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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넘어 유통으로 지평 넓히는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강점 살리면서 약점 보완한 묘수 통하다

[건설 넘어 유통으로 지평 넓히는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강점 살리면서 약점 보완한 묘수 통하다

사진:중앙포토
올 상반기 재계를 뜨겁게 달궜던 서울 시내 면세점 대전이 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과 한화그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관세청 면세점특허심사위원회는 대기업 2곳으로 예정된 서울 시내 면세점의 신규 사업자로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현장을 독려하면서 이들 기업이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신규 사업권을 따내도록 이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가고 있다. 이들보다 약간 덜 주목받고 있지만, 재조명해야 할 진짜 승자가 한 명 더 있다. 현대산업개발의 오너인 정몽규(54) 현대산업개발 회장이다. 그는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외아들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조카다. 지난 1999년 3월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취임해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애초 현대산업개발은 이번 면세사업권 입찰전에서 호텔신라와 연합전선을 구축한다고 밝혀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HDC신라면세점은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가 지분 절반씩을 공동 출자해 만든 합작 법인이다. 두 회사는 지난 4월 12일 합작 법인의 설립을 발표하면서 입찰전의 유력한 승자 후보로 급부상한 바 있다. 정몽규 회장은 이 합작을 호텔신라 측에 먼저 제안할 것을 지시한 주인공이었다. 앞서 현대산업개발은 올해부터 자회사인 현대아이파크몰을 통해 시내 면세사업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정 회장은 올 1월에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를 선언했지만, 이때만 해도 정 회장의 계획이 실현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면세사업 경험이 없었던 현대산업개발로서는 조력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유통 업계에서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마지막 거위’로 통하지만, 잘나가는 업계 공룡들마저 사업권 확보와 고수익 창출에 대한 고민 등으로 번번이 어려움을 겪는 분야다. 하물며 현대산업개발이 신규 사업권을 따내려면 사업 역량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불리한 조건을 딛고 일어서야 했다. 관세청의 신규 면세사업자 평가 항목에서 운영인의 경영 능력과 특허보세구역 관리 역량 등 사업 역량 관련 배점은 1000점 만점에 550점에 이른다. 정 회장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다.
 이부진 사장에게 먼저 합작 제의
합작은 뜻하지 않은 계기로 진행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올 2월께 양창훈 현대아이파크몰 사장이 면세사업에 대한 조언을 구할 겸 한인규 호텔신라 부사장을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며 “이 자리에서 양사의 협력에 대한 첫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양 사장이 농담조로 “사업을 같이 한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고, 한 부사장이 “오너들에게 보고해서 진행해보자”고 화답했다는 것이다(두 사람은 현재 HDC신라면세점 공동대표다). 양 사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정 회장은 ‘빠른 숙고’ 끝에 이부진 사장 측에 합작사 설립을 먼저 제의할 것을 지시했다. 기민한 상황 판단과 지략이 이 같은 결정을 이끌었다.

국내 면세 업계 2위인 호텔신라는 이 무렵 신규 면세사업권을 경쟁사인 롯데그룹에 잇따라 내주면서 전환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호텔신라는 올 2월 진행된 제주 시내 면세사업권 입찰전에서 호텔롯데에 패했고, 이보다 앞서 진행됐던 인천국제공항 면세사업권 입찰전에서도 호텔롯데에 근소한 차이로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대기업에 배정된 8개의 권역 가운데 롯데가 4개 권역을 가져가는 사이에 3개 권역을 낙찰 받는 데 그치면서 영업 면적이 54%나 감소(7598㎡→3501㎡)한 것이다. 이 사장으로서는 이번 서울 시내 면세사업권 입찰전에서 회사를 필승으로 이끌어야 할 필요성이 커졌고, 정 회장은 매력적인 입지 조건을 갖춘 용산 아이파크몰 부지 제공을 필승 카드로 내밀었다. 현대산업개발이 탄탄한 하드웨어를 제공하고 호텔신라가 매장 운영과 상품 구성 등을 주도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이 사장은 이를 검토한 다음 정 회장에게 만나자는 뜻을 전했고, 마침내 두 오너가 만나 합작 법인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재계 양대 산맥인 범현대가와 삼성가가 손잡는 순간이었다.

정 회장은 이처럼 상황 판단이 빠른, 지략과 추진력을 겸비한 경영인으로 평가된다. 화려하게 조명을 받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꼼꼼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본다. 과감히 결단을 내린 다음엔 철저히 준비한다. 이번 입찰전에서도 그의 이런 경영 스타일 덕분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관세청 심사위원회에 어필하는 과정에서도 정 회장 특유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HDC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정 회장이 면세점 설계에서부터 주요 행사 식사 메뉴까지 손수 꼼꼼히 점검하며 (입찰전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정 회장은 직접 도면을 보며 실무진이 연구하는 수준으로 면세점 인테리어 등을 구상했다. 또 현대산업개발의 면세사업이 우리나라 관광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을 어필하고자 7월 2일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개최한 ‘대한민국 관광산업 발전 비전 선포식’ 때 식사 메뉴를 각 지역 음식들로 고루 마련할 것을 미리 지시하는 등의 열의를 보였다. 회사 다른 관계자는 “정 회장이 용산 아이파크몰 내에 현대산업개발 직원 10명과 호텔신라 직원 10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 사무실을 종종 찾아 애로점을 듣고 직원들을 챙겼다”고 덧붙였다. 이 순간 그는 누구보다 꼼꼼한 오너였다.

