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glish Wiz] “가장 두려워하는 일에 몸을 던져라”
- [The English Wiz] “가장 두려워하는 일에 몸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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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라디오 DJ, 연극 배우, 국제회의 통역사,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배유정(45)씨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흔히 방송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본업’은 국제회의 통역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주최한 국제경제자문단(SIBAC) 회의 때였다. 기조연설을 했던 영국의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경과 뉴스위크 한국판의 인터뷰를 그녀가 통역했다.
방송이나 무대 위 모습이 아닌 가까이에서 만난 ‘전문 통역사 배유정’은 조금 생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프로’였다. 갑작스레 회견이 결정됐고 시간도 빠듯해 모두 마음이 급했지만 차분하게 자리 배치부터 해 나갔다.
로저스 경이 시간이 촉박하다고 걱정하자 괜찮다며 “I run a tight ship”이라고 답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다’란 뜻이었다. 이어진 회견에서 그의 통역은 과연 깔끔함 그 자체였다.
6개월여가 지나 다시 만난 배씨는 ‘영어의 달인’이란 호칭이 영 어색하다고 했다. 영어도 결국 의사소통에 필요한 도구일 뿐인데 확대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또 그는 외교관이었던 부친을 따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내 ‘토종’ 영어의 달인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영어가 배씨의 주요 경쟁력이란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사람들이 ‘외국에서 살다 왔으니 당연히 영어를 잘하겠지’라고 말할 때마다 솔직히 화가 난다”고 배씨는 말했다.
“제 모국어는 한국어입니다. 영어의 기초 없이 로마의 국제학교에 들어가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배씨가 지금 전문 통역사로 인정 받고 대규모 국제행사를 이끌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영어 실력을 쌓으려 노력했기에 가능했다. 외국에서 몇 년 산다고 영어실력이 거저 얻어지지는 않는다.
동양인이 드물었던 1970년대 유럽의 가톨릭 학교에서 13세의 어린 이방인이 느꼈던 설움은 대단했다. “전학 첫날 선생님이 뭐라고 하자 애들이 우르르 어딘가로 가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도서관에서 제각기 책을 찾아 숙제를 하는데 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있었지요. 아이들은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저를 쳐다봤고요.”
이때 느꼈던 심리적 충격은 배씨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친구를 사귈 수도 없으니 점점 더 안으로 침잠하고 내성적으로 변해 갔어요.” 서툰 영어로 말하기가 부끄럽기만 했다. 한국에서는 언변이 좋은 우등생으로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다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으니 더욱 위축됐다.
“처음 6개월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변화의 계기는 담임 선생님이었던 원장 수녀님의 호통이었다. “합창단에 들어갔는데 담당 선생님이 제게 독창을 맡기는 등 신경을 많이 써주셨어요. 하지만 저는 ‘동정은 필요 없다’며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였지요. 그때 원장 수녀님이 ‘태도가 좋지 않다’며 호되게 야단을 치셨어요. 마음이 비뚤어져서 좋은 기회도 날려버린다고요. 사실 그 말씀도 못 알아들어서 나중에 한국인 친구가 귀띔해 줬지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 ![]() (위 왼쪽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이탈리아행 비행기에서, 1998년 SBS ‘출발 모닝와이드’ MC 시절, 1992년 방한한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의 통역을 맡았을 때. |
그 뒤부터 학교에 적응하려 노력했고 서서히 말귀가 트이기 시작했다. 배씨가 특히 효과를 본 공부 방법은 문장 구조 암기와 소설책 읽기였다. 로마에 도착한 지 1년이 지난 여름방학에 배씨의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에게 방학 과제를 내 달라고 부탁했다. 고심하던 선생님은 영어 문장 암기를 권했다.
“동일한 구조의 문장을 수십 번 반복 필기해 외우는 방식이었어요. 또 특정 문장 구조 예문의 빈칸을 채우면서 단어 뜻과 쓰임새를 익히기도 했지요. 결국 문장이 통째로 외워지더라고요.” 방학이 끝나고 8학년(중학교 2학년)이 되자 영문법 수업이 생겼다. “문장을 도해해 품사를 구별하는 수업이었는데 저는 방학 내내 그것만 했으니 갑자기 제가 반에서 영문법을 가장 잘 아는 학생이 됐어요.”
자신감이 생기니 학교 생활도 재미있어졌다. 소설책은 공부라기보다 취미로 읽었다. “어렸을 때부터 밖에 나가 놀기보다 독서를 좋아했어요. 로마에 가니 한국 책은 없고 영어는 잘 모르니까 쉬운 그림책부터 읽기 시작했지요. 한국에서 읽었던 오즈의 마법사가 동화책으로 있기에 반가워서 집었어요. 그림 위주로 넘겨보다가 계속 나오는 단어들만 가끔 사전을 찾아봤어요. 그러다가 영문법을 깨우치고는 수준을 조금 높여 ‘낸시 드루’라는 유명한 소녀탐정 시리즈물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핵심은 모르는 단어를 일일이 찾아보지 말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큰 줄거리만 쫓아가는 것이라고 배씨는 충고했다. 세부 내용까지 다 이해하려면 얼마 읽기도 전에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낸시 드루’는 항상 ‘범인이 누굴까(whodunit)’가 화두였지요. 그것만 따라가니까 금세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또 특정 작가의 시리즈물을 계속 보다 보면 작가가 좋아하는 어휘나 표현이 반복해 등장한다. 따라서 여러 맥락에서 같은 표현을 접하다 보면 사전을 찾지 않아도 뜻을 알게 된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라고 배씨는 덧붙였다. 로마에서 3년을 보내고 귀국해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연세대 심리학과)을 마친 뒤 배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 진학했다. 능동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스스로 조직생활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가능한 통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배씨는 말했다. 관료주의적인 기업 문화를 피하려는 도피처로 통역사란 직업을 택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원래 저는 낯선 이들과 어울리거나 남 앞에 서기를 굉장히 불편해 하는 성격이에요. 제 자신의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일부러 사회성을 기르려고 스스로 가장 두려워하는 일에 뛰어들었지요.”
