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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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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 출신 의사가 본 ‘원격진료 유니콘’의 조건

바이오

원격진료 법제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에서 의료법 개정안을 낸 데 이어, 새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20일 법제화를 국정과제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차기 여당인 국민의힘도 발맞추고 나섰다. 국회에 상정된 민주당 법안과 별개로 새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30여 년간 의료 영리화, 의료전달체계 붕괴 등 우려로 막혀 있던 법제화 논의를 뚫은 건 지난해 12월부터 퍼지기 시작했던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였다. 이전 변이와 달리 매일 확진자가 수십만 명씩 쏟아지면서 병·의원을 피해 원격진료를 찾는 환자 수가 빠르게 늘었다. 여야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고, 원격진료가 일상으로 들어온 만큼 법제화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플랫폼 업체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27개국이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있다”고 거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환자와 의사가 만나는 시대가 열릴까. 의사면서 벤처투자사와 일하는 김치원 서울와이즈병원장에게 한국 원격진료 유니콘의 조건을 물었다. 김 원장은 200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글로벌 컨설팅사인 맥킨지앤컴퍼니에서 경영컨설턴트로 활동했다. 2020년부턴 국내 주요 벤처투자사인 카카오벤처스에서 투자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다. 김 원장은 “현재 의사와 약사의 입장이 다르다”며 “법제화가 돼도 원격으로 진료받고 약국에 직접 가야 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입장차가 큰 이유가 뭔가? 결국엔 하던 일에 미칠 영향이다. 의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경증은 의원급부터 맡는 기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 법안을 보면 의원급 위주로, 재진부터 허용한다. 그러면 큰 병원에서 ‘원격진료 전문 클리닉’을 만들어 감기 환자까지 모두 가져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약사들은 다른가? 반면 약사 쪽에선 기존 질서를 지킬 방법이 없다. 환자 집 근처에 있는 약국에서만 약 배송을 받으라고 할 방법이 없다. 지금은 약을 배송하는 약국 이름을 플랫폼에 노출하지 않는 정도로만 하고 있다. 게다가 약사법에선 원래 복약지도를 꼭 대면으로 해야 한단 내용이 없다. 상황이 의사보다 안 좋다. 플랫폼에선 ‘OECD 37개국 중 32개국이 이미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강조한다. 의료는 다른 산업보다도 나라별 차이가 크다. 문화부터 보험 제도까지 제각각이다. 외국에서 하니 한국에서도 하자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공단에서 재정 문제로 한국인의 한해 의료이용 횟수를 2019년 17.2회에서 OECD 평균치인 6.6회로 낮추자고 하면 누가 동의하겠나. 업체에선 2년간 원격진료를 했더니 의원 비중이 77%였다는 점도 든다. 원격진료를 상시 허용해도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지 않는단 것이다. 정부에서 가격체계를 조정해 의원급 참여를 독려했으니 그런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 유행이 끝난 뒤에도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법 개정에 들어가면 난관이 많겠다. 그래도 일부 지역에 한해 시범사업만 했던 과거에 비하면 상황이 크게 좋아졌다. 플랫폼업체 요구대로 초진부터 모든 환자와 질환에 대해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식으로 풀긴 어려울 거다. 원격진료를 대면진료의 보조 역할을 규정하는 민주당 법안 정도가 현실적인 선이 아닐까 한다. ━ “일자리 관점 접근, 바람직하지 않아” 플랫폼업계에선 원격진료 시장의 잠재력이 크다고 본다. 세계 1위 원격진료업체 텔라닥(Teladoc)을 예로 든다. 지난 2년간 전 세계에서 코로나 환자가 가장 많이 나왔던 미국에서 매출과 사용자 수를 빠르게 늘렸다. 2018년 4억1800만 달러였던 이 업체 매출액은 지난해 20억3270만 달러로 늘었다. 주가도 매출과 함께 폭등했다. 2015년 나스닥 상장 당시 28달러였던 주가는 지난해 2월 한때 293.66달러까지 올랐다. 현재는 61.69달러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시가총액은 99억4000만 달러(약 12조2938억원)에 이른다. 입법 문턱을 넘으면 텔라닥 같은 기업도 나올 수 있을까? 원격진료만으론 어렵다. 코로나 유행이 끝나면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상황이 달라진다. 비용이 늘기 때문이다. 환자는 진찰료의 30%를 부담해야 한다. 의사는 진찰료의 30%였던 가산 수가를 못 받게 된다. 개정법에 들어갈 내용도 변수다. 개정법에서 초진까지 허용하면 파워풀하지만, 어렵다고 본다. 현재 플랫폼은 수익이 전혀 없다. 다른 산업 플랫폼처럼 거래액에서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떼는 모델은 어렵다. 의료 영리화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병·의원 전산 시스템인 전자의무기록(EMR)처럼 월정액을 받는 모델로 갈 거다. 이 정도론 유니콘이 어렵다. EMR 국내 1위 업체(‘유비케어’) 시가총액이 4000억원 안팎이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기대를 갖는 이유가 뭔가? 원격진료는 하나의 콘텐트다. 원격진료를 시작으로 해서 디지털 헬스케어 슈퍼플랫폼으로 커질 수 있다. 만성질환을 대상으로 한 원격 모니터링이나 디지털 치료제 등을 모두 품겠다는 것이다. 원격 모니터링을 하려면 디지털 의료기기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련 시장도 함께 커질 수 있다. 원격진료가 풀리면 기대하는 바가 있나? 만성질환 관리가 수월해질 것으로 본다. 지금도 정부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여전히 어디까지가 진료이고 진료가 아닌지 모호하다. 환자 상태를 측정한 데이터를 병원으로 보내는 것은 기존 의료법상 문제가 없지만, 그걸 보고 처방을 하면 원격진료가 된다. 이런 건 풀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혁신 스타트업 규제 완화, 청년 일자리 확대 관점에서 원격진료 법제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의약업계 입장에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으로 느낄 수 있다. 1위 플랫폼업체 임직원이 70명 남짓이다. 의료산업 전체로 보자면 크다고 보긴 어렵다. 전제는 보다 나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느냐다. 기존 의료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원격진료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인지를 따져야 한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2.04.22 10:30

4분 소요
첫 콘텐트 유니콘 리디, 지난해 매출 2000억 돌파

IT 일반

콘텐트 플랫폼기업 리디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30.9% 늘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해외 웹툰 서비스 등으로 사업영역을 공격적으로 넓히면서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리디는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2037억9506만원을 매출로 거뒀다고 공시했다. 2020년 벌어들인 1555억5561만원보다 30.9% 많다. 리디 측은 “보유한 콘텐트지적재산권(IP)을 폭넓게 확장해 시너지를 창출한 동시에 해외 시장에서도 유의미하게 성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리디는 콘텐트 IP를 웹툰과 OST, 영상 등으로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또 글로벌 웹툰 구독 서비스 ‘만타(Manta)’는 출시 1년 여 만에 구글플레이 만화 앱 부문에서 북미·유럽·아시아 지역 16개국 1위에 올랐다. 특히 웹소설 ‘상수리나무 아래’는 웹소설 영문판과 웹툰 모두 인기를 몰고 있다. 다만 영업이익은 2020년 25억7308만원에서 지난해 191억8106만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리디 측은 “지난해 만타 글로벌 현지 마케팅을 벌이고 인재를 대규모로 채용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리디는 적자에도 투자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지난 2월 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부터 1200억원 규모를 투자받으면서 실탄을 마련했다. 당시 기업가치로 1조6000억원을 인정받으면서 국내 콘텐트 플랫폼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기업)에 올랐다. 배기식 리디 대표이사는 “올해 리디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발굴하고 글로벌 콘텐트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사업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2.04.14 17:28

