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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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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지구촌 축제 ‘올림픽’...기업도 함께 뛴다

산업 일반

스포츠 마케팅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7월 26일 ‘파리올림픽’이 본격적인 막을 올랐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축제이자, 기업들의 마케팅 전쟁터로 통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올림픽 마케팅에 집중하는 이유는 하나다. 상상을 초월하는 시청률이다. 올림픽 중계방송 시청자 수는 하루 평균 약 10억명을 웃돈다. 전 세계인의 이목이 한 곳에 집중되는 셈이다.높은 관심을 끄는 만큼, 기업들도 올림픽 스포츠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들이 올림픽 스포츠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투자 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례로 미뤄 봤을 때 올림픽 특수를 누린 기업의 대표적인 예가 코카콜라다. 코카콜라는 스포츠마케팅의 선구자로 꼽힌다. 지난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에 콜라 1000상자를 제공한 일화는 스포츠마케팅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이 밖에도 1996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개최된 애틀랜타올림픽은 ‘코카콜라 올림픽’이라 평가받을 정도다. 당시 코카콜라는 애틀랜타 시내 공식후원장소 센테니얼 올림픽 공원에 체험 테마파크 ‘코카콜라 올림픽시티’를 세웠다. 또 외국인도 성화봉송 릴레이에 참여할 수 있는 ‘국제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코카콜라의 마케팅은 대성공이었다. 애틀랜타 올림픽을 계기로 경쟁사인 펩시콜라와의 미국 내 점유율을 42% 대 31%로 벌렸다. 이는 과거 20년간 최대 격차였다. 아무나 못하는 ‘올림픽’ 스포츠 마케팅효과는 입증됐다. 문제는 활용이다. 모든 기업이 올림픽 활용해 스포츠 마케팅을 할 수 없다. 올림픽 로고는 아무나 사용할 수 없다. 올림픽 파트너사로 선정되어야만 올림픽을 활용한 기업 마케팅이 가능하다. 파트너사가 되려면 올림픽이 분야별 업무와 연관돼야 한다. 이 밖에도 브랜드 마케팅 협업을 진행하고, 후원금을 지불해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1985년 공식 후원 업체를 지정하는 ‘올림픽 파트너’(TOP·The Olympic Partner)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본격적인 공식 후원 업체를 지정했다. IOC에 의해 선정된 기업만이 올림픽 관련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TOP의 등급은 ▲가장 높은 단계 월드와이드 파트너 ▲프리미엄 파트너 ▲공식 파트너 ▲공식 서포터 등 4가지로 나뉜다. 최상위 등급인 월드와이드 파트너는 분야별 1곳의 기업을 선정해 마케팅 독점권을 부여한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유일하다.월드와이드 파트너로 지정된 기업들은 IOC와 올림픽조직위원회, 올림픽 팀을 지원하는 대신 4년 동안 올림픽과 관련된 마케팅 독점권을 갖는다. 이들을 제외한 기업들이 올림픽 공식 엠블렘과 올림픽과 관련된 단어 등을 통해 마케팅을 펼칠 경우 IOC에 제소를 당할 수 있다.올림픽 스폰서는 후원 금액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구체적인 후원 금액은 IOC 규정상 공개되지 않는다. 업계에 따르면 월드와이드 파트너는 1000억원 이상, 프리미엄 파트너 150억~500억원 이상, 공식 파트너는 25억~150억원 이상, 공식 서포터는 약 25억원 미만을 후원하는 것으로 각각 알려졌다.이번 파리올림픽의 월드와이드 파트너는 삼성전자를 포함해 ▲에어비앤비 ▲알리바바 ▲알리안츠 ▲아토스 ▲브리지스톤 ▲코카콜라 컴퍼니-멍니우 ▲인텔 ▲오메가 ▲파나소닉 ▲P&G ▲토요타 ▲비자 등이 있다. 프리미엄 파트너는 ▲아코르 ▲그루프BPCE ▲까르푸 ▲EDF ▲LVMH ▲오렌지 텔레콤 ▲사노피 등 7개 사다. 이번 프리미엄 파트너사는 프랑스 기업들로 구성됐다.공식 파트너로는 ▲그루프ADP ▲에어프랑스 ▲아르셀로미탈 ▲CDC 디파짓스 펀드 ▲시스코스 ▲CMA-CGM ▲다논 ▲데카트론 ▲FDJ ▲GL 이벤트 ▲일드플랑스 모빌리테 ▲르꼬끄 스포르티브▲ 프라이스워더하우스쿠퍼스 등 13개 사가 참여했다. 공식 서포터로는 ▲아바테이블 ▲에어리퀴드 ▲아레나 등 52개 사다. 업계 및 외신 등에 따르면 이번 파리올림픽의 스폰서십 유치 비용은 약 14억 유로(2조97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LVMH가 프리미엄 파트너로 참여하면서 나온 수치다. 당초 IOC의 스폰서십 유치 비용 목표 금액은 12억4000만 유로(약1조8600억원)였다.수많은 기업이 올림픽 스폰서십에 거액의 돈을 투자하는 이유는 확실한 홍보 효과다. 현대경제연구원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개막한 평창올림픽으로 국내 100대 기업 브랜드 인지도가 1% 포인트 상승으로 얻는 경제적 효과가 약 11조60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상현 포스코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통상 마케팅에 1억 달러(1067억원)를 투자할 경우 1%의 브랜드 인지도 상승을 기대하지만, 올림픽 스폰서십의 경우 3% 상승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엔데믹 이후 첫 ‘올림픽’...총수도 뛴다‘완전히 개방된 대회’(Games wide open)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번 2024 파리올림픽은 엔데믹 이후 첫 올림픽이다. 전 세계가 파리올림픽을 주목하는 만큼 국내 주요 총수들도 파리를 찾아 글로벌 마케팅에 나섰다. 삼성 오너 일가는 12년 만에 올림픽 현장을 찾았다. 이밖에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도 파리 출장길에 오르며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2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모두 파리에서 포착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7일(현지시간) 파리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 한 파리 그랑팔레 경기장을 방문했다. 당시 열린 경기는 오상욱 선수의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전이다. 이날 오상욱은 파레스 파르자니(튀니지)를 이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직접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에 선수단을 응원했다. 대한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차그룹은 1985년부터 40년간 한결같이 대한민국 양궁이 세계 최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는 국내 단일 종목 스포츠단체 후원 중 최장기간이다.대한핸드볼협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현지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 파리를 방문하지 않는다. 다만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이 파리를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한다. 최신원 전 회장은 대한펜싱협회장을 맡고 있다. 기업 총수들까지 올림픽에 직접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올림픽에서의 행보 자체가 브랜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허태윤 한신대 IT영상콘텐츠학과 교수는 “올림픽과 같은 빅이벤트는 기업 총수가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 뉴스 가치가 크다”며 “전 세계 인구가 올림픽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총수가 선수들을 직접 격려하고 현장 프로모션에 참여하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브랜드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2024.08.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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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코로나19 극복 위해 ‘39억원’ 후원

은행

한국수출입은행은 연말을 맞아 ‘모두 함께 코로나19 극복’이란 주제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와 대한적십자사,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 총 39억원을 후원한다고 23일 밝혔다. 방문규 수은 행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수은 본점에서 김상균 사랑의열매 사무총장을 만나 후원금 25억원을 전달했다. 후원금은 코로나19 대응 일선에서 분투 중인 현장 의료종사자들에 10억원, 연말연시를 맞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데 15억원이 쓰일 예정이다. 코로나19 대응 업무로 피로도가 높아진 의료종사자들에겐 방한용품과 건강식품을 제공해 의료진들의 사기진작과 건강증진을 도모하고, 저소득 취약계층에는 난방비를 지원하고, 밀키트를 전달하는 등 혹한기 경제 부담을 덜어줄 예정이다. 방문규 행장은 후원금을 전달한 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현장 의료종사자들과 취약계층에게 어려움이 점점 가중되고 있다”면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선도하는 대외정책금융기관으로서 앞으로도 우리 사회와 글로벌 공동체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ESG 실천에 모범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홍다원 기자 hong.dawon@joongang.co.kr

