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의결없는 지주택 채무 보증 효력있을까 [임상영 부동산 법률토크]
대법원, 총회 의결 거치지 않은 채무 보증에 ‘무효’ 판결
‘지역주택조합’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지역주택조합이란 일정한 자격 조건을 갖춘 지역 주민이 조합을 구성해 공동으로 부지를 매입하고 아파트 등 주택을 건설하는 제도입니다. 일반분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데다 조합원들 각자가 원하는 동·호수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은 사업 추진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조합원이 부담하고, 사업 진행과정에서 조합원의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이후 탈퇴 및 납입금 환불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토지 확보와 조합원 모집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사업 기간이 한없이 늘어나기도 하고, 지역주택조합 임원들의 무리한 용역계약 체결 또는 채무보증 등으로 인해 조합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그에 따른 손실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이 떠안기 때문에 주택법 등 관련 법령에서는 집행부의 전횡 방지와 조합원들의 이익 도모를 위해 지역주택조합의 중요 의사 결정은 총회의 의결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조합의 총회 의결이 필요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주택조합장이 총회 의결 없이 해당 조합 명의로 계약을 체결했다면, 그 계약의 효력은 어떻게 될까요? 총회 의결이 없었으니 조합원들이 예상하지 못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그 계약의 효력을 무효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조합을 대표하는 조합장이 계약을 체결했으니 당연히 해당 계약이 이행되리라고 믿은 계약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하고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유효로 봐야 할까요?
최근 대법원이 선고한 판결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장이 A회사가 B에게 부담하고 있던 2억5000만원의 채무에 대해 조합 명의로 채무보증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A회사가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자 채권자 B는 보증인인 조합에 2억5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청구했는데, 조합은 채무보증에 관한 총회 의결이 없었다는 이유로 해당 채무보증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재건축조합의 경우 대법원은 “재건축조합의 조합장이 채무보증계약을 체결하면서 조합규약에서 정한 조합 임원회의 결의를 거치지 아니하였다거나 조합원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바로 그 보증계약이 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대법원 2007. 4. 19. 선고 2004다60072, 2004다60089 전원합의체 판결), 채권자인 B는 해당 채무보증 계약이 총회 의결이 필요한 사항인지 몰랐고 알 수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에 관한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조합의 채무보증 계약이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면 무효라고 판단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대법원 2022. 8. 25. 선고 2021다231734 판결).
“예산 외 조합원에 부담 주는 계약 시 총회 의결 거쳐야”
위 법령에 따르면 지역주택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조합 규약에 필수적인 총회 의결 사항으로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의 체결’을 명시하도록 해 이를 지역주택조합 설립 인가의 조건이자 필수적인 요건으로 강제하고 있는데요. 이에 따르면 지역주택조합은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는 한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의 체결 등의 법률 행위를 할 수 없는 법령상 제한하에서만 설립 인가 및 운영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지역주택조합과 그 조합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하려는 제3자는 사전에 총회 의결의 존부를 확인하는 조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의 체결’에 해당함에도 관련 법령과 이에 근거한 조합 규약에 정한 총회 의결 없이 이뤄진 법률 행위의 상대방으로서는 그 절차적 요건의 흠결을 과실 없이 알지 못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을 밝히지 못하는 한 절차적 요건의 충족을 전제로 하는 계약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는데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B가 지역주택조합과 2억5000만원에 달하는 채무보증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는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의 체결’에 해당하기 때문에 B로서는 채무보증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관련 법령 및 이에 근거한 조합 규약에 따라 당연히 조합의 총회 의결이 있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의무가 있었지만 이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채무보증 계약의 유효함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합과 거래하려는 자에게 조합 총회 의결이 필요한 사항인지, 총회 의결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도록 하는 것은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무주택 가구주들이 주택 마련을 위해 지역주택조합을 설립해 주택 건설 사업을 장기간 시행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 조합원들의 의사가 직접 반영될 수 있는 실질적인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소수 임원의 전횡을 사전에 방지하고 이를 통해 지역주택조합과 그 조합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관련 법령의 입법 취지와 목적을 고려하면 이러한 판결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 가능합니다.
따라서 지역주택조합과 거래하려는 자로서는 그 계약의 내용이 관련 법령 및 조합 규약에서 총회 의결 사항으로 명시한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의 체결’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총회 의결을 거쳤는지 등에 관하여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 필자는 법무법인 테오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건설 재경본부에서 건설·부동산 관련 지식과 경험을 쌓았으며 부산고등법원(창원) 재판연구원,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로 일했다.
임상영 변호사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2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3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
4“‘元’ 하나 잘못 보고”…中 여성, ‘1박 5만원’ 제주도 숙소에 1100만원 냈다
5'40세' 솔비, 결정사서 들은 말 충격 "2세 생각은…"
6"나 말고 딴 남자를"…前 여친 갈비뼈 부러뜨려
7다채로운 신작 출시로 반등 노리는 카카오게임즈
8"강제로 입맞춤" 신인 걸그룹 멤버에 대표가 성추행
9‘찬 바람 불면 배당주’라던데…배당수익률 가장 높을 기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