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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만나 위상 달라진 ‘잔돈’] 잔돈으로 펀드·주식 투자하고 보험도 들고

[핀테크 만나 위상 달라진 ‘잔돈’] 잔돈으로 펀드·주식 투자하고 보험도 들고

100원대 잔돈도 자동 저축… 2030세대 사이 ‘짠테크’로 유행


소득수준이 증가하고 물가가 오르면서 동전(銅錢)은 진작 애물단지가 됐다. 심지어 1000원짜리 몇장도 그저 ‘잔돈’ 신세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우리의 경제생활의 척도였던 적도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물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잔돈이 핀테크(fintech·금융 기술), 인슈어테크(InsureTech·보험 기술)를 만나 우리 생활 속으로 되돌아왔다. 무심코 지나친 잔돈이 어느 새 ‘태산’이 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지켜주기도 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를 ‘잔돈 금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핀테크·인슈어테크를 만나 잔돈의 위상이 확 달라진 것이다.
사진:© gettyimagesbank
서울에 사는 주부 심모씨(40)는 요즘 잔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 사실, 모은다기보다는 편의점 등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발생하는 1000원 미만의 잔돈이 토스카드와 연결된 은행 계좌에 자동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잔돈 쌓는 재미가 쏠쏠하다. 심씨는 “잔돈이 자동으로 은행에 쌓이는데, 3개월여 만에 10만원이나 됐다”며 “잔돈을 챙기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고 잔돈이 쌓이는 재미가 꽤 있다”고 말했다. 심씨가 사용하는 토스카드는 핀테크 회사인 비바리퍼블리카의 서비스다.

은행에 있는 돈을 사이버머니(토스머니)로 충전해 사용하는 체크카드다. 사용자가 편의점에서 3200원을 결제하면, 800원을 자동 인출해 지정 계좌에 저금해 준다. 현금으로 결제하고 돌려받는 실제 잔돈(거스름돈)은 아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토스카드는 지난 7월 출시 3개월 만에 100만장이 발급됐다. 대형 카드사의 흥행 기준치인 ‘월 20만 장’을 훌쩍 뛰어 넘은 것이다. 같은 기간 결제액도 3200억원에 이른다.
 핀테크 업체에 은행·보험사도 가세
일상에서 발생하는 자투리 돈인 잔돈을 손쉽게 저금하거나 투자할 수 있는 이른바 ‘잔돈 금융’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가 시작한 잔돈 금융은 이제 기존 시중은행으로 번지고 있다. 여기에 P2P금융(대출-투자자 중개 서비스) 업체와 보험사까지 가세하면서 외형을 키우고 있다. 이 같은 잔돈 금융의 확산은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확산과 정보통신기술(ICT) 발달 덕에 핀테크·인슈어테크 산업이 급성장한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경제가 저성장을 이어가면서 알뜰 ‘짠테크(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족이 확산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잔돈 금융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더 세를 키우면서 잔돈의 위상도 변화를 맞을 것으로 내다본다. 장명현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잔돈 금융은 벌이가 없는 대학생이나 신용등급이 낮은 사회 초년생에게 안성맞춤인 상품”이라며 “앞으로 2030세대에게 문턱을 낮춘 상품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잔돈은 크게 금융과 투자, 보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우선 금융 분야에서는 토스카드처럼 일상에서 발생하는 잔돈을 모아 주식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서비스가 확산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인 티클은 개인 신용카드를 티클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하면 토스카드처럼 1000원 이하로 발생하는 잔돈을 모아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송금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예컨대 42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결제했다면, 총 5000원을 결제하고 나머지 800원을 소비자가 지정한 CMA 계좌에 저금하는 식이다. 현재 우리·기업·BC카드 등 시중 신용카드 대부분을 연결할 수 있다. IBK기업은행도 신용카드를 결제할 때마다 사용자가 미리 정한 금액이나 1만원 미만의 잔돈을 적금이나 펀드로 자동이체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 중이다.

제2금융권에서도 잔돈 금융이 활발하다. 웰컴저축은행은 최근 사용자가 미리 정한 예금통장에서 1000원 미만이나 1만원 미만 잔돈을 이체할 수 있는 스마트폰 전용 상품(잔돈적립 서비스)을 내놨다. 가령 지정계좌에 1만900원이 있으면 900원이 자동으로 적립된다. 이 상품은 납입금액이 100만원 이상이고 잔돈 적립 횟수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만기 때 세후 원리금을 1만원 단위로 높여 지급하는 게 특징이다. 만기 때 잔돈 1원이 1만원이 되는 것이다.

