임했다. 지금은 모든 혐의를 벗은 레이먼드가 그룹의 유일한 회장이다. 레이먼드의 아들 궈하오리가 그룹의 영업 및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토머스의 아들 궈지후이는 전무이사다. ━ 6. 궈 가문 189억 달러싱가포르, 말레이시아1928년, 빈털터리 10대이던 궈팡펑은 중국 한 작은 마을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1941년에 세 형제와 함께 홍룽을 창업했다. 현재는 이들의 자녀와 손주들이 자산 280억 달러를 보유하고 세계 각지에 영업망을 갖춘 기업집단 홍룽 그룹 지분 과반을 보유 중이다. 홍룽 그룹이 보유한 150개 호텔은 세계 20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홍룽 그룹의 포트폴리오에는 아시아 최대급 금융서비스 회사, 최대의 소비재 및 산업용품 상사가 포함된다. 궈팡펑의 장남 궈링밍은 싱가포르 영업을 관장한다. 조카 궈링찬은 말레이시아 법인 대표다. 손자 셔먼과 궈이성은 계열사 고위경영진이다. ━ 7. 프렘지 가문 170억 달러인도프렘지 가문의 기업 와이프로의 역사는 현재 회장인 아짐 프렘지의 부친 모하메드 하샴 프렘지가 1945년에 웨스턴인디안베지터블프로덕트를 설립하고 땅콩으로 식용유를 생산하면서 시작했다. 1966년 모하메드가 사망하자 아짐은 학업을 포기하고 가업을 이었다. (나중에는 공학 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비누 같은 품목을 새로 취급하기도 했지만, 가문이 부유해진 것은 사업영역을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적시에 확장한 덕분이었다. 아짐은 회사 이름을 와이프로로 바꾸고 데스크탑 컴퓨터 조립과 소프트웨어 서비스 공급을 시작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컴퓨터의 Y2K 문제 해결에 집중되던 2000년까지 와이프로는 인도 첨단기술 업계 전체가 그랬듯 큰 이익을 거두었다. 그 해 아짐은 뉴욕 주식거래소에 와이프로를 상장했다. 아들인 리샤드는 와이프로의 이사로 재직하며 전략 부문을 이끈다. ━ 8. 차이 가문(금융) 151억 달러대만거대 금융서비스사 푸본금융은 창업주 차이완차이가 작년 10월 사망한 이후부터 그의 아들들인 대니얼과 리처드가 이끌고 있다. 이들과 사촌지간인 차이홍투는 형 차이정다 및 다른 가족과 함께 대만 최대 대출기관인 캐세이파이낸셜홀딩의 지분을 공유하고 경영한다. 형제 중 넷째인 T. Y. 차이는 2010년에 소유 지분을 형제들에게 매각한 후 자기 회사인 호맥스 이쿼티를 통하여 부동산에 투자한다. 홍투와 형제들은 부친 차이완린이 사망한 2004년부터 사업을 물려받았다. 가난한 농가 출신인 완차이·완린 형제는 1962년 캐세이 보험를 개업했다가 1979년에 캐세이와 푸본을 나누어 가지며 서로 갈라섰다. 지금은 3세대가 떠오르고 있다. 홍투의 아들인 차이종셴과 차이종한은 캐세이의 부사장이고, 리처드의 아들 크리스는 푸본스포츠앤엔터테인먼트 사장이다. ━ 9. 힌두자 가문 150억 달러인도, 영국금융, 교통, 에너지, 첨단기술, 언론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집단 힌두자그룹의 경영자는 네 형제다. 힌두자그룹의 역사는 이들 형제의 부친인 파르마난드 딥찬드 힌두자가 인도 신드주(현재는 파키스탄 영토)에서 장사를 하다 1919년 이란으로 이주한 후 시작되었으며, 그룹 본사는 줄곧 이란에 있다가 1979년 아들들이 런던으로 옮겼다. 오늘날 그룹은 스리찬드와 고피찬드 형제가 런던에서 공동으로 경영한다. 프라카시는 제네바에, 아쇼크는 인도에 있다. 스리찬드의 딸 샤누와 비누, 고피찬드의 아들 산제이와 디라지, 프라카시의 아들 아제이와 람크리샨은 모두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 10. 미스트리 가문 149억 달러인도올해는 거대건설기업 샤푸르지팔론지그룹 창립 150주년이다. 팔론지 미스트리가 리틀우드팔론지 앤코를 설립한 1865년이 그룹의 시작이다. 회사는 1881년 주민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뭄바이에 있는 말라바르 언덕에 저수지를 건축했다. 팔론지의 아들 샤푸르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회사에서 일했으며, 타타그룹의 지주사인 타타선즈에 그가 투자한 소수 지분은 가문이 현재까지 부를 쌓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할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지닌 3세대 승계자 팔론지는 인도와 페르시아 만에서 벌어지는 공사를 수주하여 큰 이익을 냈으며, 특히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는 술탄의 궁전을 짓기도 했다. 그는 2012년 아들인 샤푸르에게 일을 물려줬다. 작은아들 사이러스는 타타그룹 회장이다. ━ 11. 현대 정주영 가문 135억 달러대한민국정 씨 가문의 사업영역은 자동차, 선박, 건설, 보험, 유통업을 포괄한다. 가난한 소작농 가정에서 성장한 정주영은 1940년대에 서울에 자동차 정비소를 세우면서 왕조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전후 복구과정의 기회를 활용하여 1946년에는 현대자동차를, 1947년에는 현대건설을 설립한다. 한때 대한민국 최대 기업집단이던 현대는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으로 분할되었다. 일가 재산 중 반 이상은 정주영의 차남인 현대자동차 회장 정몽구와 아들 정의선이 보유한다. ━ 12. 하르토노 가문 127억 달러인도네시아황웨이위안은 1950년에 자와틍아 주 쿠두스 시에 위치한 파산 직전의 담배 회사를 인수하고 이후 회사 이름을 자럼으로 바꾼다. 웨이가 1963년 사망한 후 아들인 로버트 부디와 마이클 하르토노가 기업을 승계한다. 현재 인도네시아 최대급 담배 제조사인 자럼의 COO는 부디의 장남 빅터 하르토노다. 시가총액 기준 인도네시아 최대 대출 기관이자 자산 기준 2위 은행인 뱅크센트럴아시아 역시 가문의 부를 구성한다. 하르토노 가문은 파린도인베스트먼트를 통하여 총 주식 중 47%를 통제한다. ━ 13. 시 가문 123억 달러필리핀헨리 시는 젊어서부터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했다. 그는 이후 조그마한 신발 가게를 열고, 이를 필리핀 최대의 쇼핑몰 개발운영기업 SM프라임으로 키워낸다. 현재 가문의 관심사는 금융에서 소매업까지 아우르며, 기존 쇼핑몰 주변에 ‘소도시’를 짓는 방식 등으로 성장 중이다. 시 가문은 필리핀 전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민영 전력회사 내셔널그리드에도 지분이 있다. 자녀들 모두 경영에 참여하며, 매주 만나 다 같이 사업을 논하는 점심 식사 자리에는 모친도 가끔 참석한다. 손주 세대 역시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 14. 치라티왓 가문 117억 달러태국치라티왓 가문은 센트럴그룹을 통하여 소매, 부동산, 관광, 요식업을 영위한다. 가문의 부 중 65% 이상을 차지하는 센트럴리테일은 태국 최대급 소매업체다. 그룹은 2013년에 경영권을 잡은 최고경영자 토스 치라티왓의 지휘 하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점포를 열며 지역 내 영향력을 넓혀 왔다. 토스의 조부이며 중국 출신 가난한 이민자였던 띠앙 치라티왓은 방콕에서 처음 개업한 자기 가게에 켕셍레(바구니 판매)라는 이름을 붙였다. 20년이 지나 띠앙과 자녀들은 가게를 방콕 오리엔탈 호텔 근처로 이전하고 센트럴트레이딩 스토어로 개명한 후 신문, 잡지, 기타 상품을 판매했다. 띠앙의 아들 삼릿은 1957년 방콕 프라나콘에 태국에서 최초로 백화점을 열었다. ━ 15. 고드레지 가문 114억 달러인도118주년을 맞은 매출 41억 달러 짜리 소비재 기업 집단 고드레지그룹에서 일하는 고드레지 가문 사람은 9명이며, 그 중 아디 회장은 이 유명 그룹을 이끄는 3세대 경영인이다. 그룹의 역사는 1897년 아르데시르 고드레지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자물쇠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918년에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비누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그 후 경영권을 이어받은 동생 피로즈샤가 뭄바이 교외에서 확보한 광대한 토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문 최대의 자산이다. MIT 출신인 아디는 1963년 입사하여 2000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 16. 정 가문 111억 달러홍콩정위통 가문은 홍콩 최대급 기업집단 저우다푸를 소유한다. 여기에는 아시아 최대의 귀금속 소매 업체와, 정위통이 1970년에 설립한 부동산 대기업 뉴월드디벨롭먼트 등이 속한다. 아들인 헨리가 사업을 주도하며 손자인 애드리언이 3세대 계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각광받는 인재인 손녀 소냐는 가문의 호텔 왕국을 이끈다. 정위통은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 17. 궈 가문 109억 달러말레이시아, 싱가포르궈허녠은 1949년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서 설탕, 쌀, 밀가루를 거래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그의 궉 그룹에는 고급 호텔 체인 샹그릴라, 아시아 최대의 석유·가스 탐사 해양플랜트 운영 기업인 싱가포르의 PACC오프쇼어서비스홀딩스, 한때 일간지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수많은 기업이 속한다. 싱가포르 국적인 조카 궈콩펑이 운영하는 윌마르인터내셔널은 야자유를 생산하는 대기업이다. 궈허녠의 아들 중 궈콩옌은 샹그리라아시아 대표이며 궈콩청은 케리 그룹(그룹의 홍콩 및 중국 영업을 담당)의 부회장이다. 이 둘의 자녀들은 여러 그룹사에서 일한다. ━ 18. 사지 가문 108억 달러일본산토리 회장 사지 노부타다는 2014년 유력 주류 업체 산토리홀딩스의 CEO를 사임하고, 회사의 116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인에게 자리를 넘겼다. 산토리의 역사는 도리 신지로가 일본에서 서양식 주류를 생산하기 시작하던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리의 아들 사지 게이조는 1961년 회사를 이어받아 산토리를 음식점, 생수, 골프장, 영화제작, 포도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류로 사업영역을 넓힌 거대기업으로 변혁한다. 1990년부터는 조카 도리 신이치로가 경영권을 이어받아 11년 동안 경영했다. 자신은 비록 최고경영자를 사임했지만, 산토리 창업자의 증손자이자 상속자 자리가 한때 확고했던 도리 노부히로가 경영 경력을 더 쌓은 후에는 사지 가문이 다시 회사를 통제하는 것이 노부타다의 바람이다. 노부히로는 비알콜음료 및 식품업체인 산토리식품의 대표다. ━ 19. 미탈 가문 101억 달러인도라자스탄 주 출신인 모한 랄 미탈은 1950년대부터 제철업체를 가족끼리 경영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에 그의 아들인 락시미 미탈도 산업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6년 가문 안에 갈등이 발생하자 모한 랄은 아들 락시미를 인도네시아로 보냈다. 이곳에서 제철소를 세운 락시미는 이후 형제들과 결별하고 설립한 미탈스틸을 2006년 아르셀로와 합병하여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시가총액 90억 달러)인 아르셀로미탈을 만든다. 락시미의 딸인 바니샤는 스테인레스스틸 제조사 아페람의 최고전략책임자이며 아들 아디티아는 아르셀로미탈의 최고재무책임자다. ━ 20. 바오 가문 90억 달러홍콩해운업계 거물 바오위강의 후손이다. 바오위강이 사망한 1991년에 장녀 애너가 월드와이드해운(현재 BW그룹)을 상속했다. 그녀의 남편인 헬무트 조먼이 2010년까지 회사를 경영하며 가스, 해양 석유생산 및 저장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현재는 이들의 아들 안드레아스가 경영을 담당한다. 바오위강의 차녀 베시는 부동산 및 인프라회사 워프를 물려받았으며 경영은 남편 피터 우가 담당한다. 예상 후계자는 지주회사인 휠록앤코의 회장인 아들 더글러스다. 