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양 제거하지 말고 통제하라”
“종양 제거하지 말고 통제하라”
격세유전 이론에 따르면 암에 걸리면 세포가 원시적인 단세포 형태로 퇴행… 치료제 내성 경로의 진화를 약물로 예방해 몸 전체로 퍼지지 않게 해야 폴 데이비스는 암 연구의 문제점을 안다.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사전계획은 너무 적다는 점이다. 암 퇴치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암은 변함없이 불가해한 불치병으로 남아 있다. 그는 “돈을 쏟아부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돈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애리조나주립대학(ASU) 이론물리학자 (따라서 암연구 분야에는 어느 정도 이방인)인 그는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주장한다. “머리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데이비스 교수는 여러 해 동안 암을 깊이 고찰하면서 그것을 이해하는 혁신적인 접근법을 찾아냈다. 암은 복잡한 생명체가 등장하기 전 진화의 과거로 회귀하는 과정이라고 추론한다. 암에 걸리면 세포가 발전되고 복잡한 현 상태에서 퇴행해 10억 년 전의 단세포 생물에 더 가까워진다고 그는 추정한다.
그러나 암이 진화상의 회귀 다시 말해 격세유전(atavism, 선조의 형질이 나타나는 현상) 이론에 흥미를 느끼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반응이 훨씬 더 많다. 인간의 세포는 허파나 콩팥 또는 두뇌를 이루는 훨씬 더 복잡한 퍼즐의 구성요소다. 그 이론에 따르면 세포가 현재의 형태에서 물리적으로 퇴행해 조류(藻類)나 박테리아 비슷한 원시적인 상태가 된다. 많은 과학자에게는 황당무계한 이론이다. 그러나 데이비스 교수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증거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암이 정말로 우리 세포가 옛날의 단세포 조상들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질병이라면 현재의 암 치료방식은 모두 틀렸을 수 있다.
데이비스 교수는 2007년 생물학자 애나 바커의 전화를 받을 때까지 암 연구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부소장이던 바커는 데이비스 교수에게 새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암연구에 자연과학(화학·지리학·물리학 등)의 통찰을 융합하려는 프로젝트였다. 그에 따라 2009년 NCI의 후원으로 12개 기관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결성됐다. 비전문가들이 암에 관해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교환하는 자리다. ASU에 ‘물리과학·암생물학융합 센터’를 신설하자는 데이비스 교수의 제안이 네트워크에서 선정됐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됐는가? 생명은 어떻게 태동됐는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물리학 방법론이 몸에 배 있던 데이비스 교수는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하나에 비슷한 접근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는 두 가지 간단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암은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가? 우리가 암이라고 부르는 기이한 통제 불능의 세포 성장에 관해 수십 년 동안 연구하며 100만 건 이상의 과학논문이 발표됐지만 이런 근본적인 미스터리를 파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데이비스 교수가 찾아낸 암의 기원에 관한 첫 실마리는 다세포 생물 전체, 다시 말해 박테리아 같은 단일 세포가 아닌 여러 개의 세포로 이뤄진 모든 생명체에 걸쳐 공통된 현상이라는 사실이었다. 암이 그렇게 많은 생물종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인류가 존재하기 오래 전에 진화했음을 시사한다. 데이비스 교수는 “암은 다세포 생물의 삶에 깊게 뿌리내렸다”고 말한다. 일례로 2014년 독일 킬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토마스 보슈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2종의 히드라에서 암을 발견했다. 히드라는 원시의 단세포 생물종에서 진화한 초창기 생명체다. 당시 보슈 교수는 “암은 지구상의 다세포 생물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암이 진화상 퇴행과정이라는 증거는 생물종 전반에 걸쳐 발생한다는 사실뿐이 아니다. 종양은 단세포 생물처럼 행동한다고 데이비스 교수는 말한다. 예컨대 암세포는 포유류 세포와 달리 사멸하도록 프로그램되지 않는다. 사실상 불멸의 속성을 지닌다. 또한 종양은 극히 적은 양의 산소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암이 10억~15억 년 전 대기중 산소가 극히 희박할 때 등장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고 데이비스 교수 연구팀은 믿는다(호주 우주생물학자 찰스 라인위버, ASU의 생물정보학 전문가 킴벌리 버시도 연구팀의 일원이다).
