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실버들을 위한 투자 노하우
주택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실버들을 위한 투자 노하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층들이 부동산 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퇴직 이후 이렇다 할 노동소득이 없어 생계유지를 위해 보유한 부동산(생계형 매물)을 처분하는 은퇴자들이 많을 것이란 기존 예측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5년 전 중견기업에서 은퇴한 김형수(가명·61)씨는 요즘 부동산 중개업소를 자주 찾는다. 아파트를 사서 월세를 받을 생각에서다. 그 동안 주식이나 주식형펀드에 가입해봤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러다가 그나마 갖고 있는 재산을 다 날릴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보유한 자금으로 아파트를 매입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매달 100만~150만원의 월세를 받아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김씨는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주식으로 돈을 날려본 경험 탓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다 보니 노후자금을 금융자산보다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층들이 부동산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수명이 연장되고 여유자금을 보유한 고령층들이 은퇴 이후에 오히려 왕성한 부동산 투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할 금융지식이 없지만 과거 부동산 투자수익을 맛본 경험치가 있다 보니 나이 들어서도 ‘부동산 편식’이 줄지 않고 있다.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이 작성한 ‘최근 5년간 연령대별 아파트 구입자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아파트 구입자 중 60세 이상은 11만2036명으로, 2011년(7만1254명)보다 57.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아파트 구입자 수 평균 증가폭(17%)보다 3.3배 정도 많은 수치다. 하지만 29세 이하, 30~34세의 아파트 구입 건수는 각각 16.5%, 17% 줄었다. 이는 젊은 층이 일자리와 소득 부족으로 주택 구매여력이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 아파트 구입자에서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도 늘었다. 5년 전에는 전체 아파트 구입자 가운데 60대 이상이 10.5%였지만, 작년에는 14.1%로 증가했다. 60대 이상 고령자들이 주택시장에 강력한 구매층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강원대 부동산학과 김갑열 교수는 “60대가 넘어도 주택시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기존의 생애주기설에 따른 자산설계이론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를 곧 경제적 활동 중단으로 받아들이는 종전 논리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노동활동은 활발하지 못하지만 투자활동을 통해 소득을 발생시키려는 행위들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젊은 층과는 달리 든든한 자금 여력이 적극적인 투자활동을 가능케 하는 배경이 된다.
요즘 일본에서도 예상과는 달리 고령자들이 젊은층보다 주식 등 위험자산에 더 많이 투자한다. 고령자들은 고도 성장기에 주식투자로 돈을 불려본 경험이 있는데다 축적한 투자 재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태어난 젊은층은 투자 마인드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투자할 돈도 없다. 이른바 ‘나이법칙의 역설’이다.
“노장년층에게 부동산은 거의 종교적 믿음 같은 거죠.”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안구 추적 테스트(Eye tracking test)’로 실시한 연령대별 부동산 인식 실험 결과를 이같이 전했다. 이 실험은 시각적인 자극으로 인간의 눈동자(안구)의 초점이 얼마나 빨리 맺히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안구 추적 테스트는 심장박동보다 훨씬 인간의 본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실험이다. 김 교수가 한 실험은 50~60대(노장년층)와 20~30대(젊은층) 그룹에게 주택 이미지나 사진을 보여주며 눈동자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방식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노장년층에서 눈동자의 초점이 빨리 맺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노장년층에게 부동산은 이미지만 봐도 갖고 싶은 간절한 대상이다. 부동산은 노장년층에게 강한 끌림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비키니를 입은 글래머가 지나가면 남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이 번쩍 뜨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남성의 강한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통제를 할 수 없다. 과자가 귀하던 어린 시절 과자봉지 바스락 소리만 들리면 벌떡 일어나던 기억, 그런 기분이리라. 하지만 젊은층의 눈동자는 같은 실험에서 초점이 잘 맺히지 않았다. 속된 말로 흐리멍텅한 눈빛이다.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은 나와 관계없다는 듯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실험은 계속됐다. 김 교수는 이번에는 젊은층에게 자신들이 욕심을 낼 만한 외제 승용차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자 눈동자 초점이 빨리 맺혔다. ‘저런 것을 한 번 가져봤으면’ 하는 소유 욕망 대상이 집이 아니라 자동차로 향한 것이다. 