삼녀 시시와 남편 와타리 신이치로는 기업보험, 무역, 고급승용차 판매업을 영위하는 일본사업부를 소유한다. 사녀 도린과 남편 정웨이젠이 물려받은 월드와이드인베스트먼트는 가문의 사적 자금도 관리한다. 바오위강은 상하이에서 은행원으로 경력을 시작한 후 고속 승진을 거듭하다가 1949년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하자 홍콩으로 피난하여 해운회사를 세웠다. ━ 21. 카두리 가문 89억 달러홍콩카두리 가문의 관광 및 전력 사업은 바그다드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유대계 이라크인 엘리 카두리 경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이상 전 상하이에서 시작한 것이다. 아들인 로렌스와 호러스 카두리가 사업을 물려받아 제2차 세계대전 후 가문의 부를 재건하고 로렌스의 아들 마이클 카두리에게 물려주었으며, 현재 마이클은 홍콩앤상하이호텔과 CLP홀딩스의 회장이다. 처남인 로널드 매컬리는 홍콩상하이호텔의 이사이며 상당한 지분을 보유중이다. 카두리 가문은 유명한 페닌슐라 호텔과 빅토리아피크를 운행하는 피크트램의 지배 주주다. 이들은 자선사업으로도 유명하며 홍콩과 네팔의 댐, 교량, 농업 프로젝트와 학교 운영에 자금을 지원해 왔다. ━ 22. 비를라 가문 78억 달러인도간샴 다스 비를라가 방적공장을 건설한 1919년은 비를라 가문이 제조업으로 진입하는 분기점이었다. 이후 가문은 매 세대마다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하며 확장과 분열을 거듭했다. 간샴 다스의 증손자 쿠마르 비를라는 선친의 이름을 딴 아디티아비를라그룹의 대표로서 지금까지 20년 이상 경영하며 금속·화학업체를 인수했다. 오늘날 매출액 410억 달러를 자랑하는 이 그룹은 여러 상표를 통하여 시멘트 제조에서 의류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을 영위한다. ━ 23. 황 가문 77억 달러싱가포르황팅팡은 1934년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그가 엘리야 탐비(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사람인 아난다 크리슈난의 먼 친척)의 도움을 받아 세운 시노그룹은 3개 상장사와 다양한 비상장 기업의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 황팅팡은 2010년 사망할 때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싱가포르와 홍콩에 호텔, 쇼핑몰, 콘도 700개 이상을 지었다. 장남 로버트는 시노그룹 소속사로 홍콩에 상장된 침사추이부동산 회장이며, 차남 필립은 시노그룹의 자매사인 싱가포르 부동산회사 파이스트오거나이제이션을 경영한다. 로버트의 아들 대릴 황용광은 시노그룹 전무이사다. ━ 24. 차이 가문(식품) 69억 달러대만차이옌밍의 부친은 1962년 농산물통조림을 수출하는 소기업 이란식품공업을 창업했다. 이 회사는 이후 현재 차이옌밍이 회장으로 있는 스낵·음료 대기업 왕왕그룹으로 성장한다. 차이옌밍은 1996년 왕왕홀딩스를 싱가포르에 상장했다가 2007년 상장폐지하고, 2008년에 홍콩에 상장한 신설기업 왕왕차이나로 음식료사업으로 이전했다. 왕왕은 2009년 모국인 대만에 상장했다가 2013년에 상장폐지했다. 차이옌밍의 차남 차이왕자는 회사의 COO고 장남 차이샤오종과 외조카 정원셴은 이사다. 회사 주식은 홍콩증시에 상장되어 있다. ━ 25. 모리 가문 61억 달러일본도쿄 출신 교수였던 모리 다이키치로는 소규모 부동산 회사를 부친으로부터 물려받고 1959년 모리빌딩을 설립했다. 회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용하여 상업용 및 주거용 건물을 다수 건축했다. 다이키치로는 포브스 선정 1991년·1992년 세계 최고의 부호이기도 하다. 그가 1993년 사망하자 아들인 미노루와 아키라가 회사를 물려받았으나 이 둘은 1999년 회사를 분할한다. 미노루는 회사 이름을 승계하여 아시아 부동산 시장의 유력인사로 활동하다 2012년 사망했다. 재산 일부는 그의 부인 모리 요시코가 상속했다. 아키라는 도쿄 샹그리라 호텔 등 호텔 30개와 임대건물 88개를 운영하는 모리트러스트를 경영한다. 딸 다테 미와코는 모리트러스트의 호텔리조트 부문 대표다. ━ 26. 추 가문 60억 달러싱가포르추더바는 1986년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을 로이드은행에 인수될 위기에서 구한 세 투자자 중 하나이며, 1960년에 말레이시아 메이뱅크를 설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부친인 추양전이 투자한 싱가포르 은행들은 1933년 OCBC와 합병하였으며 추더바는 부친의 발자취를 따라 화교은행에 입사하여 은행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호텔들을 매입하였으며, 이 중 싱가포르의 역사적 건축물이기도 한 굿우드파크는 지금도 그의 후손이 운영 중이다. 추 가문은 은행 관련 지분을 스탠다드차타드에 매각했지만 호텔 사업은 계속 보유하고 있다. 추더바의 딸인 메이비스는 추더바가 사망한 2004년 이후 현재까지 굿우드 회장이다. ━ 27. LG 구 씨 가문 59억 달러대한민국전자, 화학, 통신 등을 영위하는 대한민국 4위 기업집단 LG그룹 가문이다. 구인회가 1947년에 허만정과 공동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는 원래 가정용품 제조사였다. 그룹 회장인 구본무는 창업주 구인회의 손자다. 구본무는 외아들이 1990년 대에 사망하자 동생 구본능의 아들 구광모를 양자로 들였으며, 지금은 구광모가 회장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본능은 LG그룹의 관계기업 집단으로서 전자 산업을 하는 희성그룹 회장이다. 구본무의 사촌들은 의류업을 하는 LF를 경영한다. 창업주의 조카들은 전력, 기계에 특화한 LS를 이끈다. ━ 28. 위자야 가문 58억 달러인도네시아으카 칩타 위자야는 어렸을 때 중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이주했다. 17살부터 과자를 팔던 그는 이후 1962년에 시나르마스를 창업한다. 현재 인도네시아 최대급 기업집단인 시나르마스는 펄프, 제지, 농업, 식품, 부동산, 금융, 에너지, 인프라, 통신 사업에 진출했다. 으카의 삼남 프랭키 위자야가 경영하는 골든아그리리소스는 야자유를 생산하는 대기업으로, 가문 소유 지분 중 가장 큰 수익을 낸다. 차남 황홍녠은 싱가포르에서 독자적으로 투자한다. 3세대 중 4명 이상이 그룹 안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다. ━ 29. 바자즈 가문 56억 달러인도바자즈그룹은 마하트마 간디의 측근인 잠날랄 바자즈가 1926년 설립했다. 잠날랄의 장남 캄라나얀은 1942년 경영권을 승계하여 스쿠터 등 제조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창업주의 손자인 라훌은 하버드에서 MBA를 취득한 후 196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이륜차 사업을 담당했다. 그의 사업 감각 덕분에 인도인이라면 누구나 바자즈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라훌의 사촌인 니라즈, 셰카르, 마두르를 포함한 바자즈 가문은 여러 기업집단을 운영하다 2008년 라훌의 남동생 시시르가 설탕과 소비재 부문 경영권을 가지고 독립하면서 분할되었다. 현재는 라훌의 장남 라지브가 대표기업인 바자즈오토를, 차남 산지브가 금융을 담당한다. 시시르는 비를라 가문(22위) 출신 여성과 결혼한 아들 쿠샤그라에게 경영권을 이양하는 중이다. ━ 30. 부르만 가문 55억 달러인도 ━ 31. 로히아 가문 54억 달러인도네시아, 태국인도 출신 직물 거래업자 모한 랄 로히아는 1973년에 아들 스리 프라카시 로히아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여, 1976년에 방적사 생산업체인 인도라마신시틱스를 창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영역은 석유화학으로 확장되었다. 환갑을 앞둘 무렵 모한은 기존 인도네시아 회사만으로는 세 아들에게 충분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장남 옴 프라카시는 인도 법인을 맡았고, 막내 알로케는 태국으로 떠나 현재 석유화학 대기업인 인도라마벤처스를 경영 중이다. 스리 프라카시는 2008년에 철강계 거물이자 처남인 락시미 미탈이 사는 런던으로 이주한 반면 아들인 아밋은 싱가포르에 자리 잡았다. 아밋은 그룹 이사로서 신규 프로젝트와 기업인수를 책임지게 되었다. 인도라마의 아프리카 지역 사업도 그의 관할이다. 인도라마가 나이지리아 등 서부 아프리카에 투자한 약 20억 달러는 해당 지역 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액 중 최고액이다. ━ 32. 워노위조요 가문 49억 달러인도네시아워노위조요 일족은 1927년 중국에서 이주했다. 친척이 운영하던 담배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알려진 수르야는 1958년에 크레텍(정향담배) 제조사 구당가람을 세웠다. 그로부터 사반세기 후수르야의 장남 라크만 할림이 경영권을 승계했고, 그가 사망한 2008년부터 동생인 수실로 워노위조요가 경영에 참여했다. 지금도 수실로는 인도네시아의 주요 크레텍 생산기업으로서 약 60억 달러(시가총액 기준) 규모인 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 33. 파텔 가문 48억 달러인도약학 교수였던 라만바이 파텔은 친구 인드라바단모디와 함께 1952년에 카딜라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들의 첫 일은 빈혈치료용 비타민 생산이었다. 1975년에는 라만바이의 아들이며 약학을 전공한 판카즈가 카딜라에 합류했다. 모디의 아들이 입사하자 동업자들은 1995년에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파텔 가문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를 참고하여 이름붙인 자이두스 그룹의 주력사는 카딜라헬스케어다. 2001년에 부친이 사망한 후 판카지가 회장이 되었다. 카딜라는 현재 매출액이 13억 달러로, 인도에서 손꼽히는 복제약 제약사다. 판카지의 아들로서 3세대인 샤르빌은 2007년부터 카딜라에서 일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유명한 설탕대체품 슈거프리를 생산하는 자이더스웰니스의 회장이다. ━ 34. 황 가문 44억 달러싱가포르황칭창은 동업자 여섯 명과 함께 1935년 유나이티드차이니즈뱅크(현 유나이티드오버시스뱅크)를 설립했다. 아들 황주야오는 회장 및 CEO로 38년을 재직하며 UCB를 싱가포르의 지방 은행에서 동남아시아 제3의 대출기관으로 끌어올리고 2012년 회장에서 사임했다. 그의 장남 황이종은 지점 484개를 보유한 동남아시아 최대급 은행 UOB의 CEO다. 차남, 삼남인 황이차오, 황이린은 자회사를 경영한다. 현재 회장은 가문 외부인이다. ━ 35. 소벨 가문 42억 달러필리핀필리핀에서 역사가 오랜 기업집단 중 하나인 아얄라 그룹을 이끄는 것은 가문의 7세대다. 181년 전 마닐라에서 작은 증류소로 시작했던 아얄라는 현재 아얄라랜드, 뱅크오브필리핀아일랜즈, 글로브텔레컴, 마닐라워터 등 상장사의 지주사이자 필리핀 최대급 기업집단이다. 일곱 형제가 아얄라의 지분 3분의 1 이상을 보유한다. 장남인 하이메 2세가 회장 겸 CEO고, 그의 아들 페르난도는 사장 겸 COO다. 8세대 중 경영에 참여하는 사람은 3명이다. 소벨 가문이 보유한 아얄라 재단은 마카티 시의 아얄라 박물관에 재정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 36. 린 가문 41억5000만 달러말레이시아린 가문의 부는 말레이시아의 외딴 산지에 있는 빽빽한 열대우림을 유명한 휴양지로 바꿔놓은 故 린우통의 비전으로부터 나왔다. 1968년 창립했을 때 겐팅 그룹에는 호텔 및 카지노 하나밖에 없었다. 현재 그룹은 여러 나라에서 야자유, 전력발전, 석유가스, 부동산, 크루즈 사업 등에 다각화했다. 영국, 미국, 한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에 있는 카지노로 가장 유명한 겐팅 그룹은 현재 2세대인 린궈타이가 지휘한다. 그의 아들이자 승계 예정자인 린공후이는 겐팅홍콩의 최고정보책임자 겸 비서실장이다. 린우통의 부인을 포함하여 5명 이상이 재산을 공유한다. ━ 37. 살림 가문 41억2000만 달러인도네시아안토니 살림이 이끄는 살림 그룹의 사업 영역은 식품, 플랜테이션, 자동차, 부동산, 소매, 은행업이다. 