1분 소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내세운 尹, 거대 야당 문턱 넘어야

산업 일반

“정부는 시장의 거래비용을 낮춰주는 규제나 안전 관련 규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하게 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 모델은 민간이 주도하는 ‘공정 혁신경제’로 요약된다. 정부·공공이 아닌 민간 중심으로 성장 동력을 전환하고, 민간의 창의력과 시장 효율성을 최대한 활용해 혁신성장을 이뤄내겠다는 게 골자다. 윤 당선인은 “시장의 원리를 존중하겠다”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할 것을 수차례 밝혀왔다. 동시에 시장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에 대해서는 대폭 폐지 혹은 완화하겠다는 뜻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전반적으로 친기업적인 제도 개편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제도 손질에 나서기 위해서는 국회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소야대’ 구도의 정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 정부 출범 직후 기업 규제 80여 개 폐지…규제 개혁 시동 윤석열 당선인은 정책 공약집을 통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으로 산업 질서가 혁명적으로 급변하면서 성장과 정체, 퇴보의 도전적 환경에 놓여있다”며 “국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비대면 교육 등의 신산업 분야 수요에 대해 과감한 규제 혁신과 정부 지원사업 실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첫머리에 올린 공약이 ‘규제개혁 전담기구 신설’이다. 규제개혁 전담기구를 통해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혁파하겠다는 의지다. 당장 새 정부 출범 즉시 사회 변화에 뒤처진 기업 규제 80여 개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80여 개 규제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활동 개선을 위해 재계가 호소했던 기업 성장과 투자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들을 폐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미래차·이차전지·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의 연구·개발(R&D)과 세제 지원 확대 ▶인공지능(AI)·문화콘텐트 등 분야에서의 유니콘 탄생 위한 규제 혁신 ▶개인 의료데이터 및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확대 ▶디지털 금융 혁신과 안정 위한 금융 규제 등도 동시에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 특수관계인 범위 줄이고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 대기업 입장에 환영할 만한 규제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특수관계인(총수) 친족 범위의 합리적 조정도 대기업 규제 관련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수관계인 친족 범위(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를 개선하고, 경제적 공동 관계가 없음이 증명되면 예외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매년 대기업집단을 지정하면서 각 그룹으로부터 지정자료를 제출받는데 여기에 ‘특수관계인 현황’ 등이 포함된다. 만약 누락·허위가 있는 경우, 공정위는 총수를 검찰에 고발할 수 있고 검찰 기소 시 해당 총수는 2년 이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재계·학계에서는 가족 형태의 변화에 따라 이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범위가 넓어 누락이 발생하기 쉽고 이에 대기업집단 총수가 공정위로부터 고발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공정위도 연구용역을 거쳐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 공약은 대기업 총수 일가에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 삼성·현대차·CJ 등 대기업들은 최근 상속세나 승계자금 확보를 위해 주식 매각에 나선 상황이다. 주식 양도소득세가 폐지된다면 총수 일가들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게 된다. 노동시장 유연화도 윤 당선인의 경제 공약 중 하나다. 윤 당선인은 우선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지하되 노사가 합의하면 업무 종류별 특성에 맞게 근무시간을 조정하겠다고 했다. 스타트업 등을 중심으로 예외 적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제 개편도 예상된다. 윤 당선인은 앞서 “최저임금을 200만원으로 잡으면, 150만원·170만원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일을 못 해야 하느냐. 200만원을 줄 수 없는 자영업자는 사업 접으라고 해야 하느냐“고 사업장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방안을 주장해왔다. ━ ‘114 vs 172’ 여소야대 넘어 입법해야 공약 관철 가능 관건은 국회의 동의다. 규제 개혁은 결국 입법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민의힘은 재보선 결과에 따라 의석수가 106석에서 110석으로 늘어나게 됐다. 무소속 임병헌 후보(대구 중·남구)가 복당하면 111석이 된다. 향후 국민의당과 합당하면 114석까지 불어나게 된다. 반면 현재 민주당 의석수는 172석이다. 민주당 성향 무소속 의원을 포함하면 177석이다. 지난 총선 당시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한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 의석수를 더하면 179석이 나온다. 진보정당인 정의당 의석수(6석)까지 합치면 범야권 의석수는 185석에 달한다. 2024년 4월 22대 총선이 치러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윤 당선인은 임기 초반 2년을 ‘여소야대’ 국면에서 보내야 한다. 거대 야당의 동의 없이는 어느 법 하나 쉽게 통과시키기 어렵다는 뜻이다. 야당과의 협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윤 당선인의 규제 완화 의지를 온전히 관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결국은 야당의 설득을 끌어내야 하는 것 아니겠나”라며 “이 과정에서 규제 완화 수준이 후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공언한 대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규제 개혁에 나서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2.03.10 20:00