이번 실험은 젊은층에게 부동산은 더 이상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그냥 쓰는 공간의 대상이라는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베이비부머 이상 연령 세대에게 부동산은 각별한 존재다. 경제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시중의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쏠리면서 집값·땅값은 사놓으면 무조건 올랐다.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집단적 믿음인 부동산 불패신화가 탄생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고령자들의 부동산 쏠림현상은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공공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서 더욱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유럽에서는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해고가 쉽게 이뤄지고 공공복지가 축소되면서 주택 소유 열풍이 나타났다. 유사시 집을 담보로 빚을 내 소비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대출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자구책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고령자들이 주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개인의 복지를 챙겨주지 못한 사이 개인 스스로 마련한 ‘사적 안전망’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고령자들에게 주택은 단순한 주거공간에 대한 이용 차원을 넘어 축적(stock)의 대상이다. 그들에게 집은 큰 아들처럼 든든한 존재로 인식된다. 노후에도 먹고 살 든든한 연금이 있다면 굳이 작은 집이라도 사서 세를 받으려는 생계형 임대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최근의 오피스텔 붐도 노후 불안으로 기댈 수 있는 언덕을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걱정도 없지 않다. 고령자들은 노동소득이 변변찮으므로 투자에서 실패할 때는 재기가 힘들어 ‘위험한 부동산 투자’가 될 수 있어서다. 집으로 짓는 복지는 위험하다. 지금의 고령 세대들의 집에 대한 지나친 애착은 오히려 노후 불확실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을 통해 노후를 스스로 준비하는 것은 일종의 ‘자산기반복지(Asset-based welfare)’의 일환이다. 그러나 부동산이 단순히 쓰는 상품이 아니라 투자대상인 자산이 되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주택은 규격화·표준화로 제품의 환금성(유동성)이 높아지면서 금융상품을 닮아간다. 부동산이 투자 자산화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급락한 집값을 보듯 외부의 충격에 쉽게 흔들린다. 물론 일본형 부동산 버블붕괴처럼 극단적인 전망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극히 작다. 하지만 부동산은 노후의 방패이자 든든한 후원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 오히려 때에 따라 변동성이 강한 불안정한 상품일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많은 금융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면 보유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을 줄이라고 권고한다. 우리나라 가계에서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로 절대적으로 높고, 나이가 많을수록 그 정도가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급격한 고령화·저출산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가계파산 등 큰 피해가 돌아갈 수 있는 점도 또 다른 요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충고를 듣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나이가 많이 들어 거동이 불편하거나 인생이 절박한 상황으로까지 내몰려야 황급히 행동에 나선다. 가장 큰 문제는 요즘 같이 저금리 시대에 ‘부동산을 팔아서 뭘 투자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금융지식의 폭이 넓지 않다. 설사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면 모를까, 많은 부분을 위험자산으로 옮겨 타려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한번쯤 중국 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했다가 혼쭐이 난 경우가 많아 더욱 힘들어 한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인지능력이 떨어져 수시로 변하는 금융시장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란 어렵다. 이러다 보니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거둘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에 고령자들의 자금이 몰린다. 요즘 부자들의 목돈 투자 선호 1순위는 상가빌딩이다. 시중금리가 급등하지 않는 한 이런 쏠림현상은 이어질 것이다. 임대수익이 그나마 은행 예금이자보다 높은데다 신경이 주식 같은 금융자산보다 덜 쓰이는 게 큰 이유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온종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주식 시세를 바라보며 가슴 졸이는 스트레스를 겪지 않아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령자일수록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금융자산 비중을 올릴 것을 주문해도 막상 당사자들은 머뭇거린다. 그래서 차라리 좀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자산 재구성 전략을 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나이가 들수록 묻어두기식 고정자산은 줄이고 현금흐름 중심의 자산은 늘리는 것이다. 만약 현금흐름이 잘 나온다면 금융자산이든, 부동산이든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현금흐름)’만 잘 잡으면 된다는 얘기다.
