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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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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 절연' 이승기 이번엔 기쁜 소식…'아내 영향 받아'

정책이슈

최근 장인의 주가조작 범죄와 연루된 것에 사과문을 내고 처가와 절연할 뜻을 밝힌 가수 겸 배우 이승기의 근황이 화제다. 5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이승기가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으로부터 2025 불자대상 감사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불자대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불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불자를 발굴해 선정하는 상이다. 이승기 이외에도 2024년 파리 올림픽 3관왕을 달성한 양궁선수 임시현, 정병국 참좋은정책연구원 부원장, 법률사무소 사무장 김윤봉씨 등도 불자대상을 수상했다.조계종 불자대상선정위원회는 “이승기가 다양한 불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영화 ‘대가족’에서 삭발한 스님 역할을 맡아 불교의 가치와 정서를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공로를 설명했다. 또 이승기는 조계종 건축불사인 ‘천년을 세우다’에 1억원을 보시하는 등 불교문화 확산에 앞장선 것으로 나타났다.이날 행사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국민의힘, 한덕수 무소속 대선후보 등도 참석했다. 이 후보는 이승기를 만나 악수를 하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기독교 신자였던 이승기는 아내 이다인의 영향을 받아 불교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모인 견미리와 아내인 이다인, 처형인 이유비 모두 불교 신자로 알려졌다.한편 이승기는 지난달 29일 장인이 주가조작 범죄에 연루된 것과 관련 사과문을 내고 처가와 절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견미리의 남편이자 이승기의 장인인 이모씨는 2014~2016년 자신이 이사로 있던 코스닥 상장사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풀린 뒤 주식을 매각하는 식으로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으며 해당 사건은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된 바 있었다.

2025.05.06 15:15

2분 소요
‘김건희 연루 의혹’ 도이치 주가조작 항소심 재판, 총선 이후로 연기

은행

김건희 여사 연루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의 다음 재판이 총선 이후로 미뤄졌다.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법 형사5부(권순형 안승훈 심승우 부장판사)는 이달 7일로 지정됐던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항소심의 차회 공판기일을 다음 달 25일로 변경했다.이는 지난달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부 구성이 변경되자, 권 전 회장 측이 공판갱신절차와 쟁점 설명에 필요한 시간을 보장해달라며 기일 변경을 요청한 데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이 사건 항소심 공판은 지난 1월 9일이 마지막이다. 이달로 예정됐던 다음 재판이 연기됨에 따라 총선 이후까지 석 달 이상 공백이 생겼다. 재판은 아직 증인신문 절차에 머물러 있다. 다음 공판 이후로도 종결 절차에 들어가기까지는 시일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항소심 재판이 지연되면서 김건희 여사의 연루 의혹을 규명하는 검찰 수사 속도도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검찰은 관련자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권 전 회장 등의 항소심 재판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권 전 회장은 도이치모터스 우회 상장 후 주가가 하락하자 2009년 말부터 2012년 말까지 이른바 ‘주가조작 선수’와 전·현직 증권사 임직원 등과 짜고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2021년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지난해 2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원을 선고받았다.특히 1심 재판부는 김 여사 명의의 계좌 3개가 시세 조종에 동원됐다고 인정했다. 이에 김 여사의 관여 의혹이 재점화했고, 야권은 특검법을 발의하는 등 검찰 수사를 촉구해왔다.

2024.03.03 14:04

2분 소요
“주가 조작 혐의 부인”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 첫 공판

산업 일반

주가 조작 사건으로 기소된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첫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권 회장 측 변호인은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 심리로 열린 권 회장 첫 공판에서 “공소 사실을 전부 부인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검찰이 150장에 이르는 범죄일람표에 기재된 개별주문 거래가 전부 시세 조종이라고 주장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어 변호인은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공소장을 피고인과 변호인들에게 제대로 제공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공소장 별지 부분의 가독성이 떨어져 혐의 부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변호인은 “검찰에 원본파일 제공을 요청했으나 아직 받지 못했다”며 “검찰이 범죄일람표라도 원본파일로 제출하도록 재판부가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4월 구속 만기가 다가오는데 이제 와서 공소장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의견을 못 밝히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 회장은 2009년 1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주가 조작 선수, 일명 ‘부티크’로 불리는 투자자문업체, 증권사 전·현직 임직원 등과 짜고 91명 명의의 157개 계좌를 이용해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혐의를 받는다. 이날 법정에선 권 회장의 범행에 가담한 ‘선수’ 이모씨, 전직 증권사 임직원 등 8명에 대한 심리도 함께 진행했다. 하지만 대부분 “시세 조종 행위에 가담한 적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아내인 김건희씨가 연루돼 있는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권 회장이 주가 조작 세력과 결탁해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세를 조종하는 과정에 김씨가 10억원 상당의 자금을 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임수빈 기자 im.subin@joongang.co.kr

2022.02.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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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 혐의’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 오늘 구속심사

산업 일반

주가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구속 여부가 빠르면 16일 결정될 전망이다. 이 결과가 해당 사건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수사에도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16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서울중앙지법 이세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권 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다. 이는 지난 12일 검찰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데 따른 것이다. 권 회장은 회사 내부정보를 유출하며 주식매매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9년 12월부터 약 3년간 권 회장 자신과 고객이 매수한 도이치모터스 주식은 1599만여주(636억원)에 달한다. 검찰은 그가 허수 매수주문을 넣거나 ‘선수’라 불리는 외부세력을 동원해 주가를 부양하기도 했다고 보고 있다. 권 회장과 함께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투자회사 대표 이모씨 등 3명은 지난달 25일과 이달 5일 구속기소 된 바 있다. 한편 국민의힘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 씨가 해당 주가조작 과정에서 일명 ‘전주’로서 돈을 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권 회장의 구속여부가 빠르면 이날 오후에서 다음날 새벽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김 씨에 대한 수사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보름 기자 min.boreum@joongang.co.kr

2021.11.1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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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