4분 소요
8평 콘테이너서 뿌린 씨앗, 글로벌이 인정한 스마트팜 성장

IT 일반

“몇 년 만에 연매출 수백억 신화”, “고졸이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유명 대기업에 수백억 투자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이다. 가시밭길을 밟아온 창업가의 역경 드라마를 소개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숱한 곡절을 생생하게 목격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창업 시장이 일률적으로만 묘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업가의 성공에 손뼉만 치고 끝낼 게 아니라, 그들의 혁신 비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하자.” 가 ‘김홍일의 혁신우혁신’을 연재하는 이유다. 창업 요람의 리더 역할을 하던 VC 대표가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진중한 질문부터 가볍고 짓궂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열두 번째 주인공은 신사동 한복판에서 잎채소를 키우며 농업의 혁신을 꿈꾸는 엔씽의 창업가, 김혜연 대표다. 여기, 백색의 콘테이너 박스 하나가 있다. 8평 남짓의 작은 공간 안에선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콘테이너 내부엔 초록빛 생명이 층층이 쌓여있다. 잎채소다. 수직으로 쌓아 올린 작은 농장이 벽을 맞대고 이열종대로 서 있다. 원하는 작물과 품종이 있다면 콘테이너 안에서 자유롭게 기를 수 있다. 인공조명과 원격 조종 가능한 온습도 모니터링 장치 등 다양한 IoT 인프라를 갖춰놨기 때문이다. 재배하는 채소에 적합한 물과 양분도 자동으로 공급된다. 수경재배라 농약도 필요 없다. 변덕 잦은 날씨 걱정은 기우다.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고 질이 떨어질 거란 우려는 선입견이다. 입력된 데이터 값에 따라 컨테이너 내 모든 환경을 소프트웨어가 제어한다. 이 콘테이너는 위로 쌓을 수 있고 옆으로 붙여도 된다. 그만큼 땅값 걱정을 덜 해도 된다는 얘기다. 이는 한국 애그리테크(AgriTech·농업과 첨단기술의 합성어) 스타트업 엔씽이 개발한 모듈형 수직농장 ‘큐브’와 작물재배 솔루션인 ‘큐브OS’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말로 설명해도 신통방통한 기술을 직접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실제로 농산물을 길러내고 있으니 업계의 스타로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에선 혁신상을 두 번이나 거머쥐었고,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 드넓게 펼쳐진 중동에 큐브 제품을 수출하기도 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놓인 엔씽의 솔루션이 열심히 채소를 기르고 있다. 엔씽의 이천농장엔 38동의 콘테이너가 있는데, 연간 생산량 기준 112톤의 제품이 출하돼 식탁에 오른다. 엔씽을 창업해 말 그대로 성공의 씨앗을 뿌린 김혜연 대표를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가 만났다. 김홍일 대표는 엔씽 큐브에서 기른 바타비아 상추를 한입 베어 물면서 입을 뗐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김홍일 대표) : 이거 진짜 달고 맛있네요. 이런 걸 엔씽의 큐브 제품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기를 수 있는 겁니까. 김혜연 엔씽 대표(김혜연 대표) : 네, 재배 가능한 작물 숫자도 점차 늘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50여종이 넘는 채소나 허브를 기를 수 있습니다. 품종만 고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품질도 고를 수 있습니다. 가령 당도를 더 높게 할 수도 있고, 특정 영양소를 더 많이 품을 수 있게 하는 식이죠. 김홍일 대표 : 전자통신공학도입니다. 농업에 푹 빠진 이유가 뭡니까. 김혜연 엔씽 대표(김혜연 대표) : 농업보단 창업의 매력에 먼저 빠졌어요. 어릴 때부터 뭐든 발명하고 만드는 걸 좋아했습니다. 고등학생 땐 주변 골목상권에 있는 가게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고 용돈벌이를 하곤 했죠. 그 무렵에 우리나라에 벤처붐이 확산하고 있었습니다. 막연하게 대학도 안 가고 창업할 생각만 했죠. 그런데 막판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김홍일 대표 : 계기가 있었군요. 김혜연 대표 : 한 대기업에서 행사를 열었는데, 그때 비전이 뚜렷한 다양한 청년 창업가를 만났습니다. 대학을 가면 실력이 출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싶었죠. 김홍일 대표 : 진학해선 어땠습니까. 김혜연 대표 : 20대의 모토를 미리 정했어요.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 진짜 온갖 일을 했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흥미가 있어서 연예인 로드매니저도 해봤어요. 그러다 SK텔레콤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 한 리포트를 보게 됐습니다. 지금이야 익숙한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을 소개하는데 깜짝 놀랐죠. 와, 이런 게 나오면 세상이 뒤집어지겠구나. 2007년의 일이었거든요. 특히 수많은 사물을 연결할 거란 IoT는 정말 매력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김홍일 대표 : 창업을 향한 열망이 더 강해졌을 것 같습니다. 김혜연 대표 : 그해 출시한 애플 아이폰이 진짜 세상을 뒤집는 걸 목격하곤 창업 욕심이 들끓었어요. 그런데 가족들 우려가 컸습니다. 그땐 벤처붐도 다 꺼졌고, 금융위기가 덮쳤을 때니까요. 일단 돈 버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마침 친척이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농자재 회사를 경영하고 있어서 그 밑에서 일하게 됐죠. 김혜연 대표는 이때 농업과 마주하게 됐다. 당시 친척의 회사는 우즈베키스탄 기업과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고 현지에 비닐하우스 토마토농장을 만들 참이었다. 김 대표가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됐는데, 이 경험은 천운이었다. 농업엔 깜깜이였던 김 대표가 토마토농장을 만들면서 엔씽의 뼈대가 되는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게 됐기 때문이다. “의외로 현대농업은 기술적이에요. 경험과 직관으로 짓지 않죠. 센서나 자동화 설비 수준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관리하면 잘 자랄 줄 알았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해는 풍년이었고, 그다음 해는 흉작이었죠. 차이점이 있었어요. 풍년이었을 땐 토마토 전문가가 세심하게 관리를 해줬는데, 이듬해엔 전문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기술이 발달한 현대농업도 아직은 사람이 운영체제(OS)구나.” 김혜연 대표는 사람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만큼 고도화한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기업 인턴 시절에 일찍이 접한 IoT, 빅데이터, AI 같은 첨단기술을 엮으면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이 아이디어가 엔씽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김홍일 대표 : 큐브도 따지고 보면 스마트팜의 일종입니다. 스마트팜을 만드는 기업은 많습니다. 김혜연 대표 : 글로벌 대기업도 호시탐탐 노리는 시장이죠. 그런데 이들이 만드는 건 ‘자동화한 온실’에 가깝습니다.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채산성을 맞추는 데 주력하고 있죠. 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규모가 웅장하고 필요한 자본도 상당합니다. 엔씽은 달라요. 김홍일 대표 : 어떻게 다른가요. 김혜연 대표 : 농장 자체를 규격화하고 모듈화하는 게 목표였고, 그 결과가 8평짜리 콘테이너인 큐브였죠. 농장의 형태를 결정하고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는 모듈화의 장점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엔씽이 중동에 큐브를 수출했던 것도 이 장점 덕분이었죠. 농산물을 자체 생산할 수 없는 중동에서 큰돈을 만지고 싶은 스마트팜 사업자는 줄을 섰습니다. 그중에서 엔씽이 돋보였던 건 먼저 콘테이너 두 동을 현지에 먼저 보내 출하까지 완료했거든요. ━ 엔씽, 중동에 스마트팜 기술력 증명 김홍일 대표 : 직접 보여주고 증명했군요. 김혜연 대표 : 큐브는 콘테이너를 세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농산물 최대 소비지인 도시와 인접한 곳도요. 콘테이너를 4~5층 쌓으면 단숨에 대규모 농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병충해가 오면 쑥대밭이 되는 대형 스마트팜과 달리, 엔씽은 병충해가 옮은 콘테이너 하나만 떼어내면 됩니다. 저는 이런 구조를 ‘탈중앙화 농장 솔루션(Decentralised farm solution)’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김홍일 대표 : 흥미롭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의 지향점인 탈중앙화와 맞물리는군요. 김혜연 대표 : 모든 농산물을 큐브에 담진 못하겠죠. 수경재배가 가능한 제품만 기술로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블록체인의 비전처럼 기존 산업을 완전히 대체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다만 생산성으로 봐도 엔씽의 솔루션을 찾게 되는 이유는 분명해집니다. 김홍일 대표 : 일반 농사와 비교하면 생산성의 격차가 어떻습니까. 김혜연 대표 : 노지(露地) 재배와 단위 면적당 연간 생산량 기준으로 비교하면 생산량이 적게는 40배에서 100배가량 납니다. 그냥 땅에선 2~3번 수확하고 말 걸 큐브에선 12~13번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김홍일 대표 : 수경재배니까 물 소비량이 엄청날 것 같은데요. 전기료는 어떻습니까. 김혜연 대표 : 정반대입니다. 실제 농사와 비교하면 98.5%가량 물을 절약할 수 있죠. 땅에서 기르면 땅이 물을 다 먹습니다. 큐브는 완전 순환식 농법입니다. 제품에 꼭 필요한 물만 주죠. 전기료는 글쎄요. 기존 농업에선 등유를 비롯해 각종 화석연료를 씁니다. 100% 전기인 큐브는 친환경이죠. 소비지와 가깝게 설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물류거리도 줄일 수 있고요. 지금은 성능이 월등한 큐브 덕에 엔씽에 투자하겠단 기업이 줄을 섰지만, 큐브를 선보이기 전까진 회사 매출이 변변치 않았다. 2014년에 회사를 창업하고 큐브를 만든 게 2018년의 일이었으니, 그사이에 걸어온 길은 장밋빛이 아닌 가시밭길이었던 셈이다. 엔씽은 창업 초기 IoT 기술을 기반으로 한 화분, 스마트 비닐하우스 등 다양한 농업 솔루션에 도전하면서 역량을 쌓긴 했지만 실적을 나타낼 숫자가 없었다. 농업을 다루는 회사인 만큼 농부의 마음으로 인내하려고 해도, 창업가는 초조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김 대표가 버틴 건 엔씽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기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농업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덤덤히 털어냈다. 김홍일 대표 : 농업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김혜연 대표 : 농사 지을 사람이 없다는 말, 엄살 아니에요. 지금 농업 인구 평균연령이 71세, 농협 추산으론 75세입니다. 해가 바뀔수록 평균연령이 하나씩 더해져요. 이 얘긴 새롭게 유입되는 농업인구가 없다는 거죠. 국내 농가 과반의 연평균 매출이 1000만원 미만입니다. 5년 뒤면 지금과 같은 규모의 농산물 생산은 불가능할 거라고 봐요. 김홍일 대표 : 귀농 인구나 기업형 농가도 있지 않습니까. 김혜연 대표 : 기업형 농가가 형편이 좋은 건 맞아요. 어쨌든 자본과 시설을 투자했으니까요.그런데 품목이 정해져 있거든요. 토마토나 딸기, 파프리카 같은 거죠. 상추 같은 잎채소, 신선채소를 다루는 농가는 생계형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점점 줄어들면 우리도 상추를 수입해서 먹어야 해요. 김홍일 대표 : 엔씽 큐브가 곳곳에 세워지면 그런 미래도 바꿀 수 있겠네요. 김혜연 대표 : 저는 미래의 농업이 콘텐트업과 닮아졌으면 해요. 농산물에 브랜드와 스토리가 담기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일단 생산과 수확이 지금보다 덜 힘들어야 해요. 엔씽이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이죠. 먹거리는 자동차 산업보다 규모가 큰 산업이고, 수요도 계속 있을거 잖아요. 엔씽도 할 일이 많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 기자가 본 김혜연 대표 김혜연 대표가 말하는 미래 농업 비전을 듣다가 한 지인 농부의 등이 떠올랐다. 그는 1년 내내 공들인 무밭을 병충해 때문에 직접 갈아엎었다. 불합리한 일 같아서 분노했는데, 그 농부는 “하늘이 짓는다”고만 말했다. 농사의 결과는 예측불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변수인 날씨뿐만 아니라 병해충 발생 가능성, 수급 문제도 골칫거리다. 지나친 흉년도 문제지만, 지나친 풍년도 뼈아프다. 값이 폭락해 땀의 대가를 받지 못한다. 이상기후가 찾아오는 일이 잦은 요즘엔 환경이 더 어둡다. 세계 곳곳에서 가뭄·홍수 등으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미 여러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고, 인플레이션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김혜연 대표와 엔씽은 이런 농업을 예측 가능한 산업으로 바꾸고 있다. 누구나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고, 또 누구나 지갑을 크게 열지 않아도 좋은 품질의 채소를 맛볼 수 있다. 그러자 엔씽의 큐브가 콘테이너가 아닌 보물상자처럼 보였다. 엔씽의 신사동 사옥 1층에선 ‘식물성’이란 이름의 쇼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식물성에선 커피뿐만 아니라 엔씽의 첨단기술로 재배한 각종 잎채소와 허브도 판다. “식물성은 식물들의 별이란 뜻이에요. 인류가 언젠가 화성으로 이주할 때 엔씽의 솔루션이 함께 가길 원하거든요.” 김 대표가 혁신한 콘테이너는 8평짜리였지만 그의 꿈의 크기는 우주만큼 컸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2022.02.26 10:00

8분 소요
‘게임 유니콘’ 엔픽셀, 블록체인과 신작으로 재도약 할까?