어떤 사람은 주택시장 거품이 일본식으로 꺼지면 위험하니 금융자산으로 하루라도 빨리 옮겨 탈 것을 주장한다. 위험관리 차원에서 일부 일리가 있는 논리이지만, 금융자산이 예·적금이 아니라 주식형 펀드나 주식이라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코스피(KOSPI)와 주택매매가격지수와의 상관관계는 +0.87로 나타났다. 상관관계가 0.87이라는 것은 주가와 주택가격이 거의 같은 궤도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주식도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급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주택시장의 거품이 급속하게 꺼지면 가계와 금융회사의 무더기 부실로 이어져 우리경제의 펀더멘털이 무너지는 것이므로 주식시장이 온전할 리 없다. 부동산 투자자가 쪽박을 차면 주식 투자자도 쪽박 차기는 마찬가지다. 속된 말로 도긴개긴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더라도 주식시장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논리는 궤변이다. 이를 알고 얘기하는 것은 물건을 팔기 위한 멍든 영혼의 상술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는 게 좋다.
하지만 부동산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섣부른 부동산 투자는 당신을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어서다. 하우스 푸어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부동산은 당신을 영원히 지켜주지 않는다. 부동산은 주식 같은 금융자산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수익도 낮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장기적으로 주식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7~8%, 부동산과 채권 투자 수익률은 3~4% 정도다. 하지만 주식이나 채권은 안전한가. 테마주나 작전주 같은 주식에 손을 댔다가 돌이키지 못할 후회를 하는 사람이 주위에 어디 한두 사람인가. 안전한 고수익을 안겨주는 마법의 상품은 지구상에 없다.
그래서 나이 들어 부동산을 바라보는 생각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만큼 부동산 투자는 최선보다는 차선으로 접근하고 고수익보다는 보험으로 인식할 때 마음이 편할 것이다. 또 부동산은 투자보다는 필요로 구매할 때 여유와 편안함을 안겨줄 뿐 만 아니라 가격 스트레스도 덜 겪게 된다. 금융지식이 많고 강철심장을 가진 소유자라면 부동산보다는 금융자산을 통해 부를 늘리는 게 빠르다. 하지만 노후 들어서는 인지능력과 판단력이 떨어지므로 시시각각 변하는 금융자산을 운용하는 일은 힘에 벅찰 수밖에 없다. 부동산은 주가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되고 실물자산이니 태풍이 불어와도 허공으로 사라지는 일은 없어 마음이 편하므로 심리적인 측면에서 메리트가 적지 않다. 즉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고 관리에 어려움이 없다면, 부동산은 노후생활 방편에 적절한 활용의 대상이다. 부동산은 자산설계에서 플랜 A(최선)가 아니라 적어도 플랜 B(차선)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특히 수시로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비환금성 자산인 부동산이 자산관리에 득이 될 수 있다. 잘 팔리지 않는 비환금성이 오히려 재산을 지키는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비환금성의 역설)이다. 적어도 충동적인 감정에 못 이겨 애써 모아놓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막는 잠금장치로서의 가치이다. 나이 들어 부동산을 투자할 때 옥석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고령사회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부동산으로 압축해야 할 것이다. 딱 3가지만 기억하라. 부동산을 보유할 때 마음이 편안한지, 현금흐름이 잘 발생하는지, 지역으로 젊은 인구가 몰리는 도심인지 여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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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층들이 부동산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수명이 연장되고 여유자금을 보유한 고령층들이 은퇴 이후에 오히려 왕성한 부동산 투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할 금융지식이 없지만 과거 부동산 투자수익을 맛본 경험치가 있다 보니 나이 들어서도 ‘부동산 편식’이 줄지 않고 있다.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이 작성한 ‘최근 5년간 연령대별 아파트 구입자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아파트 구입자 중 60세 이상은 11만2036명으로, 2011년(7만1254명)보다 57.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아파트 구입자 수 평균 증가폭(17%)보다 3.3배 정도 많은 수치다. 하지만 29세 이하, 30~34세의 아파트 구입 건수는 각각 16.5%, 17% 줄었다. 이는 젊은 층이 일자리와 소득 부족으로 주택 구매여력이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 아파트 구입자에서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도 늘었다. 5년 전에는 전체 아파트 구입자 가운데 60대 이상이 10.5%였지만, 작년에는 14.1%로 증가했다. 60대 이상 고령자들이 주택시장에 강력한 구매층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강원대 부동산학과 김갑열 교수는 “60대가 넘어도 주택시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기존의 생애주기설에 따른 자산설계이론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를 곧 경제적 활동 중단으로 받아들이는 종전 논리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노동활동은 활발하지 못하지만 투자활동을 통해 소득을 발생시키려는 행위들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젊은 층과는 달리 든든한 자금 여력이 적극적인 투자활동을 가능케 하는 배경이 된다.