안토니의 부친 린샤오량은 중국 푸젠성 출신으로, 1938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여 의류를 방문판매하기 시작했다. 수하르토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67년에 그를 만나면서 얻은 관계는 이후 오랫동안 린샤오량에게 큰 이익이 되었다. 수하르토가 1998년 하야하자 살림 그룹은 파멸할 뻔했다. 시간이 흘러 그룹은 재건되었고, 안토니의 아들이며 세계 최대의 인스턴트 라면 생산자인 인도푸드수크세스마크무르의 이사이자 유제품 부문 자회사 대표인 액스턴이 승계를 준비 중이다. ━ 38. 뤄 가문 41억 달러홍콩케네스 로는 부의 기원을 부친 뤄딩방이 세운 의류 대기업 보시니에서 찾는다. 케네스는 1970년 부인 이본과 함께 스웨터 공장을 세웠다. 지금 케네스는 세계적인 의류업체인 크리스탈 그룹의 대표이고 아들 앤드루는 CEO다. 반면 뤄자바오는 부동산에서 부를 일궜다. 주룽에 있는 파크 호텔 등이 그의 값진 재산이다. 변호사인 딸 웬디는 백화점 사업을 운영하고, 아들 앨런은 호텔을 경영한다. 지난 5월에는 다른 딸이 납치당했다가 몸값을 내고 돌아왔다. ━ 39. 궈 가문 40억5000만 달러싱가포르궈 가문은 폰티악랜드그룹을 통하여 싱가포르 리츠칼튼, 파티나, 카펠라, 콘라드센테니얼 등 고급 호텔과 밀레니아워크, 밀레니아타워, 센테니얼타워 등 최고급 상업시설을 소유한다. 궈량겅, 궈량더, 궈량청, 궈량핑 형제는 인도네시아에서 싱가포르로 1958년에 이주한 직물 상인 겸 부동산업자였던 부친 헨리 궈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았다. 궈량더 회장의 외아들인 에번은 카펠라호텔그룹 아시아의 이사다. ━ 40. 랄 가문 40억 달러인도랄 가문이 소유한 아이허모터스(Eicher Motors)는 로얄엔필드(Royal Enfield) 모터사이클로 유명한 인도 제3의 상용차 제조사다. 그룹의 기원은 만 모한(Man Mohan) 랄이 수입 트랙터 판매 및 서비스 회사 굿어스(Goodearth Co.)를 설립한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는 1958년 독일 아이허 사와 합작하면서 아이허트랙터(Eicher Tractor)로 이름을 바꿨다. 만 모한이 독일에 유학 보낸 아들 비크람(Vikram) 랄은 30년 동안 그룹을 이끌었다. 이후 비크람의 아들 시다르타(Siddhartha)는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모터사이클에만 집중하기 위하여 당시 15개에 이르던 실적 부진 자산 대부분을 처분하고, 볼보와 합작하여 트럭을 만들었다. 그가 경영하는 동안 로얄엔필드 판매량은 2000년 2만4000대에서 작년에 30만대로 늘어나, 미국 대기업 할리데이비슨의 전 세계 판매량을 앞질렀다. 현재 회사의 모터사이클 부문은 전체 매출액 14억 달러 중 1/3, 순이익 중 70%를 차지한다. 비크람의 아내 아니타(Anita)와 딸 심란(Simran)은 인도에서 유명한 가정용품 상점 굿어스(Good Earth)를 경영한다. ━ 41. 펑 가문 39억 달러홍콩토미힐피거, 아베크롬비앤피치, 에어로포스테일 같은 서양 브랜드의 중개상으로 유명한 세계적 무역회사 리앤펑이 펑 가문 소유다. 가문이 중개자 역할을 한 지는 오래되었다. 1906년, 영어 교사였던 펑바이랴오는 지금의 광저우에 수출회사 리앤펑을 공동 설립한다. 영어가 유창했던 그는 중국 제조업자와 서양 구매자 사이에서 핵심 중개자가 되었다. 아들인 펑한주는 1937년 홍콩에 리앤펑의 첫 지사를 열었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펑바이랴오의 동업자는 자기 지분을 펑 가문에 되팔았다. 작년 매출액 197억 달러를 달성한 상장사 리앤펑의 경영자는 펑바이랴오의 손자 윌리엄으로, 형 빅터가 사임한 2012년에 회장이 되었다. 빅터의 아들이며 작년 중역이 된 스펜서는 이익이 2011년 정점에 이른 후 줄어드는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임무를 맡았다. ━ 42. 반구르 가문 38억5000만 달러인도콜카타 재계에서 유력한 가문인 반구르 가문의 뿌리는 상품과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한 문지 람과 람 쿠와르 반구르 형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2·3세대가 경영에 참여하는 동안 그룹은 인도의 황마, 제지, 시멘트, 발전 등 분야에 진출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1991년 후계자 5명이 이 거대한 기업집단을 각자 나누면서 가문의 자산도 분할되었다. 후계자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은 베누 고팔이며, 아들 하리 모한은 이익을 내지 못하던 회사를 인도에서 손꼽히는 시멘트 제조사 시리시멘트로 키워냈다. 하리 모한의 아들 프라샨트는 시리의 전략부서를 총괄한다. ━ 43. 진달 가문 38억 달러인도진달 그룹의 사업영역은 철강, 발전, 시멘트, 인프라, 소프트웨어다. 그룹 회장은 10년 전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한 창업주 옴 프라카시 진달의 부인 사비트리 진달이다. 농가 출신인 옴 프라카시는 1952년부터 양동이를 만들었다. 1964년에는 히사르에 진달인디아라는 파이프 공장을 세웠고, 5년 후에는 진달스트립스라는 대규모 공장을 건설했다. 그가 사망한 직후 회사들은 네 아들 각각에게 분할 상속되어 독립적으로 경영되지만 모두 소속은 여전히 진달그룹이다. 아들 중 사지안은 뭄바이에 있는 자회사 JSW에너지를, 프리드 비라즈와 라탄은 각각 진달SAW와 진달스테인리스를 경영한다. 전직 국회의원이며 진달스틸앤파워를 운영하는 막내 나빈은 자르칸드 지역 석탄 광산 배정 비리 사건과 관련하여 인도 중앙수사국에게 고발당했다. 그는 혐의를 부인했으며 현재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옴 프라카시의 손자 파르드는 부친 사지안이 첨단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려고 만든 신생 벤처캐피탈사 JSW벤처펀드를 운영한다. ━ 44. 아보이티스 가문 36억 달러필리핀세부에 본사를 두고 발전, 교통, 금융, 식품, 부동산 사업을 영위하는 상장 기업집단 아보이티스에 쿼티벤처스(AEV)가 이 가문 소유다. AEV는 스페인 농가 출신인 파울리노 아보이티스가 필리핀으로 이주한 후 19세기 후반에 세운 회사다. 회사 사업영역은 마닐라삼 매매 및 일반 상거래로 시작하여 이후 비사야 제도 사이에서 상품을 운송하는 국내 해운업으로 옮겨갔다. 아보이티스 가문은 1994년 AEV를 필리핀 증시에 상장했지만 건설과 조선업체는 비상장을 유지했다. 영업에 일상적으로 관여하는 가족 19명 중 대부분은 4·5세대다. 이 가문은 400명이 넘는 친척과 친목모임을 갖는다고 알려졌으며, 이들의 채용과 승진에 대해서는 규정에 따라 정식 절차를 밟는다. ━ 45. 라따나락 가문 35억 달러태국채널7 방송국이 소속된 곳이 바로 끄릿 라따나락이 경영하는 이 가문 소유 방콕브로드캐스팅앤티비다. 끄릿과 모친, 여동생 다섯, 아들 차촌이 나누어 가진 부는 끄릿의 중국 태생 부친 추안 때부터 쌓인 것이다. 6세일 때 방콕으로 건너온 추안은 항만노무자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아유디아은행와 시암시티시멘트의 주주가 되었다. 이 가문에도 2006년에 설립한 똔손프로퍼티라는 부동산 회사가 있다. 차촌은 가문 소유의 투자회사들을 경영한다. ━ 46. 문잘 가문 32억 달러인도92세인 히어로그룹(Hero Group) 창업주 브리즈모한 랄(Brijmohan Lall) 문잘은 현재 인도 최대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히어로모터코퍼레이션(Hero MotoCorp) 명예회장이다. 브리즈모한은 1947년 펀자브 주에서 세 형제와 함께 자전거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이 세운 히어로사이클(Hero Cycles)은 한때 세계 최대 자전거 제조사이기도 했다. 이후 이들의 사업영역은 자전거에서 모터자전거로 이동했다가, 1984년에 혼다(本田)와 합작하면서 모터사이클이 되었다. 이 가문이 2010년에 넷으로 나뉘면서 브리즈모한 집안은 혼다 합작법인을 맡아 경영하게 되었다. 1년 후 문잘 가문은 27년에 걸친 혼다와의 협력 관계를 청산했다. 현재 브리즈모한의 아들 파완(Pawan)이 회장으로서 경영을 담당하며, 손자들은 녹색에너지 및 금융서비스 벤처기업을 경영한다. ━ 47. 히라난다니 가문 31억 달러싱가포르나라인다스 히라난다니는 1947년에 현재 파키스탄에 속한 지역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하고 직물업체인 로열실크스토어를 창업했다. 그가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 하나를 절단했을 당시 13세에 불과했던 장남 라즈 쿠마르가 경영에 갑작스레 참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아소크 쿠마르가 합류한 후 형제는 회사를 번창하는 의류점 체인으로 성장시켰다. 임차료 상승 때문에 부동산을 처음으로 매입해 본 형제는 가게에서 힘들게 일하기보다 공간을 임대할 때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들의 회사 로열브라더스를 통하여 인도에서 손꼽히는 쇼핑몰을 여럿 소유하게 된 라즈와 아소크 쿠마르가 ‘쇼핑센터의 왕’으로 불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형제는 6년 동안 복잡한 구조조정을 거친 후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기 위하여 2011년에 자산을 분할했으며 그 결과 회사는 둘로 나뉘었다. 라즈가 운영하는 로열홀딩스는 라즈의 아들 키신 R. K.의 RB캐피탈과 합병 예정이다. 부자는 함께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사무용 빌딩을 건축하고 있다. 아소크와 아들 바비가 이끄는 로열 그룹은 최근 힐튼 호텔로부터 객실 540개짜리 더블트리 호텔을 1억1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 48. 뤄 가문 30억 달러홍콩 ━ 49. 효성 조 씨 가문 29억5000만 달러대한민국조 씨 가문은 세계 7위 타이어제조사 한국타이어를 보유할 뿐 아니라, 이와 별도 기업집단인 효성그룹을 통하여 산업자재, 건설,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사업을 영위한다. 한국타이어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조홍제가 인수한 허름한 타이어 가게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6년 조홍제는 섬유·직물 전문회사 동양나이론을 설립했다. 그는 사업 초기 여러 가지 시도를 했으며, 한 예로 현재의 삼성물산은 원래 1948년에 삼성 창업주 이병철과 함께 창업한 건설사였다. 현재 조홍제의 차남 조양래가 한국타이어 회장, 장남 조석래가 효성그룹 회장이다. 작년에는 원래 승계 예정자였던 조현문이 형 조현준을 횡령 혐의로 고발하는 등 조석래의 아들들 사이에 분쟁이 격화되었다. 효성 대변인은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 50. 하미에드 가문 29억 달러인도마하트마 간디를 따르던 크와자 압둘 하미에드는 인도가 필수 의약품을 자급하게 만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1935년 뭄바이에 시플라를 설립했다. 가장이던 그가 1972년 사망한 후 아들 유수프와 무스타파가 회사를 이어받았다. 유수프가 회장이던 시절, 회사는 AIDS 등 질병 관련 저가 복제약을 공급하며 대형 제약사와 경쟁했다. 유수프는 2013년 퇴임했지만 권한 없는 명예회장 자리는 유지했다. 1년 후 무스타파는 부회장 자리를 사임했다. 그의 딸 사미나 바지랄리는 7월에 이사회에 합류한 후 경영상 담당 분야를 넓혀가는 중이다.- KEREN BLANKFELD, GRACE CHUNG, JUSTIN DOEBELE, RUSSELL FLANNERY, NEERJA PAWHA JETLEY, NAAZNEEN KARMALI 포브스아시아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포브스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는 포브스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해외 기사의 전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15.10.28 16:16

