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이자 호텔 경영인, 예술 후원가.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 앞에는 수식어가 많다. 1999년 대우가 해체되면서 기업인으로서 행보는 멈췄지만 그의 ‘예술경영’은 꾸준하다. 지난 9월엔 독일 명품 브랜드 몽블랑이 주는 제21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수상했다. 국내 여성으로는 처음이다.
9월26일 서울 남산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 쥬니어 볼룸.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단정히 머리를 묶은 정희자(72) 아트선재센터 관장이 기자 회견장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언론 앞에 선 정 관장은 다소 긴장한 듯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나이 일흔을 넘었으니 건강하다고 할 수 없지요. 마땅히 활동할 영역이 없고, 가끔 아트선재센터에 가서 딸(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이 뭐하나 보고 이것저것 물어보곤 하는 정도입니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정 관장은 평범한 일상을 밝혔다. 한때 재계 2위에 올랐던 대우그룹이 외환위기로 해체되자 행보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담담하게 토로한 것이다. 하지만 ‘대우’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는 “다 아시겠지만 대우는…”이라며 말끝을 살짝 흐렸다.
한국 여성 처음으로 몽블랑상 수상그는 몽블랑상 수상자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처음엔 마다하고 싶었습니다. 거창한 타이틀이 부담되고 뒤에서 묵묵하게 후원하는 다른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요. 그럼에도 수상을 받아들인 것은 문화예술 후원에 대한 기업인들의 의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기업 세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문화예술계에서 정 관장은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한국 최초의 사설 현대 미술관인 경주 아트선재미술관과 서울 아트선재센터를 설립, 국내 주요 거장들의 작품과 각국의 미술을 소개해 현대 미술사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몽블랑 국내 판매사인 유로통상 신용극 회장은 “‘워홀과 바스키아의 세계’(1991) ‘알렉산더 칼더’(93) ‘보테로전(展)’(96) ‘야요이 쿠사마전’(2002) 등 (정희자 관장이) 기획한 전시회가 수두룩하다”며 “하나같이 국내 최고 수준의 전시회였다”고 말했다. 정 관장과 문화예술의 인연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기업을 경영할 때부터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30년 전 아무도 하지 않을 때 문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정 관장은 대우재단에서 연구지원 사업을 하고 학술총서를 발간했다.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 콘서트를 열고 제주도에 도서관을 세워 책을 기증하기도 했다. 84년 힐튼호텔(현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을 운영하는 동우개발 회장에 취임하면서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호텔 인테리어를 꼼꼼히 챙기고 진열할 미술품을 직접 골랐다. 베트남 같은 나라에서 신진 작가를 발굴했던 일은 지금도 뿌듯한 기억이라고 했다.
“(동우개발은) 베트남·중국·알제리·모로코 등에 호텔을 세웠어요. 특히 베트남은 환경이 매우 열악했는데우리가 기여할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 예술가들을 찾아 지원하고 그들의 그림을 호텔에 걸었습니다. 일단 보기도 좋지만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 좋았어요. 4~5년 후 홍콩 경매 같은 곳에서 그 작가들의 몸값이 많이 올랐어요.”