IT 일반

지난해 ‘그랑사가’로 출시로 게임업계에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엔픽셀이 올해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과 신작 출시로 재도약에 나선다. 엔픽셀은 모바일게임 ‘세븐나이츠’를 만든 개발자들이 뭉쳐 세운 회사다. 지난 2017년 설립된 개발사로 지난해 새한창업투자로부터 100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해당 투자를 통해 엔픽셀은 1조원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국내 게임업계 최단기간 유니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유니콘 기업’은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을 평가받은 스타트업을 말한다. 엔픽셀의 대표작은 지난해 1월 출시한 그랑사가다. 150여 명의 개발진이 3년간 개발한 게임으로 가상의 대륙 ‘에스트로젠’을 무대로 ‘그랑나이츠’ 기사단의 활약상을 그린 멀티플랫폼 MMORPG다. 언리얼4 엔진으로 연출한 고품질 애니메이션풍 그래픽과 체코 필하모닉, 도쿄시티 필하모닉이 참여한 웅장한 배경음악이 특징이다. ━ 게임업계 최단기간 유니콘 반열…1조원대 기업가치 인정받아 그랑사가는 출시 전부터 사전예약 500만명을 돌파했으며, 출시 직후 구글 플레이 스토어 최고 매출 3위, 애플 앱스토어 최고 매출 1위, 원스토어 최고 매출 1위를 기록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그랑사가의 성공은 신규 IP로 상당히 이례적인 성과다. 현재 게임 시장은 신규 IP가 성공하기 어려운 구조다. 대형 게임사들의 인기 IP 기반 게임들이 계속해서 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그랑사가의 국내 성적은 좋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기준 100위권을 기록 중이다. 대신 지난해 말 진출한 일본 시장에서 최근까지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랑사가는 지난달 26일 신규 업데이트에 힘입어 일본 애플 앱스토어 게임매출 순위 8위에 올랐다. 엔픽셀 관계자는 “그랑사가 출시 1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이벤트 등을 선보이고 있다”며 “국내 대상 지속적인 콘텐트 업데이트 역시 내부에서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 다음 타자는 ‘블록체인’과 신작 ‘크로노 오디세이’ 엔픽셀은 올해 그랑사가 IP를 활용, 블록체인 기반 프로젝트 및 NFT(대체불가토큰) 등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기반의 게임 생태계 구축을 통해 사업 다변화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엔픽셀이 준비 중인 ‘그랑버스(GRANVERSE)’는 그랑사가 IP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 유저가 직접 게임에 참여해 의사결정이 가능한 탈중앙화(DAO) 기반의 프로젝트를 지향한다. ‘프로젝트 픽셀(Project Pixel, 가칭)’은 그랑사가 IP를 2D 도트 그래픽으로 재해석한 샌드박스 게임으로, 유저가 직접 게임을 설계해 공유하는 것이 특징이다. 엔픽셀은 그랑버스의 브랜드 페이지를 통해 유저들에게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공유할 방침이다. 아울러 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해 파트너들과 다양한 협업 기회를 마련하며, 완성도 높은 유저 참여 방식의 메타버스 게임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공유하고 완성해나갈 계획이다. 신작 ‘크로노 오디세이’는 그랑사가에 이어 엔픽셀이 선보이는 두 번째 프로젝트로, 특수 조직 ‘이드리긴’의 일원들이 12명의 신들에게 대항해 거대한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다룬 시공간 에픽 판타지 MMORPG다. 영화를 방불케 하는 스토리와 세계관, 리얼한 그래픽의 방대한 월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개발 중이며 ‘갓 오브 워’, ‘스타크래프트’ 등 인기 게임에 참여한 글로벌 유명 게임 음악 작곡가 ‘크리스 벨라스코(Cris Velasco)’가 사운드트랙 작업에 참여해 완성도를 더했다. 엔픽셀은 올해 공개를 목표로 크로노 오디세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차세대 플랫폼에 맞춰 그래픽, 이용자 환경(UI), 이용자 경험(UX)을 최적화해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엔픽셀 관계자는 “올 한 해 차기작 ‘크로노 오디세이’ 개발에 주력하고 ‘그랑사가’의 본격적인 글로벌 영역 확대에 나선다”며 “블록체인 프로젝트 ‘그랑버스’를 통해서는 웹(Web) 3.0으로 일컫는 탈중앙화 기반의 가상세계 구축을 목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엔픽셀은 한국과 일본 양 국가에 서비스 중인 그랑사가를 비롯해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IP를 발굴 및 육성할 방침이다”고 덧붙였다. 원태영 기자 won.taeyoung@joongang.co.kr

2022.02.04 17:08

3분 소요
“사람중심 AI기술로 ‘치매=절망’ 편견 깰 것”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