22분 소요
[30대 그룹 3·4세 승계 Ⅳ]

산업 일반

━ OCI그룹 | 3세 승계 과정에서 계열분리 완료할 듯 이우현 OCI 대표 그룹 승계 유력 ... 태양광 사업 성공과 지분 확대가 관건 재계 서열 23위권인 OCI그룹은 그간 고 이회림 창업주의 장남 이수영(73) OCI 회장과 차남 이복영(68) 삼광글라스 회장, 3남 이화영(64) 유니드 회장 3형제가 그룹을 나눠 경영했다. 그룹 전체 매출의 38%가량을 차지하는 OCI가 단연 그룹의 중추로, 삼광글라스 등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사실상 계열분리 수순을 밟고 있다. OCI그룹은 아직 창업주 2세 간의 지분 분할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3세들이 경영에 참여한 상태로, 해당 지분을 순차적으로 정리하거나 상징적인 지분만 남기면서 계열분리를 마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그룹의 핵심 회사이자 지주사인 OCI의 지분 보유 현황을 보면, 우선 이수영 회장이 보유한 지분이 10.92%로 오너 일가 중 가장 많다. 여기에 이 회장의 장남인 이우현(47) OCI 대표가 OCI 지분 0.5%를 보유했고, 계열사 넥솔론을 이끄는 차남 이우정(46) 넥솔론 대표는 OCI 지분이 없다. 현재까지는 이우현 대표가 OCI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구도다. 다만, 지분율이 높지 않은 만큼 경영권 승계와 그룹 내 위상 강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지분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이우현 대표는 미국 유학 이후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다가 2005년 OCI의 전신인 동양제철화학에 전략기획본부장(전무)으로 입사해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았다. 2007년 OCI 사업총괄 부사장(CMO)으로 승진한 데 이어 2013년엔 OCI 대표이사 사장이 되면서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 받았다. 이무렵 OCI는 보유했던 삼광글라스 지분과 이테크건설 지분 일부를 이복영 회장의 장남 이우성(38) 이테크건설 전무 등에게, 유니드 지분은 이화영 회장 일가 쪽에 각각 넘기는 등 교통정리에 나섰다. OCI 대표로 취임한 이후 2년간 이우현 대표는 이수영 회장의 후계자로 손색이 없는지 시험대에 올랐다. 태양광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 대표는 거꾸로 OCI가 기존에 하고 있던 석탄화학 등의 사업 대신 태양광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 대표는 “남이 하는 사업 대신 안 하는 사업을 해야 길이 보인다고 믿는다”고 말해왔다.이후 그는 OCI를 세계 3대 폴리실리콘 제조사로 키우는 성과를 냈다. 최근에도 비(非)태양광 부문의 알짜 계열사인 OCI머티리얼즈 매각을 추진하면서 태양광 사업에 매진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버지 못지 않게 강한 추진력을 지녔다는 평이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OCI의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부작용도 생겨 이를 수습하는 것이 이 대표의 과제다. 지난해 6월 기준 OCI의 총 차입금은 약 2조6000억원, 부채비율은 123%로, 2011년(부채 비율 94%) 이후 계속 재무구조가 나빠지고 있다. 한편, 동생인 이우정 대표가 설립·경영해온 넥솔론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매각 대상이 됐다. 태양광 잉곳과 웨이퍼 생산업체인 넥솔론은 지난해 8월 경영난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올 7월 매각주간사를 선정하는 등 본격적인 매각 준비에 들어갔다.- 이창균 기자 lee.changkyun@joins.com ━ 효성그룹 | 형제의 아슬아슬한 공동경영 3형제간 다툼서 차남은 낙마 ... 절묘했던 힘의 균형이 싸움의 빌미로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는 남았다. 효성그룹의 승계 이야기다. 효성의 출발은 조홍제 회장이 설립한 효성물산이다. 이병철 회장과 함께 삼성그룹의 창업자 중 한 명이었던 조홍제 회장은 1962년 독립해 효성물산을 설립했고, 이것이 지금의 효성그룹으로 성장했다. 그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가 장남 조석래(80) 효성 회장이다. 조석래 회장은 세 명의 아들을 뒀다. 조현준(47) 효성 사장, 조현문(46) 동륭실업 대표, 조현상(44) 효성 부사장이 효성그룹의 3세들이다.2012년까지만 해도 효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순조롭게 보였다. 세 명의 아들이 비슷한 지분을 가지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각자가 6~8%의 효성 지분을 보유했고, 현금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3개의 회사 지분도 세 명이 공평하게 나눠 가졌다. 장남 조현준 사장은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의 지분 80%, 차남 조현문 대표는 동륭실업의 지분 80%, 삼남 조현상 부사장은 신동진의 지분 80%를 보유했다. 각 회사의 나머지 지분 20%는 그 회사의 지분 80%를 소유하지 않은 두 아들이 10%씩 나눠 갖는 방식으로 힘의 균형을 맞췄다.이런 균형에 균열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2013년이다. 당시 중공업 PG장을 맡고 있던 차남 조현문 대표가 직을 내려놓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효성 지분 7.18%를 처분한 것. 사실상 효성그룹의 경영권 경쟁에서 발을 뺐다. 미국 하버드대 법학 박사 출신인 조현문 대표는 이후 변호사로서의 행보를 걸었다. 올해 초부터는 자신이 지분 80%를 보유한 동륭실업의 단독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동륭실업은 효성그룹의 계열사로 묶여있지만 그룹 내 거래나 지분관계가 없어 계열분리가 가능한 상태다.과정이 깔끔하진 않았다. 조현문 대표는 회사를 퇴사한 후 효성그룹의 계열사를 상대로 10여 차례 크고 작은 소송을 제기했다. 대표적 소송이 지난해 7월 제기한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신동진의 대표이사(최현태 효성그룹 상무)를 배임 및 횡령으로 고발한 사건이다. 피고발자는 최 상무지만 사실상 칼끝은 형과 동생을 향했다.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는 조현준 사장이 80%의 지분을, 신동진은 조현상 부사장이 8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조현문 대표가 진행한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거기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조현준 사장은 8000억원대의 횡령·탈세·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이 같은 악재가 있음에도 효성의 승계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편이다. 장남 조현준 사장과 삼남 조현상 부사장이 효성의 지분을 끌어 모아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 두 아들은 현재 각각 아버지보다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승계작업의 마지막 고비도 결국 형제간의 우애가 될 전망이다. 현재 효성그룹은 장남이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그룹 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삼남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조현준 사장이 여러 송사에 얽혀 주춤하는 사이 조현상 부사장은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성민 기자 park.sungmin1@joins.com ━ 영풍그룹 |손자까지 ‘한 지붕 두 가족’? 승계 작업 속도 올리는 최씨 일가 ... 장씨 3세는 경영수업 중 영풍그룹은 3대에 걸쳐 두 집안이 공동 경영하는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다. 고 장병희 창업주와 고 최기호 창업주의 아들·손자들이 경영권과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고려아연 중심의 비철금속 계열은 최씨 일가가 맡고, 지주사 ㈜영풍을 비롯한 전자 계열 쪽은 장씨 일가가 담당하는 구조다. 비철금속 부문은 ‘영풍→고려아연→서린상사→영풍’, 전자 부문은 ‘영풍→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영풍’, ‘영풍→영풍문고→영풍개발→영풍’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가 지배구조의 뼈대다. 이 구조가 상속과정에서 지분이 줄어든 데 따른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장씨 일가에서는 고 장병희 창업주의 차남인 장형진(69) 영풍 회장 쪽이 경영권을 쥐고 있다. 그의 두 아들도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씨 일가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장남 세준(41)씨는 고려대·남가주대(USC) 생화학 석사, 페퍼다인대 MBA 과정을 거친 후 2009년 반도체 패키징 계열사인 시그네틱스에 전무로 입사했다. 이후 2010년부터 영풍전자에서 원재료 구매를 총괄했고, 2013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차남인 세환(35)씨도 서린상사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장씨 일가의 3세는 그룹의 주요 지분도 일찌감치 확보했다. 장세준 대표는 지주사인 ㈜영풍 지분 16.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장세환 대표 역시 ㈜영풍 지분 11.2%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영풍문고·영풍개발 등 그룹 내 전자부문 순환출자 고리에 있는 주요 계열사 지분도 상당 부분 확보한 상태다. 또한 반도체 계열사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영풍전자를 ㈜영풍의 100% 자회사로 두고 있어 장세준 대표가 자연스럽게 반도체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다.최씨 일가 3세 중에서는 최윤범(40) 고려아연 부사장이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영풍의 비철금속 부문은 현재 2세대 형제가 돌아가면서 경영을 맡고 있다. 최 부사장은 이들 중 장남인 최창걸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1975년생인 그는 미국 콜롬비아대학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7년 5월 고려아연에 입사했다. 이후 기획담당 상무와 전무를 거쳐 2012년 부사장에 오르는 등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 특히 친형인 최우현(David Choi)씨가 2009년 영풍정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낙마한 이후 그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현재 원료·자재·기술 등을 총괄하며 핵심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최 부사장은 2013년부터 비철금속 부문의 중간 지주사 격인 고려아연 지분을 조금씩 늘려왔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 1.8%와 고려아연에 출자하고 있는 영풍정밀·유미개발의 지분을 2.7%, 8.8%씩 들고 있다.이들 계열사 지분으로 고려아연에 간접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다, 최씨 일가 중 고려아연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직접적인 지배력까지 높은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비철금속 부문뿐 아니라 ㈜영풍 지분(2.2%)까지 신규 취득하며 후계 승계 기반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함승민 기자 ham.seungmin@joins.com ━ KCC그룹 | 안정적 2세 경영에 3세 경영 일러 정몽진·몽익·몽열 3형제 지분율 높아 ... 2세→3세 주식 승계율 3% 불과 지난 8월 12일 정몽진(55) KCC 회장은 자사주 4983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49억원 규모다. 정 회장의 KCC 보유 지분율은 기존 17.76%에서 17.81%로 늘었다. 정 회장이 자사주를 매입한 것은 7년 만이다. 경영권과는 상관없는 투자였다. 증권가에서는 ‘삼성물산 투자 손실과 실적 부진으로 KCC 주가가 하락하자 방어 차원에서 매입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정몽진 회장의 부친은 KCC 창업주인 정상영(79) 명예회장이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KCC는 일찌감치 2세 경영 체제를 갖췄다. 2000년 정상영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추대되고, 장남 정몽진 회장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세 형제에게 그룹 모태인 KCC 지분을 차등 증여했다. 현재 정몽진 회장의 KCC 지분은 17.81%, 둘째인 정몽익(53) KCC 사장은 8.81%, 셋째인 정몽열(51) KCC건설 대표는 5.29%를 보유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도 여전히 5%를 보유하고 있다.KCC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 오너 일가 지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41개 대기업집단의 오너 일가(혈족 6촌, 인척 4촌 이내 포함)가 보유한 지분율은 평균 4.27%다. 하지만 KCC는 27.2%에 달한다. 지분 승계 역시 거의 마무리 됐다. KCC의 자산승계율은 87.1%에 이른다. 30대 그룹 중 롯데 다음으로 높다.KCC그룹은 지주사인 KCC가 KCC건설과 금강레저·코리아오토글라스·KCC자원개발을 지배하고, KCC건설이 미래·대산컴플렉스개발·보령흰여울·완주흰여울을 지배하는 구조다. 재계에서는 KCC 2세의 경영 체제가 매우 안정됐다고 본다. 맏형인 정몽진 회장이 그룹 전체를 총괄하고, 2006년 KCC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둘째 정몽익 사장은 KCC 경영 전반을 챙기고 있다. 나이는 두 살 터울로, 둘 다 용산고·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땄다. 셋째인 정몽열 KCC건설 사장은 건설 부분을 총괄한다. KCC건설은 전체 주식의 66%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다. KCC가 36.03%, 정몽열 사장이 24.81%, 정상영 명예회장이 5.18%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KCC의 안정적인 지분·지배구조를 봤을 때, 적대적 인수합병(M&A) 또는 경영권 분쟁 여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본다.3세 경영을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세 형제 모두 50대 초·중반으로 젊고, 이들의 자녀도 어리다. 3세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정몽진 회장의 장녀 재림씨는 올해 25세다. 정몽익 사장의 장남은 17살, 정몽열 사장의 장남은 올해 성년이 됐다. 다만, 3세들도 조금씩 지분을 늘리고 있다. 정 회장의 아들 명선씨는 KCC 지분 0.46%를 보유하고 있다. 8월 21일 종가 기준으로 약 162억원어치다. 장녀 재림씨 KCC는 지분 0.13%, 정몽익 사장의 장남 재선씨는 0.26%, 정몽열 사장의 장남 도선씨는 0.17%를 보유하고 있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주식 자산 중 3세로의 승계율은 3%가 채 되지 않는다.-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 ━ 동국제강그룹 | 3세 형제경영 거쳐 4세(장세주 회장 장남) 장손에게 현장 경험 중시하는 승계 원칙 ... 4세 보유 지분은 미미 동국제강 후계구도에 변화가 엿보인다. 장자 중심 승계에서 형제 승계로 방향을 틀고 있다. 경영권을 물려주기에 4세 연령이 너무 어리다는 게 주요 이유다. 장세주(62) 회장이 동생 장세욱(53) 사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동국제강은 전통적인 승계 원칙이 있다. 아들들을 회사에서 오랜 기간 일하도록 해서 능력을 평가해 승계하는 전통이다. 1954년 창업 이후 철강업 하나만 줄곧 파온 회사답게 후계자가 사업장 곳곳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창업자 고 장경호 전 회장의 고집이 반영된 모습이다. 장자 위주 승계가 주였지만 형제승계도 있었다. 창업주의 장남 고 장상준 전 회장이 타계하자 3남인 고 장상태 전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이다. 차남 고 장상문씨는 경영보다 외교에 관심이 많아 경영권을 고사했다. 이후 경영권은 장상태 회장 쪽 자녀로 이어져 내려왔다. 3세 경영인인 장세주(62) 회장은 아버지 장상태 회장 사망 1년 뒤인 2001년에 지분과 경영권을 승계받아 동국제강 대표이사 회장이 됐다. 장세주 회장은 25세이던 1978년 동국제강에입사해 각 계열사 이사를 거친 뒤 아버지 사망 전 동국제강 대표 이사에 선임됐다. 뚜렷한 후계자로 지목돼 오랫동안 경영수업을 받은 셈이다.장 회장은 경영권을 받고 10년 뒤 9살 어린 동생인 장세욱 사장에게 계열사 유니온스틸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줬다. 장 사장은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동국제강에 들어와 여러 계열사를 돌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재계에서는 장 사장이 조카인 4세 장선익(33)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전 징검다리 후계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유니온스틸은 지난해 11월 동국제강에 인수·합병돼 현재와 같이 장세주 회장, 장세욱 사장의 형제경영 체제를 만들었다. 합병으로 형제간 계열분리 이슈는 잦아들었다. 나눠 줄 것이라면 회사를 합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동생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아직 4세 후계자는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2006년 7월 당시 대학 4학년이던 장선익씨는 여름방학 기간을 활용해 동국제강 신입사원 연수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안 전통에 따라 승계를 위해 동국제강에 입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선익씨는 대학 졸업 후 보스턴컨설팅에서 근무하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면서 동국제강 미국 지사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동국제강은 인터지스·디케이유아이엘 등의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포함해 8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동국제강이 48.4%를 쥐고 있는 인터지스는 신항만 관련사 4개를 거느린 주력 계열사다. 동국제강 소유지분을 보면, 3세 경영인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사장은 동국제강과 계열사 페럼인프라 주식만 가지고 있다.창업주 때와 같이 형제경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장 사장의 두 자녀인 훈익(26)·효진(21)씨에게까지 경영권이 내려갈 것 같진 않다. 지분만 놓고 따져보면, 선익씨의 동국제강 지분은 0.4%에 불과하다. 하지만 장씨 일가 4세 자녀 중에선 가장 많다. 사촌 동생인 장훈익씨(26)에 비해 10배가량 많고, 올해 18세인 친동생 승익씨는 동국제강 주식을 0.15% 갖고 있다.-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2015.08.30 09:27

