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타는 제작사 느긋한 투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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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산업은 위기 정도가 아니라 대공황 상태다.” “몇몇 영화를 빼곤 수익성이 떨어져 투자가 급격히 위축됐다.” 한국 영화산업 관계자들이 토로한 한국 영화산업의 현주소다. 지난 6월 23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에서 열린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 진단 및 미래 전망 대토론회’는 이런 위기의식을 잘 보여줬다. 이날 축사를 맡은 강한섭 위원장은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상황은 수익성 악화, 부가시장 붕괴, 투자 부진, 해외시장 위축 등으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오지철 관광공사 사장도 “무분별한 제작으로 거품이 끼면서 제작비가 올라 몇몇 영화를 제외하곤 수익성이 떨어지는 결과가 발생했다”며 “결국 급격한 투자 위축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수렁에 빠진 한국 영화산업 = 도대체 현재 상황이 어떻기에 대공황 얘기까지 나오는 걸까.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를 보면 몇 년 사이 한국 영화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상반기 기준으로 2006년 59.5%였다가 2007년 47.3%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는 37.6%로 급감했다. 편당 투자수익률은 2001년 41.5%에서 2006년에는 마이너스 24.5%로 추락했다. 특히 올 상반기 수익률은 마이너스 43%대로 사상 최악이었다. 이러다 보니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영화의 비율도 2001년 30%대에서 2006년 10%대로 크게 줄었다. 개봉작 수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한국 영화 수는 49편(지난해 이월작, 단편 영화, 영화제 상영작 제외)이었다. 2006년에는 48편, 2007년엔 50편이었다. 그러나 올해 개봉작 가운데는 제작을 마치고도 상영 시기를 잡지 못해 1~2년간 창고에 묵혀 있던 작품이 대거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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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 대만이 합작해 만든 영화 <적벽대전> 의 촬영장 모습.-(e)Photo--> 적벽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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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본 한국 영화산업
1 억5879만 명 전국 관람객 수. 2001년 8936만 명에서 거의 곱절로 늘었다. 그러나 한국 영화 점유율은 50.8%로 2003년 이후 줄곧 내리막이다. 1인당 관람 횟수는 3.3회로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112 편 한국 영화 개봉편수. 2001년 52편의 배로 늘었다. 2006년 108편 이후 세자릿수 개봉 기록을 이어갔다. 외화 개봉편수는 280편이었다. 37 억2000만원 전제 124편의 순수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 등을 더한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 한국 영화의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43%로 2006년의 마이너스 22.9%보다 악화됐다.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비는 대략 1000억원 선이다. 2440 만 달러 한국 영화의 수출액. 2005년 7600만 달러로 정점에 이른 후 2006년부터 줄어들고 있다. 다만 수출 때 받는 최소 보장액보다 추가 수익에 대한 지분을 많이 확보하는 방식으로 계약 조건이 바뀌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
위기 속 희비 엇갈려 = 한국 영화계가 위기라지만 투자-제작-(배급)-상영으로 이어지는 가치 사슬의 각 단계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분명히 다르다. 먼저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어야 굴러가는 제작사는 제작편수 급감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국내 간판 제작사인 싸이더스의 김미희 대표는 요즘 달라진 영화판 분위기를 절감한다. 제작비 90억원을 들여 <불꽃처럼 나비처럼> 이란 작품을 만들고 있는 김 대표는 “예년 같으면 한두 달 만에 투자를 받았겠지만 이번에는 여섯 달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불과 일 년 전에는 세트 촬영장을 몇 달 전에 예약하고 배우와 스태프의 스케줄을 챙기느라 난리였는데 요즘은 스태프 절반이 놀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유휴 인력 가운데 방송계로 자리를 옮기거나 아예 영화판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적 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올해 제작편수가 예년의 30% 정도로 줄면서 제작사는 그만큼 구조조정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올 들어 시네마서비스는 직원에게 거취 결정을 권고했고, 싸이더스는 인원을 감축했다. 오리온 계열의 영화 투자 배급사 쇼박스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지난해 호주계 금융회사 매쿼리에 멀티 플렉스 극장인 메가박스를 매각한 데 이어 직원을 줄이고 있다. 쇼박스 관계자는 “이미 여러 명이 회사를 그만뒀다”고 밝혔다. 벤처 캐피털을 비롯한 순수 투자자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편이다. 입맛에 맞는 작품을 고를 여지가 많아진데다 제작비가 전반적으로 줄어 예년보다 적은 돈을 들여도 수익을 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대형 투자 배급사도 순수 투자자와 비슷한 입장이다. 꾸준히 영화에 투자해 온 한 창투사의 대표는 “얼마 전 투자 때 지난해보다 7억원가량 돈을 덜 들였는데도 예년과 비슷한 이익을 남겼다”고 전했다. 박현태 소빅창투 대표는 “위기가 기회라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올해 수익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화계의 구조조정이 언제 끝날지 불확실한데다 영화 펀드로 돈을 번 적이 별로 없어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도 여전하다”고 전했다. 