종양은 물질대사 방식도 보통 세포와 다르다. 당을 대단히 빠르게 에너지로 전환해 젖산을 만들어낸다. 보통 산소가 없을 때 일어나는 물질대사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이다. 다시 말해 암세포가 발효작용을 하는데 과학자들도 그 이유를 모른다. 이 같은 현상은 1931년 산소와 물질대사에 관한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 생화학자 오토 바르부르크의 이름을 따 바르부르크 효과(Warburg effect)로 불린다. 암의 최대 80%에서 바르부르크 효과가 나타난다. 과학자들은 많은 암이 바르부르크 효과에 의존해 살아가는 건 알지만 그 이유는 모른다. 종양의 기이한 물질대사 방식도 암의 고대 역사를 말해준다고 데이비스 교수는 믿는다. 종양이 마치 산소가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악성세포들이 만들어내는 산(acid)은 지구상에 생명체가 처음 등장한 원생대 때의 대기를 연상시키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격세유전 이론의 또 다른 주창자 마크 빈센트는 말한다. 이 두 생태계(종양 내와 고대 지구)의 유사성을 보고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있는 ‘런던 지역 암센터’ 종양내과의인 빈센트는 산의 배출이 암세포의 ‘원시적 특성’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었다. 암세포가 이런 산성 환경에 의존해 생존한다는 사실(빈센트 박사는 “암세포가 이 산을 이용해 우리 몸을 먹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은 암이 진화상 퇴행이라는 이론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호주 피터 맥칼럼 암연구소의 컴퓨터 기반 암 생물학자 데이비드 구드 연구팀은 단세포 생물에 존재하는 유전자들(이들의 아주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지표)을 조사했다. 여러 유형의 암 유전체에 이 유전자들이 널리 나타난 반면 뒤에 등장한 유전자는 종양의 성장과 기능에 연관성이 적음을 알아냈다.암이 현재에서 과거 생명체로의 역행과정이라면 무엇이 그런 과정을 촉발했을까? 데이비스 교수는 신체가 손상되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 퇴행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는 컴퓨터가 하드웨어 오작동을 일으켜 안전모드로 재부팅되는 데 비유한다. 암도 같은 패턴을 따라 손상 후 단세포 ‘안전모드’로 시작된다고 데이비스 교수는 말한다. 하지만 하드웨어 이상이 아니라 DNA 복제 오류가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암은 “아주 오랜 고대에 뿌리를 둔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데이비스 교수는 말한다.
후생동물(다세포 동물)에서 원생동물(단세포 생물)로 암세포의 전환은 “무작위 변화의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고 구드 연구원은 말한다. 그보다는 생존 본능이 암세포를 더 원시적인 유전체로 향하게 한다. 구드 연구원은 “더 원시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면 암세포가 더 빨리 분열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환경 압력에 적응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관점은 암을 유전병으로 여기는 현재의 암 패러다임과는 완전히 다르다. 유전된 기형 또는 때때로 환경의 발암물질로 야기되는 자연발생적이고 예측 불가한 유전자 변화는 세포의 정상적인 활동에 이상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생성한다. 때로는 세포분열 신호전달을 담당하는 단백질의 기능이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또는 세포소멸 신호가 영영 안 떨어지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그런 유전적 변이의 결과로 이상을 일으킨 경로를 수십 개 발견했다.
최근의 치료제 개발 노력은 그런 경로를 겨냥해 세포분열을 막아 죽게 하거나 종양의 성장을 중단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결과는 희비가 교차했다. 유방암의 HER2 돌연변이, 폐암의 ALK 돌연변이, 흑색종의 BRAF 돌연변이를 공략하는 신약은 생명을 연장한다.