10분 소요
[재벌 3세 부자들] 경영 전면에 서서히 부각

산업 일반

한국의 400대 부자 가운데 재벌 3세들은 총 29명이었다. 대부분 삼성·현대 ·효성·LG그룹 계열사의 자녀로, 기업 임원들로 활동하고 있는 3세들도 상당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씨는 삼성전자의 4년차 상무. 이재용 상무보다 네 살 어린 현대백화점그룹의 정지선 씨는 2001년 현대백화점 이사에서 몇 단계씩 승진을 거듭해 2003년 그룹 총괄 부회장에 올랐다. 삼성 이재용 상무와 외사촌이며 동갑내기인 정용진 씨는 2000년부터 신세계백화점 부사장 직책을 맡고 있다. 최근 중국 공략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재벌 2·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같은 업종에서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늘고 있다. 특히 고종사촌 간인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와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는 대표적인 라이벌이다. 이 상무는 각종 리노베이션을 단행하면서 신라호텔에 변화를 몰고 왔다. 조선호텔 프로젝트 실장을 맡고 있는 정 상무는 신세계그룹의 후계구도 상 조선호텔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순위 나이(이름 직책 부 조부 7 이재용(38) 삼성전자 상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고 이병철 삼성 명예회장 37 이부진(35) 호텔신라 상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38 이서현(33) 제익모직 상무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22 정용진(38) 신셰계 부사장 이명희 신셰계그룹 회장 "(외조부) 277 정유경(33) 조선호텔 상무 이명희 신셰계그룹 회장 "(외조부 8 정의선(36) 현대자동차 상무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39 정지선(34) 현대백화점 부회장 정몽근 현대 백화점 회장 " 399 정교선(32) 현대백화점 상무 정몽근 현대 백화점 회장 " 315 정유희(32) 고 정몽필전 인철제철 회장 " 318 정은희(34) 고 정몽필전 인철제철 회장 " 95 조현범(34) 한국타이어 부사장 조양래한국타이어 회장 고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 124 조현식(36) 한국타이어 부사장 조양래한국타이어 회장 " 213 조희원(38) 조양래한국타이어 회장 " 225 조현준(37) 효성 부사장 조석래효성 회장 " 290 조희경(39) 조양래한국타이어 회장 " 327 조현문(36) 효성 전무 조석래효성회장 " 328 조현상(34) 효성 상무 조석래효성회장 " 51 구광모(28) 구본능희성그룹 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264 구본상(35) 구자원전 LIG손해보험 회장 고 구철회 LIG 창업주 333 구연경(37) 구본무LG그룹 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350 구훤미(59) 구본무LG그룹 명예 회장 고 구인회 럭키그룹 창업주 368 구본천(42) LG벤처투자 사장 구자두LG벤처투자회장 " 66 이원준(27) 고 이식진전 태광 회장 고 이임룡 태광그룹 회장 106 설윤성(22) 설원량전 대한전선 회장 고 설경동 전 대한전선 회장 133 방성훈(33) 조선일보 기자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 회장 고 방응모 조선일보 창업주 162 박재영(35)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 고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 169 홍석표(26) 홍영철 고려제강 대표이사 홍종렬 고려제강 명예회장 271 장세준(31) 장형진 영풍회장 고 장병희 영풍그룹 명예회장 294 임상민(25) 임창욱 대상회장 임대홍 전 미원그룹 명예회장 335 박준영(27)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 고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 345 양홍준(22) 고 양회문 전 대신증권 회장 양재봉 대신증권 명예회장 *LG家는 창업주인 고 구인회 전 럭키유지 회장부터 시작할 경우 구광모 ·구본상 ·구연경 씨는 재벌 4세가 된다.

2006.05.10 17:07

3분 소요
美 하와이의‘딱딱한 딸기’는 치열한 경쟁 안 해 생긴 결과

산업 일반

‘재계의 외무부 장관’. 조석래(70) 효성그룹 회장에게 따라붙는 별명이다. 조 회장은 1990년대 초반부터 한·미 재계회의 한국위원장, 한·일 경제협회 회장,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국위원장 및 국제회장(현 국제명예회장) 등을 맡으면서 왕성한 국제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물꼬를 튼 한·미 FTA에 기여한 재계의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이코노미스트」는 1월 25일 한·미 재계회의에 참석차 미국 하와이에 머물고 있던 조 회장을 현지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휴양지의 대명사 미국 하와이. 하와이의 ‘현관’인 호놀룰루. 유명한 와이키키 해변을 따라 늘씬한 호텔들이 경쟁하듯 서 있다. 할레쿨라니(Halekulani)호텔도 그중의 하나다. 고개를 들면 일출이 일품이라는 화산 분화구 다이아몬드 헤드가 보이고, 다시 오른쪽으로 돌리면 윈드서핑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천국이 따로 없다. 그래서 할레쿨라니는 하와이어로 ‘천국 같은 집’이란 뜻이다. 이 천국 같은 휴양지는 비즈니스의 명소이기도 하다. 지난 1월 20∼22일 호놀룰루에서 비행기로 40여 분 떨어진 마우이섬 리츠칼튼호텔에서 제19차 한·미 재계회의 공동운영위원회가 열렸다. 한국위원장으로 회의를 성공적으로 주도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을 할레쿨라니호텔에서 만났다. 와이키키 해변을 등 뒤로 조 회장과 마주 앉은 것은 1월 25일(현지시간) 오전 10시였다. 수영장과 연결된 캐주얼 레스토랑인 ‘하우스 위다웃 어 키(House without a Key)’에서였다. 조 회장은 옅은 하늘색 와이셔츠에 노타이, 흰색 재킷을 걸친 캐주얼 차림이었다. 노(老)신사에게 어울리는 색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폴리네시아의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놓았다.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다듬는 모습이 느긋해 보였다. 이 호텔에 묵으시나요. “그렇지 않아요. 아침에 이곳에서 약속이 있어서 왔어요.” 그러더니 시계를 흠칫 쳐다본다. 12시에 점심 약속이 있어서란다. 그러면 오전에만 약속이 세 개인 셈인데…. 조 회장에게 이 좋은 휴양지는 그냥 출장지일 뿐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서 얘기가 누그러졌다. 늦은 아침식사였다. 조 회장은 딸기 요구르트와 와플, 녹차를 시켰다. “하와이 딸기는 맛이 없어요. 딱딱하고 당도가 떨어져요. 한국 딸기 맛이 훨씬 나아. 2∼3년 사이 우리나라 딸기가 많이 변했어요. 일본의 개량종을 도입하고 좋아졌지요. 그래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게 좋은 것이에요.” 1월 2일 있었던 효성그룹 신년사에서 그는 “품질경영을 근간으로 고객중심 경영을 추진하자”고 말했다. ‘딱딱한 딸기’ 얘기를 꺼내면서 사방이 바다로 가로막힌 덕분에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되고, 품질경영을 등한시한(?) 하와이의 딸기 재배농가를 꾸짖고 싶었던 모양이다. 언론 인터뷰가 많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조용히 사는 거지요. 태평양경제협의회(PBEC)나 한·일 경제협회, 한·미 재계회의 등에 관계하다 보니 기업인치고는 신문에 이름이 자주 나오는 편입니다. 따로 인터뷰할 일이 별로 없어요. 비즈니스맨은 조용히 비즈니스를 해야지요. (비즈니스) 결과로 말해야지. 내가 정치인도 아니고….” 곧바로 조 회장은 “내가 인기가 좀 없지요”라고 말을 걸었다.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라고 물었다. 효성에서 CEO를 지낸 어느 한 분이 ‘회장님은 너무 꼼꼼해서 모시기 어렵다’고 하던데요. “꼼꼼하다? 선친 얘기를 조금 할게요.” 이번에도 이야기가 길어졌다. 조 회장은 50년대 중반 제일모직 창업 시절의 고(故) 조홍제 회장을 회고했다. “당시 선친께서 모직 기계를 도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일단 일본에 갔습니다. 공장을 다 뒤졌지요. 성에 안 차니까 다시 미국 보스턴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때 한국은행 뉴욕지사장이 유창순씨였는데, 그의 협조로 보스턴의 모직회사를 둘러보고 ‘모직의 명가’ 영국으로 행선지를 옮겼어요. 결국 독일 스핀바우사에서 최고급 직물 기계를 도입했습니다. 장장 2년에 걸쳐 4개 나라를 둘러보고 결정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두고 ‘꼼꼼하다’고 합니다. 그게 아니지요. ‘알고 일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덤비는 것은 도박이지 사업이 아니에요. 알아야 면장도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번 제19차 한·미 재계회의는 한국 측에서 구평회 E1 명예회장,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등 기업인과 주요 경제단체 부회장들이 참석했다. 미국 측에선 윌리엄 로즈 시티그룹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스탠리 게일 게일사 회장, 도날드 카낙 AIG 수석부회장 등이 나왔다. 양국 대표들은 다년간 양국의 자유무역을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양국의 조속한 FTA 추진을 촉구해왔는데, 이번에는 한·미 FTA 협상 개시를 환영하고 향후 성공적인 추진을 요구하는 서신을 양국 대통령에게 보냈다. 일반인에게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이슈는 비자 면제 요청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97년에 거의 다 된 일이었어요.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외환위기 때문에 좌절됐습니다. 당시 사업에 망한 기업인이나 실직한 직장인들이 관광비자로 미국에 들어갔다가 불법 체류하는 사례가 늘었어요. 그러다 보니 비자 심사가 깐깐해졌고 ‘3% 룰’에 걸린 것이지요. 그런 데다 2001년 9·11 사태가 터지면서 규제가 더 엄격해졌어요.” 미국 비자 면제 대상국이 되려면 신청거부율이 2년 연속 3%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3.1∼3.2% 수준이다. 한·미 재계회의는 “미국의 7대 교역국인 한국이 27개국이나 되는 미국 비자 면제국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미 정부에 비자 면제를 위해 노력해줄 것을 촉구했다. 사실 조 회장이 크게 염두에 두는 것은 한·미 FTA다. 조 회장은 “이번 재계회의에서도 GE·IBM·시티그룹 등 미국의 주요 기업과 경제단체들이 민간대책기구를 만들어 한·미 FTA 협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의했다”고 전했다. 한·미 FTA에 대해 그는 “더 큰 시장을 얻는 아주 큰 일이다.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한·미 간 FTA 협상을 이제 한국이 주도한다는 느낌입니다. “서둘러야 해요. 