2021.12.23 14:26

1분 소요
에디터가 만난 사람(7) 양기대 광명시장

산업 일반

버려진 광산을 ‘광명동굴’로 관광자원화해 수도권 최고의 여름 관광지로 만들어낸 양기대 광명시장의 혁신 스토리에서 CEO와 리더들은 새로운 조직경영의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양기대(55) 시장과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그가 정치에 입문할 무렵이다. 2004년 3월, 42살이던 그가 메이저 언론사의 사회부 차장을 그만두고 당시 열린우리당 광명을 당원협의회 회장으로 금뱃지에 도전할 때다. 첫 인상은 무모한 돈키호테 같다고나 할까. 정의감과 도덕성은 충만했지만 정치 물정은 모르는 ‘초짜’였다. 선거에 필요한 자금도, 조직도 바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단기필마로 총선에 출마했다가 광명시장을 지낸 당시 정계 거물 전재희 의원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또 한 번은 얼마 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장이다. 지난 6월8일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가진 『폐광에서 기적을 캐다』 출판기념회장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지갑을 꺼내 양 시장의 책을 샀다. ‘양복쟁이’들이 눈도장 찍으러 오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아니라 유명 저자의 팬 사인회 같았다. 후원금 한푼 받지 않고도 준비해온 1200권이 금새 동이 났다. 나이 아흔이 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세 분은 양 시장의 출판기념회장에서 민감한 시국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외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양 시장을 아들처럼 아낀다”며 출판기념회 홍보를 자발적으로 ‘측면지원’(?) 했다.출판기념회 순서도 흥미로웠다. 이수성 전 총리, 박지원·정동영·박영선 의원 등 내로라 하는 정치인과 기관장을 제쳐놓고는 출판사 사장(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이 가장 먼저 인사말을 했다. 저자인 양 시장은 내빈들의 축사가 다 끝난 뒤 행사의 맨 나중에 간략한 감사의 메시지로 화답했다. 저자와 관객의 소통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창의성과 혁신이 엿보였다.무엇이 양기대 시장을 지방자치 혁신경영의 대표주자로 만들어냈을까? 당장 네트워크를 총가동해 취재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양 시장이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광명 동굴 스토리는 ‘기업가정신’의 전형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도전정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 관료 조직을 춤추게 한 혁신경영의 모범적 사례였다. 포브스코리아가 양기대 시장을 만난 이유다. 쇠뿔은 단김에 빼야 한다. 6월12일 오후 광명시청을 찾아 양기대 시장과 마주 앉았다. ━ 베드타운 광명이 수도권 대표 관광지로 이렇게 배포가 큰 분인지 일찍이 알아보지 못했다.(웃음) 괄목상대가 양 시장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광명에서 기업가정신을 실천한 생생한 사례다.기업가정신으로 봐주시니 고맙다. 돌아보니 꼭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그 길을 걸어온 것 같다. 제가 81학번인데, 사회정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지고, 투옥되는 선후배와 동료들을 보면서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이 늘 있었다. 그래서 기자로 살면서 출입처에서건, 취재 현장에서건 사회정의를 위해서라면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으면서 살았다.(실제 그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2회, 이달의 기자상을 7회나 수상하는 등 특종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 기자생활 그만두고 충분한 준비도 없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호되게 당했다.(웃음) 2008년에도 또 한 번 도전했는데, 그때도 떨어졌다. 코가 쑥 빠져 있는데, 주위에서 광명시장 선거에 도전하라는 성원이 많았다. 그때 제가 48세 한창 일할 나이였다. 6년이나 쉬었기 때문에 정말 일을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2010년에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광명시장에 당선됐다. 뭔가 해보고 싶은데 광명시가 전형적인 서울의 베드타운이라 뭘해야 할지 막막했다. (양 시장의 말대로 35만 명 광명시민 대다수가 서울이나 인천으로 출퇴근한다. 광명시의 1년 예산은 7500억 원 정도. 1000여 명의 공직자들도 주민들을 위한 행정적인 뒷받침에 익숙할 뿐 경영혁신이나 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광명동굴 얘기를 해 달라.당시 광명시의 숙원사업은 58만 평에 이르는 KTX광명역 역세권 개발이었다. 그런데 가보니 허허벌판이라서 너무 답답하더라. 사실은 동굴 개발에 집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동굴을 찾은 사람들이 역과 역세권을 이용하게 되면 활성화될까 싶어서였다.(웃음) 선거를 준비하면서 당시 ‘가학광산’으로 불리던 광명동굴의 존재를 알게 됐다. 전임 시장들도 활용도를 고민해봤지만 재원 마련이라든지 동굴 내부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개발을 선뜻 못했다고 들었다. 겨우 용역 보고서 하나 있는 정도였다. 2010년 8월, 관련 부서 직원들과 함께 동굴에 처음 들어가 봤다. 일제강점기 때 금과 구리, 아연을 캐던 광산이 소유주가 바뀐 후 40여 년간 방치돼 새우젓 저장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새우젓 담은 드럼통이 뒹굴고, 동굴 천정과 벽에선 물이 떨어지고, 어두운 데다 바닥은 물이 차서 질척거리고···.그런 폐광산을 동굴로 개발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기자생활하면서 얻은 특유의 감(感)이랄까. 동굴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잖나! 서늘했고, 어두웠다. 동굴이 생각보다 깊고 길었다. 보존상태도 양호했다. 전문 기관에 확인해보니 중금속으로 인한 인체 피해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 어두움과 서늘함을 활용해 무언가 기가 막힌 것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세 번 더 동굴에 들어가 찬찬히 살펴보니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공무원들과 시의원들을 설득해나갔다. 그래서 1년 뒤인 2011년에 개인 소유였던 가학광산을 시비 43억 원을 들여 샀다. 우선 우리 광명시 재산으로 만들어서 조금씩 개발해서 관광자원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 관광 랜드마크로 부활한 폐광의 기적 전북 군산 태생으로 투박한 이미지의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과 집념의 소유자다. 그가 펴낸 『폐광에서 기적을 캐다』에는 양 시장의 집념과 끈기로 진행된 2300여 일의 광명동굴 개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책 표지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거봐요, 내가 해낸다고 했잖아요”라는 양 시장의 발언이다. 책 하단에도 이렇게 씌여 있다. “수도권의 베드타운에 불과했던 광명시가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우뚝 섰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광명시민과 공무원 모두가 뜻을 모아 이루어냈다. 광명동굴은 폐광의 기적을 넘어 사람의 기적을 이룬 쾌거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구절이다.“거봐요, 내가 해낸다고 했잖아요” 이 대목에서 저는 양기대 시장이 가진 기업가정신의 싹을 보았다. 광명시가 43억원이나 들여 버려진 광산을 샀으니 욕 안먹으려면 제대로 개발 청사진을 제시해야 했을텐데.당연하다. 그런데 당시엔 시장인 나도, 직원들도 구체적인 개발계획이 없었다.(웃음) 그저 막연한 구상만 있었다. 예를 들어 동굴 안에 수백 명이 너끈히 앉을 수 있는 큰 홀이 있는데, 여기에서 공연도 하고 영화상영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 동굴 안의 기온이 사시사철 12∼13℃ 온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와인 바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 광산 주변으로 난 길이 2km 남짓 있으니 코끼리 열차를 운행해보자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출발했다.동굴을 개발하려면 지속적으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그 돈은 어떻게 마련했나.당시 광명시의회가 여당과 야당의원 비율이 6:6이었다. 동굴 관련 예산이 올라가면 깎이기 일쑤였다. 동굴을 개발하려면 전체 설계도인 마스터플랜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시청의 국장, 과장, 팀장과 함께 미국에 가서 벤치마킹도 하고 설계회사 자문을 받겠다고 했더니 공무원들이 반대하는 거다. 전임시장이 해놓은 용역 보고서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장이 1~2년 추진하다가 그만둘 게 뻔한데 괜히 직원들이 개입했다가 감사 받고 문제 될 것 같으니 못 하겠다’는 그런 심리였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동굴 안에 인체에 해로운 카드뮴 비가 내린다는 둥, 피부병 걸린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까지 흘렸다.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소통이 최고의 방책이더라. 옛날에 기자생활하면서 배운 소폭 실력으로 폭탄주도 돌리고(웃음). 인간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큰 도움을 줬다. 저는 야당 시장이었는데, 당적과 무관하게 광명동굴 아이디어가 좋다면서 특별조정교부금을 지원해 주셨다. 경기도의 지원을 받게 되자 자연히 사업의 정당성도 확보하게 되었다. 그렇게 테마를 정해 하나 하나 아이디어를 내서 개발해 공개했더니 입소문을 듣고 서서히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2013년 여름에 350석 규모의 예술의 전당을 오픈하면서 TV로 중계돼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굴 안은 특히 여름에 시원해서 피서지가 따로 없다. 서울에서도 가깝고 이것 저것 볼 거리도 많으니 입소문이 나더라. 지난해는 7월 한달에만 30만 명이 찾아왔다. 하루에 1만 명 꼴이다. 승용차들이 1~2km씩 길게 줄을 선다. 광명동굴을 유료화했는데도 관광객들이 밀려들더라.동굴 유료화 얘기를 듣고 싶다. ‘돈 내고 볼만한 가치가 있나’. ‘돈 주고 동굴 탐험한다면 누가 가겠나?’ 하는 반대가 있었다고 하던데.주위에서도 “손님 안 오면 양 시장 정치생명 끝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그런데 저는 당연히 유료화 해서 지역경제 활성화하고 일자리도 만들고 광명시 세금 수입도 올려야 동굴이 제대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 4월에 광명동굴을 유료화했고, 결과적으로 그게 성공을 가져왔다. 저와 직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가학광산이 일제의 유산 아닌가! 광산에서 광부로 일했던 장명화(89) 할아버지를 광명동굴 문화해설사로 모셨다. 동굴 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입장료 수입금의 1%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그게 지금까지 피해 할머니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광명시는 약속대로 올해 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광주 나눔의 집’에 지난해 수입금의 1%인 5300만원을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마스터플랜 없이 시작해 점진적으로 개발한 것이 광명동굴만의 독특한 관광 콘셉트로 이어졌다. 처음 계획대로 미국 설계회사가 마스터플랜을 마련했더라면,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거액의 개발비용 때문에 의회의 반대로 추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웃음) ━ 관료를 춤추게 한 것은 소통·칭찬·보상 리더가 조직혁신을 추진하고자 해도 중간층이 움직이지 않으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관료조직은 더 그렇다. 어떻게 해서 공무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반영해주려고 했다. 예를 들어 팀장 한 명이 시장실로 찾아와서 동굴 안 바닥과 벽, 천정을 온통 황금칠을 해서 황금길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7000만원 예산을 지원해 황금길을 칠하고 황금폭포를 만들었다. 그러자 황금 좋아하는 중국 관광객이 몰리면서 인기 있는 테마길이 됐다.또 하나는, 직원들과 스킨십을 나누고 신뢰를 쌓은 것이다. 끊임없이 담당 직원들과 토론하고 대화를 했다. 시장 지시를 따랐다가 감사에 걸릴까봐 주저하면 시장이 책임지겠다고 설득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도 아닌 광명동굴 안에서 음식이나 와인을 파는 게 가능할까? 전무후무한 이야기다. 하지만 광명시는 해냈다. 직원들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광명동굴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광명시가 7월 4일에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관광투자 설명회를 연다. 기초자치단체가 국내외 투자자를 상대로 강남 한복판에서 관광투자 설명회를 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 광명시 공무원들이 의욕적이다. 제가 뛰는 만큼 공무원들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양 시장은 광명동굴 개발에 아이디어를 낸 공무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난해 광명시에서 출판한 책이라며 『광명동굴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책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단행본으로 제작된 책에는 ‘광명동굴 초기 개발담당, 자부심 느낀다-정광해 공원녹지과장’, ‘광명동굴은 내 운명, 죽을 때까지 못잊어- 최봉섭 테마개발계장’, ‘광명동굴을 와인의 메카로 만들다-최정욱 광명동굴 소믈리에’ 등 동굴 개발과 아이디어, 홍보에 기여한 공무원 15명의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맨 뒷장에는 ‘광명동굴을 만들 때 함께 한 공무원들’ 63명의 이름도 모두 기록해 놓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양 시장이 공무원들을 움직인 성공스토리에는 임직원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 긍정마인드가 한몫 했다. 양 시장은 “광명동굴 개발에 아이디어를 내거나 성과를 낸 부서 직원들은 모두 승진 등으로 보상을 해주었다”고도 했다. 칭찬과 격려, 합리적 보상이 관료조직을 움직였던 것이다. 광명동굴은 또한 ‘상생’의 성공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현재 광명동굴 안에서는 국산와인 175종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는 10만 병 판매가 목표다. 국내 와이너리 대표들이 광명시를 자주 찾는 이유다. ━ 1년 365일 중에 360일을 출근한다 리더인 양 시장과 팔로워인 공무원들이 서로 믿고, 소통하고, 힘을 합쳐 만들어낸 성공스토리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기적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그러고 보면 광명동굴을 만들기까지 양 시장의 공이 가장 큰 것 같다.아니다. 폐광의 기적은 결국은 사람의 기적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더라.(웃음) 광명동굴을 개발하면서 소중한 인연들이 많이 생겼다. 동굴 안에 영화 에 나오는 용과 골룸 등 각종 소품들을 전시중인데, 제작사인 뉴질랜드의 웨타워크숍과 손을 잡고 국제 판타지 공모전도 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판타지 관련 전문가를 연수 보내 판타지 산업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는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아시아 최초로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광명동굴전을 개최했는데, 17만 명이 방문했다. 덕분에 광명동굴 위상이 국제적으로 높아졌다. 7월1일부터는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의 바비인형전을 개최한다. 이제는 라오스정부에 동굴 개발 노하우를 전파, 콘텐트 수출까지 하게 됐다. 앞으로 속초에서 러시아 하산 자루비노항까지 카페리가 재취항하는데 러시아 하산군수와 중국 훈춘 부시장이 광명동굴을 와서 보고는 그 관광노선을 광명까지 연결하자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양 시장의 재임 7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소통한 역사인 듯하다. 제가 1년 365일 중에 360일을 출근한다. 우리 광명시 공무원들이 많이 힘들다는 것도 안다.(웃음) 처음에 공무원들 눈에는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이 무모한 도전으로 비쳤을 것이다. 광명동굴도 그렇고, KTX광명역세권 활성화를 위한 대형 유통업체 유치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이케아, 코스트코를 광명에 유치할 때 그것을 추진하면 시장의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야당 당적을 가진 시장이 중소상인들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저는 자신이 있었다. 대형유통업체 입점을 반대하는 중소상인들과 유통기업들이 상생협약을 맺어 신뢰를 쌓게 하고, 광명시에서 중소상인들을 위한 주차장, 물류센터를 지어 배려했다. 그렇게 투트랙 전략으로 신뢰를 만들어갔다. 리더가 정책을 시행할 때는 반대가 있다고 해서 물러서면 안된다. 옳은 일, 필요한 일이라면 끊임없이 토론하고 설득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직이 그렇지만 리더가 말하면 20%는 적극적으로 따라오고 30~40%는 소극적이다. 나머지는 방관하거나 비판세력이 된다. 겪어보니 공무원 조직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리더에게 기대를 걸더라. 그러니 인사차별로 소외된 자리에 있는 직원일지라도 능력이 있다면 과감히 등용해야 한다. 그에 따른 주위의 비판이 있더라도 감수하는 게 리더의 몫이다. 그렇게 등용한 인재는 설사 일의 진척도가 느리더라도 리더가 기다려주면 일을 성실히 잘 수행해낸다. 제 경험으로는 그렇다. 광명동굴은 앞으로 더 개발되는가. 문화·예술·관광을 융합한 광명동굴은 대한민국 대표적 관광지를 넘어 이제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다. 앞으로는 기존 포맷에 첨단과학기술을 입힐 생각이다. 가상현실(VR)·첨단과학기술을 접목한 공포체험관 등 다양한 콘텐트 중심의 볼 거리 및 즐길 거리를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예를 들어 VR 광부체험관이라든지, 대형 3D 미디어타워 등을 동굴 안팎에 배치, 기존 콘텐트와 결합시켜 발전시키려 한다. 아시아권에서는 보기 힘든 프로그램과 콘텐트를 광명동굴에서 보여줄 생각이다. 광명동굴의 깊이가 275m이고 동굴 길이가 7.8km인데, 개발된 부분은 이제 2km가 조금 넘는다. 동굴 개발의 아이디어는 아직 무궁무진하다. ━ KTX광명역을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시발점으로 광명동굴 성공의 최대 수혜자는 양 시장과 광명시다. 동굴 입장 수입만 지금까지 125억원이다. 2014년 말에 가구공룡 이케아를 유치한 것도 양 시장의 과감한 도전이 빛을 발한 사례다. 이케아 출점을 전후해 코스트코와 롯데 프리미엄아울렛도 개장하면서 KTX 광명역세권은 한 해 2000만 명이 찾아오는 수도권 서남부 지역의 쇼핑·유통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양 시장이 취임한 2010년에 광명시를 찾은 관광객은 문화체육관광부 집계로 3000명이었다. 지난해는 광명동굴을 찾은 142만 명을 포함해 210만 명이다. 6년 만에 700배나 증가했다. 양 시장과 공무원들이 ‘변방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현재 KX광명역세권 일대는 한류열풍을 일으킬 ‘광명미디어아트밸리’ 조성 공사가 진행중이고 아파트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양 시장은 지금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을 테세다. 광명을 국제적인 도시로 바꾸겠다는 새로운 꿈을 시나브로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시장실 벽에 옛 고조선 지도와 유라시아 대륙철도 지도가 있어서 놀랐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은가 보다. 통일문제는 사회정의 실현과 함께 오래된 제 꿈이다. 저는 KTX광명역이 북한을 통과해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과 영국까지 가는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역이 될 것을 꿈꾸고 있다. 남북한이 교류를 시작하면 남북철도 연결 등 현실적으로 서로 이익이 되는 사업들이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KTX광명역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종단철도(TKR) 건설이 현실성 있는 남북한 우선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를 연결한다면 광명역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가는 유라시아철도의 꿈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 이를 위해 광명시는 이미 북한과 인접한 중국 단둥시·훈춘시, 그리고 러시아 하산군과 경제교류 우호 협약을 체결했다. 올 하반기에 KTX광명역에 도심공항터미널이 들어선다고 들었다. 새 정부가 국정 과제로 유라시아 대륙철도를 추진할 것에 대비해 광명시도 광명역에서 김포공항~대곡역~문산~개성까지 가는 철로 관련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광명역이 우리의 꿈대로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역이 되면 베이징~하얼빈~ 블라디보스톡까지 7시간이면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광명시는 한반도 첨단·특급물류 중심의 유라시아대륙 철도가 출발하는 거점도시가 된다. 이름 그대로 광명(光明)의 도시가 될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하지 않는다면 성공도 없다. 양기대 시장과 공무원들, 광명시민이 함께 일군 광명동굴은 할 수 있다는 긍정마인드와 도전으로 일궈낸 혁신경영의 성공 사례다. 양기대 시장은 중심성성(衆心成城)과 배사향공(背私嚮公)을 강조했다. 중심성성은 여러 사람의 뜻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한 사람의 비전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것은 그 뒤를 받치는 수많은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이 모일 때 비로소 창조와 혁신이 태동한다”고 믿는다. 배사향공은 개인의 욕심은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향한다는 뜻이다. 이런 자세로 사람의 힘을 모아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그가 또다른 어떤 성공 스토리를 써낼 것인지 ‘기대된다’. 그렇다. 이런 돈키호테라면 백번 환영이다. ━ “백만 인파가 몰려오는 현대의 알리바바 동굴” 광명동굴은 2016년 관광공사 선정 한국의 대표 관광지 100선에 선정된 광명시의 명소다. 동굴 안 350석의 객석 앞 무대에서는 오케스트라와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 동굴 벽에 쏘는 판타지 동영상과 그림도 환상적이다. 동굴 내 와인 창고와 와인레스토랑에서는 국내에서 생산된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광명동굴은 2015년 4월 유료개장 2년 만에 누적 관광객 234만 명을 기록했다. 광명동굴의 운영과 관리 인력 등에 필요한 630여 개 일자리 창출은 덤이다. 광명시가 운영비 등 지출을 뺀 수익을 검토한 결과 광명동굴의 현재 경제적 가치는 1530억원 정도로 나왔다. 2011년 사들일 때 쓴 43억원에다 진입로 확충과 주차장 조성 등에 국비와 도비, 시비 등 6년간 573억원을 들여서 이 정도 가치를 일궜다니 어느 민간투자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성공적인 개발사업이다. 프랑스 지는 “광명동굴은 백만의 인파가 몰려오는 현대의 알리바바 동굴”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양기대 시장 1962년: 전북 군산 출생. 전주고·서울대 지리교육학과 졸업. 2003년: 동아일보 법조담당 차장. 2008년: 민주당 광명을 지역위원회 위원장. 2010년: 7월~현재 경기도 광명시 시장, 2015.3 2015 창조경영대상 수상. 2016 제8회 다산목민대상 본상 수상(광명시).