CEO

베일에 싸인 금융가 존 그레이켄은 자산가치 63억 달러로 사모투자 업계에서 2위를 기록하며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184위)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약탈적 금융(predatory banking)’이 격렬한 비난을 받는 요즘 시대에 그는 거침없이 이기적 수익을 추구하며 탈세를 서슴지 않는 비애국적 행태로도 악명을 떨쳤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서 아일랜드로 국적까지 바꾼 그에게 전세계의 거의 모든 연기금들이 돈을 주지 못해 안달이다.부실채권 투자 전문가는 월스트리트에서도 특별한 종자다. 바닥을 친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서 급매로 팔아버리는 강철심장을 가진 이들은 잘못된 결정으로 수렁에 빠진 기업 및 개인 등 금융 약자를 약탈해 돈을 번다는 점에서 공매 투자자와 비슷한 경멸을 받는다. ‘부실채권 투자자’란 명칭 또한 월스트리트가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널리 사용됐던 대머리 독수리(vulture), 무덤 춤꾼(grave dancer), 악덕 자본가(robber baron) 등 욕이나 다름없던 별명을 조금 순화해 표현한 말이라 생각하면 된다.21세기 악덕 자본가 중 론스타 펀드의 존 그레이켄(John Grayken)만큼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는데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면서 미움을 많이 받는 사람도 드물다. 59세의 그레이켄은 올해 순자산 63억 달러로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사모펀드 운용가 중에서는 스티븐 슈워츠먼(Stephen Schwarzman) 블랙스톤 회장 뒤를 이어 2위다. 론스타는 지금까지 약 640억 달러의 자산을 축적했고, 1995년 설립 이후 운영된 15개 펀드는 연평균 20%의 순수익을 기록했다. 그동안 적자를 기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3360억 달러 규모의 투자자산을 가진 블랙스톤은 연평균 순수익 17%를 기록 중이다.그러나 소규모의 전문가 군단을 두고 다양한 자선 활동을 통해 자신과 회사의 이미지를 관리해온 슈워츠먼과 달리 그레이켄은 자신이 어떤 이미지로 보이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도서관이나 학교, 병원은 찾아볼 수 없고, 워런 버핏의 ‘기부 선언’ 참여자 명단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 납세를 하지 않으려고 1999년 미국 시민권을 버리고 아일랜드 시민이 됐으니 애국자라고 할 수도 없다.경기 대침체 이후 그레이켄은 전세계 국유기관 및 은행이 보유한 주택담보 부실채권 및 체납 채권을 매입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고리대금 기관과 스페인 주택 건설업체, 아일랜드 호텔 체인 또한 인수했다. 규제기관은 그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고, 그에게 자신의 주택 담보 대출이 넘어갔음을 알게 된 대출자들은 그의 투자 기술을 경멸해 마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심복으로부터 비난 저격을 당하거나 뉴욕과 베를린, 서울 등의 시위 현장에서 규탄의 대상이 되는데 익숙해진 것 같다. 지난해 뉴욕 법무장관 에릭 슈나이더먼은 그레이켄의 강압적인 담보대출 상환 전략에 대해 감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공격적인 담보물 압류 방식은 주택 보유자와 주택권리 운동가, 노동조합으로부터 광범위하게 규탄을 받고 있다.이번 포브스 기사 취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떤 발언도 거절한 그레이켄은 자신의 회사 내에서도 그다지 사랑 받는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 연기금 보고서를 보면 그는 론스타와 계열사로 있는 자산운용사 허드슨 어드바이저(Hudson Advisors)의 유일 사주다. 다른 주요 사모펀드가 파트너들에게 지분을 아낌없이 주는 반면, 그레이켄은 회사 소유권을 단단히 움켜잡고 있다. 그의 밑에서 최고의 역량을 선보인 직원들은 수백만 달러의 돈을 벌며 부자가 됐지만, 그의 부관 중 상당수가 결국엔 그의 곁을 떠났다. 그레이켄이 회사의 주요 지분을 제안할 만큼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레이켄을 사랑하는 유일한 집단이 있다면 바로 연기금이다. 그레이켄을 신처럼 숭배하는 이들은 기꺼이 그의 죄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지난 수십 년간 그레이켄은 경이로운 수익을 안겨주며 절제된 투자전략을 완벽히 수행했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라고 노리 제라르도 리츠(Nori Gerardo Lietz)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말했다. 리츠 교수는 연기금을 위한 사모펀드 투자 전략 자문사를 운영했던 경력이 있다. “다른 부동산 및 사모투자 펀드 다수는 사실 존 그레이켄을 질투하고 있는 거다.” ━ 뉴욕과 서울 시위 현장의 단골 규탄 대상 오리건 주 공무원 퇴직연금은 론스타 운영 펀드 다수에 22억 달러를 투자했다. 2013년에는 론스타 펀드 VIII에 1억8000만 달러를 예치했으며, 벌써 연수익 29%를 기록 중이다. 2010년 그레이켄이 모집한 46억 달러 규모의 펀드는 오리건 연금 가입자에게 연간 52%의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전세계 거대은행이 대출 상품의 비중을 줄이고 리스크가 높은 사업에서 철수하라는 규제당국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헤지펀드와 론스타를 비롯한 사모펀드는 이들 은행이 보유한 자산을 헐값에 매입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중이다. 그레이켄을 비롯해 오크트리 캐피탈(Oaktree Capital)의 하워드 막스, 아폴로 그룹의 레온 블랙 등 부실채권 전문 투자자들은 그림자 금융가 중에서도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 중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람은 바로 존 그레이켄이다.지난해 영국 런던에서는 첼시 지구에 있는 가장 값비싼 저택 중 하나를 누가 구입했는지에 타블로이드의 관심이 쏠렸다. 침실 9개, 욕실 9개를 갖춘 1600㎡의 벽돌 저택에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와 지하 수영장, 영화관, 일본식 수생 식물원이 들어서 있었다. 저택은 버뮤다에 등록된 한 법인이 7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실제 구매자는 매사추세츠 주법원 기록에서 발견됐다. 공증 법원 기록에서 저택은 그레이켄의 주소지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레이켄은 런던 외곽에 있는 대지면적 20에이커 저택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침실이 무려 15개나 되는 대저택이다. 그레고리 펙이 출연한 1976년 공포영화 의 배경으로도 등장한 적이 있다. 법인 기록을 보면 그레이켄은 스위스 제네바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도 거대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그레이켄의 사모펀드 본사는 댈러스에 위치하지만, 미국 납세자가 아닌 그는 미국에서 1년 중 120일 이상을 보낼 수 없기 때문에 런던에서 거주 중이다. 지인들에 따르면 그레이켄은 어린 시절을 보낸 보스턴 근교 매사추세츠 주 코하셋의 가족집 근처에서 여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코하셋에는 민간 소유의 작은 화이트헤드 섬이 있다. 인도양에 떠 있는 이 섬은 코하셋과 작은 다리로만 연결이 되어 있는데 그레이켄이 지배지분을 가진 버뮤다의 한 회사가 2004년과 2007년 2번에 걸쳐 1650만 달러를 주고 매입했다. 그레이켄은 코하셋에서 주민이 좀더 많은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학업 성적과 하키 실력이 특히 뛰어났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하키팀에서 수비수로 활약했다. 향후 자신의 행보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그레이켄은 팀의 최다 페널티 기록을 보기 좋게 경신했다. 대학 졸업 후 1982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모건 스탠리에서 투자금융 전문가로 활동했다. 부동산 개발사업을 꿈꿨던 그레이켄은 텍사스 억만장자 로버트 배스(Robert Bass)의 테네시 주 내쉬빌 사무 고층건물 계약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프로젝트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테네시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레이켄은 배스와 굳건한 관계를 쌓았고, 내쉬빌에서 태어난 그의 첫 아내도 만났다. 하지만 그레이켄과 베스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레이켄은 자신의 탁월한 노력과 수완에 비해 수익 배분이 적게 돌아오자 1996년 배스와 헤어졌다. 이후 그레이켄은 댈러스에서 4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금을 모집했고, 이 펀드를 ‘론스타’라 이름 지었다. 그는 부실담보대출 채권을 매입하는데 일가견이 있었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직접 담보대출을 해주거나 부동산을 매입하는 쪽으로 사업 범위를 넓혔다. 우선 캐나다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레이켄은 이후 국제무대로도 진출했다. 그레이켄은 그의 성공을 특징 짓고 경쟁자와 차별화 시켜주는 여러 전략을 사업 초기부터 구축해 나갔다. 그레이켄은 연체 담보대출 상품처럼 부동산 연계 부실채권에 집중했다. 미국 경제가 좋을 때면 그는 불경기를 맞은 국가로 눈을 돌려 헐값으로 떨어진 자산을 매입했다. 그래서 1998년 론스타의 주요 활동 무대는 일본이었다. 당시 경제위기로 만신창이가 된 일본의 은행들은 공개경매를 통해 자산을 매각하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수치스러움을 감당할 수 없어서 가격을 대폭적으로 낮춰 비밀리에 부실채권을 매각했다. 론스타는 이를 기회로 잡아 은행 자산을 헐값에 매입했고, 1990년대 후반에는 독일과 프랑스 등 어려움에 처한 다른 유럽 국가로 진출했다. ━ 부실채권의 가격을 급등시키는 ‘반전술사’ 그레이켄은 부실채권의 가격을 빠르게 급등시키는 ‘반전술사’의 명성을 얻었다. 그가 운영하는 펀드는 주기가 짧아서 투자기간이 기껏해야 3년도 되지 않는다. 자산을 손에 넣으면 즉시 워크아웃을 시켜서 빠르게 매도한다. 그레이켄은 버핏 식의 매입 후 보유 전략이 뭘 모르는 ‘팔랑귀’에나 어울린다는 투자 철학을 가지고 있다. 론스타는 장기 투자라는 그럴 듯한 말을 늘어놓거나 자산에 괜한 애착을 가지지도 않는다. 수 개월, 수 년을 기다리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더라도 가차없이 팔아버린다. 다른 사람이 함께 뜯어먹을 수 있는 살점을 남겨두고 뼈를 버리는 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레이켄은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매입가격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라고 믿는다. 매입 후 일어나는 마법은 그리 중요치 않다. 자산을 재량껏 꾸며서 가치를 높이는 일은 다른 사람의 몫이다. 2016년 2월 회의에서 안드레 콜린(Andre Collin) 론스타 사장은 “우리는 매입가로 수익률을 결정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가치 상승 기회가 분명히 눈에 보이면 가끔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도 있지만, 괜찮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매도 기회가 보이면 바로 매도한다.” 빠른 매도를 통한 이익 실현은 펀드 내부 수익률이라는 중요 지수 개선에 기적을 일으켰다. 보유기간이 짧기 때문에 투자자 배분금은 많아졌고, 흡족해진 투자자는 론스타 다음 펀드에 다시 투자함으로써 그레이켄에 보답했다. 그레이켄이 부과하는 수수료는 상당히 높다. 론스타 투자펀드 수수료는 보통 운용자산의 0.6~1% 사이에서 책정된다. 펀드 수익률이 8%를 넘어가면 20%를 기록할 때까지 전체 수익의 50%를 론스타가 가져가고, 수익률이 20% 이상으로 높아지면 론스타는 총 수익의 20~25%를 가져간다. “그레이켄은 자산 매입 및 매도 과정을 단순화하는데 능란한 자질을 선보였다”고 론스타 설립을 돕고 이후 6년간 함께 일했던 데이비드 후드(David Hood)는 말했다. “그는 자산을 대량으로 매입해 유동성을 창출한다. 말을 꼬거나 돌려서 하는 법이 없다. 하키선수 출신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언제나 직설적인 펀치를 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 론스타의 우월한 수익률을 견인하는 중요 요소는 하나 더 있다. 댈러스에 본사를 둔 자산관리 및 실사기관 허드슨 어드바이저(Hudson Advisors)다. 론스타 펀드 매니저가 투자기회를 발굴하면, 허드슨의 금융 전문팀은 철저한 금융 분석을 실시하고 투자 기회를 검토한다. 계약이 체결되면, 허드슨팀은 대출 상품을 만들어 제공한다. 법률 및 회계 자문을 제공하는 것도 허드슨이다. 현재 865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전세계에 사무소를 두고 있지만, 고객사는 오직 하나, 론스타 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업에서는 제대로 된 자료풀을 보유하는 게 적정가격 책정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허드슨은 그레이켄의 소중한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며 론스타에 경쟁우위를 선사했다. 그레이켄이 론스타의 엄청난 자산에서 수익을 추가로 빼내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뒷문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레이켄이 지분 100%를 보유한 허드슨은 매년 론스타 펀드 자산가치의 평균 0.55%를 자문 수수료로 가져간다. 연기금 관리자들은 그레이켄의 수익 배당 수표를 간절히 기다리지만, 그레이켄이 눈여겨 보다가 손에 넣은 부동산 세입자나 소유주들은 새로운 건물주를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금융위기 이후 그레이켄이 맨해튼 워싱턴 하이츠에 위치한 아파트 건물 10채의 담보대출을 앵글로 아이리쉬 뱅크에서 할인가에 매입하자 거주자들은 창문 밖에 “투기꾼 주의”라고 적은 침대 시트를 걸어놓았다. 론스타가 일본에서 인수 계약 논의를 시작했을 때 일본 언론은 론스타를 대머리 독수리란 뜻의 ‘하게타카’로 지칭했다. 한국에서는 론스타가 ‘먹고 튄다’는 뜻의 ‘먹튀’ 자본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언론은 론스타가 주택담보 부실채권을 대량으로 인수한 후 주택을 압류해 거주자를 쫓아내자 론스타를 ‘텍사스 사형 집행수’로 부르기까지 했다. ━ 일본에선 대머리 독수리, 한국에선 ‘먹튀’ 자본 그레이켄을 향한 독일의 경멸은 한국에서의 악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990년대 후반 발생한 아시아 금융위기를 진화하는 과정에서 론스타는 한국 외환은행의 지배지분을 2003년 18억 달러에 인수했다. 2007년이 되자 론스타는 외환은행 보유지분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여러 곳에서 받았다. 인수 희망가는 64억 달러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서울에서 공분을 일으켰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외국 자본의 횡포로 촉발된 부분이 있다는 점을 가장 괘씸하게 여기는 인식이 팽배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및 별도로 운영되던 신용카드 사업부 주가를 의도적으로 조작해 헐값에 사들였다는 혐의가 제기됐고, 이에 대한 사법기관 및 규제당국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론스타 한국법인의 유회원(폴 유) 대표는 신용카드 사업 주가조작 혐의를 인정 받아 징역 3년 형을 확정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론스타 한국법인의 또 다른 직원이 사모투자사에서 1100만 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레이켄은 어떤 불법행위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조치가 자의적이고 차별적이며, 론스타가 침몰 중이던 한국 대형은행을 구조한 사실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대단하게도 그레이켄은 이런 험악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버텼다. 그리고 2012년 외환은행 소유지분을 하나금융그룹에 넘기며 40억 달러 수익을 확보했다. 물론 그레이켄에게 이 정도 수익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는 원래 매도 계약에서 거둘 수 있었던 나머지 수익을 회수하기 위해 현재 중재재판을 추진 중이다. 미국 금융기관의 비윤리적 운영방식이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고 믿는다면, 그레이켄이 텍사스에서 운영 중인 담보대출업체 캘리버 홈 론(Caliber Home Loans)이 생각을 바꿔줄 지도 모른다. 캘리버는 서브프라임 대출상품 제공을 위한 잔기술 사용으로 악명을 높이는 중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담보대출 상품 중에는 심지어 금융위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도 있다. 미국에서 몸집이 가장 큰 서브프라임 전문 대출기관으로서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총 700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32만 5000개의 담보대출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캘리버의 담보대출 상품 중 상당수는 론스타 펀드가 헐값에 매입한 것이다. 주택도시개발부와 연방정부 보증 주택융자기관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주최한 경매에서 70%까지 하락한 가격에 인수된 부동산이다. 론스타는 기발한 금융기법을 이용해 이들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묶어서 채권으로 만들어 판매하며 즉각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확보했다. 동시에 캘리버는 연체자의 상환 조건을 5년간 금리만 납부하도록 ‘임시’로 조정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대출 원금은 조금도 줄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담보대출을 한 주택 구매자들은 어떤 영구적 구제조치도 받지 못했다. 결국, 5년의 유예 기간이 끝나면 대출은 이전 상환 조건으로 되돌아갔고, 그 동안 유예됐던 원금 상환까지 조건으로 붙어서 상환 금액은 더욱 커졌다. “론스타는 이들 융자상품을 정부로부터 헐값에 사들였다. 실질적으로 원금이 줄어든 것이나 다름없는 가격이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혜택을 주택 보유자, 지역사회와 전혀 공유하지 않았다”고 미 금융개혁 국민연합의 리사 돈너 상임이사는 말했다. 지난해 9월 뉴욕 타임스 사설진은 론스타가 “돈을 벌기 위해 주택을 압류하고 재판매”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며 비난했다. 뉴욕 법무장관 에릭 슈나이더먼이 조사를 시작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론스타와 캘리버 측은 어떤 논평도 거절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12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집어삼킨 그레이켄은 어떤 논란에도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76억 달러에 인수한 뉴욕주 로체스터의 아파트 리츠 투자사 홈 프로퍼티즈(Home Properties)도 그레이켄이 손에 넣은 자산 중 하나다. 가장 최근 조성된 론스타 펀드는 금융기관이 빠르게 차입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는 유럽에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부동산 대출상품을 넘겨 받아 지금까지 50억 달러의 자금을 모집했다. 그레이켄은 자신이 16번째로 조성한 이 펀드에 개인자금 2억 5000만 달러를 예치하며 론스타 펀드에 투자한 개인자금 규모를 13억 달러로 늘렸다. 로드아일랜드 직원퇴직연금과 뉴욕 교사퇴직연금을 비롯해 댈러스 소방 및 경찰 공무원 퇴직연금 등 연기금 고객은 그레이켄의 서브프라임 대출 사업이 얼마나 지저분하게 운영되는지 잘 모른다.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와 다름없는 미국 출신 아일랜드 시민권자를 보며 이들이 유일하게 느끼는 불안감은 그의 건강과 급작스럽게 부재하게 될 경우 론스타의 승계 문제다. ━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냉혹한 경영자 지난 수년간 그레이켄과 가까이서 함께 일했던 능력 있는 파트너 대부분이 제대로 된 몫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의견 차이로 사이가 틀어져서 대부분 회사를 떠났다. 론스타 설립을 돕고 오랜 기간 그레이켄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엘리스 쇼트(Ellis Short)는 2007년 회사를 떠났다. 또 다른 중역 랜디 워크(Randy Work)는 그레이켄과 갈라서는 과정에서 2억 25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다 한들 그레이켄의 돈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냉혹한 경영자인 그레이켄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걸로도 유명하다. “많은 경우 그는 밑에 있는 사람을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과거 론스타에서 최고 펀드매니저 대우를 받았던 한 사람은 말했다. 그레이켄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국적을 바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부인과 이혼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이혼 판결을 받은 지 1달도 지나지 않아 부인을 설득해 재결합에 성공했고, 6개월 후 다시 이혼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런던 사무소 비서와 재혼을 해서 4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레이켄은 최근 사우스 다코타로 직접 가서 연기금 투자 담당자를 만나 승계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줬다. 사우스 다코타 투자협의회 위원이 최근 한 말처럼 투자자들은 “존이 죽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렵다. 어쩌면 그냥 다 끝날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실제로 올 때까지 연기금은 아일랜드 억만장자의 그림자 은행에 더 많은 퇴직연금을 기꺼이 예치할 것이다. 그레이켄과의 회의 직후 사우스 다코타 또한 론스타가 가장 최근 조성한 투자펀드에 3억 달러의 돈을 투자하는데 동의했다. - NATHAN VARDI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포브스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는 포브스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해외 기사의 전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16.04.29 10:10

