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는 어떻게 문화가 됐나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플레이어 중심주의’ 앞세운 라이엇 게임즈
체험 공간 만들고 음악·공연 등 문화 기획도
[허태윤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연봉을 받는 스포츠 스타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팬덤을 몰고 다닌 선수는? 미국 슈퍼볼 결승전 수준의 시청자를 가진 스포츠는? 넷플릭스에서 ‘오징어게임’을 밀어내고 전 세계 1위를 한 드라마는?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질문들의 답 뒤편에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LoL)가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전 세계 온라인 게임 시장의 40%를 석권한 멀티플레이어 온라인 배틀 아레나(MOBA)의 대표주자다. 이 게임은 이제 컴퓨터 게임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증거는 곳곳에 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프로 스포츠 스타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프로게이머 페이커(이상혁)다. 페이커는 연봉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75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프로게임단이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백지 수표를 건넸다는 일화도 있다. 중국의 한 프로게임단은 페이커를 영입하기 위해 200억원 이상을 제시했지만, 그가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뛰는 다른 프로게이머의 연봉도 억대다. 일렉트로닉 스포츠(e스포츠)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됐는데, 프로게이머들이 아시안게임에서 팬들을 몰고 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특히 페이커가 중국 공항에 도착하자, 그를 찾아온 팬들로 공항 곳곳은 북새통이었다.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선수촌에서도 1000명에 달하는 아시안게임 참가 선수들이 그에게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가 참가하는 ‘롤드컵’에서 이 게임의 인기는 더 두드러진다. 롤드컵의 정식 명칭은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다. 전 세계 프로게이머가 참가하는 대항전으로, 월드컵을 따 ‘롤드컵’이라고 불린다. 지난 11월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롤드컵은 월드컵의 열기가 무색했다. 고척 스카이돔 내 1만8000석은 모두 일찍 매진됐다. 입장권은 정가가 8만원부터 24만5000원까지인데, 이 수익만 40억원에 달한다.
롤드컵 결승전 표도 예매가 시작된 뒤 10분 내 모두 팔렸다. 암표는 300만원 선에서 거래됐다. 영화관에서 롤드컵을 생중계한 CGV도 매출을 톡톡히 올렸다. 롤드컵 4강전 때 영화관 23곳에서 경기를 생중계했는데, 결승전을 앞두고 생중계 영화관을 44곳으로 늘렸다. 당시 CGV 좌석 가격은 2만8000원으로 일반 영화 좌석보다 2배가량 비쌌다. 하지만 롤드컵 현장 예매를 놓친 팬들은 영화관 생중계에 지갑을 열었다.
광화문 한복판에는 롤드컵 거리 응원을 위한 대형 스크린도 설치됐다. 1만5000명가량의 팬들이 국내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롤드컵 자체의 온라인 누적 시청자 수도 4억 명에 달한다. 결승전 동시 접속자 수는 1억 명을 넘겼다. 지난 대회보다 65%가량 증가한 수치인 데다,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스포츠 행사 ‘슈퍼볼’도 결승전 시청 인구는 1억1000만명 내외다. 롤드컵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임을 넘어 문화로…10년 이상 40% 점유율 유지
리그 오브 레전드는 게임을 넘어 문화가 되고 있다. 이 게임을 제작한 라이엇 게임즈는 이를 위해 콘텐츠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2021년 애니메이션 드라마 ‘아케인’(Arcane)을 공개한 점이 대표적이다. 아케인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세계관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공개 직후 당시 넷플릭스 시청률 1위였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정상에서 끌
어내렸다.
K/DA도 데뷔 4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2000만 회를 기록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K/DA는 게임 내 출시된 스킨(캐릭터의 외형을 선택할 수 있는 아이템)을 활용해 리그 오브 레전드 캐릭터를 가상 걸그룹으로 만든 프로젝트다. K/DA가 발매한 곡은 미국 아이튠즈 차트 K-팝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라이엇 게임즈는 1000억원을 들여 2021년 서울 종로구에 ‘롤파크’도 열었다. 롤파크는 450석 규모의 e스포츠 경기장이다. 선수 대기실과 ‘라이엇 PC방’으로 불리는 플레이어용 경기 체험 공간, 캐릭터 피겨와 인형 등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구성돼 있다. 롤파크 내부는 고대 검투사 경기장을 보는 듯해, 리그 오브 레전드의 브랜드 경험을 극대화한다. 체험관을 통해 PC 게임을 문화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게임 속 가상 세계가 현실이 된다.