서울의 중심지이자 교통의 요지임에도 관광지로의 개발이 더 필요한 용산이라는 입지를 갖췄지만, 면세사업 경험이 없다는 약점을 가졌던 현대산업개발. 그리고 검증된 우수한 면세사업 역량을 갖췄지만, 마땅한 부지가 없던 데다 독자적으로 입찰전에 참여할 경우 롯데처럼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던 호텔신라. 이 두 기업의 합작은 각자의 강점을 살리되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주는 최상의 전략이었고, 이는 고스란히 승전보로 돌아왔다. 오너 스스로 회사의 약점을 냉철히 파악해 인정하고 재빨리 보완에 나선 결과였다. 롯데가 이번 입찰전에서 승자가 되지 못한 것과, 한화갤러리아가 서울 여의도 한화63시티 빌딩을 앞세워 ‘깜짝 승자’로 발돋움한 것을 보면 합작을 주도한 정 회장의 노림수가 그대로 들어맞았음을 알 수 있다.
 면세사업 경험 없는 약점 극복
7월 2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대한민국 관광산업 발전 비전 선포식’에 참석한 정몽규 현대 산업개발 회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부터). 정 회장은 이 사장과 연합전선 을 구축해 최근 서울 시내 면세사업권 입찰전에서 승리했다. / 사진:중앙포토
용산에 새롭게 들어설 HDC신라면세점은 총 면적 6만5000여㎡, 이 가운데 면세점 면적만 2만7400여㎡로 세계 최대 규모 도심형 면세점이 될 전망이다. 에르메스와 프라다 등 400개가 넘는 브랜드가 입점해 그동안 서울 명동 등지로 집중됐던, 시내 면세점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새로이 모은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인근의 용산전자상가와 이태원, 남산공원 등을 아우르는 종합 관광 허브로 키운다는 것이다.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는 이를 위해 200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한류 공연장과 한류 관광 홍보관 등을 갖출 계획이란 점을 이번 심사에서 심사위원회에 어필했다.

그간 면세사업 경험이 없던 현대산업개발의 시내 면세사업 진출을 회의적으로 봤던 재계는 이제 그 생각을 바꾸게 됐다. 오히려 최근 사업 행보를 통해 본 현대산업개발은 혜성처럼 떠오른 산업계의 다크호스라 할 만하다. 비록 본업이던 건설업에서 업황 침체로 고전했지만, 유통 분야로 눈을 돌리면서 사업 다각화를 꾸준히 진행한 끝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05년 문을 연 용산 아이파크몰은 국내 최대 규모 가구 전문관 외에도 고급 악기 전문관 등 다른 대형 백화점들과 차별화된 매장 구성으로 시민들이 자주 찾는 쇼핑 명소가 됐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인 ‘옥상 풋살(5인용 미니축구) 경기장’은 현재 대한축구협회장이기도 한 정 회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었다. 개장 첫해 550억원가량이던 용산 아이파크몰의 연매출은 지난해 2400억원가량으로 증가했다.
 건설에서는 해외 재진출로 활로
정 회장은 올 1월 기자간담회에서 “유통 분야에서 오는 2020년까지 연매출 1조200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시내 면세점 유치 성공으로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 증권가는 향후 HDC신라면세점이 연매출 1조2000억~1조5000억원가량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절반씩 나눠 계산하면 현대산업개발은 연간 6000억~7500억원가량의 매출 증가 효과를 누릴 것이란 이야기다. 정 회장은 “쇼핑 위주의 기존 면세점과는 달리 캐릭터전시관과 애니메이션스튜디오 등의 다양한 관광 콘텐트로 구성된 신개념 면세점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 회장의 사업 추진력은 건설을 넘어 유통 분야로 뻗어가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이 지금까지는 아이파크아파트 같은 주택 개발에 치중했지만 앞으로는 상업 용지와 도심 재개발에 더 중점을 둘 것”이라며 “유통도 장소가 중요한 사업인데 지난 10년간의 용산 아이파크몰 운영 경험과 주택 개발 노하우를 접목하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부동산 자산 가치를 키우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밖에 현대산업개발은 부산에서 2020년에 아이파크몰 2호점 문을 연다는 계획이다. 부산 해운대에서 추진 중인 수영만 요트경기장 개발사업과 연계해 해양과 레저를 테마로 한 복합 쇼핑몰로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정 회장의 야심찬 ‘건설 넘어 유통으로’ 드라이브에 현대산업개발의 기업 가치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3년 전인 2012년 3조3341억원이었던 현대산업개발의 연 매출은 지난해 4조4774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 회사 주가는 1만원대 후반~2만원대 초반에서 7만4000원대(올 7월 16일 현재)까지 올랐다. 증권사 12곳은 이번 서울 시내 면세사업권 입찰 결과 발표 직후 현대산업개발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평균 목표주가 상승폭만 23.5%에 달한다. 윤석모 삼성증권 연구원은 “HDC신라면세점은 세계 최대 규모 도심형 면세점이라는 이점을 살려 초기 인기몰이 정도에 따라 기존 면세점들의 매출을 뺏어올 수 있다”며 “현대산업개발은 용산 아이파크몰 내에서 기존에 매출이 저조했던 전자관을 면세점으로 전환하면서 임대료 증대, 집객 효과에 따른 매출 증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현대산업개발은 본업인 건설업에서도 활로를 뚫는 데 한창이다. 지난해 초 인도 뭄바이에서 주상복합아파트 신축 공사를 수주하면서 23년 만에 해외 재진출에 성공했고, 같은 해 볼리비아 바네가스 교량 건설 공사를 추가로 수주하는 등 해외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건설과 유통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선진국형 종합부동산개발업체로 거듭나려 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과 정 회장의 도전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주목된다.

- 이창균 기자 lee.changky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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