12분 소요
주식 대량 투매해 풋옵션 가치 249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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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문희철 기자의 ‘빅데이터 리포트’-도이체방크의 ‘옵션쇼크’란?외국계 증권사의 증시교란 행위로 논란이 됐던 도이체방크 옵션쇼크는 도대체 무슨 사건이었을까요? ‘일단 파생상품의 개념부터 살펴봅시다.파생상품이라고 하면 매우 어렵고 복잡한 용어처럼 느껴지는데요, 김동석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장은 파생상품을 설명하면서 매우 쉬운 예시를 듭니다. 한때 일본에서 유행하던 ‘태균 버거’도 일종의 파생상품이라는 설명입니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김태균 내야수가 수 년 전 일본 지바 롯데에서 뛰었습니다. 당시 지바 롯데는 김태균 선수가 홈런을 칠 때마다 400엔(4000원)짜리 김치버거를 52엔(500원)에 한정 판매했습니다.김태균 선수 등번호가 52번이었기 때문이죠. 태균 버거처럼 파생상품은 어떤 상품의 가치가 다른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태균 버거와의 차이가 있다면,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기초자산이 홈런이 아니라, 외환·예금·채권·주식 등이란 거죠. 콜옵션은 살 권리-풋 옵션은 팔권리매매파생상품 중에서도 도이체방크 논란과 관련 깊은 게 옵션입니다. 옵션은 한 쪽이 다른 쪽에 사거나 팔 권리를 주는 계약입니다. 풋옵션은 팔권리를 매매하는 것이고, 콜옵션은 살 권리를 매매 하는 겁니다.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 물건을 사거나 팔 ‘권리’만 주고받는다는 게 중요합니다.예를 들어 현재 58달러인 주식을 만기 이전에 55달러에 구매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권리를 사려면 비용(옵션가)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 비용이 4.5달러입니다. 만기일 전에 주식 가격이 65달러로 올랐다면, 이때 옵션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콜옵션을 행사할 겁니다. 65달러짜리 주식을 55달러에 살 수 있으니 비용을 제외하고도 5.5달러 이득이기 때문이죠. 반대로 주식 가격이 50달러에 그친다면? 이땐 그냥 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됩니다. 비용(4.5달러)만 날린 셈이죠. 그래도 권리가 아닌 실제 주식을 샀을 때에 비하면 손해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풋옵션은 거꾸로 생각하면 됩니다. 58달러짜리 주식을 만기 이전에 55달러에 팔 수 있는 권리(풋 옵션)를 생각해봅시다. 만기 전에 주가가 고공행진을 한다면 당연히 풋옵션 행사를 안 하는 게 좋겠죠. 반면 만기 전에 주가가 45달러로 폭락했다면, 풋옵션 행사로 5.5달러의 차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주가가 떨어지는데 이익을 보는 셈이죠.도이체방크는 바로 이 풋옵션을 16억 원어치 정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풋옵션의 기초자산은 코스피200지수였고요. 코스피200지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식 200개 종목의 시가총액을 지수화한 수치입니다. 보유한 풋옵션을 행사해 이득을 보려면 기초자산, 즉 주가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맞습니다.주가가 떨어져야죠. 그런데 주가가 안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요? 아마 내가 보유한 주식이 엄청나게 많다면 대거 주식을 팔아치워서라도 주가를 떨어뜨리고 싶을 테죠. 이렇게 주가 조작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물론 개인들은 시장을 밀어붙일 만큼 주식을 많이 보유한 사람이 드뭅니다. 주가 조작을 하고 싶어도 못하겠죠. 하지만 실제로 시장을 움직일 만큼 대규모 주식 매도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매도자는 바로 풋옵션을 갖고 있던 도이체방크였고요.금융당국과 검찰이 도이체방크의 행위를 ‘인위적 주가조작’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실제 도이체방크가 보유했던 풋옵션을 보면 의심은 커집니다. 도이체방크가 보유한 풋옵션의 행사가는 250이었습니다.즉, 코스피200지수가 250포인트 이하로 떨어져야 도이체방크는 풋옵션을 행사해 돈을 벌 수 있었단 말입니다. 2010년 11월 11일 장 마감 10분 전인 오후 2시 50분 코스피200지수 주가는254.59였습니다. 이대로 장이 끝났다면 도이체방크는 풋옵션프리미엄만 날리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장 마감 직전 동시호가 시간대에 도이체방크는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무려 2조4000억 원어치나 매도했습니다. 이 탓에 코스피200지수는 247.51로 마감됐죠. 풋옵션 행사가(250)보다 살짝 높았던(254.59) 주가지수가 행사가보다 살짝 내려가면서 마감된 겁니다.시간대별 코스피200지수 변동 폭도 금융당국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당일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50분까지 코스피200지수는 일간 변동폭이 -0.094%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도이체방크가 주식을 대량 매도하자 갑자기 10분 만에 코스피200지수는 -2.78%나 떨어졌습니다. 코스피200지수가 250 아래로떨어지면서 도이체방크가 보유하고 있던 풋옵션은 가치가 무려 249배나 뛰었습니다. 이렇게 도이체방크가 거둔 시세차익이 448억 원입니다. 도이체방크는 헤징거래를 하기 위해서 주식을 매도했다는 입장이지만, 풋옵션으로 수백 억원의 이득을 거둔 걸 보면 아무래도 주가를 조작했다는 ‘냄새가 난다’는게 금융감독 당국의 판단입니다. ELS 투자자도 ‘한숨’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도이체방크가 인위적인 주식 투매를 한 행위가 또 다른 손실도 야기했다는 이유에섭니다. 예기치 못했던 ‘파생’손실이죠.예를 들어 한 개인투자자는 한국투자증권이 발행한 ‘부자아빠 주가연계증권 289회’라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가입했습니다. 이 ELS상품의 기초자산은 KB국민은행과 삼성전자의 주가지수입니다. 상품 계약서상 특정일에 KB국민은행 주가가 5만 4740원 이상이고, 삼성전자 주가가 42만 9000원 이상이면 원금의 128.6%를 받을 수 있는 상품입니다. 하지만 도이체방크가 대량 매도하자 KB금융지주(구 KB국민은행) 종가가 5만 6000원에서 5만 4700원으로 하락했습니다. 기준 가격에 아슬아슬하게 도달하지 못한 거죠(-40원). 재판 결과에 따라 도이체방크는 이들의 손해까지 일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드라마 주인공들이 쇼크 게임을 하던 장면이 있었죠. 둥그렇게 둘러앉아 한 명이 ‘아~ 쇼크’라고 외치며 다른 사람을 지목하면, 쇼크를 받은 사람이 더 큰 소리로 ‘아~ 쇼크’라고 외치며 쇼크를 계속 전달하는 게임입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준‘옵션쇼크’로 도이체방크도 쇼크를 겪을까요?