CEO

“몇 년 만에 연매출 수백억 신화”, “고졸이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유명 대기업에 수백억 투자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이다. 가시밭길을 밟아온 창업가의 역경 드라마를 소개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숱한 곡절을 생생하게 목격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창업 시장이 일률적으로만 묘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업가의 성공에 손뼉만 치고 끝낼 게 아니라, 그들의 혁신 비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하자.” 가 ‘김홍일의 혁신우혁신’을 연재하는 이유다. 창업 요람의 리더 역할을 하던 VC 대표와 현직 기자가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진중한 질문부터 가볍고 짓궂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아홉 번째 대담의 주인공은 치매 조기 진단 및 예방을 목표로 하는 인지건강 플랫폼 실비아를 론칭한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다. 치매를 둘러싼 에피소드는 대부분 깊고 어둡다. 냉정한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유효하다. 연구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정확한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탓이다. 확실히 증명된 예방법이 없고, 완전한 치료약도 없다. 치매인구의 증가는 곧장 사회에도 부담이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해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가족이 떠맡고 있어서다.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는 이 무거운 담론에 발을 디딘 창업가다. 치매 조기 진단 및 예방을 목표로 하는 인지건강 관리 모바일 플랫폼 ‘실비아’를 출시했다. 수백만원이 소요되는 치매 검사 대신 앱을 통해 두뇌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음성·안구 패턴·촉각 분석 등 비대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개인의 인지건강을 평가하고, 전문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인지건강을 기를 수 있는 생활습관도 안내한다. 시공간능력, 실행기능, 기억력, 주의집중력, 언어능력 등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인지 트레이닝 콘텐트’를 갖췄다. 치매 진단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의료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게 당장의 목표다. ━ “깜빡 하지 말고 실비아 하세요” 실비아 플랫폼의 가치는 곳곳에서 인정받았다. 2019년 서울대 의과대와 디캠프가 공동 주관한 데모데이에서 우승의 영광을 누렸고, 2020년 8월엔 끌림벤처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삼성전자의 외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C-LAB 아웃사이드’에도 선발됐고, 지난해 8월엔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얼마 전엔 데이터산업진흥원 주관한 데이터-그로스 프로젝트에서도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WHO 서태평양 사무국이 주관한 헬스 이노베이션 포럼에서 한국 대표 치매 혁신사례 패널로 발표하기도 했다. 실비아 앱은 지난해 8월 오픈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월간활성사용자수(MAU)가 매달 180% 넘게 증가했다. 1인당 평균 방문 횟수는 13회에 이를 정도로 참여도가 상당하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치매극복선도기업 선정, 광주광역시 서구, 시니어클럽, 금천 50플러스센터, 성남 고령친화 산업 동반 협력기업 선정 등 다수 지자체와의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지금은 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리더지만, 고명진 대표가 처음부터 창업을 꿈꿨던 건 아니다. CEO 명함을 만들기 전엔 서울대에 재학 중인 의대생이었다. “치매는 많은 이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국가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죠. 저 역시 그렇게 방관하던 사람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김홍일 대표) : 청운의 뜻을 품고 창업을 목표한 건 아니었다고요.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고명진 대표) : 실비아헬스의 주춧돌은 서울대 의과대학과 디캠프가 공동주관한 데모데이였습니다. 굵직한 경력의 심사위원을 상대로 창업할 서비스나 제품,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자리였죠. 그때 서류를 낼 때 비즈니스 모델(BM)을 적는 항목이 있었거든요. 저는 실비아헬스의 BM을 ‘비영리’라고 적었어요. 김홍일 대표 : 엉뚱한 시작이었네요. 고명진 대표 : 창업을 할 의지가 뚜렷하진 않았던 거죠. 데모데이 참가를 준비할 때만 해도 법인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요. 저를 중심으로 친한 의대생이 모여 만든 동아리 형식의 팀이었죠. 김홍일 대표 : 그런데 우승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그제서야 창업을 결심하게 된 건가요. 고명진 대표 : 맞습니다. 창업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저는 의대 재학중에는 창업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창업이 저와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뭔가 창업가 특유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맨손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도저 같이 밀어붙이는 식의 정신이요. 2030 세대에게 창업은 중요한 생존전략 중 하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청년이 성공을 꿈꾸면서 스타트업을 만든다. 대개는 실패로 끝이 나는데, 성공한 이들을 추려보면 공통의 DNA가 드러난다.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키길 갈망하는 뜨거운 에너지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강한 도전 욕구가 대표적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창업가가 되기로 한 것처럼, 운명에 이끌리듯 창업을 길을 걷는다. 고 대표의 설명대로라면 그는 ‘어쩌다 창업가’가 된 것처럼 보인다. 실비아헬스의 초기 모델이 돈을 버는 회사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떠밀리 듯 실비아헬스를 만든 건 아니었다. 고 대표 역시 의대 연구동에 붙어있던 한 장의 포스터에 적힌 슬로건에 운명처럼 끌렸다. ‘소소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였다. 마침 그에겐 소소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치매를 AI로 진단하는 것이었다. 증상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면 그럴듯한 결과를 내지 않겠냐는 공상이었다. 의학은 빅데이터 기반 AI 기술 접목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였다. 고 대표는 특히 진단의료 분야에서 성과가 탁월하단 얘길 들었다. 그런데 이 기술을 치매와 같은 인지장애 관련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진 못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데이터를 365일, 24시간 학습해 정확도를 높이면 인간 의사와 견줄 만한 정밀도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마침 초등학교 동창이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AI 전문가였다. 고 대표는 친구에게 관련 데이터를 보내고 이걸 AI에 접목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데모데이에서 우승하면 상금도 탈 수 있다”고도 꾀어냈다. 한참 뒤, 친구의 회신이 왔다. “기술적으로 가능해. 그런데 명진아. 나 이 아이디어에서 창업이 보여.” 소꿉친구는 실비아헬스의 공동창업자가 됐다. 전재민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김홍일 대표 : 전재민 CTO와 합심해 실비아헬스를 만들었습니다. 의사라는 안정적이고 창창한 미래를 걷어차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요. 고명진 대표 : 주변에서 극구 만류했죠. 그렇게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저는 오히려 열정이 샘솟았어요. 오히려 ‘아, 나는 실비아헬스를 만들기 위해서 그간의 삶을 살아왔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많은 창업가가 기발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트리거 삼아 창업하잖아요. 저는 반대였습니다. 창업 자체가 제 삶의 변곡점이자 트리거가 됐습니다. 김홍일 대표 : 순서가 바뀐 셈이군요. 그렇게 뜻밖의 기회로 첫 발을 떼는 스타트업도 많습니다. 고명진 대표 : 무엇보다 창업가로서도 충분히 제 장점을 발휘할 수 있겠더라고요. 저는 정답이 없는 문제를 마주하고 이를 고민하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매 순간 끊임없이 문제와 부딪히고 이를 신속하게 해결해야 하는 창업이 그랬어요. 김홍일 대표 : 자, 이제 실비아헬스 얘길 해보죠. 치매 진단을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선정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 대표는 아직 20대잖아요. 하필 이 무거운 시장에 뛰어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명진 대표 : 어떤 현상이든 그림자를 봐야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데요. 저는 그 그림자를 꽤 가까운 데서 목격했습니다. 고명진 대표의 이력은 범상치 않다. 세계적 명문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국내외 대기업을 노크하면 손쉬운 취업을 기대할 수 있는 스펙이었다. 그런데도 고 대표는 방향을 확 틀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번엔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하고 싶은 건 해내고 마는 고 대표의 독특한 정체성은 현재 실비아헬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발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남다른 삶의 궤적을 든든하게 지탱했던 건 고 대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고 대표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그만큼 그에겐 각별한 존재였는데,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항상 작은 고민거리도 저와 나누던 할머니가 저 모르게 치매 유전자 검사를 받고 오셨더라고요. 다행히 결과엔 특이사항이 없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손녀 몰래 검사를 신청하고 받고, 결과를 초조히 기다렸을 할머니를 떠올리니까요. 그사이 얼마나 속앓이를 했겠어요.” ━ 노년층 위한 일상 속 전방위 케어 필요성 절감 고명진 대표는 치매가 우리 삶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바늘구멍 같은 명문대 입학을 두 번이나 돌파한 학습력으로 노년층의 인지건강 관련 공부에 파고들었다. 치매에 관련한 책을 읽고 웬만한 논문은 다 섭렵했다. 이를 바탕으로 어르신과 소통하는 방법이나 원격 인지재활 진행 매뉴얼, 상담 매뉴얼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치매를 대하는 인식이 곱지 않다는 걸 느낀 것도, AI와 인지건강 진단을 엮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이때부터다. 김홍일 대표 : 치매가 무서운 병인 건 사실이잖아요. 정말 한국 사회만 유별나게 대응하고 있나요. 고명진 대표 : 다들 절망의 병으로 치부하는데, 치매는 질환이 아닙니다. 상태를 의미하죠. 저는 치매란 단어부터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어리석을 치(癡)’에 ‘미련할 매(呆)’,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걸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주로 쓰던 게 일본이었는데, 지금은 바꿨어요. 인지증으로요. 김홍일 대표 : 다른 나라에선 뭐라고 합니까. 고명진 대표 : 디멘시아(Dementia).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정신이 없어진 것’이란 단순한 의미가 담겼죠. 전 세계를 휩쓴 넷플릭스 드라라 오징어게임의 오일남 캐릭터를 두고 미국 시청자가 이런 말을 써요. ‘디멘틱!(Dementic)’ 김홍일 대표 : 이름을 바꿔서 인식을 개선하기엔 숨은 고통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요. 고명진 대표 : 중증의 치매는 그렇죠. 조기에 진단하면 개선할 방법이 여럿 있어요. 그런데 치매의 치자만 꺼내도 엄숙해지는 분위기니까, 악화할 대로 악화해서야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은 겁니다. 깜빡깜빡하는 현상을 두고 차라리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어르신이 상당하다는 거죠. 치매를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분들도 많고요. 김홍일 대표 :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건 아닐까요. 고명진 대표 : 치매 환자를 위한 스타벅스까지 등장하는 일본과 견줄 순 없지만, 한국도 인프라는 훌륭해요. 특히 오프라인은요. 전국에 치매안심센터가 250여개가 있습니다. 땅끝 거제도에도 있죠. 60세 이상 국민에겐 무료로 검사도 해줘요. 그런데 심각성을 크게 느끼기 전에는 오프라인 문턱을 넘기가 어려워요. 김홍일 대표 : 이 문턱을 낮추는 게 실비아헬스의 임무군요. 고명진 대표 : 오프라인 상담소를 찾아가는 게 부담스럽고, 수백만원을 웃도는 검사·관리비가 부담이 되는 분도 손쉽게 조기진단을 받고 치매 예방에 대한 접근성도 높기 때문이죠 요샌 어르신도 유튜브 보고 카톡도 하잖아요. 그런 앱보다 쉽게 실비아 앱을 다룰 수 있게끔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김홍일 대표 : 치매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실비아헬스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실비아헬스가 앞으로 성장해서 더 많은 사람이 실비아를 접해야 할 텐데요. 가능할까요. 고명진 대표 : 될까, 안 될까를 확률로 재고 있진 않습니다. 꼭 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고령화 사회, 치매는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입니다. 실비아 앱을 통해 그 고통과 슬픔, 두려움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고 싶습니다. 김홍일 대표 : 치매를 마냥 두려워하는 완고한 사회 분위기가 정말로 바뀔 수도 있겠군요. 그것도 20대 청년 창업가를 통해서요. 고명진 대표 : 최종적으론 노화가 두렵지 않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실비아헬스는 그 변화에 크게 기여하고 싶고요. 이런 꿈같은 일이 가능하겠냐고 묻는다면, 저는 또다시 꼭 해낼 거라고 답할 겁니다. ━ 기자가 본 고명진 대표 고명진 대표가 “치매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고 강변하는 사이, 주변의 누군가가 치매에 걸렸다고 상상했다. 머릿속이 헝클어져 갔다. 소중한 기억이 흐릿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금세 쓸쓸하고 황량한 기분이 들었다. 청년 창업가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폭과 깊이의 담론처럼 느껴졌다. 그의 전공인 경제학과 의학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인지도 궁금했다. 고 대표가 부연했다.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저 역시 절실합니다. 인생을 걸었거든요. 다행히 그간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을 다뤘어요. ‘사람은 이럴 거다’란 전제 아래 경제학은 사람과 사회의 행동 패턴을 탐구하고, 의학은 사람의 몸을 다루죠. 실비아헬스는 AI를 다루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닙니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마음인 거죠.” 고 대표는 결이 다른 두 학문을 공부하면서 공통의 깨달음도 얻었다. 이론과 실전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경제가 전문가들의 전망대로 전개되지 않고 환자의 상태가 의료진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듯 말이다. 이 때문에 한 가지 답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과 치료법이 등장한다. 의사가 아닌 창업을 통해 실전에 뛰어든 고 대표는 실비아헬스 경영에 이 깨달음을 적용했다. 모든 경영 결정이 사업을 위협하는 변수고, 정답이 없는 문제다. 그만큼 골머리를 썩이지만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스타트업 생태계에 발을 디뎌서인지 고명진 대표는 스테레오 타입의 창업가처럼 보이진 않았다. 대신 학구열에 불타는 ‘모범생’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노화가 두렵지 않은 세상’이란 대담한 꿈을 꺼내기 전까진 말이다. 그가 훤칠하게 커 보였다. 이 가시밭길 많은 공상을 실현해야 하는 건 고명진 대표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보단 더 많은 사람의 응원과 지지를 받았으면 좋겠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2022.02.01 18:00

9분 소요
대기업 품은 스타트업…직방, 삼성SDS 홈IoT부문 인수

IT 일반

부동산 플랫폼기업인 직방이 삼성SDS 홈 사물인터넷(IoT) 사업을 인수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나온 지 3개월여 만이다. 27일 직방은 삼성SDS의 홈IoT사업을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비밀유지 협약에 따라 인수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SDS의 홈IoT사업은 월 패드와 디지털 도어록을 제품군으로 하는 스마트홈 시장 국내 1위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관련 제품을 해외 16개국으로도 수출하고 있다. 월 패드는 방문객 출입을 통제하는 기기를 말한다. 최근엔 터치 한 번으로 집안에 있는 전자제품을 작동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매출 규모로 보면 삼성SDS는 '골리앗'이고, 직방이 ‘다윗’에 가깝다. 2020년 직방 매출은 458억원이었다. 반면 삼성SDS 홈IoT사업부 매출은 적어도 1000억원이 넘는다. 6년 전인 2015년에 이미 1600억원을 넘었다. 당시 글로벌 보안업체 ‘알레지온’에서 이 사업부 인수를 위한 협상을 벌이면서 매출액이 공개됐다. 그러나 기업 가치에선 직방도 ‘골리앗’ 반열에 들어섰다. 지난해 기존 투자사로부터 구주를 사들이면서 1조1000억원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벤처투자업계에선 기업 가치 1조원이 넘는 비상장기업을 유니콘이라고 부른다. 그간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받은 금액도 약 2280억원에 달한다. 직방은 이번 인수로 스마트홈 시장에 뛰어든다. 안성우 대표는 “직방의 주거 콘텐트와 삼성 홈IoT 하드웨어를 결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직방은 그동안 매물로 나온 집이나 모델하우스를 디지털 가상세계에서 둘러볼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여 왔다. 여기에 하드웨어 역량을 접목하겠단 것이다. 구상대로 이뤄진다면 직방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시장 기대와 다르게 매출 실적은 몇 년간 400억원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플랫폼 광고 수익 말고는 뾰족한 수입원이 없었던 탓이다. 이번 인수로 직방은 삼성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시장에 진출할 창구도 함께 마련하게 됐다. 안성우 대표는 “국내 부동산 거래를 넘어 글로벌 종합 프롭테크(부동산기술)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2.01.27 18:07

2분 소요
‘동남아’ 속도 내는 K-유통, 제2의 기회의 땅 될까?