2017.06.2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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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투자 나서는 프로야구단] ‘성적은 투자순일 수 있잖아요’

산업 일반

국내 프로야구단의 선수에 대한 투자 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다. NC는 박석민을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하면서 최초로 4년 최대 96억원의 계약을 했다. 한화는 투수 에스밀 로저스와 프로야구 역대 최고 연봉인 190만 달러(약 23억원)에 재계약했다. 국내 구단의 ‘통 큰’ 투자가 늘면서 젊은 현역 메이저리거도 속속 한국 땅을 밟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은 이른바 ‘묻지마 투자’에서 나름의 ‘합리적 투자’로 방향을 틀었다. 이들의 엇갈린 발걸음이 2016 시즌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지난 1월 22일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2011년부터 5년 연속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했던 포수 윌린 로사리오(27)를 계약금과 연봉을 더해 130만 달러(약 16억원)에 영입했다. 로사리오는 지난해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87경기에 나와 타율 0.268, 6홈런·28타점을 기록했다. 그가 MLB에서 보낸 5시즌 447경기에서 올린 성적은 타율 0.273, 71홈런·241타점이었다. 특히 2012년(28홈런)과 2013년(21홈런)에는 20개가 넘는 홈런을 기록했다.과거엔 전성기가 지나 MLB에서 밀려난 30대 선수들이 주로 한국에 왔지만 요즘은 다르다. 현재까지 계약을 마친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30.28세(2015년 개막일 기준 31.1세)다. 로사리오처럼 젊으면서도 MLB에서 한 시즌을 주전급으로 온전히 뛴 경험이 있는 선수도 많다. 아직 한화·LG가 보유 한도인 3명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도 20대 선수는 지난해와 같은 10명이 됐다.젊고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한국 무대를 노크하면서 선수들의 몸값도 껑충 뛰었다. 29명의 외국인 선수와 계약하는 데 구단들이 쓴 돈은 총 2524만 달러(약 303억원)다. 선수당 평균 87만 달러(약 10억원)로 66만 달러(약 8억원)였던 지난해보다 31% 증가했다. 국내 선수들과의 격차도 더 벌어졌다. 지난해 각 구단별로 상위 27명 선수의 평균 연봉은 1억9325만원이었다. 외국인 선수와 국내 주전급 선수들의 연봉이 5배 넘게 차이가 난다. 2014년 외국인 선수 28명의 평균 연봉(33만 달러, 약 4억원)과 1군 엔트리(26명) 선수의 평균 연봉(1억8432만원)은 2배 차이였다. ━ 젊은 현역 메이저리거 속속 한국 무대로 지난 12월 2일 한화는 지난해 활약했던 투수 에스밀 로저스(31)와 프로 야구 역대 최고 연봉인 190만 달러(약 23억원)에 재계약했다. 기아도 MLB 시카고 화이트삭스 출신인 투수 헥터 노에시(29)를 영입하는 데 170만 달러(약 20억원)를 투자했다. 연봉 20억원 시대가 열리면서 프로 야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1998년의 몸값 상한선이 12만 달러(당시 1억원)였던 것과 비교하면 18년 사이에 20배 가까이로 뛰었다. 2014년 1월 외국인 선수의 몸값 상한(30만 달러)과 재계약시 연봉 인상률 제한(25%)이 폐지된 후 외국인 선수의 영입 비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실제 선수들에게 투자하는 비용은 이를 상회한다는 게 야구계의 정설이다. 일본 프로야구와의 격차도 줄어들었다. 한화는 일본 프로야구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 라쿠텐 이글스 등과 로저스 영입 경쟁을 펼쳐 승리했다. 시속 155㎞의 강속구를 던지는 노에시도 여러 일본 구단에서 눈독을 들인 선수였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91명의 외국인 선수가 활약했다. 최고 연봉은 한신 타이거스에서 뛰었던 맷 머튼(35)으로 4억5600만엔(약 46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이대호(34)가 4억엔(약 41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고액 연봉자들의 금액은 우리보다 2배가 넘는 수준이었지만, 전체 선수 평균은 9524만엔(약 10억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한 경기에 구단 별로 4명의 외국인 선수가 뛸 수 있고, 보유 한도는 무제한이다.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했던 대니얼 김 MLB 해설위원은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그는 “프로야구가 1000만 관중 시대를 목전에 둘 만큼 양적으로 성장한 만큼 구단들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요즘 프로야구 팬들은 응원팀이 꼴찌를 하는 것보다 투자에 인색한 ‘짠돌이 구단’ 이미지를 갖는 걸 더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2014년 꼴찌팀 한화는 지난해 8월 1일 외국인 투수 셰인 유먼(36)의 대체 선수로 로저스를 영입했다. 전체 시즌(144경기)의 3분의 1인 51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MLB 명문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하던 그를 70만 달러(약 8억원, 구단 발표액)에 영입하는 대형 투자에 나섰다. 1년 계약으로 환산할 경우 200만 달러(약 24억원)가 넘는 금액이었다. 4~5일 간격으로 등판하는 선발 투수임을 감안하면 남은 기간 10경기 정도 선발 등판을 할 수 있었는데, 경기당 약 8000만원을 보장한 것이다. ‘과도한 투자’라는 비판이 일부에서 나왔지만 10경기에 등판한 로저스는 6승 2패, 평균자책점 2.97를 기록했다. 투자한 돈이 아깝지 않은 만점 활약이었다. ━ 성적에 목마른 구단들의 ‘통 큰’ 투자 한화는 2016 시즌에도 ‘통 큰’ 행보를 올해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07년 이후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한화는 이미 2명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데 310만 달러(약 37억원)를 썼다. 국내 FA 4명과 계약하는 데도 191억원(정우람 4년 84억원, 김태균 4년 84억원, 심수창 4년 13억원, 조인성 2년 10억원)을 쏟아부었다.지난해 7위였던 KIA도 하위권 탈출의 해법을 외국인 선수 영입에서 찾았다. 한국시리즈를 아홉 번이나 제패한 명문 구단 기아는 2011년 4위를 차지한 이후 5위-8위-8위-7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난해 부임한 김기태(47) 감독이 팀을 이끌면서 파격적인 선수 기용과 작전 구사로 시즌 막판까지 선전을 거듭했다. 가능성을 엿본 기아는 수준급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 투·타에 중심을 세우겠다는 전략이다. 3~4년 계약 기간을 보장하고 연간 20억원 가까운 돈을 안겨줘야 하는 국내 FA 선수 영입보다는 1년만 계약하는 외국인 선수 영입이 차라리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기아는 노에시·지크 스프루일(70만 달러)·브렛 필(90만 달러, 재계약)을 잡는 데 330만 달러(약 40억원)를 썼다. 신생팀 프리미엄으로 외국인 선수 4명을 쓸 수 있는 KT(275만 달러)보다 65만 달러 더 투자했다. 지난해 9위에 그쳤던 LG도 투수 헨리 소사(90만 달러), 내야수 루이스 히메네스(80만 달러)와 계약하는 데 170만 달러를 썼다. 나머지 투수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 MLB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수준급 선수 여러 명을 영입 리스트에 올려놓고 고심하고 있다. ━ 美 4~5선발급 투수 연봉 1000만 달러 외국인 선수의 활약이 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기록으로 입증된다. 선수의 시즌 기록을 토대로 종합적인 활약도를 평가하는 지표인 ‘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ins Above Replacement·WAR)’를 보면 지난해 정규시즌 2위팀 NC 다이노스에서 뛰었던 에릭 테임즈(타율·타점 1위), 에릭 해커(다승 1위) 등 4명의 평균 WAR은 5.90으로 단연 1위다. 시즌 1위 삼성은 평균 WAR 5.27로 3위에 올랐고, 시즌 4위 넥센(3.89)이 뒤를 이었다. 외국인 선수의 활약(평균 WAR 5.27, 2위)이 돋보였던 롯데 자이언츠는 시즌 막판까지 5위 다툼을 벌였지만 국내 선수들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탓에 8위에 머물렀다. 이와 달리 외국인 선수의 평균 WAR(0.98)이 가장 낮은 두산 베어스는 정규시즌에서 부상으로 주춤하다 포스트시즌에서 부활한 외국인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35) 덕에 한국시리즈를 거머쥐었다.MLB의 지속적인 호황이 국내 외국인 선수의 몸값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일종의 나비효과다. 대니얼 김 해설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미국에서 4~5선발급 선수가 연봉 1000만 달러인 시대다. 메이저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백업 선수들도 150만~200만 달러를 받는다. (비슷한 수준의) 한국 땅을 밟는 선수들이 MLB에서의 꿈을 포기하는 보상까지 생각한다면 현재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은 정상적인 수준이다.MLB 평균 연봉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400만 달러(약 48억원)를 넘어섰다. 지난해 4월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2015년 개막전 기준 선수들의 평균 몸값은 425만 달러(약 51억원)로 2014년 395만 달러(약 47억원)에 비해 30만 달러(6.3%) 올랐다. 이는 2001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미국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인 미국프로풋볼리그(NFL)의 평균 연봉인 210만 달러(약 25억원)의 2배 수준에 이르는 금액이다. 100만 달러 이상을 받는 선수는 508명이고, 1000만 달러 이상은 123명, 2000만 달러가 넘는 초고액 연봉자도 27명이나 됐다.벌어들이는 돈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통 큰’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MLB는 95억 달러(약 11조3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90억 달러)보다 5억 달러, 2013년에 비하면 15억 달러나 증가했다. 13년 연속 플러스 성장도 이어가고 있다. 배경에는 엄청난 금액의 방송 중계권 계약이 있다. MLB 사무국이 지난해 ESPN·FOX·TBS 등 전국 네트워크 3사와 맺은 중계권 계약은 온라인 및 모바일 방송권리를 포함해 8년 간 124억 달러(약 14조7240억원) 규모에 달한다. 연간 30억 달러가 넘는 라이선스 상품 판매와 스폰서십 등을 통한 기타 매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MLB 사무국은 수익 분배(revenue share) 원칙에 따라 번 돈을 30개 구단에 공평하게 나눠준다.이와 별도로 각 구단은 자체 수익 활동을 벌인다. 연고 지역의 케이블 방송과의 중계권 계약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고 인기 구단 뉴욕 양키스는 자체 케이블 방송인 YES 네트워크를 통해 2013시즌 8500만 달러(약 1018억원)에서 시작해 30년 동안 매년 5%씩 증가하는 계약을 했다. LA 다저스는 2014년 타임워너롭부터 25년 간 83억5000만 달러(약 9조9150억원)를 받는 중계권 계약을 했다.MLB에서는 선수단 연봉 총액으로 상한 금액 이상을 쓴 구단에 사치세(luxury tax)를 부과한다. 부자 구단의 마구잡이식 선수 영입을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말 사상 처음으로 4개 팀에 7280만 달러(약 870억원)의 사치세가 부과됐다. 그럼에도 최고 선수 영입을 위한 구단들의 지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한국 프로야구에 FA 제도가 도입된 1999년 11월 해태(현 기아)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강철(현 넥센 수석코치)은 3년 총액 8억원에 라이벌팀 삼성으로 이적했다. 역대 최초의 FA 이적 사례였다. 그리고 4일이 지난 후 LG 포수 김동수(현 LG 2군 감독)도 이강철과 같은 조건에 계약을 했다. 우승이 절실했던 삼성의 연이은 투자에 많은 이들이 “이렇게 돈을 펑펑 쓰다가 프로야구단이 다 망한다”고 걱정했다. FA 투자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삼성은 2002년 구단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이후 여섯 번이나 더 한국시리즈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21세기 최강팀으로 군림했다.해마다 FA 시장의 과열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2012년 FA 이택근(넥센)이 LG에서 넥센으로 이적하면서 4년 50억원에 계약한 이후 계약 규모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장원준(두산, 4년 84억원)과 최정(SK, 4년 86억원)이 처음으로 80억원 대를 돌파했다.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국내로 돌아온 윤석민(KIA)이 4년 9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80억원대 선수가 2명(정우람·김태균, 4년 84억원)이 나왔다. 삼성에서 뛰던 박석민은 NC와 계약하면서 최초로 90억원(4년 최대 96억원)을 돌파했다. ━ 삼성의 새로운 실험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위원이자 을 집필한 이영훈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언론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과열이라고 말하지만 한화나 NC가 FA에 투자하는 것은 다른 팀이 생각하지 않는 곳에 가치를 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화 입장에서는 성적 향상에 대한 오너의 의지가 굉장히 강했고, 최근 몇 년간 소극적인 투자로 하위팀에 그쳤던 모 구단 역시 필요에 의해 돈을 쓴 것”이라며 “지난해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떨어졌던 NC 역시 올 시즌 우승을 위한 적기라고 판단해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고액의 외국인 선수 영입도 FA 선수 영입과 비슷한 맥락이다. 돈을 써야 하는 확실한 이유(성적 향상)가 있고, 구단이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면 과도한 투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니얼 김 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최근 구단마다 외국인 선수 영입에 대해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어떤 구단은 통계 분석을 통해 ‘키가 큰 투수가 국내 타자들을 상대하는 데 유리하다’는 기준을 만들었다. 또 국내 야구장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플라이보다 땅볼 유도에 능한 투수들을 선호하는 구단도 있다.”방향을 튼 구단도 있다. 한 때 FA 시장을 주도하며 ‘돈성(돈+삼성)’이라는 오명을 얻은 삼성은 외부 FA 영입을 줄이고 선수 육성에 힘쓰면서 프로야구 최초로 정규시즌 5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지난해 말에는 효율적인 구단 운영을 위해 광고·홍보 전문 회사인 제일기획에 편입됐다. 이른바 ‘묻지마 투자’에서 ‘합리적 투자’로 방향을 튼 것이다.“대기업의 홍보 수단으로만 여겨졌던 야구단 운영에도 수익성에 대한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야구단도 단순히 승리에만 집착하는 게 아니라 수익 증대를 위한 마케팅을 하게 됐다. 넥센 히어로즈가 적자 운영에서 벗어나 손익을 맞추는 정도로 성장하면서 모기업의 지원 없이도 자생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중기적으로 안정 단계에 접어든 한국 프로야구는 더 성장할 여지가 충분하다.” 이영훈 교수의 기대다.히어로즈의 매출은 222억원(2012년)→230억원(2013년)→310억원(2014년)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강정호 포스팅 금액(약 50억원)을 포함해 350억원으로 뛰었다. 올해는 박병호가 안겨준 돈(약 150억원)과 넥센타이어 후원금(약 100억원)을 합쳐 250억원을 안고 시작한다. 중계권료·입장수입·광고 등을 합쳐 매출 500억원을 올린다면 조심스럽게 흑자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2016.01.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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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가치창출에 성공한 (주)오뚜기의 사회공헌