2014.09.2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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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 Book  - 『분석의 힘』

북 리뷰

“손자병법에는 ‘시간경쟁의 시대에서 큰 것이 작은 것을 먹는 게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적절한 시기를 잃으면 패배한다는 것이다. 신속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한 다음 소비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기업이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 ‘조기 결산제도’에 그 답이 있다. (…)조기결산에서 산출된 지표는 어두운 밤 전조등도 없이 낯선 길을 운전하는 운전자에게 건네진 내비게이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사의 업무결과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지표는 적시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다. 더욱이 경영자 입장에서는 자사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인 동시에 시장에서 정보를 무기로 활용할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88~89쪽)경영지침서 『분석의 힘』에 나오는 대목이다. 책을 펴낸 삼일PwC컨설팅의 기업인텔리전스그룹은 이런 조언과 함께 “디데이라고 할 수 있는 업무마감 이틀 후에 결산을 완료하는 기업과 3주가 지나도록 아직 결산 중인 기업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경고한다. 책은 지난해 말 발간된 이후 꾸준히 팔려 소리 없이 경영자 필독서 반열에 오를 조짐이다.분석의 반대편 개념은 직감이다. 과거 우리의 개발연대 경영자나 오늘의 상당수 글로벌 스타 경영자는 타고난 동물적 직관에 의존하는 바 크다. 그러나 정보과잉의 빅 데이터 시대에 이르러 직관력은 한계를 노출하기 십상이다. 여전히 엇갈린 의견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지만 역시 무게중심은 분석력에 실린다. 저술팀은 경영전략 애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관심의 경제학』 저자인 토마스 H 데이븐포트의 “분석기반 의사결정이 직관적 의사결정보다 더 정확하다는 데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분석으로 경쟁하라』 중에서)는 말을 끌어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책이 나열하고 있는 소제목 몇 개를 옮겨와 보자. “정보를 쌓아놓기만 할 것인가: 턱 밑까지 차오른 데이터와 활용의 절박함” “오직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는 기업이 돼라: 기준정보 정비의 절대적 원칙” “겉만 살피지 말고 썰어서 내부를 확인하라: 기업의 정확한 수익성을 찾아서”…. 이런 포괄적 지침에 이어 “물류와 재무의 흐름을 일치시켜라: 거래처리의 실시간 재무정보화” “예산은 현장에서 직접 관리하라: 자율 예산관리의 순기능으로 성과 달성하기” “비용절감의 핵심은 디테일에 있다: 자르고 쪼개고 관찰해 절감 포인트를 발견하는 원가관리” 등 현장을 향한 세부적 지침도 등장한다.그런가 하면 사례 역시 풍성하게 실려 읽는 재미를 더한다. 예컨대 패션업체 자라. 이 회사는 사양산업이라 불리는 패션업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패스트 패션’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그 힘은 본사와 각 매장에 쌓인 데이터를 분석해 시장 선점전략을 세우는 데서 나왔다. 매장별 판매와 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매장의 최대 매출이 아닌, 전세계 모든 매장의 매출 합이 최대가 될 수 있는 분배 알고리즘을 개발한 것이다.2000년대 초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이라 불리던 오클랜드 에슬레틱스가 부자구단 LA 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뉴욕 메츠 등을 궁지로 몬 것 역시 분석의 힘이었다. 에슬레틱스는 그 동안 메이저리그가 손대지 않은 먼지 묻은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집중했다. 출루율과 장타율, 사사구 비율 등을 분석해 경기에 맞는 최고의 선수들을 최적의 금액으로 영입해 2000년대 최강의 팀으로 올라섰다.이 모든 것은 ‘Plan(계획)-Do(실행)-See(평가)’로 압축되는 경영 프로세스에서 분석력의 의미와 중요성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여기서 핵심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경영정보다. 책은 그것이 최대 가치를 창출로 이어지게 하는 방법론을 소상하게 일러준다. 대개의 경영지침서가 그냥 거대담론을 말하는 것에 그치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구체적인 분석기술과 관리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경영자의 필수 덕목은 분석이다. 분석적 접근을 전략의 핵심이라 생각하고 부서 차원이 아닌 전사적 관점에서 내외부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 더불어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출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26쪽, 토마스 데이븐포트) 이런 분석력의 차이로 인해 같은 식당가에서 ‘쪽박집’과 ‘대박집’으로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책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북한의 연평도 폭격까지 수많은 장면을 끌어들인다. 사람으로는 잉카제국을 정복했던 프란시스 피사로부터 조직의 말단직원까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저술팀의 인문적 역량이 각 대목을 나열하고 서술하는 방식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자칫 딱딱하게 흘러갔을 뻔했던 경영지침서가 살갑게 잘 읽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경영자들이 일독하며 전략 리모델링의 지침서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청암 박태준철강왕을 기리다2011년 12월 13일 영면에 든 청암 박태준을 기리는 책이 출간됐다. 철강왕 박태준 평전을 썼던 소설가 이대환씨가 시론을 쓰고, 송복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특수성으로서의 태준이즘 연구’라는 논문을 실었다. 2011년 9월에 했던 청암의 마지막 연설도 게재했다. 해외 독자들을 위해 한영 대역으로 출간했다. ▒ 이대환 외 지음▒ 아시아 02-821-5055 1만3000원국가의 숨겨진 부 연대적 복지가 답이다국민의 행복은 국내총생산(GDP)으로 드러나지 않는 ‘국가의 숨겨진 부’, 즉 사회적 자본에 달려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저자는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고 시민 간의 연대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방임적인 접근이나 막스 베버식의 복지국가 모델이 아닌 ‘연대적 복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데이비드 핼펀 지음▒ 북돋움 02-322-9792 1만8000원컬트가 되라열렬한 브랜드 추종자를 만들려면코카콜라가 2007년 5월 인수한 글라소는 설립된 지 11년 된 작은 회사였다. 인수액은 41억 달러였다. 이 작은 회사가 만든 제품은 콜라 시장 아성을 위협했던 비타민워터. 저자는 비타민워터가 2000년 대 초중반 미국을 휩쓸던 ‘사회적 파괴’ 현상을 적극 활용했다고 분석한다. 소비자 문화이론에서 파생된 문화혁신 마케팅을 심층 소개한다.▒ 더글라스 홀트 외 지음▒ 지식노마드 02-323-1411 3만2000원 긍정심리자본직원을 행복하게 하는 노하우긍정심리자본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발전 추구의 긍정적인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저자는 긍정심리자본은 조직 내에서 재능있는 인재들의 창조성을 발굴해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유지한다고 말한다. 또한 인간과 사회를 발전시키면서 자본화할 수 있는 혁신적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으로 따지면, 행복한 직원을 만드는 법이다. ▒ 프레드 루당스 외 지음▒ 럭스미디어 031-955-1455 2만원PRIDE 현대카드가 일하는 법현대카드·현대캐피털·현대커머셜 내부 직원을 위해 만든 커뮤니케이션 북이 일반 독자에 공개됐다. 책은 현대카드의 끊임없는 성장동력을 ‘프라이드’와 ‘열정’이라고 소개한다. 기업윤리와 워크 스타일, 비즈니스 에티켓 등 세 테마로 구성됐다. 그들의 일하는 방식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도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현카스러움’이다.▒ 현대카드 외 지음▒ 이야기나무출판사 02-3142-0588 1만3000원배금라이브도어 사건 장본인의 실화2006년 일본을 발칵 뒤집었던 라이브도어 주가조작 사건의 장본인인 호리에 다카후미가 소설 책을 냈다. 라이브도어 사건을 다룬 실화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을 감옥에서 썼다. 현재도 수감 중이다.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말했던 배금주의자인 그는 이 책을 통해 돈에 대한 욕망의 실체를 거침없이 파헤친다.▒ 호리에 다카후미 지음▒ 자음과모음 02-324-2349 1만1000원