그러나 이른바 표적요법의 혜택은 크지 않았다. NCI에 따르면 2004~2013년 암 사망률은 약 13% 줄었지만 전체 사망자 수는 여전히 엄청나게 많다. 지난해 미국에서 약 170만 명이 암 진단을 받고 60만 명 가까이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그런 발전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랐다. 암치료비 지출은 1990년 이후 2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미국에선 연간 1250억 달러를 웃돌며 2020년에는 173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표적요법 비용은 환자 당 연간 6만5000달러에 달하지만 생명연장 효과는 2~3개월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데이비스 교수는 큰돈을 들여 표적 치료법에만 집중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 신약들은 암의 약점보다는 강점, 아킬레스건보다는 근육의 공격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멈추지 않고 세포분열을 할 수 있게 하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을 공격하는 약이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세포분열이 존재하는 한 그에 대한 위협도 항상 존재해 왔다. 그는 “생명체가 그런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은 지난 40억 년 동안 진화해 왔다”고 말한다. 종양은 신약의 스트레스를 우회하는 데 기막힌 수완을 발휘한다. 유전적 기형을 일으키는 식으로 분열 능력을 유지한다. 종양의 이런 강점은 암 환자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종양 세포에 내성이 생겨 한때 강력했던 치료제들이 듣지 않으면서 치료 옵션이 모두 바닥나게 된다.
격세유전 이론은 새 접근법을 예고한다. 가능한 최소 분량의 약물을 종양에 투여하면 치료제 내성 경로의 진화를 예방해 암이 몸 전체로 퍼지지 않게 한다. 데이비스 교수는 “종양을 제거할 필요 없이 그것을 이해하고 통제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빈센트 박사는 암세포가 조성하는 산성 환경과 산소결핍 내성 같은 암세포의 다른 특징을 이용하는 방법을 구상한다. 예컨대 산에 의해 활성화된 약물이 정상 조직을 배제하고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다.
바르부르크 효과는 암세포 물질대사 배후의 요인들을 겨냥해 또 다른 공격 통로를 제공할 수 있다. 일반적인 과정과 전혀 다른 방법이다. 암이 이 같은 공략법에 취약하다는 증거가 늘고 있다. ‘메모리얼 슬로운-케티링 암센터’의 크레이그 톰슨 사장 겸 CEO는 최근 아지오스 제약사를 세웠다. 급성골수성백혈병(acute myelogenous leukemia)에서 물질대사를 일으키는 변이 효소에 작용하는 신약을 테스트 중이다.
과학자들은 종양에 대한 산소결핍 환경 측면도 연구해왔다. 전이암을 가진 생쥐 대상의 연구에서 지방이 많고 탄수화물은 극히 적은 먹이에 순수 즉 고압산소를 결합했더니 생존기간이 늘어났다. 고압산소 요법의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결과도 여럿 나왔다. 그러나 초기 데이터가 아직 충분하지 않고 엄격한 임상증거가 부족해 대안 요법으로 여긴다. 종양 내의 산성 환경을 치료법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한 과학 연구는 아직 없다. 격세유전 이론은 치료법의 의미 있는 발전으로 구체화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그런 미래를 예측하는 종양학자는 많지 않다. 시카고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우청이는 격세유전 이론을 “극단적인 입장”이라고 평한다. 데이비스 교수가 격세유전 모델을 뒷받침하려고 ‘반복설(recapitulation theory)’을 언급한 일도 과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반복설은 인간의 배아에게 아가미·꼬리·난황낭 등의 퇴화된 장기가 일시적으로 생긴다는 이론이다. 데이비스 교수는 “생물학계의 놀림감이 됐다”고 말했다.