현재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무역촉진권한(TPA)이 내년 7월 종료됩니다. 그 전에 협상을 완료하려면 오히려 시간이 부족합니다.” 조 회장은 한·미 FTA가 “더 급한 이유는 우리한테 있다”고 말했다. 투자를 살리고,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선 두 나라의 FTA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방어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공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빼먹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지적하는 대(對) 한국 투자의 첫 번째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알면서 왜 물어요? 노사 문제지요. 보다시피 하와이는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관광지엔 성수기가 있고 비수기가 있어요. 성수기엔 관광객이 많아서 고용이 많아집니다. 반대로 비수기엔 해고가 늘어나요. 비수기에 해고가 자유롭지 못하다면 어떻게 회사가 직원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까. 노동 유연성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노무현 대통령도 대기업 노조가 너무 경직돼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계 경제의 블록화 경향과 FTA 체결 추세는 민간외교의 ‘힘’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런 면에서 조 회장의 행보는 주목받는다. 왕성한 대외활동을 통해 국제 경제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외무장관’이라는 호칭이 붙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연중 130일을 해외에서 보낸다. 비즈니스도 중요하지만 수백 명의 ‘노랑머리 친구들’에게 “한국은 안심하고 투자해도 되는 나라”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 그에게 큰 일이다. 바로 연락이 되는 외국 기업인이 얼마나 있습니까. 한국에 투자한 외국 회사 중에 인연이 각별한 곳도 있겠네요. “‘하이!’ 하면서 인사하는 인물은 수백 명이 되지요. 일본의 한 전자부품 회사가 ‘충남 오창에 공장을 짓겠다’며 제반 여건을 문의해와 성의껏 알아봐줬지요. 나중엔 어디에 땅을 사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와 입지까지 소개해줬습니다.” 부동산 중개까지 해준 셈이네요. “하하, 그렇네요. 대외 경제활동이라는 것이 이렇게 친구를 만드는 일입니다. 친구가 중요한 일을 상의해 오는데 당연히 발벗고 나서야지요.” 친구를 만드는데 무엇이 중요합니까. “자주 만나고 밥 먹고 술 먹는 것이 좋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어학이 중요해요.” 조 회장의 영어 솜씨는 재계에서 알아준다. 일본에서 고교와 대학을 다녀 일본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의 재계 인사와 미팅할 때 재계 원로로서 헤드 테이블에 앉았는데 자연스럽게 대통령과 외국 기업인 간의 통역을 해준 일도 있다. 효성의 엄성룡 전무는 “회장님은 급하면 영어가 먼저 나올 정도”라고 했다. 조 회장의 세 아들인 현준(38) 부사장, 현문(37) 전무, 현상(35) 상무 역시 영어·일어는 기본이고 제3외국어에도 능하다. 효성은 조 회장의 부친인 만우(晩愚) 조홍제 회장이 56세에 창업한 기업이다. 고향인 경남 함안에서 군북산업조합을 경영하다 상경한 만우 회장은 48년 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과 손을 잡는다. 1000만원(圓)을 삼성물산에 출자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만우 회장은 ‘걸어다니는 무역백과사전’으로 불리면서 삼성의 해외영업을 지휘했다. 62년 호암과 결별해 지각 창업하면서 ‘늦고 어리석다’는 뜻으로 스스로 ‘만우’라고 호(號)를 정한 일은 유명하다. 만우 회장은 효성물산을 기반으로 효성그룹을 세웠는데 66년 11월 동양나이론을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에 유학 중이던 조석래 회장이 공장건설본부장으로 경영에 참가하게 된다. 조 회장의 프로필은 효성의 산 역사인 셈이다. 70년대 중반 그룹의 주력 계열사를 물려받은 조 회장은 중전기·건설·화학·정보통신 등으로 효성의 울타리를 넓혔다. 자식 얘기를 해보지요. 자식 농사는 누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보면 나는 행복하고 러키한 편이지요. 아이들이 스스로 열심히 하니까. 외국에서 공부도 열심히 했고, 어학 실력도 좋아요. 그런 자질을 고맙게 생각해요. 그러나 아직도 많은 것을 배워야 해요. 자식 자랑하면 뭐라고 하던데…. (웃음)” 이번 임원 승진에서는 누락됐던데, 계열사 CEO로 발탁할 뜻은 아직 없습니까. “CEO 문제는 달라요. 자격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기자 양반, 사업이 성공하는 것하고 아들이 잘 되는 것 중에 무엇을 고르겠습니까. 사업 잘하는 사람이 있고, 그 옆에 핏줄이 있어요. 누구를 시키겠습니까? CEO는 철저히 경쟁해야 합니다. 물론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자격이 된다면 맡기겠지요.” 만우 회장께서 ‘숭덕광업(崇德廣業)’이라는 휘호를 물려준 것이 유명합니다. “예, 선친께서 물려준 가르침입니다. ‘덕을 쌓아 업을 넓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잘 못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점수를 주신다면. “0점입니다.” 효성맨들이 섭섭해하겠습니다. “아니지요. 더 좋아할 걸요. 더 잘하려고, 더욱 덕을 베풀라는 내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입니다.” 외환위기를 전후한 효성의 구조조정은 유명하다. 16개 계열사를 매각 또는 통폐합하면서 효성T&C·중공업·생활산업·물산 등 주력 계열사를 ㈜효성으로 합병한 것이다. 이와 함께 ‘퍼포먼스 경영체제’를 도입, 성과 위주의 경영을 정착시켰다. 효성에 퍼포먼스 경영이 도입된 지 9년째입니다. “그것이 성과주의거든요. 비즈니스는 중앙에서 컨트롤하는 경우가 있고, 세분화해서 분업하는 경우가 있어요. 퍼포먼스 유닛(PU)은 세분화지요. 책임제로 세밀하게 나눠서 시스템을 갖춘 것입니다. 조직은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때로는 분할하고 때로는 통합하면서 교대, 교대하는 것입니다.” 역시 점수를 매긴다면. “현재는 합격점입니다. 80점 정도. 제도 자체는 잘 돼 있습니다.” 신년사를 통해 품질·기술·영업을 비롯한 경영의 각 부문에서 글로벌 리딩 기업들과 견줄 수 있는 수준으로 역량을 끌어올리자고 하셨는데…. “지금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이기면 시장에서 이기는 것으로 생각해 왔어요. 효성이 국내 1등은 여러 개 해요. ‘걱정이 뭐 있어’하는 자만심이 생깁니다. 그런 안일한 생각에 대한 워닝(경고)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제 경쟁은 세계에서 하는 것입니다. 일하는 기준이 ‘세계 일등’이 돼야 합니다.” 중국 사업은 어떻습니까. “잘 하고 있어요. 중국은 이제 단순한 생산 기지가 아니라 거대 시장입니다.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시에 타이어 코드·스판덱스 공장을 지었고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시 스판덱스 공장도 가동 중에 있어요. 스틸 코드·페트병·나일론 필름 등도 중국에 공장이 있습니다.” 효성은 지금 재계 몇 등입니까. “순위에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하면 되는 것이지. 순위 경쟁하지 않습니다. 재계가 무슨 축구장인가? 남을 쓰러뜨리게요. 매출 많이 올린다고 좋아하던 시대는 지났잖아요.” 신사업 개발은 꾸준히 하고 있지요. “새로운 사업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기존의 사업에 더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을 계속 구상 중입니다. 연구개발에 많이 투자하고 있어요.” 인수합병(M&A)도 관심사입니다. 많은 기업이 M&A로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기술 개발입니다. 돌아가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께서 ‘할 일은 많다’고 했는데 비즈니스 세계에는 ‘무수히’ 할 일이 많습니다. 더 좋은 방법은 내부에서 역량을 키우는 것이지요.” 그래도 M&A는 성장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장에 매력적인 매물이 많습니다. “어디가 그런가요?” 현대건설·대우건설 같은 메이저 건설회사도 있고 전자·무역회사도 있습니다. “개인적 견해론 현대건설은 현대가 가져가는 것이 순리입니다. ‘집안의 사업’인데 잠시 경영이 안 좋아서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가는 것으로 봐주면 어떨까 싶네요.” 다른 회사는 어떻습니까. 가령 옛 대우 계열사는 어떻습니까. 대우인터내셔널 같은 무역상사는 어떻습니까. “대우인터내셔널은 견실한 회사지요. ‘상사 위기론’에도 끄떡없는 회사지요. 적절한 주인이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효성이 올해로 사십 성상에 오릅니다. 감회를 말씀해 주신다면. “효성은 사실 시대에 앞서가는 회사는 아니지요. 조금 뒤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새는 변하는 페이스로 가고 있어요. 또 그렇게 가야지요.” 약속 시간이 지나도 조 회장이 꿈쩍않자 옆에 있던 비서실의 정욱 차장이 먼저 일어났다. 두 사람은 무슨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조 회장은 7∼8분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고 보니 정 차장이 자동차를 빼러 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눈빛만 가지고도 대화가 되는 사이였다. 덕분에 기자는 8분을 더 벌었다. 화제를 건강으로 돌렸다. 요새도 스키 타십니까. “그럼요. 하체 강화하는 데 스키만한 운동이 없어요. 그러고 보니 올해는 한 번도 못 갔네. 서울 가면 한 번 가야겠네요.” 골프는 얼마나 치십니까? “80개쯤 칩니다. 골프 얘기는 그만하고…. 그런 것보다는 한·미 FTA가 아주 큰 비즈니스 기회라는 사실을 잘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시장이 열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벅찬 일입니까!” 효성그룹은 1966년 설립돼 화섬·중공업·화학·산업자재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타이어 코드·스판덱스·중전기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4년 말 현재 자산 4조3318억원으로, 7200여 명의 임직원이 매출 4조7839억원, 영업이익 887억원을 올렸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1935년 경남 함안생 경기고·일 히비야고 졸업 1959년 일 와세다대 이공학부 졸업 1965년 미 일리노이대 대학원 화학공학 석사 2005년 일 와세다대 명예공학박사 1966년~70년 동양나이론 상무 1981년~現 효성그룹 회장 1987년~現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2년~現 한·중 경제협회 부회장 2000년~現 한·미 재계회의 한국위원장 2002년~現 태평양경제협의회장(현 명예회장) 2005년~現 한·일 경제협회장 2005년~現 한·일 산업기술협력재단 이사장