2012.04.02 18:15

5분 소요
미 대선 공화당 후보 줄리아니의 도덕관

산업 일반

1992년 9월 16일, 뉴욕시 경찰의 집회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경관들은 새로운 단체협약을 원했으며 데이비드 딘킨스 시장이 (경찰관들을 감독하는) 시민감독위원회 설치를 제안하고 순찰자들에게 9㎜ 권총을 지급하지 않는 데 분노했다. 상당수 경관이 술기운에 또는 거나하게 취해 시청 근처의 차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고 브루클린 다리 인근의 교통을 차단했다. 몇몇 증인에 따르면 이들은 최초의 흑인 뉴욕시장인 딘킨스를 인종적인 이유로 조롱하는 현수막을 마구 휘두르는 한편 루디 줄리아니를 환영한다는 뜻으로 ‘루디! 루디! 루디!’를 연호했다. 미국 연방검사 시절 범죄소탕으로 이름을 날린 줄리아니는 자신의 정치 기반을 지원하려고 이들을 찾았다. 줄리아니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았는지는 분명치 않다(훗날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녹화 화면을 보면 딘킨스를 향해 상스러운 몸짓과 욕설을 외치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다음 날 뉴욕의 신문들은 그를 혹독하게 비판했다(한 일간지는 사설에서 ‘수치스러운’ 행동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딘킨스는 몇 년 후 그가 “백인 경관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키려 했다”고 비난했다. 당시 줄리아니는 자신의 발언을 취소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경관으로 일하는 삼촌이 넷이나 돼서 아마 내가 평소보다 더 감정이 격했나 보다”고만 말했다. 이날 행동으로 흑인 유권자들이 줄리아니에게 (일부는 영원히) 등을 돌렸지만 대신 경찰관공제조합의 비공식 후원은 확보했다. 그리고 그 덕택에 1993년 시장에 당선됐다. 줄리아니는 오래전부터 경찰관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질 나쁜 경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경관이라도 불법을 자행하면 용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폭력배, 외설물 제작자, 마약 거래상, 사기꾼 사업가와 정치인 그리고 목숨을 놓고 흥정하는 성전 전사들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해왔다. 이제 그는 자신이야말로 악 그리고 국외의 테러리즘, 국내의 부패로부터 우리를 구할 대통령 후보라고 내세운다. 하지만 버나드 케릭을 뉴욕시 휘하 경찰청장으로 임명하고 훗날 국토안보부 장관에 오르도록 민 장본인이기도 했다. 케릭은 탈세를 포함해 각종 연방 범죄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조폭 관련 사업가들과의 연줄로 비난이 끊이지 않았던 케릭은 계속 어떤 범법행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줄리아니 밑에서 교도국장을 맡을 때 비윤리적 행위를 한 죄가 있음을 지난해 브롱크스에서 시인했다). 줄리아니는 극적인 성향의, 그리고 극적인 연기를 보이는 윤리주의자다. 하지만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받았으며 지성적이고 민감하기 때문에 성인과 악인은 때로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을 잘 안다. 신조의 엄격함과 인간 본래의 변덕스러움을 조정할 줄 알았다. 오래전부터 속죄의 힘을 믿었으며 충성의 미덕을 크게 신뢰했다. 대결을 겁내지 않고 오히려 마찰을 환영할 뿐 아니라 조장하는 듯하다. 특히 카메라가 옆에 있을 때는 그런 성향이 심해진다. 연기가 종종 도를 넘는 경향이 있는데 단지 그가 장난삼아 여장을 하기로 유명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줄리아니는 케릭을 측근으로 받아들일 때 구성원이 모두 그의 볼에 입맞춤을 해주는 의식을 연출했다. 당시 케릭은 자신이 마치 “마피아 단원”처럼 느껴졌다고 썼다. 케릭의 마피아 비유는 그렇다 쳐도 줄리아니에게는 왠지 남을 불안하게 만드는 강렬함과 친밀함이 있다. 권위주의적일 뿐 아니라 폐쇄적이고 충성파에 의존하는 성향을 가져 유권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줄리아니의 본모습은 아마 경찰관 집회에서 보인 연극적인 모습처럼 복잡하면서도 분명 열정적일 듯하다. 마음만 먹으면 영웅이나 위선자 어느 쪽도 되고 동시에 둘 다도 가능하다. 자신과 국가의 영광과 운명을 보는 성숙된 감각은 윈스턴 처칠과 거의 맞먹는다. 줄리아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베르디의 오페라와 함께 처칠의 저술들을 급우들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처칠은 말버러 공작이 살았으며 조상의 고향인 블렌하임 궁에서 선조들의 신화를 들으며 인격을 형성했다. 마찬가지로 줄리아니의 인품도 태생의 도덕적 모호성과, 과거를 존중하거나 적어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영원한 미국적 통속 드라마의 영향을 받았다. 줄리아니는 브루클린에 있는 이스트 플랫부시의 이민자 동네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주를 이뤘으며 유대인이 약간 섞여 있었다. 어두운 색의 교회들이 우뚝 솟아 있고 평범한 벽돌과 적갈색 벽돌집들이 늘어선 동네로 고층건물들이 하늘을 수놓은 맨해튼에서 한참 떨어졌다. 실제로 줄리아니의 삼촌 네 명뿐 아니라 사촌 네 명도 경찰관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삼촌 레오 다반조는 고리대금업자에다 마피아 연줄을 가진 사설 마권업자였다. 그의 영업장 역할을 하는 바의 이름은 또 다른 경찰관 삼촌 빈센트 다반조의 이름을 빌렸다. 그 경찰관 삼촌은 그 바의 간판 사장 역할을 했다. 레오의 아들이자 루디의 사촌인 루이스(일명 ‘금발머리 스티브’)는 무자비한 폭력배였는데 훗날 무장 납치와 장물 자동차 판매 죄로 징역을 살았다. 줄리아니의 집안에서도 이처럼 선과 악이 밀접하게 공존했기 때문에 공적으로는 엄격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여유로운 윤리관을 갖게 된 듯하다. 이런 이중적 특성은 앞으로 10여 주 동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대체로 보수적인 공화당 예비선거 유권자들이 이 튀는 인물을 믿고 후보 지명을 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이 기사와 관련해 줄리아니의 마리아 코멜라 부대변인에게 질문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루디의 아버지 해럴드도 빈센트의 바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줄리아니를 소개할 때 필수 참고서인 웨인 배럿의 전기 ‘루디(Rudy!)’에 따르면 해럴드는 리볼버 권총과 야구방망이를 항상 휴대했다. 술 취한 고객이 난동을 부릴 때에 대비해서다. 배럿의 기록에 따르면 해럴드 줄리아니는 매형의 ‘행동대장’으로 부업을 하며 방망이와 권총을 휘둘러 빚을 받아냈다. 권투선수 지망자였지만 근시로 뜻을 이루지 못한 해럴드는 우유 배달부를 강탈한 죄로 싱 형무소에서 1년 이상 복역했다. 줄리아니는 2000년 배럿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과거에 관해 별로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독자(獨子)였던 줄리아니는 어린 시절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았다. 친척들은 ‘작은 왕자’라고 불렀다. 루디가 일곱 살 때 브루클린에서 가든 시티로 가족이 모두 이사했다. 롱아일랜드 교외의 거의 백인들만 사는 중산층 주택지구였다. 해럴드는 훗날 루디의 선생님 한 명에게 “아이를 몇몇 바람직하지 않은 친척과 떼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루디가 비행의 유혹을 받지 않고 충실한 교육을 받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1951년의 이스트 플랫부시는 남북전쟁 후 남부 흑인들의 북부 도시 대이동의 영향을 비교적 받지 않았지만 브루클린에서는 백인들의 이주가 시작된 상태였다. 줄리아니의 대학 시절 같은 과 친구였던 토니 마우로는 인근 크라운 하이츠에서 살다가 1950년 가족이 모두 가든 시티로 이사했다. 그는 집값이 떨어지고 범죄가 발생한다며 부동산 업자들이 주민들에게 겁을 주더라는 아버지의 설명을 기억했다. 능력이 되는 중산층 가톨릭 가정은 자녀를 교구 학교에 보냈다. 공립학교에서는 1955년의 인기 영화 ‘폭력교실(The Blackboard Jungle)’에서 묘사됐듯이 학생들이 점심값을 도둑맞는 일은 예사였다. 가톨릭 학교의 학생들은 교복을 착용했고 교사가 교실에 들어서면 기립자세를 취했다. 매일 종교적 훈시도 받았다. 루디는 비숍 러플린 메모리얼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그리스도 수사회가 엄격한 통제 아래 운영하는 성채 같은 고등학교였다. 교내 무도회에서 몇몇 학생이 에벌리 브러더스의 ‘Wake Up Little Susie’를 틀자 수사 중 한 명이 음반을 양손으로 내려쳐 깨뜨리며 선언했다. “이곳에서는 저런 천박한 음악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2학년 때 줄리아니의 담임 교사는 잭 오리어리라는 이름의 기독교 수사였다. 줄리아니는 말은 많았지만 학구파는 아니었다. “한 번 때린 적이 있다”고 오리어리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수업 중에 떠들었는데 안 됐지만 당시에는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면 때리는 게 관행이었다.” 줄리아니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약 1년 후 학교 강당에 있을 때 줄리아니의 부모가 오리어리 교사를 찾아와 신분을 밝히며 말했다. “ ‘아이를 때렸던 일 기억하세요’라고 묻기에 ‘예, 기억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오리어리는 당시를 돌이켰다. “그랬더니 ‘정말 감사해요. 아이가 완전히 달라졌어요’라며 고마워했다.” 비숍 러플린에서는 운동부가 대접을 받았다. 땅딸막하고 특별히 운동을 잘하지도 못하는 줄리아니는 다른 취미를 찾아야 했다. 오리어리의 도움으로 오페라 서클을 만들었다. 다른 10대들은 에벌리 브러더스의 음악에 맞춰 지르박과 슬로 댄스를 추거나 배우는데 줄리아니는 베르디의 ‘오셀로’를 감상하며 이탈리아의 고급문화를 이루는 비극과 로망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정치인 수업도 이때 받았다. 1960년 가을 줄리아니가 졸업반일 때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출마했다. 줄리아니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존의 편견을 뛰어넘어 가톨릭 교도로서는 처음으로 백악관 주인 자리에 오르려는 준수한 외모에 유창한 언변의 젊은 후보에 매료됐다. 몇몇 친구를 설득해 수업을 빼먹고 맨해튼에서 열리는 케네디 후원 집회에 참석했다. 학교에 돌아와서는 오리어리 교사에게 “그를 봤어요! 그를 봤어요!”라며 기뻐했다. 그해 친구의 선거본부장을 맡은 줄리아니는 유개 트럭을 빌려 스피커를 달고 학교 외곽을 돌았다. 하지만 그에게 떨어진 직책은 기껏 선도부장이었다. 그는 완장을 차고 소방훈련 중 잡담하는 등의 사소한 위반을 적발하기를 즐기는 듯했다. “얼굴 표정이 단호했다”고 러플린에 같이 다녔던 잭 J 렝스틀은 말했다. 학교 연감의 ‘가장 가능성 높은’ 항목에서 그는 ‘교내 정치인’으로 뽑혔다. 줄리아니는 쾌활하고 얼굴이 두꺼웠다고 조지 슈나이더는 말했다. 줄리아니가 선거본부장으로 일했던 친구다(“그 친구가 자원했다”고 슈나이더는 말했다). “줄리아니는 의자에 몸을 구부린 채 통로에 발을 내놓고 앉았다”고 그는 돌이켰다. “선생님이 ‘어이, 거기, 안으로 발 집어넣어’라고 말하자 루디를 포함해 모두가 웃었다. 그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면 선생님이 다가가서 머리를 한 대 때렸다.” 줄리아니는 “자신이 뭐를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슈나이더는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비숍 러플린에서는 체벌이 예삿일이었다. 사춘기의 무질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무서운 행동이었다. 수사들은 매질로 학생들을 다스렸다. 몇몇 학생은 겁을 먹었다. “누군가 멱살을 잡힌 채 들어올려져 얼굴을 맞거나 선생님이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분필을 던질 때는 아주 무서웠다”고 줄리아니의 반 친구였던 조셉 시신스키는 말했다. 비숍 러플린에서 줄리아니는 하급생들에게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는 교리문답 교사로 일했다. 믿음이 깊지는 않았지만 당시 그와 같은 배경을 가진 많은 성실한 학생처럼 사제직을 진지하게 꿈꾸었다. 훗날 친구들에게 “내게는 독신생활이 맞지 않아” 사제가 되려는 꿈을 접었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결국에는 그 대신 “법학이나 의학을 공부하려고” 대학 장학금을 신청했다. 이민 가정 자녀가 출세하는 고전적인 길이었다. 오리어리 교사는 줄리아니 가족과 교분이 두터워지면서 종종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줄리아니가 신학교를 포기한 데는 더 개인적인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오리어리는 회상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줄리아니의 아버지가 신경쇠약에 빠졌다. 롱아일랜드에 있는 한 주립공원의 남자화장실에서 바지를 발목까지 내린 채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해럴드를 경찰관이 적발했다. 해럴드는 배회죄로 체포됐다. 오해였지만 망신스러운 일이었다. 변비가 있어 대장운동을 촉진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해럴드는 학교 인부 일도 그만뒀다. 줄리아니는 신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격리된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 때문에 가족을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오리어리는 전했다.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은 항상 휘황하게 빛을 발했다. 줄리아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롱아일랜드에서 뉴욕 펜스테이션으로 향하는 통근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펜스테이션에서 또다시 지하철 상행선으로 갈아타고 먼 브롱스의 맨해튼 칼리지로 통학했다. 이번에도 기독교 수사회가 운영하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었다. 744명의 급우 중 흑인은 3명, 히스패닉은 4명이었다. 운동선수와 학내 ‘거물들’이 꽉 잡고 있는 남학생 사교모임에 들어가지 못하자 소규모 모임에 들어가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회원 수는 곧 30명이 됐다. 선거운동 배지를 만드는 등 정치수완을 발휘해 학과 대표로 선출되기까지 했다. 기독교 수사회의 지도 아래, 줄리아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독교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접하게 됐다. 최근 작가 존 주디스는 더 뉴 퍼블릭지의 기고문에서 “가톨릭 사상가들에게 자유는 궁극의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천주적 자질’로서 공동선을 획득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학업을 마치고 여러 해가 흘러, 줄리아니는 범죄와 관련된 한 포럼에서 “자유는 권위의 문제다. 자신의 행동과 관련된 상당 부분의 재량권을 법적 권위에 기꺼이 양도하는 인간의 자발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권위는 자유를 보호한다. 자유는 아나키가 될 소지가 있다.” 당시 뉴욕시민자유연합의 운영책임자였던 놈 시걸이 줄리아니의 자유와 권위에 대한 정의를 듣고 “크게 당황했다”고 주디스는 전했다. “하지만 가톨릭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줄리아니의 말에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주디스는 덧붙였다. 1960년대 줄리아니의 정치기조는 순전히 자유주의적이었다. 로버트 케네디에게 크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로버트 케네디의 인권 의식보다는 법·질서 측면과 힘의 논리에 더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옳다. 60년대 소란스러운 학생운동 시기에 대학과 로스쿨을 다녔지만 줄리아니는 히피와 접촉하지 않았고 반전운동도 기피했다. 체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검사가 되고 싶은 장차의 꿈을 그르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젊은 줄리아니는 내가 곧 법이라는 식으로 강직하게 범법자를 단죄하는 자베르 경감 같은 인물이 되고 싶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빅토르 위고를 읽는 정도의 교양은 있었다. 동료들은 젊은 변호사 줄리아니가 야망이 크고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지만 편견은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줄리아니가 ‘국민’을 대표해 법정에 서고, 소송 적요서에 ‘미합중국’을 대신해 자신의 서명을 남기는 전율을 맛보고 싶어 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미국 연방 검사보조 자리를 두고 아이비리그 출신들과 경쟁을 벌이려면 우선 연방판사의 1등 사무관이 돼야 가장 유리했다. 줄리아니는 로이드 맥마혼 밑으로 들어갔다. 까탈스러운 노인네라고 알려진 맥마혼은 2류와 3류 로스쿨을 나온 노동자계급 출신의 수완가들을 좋아했다. 맥마혼은 자신이 재판을 맡은 법정에서 변호사들을 ‘멍청이’ ‘속물’이라고 불러대며 전혀 거침이 없었다. 피고 측 변호인에게 ‘자, 다음번 거짓말쟁이를 대령하라”고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오만과 독선 탓에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히기 일쑤였다. 그래서 미국의 한 법조계 잡지는 미국에서 “가장 형편 없는 판사” 중 한 명으로 그를 선정하기도 했다. 