인천국제공항에 설치된 ‘라이엇 아케이드’도 리그 오브 레전드가 문화로 발돋움하는 데 역할을 했다. 라이엇 아케이드는 세계 최초로 공항에 들어선 게임 체험용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인천국제공항은 젊은 세대를 위해 라이엇 게임즈와 손잡고 이 공간을 구축했다. 개점한 지 3개월 만에 누적 이용자 수는 5만3000명을 넘겼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브랜드를 체험하게 하려는 시도는 클래식으로도 이어진다. 세종문화회관은 라이엇 게임즈와 함께 게임 음악 기획공연인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를 열었다. KBS교향악단이 게임 음악을 클래식으로 편곡해 연주했다. 게임 속 영상도 함께 보여줘 관객의 몰입감을 높였고, 전 좌석은 매진됐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성공을 말하는 사람들은 티어 시스템(Tier system)을 비결로 꼽는다. 이 시스템은 게이머에게 도전 목표를 제시하고, 경쟁심리를 자극한다. 실제 리그 오브 레전드는 2009년 시장에 출시되며 단숨에 세계 각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는 2012년 출시 이후 3개월 만에 13.91%의 점유율(PC방 기준)로 1위도 달성했다. 티어 시스템과 같은 경쟁 체계가 게임 흥행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가 10년 동안 전 세계에서 40%대의 점유율을 차지했다는 점을 설명하긴 부족하다. 이 게임 이후 출시된 MOBA 게임이 비슷한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성공하지 못해서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브랜드 이념인 ‘플레이어 중심주의’(Player focus)는 이 빈 공간을 설명하는 열쇠다. 플레이어 중심주의는 마케팅 분야에서 사용하는 사용자 중심이나 소비자 중심과 같은 가치다. 의사결정의 최우선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둔다는 뜻이다.
게임사들은 개발 일정이 빠듯하다. 출시나 업데이트 일정에 맞춰 게임을 개발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뒷전이 되기 마련이다. 개발자와 내부자가 게임의 중심이라는 생각도 조직에 스며든다. 라이엇 게임즈는 이를 철저히 경계한다. 플레이어 경험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면, DC코믹스나 마블 등을 거친 전문 작가를 고용한다. 게임의 소개 영상이나 음악도 세계 최고 수준의 작곡자에게 의뢰해 통합적인 플레이어 경험을 구축한다.
온라인 게임 시장은 어떤 산업보다 치열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10년 이상 40%의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플레이어 중심주의’라는 브랜드의 이념이 제대로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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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질문들의 답 뒤편에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LoL)가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전 세계 온라인 게임 시장의 40%를 석권한 멀티플레이어 온라인 배틀 아레나(MOBA)의 대표주자다. 이 게임은 이제 컴퓨터 게임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증거는 곳곳에 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프로 스포츠 스타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프로게이머 페이커(이상혁)다. 페이커는 연봉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75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프로게임단이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백지 수표를 건넸다는 일화도 있다. 중국의 한 프로게임단은 페이커를 영입하기 위해 200억원 이상을 제시했지만, 그가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뛰는 다른 프로게이머의 연봉도 억대다. 일렉트로닉 스포츠(e스포츠)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됐는데, 프로게이머들이 아시안게임에서 팬들을 몰고 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특히 페이커가 중국 공항에 도착하자, 그를 찾아온 팬들로 공항 곳곳은 북새통이었다.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선수촌에서도 1000명에 달하는 아시안게임 참가 선수들이 그에게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가 참가하는 ‘롤드컵’에서 이 게임의 인기는 더 두드러진다. 롤드컵의 정식 명칭은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다. 전 세계 프로게이머가 참가하는 대항전으로, 월드컵을 따 ‘롤드컵’이라고 불린다. 지난 11월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롤드컵은 월드컵의 열기가 무색했다. 고척 스카이돔 내 1만8000석은 모두 일찍 매진됐다. 입장권은 정가가 8만원부터 24만5000원까지인데, 이 수익만 40억원에 달한다.
롤드컵 결승전 표도 예매가 시작된 뒤 10분 내 모두 팔렸다. 암표는 300만원 선에서 거래됐다. 영화관에서 롤드컵을 생중계한 CGV도 매출을 톡톡히 올렸다. 롤드컵 4강전 때 영화관 23곳에서 경기를 생중계했는데, 결승전을 앞두고 생중계 영화관을 44곳으로 늘렸다. 당시 CGV 좌석 가격은 2만8000원으로 일반 영화 좌석보다 2배가량 비쌌다. 하지만 롤드컵 현장 예매를 놓친 팬들은 영화관 생중계에 지갑을 열었다.