2006.02.0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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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호 Richest Families

산업 일반

1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63세 4조6,200억원 ↑ (1위 ·3조9,179억원) ‘신경영’ 11년 만에 주력인 삼성전자를 순이익 100억 달러가 넘는 세계 초우량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들 이재용(37) 상무는 삼성전자에서, 장녀 이부진(35) 상무는 호텔신라에서, 차녀 이서현(32) 상무보는 제일모직에서 일하고 있다. 사위 임우재(36)씨와 김재열(37)씨도 경영에 참여했다. 2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83세 1조9,800억원 ↑ (2위 ·2조1,139억원) 1세대 창업주 중 현장을 지키고 있는 대표인물. 2차대전 종전 직후 일본에서 유지제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국내에 진출. 롯데를 38개 계열사에 자산 기준 6위의 그룹으로 키웠다. 3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80세 1조7,600억원 ↑ (4위·1조319억원) ㈜LG의 주요 주주인 장남 구본무(60) LG그룹 회장과 3남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의 보유주식 평가액이 증가했다. 구 명예회장은 요즘 천안 연암대학 인근 수향농산에서 버섯 재배와 된장겷뺑뮌?배양 등으로 소일하고 있다. 4 정몽구 현대 ·기아차그룹 회장. 67세 1조6,500억원 ↑ (3위 ·1조2,152억원) 오는 5월부터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한보철강을 인수했다. 이같은 공격경영을 통해 내년에 부호 순위 3위를 탈환할지 주목된다. 5 이명희 신세계 회장. 62세 1조5,400억원 ↑ (5위·9,843억원)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다섯째 딸. 아들 정용진(37) 신세계 부사장이 지분을 5.59%에서 5.82%로 늘렸다. 6 서경배 태평양 사장. 42세 6,405억원 ↑ (8위·4,961억원) 지난해 태평양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 매출액이 줄었다. 하지만 주가가 올라 태평양 지분 26.1% 등을 갖고 있는 서 사장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늘었다. 서 사장은 고 서성환 창업주의 차남이다. 7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 56세 6,319억원 ↑ (10위 ·4,748억원) 국내 최고 교육산업 부호. 눈높이교육의 ㈜대교는 온라인 교육업체 대교이오엘 등 6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8 정상영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 69세 6,294억원 ↑ (6위·5,789억원)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 동생. 지난해 장남 정몽진(45) 회장 등에게 주식을 물려줬다. 정몽진 회장은 지난해 초 14.85%였던 지분을 17.62%로 늘리며 최대주주가 됐다. 9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 68세 5,730억원 ↑ (7위 ·4,978억원)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차남. 형 조석래(70) 효성그룹 회장은 50위에 올랐다. 장남 조현식(35)씨는 부사장, 차남 조현범(33)씨는 상무로 한국타이어 경영에 참여했다. 10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38세 5,468억원 ↑ (12위 ·3,971억원) 현재 31.6%의 지분을 갖고 있는 엔씨소프트 창업자. 온라인 게임 리니지로 돌풍을 일으켰다. 창립 5년째인 2001년에 매출 1,000억원을 넘었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이 1,090억원을 기록했다. 11 이재현 CJ 회장. 45세 5,119억원 ↑ (9위·4,830억원)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장손. 씨티은행에서 2년 근무한 뒤 85년에 입사해 2002년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누나 이미경(47)씨가 지난해 말 CJ엔터테인먼트 등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부문 계열사 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2 박경복 하이트맥주 명예회장. 83세 4,630억원 ↓ (11위·4,695억원) 대선주조는 48년 당시 생산부장인 고 박경영 씨에게 불하됐다. 박경복 명예회장은 그의 동생으로 69년 조선맥주를 인수해 분가했다. OB맥주에 밀려 만년 2위였던 조선맥주는 차남 박문덕(55) 회장이 93년 출시한 하이트맥주로 1위에 등극했다. 13 장평순 교원 회장. 54세 4,217억원 ↑ (16위·2,905억원) 1985년 교육사업을 시작, 빨간펜과 구몬학습 등 학습지로 부를 일궜다. 장 회장이 각각 48.0%와 49.5%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교원과 공문교육연구원은 2003년 각각 8,058억원과 3,90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4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73세 4,027억원 ↑ (13위·3,829억원)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 65년에 롯데공업을 설립해 분가했다. 장남 신동원(47)씨는 농심의 대표이사 부회장이고 차남 신동윤(47)씨는 율촌화학 부사장이다. 3남 신동익(45)씨는 메가마트의 최대주주. 서경배 태평양 사장이 둘째 사위다. 15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63세 3,300억원 ↑ (14위·3,792억원)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3남. 1974년에 일찌감치 분가했다. 지난해 말 853억원어치의 주식을 부인 우경숙(54)씨와 두 아들 정지선(33)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과 정교선(31) 현대백화점그룹 이사에게 넘겼다. 16 허창수 GS 회장. 57세 3,161억원 ↑ (21위·2,194억원) LG그룹 구씨 가문과 57년 동업 관계였던 허씨 가문의 대표적 경영자. ‘소유하되 경영하지 않는다’는 가문의 전통과 달리 LG건설갟G전선 회장 등을 지내며 그룹 경영에 직접 참여했다.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17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명예회장. 64세 3,074억원 ↓ (15위·3,360억원) 보일러기술 자격증 소지자로 1962년에 귀뚜라미보일러를 설립했다. 같은 해 국내 최초 아파트인 마포아파트에 보일러를 공급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SBS의 2대 주주로 SBS인터내셔널 회장과 대구방송 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18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61세 3,051억원 ↑ (20위 ·2,272억원) 건설에서 시작해 인수 ·합병(M&A)을 통해 동부그룹을 일궜다. 10여 년 전부터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다니는 장남 김남호(30)씨에게 지분을 물려주고 있다. 김남호 씨는 동부화재 1대 주주이며 동부제강과 동부정밀 등의 지분도 갖고 있다. 19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53세 3,015억원 신규 진입 한화그룹 회장이며, 대한생명을 인수한 뒤에는 이곳의 대표이사 회장도 맡아 직접 경영하고 있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한화 지분을 꾸준히 늘리면서 주식 평가액이 증가했다. 20 허완구 승산 회장. 69세 2,842억원 ↑ (25위·1,860억원) 고 허만정 LG그룹 공동 창업주의 다섯째 아들. 1960년대 말부터 홀로서기에 나서 운수업체인 승산을 창업했다. GS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된 회사는 없지만 그룹 경영에는 관여하고 있다. 21 김정주 모바일 핸즈 대표. 37세 2,831억원 신규 진입 1994년 설립된 게임업체 넥슨의 창업자이자 대주주이며, 자회사인 모바일 핸즈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해 매출 670억원, 순이익 210억원을 올린 넥슨은 장외 시장에서 주당 1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22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 54세 2,791억원 ↑ (18위·2,599억원)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6남. 현대중공업에서만 30년 가까이 몸담았다. 현대중공업의 주식 10.80%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회의원, 대한축구협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23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52세 2,530억원 ↑ (19위·2,542억원) 교보생명의 지분 37.25%를 가진 1대 주주로 창업주인 고 신용호 회장의 장남. 의사를 하다 2000년 교보생명 회장에 올랐다. 취임 후 회사의 변화와 혁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24 허정수 LG기공 사장. 55세 2,437억원 ↑ (22위·2,136억원) 허창수 GS 회장의 동생으로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 LG기공 지분 100%(290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GS 지분은 3.39%. ㈜LG 주식을 288만여 주 갖고 있다가 최근 처분했다. 25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70세 2,347억원 ↑ (52위·1,182억원) 원양어선 선장으로 출발해 식품 ·금융 · 전자 ·건설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 총수가 됐다. 동원금융지주의 주가가 크게 올라 순위가 지난해 52위에서 25위로 뛰었다. 26 문태식 아주산업 회장. 77세 2,305억원 ↑ (44위·1,314억원) 2002년 대우자동차판매를 인수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레미콘업체인 아주산업의 계열사로 서교호텔 ·아주기술투자 ·신아주 등이 있다. 장남 문규영(54) 회장이 아주산업을, 차남 문재영(52)씨는 중고차업체 신아주를, 3남 문덕영(46)씨는 아주기술투자를 각각 경영한다. 27 김상헌 ㈜동서 회장. 56세 2,246억원 ↑ (53위·1,160억원) 김재명 동서식품 창업주의 장남. ㈜동서는 코스닥 상장기업. 지난해 코스닥 부호들의 재산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주가가 올라 재산이 1,000억원 넘게 늘어났다. 동서식품 외에 동서유지겢堉볍璲?등이 계열사다. 28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77세 2,213억원 ↑ (23위·2,069억원) 주가가 올라 재산은 늘었지만 순위는 다섯 계단 밀렸다. 아들 정몽규(43)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함께 16.9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지난해 적대적 M&A의 상황에 몰린 삼양식품의 ‘백기사’로 나서기도 했다. 29 홍종렬 고려제강 명예회장. 87세 2,161억원 ↑ (29위·1,795억원) 60년 동안 부산에서 특수 선재 제조에 매진했다. 1만원 선이었던 주가가 1만7,000원 선으로 오르면서 주식평가액이 크게 늘었다. 30 양귀애 대한전선 고문. 58세 2,015억원 신규 진입 지난해 3월 타계한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부인. 최근 현정은(50) 현대그룹 회장과 함께 세계경영연구원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듣고 있다. 31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 67세 1,993억원 ↑ (31위·1,635억원) 고 이재준 대림그룹 창업주의 장남.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89.70% 등을 갖고 있다. 3남2녀도 대림코퍼레이션 ·대림 산업 ·대림I&S 등의 지분을 보유. 32 허영인 SPC그룹 회장. 56세 1,976억원 ↑ (48위 ·1,212억원) 고 허창성 삼립식품 명예회장의 차남. 삼립식품 사장으로 있다가 1972년 독립해 샤니를 설립했다. 2002년에는 형이 경영하던 삼립식품을 인수했다. 지난해 매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부자 순위에서 16단계 올라섰다. 33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56세 1,824억원 ↑ (30위·1,667억원)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 한진 주식 5.91%, 한진중공업 0.02%, 대한항공 9.63% 등을 갖고 있다. 어머니 김정일(82)씨도 한진 ·한진중공업 ·한불종금 주식 일부를 보유. 외아들 조원태(29)씨는 대한항공 지분 0.03%를 갖고 있다. 34 최태원 SK 회장. 45세 1,794억원 신규 진입 경영권을 둘러싸고 소버린과 지분 경쟁을 벌였다. SK 주가가 1년 사이 두 배 넘게 올랐고, SK케미칼 주식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35 이화경 미디어플렉스 사장. 49세 1,722억원 ↑ (51위 ·1,196억원)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차녀이자 담철곤(50) 오리온그룹 회장의 부인. 이 사장 일가는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오리온제과의 지분 26.2%를 갖고 있다. 지난해 주가 상승으로 이번 부자 순위에서 16단계 올랐다. 36 박성훈 재능교육 회장. 60세 1,664억원 ↑ (46위·1,256억원) 1977년 서울 신설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10여 명과 함께 창업한 재능교육은 현재 교육 관련 계열사 8개사를 두고 있다. 이번 부자 순위에서 10단계 상승했다. 37 윤석금 웅진닷컴 회장. 60세 1,658억원 ↑ (49위·1,201억원) 연간 매출 2조원 규모의 웅진의 총수. 방문판매의 귀재였으며 웅진을 11개 계열사를 둔 중견그룹으로 키웠다. 지난해 주가 상승으로 부자순위가 12단계 올랐다. 38 구평회 E1 명예회장. 79세 1,649억원 ↑ (50위·1,200억원)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 보유주식 평가액은 장남 구자열(52) LG전선 부회장이 557억원, 차남 구자용(50) E1 사장이 410억원, 3남 구자균(48) LG산전 부사장이 386억원이다. 부자 순위에서 12단계 올랐다. 39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88세 1,615억원 ↑ (38위·1,417억원) 맨손으로 창업해 동양제철화학과 유니온 ·유니드 등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을 일궜다. 장남 이수영(63) 회장은 경총 회장을 맡고 있다. 40 박병엽 팬택 부회장. 43세 1,558억원 ↓ (24위·1,940억원) 팬택앤큐리텔을 국내 이동전화 단말기 업계의 3위 업체로 키웠다. 팬택 주식의 19.36%를 보유한 최대주주. 41 허진수 LG칼텍스정유 부사장. 52세 1,480억원 ↑ (56위·1,8061억원)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3남. LG건설 지분 6%와 GS홀딩스 주식 3% 정도를 보유. 42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57세 1,459억원 ↓ (28위·1,802억원) 고 방일영 조선일보 회장의 장남으로 조선일보의 대주주이자 후계자. 43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51세 1,428억원 ↓ (35위·1,429억원) 고 조중훈 회장의 3남으로 한진해운 지분 6.9% 등을 갖고 있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44 이호진 태광산업 회장. 43세 1,417억원, 신규 진입 고 이임룡 태광그룹 창업주의 막내아들. 태광산업 ·대한화섬 지분 14% 외에도 비상장 주식을 다량 갖고 있다.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가가 올라 부호 리스트에 새로 진입했다. 45 정은섭 대주산업 회장. 67세 1,356억원, 신규 진입 축산사료 전문업체 대주산업의 창업주. 아들 정경한(36) 성담 사장과 함께 비상장기업인 화성사 주식을 보유. 46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59세 1,332억원, 신규 진입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3남으로 GS홀딩스의 지분 약 5%를 갖고 있다. 삼양인터내셔날은 핑 브랜드 골프용품과 말보로 담배를 수입 ·판매한다. 47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 77세 1,330억원 ↑ (55위·1,113억원) 1964년에 취임해 30년 동안 조선일보를 이끌었다. 2003년 조카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48 배상면 국순당 회장. 81세 1,291억원 ↑ (17위·2,691억원) 92년 백세주를 개발해 대박을 터뜨렸다. 국순당 경영은 맏아들 배중호(52) 사장이 맡고 있고, 차남 배영호(46)씨는 국순당에서 분가해 전통주 회사 배상면주가를 차렸다. 딸 배혜정(49)씨는 탁주회사 배혜정누룩도가를 운영한다. 49 고제철 금광기업 회장. 75세 1,275억원 신규 진입 48년 동안 대형 토건사업을 전문으로 해왔다. 1970년대 나주 왕곡재 간척공사에 손대면서 급성장했으며 대아건설·금광주택 ·송원산업 등이 자회사다. 50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70세 1,266억원 ↓ (36위·1,425억원) 화섬 부문에 주력해 효성을 타이어코드 세계 점유율 1위, 스펀덱스 세계 2위 등 국내 최대 화섬기업으로 키웠다. 세 아들 조현준(37) ·조현문(36)·조현상 (34)씨의 지분이 18.7%, 조 회장 지분이 10.8%다. 51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67세 1,236억원 신규 진입 고 허정구 명예회장의 장남. 현재 GS홀딩스 지분의 약 4%, 삼양통상 주식은 약 17%를 갖고 있다. 삼양통상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나이키 신발을 만든다. 52 남승우 풀무원 사장. 53세 1,211억원↓ (41위·1,392억원) 사법고시에 4번 낙방한 뒤 현대건설을 거쳐 82년 풀무원을 창업했다. 이후 20여 년 만에 풀무원을 국내 최대의 자연식품 회사로 키웠다. 53 김영준 성신양회 회장. 61세 1,206억원 ↑ (54위·1,144억원) 고 김상수 성신양회 창업주의 외아들. 외환위기 때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기업체질을 강화했다. 두 아들 김태현(31) ·김석현(25)씨도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각각 수백 억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다. 54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76세 1,204억원 ↓ (33위·1,577억원) 일본에서 기술을 익혀와 국내에 인쇄회로기판(PCB) 산업을 태동시킨 뒤 40여년 동안 PCB 사업에만 주력했다. 55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 50세 1,162억원 ↓(37위·1,422억원) 고 우상기 창업주의 장남. 개성상인의 후손답게 적자 ·차입 ·어음이 없는 ‘3무(無)경영’을 추구한다. 신도리코는 60년 창업 이후 복사기 분야에서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56 구태회 LG전선 고문. 82세 1,145억원 ↑ (57위·1,029억원) 고 구인회 명예회장의 동생. 일가에는 장남 구자홍(59) LS그룹 회장(333억원)과 차남 구자엽(55) 희성전선 부회장(188억원), 3남 구자명(53) 극동도시가스 부회장(194억원) 등이 있다. 57 윤세영 태영 회장. 69세 1,125억원 ↓ (43위·1,363억원) 장남 윤석민(41) 사장과 함께 건설회사 태영의 대주주. 태영은 민영방송 SBS의 최대주주. 58 유상덕 삼천리 회장. 46세 1,122억원, 신규 진입 고 유성연 창업주의 장남. 삼천리는 도시가스 등 에너지 관련 사업에 주력해왔다. 선대에 이어 이만득(49) 삼천리 공동회장과 동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59 박종구 삼구 회장. 73세 1,071억원 ↑ (58위·1,000억원) 미군 부대의 고철을 수출하는 일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인물. 삼구쇼핑을 CJ에 매각한 뒤 지금은 서울 용산에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을 짓고 있다. 60 허진규 일진 회장. 65세 1,057억원 ↓ (27위·1,810억원) 67년 일진다이아몬드를 창업. 이 회사는 세계 공업용 다이아몬드 시장의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다. 61 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 62세 1,053억원, 신규 진입 허창수 GS홀딩스 회장과 함께 허씨 일가를 대표하는 경영인. 이론과 현장경험을 갖춘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62 임광수 임광토건 회장. 77세 1,053억원 신규 진입 일생을 건설현장에서 보냈다. 토목에만 전념하다 80년대 이후 주택·레져·금융 사업으로 다각화했다. 63 이정훈 서울반도체 사장. 52세 1,000억원 ↓ (39위·1,413억원) 삼신전기 부사장 출신으로 92년에 서울반도체를 설립했다. 최근 친환경적인 교류 전원을 쓰는 발광다이오드(LED) 램프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2005.03.0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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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은 기업들 뭐가 다른가… 재운·관운 만나면 기업운‘활짝’