시위대와 공산주의자를 거침 없이 감금시키던 맥마혼은 줄리아니에게는 훌륭한 정신적 스승이었다. 줄리아니의 징병 연기가 1969년으로 만료되자 맥마혼은 또 한 번 연기되도록 개인적으로 힘을 써줬다. (줄리아니는 청력 장애를 이유로 미 공군 ROTC를 중도에 그만뒀는데 동료들에게는 베트남 전쟁이 가톨릭에서 정의하는 ‘정당한 전쟁’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맥마혼은 줄리아니가 ‘연방검사(AUSA)’라는 꿈의 자리를 꿰차는 데 도움을 줬다. 그래서 줄리아니는 미국 검사사회에서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뉴욕 남부지원, 즉 맨해튼에서 검사가 됐다. 1970년대 초반 뉴욕시는 수십 년래 최악의 경찰 추문에 휩싸였다. 존 린제이 시장이 임명한 냅 위원회는 뇌물을 받고 마약을 팔고 심지어 죽은 사람의 주머니에서 현금을 도둑질하는 경찰 수십 명의 비리를 낱낱이 공개했다. 1972년에는 프렌치 커넥션 사건이 터졌는데 경찰 물품관리실에서 400파운드에 달하는 헤로인이 사라진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 줄리아니는 성장환경에서 비롯된 개인적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줄리아니는 밀고자로 돌아선 부패 경찰을 조사하는 일을 맡았다. 경찰 집안에서 성장한 줄리아니는 뉴욕의 경찰관들을 잘 알았다. 신중하고 관료적인 편인 FBI 요원들과 다르게 뉴욕시 경찰관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고 들었다. 달리 말하면 현장에서 필요로 하면 과감히 법을 위반했다는 뜻도 된다. 그 다음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밥 루치는 단순한 법 위반 이상의 행동을 했다. 특별수사팀(SIU)이라는 정예 형사 60명의 일원이었던 루치는 마약판매상에게 돈을 받고 불법도청을 일삼고 정보원들에게 압수한 마약으로 대가를 지불했다. 냅 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되는 중에 루치는 ‘베이비페이스’라는 이름으로 연방수사관과 공조 하에 도청기를 몸에 부착한 채 부패한 경찰관과 변호사들을 만나기 위해 위장 잠입을 했다. 프렌치 커넥션 사건이 알려지자 검사들은 루치가 원래 말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을 했다. 루치의 자백을 받아내는 업무가 줄리아니에게 떨어졌다. 줄리아니는 루치의 친구가 돼서 신임을 얻고 절대 그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서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루치는 프렌치 커넥션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범죄 용의자들’을 다수 지목했다. 후일 톰 푸키오 브루클린 연방 검사는 자신과 줄리아니가 루치를 데리고 “나쁜 경찰, 좋은 경찰” 놀이를 한 셈이라며, 줄리아니는 자신의 역할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 판사가 SIU 수사관들을 일컬어 “뉴욕의 황태자들”이라고 불렀는데 줄리아니에게도 루치는 황태자였지만 부패한 황태자였다. 루치는 줄리아니가 속죄를 믿었다고 말했다. 줄리아니는 이런 행동이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고행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내가 나쁜 일을 했으니까 이제는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고 루치는 뉴스위크 기자에게 말했다. “루디는 가톨릭의 원죄 문제를 훤하게 알았다. 자신이 그런 논리를 내세워도 괜찮겠다고 판단할 만큼 똑똑했다고 생각한다.” 루치는 당시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줄리아니가 너무 심하게 밀어붙였으면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훗날 말했다. 하지만 줄리아니는 루치와 친구가 됐고 가족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자신이 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이야기했다. 줄리아니가 아버지와 가족들의 어두운 과거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줄리아니는 그에게 동정심을 표하고 도덕적 모호성을 이해했다. 한편 루치는 “나는 루디와 척을 지고 싶지 않다. 그건 확실하게 하자. 그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제나 충성심은 줄리아니에게 최고의 미덕이었고 때때로 다른 모든 미덕을 능가했다. 줄리아니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충성심이 사실은 “루디에 대한 충성심”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충성스럽지 않은 하급자들은 이 사실을 매우 힘들게 배웠다. 비록 그들이 진실과 정의라는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 열심히 봉사한다고 자부한다 해도 말이다. 80년대 초반 줄리아니는 레이건 행정부의 법무부 차관에 올랐다. 당시 법무부는 외국에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항공기 제조사인 맥도널 더글러스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줄리아니는 수개월 동안 그 사건을 맡아온 담당검사에게 말 한마디 없이 맥도널 더글러스의 변호인단을 만났다. 담당검사들은 최고위직 관리가 절차를 무시한 사실에 화를 내며 줄리아니에게 “충격”과 “당황”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편지를 보내서 변호인단과 가진 비밀회합은 검찰수사를 훼손시킨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편지가 밖으로 유출됐다. 그러자 줄리아니는 해당 검사인 마이클 루빈과 조지 멘델슨을 사무실로 불러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보기에는 완전히 미친 사람 같았다”고 루빈은 짐 스튜어트의 저서 ‘검사들(The Prosecutors)’에서 말했다. “나는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을 듣거나 보지 못했다. 그는 꼬박 20분 동안 호통과 고함을 쳤다.” 나중에 줄리아니는 맥도널 더글러스의 간부 네 명에 대해서는 벌금 120만 달러를 부과하는 사법거래 형식으로 형사기소를 철회했다. 그리고는 루빈과 멘델슨을 “물정 모르는 바보들”이라며 해고했다. 그리고는 그들 두 검사에게 수여된 법무부 특별상을 취소하는 아주 좀스러운 보복을 감행했다. (나중에 법무부의 내부감찰 보고에 따르면 줄리아니에게 실책사유는 없었다.) 줄리아니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줄리아니가 예스맨들, 그들 표현대로 “예스 루디즈”에 둘러싸여 있다고 오랫동안 비판해 왔다. 충성심은 줄리아니에게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주고받는 상호 관계가 아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알폰스 다마토 전 뉴욕상원의원과의 관계가 그 사실을 잘 대변한다. 1982년, 미 연방법무부 차관 시절 줄리아니는 마이애미로 날아갔다. 아이티 보트 난민들의 법적 처리를 의논하려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도나 하노버라는 TV 앵커우먼을 만났다. 당시 첫 번째 결혼 생활은 거의 끝장난 상태였다. 줄리아니는 1968년 육촌 관계인 레지나 페루기와 결혼했었지만 이미 이혼이 기정사실이었다. 그는 자신만큼이나 쾌활한 하노버에게 반했고, 새 방송 일을 찾아 뉴욕으로 떠난 그녀를 따라가려 했지만 법무부 일 때문에 워싱턴 DC에 묶여 있어야 했다. 다마토는 줄리아니가 당시 뉴욕주 상원의원이었던 자신에게 청탁을 했다고 뉴스위크에 밝혔다. 자신을 뉴욕주 연방검사로 지명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다마토는 곤란한 처지였다. 워낙 요직이었던 데다 이미 권위 있는 변호사 위원회가 다른 후보를 내세웠던 차였다. 그래도 다마토는 줄리아니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인으로서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줄리아니를 지명했다.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다. 손님인 척 위장하고 마약 밀매 현장을 급습한다며 함께 선글라스를 끼고 할렘가에 나타나서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동시에 웃음거리가)되기도 했다. 원래 목적은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에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자 했지만, 적어도 새롭게 피어나는 정치적 우정만은 확실히 인식시켰다. 하지만 그 유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8년 줄리아니는 연방검사직에서 물러나 현직 상원의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한에 맞서 출마할 채비를 했다. 그 즈음 다마토는 도덕적 논란에 휩싸였다. 상원 금융위원회의 일원이었던 그는 증권업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줄리아니는 월스트리트의 비리를 척결한다며 한바탕 소란을 떨면서 분석가와 브로커들을 주가조작 혐의로 체포하고 수갑을 찬 채 카메라 세례를 받게 했다. 다마토와 인연이 깊은 증권가를 둘러싼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자신의 후임 선정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겠다고 줄리아니는 말했다. 줄리아니는 자신의 보좌관 중 한 명을 그 자리에 앉히려는 공작을 펼치는 한편, 다마토의 윤리성 문제에 관해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마토는 “실성한 사람처럼 길길이 날뛰었다”고 익명을 요구한 전 측근이 말했다. 측근들에게 줄리아니를 모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그 재수없는 자식을 죽여버리겠어!”라고 외쳤다고 이 측근은 뉴스위크에 전했다). 줄리아니의 지지자들은 그가 다마토를 배신한 게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내부거래자들과 내통한 공직자와 거리를 뒀을 뿐이며 오히려 그의 청렴한 면모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1989년 시장직 예비선거 때 다마토는 줄리아니를 지명한 일이 “인생 최대의 실수”라며, 한때 자신의 수제자였던 줄리아니를 “도덕 관념이 결여된” 정치적 기회주의자로 묘사했다. 둘의 반목은 계속됐다. 1994년 다마토와 가까운 조지 파타키가 뉴욕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자 줄리아니는 진보적인 민주당 후보 마리오 쿠오모의 편을 들었다. 그는 “다마토와 파타키 측이 권력을 잡으면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지난 주 뉴스위크가 연락을 취하자, 다마토는 더 이상 옛 갈등을 거론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요즘도 공화당의 다른 대선 후보인 프레드 톰슨을 위한 모금 파티를 열고 줄리아니와 토론으로 맞서는 법을 가르친다. 줄리아니에게 충성이란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을 뺏어가지 않는 것이다. 1996년 1월 당시 뉴욕의 경찰청장 윌리엄 브래튼은 이 점을 간과한 죄로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는 뉴욕의 뛰어난 범죄 소탕 성과를 뽐내며 트렌치 코트를 입고 타임지 표지를 촬영했다. 기분이 상한 줄리아니는 시청 소속 변호사들에게 브래튼의 지출 내역을 조사하게 했고, 두 달 만에 브래튼은 물러났다(줄리아니는 자신이나 직원들이 브래튼을 해코지한 적은 없지만, “나와 브래튼 둘 다 매우 개성이 강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둘 다 뉴욕의 치안 개선에 일조했다. 브래튼은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 범죄이론의 전도사였다. 아주 사소한 반사회적 행동들이라도 무법천지 같은 사회 분위기를 형성해 대형 범죄의 씨앗이 된다는 이론이었다. 한편, 16년 간 가톨릭 학교에서 청결과 질서가 도덕성의 척도라고 배웠던 줄리아니는 경범죄가 대형 범죄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1994년 1월 뉴욕시장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신호등 앞에 멈춰선 멋모르는 관광객이나 교외 거주민들의 차 앞 유리창을 닦고 돈을 뜯어내는 ‘걸레도둑(squeegee men)’이라는 조무래기 사기꾼들을 척결하겠다는 정책을 선포했다. 줄리아니는 브래튼만 한 후임자를 찾지 못했다. 후임 경찰청장 하워드 사피르는 줄리아니의 비위를 맞추느라 바쁜 전형적인 “예스맨”이었다. (“나는 루디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사피르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하지만 그와 의견이 다를 때… 사적으로 내 입장을 꼭 밝힌다.”) 경찰은 대부분 소수민족의 거주지였던 빈민가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경찰의 폭력 남용 사례가 계속 제기되면서 줄리아니의 범죄 소탕 업적의 빛이 바랬고 흑인과 라틴계들의 반발을 샀다. 2000년 위장 잠입한 마약단속반 형사가 무장하지 않은 패트릭 도리스먼드라는 흑인 경비원을 살해하는 사건이 터졌을 때, 줄리아니는 도리스먼드도 “천사 같은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었다고 조롱했다. 하지만 사실 도리스먼드는 줄리아니와 같은 비숍 러플린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반면 줄리아니가 그의 임기 중 마지막 경찰청장이었던 버나드 케릭에게 보여준 의리는 거의 맹목적인 수준이었다. 둘은 1989년 줄리아니가 시장 선거에 처음 출마했을 때(딘킨스에게 패했다), 당시 휴직 경찰이었던 케릭이 줄리아니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줄리아니는 진흙 속 진주였던 케릭의 자질을 알아봤다. 그는 뒷골목에서 단련된 노련한 경찰로 맡은 바 임무를 척척 해냈다. 줄리아니는 나중에 마피아와 연결됐다고 알려진 두 명의 사업가와 케릭의 수상쩍은 관계가 드러나자 미처 몰랐다고 주장했다. 뉴스위크는 시청의 기록을 조사한 결과, 줄리아니 시장이 케릭이 경찰청장에 임명되기 직전 이 문제와 관련된 보고를 받았음을 시사하는 자료를 찾아냈다. 하지만 줄리아니는 기억이 없다고 밝혔으며, 충직한 케릭은 꽉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줄리아니는 이달 초 “버나드 케릭과 관련해 실수가 있었다”고 말했지만, 케릭의 과오가 그가 거둔 범죄 척결 성과보다 중시되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줄리아니의 도덕관은 두 번째 시장 임기를 맞이하며 더욱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센세이션(Sensation)’이라는 전시회가 열리자 격노했다. 전시작 중에는 성모 마리아를 음란한 그림들과 코끼리 대변 덩어리에 둘러싸인 흑인 여성으로 묘사한 그림이 있었다. 그는 미술관 측에 전시회를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시 보조금을 철회하겠다고 지시했다. 결국 법원이 개입해 미술관의 손을 들어줬고 전시회는 계속됐다. 하지만 어린 시절 친구인 앨런 플라카 신부가 아동 성추행 혐의로 기소되자 친구 곁을 지켰다(플라카는 혐의를 부인한다). 경찰과 폭력배를 모두 친척으로 둔 집안에서 자란 소년 줄리아니는 선과 악에 관해 다소 선별적인 의식을 지니게 됐다. 자기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말이다. 줄리아니가 우리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강변할 때 그의 사생활은 난장판이었다. 시장 임기 마지막 해, 도나 하노버는 줄리아니의 기자회견에서 남편이 자신과 이혼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 번째 부인 주디스 네이선은 자선 무도회에 왕관을 쓰고 가는 등 줄리아니의 권력과 특권을 너무 즐기는 인상으로 가십 잡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하지만 줄리아니가 드디어 자신의 권력과 명예욕을 나눌 만한 제 짝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그 자신도 9·11 당시 ‘미국의 시장’으로 얻은 명성을 이용해 재물 축적에 혈안이 된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다. 줄리아니는 2006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강연으로 114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자신의 법률사무소 브레이스웰 & 줄리아니에서 같은 기간 120만 달러의 추가 수익을 냈다. 또 해외나 국내의 고객들을 비밀리에 자문하는 여러 컨설팅 회사를 자회사로 둔 줄리아니 & Co.에서 410만 달러를 챙겼다. 줄리아니의 법률사무소는 워싱턴 DC의 여러 로비단체를 고객으로 뒀다. 에너지, 석유화학, 군수 업체들이다. 줄리아니 자신은 로비업자로 등록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법률사무소 고객들이 정치적 약점이 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지난 7월 줄리아니 법률 사무소 고객 중에 강경한 반미론자인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정권 소유의 석유기업이 있음을 기자들이 질문하자, “법률사무소는 정치집단이 아니고, 그런 질문은 멍청한 정치적 공세”라고 그는 대답했다(그 후 사무소는 고객 명단에서 그 기업을 제외했다). 줄리아니의 집안은 부유하지도 권력가 집안도 아니었다.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나 공화당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미트 롬니처럼 부와 권력을 당연시하지 못한다. 정상을 향해 투쟁하다 보니 ‘싸움닭’ 같은 성격을 갖게 됐다. 그는 싸워서 원하는 바를 쟁취했고, 지금의 위치를 누릴 만하다. 어린 시절 성장 배경 때문에 줄리아니는 인간의 어두운 면모를 이해하면서도 경계할 의지력을 갖췄다. 그는 자기 자신이나 충성을 다하는 자기 사람의 실책에는 매우 관대하기도 하다. 하지만 절대 그를 배신하지는 마라, 그게 루디의 세계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유일한 죄니까. With MICHAEL ISIKOFF, ARIAN CAMPO-FLORES, LISA MILLER and MARK HOSENBALL