중국 중산대학의 생물학자 허숑레이 연구팀은 다세포 유전자가 기능을 상실하고 진화로 얻은 복잡성이 사라져 종양이 단세포 생물과 비슷해질 때 암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간다고 유전자 분석을 했다. 그러나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저자들은 암세포가 6억여 년 전의 ‘태고적 선조’로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역진화(reverse evolution)’ 이론은 일반적인 프레임워크일 뿐이며 암 발달과 성장을 촉진하는 다층적인 과정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우청이 박사는 이 연구를 데이비스 교수와 빈센트 박사의 연구보다 더 ‘신뢰성 높다’고 평한다.
데이비스 교수는 그런 반론에도 흔들림이 없다. 그는 “뭐라 해도 좋다”며 “원래부터 외부의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데이비스 교수는 그런 비판이 주로 영역다툼과 금전에 뿌리를 둔다고 본다. “암은 수십 년 동안 존재해온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다. 상당한 기득권이 존재한다.” 그는 NCI 프로그램에 5년간 참여한 뒤 지금은 낸트워크스(NantWorks)의 후원을 받아 격세유전 모델 개발 연구를 계속한다. 낸트워크스는 과학자이자 억만장자 투자자 패트릭 순시옹이 소유한 방대한 민간 헬스케어 업체다. 순시옹은 유방암 치료제 파클리탁셀의 약효를 높이는 개량 연구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시카고대학에서 신약치료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종양학자 마크 러테인은 현재의 치료제는 대부분 너무 독하고 비싸고 실질적인 발전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암 치료비를 줄이는 신약 요법을 테스트하는 비영리단체 암치료가치컨소시움(Value in Cancer Care Consortium)을 설립했다. 그는 “새로운 약과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스 교수와 거의 같은 시기에 처음 격세유전 이론에 관한 통찰을 얻은 빈센트 박사도 그 이론을 연구 중이다. 그는 단세포 현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이 직접 생물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건강한 세포와 암세포의 극명한 차이는 진화 계통수의 곁가지를 바꿔 탔다기보다는 나무를 완전히 뛰어넘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내게는 다른 생명체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빈센트 박사는 DNA 변이가 종종 암을 유발하는 건 시인하면서도 그 유전적 패러다임은 “대단히 불완전하다”고 본다.
격세유전 패러다임으로 환자의 삶이 궁극적으로 향상될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전문가는 암을 둘러싼 정신적 장벽의 제거에 가치를 둔다. “나 같은 종양학자들은 실패했다. 이 끔찍한 질병에 대해 사실상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 로렌스 J. 엘리슨 혁신의학 연구소를 이끌며 데이비스 교수와 암에 관한 새로운 통찰의 필요성에 관한 논문을 공동 저술한 데이비드 아거스 소장의 말이다. 데이비스 교수는 이 격세유전 이론이 암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로 뭔가 큰 발견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제시카 웨프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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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 교수는 여러 해 동안 암을 깊이 고찰하면서 그것을 이해하는 혁신적인 접근법을 찾아냈다. 암은 복잡한 생명체가 등장하기 전 진화의 과거로 회귀하는 과정이라고 추론한다. 암에 걸리면 세포가 발전되고 복잡한 현 상태에서 퇴행해 10억 년 전의 단세포 생물에 더 가까워진다고 그는 추정한다.
그러나 암이 진화상의 회귀 다시 말해 격세유전(atavism, 선조의 형질이 나타나는 현상) 이론에 흥미를 느끼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반응이 훨씬 더 많다. 인간의 세포는 허파나 콩팥 또는 두뇌를 이루는 훨씬 더 복잡한 퍼즐의 구성요소다. 그 이론에 따르면 세포가 현재의 형태에서 물리적으로 퇴행해 조류(藻類)나 박테리아 비슷한 원시적인 상태가 된다. 많은 과학자에게는 황당무계한 이론이다. 그러나 데이비스 교수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증거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암이 정말로 우리 세포가 옛날의 단세포 조상들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질병이라면 현재의 암 치료방식은 모두 틀렸을 수 있다.