ESG

(주)오뚜기(사장 이강훈)는 ‘인류 식생활 향상에 기여한다’는 경영이념 아래 장애인 복지, 어린이 심장병 환자 지원, 복지 사각지대 계층 지원 등에 힘쓰고 있다. 최근들어 특히 ‘공유가치창출’이라는 방법론으로 사회적 책임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공유가치창출은 기업의 경제적 가치와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경영으로 기업과 수혜자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윈-윈을 지향한다.대표적 사례가 장애인 지원이다. (주)오뚜기는 지난 2012년 6월부터 장애인들에게 오뚜기 상품 제작의 일부를 위탁해왔다. 장애인을 위한 학교와 재활센터를 운영 중인 밀알재단 굿윌스토어(Goodwill Store)의 송파점·도봉점에 선물세트 조립작업을 맡겨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후원금을 기부하는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장애인들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기쁨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다.인재양성도 (주)오뚜기의 주요 사회공헌사업 중 하나다. 1997년부터 장학사업을 시작해 총 500여 명에게 25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2009년에는 ‘오뚜기 학술상’을 제정해 한국의 식품산업 발전과 국민식생활 향상에 크게 기여한 식품관련 교수와 식품사 연구원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총 11명이 오뚜기 학술상을 통해 상금을 지원받았다. ━ ‘오뚜기 봉사단’ 나눔경영에 이바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에 대한 후원은 20년간이나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생명을 잃는 경우를 줄이고자 1992년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후원사업을 시작, 매년 수술비 지원 사업 규모를 키워왔다. 첫해에는 매월 5명씩 후원하다 현재는 매월 23명의 환자를 지원한다. 그렇게 해서 올해 7월까지 총 3966명을 후원했다. 수술비만 지원하고 끝이 아니다. 완치된 어린이와 그 가족에게 꾸준한 관심을 보낸다. 매년 10월에는 심장병 완치 어린이와 그 가족을 충북 음성의 오뚜기 대풍공장에 초대해 공장견학과 신제품요리시연회 참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나눔경영에도 적극적이다. 2012년에 ‘오뚜기 봉사단’을 출범시켜 오뚜기의 공장과 영업점 근처의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재능기부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독거노인과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1999년부터 푸드뱅크를 비롯한 전국 복지단체를 통해 물품도 기부한다. (주)오뚜기 사회공헌담당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소비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남도록 힘쓰겠다”며 적극적으로 상생 협력을 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송은지 포브스코리아 인턴기자

2015.09.22 19:18

2분 소요
오뚜기, 사회공헌활동의 격을 높이다

ESG

오뚜기의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이 화제다. 심장병 어린이 후원 사업을 통해 3911명의 새 생명을 탄생시켰고, 최근에는 장애인에게 일감을 주며 자립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오뚜기의 대표적인 사회공헌은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후원 사업이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들은 10세 이전에 수술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파악하고 1992년 본격적으로 수술비 후원 사업을 시작했다.외환위기, 장기적인 경기침체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뚜기의 심장병 어린이 후원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후원 인원을 단계적으로 늘렸다. 1992년 매월 5명 후원을 시작으로 현재는 매월 23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찾아주고 있다. 지난 2011년 10월에는 서울 대치동에 자리한 오뚜기센터에서 완치된 어린이와 가족을 비롯해 후원업체, 한국심장재단 관계자, 오뚜기 및 관계사 임직원 등 200여명이 참석해 ‘오뚜기의 사랑으로, 새 생명 3000명 탄생’ 기념행사를 갖기도 했다.사회공헌 활동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장애인의 자립을 도와 자존감을 높이고 있는 것. 오뚜기는 지난 2012년 6월부터 장애인학교와 장애인재활센터를 운영하는 밀알재단의 ‘굿윌스토어(Goodwill Store)’ 송파점에 자사가 생산하는 주요 선물세트의 조립 작업 임가공을 위탁했다. 굿윌스토어는 기업과 개인에게 생활용품이나 의류 등의 물품을 기증받은 후 장애인들이 잘 손질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선물세트 임가공은 단순히 후원금을 기부해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스스로 일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서 자립을 돕는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장애인들에겐 금전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일감이 더욱 절실한 현실이다. ━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진화 중 2011년 5월 개장한 굿일스토어 송파점은 71명의 임직원 중 50명이 장애인이다. 오뚜기 임직원이 매주 수·금요일에 자원봉사를 나와 작업을 돕고 있다. 오뚜기는 2013년 2월부터는 굿윌스토어 도봉점에도 임가공 위탁 및 자원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개점한 굿윌스토어 전주점에도 물품지원을 시작했다. 사내물품 기증 캠페인과 굿윌스토어 매장에 오뚜기 제품 기부도 병행한다. 이 물품은 장애인들이 깨끗이 손질 및 수선해 매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오뚜기의 사회공헌은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 중이다. 독거노인과 불우이웃에게는 1999년부터 푸드뱅크와 전국의 복지단체를 통해 물품을 기부하고 있다. 2012년 8월에 출범한 ‘오뚜기 봉사단’은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노력봉사와 재능기부, 정기적인 환경정화활동을 펼치고 있다.이외에도 1996년 설립된 재단법인 오뚜기재단에서는 다양한 학술진흥사업, 장학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1997년 5개 대학 14명의 장학금 지원을 시작으로 이제까지 총 500여명에게 25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남을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5.03.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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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스포츠 경영학’