2007.12.0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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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 M&A‘당할 자가 없다’

산업 일반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외국자본들의 공세가 뜨겁다. 올 들어 외국자본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국내 금융기관을 잇따라 인수하고 있다. 은행·증권·보험 등 인수 대상도 다양하다. 그야말로 파상공세다. 특히 최근 기업 인수합병(M&A)을 주도하고 있는 외국자본들은 과거 외환위기 이후 머니 게임을 펼치던 ‘먹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철저한 현지화로 영업 시너지를 극대화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동북아 금융시장의 패권을 쥐려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다. 금융권에서 ‘윔블던 효과’를 우려하면서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 금융시장은 일산 호수공원처럼 변할 수도 있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연약한 토종 물고기라면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배스다. 배스의 대항마가 없는 호수공원의 생태계가 어떻게 변했는가. 계획개발(자본시장통합법 등 금융제도 개선)로 호수공원(국내 금융시장)은 만인이 찾는 국내 대표 공원(동북아 금융허브)이 됐지만 호수 생태계는 배스 천국이 돼 버렸다.” 올해 초 퇴임한 한 증권사 CEO는 최근 외국자본의 공격적인 국내 금융기관 M&A에 대해 이렇게 위기감을 표현했다. 그는 “여물지도 않은 곡식을 수출하려 한다”며 국내 금융기관들의 해외 진출과 이를 독려하는 정부 당국의 행태도 꼬집었다. 힘을 키워도 ‘수성’이 힘든 판국에 ‘공격’부터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국내 금융기관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다. 은행·증권·보험은 물론 저축은행 등 소형 서민금융기관들마저 해외 진출에 목을 매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시름에 빠진 농심을 달래야 할 농협마저 해외 진출을 서두를 정도다. 정부 당국도 금융기관들의 해외 진출을 ‘강추’하고 있다.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은 최근 금융기관장들과의 만남에서 외형 확대보다는 해외 진출을 통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것을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국내 금융기관들과 정부 당국이 ‘해외 찬가’를 부르는 사이 외국자본들은 M&A를 통해 국내 금융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가고 있다. 올 들어 성사된 주요 금융기관 M&A는 총 5건. 교보자동차보험, 대한투신운용, 맥쿼리IMM자산운용, 랜드마크자산운용, KGI증권 등이다. 이 중 KGI증권을 제외한 4곳은 모두 외국자본에 넘어갔다. 대한투신운용은 세계적인 금융그룹인 UBS에 넘어갔고, 교보자동차보험은 프랑스 최대 보험사인 악사(AXA)에, 맥쿼리IMM자산운용은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에, 랜드마크자산운용은 네덜란드 최대 금융그룹인 ING에 팔렸다. 이뿐 아니다. 외환은행, 한누리투자증권, 전북은행, 대한화재, LIG생명 등 현재 진행 중인 M&A도 ‘그들만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누리투자증권은 SC제일은행의 인수가 유력시되고 있다. SC제일은행의 최대주주인 스탠더드차터드는 현재 한누리투자증권에 대한 막바지 실사작업을 진행 중이다. 업계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가격 문제도 양자 간에 일단락됐다고 들었다”며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이달 중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외환은행은 결국 HSBC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헐값 매각과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관한 법원 판결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 문제가 론스타와 HSBC의 계약에는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로선 유무죄와 상관없이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감독 당국이 법원 판결 때까지 HSBC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유보한다고 밝혔지만 론스타와 HSBC의 사적 계약(지분매각)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며 “최후의 방법은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계약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인데 해외 시장의 역차별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올해 초 최대주주인 삼양사가 보유 지분 매각을 발표하면서 M&A 대상이 된 전북은행은 네덜란드 은행인 ABN암로의 인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북은행의 주요 주주였던 ABN암로는 삼양사의 지분매각 발표 이후 꾸준히 주식을 사들여 현재 2대주주(8월 말 현재 8.43%)로 올라선 상태다. 이 밖에 국내외 자본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대한화재, LIG생명 등도 외국자본에 넘어갈 공산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규선 CJ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기관 M&A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며 “저금리 고령화로 투자문화가 확산되고, 제도개선 등으로 금융산업이 선진화 국면에 진입하면서 성장성과 수익성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커지는 외국자본의 시장지배력 외국자본들의 M&A를 통한 시장 진출이 늘어나면서 은행·증권·보험·자산운용 등 금융권역별 시장판도는 급변하고 있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외국자본의 시장지배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정태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최근 시장에 진출하는 외국자본들은 현지화로 영토 확장을 노리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대부분”이라며 “M&A로 영업시너지를 극대화하면서 토종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산운용업계는 이미 UBS, 골드먼삭스, JP모건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각축장이 돼 버렸다. 국내에 등록된 50개 자산운용사 중 15개사가 외국계(지분 50% 이상 보유)다. 8월 말 현재 이들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시장점유율은 25%가 넘는 상태. 2001년 시장점유율이 4%대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6년여 동안 매년 100% 이상의 신장률을 보인 셈이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펀드매니저는 “국내 펀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국내 진출을 고려하는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늘고 있다”며 “외국계로서는 가장 손쉽고 안정적인 시장진출 방법이 현지 자산운용사를 인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M&A는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보험시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생보사는 AIG, 메트라이프, PCA 등 9개.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이들 9개사의 시장점유율은 처음으로 20%를 돌파했다. 수입보험료는 보험가입자가 낸 총 보험료의 합계로 제조업으로 따지면 매출액에 해당된다. 수입보험료 액수도 2000회계연도 3조원에서 2006회계연도 12조7000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앞으로도 외국계 생보사의 시장점유율은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회사마다 영토 확장을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데다 국내 중소형 생보사를 대상으로 한 추가 M&A도 적극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해보험 시장에서도 외국계의 활약이 눈에 띈다. 지난 5월 프랑스 최대 보험사인 악사가 교보자동차보험을 인수해 새롭게 출범시킨 교보악사자동차보험이 그 주인공. 이 회사는 최근 1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키로 한 데 이어 광고, 홍보 등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교보악사자동차보험은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3년 내 시장점유율을 8%대까지 끌어올려 손보업계 빅5에 진입한다는 포부다. 심규섭 연구원은 “매년 10~15%가량 성장하고 있는 국내 보험시장은 외국계에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중소형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M&A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토종들의 텃밭이었던 은행권도 세계 2위 금융그룹인 HSBC의 외환은행 인수 합의를 계기로 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시중은행들은 벌써부터 HSBC와의 정면승부를 걱정하고 있다. 과거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 스탠터드차터드의 제일은행 인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외환은행은 자산 규모 면에서 국내 5위 은행으로 HSBC와 합병하면 단숨에 4위까지도 올라설 수 있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HSBC와 외환은행이 합병하면 자산규모는 100조원을 넘어 4위인 하나은행과 20조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20조원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경우 1년 안에도 역전시킬 수 있는 미미한 차이”라고 말했다. 금융전문가 사이에서는 HSBC와 외환은행의 합병시너지 여하에 따라 빅3 진입도 가능하다는 성급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85개국에 1만여 개의 점포를 둔 HSBC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자금 조달력, 영업 노하우 등이 외환은행의 잠재력과 결합할 경우 강력한 시너지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외환은행은 자산 규모 면에서 선두그룹과 차이가 크지만 인력수준이나 생산성, 수익성 등에서는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 2분기 실적에서 외환은행은 국민은행, 하나은행을 제치고 4위를 차지한 바 있다. 한정태 연구원은 “HSBC가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한다면 국내 시중은행들은 수성을 위해 대형화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토종 은행과 외국계 은행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새로운 M&A도 가능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심규선 연구원도 “민영화를 앞둔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도 매물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은행권이 토종들의 텃밭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금산분리는 폐지나 완화해야”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기관 인수가 잇따르고, 한국 내 시장지배력도 커지면서 금융권에서는 금산분리를 폐지 또는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즉 산업자본을 대항마로 금융시장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환은행 매각을 법원 판결 전에는 승인할 수 없다는 금융 당국의 입장이 사실상 국내 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기회를 막았다”며 “금산분리 정책은 앞으로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의 민영화 과정에서 또다시 외국자본이 주인이 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내에서도 금산분리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감독당국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국민은행을 비롯한 주요 은행들의 외국인 지분 비중이 점점 늘고 있는 상태에서 국내자본만 금산분리로 막는 것은 사실상 역차별이고, 외국자본에만 득이 될 수 있다”며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금산분리를 폐지 또는 완화하면 금융기관이 산업자본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도 이제는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투명성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도 많이 선진화됐다”며 “과거의 폐해에 집착해 기업과 금융회사가 공조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용어설명 윔블던 효과 윔블던 효과란 ‘윔블던 테니스 선수권대회’에서 외국 선수들이 우승해 상금과 명예 등 실속을 챙기는 반면 주최국인 영국은 대회만 개최하고 박수치는 역할에 머물고 있음을 빗대는 것에서 유래했다. 이 용어가 경제와 연관을 맺은 것은 1986년 영국이 국제 금융거래의 중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하자 은행 구조조정과 함께 대규모 규제 완화 조치를 취하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자생력이 부족한 영국 금융기관들은 외국 금융기관에 합병됐고, 그에 따라 외국의 대형 금융사들이 영국에 본격 진출했다.