산업 일반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울산 현대조선소를 방문해 정주영 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경제 기자를 오래 했지만 기업에게 운(運)이 작용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다. 다만 기업이 견뎌온 세월의 변화무쌍함은 여러 차례 지켜봤다. 언제나 세월은 무정하고 그 변화는 비정(非情)한 법이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월은 반드시 시류(時流)를 몰고 온다. 그 시기에 지나치게 과민한지 또는 둔감한지에 따라 성패가 엇갈리게 된다. 시류를 정확히 읽어내는 지혜와 적응하는 처신이 필요했겠지만 그러고도 설명이 안 되는 부문이 있다면 이를 운(運)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경제 제일주의 시대는 관운 지난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이란 배고픈 국민에게 밥 먹여 주려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태산준령이라도 돌파하려는 야생마와 같은 기업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업인을 애국자로 떠받들고 기업 성과에 따라 명예와 권위를 매겨줬다. 이 시절 기업인들은 타고난 역학적 재운(財運)보다는 근면과 성실로 사업보국(事業報國)하려는 열정이나 충성도가 평가돼야만 했다. 매년 기록경신을 숭상하던 그 시절, 기업은 수출과 건설입국(立國) 성과를 확대 생산하기 위해 대형주의와 제일주의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선단(船團)경영으로 성급하게 몸집을 불려 문어발이란 지탄을 받게 됐다. 당초 창업 1세가 기업을 시작한 것은 가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생존경제였다. 그러다가 정부 주도 경제개발기를 맞아 근면과 절약정신을 창업자본으로 애국과 충성에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이 기업인이었다. 다만 기록 경신이 치열해지면서 반칙과 편법의 유혹을 받게 되고 정경유착기에는 허겁지겁 무치(無恥)경영에 빠지기도 했다. 그 시절 노조나 시민단체는 눈치 볼 것 없었다. 투명경영이나 윤리경영이란 글로벌시대 자본주의 강대국의 논리로서 요즘에야 나왔다. 정부가 외자도입 지불보증을 해 주고 관치금융 배분해주고 KOTRA가 해외시장을 개척해 주던 시절, 대형 사업종목의 실수요자도 정부 기준에 의해 선정됐다. 그러므로 당시 재운이란 관청 로비에 의한 신뢰와 처신을 겸비하는 것이 상책이자 관운과의 만남이었다. 수출산업이나 중화학공업 등 근대화를 위한 사업이 곧 국책사업이었기에 정부가 적부심사를 전담했다. 그래서 매월 경제동향보고회의, 수출진흥확대회의, 방위산업진흥회의 등에 초청받아 특출한 사업성과가 발표되거나 감동적인 수출 사례가 보고되면 승승장구의 길이 열렸었다. ‘멎어 있으면 그냥 두지 않는다’ 경제개발기의 신흥기업과 몰락기업들을 지켜보면서 ‘기업이 멎어 있으면 세월이 그냥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체로 기업 수명이 30여년이라지만 이 같은 평균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무너진 사례가 많았다. 수출과 건설 등에서 눈부신 애국적 실적을 쌓아올린 신진자동차·동명목재·국제상사·한일합섬·동아건설 등의 불운을 꼽자면 안타깝다. 완전 몰락은 아니라도 창업주의 명예가 여지없이 훼손된 대우·현대·쌍용 등 일류기업들의 경우는 차라리 서글픈 이야기다. 이를 개인 기업인들의 운세라고 단정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멀리 일제로부터 경제개발기까지 명문 토종기업사를 기록하려다 역부족으로 몰락한 화신산업이나 잠시 신흥기업으로 반짝 빛을 냈던 명성·율산·한보 등은 또 다른 측면의 시운을 탓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건 누굴 탓하기 이전에 변화를 거역한 기업은 ‘세월이 그냥 두지 않았다’고 해석함이 옳은 것이다. 시운이나 시류를 탓한다면 최신 용어로 ‘코드’를 뜻하겠지만 기업이 시대를 역류하거나 정치적, 사회적 환경변화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생존을 위한 처신은 능력일지언정 운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과(前科) 사면 없는 팔자 소관 대체로 치부(致富)에 성공하고 나라의 훈장을 받은 기업이 쉽게 망한 사례를 보면 자신은 우국충정에 불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비정한 세월이 그를 버린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기업인들은 전과자들의 세계에서살고 있다. 기업인들의 전과는 개전의 정과 상관없이 사면되는 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기업을 경영하자면 조세법, 공정법을 비롯해 노동법, 환경법은 물론 국민정서법이나 시민단체법을 위반하게 되니 모조리 범법자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기업인들은 8·15 이래 유죄인으로 출발했으니 이를 운명이라 할지 팔자라 할지 알 수 없다. 8·15 해방 뒤 반민특위의 구속 제1호가 일제 하의 조선제일의 갑부인 화신 박흥식(朴興植)사장이었다. 그로부터 유명 기업인일수록 검찰과 형무소를 자주 출입했다. 5·16 정부가 경제개발에 착수코자 기업인들을 찾아보니 일본으로 도피했거나 마포 형무소에 갇혀 있었다. 자유당 정부 하의 기업인들이란 몽땅 탈세와 부정축재자로 단죄돼야 할 처지였다. 이를 기업인 개개인의 부도덕으로 볼 것인지 잘못된 세월의 형벌이라고 해야 할지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올챙이 기자 시절 세칭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져 유력 기업인이 구속되고 한국비료를 건설해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발표를 직접 들었다. 그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밀수재벌이란 지탄이 서슴없이 나온다. 권력형 범죄나 국사범들도 잠시 구속됐다 풀려나면 사면 복권돼 높은 벼슬도 하고 권력도 행사하는 경우와는 딴판이다. 반면에 기업인들은 반민특위로부터 부정축재와 정경유착의 죄인으로 오늘날까지 전과자 신세를 면치 못할 뿐더러 정치·사회적 사면을 못 받는 팔자라고 한탄할 수밖에 없다. 사카린 밀수사건 이후 기업인들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방식의 회장제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형무소 가는 경우만은 피해야겠다는 계산으로 도장은 사장에게 맡기고 오너는 회장으로 결재 없는 통치자 역할로 위험을 회피키로 한 것이다. 그뒤 회장제가 유행하자 다시 왕회장이나 명예회장제로 안전지대를 더욱 넓혀 오늘에 이른다. 따지고 보면 기업인 팔자는 태생적 운명이다. 해방 이후 6·25와 4·19, 5·16 등 모든 격변을 다 치르고 민주화된 지금에도 각종 경제법과 시민법 등에 의해 다시 범죄인으로 꼽히고 있으니 팔자소관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지만 나라가 오늘만큼 발전한 것은 분명 기업성과의 축적이고 보면 기업인들이란 ‘전과 있는 유공자’가 아닌가. 교주 잃은 야생마들의 실족 기업인들의 운세가 급격히 기운 것은 교주나 사범과 같은 기댈 언덕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0·26의 국변으로 경제 제일주의 대통령이 가고 인기주의 민주화 권력이 들어서면서 사업보국이나 구국충정의 기업인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옥훈련 같은 강 드라이버를 구사했지만 기업인들은 “대통령은 우리 편”이라면서 좋아했다. 특히 야생마 기질이 있는 기업인일수록 박 대통령 방식을 교범처럼 실행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 유고’는 청천벽력이었고 신앙을 잃고 도전의욕을 상실할 지경이 됐다. 방황하면 야생마는 실족하기 쉬운 법이다. 훈련된 강선수일수록 코치나 감독의 잔소리와 채찍이 사라지면 맥이 풀리게 돼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정주영 회장 운세는 정상에 오를 시점에 좌절을 만난 경우다. 생전의 정 회장은 “박통이 다 좋았는데 배 만들라고 야단치는 것이 싫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토목공사하고 자동차 국산화하겠다는 기업인에게 난데없이 “조선사업을 아느냐”고 물으니 “전혀 모른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는 조선사업을 해야만 했고 오늘의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남겼다. 당시 박 대통령은 유사시의 비상탈출이나 식량도입 등을 고려해 무엇보다 조선사업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 회장이 조선에 관심이 없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산업은행 등을 통해 압력을 행사한 모양이다. 박 대통령은 정 회장의 뚝심과 야성만이 험난한 파도를 꺽고 조선공업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세계 최대 걸작품인 현대중공업을 남긴 것은 최고 권력자가 ‘맡겨준 시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6공화국과 불편해져 직접 정치하려다 좌절하고 YS에게 당하고 DJ정부 들어 대북사업의 환상에 젖어 불운을 자초했으니 박 대통령이 없는 시절 야생마의 시류거역이 잘못이었다고 여겨진다. 무모한 돌진은 운세도 못 지켜줘 지금은 해외에서 유랑하는 처지지만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시류를 예측하고 섬유수출 쿼터를 확보해 재벌성을 구축하고 인재를 끌어모아 세계경영의 틀을 마련하는 데까지는 성공한 모델이다. 김 회장은 박 대통령이 ‘밥 먹여 주는 정치’를 시작할 때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내다보고 스웨터 수출확대로 섬유쿼터를 가장 많이 확보한 것이다. 그리고 수출유공의 공적으로 숱한 기업인수로 재벌성을 쌓고 인재집단으로 세계경영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사라진 뒤 이를 유지하기 벅차 분식회계 등으로 위기관리를 하려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정치권의 버림으로 비운을 맞게 됐다. 결국 김 회장도 막강한 교주의 배경이 없어진 뒤에 시류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재계의 본류 가운데 성공한 모델로는 경남 함안 동향 출신의 영남 3인방을 꼽을 수 있다. LG 구인회·삼성 이병철·효성 조홍제 씨 등 세 분은 평생 동지이자 라이벌이며 때론 사업상 얼굴을 붉히고 다툰 사이다. 이들의 사업은 시운을 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엄격한 내부규율이 과욕, 과속을 단속하고 적당한 수준의 처세로 최악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는 운세를 관리하고 시운에 적응했다는 뜻이다. 연고권 때문에 적산 기업을 인수한 두산·SK·한화 등의 사업운은 고비가 있었지만 2세들이 제2의 창업으로 면모를 일신했으니 기업승계의 운을 누린다고 볼 수 있다. 최종건 SK 창업주는 과로로 일찍 타계했지만 동생 최종현 회장이 미국서 화학을 전공한 안목이 있어 기생집에서 일제 한복 치맛감을 보고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 혼방의 여성복지 깔깔이를 개발, 오늘의 그룹을 축성할 수 있었다. 두산은 창업 이래 줄곧 상인정신을 최고의 덕목으로 신봉해 왔고, 한화는 격변기를 맞을 때마다 국가시책에 고분고분했던 창업주의 정신을 따라 권력에 순응코자 했다. 피난상인으로 백절불굴의 투지를 보여준 대한생명의 최성모씨는 신앙심이 돈독한 2세에게 잘 물려줬지만 신규 사업의 불운이 겹쳐 63빌딩마저 잃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또 피난민의 절치부심으로 대성한 대한전선의 설경동씨는 금성사·삼성전자와 격돌하다 주저 앉았다.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죽기살기식의 결전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과잉 집념은 운세도 지켜 줄 수 없다는 교훈인 셈이다. 소문과 평판이 운세보다 무서워 다방면의 만능 보스로 통하던 김성곤씨의 쌍용그룹이 기운 것은 정치에 참여했던 악운이 2세에까지 승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동차에 심취해 꿈의 왕자 스타일을 보여준 김석원 회장이 정치권에 들어가 크게 성공 못하고 그룹이 IMF 풍파에 좌초했으니 잘못 선택한 액운이었다. 소문과 평판이 역학적인 운세보다 무섭고 결정적이라고 믿는다. 신진자동차의 김창원 회장은 능히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대부로 추앙받을 만했다. 그러나 여인의 치마폭에 너무 빠졌다는 소문이 많았다. 말년에는 외화도피 혐의로 구속되고 아들의 고발을 받고 자식을 패륜아로 규정했으니 차마 기억하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부자 간 추태가 연출될 때 부친에게 “전 재산 헌납하시고 명예나 회복하십시오”라고 애원하던 그의 4남은 지금 훌륭한 사업가로 성장했으니 그나마 자식복을 남겼다.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이나 박용학 대농회장도 여인편력 소문이 안 좋았다. 리비아 대수로공사로 명문기업이 된 동아건설은 파산하고 대한농산그룹도 남아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김철호 기아산업 창업주는 자전거로 시작해 3륜자동차와 브리사 승용차까지 바퀴 두 개에서 세 개를 거쳐 네 개로 성공한 분이다.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비라는 의미로 3000리 자전거를 만들고 아시아를 우뚝 세우자는 뜻으로 기아(起亞)라는 상호를 택한 우국충정에 불타 있었다. 김 회장 사후에도 김선홍이란 특출한 전문경영인이 크게 육성했지만 기아는 지금 현대차 계열로 편입됐다. 그의 운세는 자동차 바퀴 네 개가 한계였던가 싶다. 분수를 지켜 액운을 멀리 자유당 재벌로 기억되는 중앙산업 조성철 사장은 이승만 박사의 신임을 받고 당시 건설 5인조가 누리고 있던 지명입찰제를 경쟁입찰제로 바꿔야 한다고 강력 주장하다 몰락했다. 조 사장은 5·16 뒤 마포형무소를 거쳐 초기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으로 잠시 재기했었지만 끝내 기득권 세력의 협공으로 해외를 유랑하다 일본에서 사망했다. 조 사장은 스스로를 극우(極友)라고 호칭할 만큼 매사에 극단적으로 대처하다 스스로 운세를 버렸다고 지적된다. 암울한 일제를 견딘 몇 안 되는 기업인들은 천운(天運)과 조상은덕으로 사업했노라고 회고한다. 도무지 기업을 할 수 없는 풍토지만 배고픈 식민지 국민의 서러움을 덜고 자주독립의 꿈으로 기업을 할 수 있었으니 하늘이 돌봐줬었을 것으로 믿는다. 유일한 박사의 유한양행이나 인촌 김성수의 경방 창업정신이 바로 구국충정이었다. 일제에게는 조선독립운동과 관련 없는 민생경제에 전념한다는 구실로 인허가 절차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기업 내부에는 ‘건강한 국민이 아니면 독립할 수 없다’는 정신과 ‘경제자립 없이는 독립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자주 이념이 살아 있었다. 친일 기업인 1호로 꼽힌 화신의 박흥식 사장에게는 ‘조선인으로 일본인을 능가하는 사업가가 되겠다’는 야망이 있었지만 총독부와 관계가 깊어 비행기를 헌납하는 친일을 마다할 수 없었다. 반면에 경주 최부자 최준씨는 친일과 배일을 함께하는 두 개의 얼굴로 1만석을 지켜냈다. 총독부가 주는 감투는 친동생이 받게 하고 밤이면 상하이 임시정부 밀정에게 독립자금을 건네 줬다. 최부자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1만석을 넘기지 말라’ ‘흉년에는 남의 논을 사지 말라’ ‘아랫사람에게 모질게 하지 말라’는 가훈을 철저히 지켜냈다. 그러니까 낮엔 친일하고 밤엔 배일하는 두 얼굴에 1만석 이상의 탐욕을 경계한 최부자의 경우 분수를 지켜 액운을 멀리한 셈이다. 대체로 기업인들이 겪어온 험난한 세월이 타고난 운세였는지 어쩐지 우리네가 알 수 없다. 경제 기자의 안목으로는 운명이자 팔자이며 일종의 풍토병이었다고 생각한다. 악덕 규정 풍토병 오래간다. 이는 정치와 사회발전에 앞서 경제가 먼저 발전해 이 때문에 경제인이 유공자로 떠 받혀지는 경우가 용납될 수 없다는 정치환경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기업인들은 아무리 공적이 쌓여도 오래 전의 ‘사면 안 된 전과’ 때문에 국가유공자 반열로 올라설 수 없는 상황이다. 청문회라도 열리면 부동산 투기나 아들의 병역미필로 쫓겨나는 공직자들의 허물과 비교도 안 되는 자료가 쏟아질 판이다. 최근 정치적으로는 ‘기업이 곧 국가’라는 극찬까지 나오고 있지만 기업인들은 자신의 신분상 제약을 잊지 말고 분수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세월이다. 정부는 IMF 이후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 시장에 토종자본들은 일절 참여 못하게 막아놓고 외자계 펀드들에게 독식 밥상을 차려 주었다가 뒤늦게 ‘뼈아픈 교훈’이라고 후회한다. 그러나 정부는 후회한다고 했지만 국민정서법이나 시민단체법이 국내자본은 악덕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한 전과가 사면되지 않는 기업인들에게 눈치와 처신이 상책이다. 이런 경영풍토에 역학자들은 기업운을 어떻게 진단할까.

2005.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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