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변수(2) - 국민연금의 선택] 표 대결 예상 주총에 ‘캐스팅보트’
[주총 변수(2) - 국민연금의 선택] 표 대결 예상 주총에 ‘캐스팅보트’
최대주주 9곳, 2대주주 170곳… 태생적 한계 딛고 적극적 주주권 행사 나설까 올해 주주총회 시즌의 또다른 주인공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2019년 12월 말 ‘국민연금기금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의결한 데 이어 최근에는 수탁자책임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하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동시에 2월 1일부터 적용된 주식 대량 보유 보고 의무 규정에 맞춰 일부 기업에 대한 투자목적을 변경하면서 해당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견을 낼 가능성도 커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며 못미더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국민연금은 2019년 11월말 기준 924조원에 이르는 자산을 굴리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주식에 투자한 자산만 해도 124조원이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국민연금 지분율이 5% 이상인 곳은 300곳이 넘는다. 이렇게 덩치가 크다 보니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 들어가는 거래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특정 회사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동반 매도세가 나타나면서 주가 하락폭이 커지기도 한다. 이런 탓에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기업가치가 심하게 훼손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라도 선뜻 매도에 나서기 어렵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필요성이 커졌다. 국민연금은 시장에 불필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보유 중인 주식을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자본시장법에서는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고 있을 경우 보유 주식수와 보유 목적 등을 보고하도록 하는 속칭 ‘5%룰’이 있다. 덕분에 국민연금의 지분공시를 통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을 유추할 수 있다. 더구나 지난해 9월 금융위원회가 주식 대량 보유 보고 의무, ‘5%룰’을 완화하면서 새롭게 보유목적에는 ‘일반투자’가 추가됐다. 그 전까지는 특정 회사에 5% 이상 주식을 보유할 경우 ‘경영권참여’와 ‘단순투자’ 가운데 선택해야 했는데 이 경우 쉽게 경영권참여를 선택할 수 없었다.
기존 ‘5%룰’에서는 지분 보유 목적으로 ‘경영권참여’를 선택할 경우 공시 의무가 강화될 뿐 아니라 6개월 내 단기 매매 차익도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 사실상 이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단순투자는 의결권 행사나 주주명부 열람 등 주식 1주만 갖고 있어도 행사가능한 권리만 허용된다. 반면 새로 추가된 ‘일반투자’는 경영권 변화를 수반하는 강도 높은 주주제안이 아닌 배당 요구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임원 위법행위에 대한 해임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도 변경이 적용되고 일주일 만인 2월 7일 국민연금은 지분공시를 내고 국내 주요 상장사 56곳의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보유 목적을 변경한 상장사 56곳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LG화학, 한화, 대림산업, 대한항공, 대림산업, 신한지주,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국내 산업별 대표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은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준비를 마친만큼 민간 금융업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했지만 국민연금이 이번 주주총회에서 실제로 주주제안에 나서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재무구조나 배당정책 개선 등의 주주제안을 내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에서는 주주총회에서 주주 제안을 내려면 주주총회 개최 6주 전까지 이사회에 안건을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3월초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회사에는 주주 제안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한 첫해에 충분한 준비 없이 무리하게 주주제안을 진행하다 역풍을 맞을 경우 부담도 감안해야 한다. 대신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벌어지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적극적으로 변화 중인 국민연금에 긍정적 시선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연금사회주의나 관치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지난 2019년 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민연금기금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의결하자 입장문을 내고 주주권 행사 강화에 앞서 정부 지배하에 있는 기금위 독립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국민연금법상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다. 현재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연직으로 맡는다.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가 민간기업을 지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월말 기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의 지위에 있는 기업은 KT와 포스코, 네이버, KT&G,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9곳이다. 2대주주로 있는 기업도 170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KT와 포스코, KT&G는 핵심 경영진이 바뀔 때 마다 관치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시장 원리보다는 정치적 결정에 흔들리기 쉽다는 지적에 정치권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국민연금을 정부에서 분리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최광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산하 특별법인이라는 현재 국민연금의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았는데 상장사들의 지배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안 그래도 복잡한 구조에서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추가하면 독립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며 운용 과정 전반을 시장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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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국민연금은 2019년 11월말 기준 924조원에 이르는 자산을 굴리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주식에 투자한 자산만 해도 124조원이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국민연금 지분율이 5% 이상인 곳은 300곳이 넘는다. 이렇게 덩치가 크다 보니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 들어가는 거래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특정 회사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동반 매도세가 나타나면서 주가 하락폭이 커지기도 한다. 이런 탓에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기업가치가 심하게 훼손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라도 선뜻 매도에 나서기 어렵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필요성이 커졌다.
보유 목적 변경 56개 기업 주총에 시선 집중
기존 ‘5%룰’에서는 지분 보유 목적으로 ‘경영권참여’를 선택할 경우 공시 의무가 강화될 뿐 아니라 6개월 내 단기 매매 차익도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 사실상 이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단순투자는 의결권 행사나 주주명부 열람 등 주식 1주만 갖고 있어도 행사가능한 권리만 허용된다. 반면 새로 추가된 ‘일반투자’는 경영권 변화를 수반하는 강도 높은 주주제안이 아닌 배당 요구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임원 위법행위에 대한 해임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도 변경이 적용되고 일주일 만인 2월 7일 국민연금은 지분공시를 내고 국내 주요 상장사 56곳의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보유 목적을 변경한 상장사 56곳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LG화학, 한화, 대림산업, 대한항공, 대림산업, 신한지주,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국내 산업별 대표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은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준비를 마친만큼 민간 금융업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했지만 국민연금이 이번 주주총회에서 실제로 주주제안에 나서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재무구조나 배당정책 개선 등의 주주제안을 내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에서는 주주총회에서 주주 제안을 내려면 주주총회 개최 6주 전까지 이사회에 안건을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3월초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회사에는 주주 제안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한 첫해에 충분한 준비 없이 무리하게 주주제안을 진행하다 역풍을 맞을 경우 부담도 감안해야 한다. 대신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벌어지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연금 사회주의’ 우려도 해소해야
국민연금법상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다. 현재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연직으로 맡는다.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가 민간기업을 지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월말 기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의 지위에 있는 기업은 KT와 포스코, 네이버, KT&G,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9곳이다. 2대주주로 있는 기업도 170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KT와 포스코, KT&G는 핵심 경영진이 바뀔 때 마다 관치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시장 원리보다는 정치적 결정에 흔들리기 쉽다는 지적에 정치권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국민연금을 정부에서 분리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최광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산하 특별법인이라는 현재 국민연금의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았는데 상장사들의 지배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안 그래도 복잡한 구조에서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추가하면 독립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며 운용 과정 전반을 시장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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