호텔을 경영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 공간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쳤다. 장남 선재씨가 90년 미국 보스턴대 유학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 “장남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불우한 환경에 놓인 젊은이들을 돌아보면서 국내외 젊은 작가들을 육성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91년 자신의 고향인 경주에 아들의 이름을 따 ‘아트선재미술관’을 세웠다. 천년고도 경주를 현대미술과 연결하고 싶은 바람에서다. “경주는 제가 태어나고 고등학교(경주여고)까지 다닌 곳입니다. 경주에 박물관이 많은 만큼 현대미술관을 설립하면 고대와 현대를 연결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호텔에서 난 수익금으로 미술관 사업에 몰두했습니다. 최근엔 건강 문제 등으로 경주 미술관을 자주 찾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요.” 98년 개관한 서울의 아트선재센터는 컨템퍼러리 아트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정 관장은 “시야를 조금 더 넓혀 실험적인 아트를 전개하고 싶어 아트선재센터를 개관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 설치미술가 이불 발굴서울과 경주 두 문화공간에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 그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정 관장은 “대중에게 열린 문화공간이라고는 국공립미술관이 전부일 때 사립미술관을 지어 미술 전시뿐 아니라 어린이·일반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향후에도 미술 전문가들을 위한 심화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기획자, 평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종사자를 후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 관장은 미술관 사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서양화가 고(故) 이세득 작가를 꼽았다. “선재미술관의 초대 관장인 이 작가는 서정적 작품으로 모더니즘을 이끌었어요. 미술 행정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 전시를 기획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지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중에는 설치미술가 이불작가를 발굴한 것이 뿌듯하다고 했다. “98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어 주목을 받은 작가지요. 이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도쿄미술관 회고전 등을 거쳐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습니다. 14년 만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지금은 아트선재센터의 실질적 운영을 딸인 김선정(47) 부관장에게 맡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으로 잘 알려진 김 부관장은 어머니 못지않게 미술계에 이름이 자자하다. 정 관장은 “딸이 어릴 때부터 손을 잡고 미술관에 함께 다녔다”며 “원로 작가들의 집을 자주 방문해서 보고 들은 게 딸이 미술인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딸을 ‘기분 좋은 자극제’라고 추켜세웠다.
“가끔 너무 시대를 앞서나가 대중성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하지만 전시에 대한 평과 관람객의 반응을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미리 내다보고 있구나 싶어요. 큐레이터가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인 뚜렷한 주관과 추진력이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해요. (제 딸이지만) 배울 점이 있습니다.”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여고, 한양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김우중 회장의 부인으로 살아온 정 관장에게 힐튼호텔 회장 취임은 여성 경영인으로서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다. 당시 그는 하루 3시간씩 자면서 경영에 매달렸다. 지금도 외국 호텔에 가면 당시 직원들에게 무섭게 야단을 쳐 붙은 별명이 ‘타이거 정’ ‘야단 정’이다. ‘호텔 업계의 귀재’ ‘그 남편에 그 아내’라는 평을 들었지만 대우가 해체되면서 힐튼호텔은 외국계 자본에 넘어갔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기도 하다.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 정희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정주부였을 때도 그는 특유의 부지런함과 호쾌함으로 내조를 했다.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 김 회장의 출근길을 챙겼다. 자녀들은 적성을 먼저 고려해 길렀다고 말한다. “장남이 먼저 떠나고 두 아들과 딸이 곁에 있습니다. 기업 후계자로 자식들을 교육하기보다 능력과 적성에 맞춰 자라기를 바랐어요.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어릴 때 미술관, 음악회를 자주 다녔습니다.”
현재 차남 선협(43)씨는 아도니스골프장 대표, 삼남 선용(37)씨는 영화 투자사 벤티지홀딩스의 이사를 맡고 있다. 정 관장은 영화와도 인연이 깊다. 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선재상’을 만들어 단편영화를 후원하는 등 영화계를 지원해왔다. 이번에 몽블랑상 수상 때 부상으로 받은 순금 펜과 1만5000유로의 문화예술후원금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전달했다.
김우중 전 회장의 근황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예술 후견인’으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김 전 회장에 대한 감사를 표시했다. “그룹 경영자로서 회장님은 항상 바빴지만 호텔 사업과 미술관 건립을 비롯한 제가 하는 많은 사업에 외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 회장, 한국 경제 위해 일하고 싶어해김 전 회장의 건강에 대해 “한때 좋지 않았지만 지금 많이 회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호텔 등 예전에 일했던 장소를 함께 찾아다니기도 한다”며 “움직이면서 무엇이든 보고 느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의 사업 재기는 늘 재계의 관심사다. 정 관장은 이 대목에서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경제에 무언가 남기고 싶어 하는 김 전 회장의 뜻을 분명히 전했다. “베트남, 미얀마 등 회장님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곳이 많습니다. 5년 뒤면 대우그룹 창립 50주년인데 그때까지 한국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 관장은 “김우중 회장이 미국 포브스와 인연이 남다르다”며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정 관장이 강조한 것은 젊은이들에 대한 애정이었다. “지금도 대우그룹이라고 하면 좋게 보시는 분도 있고, 나쁘게 보시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남편은 젊은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 젊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젊은 시절 많은 경험을 하고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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