요즘 일본에서도 예상과는 달리 고령자들이 젊은층보다 주식 등 위험자산에 더 많이 투자한다. 고령자들은 고도 성장기에 주식투자로 돈을 불려본 경험이 있는데다 축적한 투자 재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태어난 젊은층은 투자 마인드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투자할 돈도 없다. 이른바 ‘나이법칙의 역설’이다.
“노장년층에게 부동산은 거의 종교적 믿음 같은 거죠.”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안구 추적 테스트(Eye tracking test)’로 실시한 연령대별 부동산 인식 실험 결과를 이같이 전했다. 이 실험은 시각적인 자극으로 인간의 눈동자(안구)의 초점이 얼마나 빨리 맺히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안구 추적 테스트는 심장박동보다 훨씬 인간의 본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실험이다. 김 교수가 한 실험은 50~60대(노장년층)와 20~30대(젊은층) 그룹에게 주택 이미지나 사진을 보여주며 눈동자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방식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노장년층에서 눈동자의 초점이 빨리 맺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노장년층에게 부동산은 이미지만 봐도 갖고 싶은 간절한 대상이다. 부동산은 노장년층에게 강한 끌림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비키니를 입은 글래머가 지나가면 남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이 번쩍 뜨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남성의 강한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통제를 할 수 없다. 과자가 귀하던 어린 시절 과자봉지 바스락 소리만 들리면 벌떡 일어나던 기억, 그런 기분이리라.
노동활동 대신 투자활동으로 소득 보충해
사실 우리나라에서 베이비부머 이상 연령 세대에게 부동산은 각별한 존재다. 경제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시중의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쏠리면서 집값·땅값은 사놓으면 무조건 올랐다.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집단적 믿음인 부동산 불패신화가 탄생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고령자들의 부동산 쏠림현상은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공공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서 더욱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유럽에서는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해고가 쉽게 이뤄지고 공공복지가 축소되면서 주택 소유 열풍이 나타났다. 유사시 집을 담보로 빚을 내 소비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대출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자구책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고령자들이 주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개인의 복지를 챙겨주지 못한 사이 개인 스스로 마련한 ‘사적 안전망’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고령자들에게 주택은 단순한 주거공간에 대한 이용 차원을 넘어 축적(stock)의 대상이다. 그들에게 집은 큰 아들처럼 든든한 존재로 인식된다. 노후에도 먹고 살 든든한 연금이 있다면 굳이 작은 집이라도 사서 세를 받으려는 생계형 임대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최근의 오피스텔 붐도 노후 불안으로 기댈 수 있는 언덕을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걱정도 없지 않다. 고령자들은 노동소득이 변변찮으므로 투자에서 실패할 때는 재기가 힘들어 ‘위험한 부동산 투자’가 될 수 있어서다. 집으로 짓는 복지는 위험하다. 지금의 고령 세대들의 집에 대한 지나친 애착은 오히려 노후 불확실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을 통해 노후를 스스로 준비하는 것은 일종의 ‘자산기반복지(Asset-based welfare)’의 일환이다. 그러나 부동산이 단순히 쓰는 상품이 아니라 투자대상인 자산이 되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주택은 규격화·표준화로 제품의 환금성(유동성)이 높아지면서 금융상품을 닮아간다. 부동산이 투자 자산화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급락한 집값을 보듯 외부의 충격에 쉽게 흔들린다. 물론 일본형 부동산 버블붕괴처럼 극단적인 전망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극히 작다. 하지만 부동산은 노후의 방패이자 든든한 후원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 오히려 때에 따라 변동성이 강한 불안정한 상품일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 같다.