국제 경제

“이제는 제2의 동남아다.” 국내 유통 기업들이 동남아시아 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 지역은 몇 년 전부터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하면서 잠재력을 이미 인정받은 시장이지만 최근 그 흐름이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 왜 동남아인가…잠재력 큰 ‘젊은’ 나라 그간 국내업계는 해외진출의 최우선 교두보로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과 13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을 꼽아왔다. 개발도상국이 대부분인 동남아 지역은 두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높은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잠재력을 드러내면서 이제는 핵심 전진기지로 자리 잡고 있다. 동남아 하면 떠오르는 베트남·태국·필리핀이 다가 아니다. 이들을 포함한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싱가포르) 등이 모두 기회의 땅으로 부각되고 있다. 국내에서 성장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유통기업들이 새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동남아 시장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백화점·대형마트·편의점업계는 물론 식음료·프랜차이즈·면세점·화장품·패션·이커머스업계까지 다양하다. 직접 진출하거나 현지 기업을 인수 또는 투자하는 형태로 동남아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동남아가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동남아는 인구가 중국·인도에 이은 세계 3위 국가다. 인구수만 6억5000만명에 달하는 데 이 중 50%가 30세 이하다. 전 세계에서 젊은 세대 비중이 가장 높으며 국내총생산(GDP)가 매년 6% 가까이 고속 성장하는 세계 6위 경제 대국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들이 동남아를 재주목한 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와 함께 동남아의 온라인 유통이 급성장하면서다. 인구 대부분이 젊어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고 디지털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동남아에선 소비자 88%가 온라인을 통해 상품을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동남아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620억 달러로 고속 성장 중이다. 2019년 380억 달러(약 45조3340억원) 대비 무려 63%가 증가했다. 업계에선 2025년이 되면 동남아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가 1720억 달러(약 205조19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향후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동남아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으로 국내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좋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이는 신남방 비즈니스위크에서 강연자로 참석한 동남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 라자다의 서종윤 VP(VicePresident)의 발언에서도 읽을 수 있다. 서 VP는 화상회의로 열린 강연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동남아시아 유통시장에서 온라인 부문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면서 “상품을 사기 위해 매장을 방문하기보다 휴대폰을 먼저 꺼내 드는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단순히 오프라인 상점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온라인 상점으로 몰렸다는 수준이 아니라 동남아에 있는 고객들의 구매패턴이 이미 변했고 계속 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동남아시아 내 한국 상품 수요는 계속해서 확대되는 추세다. 이는 ‘집콕’과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 사람들이 K-콘텐트를 접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구글에서 ‘korean food’를 가장 많이 검색하는 국가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망이 밝다고 무턱대고 진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지인들의 소비 트렌드와 니즈에 부합하지 않는 한 무작정 동남아에 제품을 판다고 해서 잘 팔린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아세안 국가별 시장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외국기업 장악 예상됐지만…베트남 기업의 ‘ 반전’ 우선 베트남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Global Market Report’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은 2050년까지 아세안 국가 중 도시화가 가장 많이 진전될 것으로 전망되는 곳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소비자신뢰지수 상위 8위 국가에서도 중국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며 2위를 차지했다. 기술발전을 위한 유·무형의 인프라도 가장 잘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동남아 신흥국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소비시장을 자랑한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1460억 달러(약 174조1780억원)였던 시장 규모는 2020년 1720억 달러(약 205조1960억원)로 성장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9.2%로 전망된다. 베트남 소매시장 환경이 최근 들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베트남 유통시장은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선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기업인 롯데가 베트남 전역에 15개 마트와 2개의 백화점을 운영 중이다. 일본의 유통 대기업인 이온그룹도 6개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투자기업들이 장악할 것으로 예상했던 베트남 유통시장은 2018년 반전을 맞는다. 이온그룹 소속 점포를 비롯해 프랑스 소매 대기업 체인 수십 개를 베트남기업들이 인수했다. 올해는 국내기업인 이마트가 호찌민시에서 운영하는 매장 지분을 타코 그룹에 매각했고 6월엔 롯데마트가 하노이 운영매장 3곳 중 한 곳을 폐점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이에 대해 “소매시장이 성장하면서 많은 기업이 리테일 산업에 뛰어들고 있고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난 기업들이 인수 또는 합병되면서 산업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며 “베트남 소매시장이 우호적 정부정책, 구매력 향상 등으로 제2의 성장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판매 채널이 더 세분화되고 전문점과 편의점 수는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2018년 베트남에 처음 진출한 국내 편의점 유통 체인 지에스25(GS25)는 올 3월 빈증성에 100호점을 개점, 11월 말 기준 145개가 됐다. 12월엔 편의점 업계 최초로 GS25 베트남 현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가맹점도 열었다. 2018년 1월 GS25가 베트남에 첫 점포를 낸 지 4년 만이다. ━ 재택근무하고 집밥 먹고…인도네시아의 재발견 인구 2억7600만명의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국가 중 최대 전자상거래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시장은 2014년 13억9000만 달러(약 1조6554억원) 규모에서 2019년 186억705만 달러(약 22조1609억원)로 1235% 성장했다. 2025년에는 820억 달러(약 99조55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는 토코페디아·트래블로카·OVO 등 이커머스 플랫폼과 전자결제 관련 유니콘 기업이 다수 탄생했다. 소비재 시장도 2017년부터 지속해서 성장 추세다. 특히 전자제품과 식음료 분야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KOTRA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동이 제한되면서 원활한 재택근무를 위한 전자제품 수요 증가와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직접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결과”라고 풀이했다. 인도네시아 내 국내 기업 중에선 GS수퍼마켓이 활약 중이다. 푸드코트에 한식과 현지식을 동시에 배치하고 이슬람교를 믿는 현지인들을 위한 기도실을 마련하는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먹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GS수퍼마켓은 현지 진출 4년 만인 2020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태국은 2020년 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한 구매력 감소와 유통망 운영 제한으로 성장이 둔화됐지만 올해 회복세가 예상된. 이커머스 업체인 프라이스자(Priceza)에 따르면 태국은 인구 98.9%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이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모바일 쇼핑 경험을 갖고 있는 셈이다. 태국의 이커머스 시장은 보급형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2014년부터 연 83.5%씩 성장했다. 2020년이면 70억 달러(약 8조3377억원)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도 5년 내 이커머스 시장 규모를 2배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 말레이시아·싱가포르 ‘동남아 허브’로 주목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동남아의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동남아의 대표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할랄 산업의 중심지’로, 싱가포르는 ‘동남아 진출 허브’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8년 연속 이슬람 경제를 이끌 정도로 경쟁력 있는 시장으로 꼽힌다. 인구의 60% 이상이 무슬림인 만큼 할랄 인증 제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한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 위치한 싱가포르의 경우 서킷 브레이커(2020년 4월 7일~6월 1일 봉쇄조치) 동안 영업이 중단되면서 소매판매액이 전년 동기대비 크게 줄었지만, 점점 이전 수준을 회복 중이다. 싱가포르 소비패턴이 제 자리를 찾으면 국내 기업과 동남아 지역의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두 국가는 또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K-POP과 K-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소주와 한국 식료품 등이 인기가 좋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과일 맛 소주와 떡볶이, 오징어게임 열풍으로 인한 달고나 게임 키트 등이 큰 인기다. 덩달아 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한국형 편의점이 주목받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CU, 이마트24 등 국내 편의점들이 현지에서도 한국 편의점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편의점은 간판뿐 아니라 상품들까지 모두 한국 편의점과 똑같다. CU 관계자는 “오히려 현지에서 한국에 있는 간판 글씨체, 제품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수출해 주길 원한다”면서 “말레이시아 CU 매장에서는 떡볶이·닭강정·핫도그 등 국내 대표 간식들을 즉석조리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역시 달라진 소비 트렌드와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동남아 온라인 시장에서는 휴지·생수·세제 같은 저렴한 제품, 직접구매가 어려운 제품들, 단순반복구매 제품이 주로 팔렸다”면서 “이제는 직접 맛보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형태의 구매로 바뀌는 추세”라고 말했다. ━ “달라진 환경에 맞춰라”…전략 수정·보완 발 빠르게 동남아시장을 선점한 기업들은 달라진 시장 환경에 맞춰 전략을 수정·보완해나가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롯데쇼핑은 공격적인 출점 행보를 멈추고 오프라인 점포를 통폐합하는 작업으로 변경하고 있다. 동남아 소비패러다임 역시 이커머스로 급격하게 전환된 데 따른 것이다. 롯데리아, 엔젤리너스를 운영하는 롯데GRS와 롯데칠성음료 등의 계열사도 달라진 시장 환경에 맞춰 점포를 줄이고 늘리는 등 공략 포인트를 달리하고 있다. 이마트는 필리핀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마트는 필리핀 업계 2위인 로빈슨스 리테일과 브랜드 수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 계약을 통해 노브랜드와 센텐스 전문점 등 50개를 오픈한다는 목표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일찍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린 CJ제일제당은 CJ Foods Vietnam(옛 킴앤킴)과 CJ Cautre(옛 까우제), CJ MinhDat(옛 민닷푸드) 등 베트남 현지 식품업체 3곳을 인수해 한식 만두와 현지식 만두를 내세운 투트랙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후 현지 해산물 구매와 가공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베트남을 ‘해산물 만두 수출 확대 전진기지’로 키워내는 등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SPC그룹은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적극 활용해 동남아 지역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이 두 지역과 근접한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파리바게뜨 해외 점포 출점을 늘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향후 쉐이크쉑, 에그슬럿 등의 점포 확장에도 집중할 방침이다. 이 밖에도 제너시스 BBQ, 뚜레쥬르, 카페베네 등도 동남아 지역에 진출해 있다. 전문가들은 동남아 소매시장이 성장하면서 치열한 경쟁과 재편이 반복되는 가운데 승부 전략을 잘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우리 기업이 베트남 소매 채널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통채널의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지에 맞는 제품과 가격으로 대결해야 한다”면서 “제품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품에 관한 충분한 설명과 적극적인 매장 관리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KOTRA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 기업의 동남아 대응 전략으로 ▶매장운영을 통한 편리한 경험 제공 ▶친환경 제품 생산 및 지역 생산자 보호 ▶옴니채널 구축 ▶로컬업체와 협업 ▶물품 수출 전 수입 규제 확인 등을 꼽았다. 이 관계자는 “자국산 우선구매 움직임이 증가하면서 현지 유통브랜드와 협력이 필요해지고 있다”면서 “온·오프라인 채널에 같은 수준의 배송·품질·서비스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이 국내만큼이나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2022.01.01 16:00