CEO

대한체육회 산하 58개 가맹 경기단체 중 32개 단체의 수장이 기업 CEO다. 재력가를 단체에서 원하기도 하지만, 경영자 입장에서도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소치 동계올림픽·브라질 월드컵 등을 앞두고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 1 지난 10월 30일 대한체육회는 내년 소치 동계올림픽 대한민국선수단장에 김재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선임했다.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인 그는 2011년 3월부터 빙상연맹을 이끌어오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단장은 “명예롭게 생각하고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선수들이 훈련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소감을 밝혔다.이틀 후인 11월 1일 윤석민 대한스키협회장은 긴급이사회를 열고 사퇴를 선언했다. 윤세영 태영그룹 회장의 아들인 그는 태영건설·SBS홀딩스 부회장이다. 스키협회 관계자는 “그동안 동계올림픽 선수단장은 관례적으로 스키협회와 빙상연맹이 번갈아 맡아 왔는데 이번은 스키협회장차례였다. 대한체육회의 결정으로 협회 안팎에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체육계 인사는 “선수단장은 국제 스포츠무대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자리다. 특히 한국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기에 더욱 주목 받는다”며 “기업 CEO로서는 욕심 낼만한 자리”라고 말했다.# 2 지난해 런던 올림픽 여자양궁 단체전 결승전이 열린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올림픽 7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 궁사들이 달려가 포옹한 사람은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었다. 부친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에 이어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여자 양궁 선수들을 차례로 껴안고 기쁨을 나눴다.다음날 신문에는 ‘대 이은 양궁 사랑’ ‘금빛과녁 맞춘 태극전사 뒤 재계 총수 있었다’ 등의 보도가 잇따랐다. IOC위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핸드볼협회장인 최태원 SK 회장, 대한탁구협회장인 조양호 한진 회장과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인 구자열 LS 회장의 동정도 올림픽 기간 내내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체육단체장이라는 또 다른 직함을 다는 기업 CEO가 늘고 있다. 공정하고 역동적인 스포츠의 이미지를 얻을 뿐 아니라 운영 리스크도 적기 때문에 기업인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 한국야구위원회, 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한국배구연맹 등 프로스포츠 단체 4곳과 대한체육회 산하 58개 가맹 경기단체 중 32개 단체의 수장이 기업인이다.특히 범현대가(家)의 진출이 눈에 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 3선째다. 특히 1985년부터 1997년까지 2~5대 대한양궁협회장을 지낸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에 이어 부자(父子)가 한국 양궁계를 오래 이끌어 주목받는다. 현대차는 30년 가까이 300억원 이상을 투자해 한국 양궁을 세계 최강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에는 런던 올림픽에서 선전한 양궁 대표선수단에게 16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대한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다. 정 회장은 15년 간 축구협회장을 맡았던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이다. 프로축구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에 이어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지냈다.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는 K리그를 주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고 있다. 범현대가가 아마추어부터 프로까지 한국 축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을 맡고 있다.공정·역동 이미지 갖춘 체육단체장 선호범LG가와 범GS가도 체육단체 곳곳에 이름을 올렸다. 야구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한 범LG가에서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한국야구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자전거 전도사’로 유명한 구자열 LS 회장은 올해 대한사이클연맹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한국기원 이사장 겸 대한바둑협회장으로 재임 중이고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은 대한골프협회장을 맡고 있다.체육단체장 역시 재계 파워와 맞물린다. 삼성·현대차·SK·LG 등 대기업 CEO들은 단독출마에 이은 ‘연임’이 대세다.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에 관심을 가져온 최태원 SK 회장은 올초 대의원 만장일치로 대한핸드볼협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도 대한펜싱협회장에 연임 중이다.한국기원 이사장 겸 대한탁구협회도 단독 출마한 조양호 한진 회장의 연임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정의선 부회장, 김재열 사장, 구자열 회장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기업총수 단독출마의 경우 든든한 지원군 역할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스포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연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반면 인기 종목은 치열한 양상을 띠기도 한다. 한국축구협회장은 연간 100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다루는 ‘축구대통령’으로 불린다. 지난 1월 선거에서는 정몽규 회장을 비롯해 김석한 전 중등축구연맹 회장,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윤상현 새누리당의원 등이 경합했다. 1차 투표에서 범GS가인 허승표 회장에게 뒤진 정 회장은 결선투표에서 극적으로 뒤집었다. 오랫동안 아이스하키단체를 이끈 박갑철 회장과 맞붙었던 정몽원 한라 회장도 간발의 차로 당선됐다.재계 수장들이 직접 체육단체장에 나서는 것은 체육 발전 지원이라는 명분과 함께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글로벌 브랜드로 올라서는 실리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 한양대 예술체육대학장은 “기업이 수익의 사회 환원 방법을 찾을 때 스포츠 종목에 투자하는 것만큼 매력적인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스포츠를 통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고,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기업 CEO 입장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종목별 세계 연맹·협회 등에 진출하면서 국제무대에서의 비즈니스 발판을 마련하고, 개인적인 위상을 높이는 효과도 볼 수 있다.”체육계 역시 거액의 출연금과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는 기업인을 선호한다. 정희윤 스포츠산업경제연구소장은 “체육단체가 기업 CEO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이다. 전 세계 어떤 경기단체든 스폰서 유치가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에는 기업이 스폰서십 투자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직접 단체장을 맡아 지원한다. 큰 단체의 경우 회장이 약 30억원 정도를 출연한다. 회장이 내는 후원금이 해당 단체 수익의 60%가량 된다.”비인기 종목 버팀목 역할기업과 체육단체의 인연은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서울올림픽이 성공하려면 각 기업들이 경기단체 하나씩 맡아야 한다’며 기업별로 체육 종목을 할당했다. 레슬링-삼성, 양궁-현대, 축구-대우, 탁구-동아건설, 복싱-한화, 유도-두산 식이었다. 체조·사격 등을 후원할 기업이 나서지 않자 정부는 대한주택공사에 근대 5종을, 옛 한국전기통신공사에 사격을, 포항제철에 체조협회장을 떠맡겼다.지난해 6월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대 그룹이 2011년 국내 스포츠에 지출한 비용은 총 4276억원이다. 이는 같은 기간 문화체육관광부의 체육 예산(8403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비인기 종목에도 1325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삼성·현대차·SK·한화·포스코·한진 등 10대 그룹은 다양한 비인기 종목의 선수단을 운영 하면서 협회장까지 맡아왔다.2010년 기준 10대 그룹이 자사의 CEO가 협회장으로 활동 중인 체육단체에 찬조한 금액은 140억원에 이른다. 아낌 없는 투자는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런던 올림픽이 끝난 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선수단이 획득한 28개 메달 가운데 80%가량인 22개의 메달이 국내 10대 그룹이 후원하는 종목이었다.삼성과 이건희 회장이 대표적이다. 레슬링 선수 출신인이 회장은 1982년부터 15년간 대한레슬링협회장을 맡으면서 300억원 이상 재정적 지원을 해왔다. 체육계 인사들은 “당시가 한국 레슬링의 르네상스 시대였다”고 입을 모은다. 선수 출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현재도 삼성은 해마다 6억원 이상을 협회에 지원한다.삼성이 회장사를 맡고 있는 빙상은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을 계기로 한 단계 더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쇼트트랙외에도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등 빙상 세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는 꾸준한 투자의 결실이다. 삼성은 동계올림픽 메달 종목 육성차원에서 1997년부터 후원을 시작했다. 2011년엔 이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사장이 직접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아 한층 투자를 늘렸다.SK는 핸드볼과 펜싱을 지원한다. 최태원 SK 회장은 2008년 10월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국제 핸드볼 대회 유치를 돕는 등 후원활동에 적극 나섰다. 2011년에는 핸드볼 전용 경기장 완공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434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상태에서도 핸드볼협회 운영을 걱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선 펜싱 역시 SK의 든든한 후원이 뒷받침됐다. 펜싱협회장은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전 SK 회장)이 맡고 있다.조양호 한진 회장의 탁구 사랑도 잘 알려졌다. 그는 탁구선수들의 개인사를 직접 챙기기도 한다. 조 회장은 올초 대한항공 탁구팀 소속 김경아 선수가 ‘2세 계획’을 위해 은퇴를 결정하자 “일보다 가정을 우선할 때”라며 애정을 드러냈다.현정화 전 국가대표 감독이 탁구 국제행정가를 목표로 지난해 8월 어학연수를 떠날 때는 조 회장과 딸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상무의 모교이자 조 회장이 재단이사를 맡고 있는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를 소개해줬다. 조 회장은 USC 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어학코스의 추천을 부탁했다고 한다.김승연 한화 회장의 사격에 대한 애정도 오래다. 그는 한화의 이름을 건 사격 대회를 만들고 전자표적지를 국내에 도입하는 등 힘써왔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강초현 선수가 실업팀이 없어 진로가 불투명해지자 갤러리아사격단을 창단했고, 한화 고위 임원들이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번갈아 맡아 지원하고 있다. 포스코 역시 한국 체조를 27년간이나 묵묵히 지원해 왔다.반면 기업의 후원을 받지 못하는 종목은 재정난에 빠지기 일쑤다. 한화가 1997년 손을 뗀 아마추어복싱연맹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허덕인다. 복싱연맹 관계자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을 중단해 연맹 운영 자체가 힘들다. 선수층도 얇아지면서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엘리트 스포츠의 ‘돈줄’ 넘어 사회체육 지원해야물론 기업 CEO들의 체육단체장 겸임에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스포츠 지원이 자사 CEO의 부정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교수는 “한국은 정치·경제·스포츠가 삼각동맹을 맺고 있는 독특한 국가”라며 “국가와 재벌이 스포츠에 다목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기업의 재정 지원이 장기적으로 보면 체육단체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의 지원 없이도 순수 스포츠 마케팅으로 생존해야 하는 체육단체가 생존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는 것이다.또한 엘리트체육에 대한 편중된 지원도 고쳐야 할 사항이다. 금메달 획득을 겨냥하는 엘리트체육은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전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전인양성의 학교체육과 국민건강 증진 차원의 사회체육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독일의 대표 제약회사 바이엘은 기업의 스포츠 육성에 대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스포츠를 통해 직원과 주민에게 투자했다. 바이엘이 운영하는 스포츠클럽은 29개 종목으로 회원 수만 5만 명에 달한다.축구·배구·농구·핸드볼·펜싱·유도·체조·육상 등에서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노약자·어린이·장애인들도 초현대식 시설에서 스포츠를 즐긴다. 바이엘 소속 구단인 레버쿠젠은 400개의 팬클럽을 관리하고 연령별 유소년 팀 운영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체육 저변 확대를 통해 글로벌 스포츠시장에서 지속적인 성공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2013.12.06 15:29