상영 쪽이 가장 느긋한 편이다. 한국 영화의 빈자리를 메울 외국 영화라는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관객 수만 급감하지 않으면 영화 관람료의 50%와 식·음료 판매비 등 고정 수입이 있어 크게 걱정할 일이 없다. 롯데시네마 임성규 과장은 “1분기에 좀 어려웠지만 2분기에는 외화 흥행작이 많아 괜찮았다”며 “3분기에는 성수기라 실적이 더욱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멀티 플렉스 업계 대표 주자인 CJ CGV의 실적도 호조세다. 키움증권 손윤경 연구원은 “CJ CGV의 2분기 매출액이 867억원, 영업이익이 104억원으로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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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탈출 해법은 = 영화계가 공멸 위기감을 공감하면서 자신의 몸값을 깎는데 인색했던 A급 배우들도 개런티를 덜 받거나 흥행에 따라 받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예컨대 예전에 5억원을 받았다면 3억원만 받거나 2억원은 흥행에 성공해 이익이 나면 따로 받는 식이다. 김미희 싸이더스 대표는 “방송 쪽에서 돈을 많이 주기 때문에 고통 분담하는 A급 배우가 많지 않지만 인식 자체는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계가 꼬인 게 투자 쪽의 거품 탓이 컸던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투자 단계에서 판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현우 보스톤창투 대표는 “펀드 규모를 키워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대작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야 판권이나 가지려고 만드나 마나 하는 영화에 돈을 낭비하는 일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충무로에서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과감하게 손을 잡는 프로젝트도 늘고 있다. 현재 상영 중인 <적벽대전> 은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이 힘을 모은 범아시아적 프로젝트다. 쇼박스는 순수 제작비 800억원이 들어간 이 프로젝트에 지분 10%를 가지고 있다. 쇼박스의 박진위 팀장은 “과거에는 한국의 연출력, 중국의 촬영 공간, 일본의 음악이 뭉치고 어느 나라가 주도하는 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삼국지라는 콘텐트를 공유하는 프로젝트 개념으로 모였고 공동 투자 자본의 규모도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게 커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예술·작가주의식 작품에 흥행 코드를 불어넣은 저예산 영화로 틈새 장르를 개척하기도 한다. 한국 영화는 식상하다는 편견을 깨서 관객의 발길을 돌리려는 시도다. 김미희 싸이더스 대표는 “아이디어가 좋은 5억~7억원짜리 영화 4편을 만들고 있다”며 “일본 쪽과도 젊은 감독의 재치가 돋보이는 10억~15억원대 작품을 공동 투자·제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티켓 값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현태 소빅창투 시장은 “제작 쪽에서는 거품이 빠지고 있어 원가가 줄었지만 영화 티켓 값은 물가 상승을 이유로 거의 7년째 묶여 있다”고 말했다. 부가판권 시장을 키우거나 불법 다운로드 시장을 없애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매출을 늘리려면 영화 티켓 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SK증권 이희정 연구원은 영화 제작과 상영 시장의 수익성이 악화됐고 2000년 이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상 분위기는 조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티켓 값의 3%를 영화발전기금 등으로 챙기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소 관계자는 “4기 위원회가 6월 말에 출범했기 때문에 새 사업은 아직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한국 멀티 플렉스 해외로 국내 ‘멀티 플렉스 3총사’인 CJ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는 해외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2006년 10월 중국 상하이(上海)에 상잉(上影)CGV를 개관한 CJ CGV는 국내 브랜드를 내건 해외 진출 1호다. 상하이에서 가장 번화한 다닝(大寧)국제상업광장에 들어선 중국 CGV 1호점에는 6개의 스크린이 있다. 1000석 규모인 이 극장은 중국에서 최고 등급인 5성급 영화관으로 자리 잡았다. CJ CGV 측은 하반기에 영화 본고장인 미국 할리우드 부근 코리아타운에 멀티 플렉스 극장 문을 열 계획이다. 메가박스는 7월 19일에 베이징(北京) 산리툰(三里屯)에 스크린 8개, 1700석 규모의 메가박스 2호점을 냈다. 메가박스는 지난해 7월에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중관춘(中關村)에서 메가박스 1호점을 선보였다. 메가박스 측은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올해 영화 관객 수가 지난해 31만 명보다 크게 늘어난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메가박스가 베이징에 거점을 마련한 건 베이징 올림픽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쇼박스의 박진위 팀장은 “오리온의 중국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데다 국내 스크린 수도 포화 상태에 가깝기 때문에 중국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메가박스 측은 장기적으로 중국 전역에 진출할 계획이다. 롯데시네마는 5월에 베트남의 호치민과 다낭에서 한국인이 경영하던 영화관을 인수했다. 또 올해 말에는 호치민에 들어서는 롯데마트 안에 영화관을 만들 예정이다. 롯데시네마 임성규 과장은 “국내 시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익 다변화 목적에서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며 “백화점, 마트 쪽에서 활발하게 나가고 있는 신흥경제 지역에 같이 들어가는 형태로 해외 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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