광화문 한복판에는 롤드컵 거리 응원을 위한 대형 스크린도 설치됐다. 1만5000명가량의 팬들이 국내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롤드컵 자체의 온라인 누적 시청자 수도 4억 명에 달한다. 결승전 동시 접속자 수는 1억 명을 넘겼다. 지난 대회보다 65%가량 증가한 수치인 데다,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스포츠 행사 ‘슈퍼볼’도 결승전 시청 인구는 1억1000만명 내외다. 롤드컵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임을 넘어 문화로…10년 이상 40% 점유율 유지
리그 오브 레전드는 게임을 넘어 문화가 되고 있다. 이 게임을 제작한 라이엇 게임즈는 이를 위해 콘텐츠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2021년 애니메이션 드라마 ‘아케인’(Arcane)을 공개한 점이 대표적이다. 아케인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세계관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공개 직후 당시 넷플릭스 시청률 1위였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정상에서 끌
어내렸다.
K/DA도 데뷔 4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2000만 회를 기록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K/DA는 게임 내 출시된 스킨(캐릭터의 외형을 선택할 수 있는 아이템)을 활용해 리그 오브 레전드 캐릭터를 가상 걸그룹으로 만든 프로젝트다. K/DA가 발매한 곡은 미국 아이튠즈 차트 K-팝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라이엇 게임즈는 1000억원을 들여 2021년 서울 종로구에 ‘롤파크’도 열었다. 롤파크는 450석 규모의 e스포츠 경기장이다. 선수 대기실과 ‘라이엇 PC방’으로 불리는 플레이어용 경기 체험 공간, 캐릭터 피겨와 인형 등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구성돼 있다. 롤파크 내부는 고대 검투사 경기장을 보는 듯해, 리그 오브 레전드의 브랜드 경험을 극대화한다. 체험관을 통해 PC 게임을 문화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게임 속 가상 세계가 현실이 된다.
인천국제공항에 설치된 ‘라이엇 아케이드’도 리그 오브 레전드가 문화로 발돋움하는 데 역할을 했다. 라이엇 아케이드는 세계 최초로 공항에 들어선 게임 체험용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인천국제공항은 젊은 세대를 위해 라이엇 게임즈와 손잡고 이 공간을 구축했다. 개점한 지 3개월 만에 누적 이용자 수는 5만3000명을 넘겼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브랜드를 체험하게 하려는 시도는 클래식으로도 이어진다. 세종문화회관은 라이엇 게임즈와 함께 게임 음악 기획공연인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를 열었다. KBS교향악단이 게임 음악을 클래식으로 편곡해 연주했다. 게임 속 영상도 함께 보여줘 관객의 몰입감을 높였고, 전 좌석은 매진됐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성공을 말하는 사람들은 티어 시스템(Tier system)을 비결로 꼽는다. 이 시스템은 게이머에게 도전 목표를 제시하고, 경쟁심리를 자극한다. 실제 리그 오브 레전드는 2009년 시장에 출시되며 단숨에 세계 각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는 2012년 출시 이후 3개월 만에 13.91%의 점유율(PC방 기준)로 1위도 달성했다. 티어 시스템과 같은 경쟁 체계가 게임 흥행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가 10년 동안 전 세계에서 40%대의 점유율을 차지했다는 점을 설명하긴 부족하다. 이 게임 이후 출시된 MOBA 게임이 비슷한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성공하지 못해서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브랜드 이념인 ‘플레이어 중심주의’(Player focus)는 이 빈 공간을 설명하는 열쇠다. 플레이어 중심주의는 마케팅 분야에서 사용하는 사용자 중심이나 소비자 중심과 같은 가치다. 의사결정의 최우선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둔다는 뜻이다.
게임사들은 개발 일정이 빠듯하다. 출시나 업데이트 일정에 맞춰 게임을 개발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뒷전이 되기 마련이다. 개발자와 내부자가 게임의 중심이라는 생각도 조직에 스며든다. 라이엇 게임즈는 이를 철저히 경계한다. 플레이어 경험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면, DC코믹스나 마블 등을 거친 전문 작가를 고용한다. 게임의 소개 영상이나 음악도 세계 최고 수준의 작곡자에게 의뢰해 통합적인 플레이어 경험을 구축한다.
온라인 게임 시장은 어떤 산업보다 치열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10년 이상 40%의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플레이어 중심주의’라는 브랜드의 이념이 제대로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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