7분 소요
SK 비밀창고에 현금 130억 비축

산업 일반

SK 불법 대선자금 수사기록 단독 입수 SK그룹은 SK해운으로부터 변칙 유출한 2천여억원을 해외 선물투자에 사용했으며 이렇게 조성된 그룹 비자금 중 일부가 2002년 말 불법 대선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이 최초로 확인됐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SK 불법 대선자금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단독 입수해 이와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최돈웅 의원을 통해 한나라당에 건네진 1백억원을 비롯해 여야 정치권에 전달된 불법 자금도 이중 일부였다. 또한 SK그룹은 회사 내에 비자금을 보관하는 ‘비밀창고’까지 만들어놓고 이미 대선 1년 전부터 대선용 정치자금으로 사용할 자금을 은밀히 전액 현금으로 비축해 놓기 시작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또한 드러났다. 한편 DJ정권 5년 동안 SK그룹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공식 후원금으로 각각 1백62억원, 16억원씩을 불균등하게 건네 한나라당으로부터 불만을 샀고, 대선 때 SK그룹측에 ‘강압’적으로 대선자금을 요구하는 빌미를 제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록 속에는 손길승 SK그룹 회장, 김창근 SK그룹 구조조정본부장 겸 (주)SK 사장,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 이재현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 등에 대한 진술조서·피의자 신문조서 및 재판기록과 김영일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의 진술을 통해 SK 불법 대선자금의 실체를 밝혀본다. SK 1년 전부터 계열사 돈 변칙 유용, 1백30여억원의 불법 대선자금 준비 검찰은 지난 1월 9일 “SK해운에서 변칙적으로 유출된 2천3백92억원 중 상당액이 손회장의 해외 선물투자에 사용됐으며 손회장은 분식회계를 통해 이를 은폐하려 했다”고 결론짓고 손회장을 구속 수감했다.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8월 20일 2000∼2001년 분식회계 등을 한 혐의로 SK해운을 고발했다. 그러나 증권선물위의 고발로 수사가 착수됐다는 언론 보도와는 별개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안대희)는 고발이 있기 수개월 전 이미 단서를 포착하고, SK그룹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와 계좌추적 등을 통해 관련 증거를 상당량 확보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검찰은 SK그룹이 SK해운을 통해 2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 선물투자를 했으며 이는 정치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지난해 8월 27일 소환된 김창근 SK 구조조정본부장을 통해 확인했다. 최돈웅 의원을 통해 한나라당에 전달된 불법 대선자금 1백억원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는 진술도 이미 확보했다. 김본부장은 이날 검찰 조사에서 “그룹 차원에서 2002년 초부터 연말 대선에 대비해 현금으로 모아둔 돈이 있었으며, 특정 계열사에서 돈을 만들어 SK증권을 통해 선물거래를 하는 등 자금을 운용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국회의원 총선이 있는 해는 현금으로 30억∼40억원 정도 시재(時在)를 갖고 있다 사용했고, 제16대 대선의 경우도 당연히 연말에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해 그룹 차원에서 연초부터 SK증권을 통해 운영하던 선물거래 자금 중 일정액을 인출해 연말에 약 1백20억원 내지 1백30억원 정도의 현금을 준비해 두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2002년 불법 대선자금과 별개로 2000년 총선 당시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이 흘러들어갔는지 여부도 새로운 논란거리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말 대선자금으로 1백30여억원 정도를 사전에 준비하도록 지시한 것은 손회장이었다. 김본부장의 진술이 있은 후 사흘 뒤인 8월 30일 손회장 역시 검찰에 소환돼 이같은 사실을 자백했다(당시 손회장은 10월 2일 검찰에 첫 소환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손회장은 이보다 두달여 앞선 8월 이미 검찰에 소환됐다. 더군다나 검찰이 제1회 조서를 ‘참고인 진술조서’가 아닌 ‘피의자 신문조서’로 받은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전에 비공식 소환을 통해 충분한 진술을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손회장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때 2002년에는 각 당에서 대통령 및 지방선거에 필요한 선거자금을 요구할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김본부장에게 미리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SK 구조조정본부 내 ‘비밀창고’ 압수 수색으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 시작 SK그룹은 SK해운에서 유용한 돈으로 선물투자 등을 하면서 마련한 정치자금 등 기업 비자금을 보관하기 위해 별도의 ‘비밀창고’까지 만들어놓았다는 충격적인 사실 또한 수사기록에서 확인됐다. 대선용 정치자금으로 미리 마련해둔 현금 1백30여억원도 이 ‘비밀창고’에 보관돼 있었던 것이다. 손회장은 10월 2일 검찰 조사에서 “1997년 말께부터 SK해운에서 나온 돈으로 SK증권을 통해 선물 및 옵션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자금 중 일부를 인출해 구조조정본부의 ‘비밀창고’ 등에 보관했다”고 진술했다. 이 ‘비밀창고’는 종로 SK사옥의 구조조정본부 내 재무담당 임원실과 비상근 임원실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가로 3∼4m, 세로 1.5∼2m, 높이 3m 정도 크기의 공간으로 2중문이 설치돼 있다. ‘비밀창고’는 김본부장이 SK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 시절인 1999년께 회사의 중요 문건이나 그룹 비자금 등을 보관하기 위해 직접 공사를 시켜 만든 창고였다. ‘비밀창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김본부장과 손회장 두사람뿐이었다. ‘비밀창고’의 열쇠는 김본부장이 직접 관리했으며 손회장조차도 ‘비밀창고’를 직접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지난 5년간 이 공간은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돼 왔다. 김본부장은 2002년 대선 때 쓸 정치자금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2001년 말∼2002년 초 SK증권에 근무하는 모부장을 통해 현금을 만들었다. 현금은 은행에서 1만원권으로 1천만원 단위로 포장해 사과박스 같은 곳에 담아 구조조정본부 ‘비밀창고’로 옮겨졌다. 이 돈을 나중에 정치권에 전달할 때는 대형 쇼핑백에다 각각 1억원씩 담은 뒤 구조조정본부 사무실에 있는 화물 운반용 카트에 싣고 지하 2층 주차장으로 내려가 김본부장의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운반했다. 손회장 진술에 따르면 이 ‘비밀창고’의 존재가 처음 드러난 것은 지난해 봄 검찰이 SK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면서다. 서울지검은 참여연대가 SK그룹 주식 이면거래 혐의를 고발함에 따라 지난해 2월 17일 SK사옥 및 계열사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SK그룹 회장실과 구조조정본부의 전직원들을 사무실에서 내보낸 뒤 외부와 연결되는 전화도 모두 차단한 채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날 입수한 자료에는 사과박스 20여개 분량의 서류 등이 포함돼 있다. 문제의 ‘비밀창고’ 존재도 이날 압수수색에서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날 구조조정본부 ‘비밀창고’에 보관돼 있던 SK해운 자금 변칙 유출 및 선물투자, 그리고 정치자금 등에 관련된 ‘비밀장부’를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재계를 뒤흔들고 있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서막은 이날 SK그룹 압수수색 와중에 ‘비밀창고’에서 입수한 관련 증거를 통해 이미 시작됐던 것이다. SK그룹 수사 일지 2003년 2월 17일: SK그룹 압수수색 2003년 2월 27일: 검찰, SK글로벌 1조5천억원대 분식회계 혐의 수사 발표 2003년 8월 20일: 증권선물위원회, SK해운의 분식회계 고발 2003년 8월 27일: 김창근 SK구조조정본부장 소환, 제1회 진술조서 작성 2003년 8월 30일: 손길승 SK그룹 회장 소환, 제1회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2003년 9월 4일: SK그룹 비자금 정치권 유입 관련 검찰 수사 언론 보도 2003년 9월 22일: 최태원 SK(주) 회장 보석 석방 2003년 10월 2일: 대검 중수부 손길승 SK그룹 회장 소환 (제2회 피의자 신문조서) 2003년 10월 7일: SK그룹 비자금 관련 이상수(열)·최돈웅(한) 의원,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소환 2003년 10월 15일: 최돈웅 의원 제1,2,3회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2003년 10월 21일: 최돈웅 의원 1백억원 수수 사실 첫 시인 2003년 10월 27일: 이재현 전 한나라당 재무국장 제1회 진술조서 작성 2004년 1월 9일: 김영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구속영장 청구, 손길승 SK그룹 회장 특가법상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 수감 DJ 정권 당시 민주당에 1백62억원, 한나라당에 16억원의 정치자금 건네 SK측은 왜 정치권의 ‘요구’가 있기 훨씬 전인 2001년 말∼2002년 초부터 대선용 자금을 미리 마련해놓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일까. 1백30여억원을 현금화하는 데는 시간이 상당히 걸리고,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다. SK그룹측이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고 사전에 대선자금을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SK그룹측은 2002년 말 대선 때 정치권에서 요구할 금액이 1백30억원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다. 손회장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SK그룹은 그룹 계열사 사정에 따라 매년 정치자금으로 공식·비공식적으로 줄 수 있는 총액을 책정해놓고 여당 60% 정도, 야당 40% 정도라는 기준을 두고 지원해왔다. 그러나 민주당측에서는 “(매년) 연초부터 돈을 요구”하고 “금액도 여당 몫으로 할당해놓은 액수를 초과하므로 60%를 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한나라당에는 애초에 책정된 금액보다 적게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손회장은 “지난 정권 때 SK그룹은 총선 등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해에는 연간 민주당 25억∼40억, 한나라당 5억∼10억원, 자민련 3억원 정도의 후원금을 냈으며 국회의원 개인후원회는 개인에 따라 3백만∼1천만원 정도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998년부터 2002년까지 SK그룹이 공식적으로 정치권에 전달한 총액은 민주당(국민회의 시절 포함)이 1백62억원인데 반해 한나라당은 16억원에 불과했다. 따라서 SK그룹은 한나라당으로부터 불만을 샀던 것이다. 손회장은 8월 30일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2002년에는 한나라당에서 자주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거의 노골적으로 선거자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손회장 진술에 따르면 “국회에서 SK그룹 관련 사안에 대해 자꾸 시비성 발언을 하는 등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계열사 사장들이 못해 먹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면서 “왜 한나라당에서 자꾸 SK그룹 관련 사안에 대해 시비를 거는지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분석해 보니 결국 정치자금을 적게 주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다른 해보다 한라당측에 대선자금을 많이 책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손회장은 검찰에서 “과거에는 정치자금이나 선거자금이 필요한 시점에 기업에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빼내 건넸지만, 지난 정권부터는 필요한 시점에 큰 액수의 현금을 빼주는 것이 쉽지 않아 미리 준비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자금 불공평 배분 문제로 한나라당의 SK 표적 공세에 시달려 2002년 대선 당시 SK그룹측은 알려진 것처럼 ‘이회창 대세론’을 믿고 ‘올인’식 투자를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는 대선 직전 한나라당의 압승이 점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5대 그룹 등 기업들이 한나라당에 대선자금을 ‘올인’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회장과 김본부장은 검찰 조사에서 “한나라당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했으나 저희들은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이회창 후보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도 언제나 그랬듯이 현직 대통령이 미는 사람도 만만치가 않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것처럼 선거 결과가 그렇게 나오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만의 하나 한나라당이 승리할 경우 그룹의 입장이 더 어려워질 것을 염려해 울며 겨자먹기로 준 것”이라는 게 두사람의 공통된 진술 내용이다. SK그룹측은 지난 정권 동안 거대 야당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던 듯 보인다. 손회장과 김본부장은 “국회의원, 특히 경제 관련 상임위원회의 영향력있는 국회의원들은 SK그룹의 사업 추진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데 국회에서 의원들이 표결·질의·발언을 통해 기업의 사업 추진에 장애가 되는 정책을 지지하거나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할 경우 애로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손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실제로 거대 야당의 파워를 여러 차례 실감했으며 실제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손회장은 이에 대한 예로 대선 직전인 2002년 10월께 공정거래위원회의 출자총액 초과 주 의결권 제한 조치, 금감원·공정위의 SK그룹과 JP모건 이면계약 조사, 부당 내부거래 관련 제재 조치, KT 민영화 과정에서 SK텔레콤의 주식 인수와 관련한 통신위원회의 제재 조치 등을 들었다. 손회장은 “이런 사안들은 모두 국회와 정부 각 부처가 우리 그룹을 우호적으로 봐주어야 원만하게 처리될 사안들인데 보통 대선이나 총선 전 국정감사 기간에는 국회의원들이 은근히 정치자금을 낼 만한 기업들을 골라 그런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정부 부처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거나, 회사 관계자를 증인으로 출석시키거나, 대정부 질의시 기업을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대선 직전에도 SK그룹과 관련해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본부장도 “지난해(2002년)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과학정보통신분과위원회(통신과학위원회)에서 우리 그룹이 DJ 정부의 보호 하에 부당 이득을 취했으니 집권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하는 등 SK그룹 관련 사안에 대해 시비를 많이 걸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SK그룹 관계자들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수차례 한나라당에서 ‘강압적’으로 선거자금 1백억원을 요구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대선자금으로 한나라당에 1백억원, 민주당에 25억원을 준 이유는 DJ 정권 때 민주당에 1백62억원, 한나라당에 16억원을 줬기 때문에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도,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것 같아서도 아니었다. 단지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대로 줬을 뿐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본부장은 “기업을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자발적으로 정치자금을 내겠다고 하지는 않지만 정치권에서 선거자금을 달라고 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줄 수밖에 없다”면서 “민주당의 경우 25억원을 요구했고, 한나라당에서는 1백억원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렇게 준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자금은 기업이 결정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 요구 대로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상득 사무총장도 대선자금 모금에 관여 이번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난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최돈웅 의원이 김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자금을 요청하기 전 이상득 한나라당 사무총장(당시 최고위원)과 먼저 접촉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업가 출신인 이총장은 손회장·김본부장과는 오래 전부터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김본부장은 “2002년 10월 말께 이상득 의원이 전화를 해 마포 가든호텔 뒤편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이의원이 한나라당에 대선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의원은 기업에 부담주는 것을 미안해하며 구체적 액수는 제시하지 않고 도와달라는 말만 했다는 것이다. 손회장은 “김본부장이 두 의원에게 연락해 두 분이 서로 정리해서 SK가 어느쪽에 대선자금을 내야 하는지 물어봤을 때 두 사람 모두 자기에게 내라고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 뒤에도 김본부장은 같은 장소에서 이의원을 다시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본부장은 “최의원이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 SK에 대선자금을 현금으로 1백억원을 달라고 하더라는 얘기를 하자 이의원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사람 큰일 날 사람이구만’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총장은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서 관여한 것으로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이총장측은 “구체적 금액을 얘기하지도 않았고 법적으로 인정되는 한도에서 도와달라는 등 일반적 의미에서 도와달라고 한 것”이라면서 “김영일 전 사무총장하고는 사전에 대선자금 모금과 관련해 얘기한 적이 없으며 개인적 친분을 통해 도와달라고 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총장측은 또 “혐의가 있다면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라도 했을 텐데 전혀 연락이 없었다”며 한나라당의 ‘조직적 불법 대선자금 모금 의혹’과는 전혀 무관함을 강조했다. 당시 손회장이나 김본부장은 창구가 최의원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 의외라고 생각했다. 손회장은 “사실 나나 김창근 사장은 한나라당 사무총장 김영일이나 (이상득) 정책위원장 같은 사람을 전부터 잘 알고 친하게 지내왔고, 그들이 한나라당에서 어느 정도 책임있는 당직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런 사람을 선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불법 정치자금을 전혀 면식이 없는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불편했다”고 말했다. 손회장은 김본부장을 통해 한나라당 사무총장에게 전화해 “가급적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다시 전달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측으로부터 “최의원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답변이 왔다. 그리고 손회장은 곧바로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손회장은 “최의원이 경기고 출신이고, 재정 담당이라는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바가 있었다”면서 그 이후로 더 이상 창구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손회장은 순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경기고 출신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SK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2월 1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SK해운에서 나온 돈으로 선물투자한 돈이 비밀창고에 보관돼 왔을 개연성은 있으나 그룹 차원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얘기”라면서 “사실이더라도 SK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그룹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손회장은 검찰조사 말미에 “위법인지 알면서도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준 것은 잘못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SK그룹이 정치권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고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려면 부득이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제도가 개혁돼 앞으로는 돈이 많이 들었던 과거의 정치풍토가 개선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불법 대선자금은 이미 과거에 저지른 불법·위법 행위를 무마하기 위한 로비용 ‘뇌물’이지, 기업들이 미래에 받을지도 모를 불이익 때문에 주는 ‘보험금’일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그동안 짐작만 할 수 있었던 SK그룹측의 계열사 돈 유용을 통한 불법 대선자금 조성 및 비밀창고 운영 행위가 사실로 확인됐다면 3월 12일 있을 주주총회에서 적지 않은 파장과 변화가 있을 것”이라면서 “기업과 정치권간의 이같은 불법 관행을 단절하기 위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당사자들은 억울하게 느낄 수 있지만, 새로운 시스템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사법 처리와 조치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 대선 당시 5대 그룹 공식후원금도 따로 냈다 제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에서 근무했던 박종식 부장이 지난해 11월 6일 검찰에 제출한 자료로 여기에는 한나라당 후원회에서 LG·롯데·삼성·SK·현대자동차 등 5대 그룹으로부터 받은 후원금 내역이 포함돼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LG그룹은 2002년 9월과 11월에 30개 계열사에서 총 30억원, 롯데그룹은 같은 해 5월과 9월에 18개 계열사에서 총 20억원, 삼성그룹은 같은 해 9월과 10월 10개 계열사에서 20억원, SK그룹은 5월과 9월 7개 계열사에서 8억원, 현대자동차는 10월 7개 계열사에서 3억원을 후원금으로 지원했다. SK 사건을 보면 기업들은 이런 공식후원금의 10배가 넘는 액수의 불법 자금을 조성해 정치권에 따로 건넨 것으로 확인된다.