8분 소요
디즈니와 손잡은 블랭크, ‘3년 만에 매출 1천억’ 신화 재연할까

IT 일반

올 한 해 사업부 조정을 거친 전자상거래기업 ‘블랭크코퍼레이션’(이하 블랭크)이 새로운 성장 전략을 공개했다. 핵심은 콘텐트업계의 ‘지적재산권(IP) 확보 전쟁’에 블랭크도 참전하겠다는 것이다. IP를 활용한 상품과 브랜드를 내놓는다는 뜻에서 블랭크는 ‘IP 커머스’라고 이름 지었다. 당장 자체 IP를 만들겠다는 말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콘텐트 IP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월트디즈니컴퍼니(이하 디즈니)와 손잡았다. 디즈니 산하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IP를 국내에서 활용한다. 픽사는 ‘토이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인사이드 아웃’ 등 인기 작품을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판매가 이뤄지면 블랭크 실적에 적잖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국내에서 픽사 상품을 사려면 해외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해야 했다. 디즈니와 라이선스 계약기간을 수년으로 잡은 것도 블랭크로선 호재다. 1년 단위인 보통의 계약과 다르다. 그만큼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블랭크 측은 “이달 말 첫 상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런 차이만으로 ‘IP 커머스’란 말을 붙이긴 어렵다. 유통사에서 콘텐트 기업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캐릭터 상품을 내놓는 건 오래전부터 있었다. 수익이 는다고 해도 공은 블랭크가 아닌 디즈니에 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이날 발표를 두고 한 업계 전문가는 “라이선스 비용을 주고받는 것 이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말뿐인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블랭크는 콘텐트 마케팅을 강조한다. 콘텐트 마케팅의 핵심은 양방향성이다. 사용자의 경험과 필요를 발굴해서 콘텐트로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상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식이다. 남 대표는 이미 이런 모델로 성공을 맛봤다. 2016년 블랭크를 창업했던 남 대표는 시장에 없던 ‘콘텐트 커머스’란 말을 만들어냈다. 상품을 만들고 쇼핑몰에 입점해 판매하는 기존 모델과 차별화했다. ‘정수필터 샤워기 실험 영상’처럼 상품에 맞는 콘텐트를 만들어 홍보하고, 상품 콘셉트에 맞는 전문 브랜드 쇼핑몰을 만들어 연계시켰다. 이런 모델로 남 대표는 창업 3년 만인 2018년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이번에 선보인 ‘IP 커머스’는 ‘콘텐트커머스’를 잇는 전략인 셈이다. ━ “마케팅은 일방적… IP 커머스는 쌍방향 소비” 양방향성이라는 속성에선 같지만, 차이점도 있다. 하나의 영상물이 끝나도 IP는 계속 이어진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 시리즈가 끝나도 그 뒷이야기를 사람들이 상상하고, 상상한 내용을 창작물로 만들어낸다. 또 시리즈가 끝나도 꾸준히 관련 상품을 구매한다. 이런 차이 때문에 블랭크 관계자는 “여전히 일방적이란 뉘앙스가 있는 ‘마케팅’보단 ‘경험’이란 말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남 대표 역시 “픽사 IP를 적극적이고 쌍방향 소비가 가능한 커머스로 풀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런 소비를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 전문 브랜드몰을 다음 해 1분기 만들 계획이다. 디즈니에만 그치지도 않을 전망이다. 블랭크 측은 장기적으로 독자적인 IP를 만들 준비를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전략이 적중한다면, 블랭크는 다시 한번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기업) 반열에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블랭크는 2018년 기업공개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나올 만큼 성장세가 가팔랐지만, 이후 위기가 찾아왔다. 사업 영역을 너무 빠르게 늘린 것이 독이 됐다. 올 한 해 사업부를 조정하고 전략을 재정비하면서 블랭크는 재도약을 준비하게 됐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1.12.10 19:31