애물단지인 동전을 포인트로 전환해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핀테크 업체인 우디는 국내 잔돈은 물론 미국 등 18개 나라의 잔돈을 포인트로 전환해 주고 있다. 잔돈을 자판기(키오스크)에 넣고 롯데리아나 스타벅스 등에서 쓸 수 있는 포인트나 네이버페이 상품권으로 바꾸는 것이다. 해외 여행 후 남은 계륵 같은 외화도 알뜰하게 모을 수 있는 게 이 서비스의 장점이다.
 만기 때 1원이 1만원으로
잔돈으로 해외 주식을 사거나 목돈이 필요한 사람·기업에 대출을 할 수도 있다. 신한카드·신한금융투자는 신용카드 소비자가 카드를 결제할 때 생기는 잔돈을 모아 해외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 서비스는 카드사가 카드 이용자의 소비 정보를 금융투자회사가 보유한 투자활동 데이터와 결합·분석해 소비자에게 맞춤형 해외 주식을 추천하고, 금융투자회사가 고객의 주문에 따라 해외 주식에 소액으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잔돈을 모아 아마존·애플 등의 주식을 최소 0.01주부터 소수점 단위로 투자할 수 있다.

신한카드는 사용자가 하루 2만원 한도 내에서 잔돈을 1만원 미만이나 1000원 미만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카드 결제 건별 자투리 금액을 1000원 미만으로 설정한 사용자가 스타벅스에서 4600원짜리 커피를 구입하면 5000원이 결제되면서 커피값을 뺀 400원이 해외 주식 투자에 쓰이는 것이다. 이 서비스는 금융 당국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기도 했다.

P2P금융 업체는 최소 투자 금액을 ‘잔돈’ 수준으로 확 끌어내리고 있다. 소액 투자가 가능한 것은 P2P금융의 장점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소액이 아니라 잔돈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피플펀드는 최근 담보채권 최소 투자 가능 금액을 10만원에서 1만원으로 조정했다. 어니스트펀드도 1만원부터 투자가 가능하다. 렌딧은 아예 최소 투자 금액을 5000원으로 끌어내렸다. 잔돈을 투자하면 과세 때 원단위 세금이 절사되는 효과와 함께 원금 손실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의 지속적인 요청에 따라 더 많은 투자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최소 투자 금액을 낮추고 있다”며 “학생은 용돈으로 투자할 수 있고 2030세대는 남는 잔돈으로 다양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출 투자, 5000원으로도 가능
사진:© gettyimagesbank
보험시장에서도 잔돈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인슈어테크 업체인 보맵은 귀가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보장하는 보험을 최근 선보였는데, 보험료가 700원이다. 잔돈으로 들 수 있는 보험이지만 ▶자동차 교통상해 4주 이상 진단보상금 ▶강력 범죄보상금 ▶성폭력범죄보상금 ▶교통상해입원일당 등 보장성도 나쁘지 않다. 이 상품은 특히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클릭 몇번 만으로 지인에게 선물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삼성생명이 최근 내놓은 s교통상해보험도 월 보험료가 1090원에 불과하다. 3년 만기 일시납 상품인데 대중교통재해 사망보험금으로 1000만원, 대중교통사고 장해보험금으로 30만~1000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류준우 보맵 대표는 “소액 보험은 가치 지향적인 소비를 하는 2030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설계했다”며 “보험마켓을 통해 자동차나 여행자, 반려견을 위한 맞춤형 보험도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잔돈을 활용한 금융·보험 상품은 사실 과거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은행이나 보험 설계사를 만나야 하는 등 번거롭고, 상품 자체의 매력도 크지 않아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잠깐 나왔다 사라지거나, 이벤트성 상품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바일 기기를 통한 금융서비스 보편화와 핀테크·인슈어테크 산업 발전으로 잔돈 금융이 더 편리하고, 더 똑똑해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삼성생명의 s교통상해보험만 해도 1000원짜리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보험설계사를 따로 만나고, 종이 서류에 사인해야 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보험 가입이 가능해지면서 금융상품 가입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이 덕에 1000원짜리 보험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바일 기기에 익숙하고 경기 불황에 짠테크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2030세대가 자연스레 주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웰컴저축은행의 잔돈적립서비스는 30대 가입자의 비중이 50.5%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어니스트펀드의 올 상반기 개인투자자의 누적수익금은 80억7647만원인데, 이 중 30대가 30억8416만원을 차지해 연령대별 비중이 가장 컸다. 20대가 17억2852만원, 10대 이하도 2932만원을 가져갔다. 보맵의 귀가보험도 62.5%가 2030세대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사회 초년생 및 금융 소외 계층에게 합리적 지출 가이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에 쉽게 접근하는 넛지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급결제 시장 연동 상품 더 늘어날 듯
전문가들은 잔돈을 활용한 금융 상품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모바일 금융 거래가 보편화하고, 간편결제 등 지급 결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모바일뱅킹 등록자는 1억607만 명으로 1억 명을 돌파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6.7% 증가한 것이다. 모바일뱅킹을 통한 계좌이체 결제금액도 일평균 9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18.6% 늘었다. 지급결제 시장은 간편결제를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일평균 신용카드 사용액은 1조8620억원으로 1년 전보다 5.8% 늘었다. 같은 기간 간편결제 이용액은 1260억원으로 1년 전 677억원에서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지급결제 시장과 연동된 잔돈 금융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금융사도 해외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참고해 국내 금융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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