2004.02.19 13:06

12분 소요
정치자금, 시장원리로 풀자

산업 일반

정치자금 문제로 온나라가 들쑤신 듯하다. 급기야 정치권은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것이 부패의 근원이라고 해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까지 들고 나왔다.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 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검찰은 정치자금의 온상(溫床)인 비자금 문제까지 수사의 칼날을 겨냥했다. 이를 위해 재벌 오너와 재무담당자 등 수십 명이 출국금지됐다. 밑바닥까지 끌로 파서 더 이상 정경유착과 부패가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파헤치고, 엄정하게 처벌하겠다는 말이 미덥지 못한 것은 왜일까? 돌이켜보면 ‘정치자금 대형 파동’은 7~8년에 한 번꼴로 있었다. 1988년 11월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은 5공 청문회 때 증인으로 나와 폭탄선언을 했었다. “전두환의 성격이 오죽 무지막지하지 않은가”, “편안히 살기 위해 돈을 냈다”, “장래성 있는 국회의원에게 돈을 줘왔다”고 발언한 것이다. 온나라가 들썩들썩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7년 후인 1995년 11월 검찰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는 혐의로 30대 그룹 총수들을 소환조사했다. 현대 정주영 ·삼성 이건희 ·LG 구자경 ·대우 김우중 ·SK 최종현 회장 등 쟁쟁한 오너들이 불려갔고 이 가운데 8명은 법정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런 파동이 재발하지 않도록 발본색원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요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담이 무색하게 정치자금 태풍이 또다시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수사를 지켜보면서 참담함이 앞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사당국은 늘 “이번에야말로 뿌리뽑겠다”고 말하지만 정치자금은 언제나 뿌리뽑히지 않았다. 정부는 매번 “기업에 대한 조사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강조하지만 ‘진짜’는 한 번도 없었다. 기업은 늘 “합법적인 정치자금만 줬다”고 하지만 언제나 ‘불법자금’이 훨씬 더 많았다. 정당과 국회의원은 “우리는 받은 적 없다”고 강조하지만 검찰에 소환되면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리곤 정부와 정당은 ‘정치개혁’을 외친다. 고비용 정치구조가 문제라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자금법이 개정되고, 정치 ·선거제도도 조금씩 바뀌지만 기본적으로 ‘돈 드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젠 절대로 불법적인 정치자금은 안 주겠다”고 강조하면서 경영진의 세대교체와 투자 확대를 발표하지만 그때뿐이다. 정치자금을 둘러싼 정치권과 기업 간 먹이사슬을 끊을 묘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더 큰 비극이다. 고비용 정치구조가 근본문제긴 하지만, 돈이 전혀 안 드는 정치제도란 있을 수 없다.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당락(當落)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에 ‘돈을 남보다 많이 써 당선되고자 하는’ 유인도 바뀌지 않는 것이다. 기업도 이젠 많이 커져서 정부와 정치권에서 받을 수 있는 당근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에게 밉보여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정치자금을 제공할 인센티브는 분명히 있다. 게다가 모든 기업이 다 큰 것은 아니다.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지만 그래도 정부와 정치권은 줄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작은 기업들이 크기 위해서는 정치자금을 낼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정치자금을 주고 받는 측의 이해관계가 이처럼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정치자금 시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백약이 무효’다. ◇ 기업이 정치자금을 내는 방식 =“당시 골프를 치고 있었어요. 갑자기 골프장 직원이 허겁지겁 달려와 전화가 왔다며 빨리 받으라고 해요. 그래서 전화를 받으니 대검찰청이었어요. 조사할 게 있으니 빨리 들어오라는 거였어요.”95년 11월의 일이다. 이 무렵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걷어 이 돈을 각 정당에 갖다주는 일을 담당했던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전경련으로 돌아와 장부를 챙겨 검찰청 담당 검사실로 갔더니 SK 최종현 회장이 앉아 있는 거에요(최 회장은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다). 앉자마자 누구에게 얼마를 갖다 줬느냐, 당시 기록을 내놔라 등 질문과 요구가 쏟아지더군요. 아는 것은 대답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답변했더니 나가 있으라더군요. 대기실로 갔더니 손길승 회장 등 SK 고위층들이 진술서를 쓰고 있었어요.” 이후 그는 한두 차례 더 검찰에 불려갔지만, 기소되지는 않았다. 최 회장과 손 회장도 기소되지 않았다. 정당으로부터 영수증을 받은 ‘합법적인 정치자금’이란 이유에서였다. 93년 김영삼(YS)정부가 출범하면서 YS가 “재임 중 정치자금은 한 푼도 안 받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 기업들이 정당에 내는 돈은 이런 방식이었다. “각 정당에서 ‘얼마를 달라’고 전화가 온다. 그러면 각 기업에 할당해 돈을 모았다. YS ·김대중 ·김종필 총재 등을 여러 차례 만났었다. 그들은 항상 1, 2명의 정치인들을 대동했다. 영수증도 그 자리에서 만들어줬다.”앞의 관계자 말이다. 전경련 파워가 지금보다 훨씬 셌던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전경련은 지난 11월 5일 ‘정치자금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 점을 강조했다. “기업이 직접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토록 하자”면서 “중앙선관위나 경제단체를 통해 정치자금을 제공하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자금 외에 각 기업이 개별적으로 갖다주는 돈도 있었다. 규모도 더 컸고, 영수증 없이 주는 ‘불법 정치자금’이었다. 그만큼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는 ‘일급 비밀’이었다. 그러나 고 정주영 회장이 92년 1월 정치 참여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나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정치자금을 냈다”고 폭로해 일부나마 진실이 드러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나니 해마다 연말이 되면 양로원 ·고아원 등에 어려운 사람이 많아 돈이 필요하더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돈을 달라는 얘기는 없었지만 통치자로서 그런 돈이 필요하겠구나 싶어 돈을 줬다. 처음엔 5억원, 나중엔 10억원을 주고, 마지막엔 20억원을 줬다.” 정 회장의 말이다. 그는 또 “전두환 때도 추석에 20억원, 연말에 30억원 규모로 줬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라면 전두환 집권 7년간 정 회장은 350억원을 줬다는 얘기다. “노태우 때는 취임 첫 해엔 전 대통령 때와 같이 줬다. 그러나 좀 부족한 듯해 다음엔 50억원, 90년에 마지막으로 100억원을 줬다.” 정 회장은 노태우 시절 총 200억원을 줬다는 얘기다. 당시 정치자금을 내는 방식은 대통령에게는 각 그룹 오너가 개별적으로 ‘음성적’으로 갖다 주고, 정당에 내는 후원금은 전경련이 중간통로 역할을 하는 이중구조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YS정부 출범 후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안 받겠다고 하니, 전경련도 통로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정당과 기업들이 1대1로 ‘거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히 불법과 합법자금이 서로 섞이기 시작했다. 영수증을 받고 안 받고에 따라 합법이다, 불법이다가 가려지는 셈이다. ◇ 기업들이 정치자금을 내는 이유 =“SK그룹이 계열사를 통틀어 연간 정치자금으로 낼 수 있는 한도액은 25억원 정도다. DJ정부 시절엔 여당인 민주당이 한도를 알고 연초가 되면 먼저 다 가져갔다. 야당인 한나라당에는 거의 못 줬다. 지난해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무렵엔 이상수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찾아와 ‘당신들이 민주당에 낸 돈은 그들이 다 쓰고 우리(노 후보 측)는 한 푼도 못 쓰니 민주당에 준 만큼 달라’고 해 할 수 없이 25억원을 만들어 줬다.” 손길승 SK 회장이 최근 재계 고위관계자들에게 털어놓은 얘기다. “다른 그룹은 정치자금을 여당 60%, 야당 40%로 나눠줬는데 우리는 그러지 않았던 것이 불찰이었다. 그러나 알고서 몽땅 달라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손 회장은 한나라당에 100억원의 대선자금을 준 배경도 설명했다. “민주당에 주느라 한 푼도 못 준 한나라당이 어떻게 알았는지 국회의원을 보냈다. 그는 형평성 얘기를 하면서 ‘왜 우리에겐 안 주느냐’며 정치자금을 요청했다. 당시 나는 이회창 후보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차에 이 말을 듣자 ‘아차’ 싶어 그 동안 못 준 돈을 합쳐 100억원을 줬다.” 정치권이 달라고 하니,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고 단지 밉보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보험료’조로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작고한 정주영 회장의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처음엔 ‘통치자금이 필요하겠거니’ 싶어 줬지만, 나중엔 무지막지한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냈다는 의미다. 재계의 얘기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정부가 금융과 차관 등 돈줄은 물론 각종 사업 인허가권도 쥐고 있던 예전에야 기업에 줄 게 많았다. ‘정경유착’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됐던 시기도 60년대 후반 ‘차관경제 시대’ 때였다. 국내 자금이 태부족이던 시절 경제를 개발하고 사업을 확장하려면 외국 돈에 의존해야 했다. 정부 인가도 받아야 하고, 지급보증도 필요하고 차관을 들여오려면 정부에 유착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대신 정부 ·여당은 허가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사업의 타당성이나 상환능력은 뒷전이었다. 당시 외자도입 심의위원을 지냈던 한 인사는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화섬공장을 건설하는 데 필요하다며 외자도입 인가를 신청한 기업이 두 군데 있었다. 한 기업은 280만 달러, 다른 기업은 800만 달러를 요청했다. 시설용량이나 조건에는 별 차이가 없어 280만 달러를 신청한 기업에 인가가 떨어져야 하는데 실제론 800만 달러 기업에 인가가 떨어졌다. 800만 달러를 신청한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더 많이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인 듯했다.”(김입삼 著, ‘초근목피에서 선진국으로의 증언’에서)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고 재계에선 주장한다. 전경련은 지난 10월 30일 회장단 간담회에서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고도성장 과정에서 잉태된 기업의 부실처리와 고비용 정치구조로 인해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대가성 자금은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95년 말 30대 재벌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을 때도 같은 주장을 했다. 당시 전경련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과거의 관행이었다’고 강조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권위에 눌려 돈을 줬으며, 자신들도 피해자란 지적이었다. 40년 전에도 재계는 똑같은 주장을 했다. 당시 전경련 2대 회장이었던 이정림 개풍그룹 회장은 “경제인은 돈을 낼 생각이 있다”면서 “그러나 돈을 주고서도 뺨 맞고 교도소에 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보험료’뿐일까. 전두환 씨는 정주영 회장과 전혀 다른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퇴임하기 직전인 87년 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이 되니 재벌들이 돈을 막 싸가지고 오는데 너무나 놀랐다. 심지어 100억원을 가져왔다. 그래서 나는 ‘당신네 기업이 지금 어려운데 어떻게 이런 돈을 가져오느냐’고 말했던 적도 있었다.” 95년 검찰은 오너들을 조사한 후 ‘뇌물공여죄’를 걸어 기소했다. 입찰에서 낙찰받기 위해, 땅을 수의계약으로 사들이기 위해, 형제간 재산분쟁 소문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리고 환경오염에 따른 사회적 파문을 줄이기 위해 정치자금을 냈다는 혐의였다. 이번 수사에서도 기업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이런 ‘과거’ 때문이다. ◇ 과거보다는 한결 나아졌다 =“재임 기간 중 주로 기업인들로부터 성금을 받아 5,000억원을 조성했다. 이 중 대부분을 쓰고, 남은 통치자금은 퇴임 당시 1,700억원이었다.” 정치자금 파문이 거세게 일자 YS정부 시절인 95년 10월 하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기업들이 노태우 씨에게 준 돈은 이처럼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대기업들은 추석과 연말 등 1년에 두 차례 각각 20억~30억원씩 줬다. 정태수 한보 전 회장은 90년 당시 서울 수서택지를 수의계약으로 특혜 분양해달라면서 100억원을, 김우중 대우 회장은 건설공사를 수주한 답례로 역시 100억원을 줬다고 검찰은 밝혔다. 노태우 씨도 대통령 시절, 각 기업에 전화를 걸어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자금을 안 내거나 잘못 줬다는 이유로 망한 그룹들도 과거엔 많았다. 10대 재벌 중 하나였던 국제그룹이 80년대, 전남에 본거지를 두면서 진로와 함께 소주업계 1위를 다퉜던 삼학주조가 70년대, 한때 10대 재벌로 군림했던 동립산업과 한국생사그룹이 모두 60년대 망한 것은 정치자금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우선 돈의 액수가 줄어들었다. 