데이비스 교수는 2007년 생물학자 애나 바커의 전화를 받을 때까지 암 연구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부소장이던 바커는 데이비스 교수에게 새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암연구에 자연과학(화학·지리학·물리학 등)의 통찰을 융합하려는 프로젝트였다. 그에 따라 2009년 NCI의 후원으로 12개 기관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결성됐다. 비전문가들이 암에 관해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교환하는 자리다. ASU에 ‘물리과학·암생물학융합 센터’를 신설하자는 데이비스 교수의 제안이 네트워크에서 선정됐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됐는가? 생명은 어떻게 태동됐는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물리학 방법론이 몸에 배 있던 데이비스 교수는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하나에 비슷한 접근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는 두 가지 간단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암은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가? 우리가 암이라고 부르는 기이한 통제 불능의 세포 성장에 관해 수십 년 동안 연구하며 100만 건 이상의 과학논문이 발표됐지만 이런 근본적인 미스터리를 파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데이비스 교수가 찾아낸 암의 기원에 관한 첫 실마리는 다세포 생물 전체, 다시 말해 박테리아 같은 단일 세포가 아닌 여러 개의 세포로 이뤄진 모든 생명체에 걸쳐 공통된 현상이라는 사실이었다. 암이 그렇게 많은 생물종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인류가 존재하기 오래 전에 진화했음을 시사한다. 데이비스 교수는 “암은 다세포 생물의 삶에 깊게 뿌리내렸다”고 말한다. 일례로 2014년 독일 킬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토마스 보슈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2종의 히드라에서 암을 발견했다. 히드라는 원시의 단세포 생물종에서 진화한 초창기 생명체다. 당시 보슈 교수는 “암은 지구상의 다세포 생물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암이 진화상 퇴행과정이라는 증거는 생물종 전반에 걸쳐 발생한다는 사실뿐이 아니다. 종양은 단세포 생물처럼 행동한다고 데이비스 교수는 말한다. 예컨대 암세포는 포유류 세포와 달리 사멸하도록 프로그램되지 않는다. 사실상 불멸의 속성을 지닌다. 또한 종양은 극히 적은 양의 산소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암이 10억~15억 년 전 대기중 산소가 극히 희박할 때 등장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고 데이비스 교수 연구팀은 믿는다(호주 우주생물학자 찰스 라인위버, ASU의 생물정보학 전문가 킴벌리 버시도 연구팀의 일원이다).
종양은 물질대사 방식도 보통 세포와 다르다. 당을 대단히 빠르게 에너지로 전환해 젖산을 만들어낸다. 보통 산소가 없을 때 일어나는 물질대사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이다. 다시 말해 암세포가 발효작용을 하는데 과학자들도 그 이유를 모른다. 이 같은 현상은 1931년 산소와 물질대사에 관한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 생화학자 오토 바르부르크의 이름을 따 바르부르크 효과(Warburg effect)로 불린다. 암의 최대 80%에서 바르부르크 효과가 나타난다. 과학자들은 많은 암이 바르부르크 효과에 의존해 살아가는 건 알지만 그 이유는 모른다. 종양의 기이한 물질대사 방식도 암의 고대 역사를 말해준다고 데이비스 교수는 믿는다. 종양이 마치 산소가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악성세포들이 만들어내는 산(acid)은 지구상에 생명체가 처음 등장한 원생대 때의 대기를 연상시키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격세유전 이론의 또 다른 주창자 마크 빈센트는 말한다. 이 두 생태계(종양 내와 고대 지구)의 유사성을 보고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있는 ‘런던 지역 암센터’ 종양내과의인 빈센트는 산의 배출이 암세포의 ‘원시적 특성’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었다. 암세포가 이런 산성 환경에 의존해 생존한다는 사실(빈센트 박사는 “암세포가 이 산을 이용해 우리 몸을 먹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은 암이 진화상 퇴행이라는 이론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호주 피터 맥칼럼 암연구소의 컴퓨터 기반 암 생물학자 데이비드 구드 연구팀은 단세포 생물에 존재하는 유전자들(이들의 아주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지표)을 조사했다. 여러 유형의 암 유전체에 이 유전자들이 널리 나타난 반면 뒤에 등장한 유전자는 종양의 성장과 기능에 연관성이 적음을 알아냈다.암이 현재에서 과거 생명체로의 역행과정이라면 무엇이 그런 과정을 촉발했을까? 데이비스 교수는 신체가 손상되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 퇴행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는 컴퓨터가 하드웨어 오작동을 일으켜 안전모드로 재부팅되는 데 비유한다. 암도 같은 패턴을 따라 손상 후 단세포 ‘안전모드’로 시작된다고 데이비스 교수는 말한다. 하지만 하드웨어 이상이 아니라 DNA 복제 오류가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암은 “아주 오랜 고대에 뿌리를 둔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데이비스 교수는 말한다.