수익형 부동산에 고령자들의 자금 몰려
하지만 현실적으로 충고를 듣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나이가 많이 들어 거동이 불편하거나 인생이 절박한 상황으로까지 내몰려야 황급히 행동에 나선다. 가장 큰 문제는 요즘 같이 저금리 시대에 ‘부동산을 팔아서 뭘 투자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금융지식의 폭이 넓지 않다. 설사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면 모를까, 많은 부분을 위험자산으로 옮겨 타려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한번쯤 중국 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했다가 혼쭐이 난 경우가 많아 더욱 힘들어 한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인지능력이 떨어져 수시로 변하는 금융시장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란 어렵다. 이러다 보니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거둘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에 고령자들의 자금이 몰린다. 요즘 부자들의 목돈 투자 선호 1순위는 상가빌딩이다. 시중금리가 급등하지 않는 한 이런 쏠림현상은 이어질 것이다. 임대수익이 그나마 은행 예금이자보다 높은데다 신경이 주식 같은 금융자산보다 덜 쓰이는 게 큰 이유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온종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주식 시세를 바라보며 가슴 졸이는 스트레스를 겪지 않아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령자일수록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금융자산 비중을 올릴 것을 주문해도 막상 당사자들은 머뭇거린다. 그래서 차라리 좀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자산 재구성 전략을 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나이가 들수록 묻어두기식 고정자산은 줄이고 현금흐름 중심의 자산은 늘리는 것이다. 만약 현금흐름이 잘 나온다면 금융자산이든, 부동산이든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현금흐름)’만 잘 잡으면 된다는 얘기다.
어떤 사람은 주택시장 거품이 일본식으로 꺼지면 위험하니 금융자산으로 하루라도 빨리 옮겨 탈 것을 주장한다. 위험관리 차원에서 일부 일리가 있는 논리이지만, 금융자산이 예·적금이 아니라 주식형 펀드나 주식이라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코스피(KOSPI)와 주택매매가격지수와의 상관관계는 +0.87로 나타났다. 상관관계가 0.87이라는 것은 주가와 주택가격이 거의 같은 궤도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주식도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급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주택시장의 거품이 급속하게 꺼지면 가계와 금융회사의 무더기 부실로 이어져 우리경제의 펀더멘털이 무너지는 것이므로 주식시장이 온전할 리 없다. 부동산 투자자가 쪽박을 차면 주식 투자자도 쪽박 차기는 마찬가지다. 속된 말로 도긴개긴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더라도 주식시장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논리는 궤변이다. 이를 알고 얘기하는 것은 물건을 팔기 위한 멍든 영혼의 상술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는 게 좋다.
하지만 부동산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섣부른 부동산 투자는 당신을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어서다. 하우스 푸어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부동산은 당신을 영원히 지켜주지 않는다. 부동산은 주식 같은 금융자산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수익도 낮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장기적으로 주식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7~8%, 부동산과 채권 투자 수익률은 3~4% 정도다. 하지만 주식이나 채권은 안전한가. 테마주나 작전주 같은 주식에 손을 댔다가 돌이키지 못할 후회를 하는 사람이 주위에 어디 한두 사람인가. 안전한 고수익을 안겨주는 마법의 상품은 지구상에 없다.
그래서 나이 들어 부동산을 바라보는 생각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만큼 부동산 투자는 최선보다는 차선으로 접근하고 고수익보다는 보험으로 인식할 때 마음이 편할 것이다. 또 부동산은 투자보다는 필요로 구매할 때 여유와 편안함을 안겨줄 뿐 만 아니라 가격 스트레스도 덜 겪게 된다. 금융지식이 많고 강철심장을 가진 소유자라면 부동산보다는 금융자산을 통해 부를 늘리는 게 빠르다. 하지만 노후 들어서는 인지능력과 판단력이 떨어지므로 시시각각 변하는 금융자산을 운용하는 일은 힘에 벅찰 수밖에 없다. 부동산은 주가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되고 실물자산이니 태풍이 불어와도 허공으로 사라지는 일은 없어 마음이 편하므로 심리적인 측면에서 메리트가 적지 않다. 즉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고 관리에 어려움이 없다면, 부동산은 노후생활 방편에 적절한 활용의 대상이다. 부동산은 자산설계에서 플랜 A(최선)가 아니라 적어도 플랜 B(차선)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부동산은 플랜 A(최선)가 아니라 플랜 B(차선)다
-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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