1995년에 밝혀진 돈은 대통령에게만 준 돈이다. 정당이나 국회의원에게 준 돈은 제외된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DJ정부 시절 5년간 정치권에 가장 돈을 많이 준 기업은 SK인데 모두 250억원 정도다.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많이 준 액수였다. 게다가 대통령에게 직접 준 돈은 없는 셈이다. 수사가 진행 중이라 단정하긴 힘들지만, YS나 DJ ·노무현 대통령이 기업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은 것은 아니다. 전두환 ·노태우씨처럼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지도 않은 것 같다. 지난 10년 사이 돈을 안 냈다고 해서 망했다고 주장하는 기업도 없다. “보험성인지 대가성인지는 기업 입장에선 중요하지 않다. 다만 정치권에서 달라고 하면 안 줄 수 없는 우리의 정치 ·사회구조가 문제다.” 재계 고위관계자의 항변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 전통은 여전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사실 국내 정치현실상 돈을 안 쓰고는 정치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돈을 많이 보유한 곳은 기업밖에 없다. 그러니 정치권은 기업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고, 기업은 안 줄 수가 없다는 얘기다. 다른 재계 고위관계자는 “전경련에서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을 신임 회장대행으로 선출한 것은 정말 잘했다”며 “전경련이 이른바 ‘빅3’ 그룹이나 10대 재벌그룹의 오너 가운데에서 회장을 뽑았다면 ‘제2, 제3의 손길승 회장’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10대 그룹치고 아마 정치자금에 연루되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재계 관계자들은 어느 그룹이든 ‘아킬레스 건’을 한 가지 이상 갖고 있지 않은 그룹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속 과정에서의 불법성이나 오너 ·그룹 간 부당내부거래, 비자금 조성과 사용과정에서의 불법성 등이 약점이라고 지적한다. 검찰이 이런 부분에 대해 본격적으로 손을 댄다면 정치자금 이상의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근 수사당국이 이런 부분에 대해 ‘수사 착수 가능성’을 흘리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결국 정치자금 파문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정치자금 시장을 없애는 길밖에 없다. 정치자금의 수요자인 정치인 또는 공급자인 기업인 가운데 어느 하나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길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없는 나라는 상상할 수가 없다. 게다가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정치자금이 아니라 ‘부정하고 불법적인’ 정치자금이다. 오히려 시장의 규모를 줄이는 게 현재의 여건상 최선책이다. 정치인의 자금 수요를 줄이는 게 가장 급선무다. 선거자금을 국가에서 몽땅 대주는 완전 선거공영제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제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대신 각 정당이 득표 수에 따라 미리 후보로 뽑아놓은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자는 얘기다.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이는 것도 생각해봄 직하다. 숫자가 줄면 정치자금 규모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정치자금 시장을 유리알처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얼마가 들든 좋다. 한도를 지금보다 더 올리더라도 낼 수 있다. 그러나 철저히 투명하게 하자. 영수증은 얼마가 되더라도 다 끊어주고, 받는 즉시 이를 인터넷이든 신문이든 공시하도록 하자”고 말한다. 최소한 돈주고 뺨맞고 교도소 가는 일은 없도록 해달라는 얘기다. 기업처럼 정당에도 감사위원회 등을 두고, 공인회계사의 감사를 받도록 하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도 부정한 정치자금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정당보다 훨씬 투명하고 지배구조가 잘 짜여진 기업에서도 ‘10억원 투자해 100억원을 벌 수 있다면 나중에 어찌되더라도 당장은 ‘부정과 불법’을 저지르기 쉽다. 정당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여전히 기업의 정치헌금 문제로 정 ·재계가 고민하고 있다. 과거보다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것, 이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자위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2003.12.0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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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엇갈리는 한국 이라크 전투병 파병 아직도 갈지자 걸음 이라크 사태에 다른 나라 군대를 끌어들이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이 계속 뜻밖의 암초에 부닥치고 있다. 터키 정부는 1만명의 병력을 파견하는데 원칙적으로 동의했지만, 터키측의 저의를 의심하는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는 터키군 파병을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 정부마저 워싱턴에 혼란스런 신호를 보내고 있다. 몇주 전만 해도 한국 정부는 수천명 규모의 전투병력을 파병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런 언질(commitment)은 이제 덜 확고해 보이고, 파병 연기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도 나름대로의 요구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군 파병의 대가로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정책노선을 완화하기를 바란다는 점을 거듭 시사해왔다. 둘째, 한국 정부가 이라크 모술(한국군이 배치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파견한 공식 조사단의 활동은 기대에 어긋났던 것으로 지난주 밝혀졌다. 조사단원이었던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는 현지의 미군 당국이 조사단에게 보여준 것들로는 불충분했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조사단이 모술의 지상에서 불과 4시간만 활동했다며 이는 “모든 것을 직접 관찰하기에는 충분치 못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2차 조사단 파견을 원하고 있고, 한국의 시민단체들도 조사단에 포함되기를 원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측근들의 부패 스캔들로 심화된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급락은 파병의 최대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주 한국 정부 각료진과 청와대 비서진은 전원 사표를 제출했고(노대통령은 이를 반려했다), 계속 떨어지는 지지도는 노대통령의 파병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소장파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파병 반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청와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한국인 교수에 따르면 청와대 국가안보팀 내부에서 노대통령의 정치 관련 보좌관들(파병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노대통령이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본다)과 국방·외교 당국자들(파병을 대 미국 군사관계를 강화할 황금기회로 본다) 사이에서 큰 논쟁이 벌어졌다. 노대통령이 토론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입장을 빨리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아직 입장을 결정하지 않았다는 한가지 징후가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이번주 방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 직후로 예정됐던 한국 방문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연기의 공식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분석가들은 직설적인 럼즈펠드 장관이 파병 문제 협상차 한국을 방문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방한을 연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많은 관측통들은 그가 한국에 올 경우 파병의 명분이 훼손될 것이라고 말한다. 부시 행정부의 주도적인 매파 인사인 럼즈펠드는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평판이 매우 나쁘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자신의 지지도에 또 한차례의 타격이 가해지는 것은 노대통령이 가장 바라지 않는 일이다. GEORGE WEHRFRITZ and B. J. LEE SK 비자금 사건 2002년 대선자금 뇌관될까 2002년 대선자금의 뇌관을 건드린 것 같은 조짐이다. 지난해 대선 직전 SK그룹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각각 1백억원과 25억원의 비자금을 건넨 것으로 10월 11일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SK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안대희 검사장)는 SK그룹이 대선 직전 한나라당 재정위원장이었던 최돈웅 의원에게 현금 1백억원을 건넨 사실을 확인했다. SK측은 또 대선 당시 민주당 선대위 총무본부장이던 이상수 통합신당 의원에겐 25억원을 건넨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검찰 조사가 사실이라면 대선 직전 누가 대통령이 될지 예측불허였던 때 SK는 노무현 후보의 민주당보다 이회창 후보의 한나라당쪽에 4배 많은 ‘보험금’을 낸 셈이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최의원은 대선 전 SK그룹에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고, SK그룹은 손길승 회장과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 등이 협의해 비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분식회계 등을 통해 마련한 돈을 사과상자에 2억∼4억원씩 현찰로 담아 봉고차 등으로 최의원 집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최의원은 이 돈을 집에 보관하며 대선자금과 사조직 관리비 등의 명목으로 썼다는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연 최의원이 국내 대기업 중 SK에서만 돈을 전달받았겠느냐는 문제로까지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최의원은 이같은 혐의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중앙당 후원회를 앞두고 전화를 걸 만한 1백개 정도의 기업체 명단이 내려와 전화를 돌려 후원금을 내달라고 했다. 그 가운데 SK가 들어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는 강원도에 있을 때라 20∼30군데밖에 전화를 못했다”고 해명했다. 개인 유용 혐의에 대해서 그는 “법인을 운영하면서도 공사를 엄격히 구분해 관리해 왔다. 있지도 않은 일을 두고 유용했다고 하는 것이 제일 곤혹스럽다”고 답했다. 한편 이상수 의원은 SK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이의원은 “SK로부터 모두 25억원을 받았으나 전부 영수증처리했다”며 정당한 정치자금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건으로 여야는 모두 지난 대선자금의 투명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성원 노사모 ‘노짱’ 구하기에 나섰다 “긴급 제안! 전국 노사모가 한자리에 모입시다”, “노사모들이여! 다시 결집하자!”, “노사모여! 다시 돌아가자! 그 뜨거웠던 12월 19일로!” 노무현 대통령이 충격적인 재신임 선언을 한 10월 10일부터 11일 아침까지 노사모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구호들이다. 노사모 사이트는 다시 대선을 치르는 분위기에 돌입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노사모 재결집을 호소하고, 컴백을 선언하는 회원들로 가득찼다. 마치 논에서 갑자기 날아오르는 메뚜기 떼처럼 순식간에 게시판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 대선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정몽준 의원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하자 비밀 결사대처럼 밤새 표 결집을 호소하던 노사모의 모습이 재연되는 분위기다. 한 회원은 “장롱 속에 있던 노사모 티셔츠와 노랑손수건을 다시 꺼내 펼쳐보면서 전의를 다진다”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위기에 찬 노대통령을 구하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회원은 “밤새 한숨도 못자고 뒤척였는데, 아침 출근길 가슴 한켠에서 울컥하며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면서 “지금까지 주변인으로 살아왔으나 이제부터는 다시 적극적으로 노대통령을 돕겠다”고 말했다. 노사모는 데일리 논평을 통해 “그동안의 정치 현상 등에 비춰봤을 때 우리는 대통령의 결정을 십분 이해한다”면서 “노대통령의 대국민 재신임 평가 요구를 전폭적으로 환영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노대통령은 내각 총사퇴 결의를 반려하며 재신임 돌파 의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그렇다 해도 노대통령의 최근 지지도가 16.5%까지 하락한 시점에서 노사모를 비롯한 지지자들이 대선 전처럼 다시 결집해 이 위기를 돌파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다. 김은선

2003.10.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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