후생동물(다세포 동물)에서 원생동물(단세포 생물)로 암세포의 전환은 “무작위 변화의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고 구드 연구원은 말한다. 그보다는 생존 본능이 암세포를 더 원시적인 유전체로 향하게 한다. 구드 연구원은 “더 원시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면 암세포가 더 빨리 분열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환경 압력에 적응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관점은 암을 유전병으로 여기는 현재의 암 패러다임과는 완전히 다르다. 유전된 기형 또는 때때로 환경의 발암물질로 야기되는 자연발생적이고 예측 불가한 유전자 변화는 세포의 정상적인 활동에 이상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생성한다. 때로는 세포분열 신호전달을 담당하는 단백질의 기능이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또는 세포소멸 신호가 영영 안 떨어지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그런 유전적 변이의 결과로 이상을 일으킨 경로를 수십 개 발견했다.
최근의 치료제 개발 노력은 그런 경로를 겨냥해 세포분열을 막아 죽게 하거나 종양의 성장을 중단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결과는 희비가 교차했다. 유방암의 HER2 돌연변이, 폐암의 ALK 돌연변이, 흑색종의 BRAF 돌연변이를 공략하는 신약은 생명을 연장한다.
그러나 이른바 표적요법의 혜택은 크지 않았다. NCI에 따르면 2004~2013년 암 사망률은 약 13% 줄었지만 전체 사망자 수는 여전히 엄청나게 많다. 지난해 미국에서 약 170만 명이 암 진단을 받고 60만 명 가까이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그런 발전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랐다. 암치료비 지출은 1990년 이후 2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미국에선 연간 1250억 달러를 웃돌며 2020년에는 173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표적요법 비용은 환자 당 연간 6만5000달러에 달하지만 생명연장 효과는 2~3개월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데이비스 교수는 큰돈을 들여 표적 치료법에만 집중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 신약들은 암의 약점보다는 강점, 아킬레스건보다는 근육의 공격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멈추지 않고 세포분열을 할 수 있게 하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을 공격하는 약이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세포분열이 존재하는 한 그에 대한 위협도 항상 존재해 왔다. 그는 “생명체가 그런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은 지난 40억 년 동안 진화해 왔다”고 말한다. 종양은 신약의 스트레스를 우회하는 데 기막힌 수완을 발휘한다. 유전적 기형을 일으키는 식으로 분열 능력을 유지한다. 종양의 이런 강점은 암 환자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종양 세포에 내성이 생겨 한때 강력했던 치료제들이 듣지 않으면서 치료 옵션이 모두 바닥나게 된다.
격세유전 이론은 새 접근법을 예고한다. 가능한 최소 분량의 약물을 종양에 투여하면 치료제 내성 경로의 진화를 예방해 암이 몸 전체로 퍼지지 않게 한다. 데이비스 교수는 “종양을 제거할 필요 없이 그것을 이해하고 통제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빈센트 박사는 암세포가 조성하는 산성 환경과 산소결핍 내성 같은 암세포의 다른 특징을 이용하는 방법을 구상한다. 예컨대 산에 의해 활성화된 약물이 정상 조직을 배제하고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다.