통역 초년병 시절에는 위경련 약을 상비약으로 갖고 다녔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통역을 마치면 극심한 위 통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순차 통역을 할 때는 연사와 연단에 나란히 서야 하죠. 짧은 시간 안에 연사의 얘기를 내 이야기처럼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굉장했어요.”
배유정씨는 통역 외에도 연극배우, 라디오 DJ, 방송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하나같이 대중 앞에 서는 일이란 공통점이 있다. “저도 제가 왜 그렇게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에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들었는지 신기해요. 하지만 스스로 도전 과제를 부여하고 계속 그런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키다 보니 조금씩 편해졌어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편안함은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한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배씨는 후배들에게도 사회성을 항상 강조한다. “언어적 능력이나 전문기술도 중요하지만 사회성이 결여되면 그 모두가 빛을 발하지 못해요. 나 혼자 금은보화를 끌어안고 있어도 남에게 알리지 못하면 소용 없죠.”
분병한 건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때까지는 긴장감을 적절히 감춰야 한다. 특히 통역사는 긴장해서 허둥대면 절대 대중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영어 표현 중 ‘Fake it ’til you make it(안 될 때는 되는 척하라)’이란 말이 있어요. 저도 속에서는 천불이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무던히 애썼죠.”
배유정씨는 기념 외신 기자회견 때 제가 브리핑 통역을 맡고 박진 당시 보좌관이 질의응답 통역을 맡았는데 대통령 통역 보좌를 저런 분이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배씨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출신의 박남식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영어 달인’으로 추천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말씀할 때에도 운율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
통역 초보 시절에는 어이없는 실수도 했다. “제가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은퇴시켜 버렸잖아요”라며 배씨는 웃음을 터뜨렸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난 직후 한 행사장에서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을 영어로 소개하는데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이 도착하셨습니다”라고 해버렸다.
다행히 옆에 있던 조지 슐츠 당시 미 국무장관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아직 현역이다”고 귀띔해 줘서 황급히 고쳐 말했다. “국제행사장에서는 국가원수나 고위관리 등 귀빈의 의전이 매우 중요한데 큰 결례를 한 셈이었죠.” 하지만 값진 경험도 많았다. 통번역대학원 졸업 직후 처음 시작한 일이 외신기자들의 취재 통역이었다.
당시 한국은 6·29 민주화 선언과 선거, 88올림픽, 노동운동 등 국제적 ‘뉴스의 보고’였다. 배씨는 외신기자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한국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를 체감했다. “김종필 당시 야당 총재, 김대중 전 대통령, 김근태 전 의원 같은 재야 정치인들은 물론 다양한 인물을 많이 만났어요. 경찰에 쫓기던 어느 노조위원장을 시골의 한 다방에서 몰래 만나거나 최루탄을 피해 가며 시위 현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정말 ‘발로 뛰는 통역’을 했죠.”
당시 부산에 노동운동을 하는 특이한 변호사가 있다고 해서 찾아간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배씨는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로 김근태 전 의원을 꼽았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라는 신문의 기자와 취재를 갔는데 당시 소위 ‘반체제 인사’라고 알려졌기 때문에 머리에 띠 두르고 ‘산 자여 따르라’고 노래 부르는 과격한 모습을 상상했어요.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만나러 갔는데 굉장히 차분하고 냉철한 학자 같은 분위기라서 놀랐지요. 생각의 동의 여부를 떠나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피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가 ‘한국 정부가 왜 저 사람을 경계하는지 알겠다’고 그러더군요.”
요즘도 배씨는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지난여름에는 베이징 올림픽에 다녀왔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한국어가 공식 통역 언어로 채택되면서 그녀를 포함한 6명의 한국 통역사가 대회조직위원회(BOCOG) 소속으로 파견됐다. 이전까지는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따면 주로 코치나 대회 자원봉사자들이 통역에 동원됐다.
그런데 베이징 올림픽부터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어 동시 통역 서비스가 제공된 것이다. 물론 아직 중국(30명), 일본(12명)에 비해서는 통역 인력이 훨씬 적다. “우리 선수들이 예상보다 훨씬 선전하는 바람에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녔어요. 나중에 수석 통역사에게 찾아가 ‘한국은 스포츠 강국이다. 다음부터는 통역사 수를 늘려 달라’고 요구했지요.”
그녀는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긴 최민호를 비롯해 왕기춘, 김재범, 정경미 등 유도 대표 선수, 양궁 여자 단체 선수들과 감격의 순간을 함께했다. 선수들의 생생한 소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아쉬운 경우도 있었다. “최민호 선수가 ‘나는 운동 복이 많다’고 자조적인 소감을 말했는데 참 통역이 어려웠어요. 지독한 연습벌레지만 매번 우승을 놓쳤던 그간의 아쉬움이 함축적으로 담긴 표현이었는데 그런 뉘앙스까지 전하기가 쉽지 않아요.”
우연한 기회에 통역사의 길을 걷게 됐지만 배유정씨에게 통역은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가 됐다. “외국에서 회의 통역을 마치고 나면 가끔 통역 부스에 와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한국 사람이 계세요. 회의가 우리말로 진행된 것처럼 귀에 쏙쏙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피로가 싹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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