2007.09.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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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투기꾼...홍콩 가면 외국큰손

산업 일반

일러스트 김회룡 연말 LG투자증권·대신증권은 홍콩 현지법인에서 발생한 3천억원대의 주식미수 사고로 발칵 뒤집혔다. 지난해 12월9일에서 13일에 걸쳐 두 증권사 홍콩법인의 외국인 기관이 삼성전자 등을 각각 2천9억원, 1천1백억원어치를 사놓고 주식 매수 대금을 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LG·대신증권은 이 사고로 각각 1백24억원, 22억6천3백만원의 손실을 봤다. 이번 일은 외국인기관이면 공짜로 수천억원 규모의 주식을 살 수 있었다는 점과 함께 특히 범인이 진짜 외국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끌었다. 투자자들은 베일에 가려진 ‘검은 머리 외국인(외국인을 가장한 한국인)’의 실체가 이를 계기로 벗겨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국인도 홍콩 가면 외국인으로 둔갑? 수천억원대의 금융사고를 낸 장본인은 ‘OZ CAPITAL’로 알려진 정체불명의 외국계 펀드. 이 펀드는 1년 전부터 증권사 홈트레이딩 시스템(HTS)으로 단기매매에 치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코스닥등록기업인 K기업의 주요주주로 확인돼 단순 사고가 아니라 ‘검은 머리 외국인’의 주가조작 가능성으로 확대됐다. 금융감독원이 현재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 결과 주범이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밝혀질 경우 시장에 큰 파문을 던질 전망이다. 작전 세력이 삼성전자라는 한국 대표주를 노렸고, 한국 증시의 가장 ‘큰손’인 외국인 정보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홍콩에 있는 한국인이 외국인으로 가장해 삼성전자를 1천억원어치 매입한 사실이 국내투자자에게는 진짜 외국인이 샀다는 정보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내국인이 홍콩에 가서 외국인으로 둔갑하는 작업이 비용도 적게 들고 절차도 까다롭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당국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검은 머리의 실체는?= 얼마 전에는 유명 금융기관이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작전의 배후에 있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용호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지난 2000년 산업은행이 삼애인더스 해외전환사채(CB) 발행 과정에서 검은 머리 외국인 역할을 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당시 산업은행은 국내 증권사를 주간사로 9백만 달러어치의 삼애인더스 해외CB를 발행한 뒤 해외증권사를 통해 이를 인수해 외국인이 CB를 인수한 것처럼 가장했다. 검은 머리 외국인은 지수선물·옵션시장 등 파생상품시장도 종횡무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선수가 ‘홍콩 물고기’라는 별명을 지닌 거대 투기세력. 홍콩 소재 기관에서 주문을 내고,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잘 빠져나간다는 이미지를 풍기는 이름이다. 이들이 등장했던 초기 99년께는 외국의 헤지펀드 그룹이 국내 증시를 교란시키고 이를 통해 이익을 챙긴다는 설이 유력했으나, 최근 들어 가짜 외국인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해외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이 적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홍콩의 외국 금융기관에서 펀드 매니저로 오랜 기간 근무한 A씨는 “외국인을 가장한 한국인 투자자들이 매우 확산돼 있다”고 주저없이 말했다. 특히 이들은 미국 등 토종 외국계 펀드와 달리 극도로 단기화된 매매에 주력하며 일부 중소형 종목에도 관심을 갖는다. A씨는 “이번 미수 사고는 지수를 좌우하는 삼성전자를 대량 매매했고, 시기가 선물옵션 만기일과 겹쳐 주식과 파생상품 매매가 연계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확신했다. 금감원, 검은 머리 외국인 대책 없어 한국인의 외국인 계좌 개설이 매우 용이한 게 현실이다. 홍콩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계좌 개설을 대행하는 변호사나 회계전문가 사무실이 적지 않으며, 비용 부담도 크지 않고, 설립 절차도 간편하다. 말레이시아 라부안·카리브해의 케이먼군도 등 조세 피난지역(Tax Haven)의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들은 자본금이 1달러 내외인 회사도 많다. 신규 설립도 가능하고, 기업을 매입해도 된다. 감독당국이 외국인 계좌 등록시 이들 유령회사의 주주명부를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해 명의대여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성행할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외국인으로 등록되고 계좌만 개설되면 한국인 개인이 외국인 기관으로 둔갑, 증거금 면제(매매약정을 이용한다는 증거로 증권사에 맡기는 돈)라는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게 된다. A씨는 “검은 머리 외국인들 대부분은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몸담은 경험을 갖고 있다. 여기에 한국시장에 대한 정보를 훤히 꿰뚫고 있다”고 했다. 그는 “네트워크를 조직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선진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이들이 맘만 먹으면 작전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한국시장을 전문으로 투자하는 외국 금융기관의 B씨도 “이번 사고의 매매수법이나 HTS를 이용했다는 점, 그리고 코스닥기업까지 두루 손을 댄 것을 보면 실체는 검은 머리 외국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런 주장은 최근 금감원이 3년간 10건의 외국인 불공정거래를 조사한 결과 검찰에 통보한 6건 중 5건이 내국인이었고 외국인은 리젠트 그룹 짐 멜론 사건밖에 없었다는 사실로 뒷받침된다. 한국증시, 외국인만 쳐다보는 해바라기 외국인이 되고 싶은 내국인의 심정은 그들의 영향력이 실로 막강하다는 데서 충분히 설명된다. 외국인 투자비중은 11월 말 현재 35.9%. 기업의 오너·대주주 지분이 묶여 있는 것을 감안하면 외국인은 국내 유통시장의 1대주주임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외국인 계정을 손에 넣고 싶은 게 투자자들의 바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검은 머리 외국인’의 성행은 한국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영향력에서 비롯된다. 외국인은 이미 ‘㈜ 코리아’의 최대주주로 등재됐고, 한국증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다. 12월24일 현재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이 54.02%인 것을 비롯, SK텔레콤 39.13%·KT 41.59%·국민은행 69.80%·포스코 61.57%·현대차 47.17%·삼성화재 53.33% 등 대표기업들의 최대주주는 단연 외국인이다.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거래소 상장 주식은 1백6조7천7백84억원으로 전체 시가총액의 3백35.9%를 차지한다.이러다 보니 주가는 당연하게도 이들이 팔면 떨어지고 사면 오른다. 예외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외국인 동향과 주가와의 연관성이 높다. 한국시장을 ‘외국인만 쳐다보는 해바라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이는 비단 주식매매뿐 아니라 선물옵션시장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의 시장지배력이 너무 커지다 보니 장중 실시간 제공되는 매매정보를 놓고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다. 찬성하는 쪽은 정보가 차단되면 루머가 난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국인 추종매매가 설쳐 정보 자체가 왜곡된 형태로 유통된다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투자자문사의 한 사장은 “외국인 매매정보 공개는 본질적으로 매매의 불평등을 야기시키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개인뿐 아니라 기관까지 해바라기가 된 상황에서 공정한 게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내·외국인 구분하는 곳은 한국과 대만뿐 세계적으로 주식시장에서 내·외국인이 구분되는 나라는 대만과 한국뿐이다. 외국인투자자 등록제도는 SK텔레콤·KT·데이콤(통신주),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담배인삼공사(공기업), 대한항공(항공주) 등 거래소시장의 경우 외국인 한도가 있는 7개 종목을 관리하기 위해 도입됐다. 금감원은 그러나 해당 종목이 줄어든 데다 시장 완전개방으로 구분의 실효성이 미미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재정경제부와 협의를 거쳐 외국인등록제도를 폐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외국투자가 현황=11월 말 기준 외국인으로 등록된 투자자는 1만4천61명(작년 말 1만2천8백60명)으로 꾸준한 증가세다. 이 중 기관이 9천48명(64.3%), 개인이 5천13명(35.7%)이다. 국적별로는 미국이 5천4백9명, 영국 1천2백21명, 일본 1천1백44명 순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5백32명)·아일랜드(3백93명) 국적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조세 피난지역(Tax Haven)의 해외자금도 상당 부분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투자하려면 우선 금감원에서 투자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어 외국환은행에 ‘증권투자 전용 외화계정’과 ‘증권투자 전용 원화계정’을 만들고 증권회사에 위탁계좌를 개설, 주식투자를 하게 된다. 외국인 계좌 거래는 금감원의 외국인투자관리 시스템에 집계된다.

2002.12.26 00:00

5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