바르부르크 효과는 암세포 물질대사 배후의 요인들을 겨냥해 또 다른 공격 통로를 제공할 수 있다. 일반적인 과정과 전혀 다른 방법이다. 암이 이 같은 공략법에 취약하다는 증거가 늘고 있다. ‘메모리얼 슬로운-케티링 암센터’의 크레이그 톰슨 사장 겸 CEO는 최근 아지오스 제약사를 세웠다. 급성골수성백혈병(acute myelogenous leukemia)에서 물질대사를 일으키는 변이 효소에 작용하는 신약을 테스트 중이다.
과학자들은 종양에 대한 산소결핍 환경 측면도 연구해왔다. 전이암을 가진 생쥐 대상의 연구에서 지방이 많고 탄수화물은 극히 적은 먹이에 순수 즉 고압산소를 결합했더니 생존기간이 늘어났다. 고압산소 요법의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결과도 여럿 나왔다. 그러나 초기 데이터가 아직 충분하지 않고 엄격한 임상증거가 부족해 대안 요법으로 여긴다. 종양 내의 산성 환경을 치료법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한 과학 연구는 아직 없다. 격세유전 이론은 치료법의 의미 있는 발전으로 구체화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최신 요법에 기회를 준다
중국 중산대학의 생물학자 허숑레이 연구팀은 다세포 유전자가 기능을 상실하고 진화로 얻은 복잡성이 사라져 종양이 단세포 생물과 비슷해질 때 암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간다고 유전자 분석을 했다. 그러나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저자들은 암세포가 6억여 년 전의 ‘태고적 선조’로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역진화(reverse evolution)’ 이론은 일반적인 프레임워크일 뿐이며 암 발달과 성장을 촉진하는 다층적인 과정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우청이 박사는 이 연구를 데이비스 교수와 빈센트 박사의 연구보다 더 ‘신뢰성 높다’고 평한다.
데이비스 교수는 그런 반론에도 흔들림이 없다. 그는 “뭐라 해도 좋다”며 “원래부터 외부의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데이비스 교수는 그런 비판이 주로 영역다툼과 금전에 뿌리를 둔다고 본다. “암은 수십 년 동안 존재해온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다. 상당한 기득권이 존재한다.” 그는 NCI 프로그램에 5년간 참여한 뒤 지금은 낸트워크스(NantWorks)의 후원을 받아 격세유전 모델 개발 연구를 계속한다. 낸트워크스는 과학자이자 억만장자 투자자 패트릭 순시옹이 소유한 방대한 민간 헬스케어 업체다. 순시옹은 유방암 치료제 파클리탁셀의 약효를 높이는 개량 연구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시카고대학에서 신약치료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종양학자 마크 러테인은 현재의 치료제는 대부분 너무 독하고 비싸고 실질적인 발전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암 치료비를 줄이는 신약 요법을 테스트하는 비영리단체 암치료가치컨소시움(Value in Cancer Care Consortium)을 설립했다. 그는 “새로운 약과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스 교수와 거의 같은 시기에 처음 격세유전 이론에 관한 통찰을 얻은 빈센트 박사도 그 이론을 연구 중이다. 그는 단세포 현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이 직접 생물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건강한 세포와 암세포의 극명한 차이는 진화 계통수의 곁가지를 바꿔 탔다기보다는 나무를 완전히 뛰어넘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내게는 다른 생명체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빈센트 박사는 DNA 변이가 종종 암을 유발하는 건 시인하면서도 그 유전적 패러다임은 “대단히 불완전하다”고 본다.
격세유전 패러다임으로 환자의 삶이 궁극적으로 향상될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전문가는 암을 둘러싼 정신적 장벽의 제거에 가치를 둔다. “나 같은 종양학자들은 실패했다. 이 끔찍한 질병에 대해 사실상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 로렌스 J. 엘리슨 혁신의학 연구소를 이끌며 데이비스 교수와 암에 관한 새로운 통찰의 필요성에 관한 논문을 공동 저술한 데이비드 아거스 소장의 말이다. 데이비스 교수는 이 격세유전 이론이 암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로 뭔가 큰 발견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제시카 웨프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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