3분 소요
[김홍일 혁신우혁신] 아날로그 스타 강사 김미경이 딥테크 CEO가 된 이유

CEO

“몇 년 만에 연매출 수백억 신화”, “고졸이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유명 대기업에 수백억 투자 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이다. 가시밭길을 밟아온 창업가의 역경 드라마를 소개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숱한 곡절을 생생하게 목격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창업 시장이 일률적으로만 묘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업가의 성공에 손뼉만 치고 끝낼 게 아니라, 그들의 혁신 비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하자.” 가 ‘김홍일의 혁신우혁신’을 연재하는 이유다. 창업 요람의 리더 역할을 하던 VC 대표와 현직 기자가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진중한 질문부터 가볍고 짓궂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다섯번째 시간은 국내 최초 유튜브 대학 플랫폼 MKYU의 김미경 대표를 만났다. 스타 강사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몇 안 된다. 그들 중에 ‘강사 김미경’은 30년간 대한민국 최고 인기 강사로 명성을 떨쳤고, 책을 쓰면 족족 베스트셀러가 됐다. 교육 관련 방송 콘텐트에선 항상 섭외 1순위로 꼽혔다. 2013년 여러 논란으로 활동에 강력한 제동이 걸렸지만, 잠시뿐이었다. 의혹을 씻으면서 금세 전성기 때의 활동력을 드러냈다. 되레 강사 김미경의 브랜드는 더 탄탄해졌다. 쓴맛 단맛 겪으며 쌓인 인생의 노하우를 강단에서 풀어놓은 덕분이다. 강사 김미경의 위기는 지난해가 더 혹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쉴 틈 없이 소화하던 오프라인 강의 일정을 ‘0’건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미경 대표와 그 직원들을 먹여 살리던 화려한 강사 이력은 적자만 내는 애물단지가 됐다. 인기 스타강사에서 순식간에 ‘코로나19 위험 직업군’으로 전락한 셈이다. 김미경 대표는 ‘창업’을 선택했다. 지난해 초 국내 최초의 유튜브 대학이자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MKYU’를 론칭했다. MKYU엔 ‘김미경과 당신이 만들어가는 대학’이란 뜻을 담았다. 오프라인으로 하던 강연을 디지털 온라인으로 전환한 셈인데, 사실 이는 양날의 검이다. 오프라인 강연에선 대중을 직접 바라보며 함께 호흡하고, 때로 돌발적이거나 즉흥적인 소통이 오가는 장점이 뚜렷하다. 반면 화면으로만 본다면 현장의 생동감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용히 숨죽여 감상만 하는 교육 콘텐트는 오프라인 강연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임이 분명하다. ━ 국내 최초 유튜브 대학 만든 스타 강사 MKYU가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9만9000원의 연간 구독료를 내는 ‘열정 대학생(유료멤버십 회원)’만 6만명이 넘는다. MKYU는 교양필수 과목과 자율전공 과목으로 프로세스를 나눴는데, 교양필수 강연 콘텐트 수만 해도 300여 개에 달한다. 직원은 100여 명으로 늘어났고, C레벨 경영진도 3명이나 영입했다. 온라인 강연 플랫폼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고, 수지 타산도 맞다는 얘기다. 김미경 MKYU 대표는 “원래 하는 일에 디지털 혁신을 꾀한 셈”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김미경 대표의 오랜 지인인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트먼트 대표가 그 성공 비결을 물었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이하 김홍일 대표) : 낡은 관행을 깨고 디지털 플랫폼 스타트업의 대표가 됐습니다. 제 기억엔 그 누구보다 아날로그와 친숙했던 사람이었을 텐데요. 김미경 MKYU 대표(이하 김미경 대표) : 맞습니다. 디지털 기기와 거리를 꽤 두고 살았죠. 저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김홍일 대표 : 그런데 어떻게 MKYU를 창업하게 됐나요. 김미경 대표 : 맨땅에 헤딩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4년 전, 유튜브 세계에 먼저 뛰어들었으니까요. 그때 제가 귀인을 만났거든요. 김홍일 대표 : 그게 누굽니까. 김미경 대표 : 인기 유튜버 도티입니다. 학교 후배더라고요. 강연 프로그램에서 만나게 됐는데, 도티가 대뜸 물었습니다. ‘강사님, 왜 유튜브 안 하세요?’ 유튜버 도티의 권유에 김미경 대표는 콧방귀를 꼈다. “유튜브? 그건 공짜잖아. 내 강연을 무료로 보여주면 난 어떻게 먹고 살라고!” 도티가 손사래를 치면서 설명했다. “유튜버의 비즈니스 구조를 들어보면 솔깃할걸요.” 이때 김미경 대표는 도티로부터 시청자와 동영상 수, 영상의 길이, ‘좋아요’ 숫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신통방통한 유튜브의 수익 구조에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도 쉬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때만 해도 현장에서 직접 소통하는 강사 김미경의 퍼포먼스가 더 가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어딜 가든 대세로 꼽히는 유튜브의 세계가 김 대표의 호기심을 자극하긴 했다. 그때부터 유튜브 관련 서적을 읽고 주변의 조언을 얻어가면서 속내를 들여다봤다. 그러다 조악한 품질의 1분짜리 영상을 처음 올렸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피드백은 “유튜브로 넘어오길 한참을 기다렸는데, 왜 이제야 왔냐”는 거였다. 김 대표가 말했다. “사실 제 입장에서 보면 유튜브가 금광맥이었죠. 콘텐트를 다양한 길이와 형식으로 재가공해 개수 제한 없이 업로드하고, 실시간 스트리밍도 가능하니까요.” 김홍일 대표 : 그렇게 지금은 구독자 수 140만명을 넘어서는 인기 유튜버가 됐습니다. 이걸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로 전환한 건 코로나19 때문이었습니까. 김미경 대표 : 사실 제가 속한 모티베이션(동기 부여) 강의 업계는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 강의가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장사를 해왔는데, 그게 부쩍 줄었기 때문입니다. 구조적인 문제였죠. 과거엔 대기업 공채 신입사원 강의가 꽤 많았는데, 기업이 점차 신입사원을 뽑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김홍일 대표 : 사실 한국 대기업이 예전부터 눈에 띄게 채용을 줄이긴 했습니다. 경영환경이 신입사원 채용시장을 얼어붙게 했죠. 김미경 대표 : 그때 무너진 강사가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강사 김미경’의 브랜드만큼은 살아남았었죠. 물론 이것도 코로나19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마지막 강의를 2020년 1월 22일에 했으니 무력감을 느낄 만 했죠. 회사 사정이 나쁘니 월급을 자진해서 줄이겠단 직원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김홍일 대표 : 그런 위기면 그대로 다른 길을 찾는 사람도 많습니다. 김미경 대표 : 자칫 그럴 뻔했어요. 저 역시 팬데믹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으니까요. ‘강의 계속 못 하면 어떡하지’만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지금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는 게 맞나, 코로나가 없어져도 비슷한 게 또 오면 나는 또 무너지는 것 아닌가. 저는 늘 관객에게 미래를 얘기하던 사람이었는데, 정작 제가 미래를 보고 있지 않더라고요. ━ 아날로그 스타 강사의 디지털 전환 도전기 김홍일 대표 : 거기서 본 미래가 디지털이었군요. 김미경 대표 : 디지털 시대야말로 콘텐트를 갖춘 개인에겐 최고의 기회였습니다. 물리적인 위치와 무관하게 누구나 평등하게 엄청난 양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고, PC와 인터넷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상품과 서비스를 론칭하고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죠. 김홍일 대표 : ‘강사 김미경’은 최고의 콘텐트겠죠. 그래도 기업의 경영인, 그것도 100명이나 되는 직원을 거느리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 같은데요. 어떤가요, 수월하게 하고 있나요. 김미경 대표 : MKYU는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플랫폼이 아닙니다. 가르치는 내용 역시 제가 직접 나서는 건 얼마 안 돼요. 각계 전문가를 모셔놓고 플랫폼을 구축했죠. 경영도 정말 어렵더군요. 그래서 잘하는 분들을 모셔서 경영을 맡겼어요. 저는 전방위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고요. 김홍일 대표 : 혁신의 사이클이 점차 짧아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영욕에 머물러선 아무리 크고 대단한 브랜드도 쉽게 도태돼버리는데요. 온라인 강연 플랫폼 시장도 꽤 치열한데, MKYU의 성장 비결은 뭐였을까요. 김미경 대표 : 방금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그 점이 MKYU에 학생들이 열광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아무도 그 흐름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볼까요. 올해 MKYU는 ‘디지털튜터’ 양성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디지털이 낯선 노년층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바일 기기 활용법을 안내하는 새로운 직업입니다. 저는 디지털 세계에서의 지식 가이드 역할을 새롭게 하는 셈입니다. 김홍일 대표 : 말로만 디지털을 부르짖는 기업도 많습니다. 김미경 대표 : 그래서 저는 MKYU를 준비하면서 코딩이나 앱 개발을 직접 공부했습니다. 직접 앱을 만들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구조를 이해하고 싶었거든요. 그 결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은 채, 기술만 덧붙이는 혁신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김홍일 대표 : 음악을 전공하신 분인데 이젠 공학도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듭니다. 김미경 대표 : MKYU는 데이터 기업이기도 합니다. 30대부터 50대 사이의 여성이 저희 유료 학생의 80%가 넘습니다. 이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플랫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MKYU에선 새 시대의 전문가들이 성취한 것들을 전달하고 있는데, 3050 여성이 많은 메시지를 읽고 있습니다. 김홍일 대표 : 고객군의 데이터를 활용한 비즈니스를 고민할 수도 있겠네요. 김미경 대표 : 물론입니다. MKYU의 미래도 그런 맥락에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학생 개개인의 성향을 분석해서, 맞춤화한 교육 콘텐트를 제공하는 딥테크 기업이 되는 거죠. 가령 지금 있는 열정 대학생 6만명의 전공이 6만개로 제각각 달랐으면 좋겠어요. 김홍일 대표 : 3050 여성세대가 디지털 지식을 쌓으면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겠군요. 강사 땐 좌절된 꿈과 희망을 다시 일으키는 일을 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때보다 더 무거운 미션을 지게 됐네요. 김미경 대표 : 맞습니다. 저는 늘 김미경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지금보다 사회에 더 크게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김홍일 대표 : MKYU가 기술로 사회에 공헌하는 사례가 될 수 있겠군요. 김미경 대표 : 지금은 MKYU가 풍요로울 수 있지만, 또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것 아닌가요. 도전이 있으니까요. ━ 기자가 본 김미경 대표 기자는 사실 과거 ‘강사 김미경’의 언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가 교육 콘텐트 업계에서 한창 주가를 올릴 땐, 취업에 실패한 20대 청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방식에 균열을 내고,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라”는 식의 담론이 청년의 다양한 욕구와 삶을 다루지 못한다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CEO 김미경의 언어는 달랐다. 화려한 수사로 치장한 게 아닌 몸에 밴 성실함이 무기처럼 보였다. 논란도, 코로나19도 분명 엎친 데 덮친 격이었는데도 김미경 대표는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 행복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본인이 더 새로운 길로 나갈 수 있었단 이유에서다. MKYU의 목표도 분명했다. 기술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는 만큼 기존 교육의 유효기간이 짧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 그 틈새를 채우겠다는 거다. 디지털 혁신은 깊은 학습과 빠른 타이밍이 절실한데, 강사 김미경은 그걸 CEO 김미경으로 바뀌면서 성공해냈다. VC 대표로서 IT 기술에 해박한 김홍일 대표를 상대하면서도 디지털 기술을 설명할 땐 단단하게 채워진 이론을 풀어냈다. 웬만한 기업의 CIO보다 디지털 혁신을 더 깊게 체득한 것처럼 보였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2021.11.18 16:30

7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