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산업 패러다임 전환 톺아보기…디지털 시대, 새 경영은 [스페셜리스트 뷰]
인터넷·모바일 보편화로 정보 유통·생산 변화…“새 경영 방식 모색할 때”
비재무적 리스크 효과적 대응 어려워…“정부, 구체적 가이드 제시해야”
[김용희 오픈루트 연구위원] 최근 미디어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미디어 소비 행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들은 새로운 경쟁 환경에 직면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의 보편화로 인해 뉴스와 정보의 생산 및 유통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으며, 소비자들은 이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원하는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급속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미디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새로운 경영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에 안주한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전통적으로 광고 수익에 의존했던 미디어 기업들의 경우, 광고주들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광고시장의 파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할 것인지가 이들에게 있어 가장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위기의 순간이 미디어 기업들에는 한편으로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미디어 산업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하는 한편, 다양한 플랫폼을 유기적으로 연결함해 통합적인 미디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그 한 예다. 나아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회 또한 점점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현실화하려면 미디어 기업들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직 문화와 경영 마인드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이 요구된다.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 결정 체계를 갖추고, 유연하고 민첩한 조직 운영을 통해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용자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요구)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디어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변화를 거스르기보다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전략과 비전을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곧 미디어 기업들의 생존과 성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디어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과연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미디어 기업들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나갈 것인지, 우리는 그 향방에 주목해야 한다.
결국 미디어 산업의 미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한편, 근본적인 가치 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혁신해 나가는 미디어 기업들만이 이 험난한 경쟁의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산업의 현황과 이슈
오늘날 미디어 산업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양한 도전과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두드러지는 변화 중 하나는 전통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 간의 경쟁 구도다.
뉴스 시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오랜 시간 시장을 주도해 온 레거시 미디어들은 여전히 브랜드 가치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나름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디지털 네이티브인 온라인 뉴스 매체들은 혁신적인 콘텐츠 유통 방식과 소셜미디어 활용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뉴스 콘텐츠는 질적인 측면에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가짜 뉴스의 확산 ▲선정적이고 편향된 보도 행태 등은 저널리즘의 근간을 흔들면서 미디어 전반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개별 언론사의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미디어 산업의 또 다른 축인 유료 방송 시장에선 인터넷(IP)TV와 케이블TV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성장률 자체는 점차 둔화하는 추세이며, 시장 포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넷플릭스·유튜브로 대표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OTT 기업들의 국내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국내외 OTT 업계의 각축전도 날로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전통적인 유료 방송의 영향력은 여전하고 OTT나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Free Ad-Supported Streaming TV·FAST) 등 신유형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산업 내, 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 같은 복합적인 경쟁 구도 속에서 미디어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미디어 기업에도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데이터 활용과 이용자 프라이버시 보호의 균형 ▲환경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조직 내 다양성과 포용성 제고 등 다방면에 걸친 혁신 과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 지위와 알고리즘의 불투명성을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 기업의 책임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용자 데이터 관리의 투명성과 알고리즘 편향성 등에 대한 규제와 감시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한편, 궁극적으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마주한 도전과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당면한 위기를 단기적 시각에 갇혀 바라보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미디어 환경을 조성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일 것이다. 미디어 본연의 공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기술 환경에 걸맞은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함으로써 이용자에게 더욱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미디어 기업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싶다.
미디어 기업의 경영 전략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경영 전략의 수립과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미디어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과 혁신 노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뉴욕타임스의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들 수 있다. 한때 종이신문 산업의 쇠락과 함께 존폐 위기에 직면했던 뉴욕타임스는 과감한 체질 개선을 통해 디지털 구독 모델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단순히 뉴스를 온라인에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뉴스룸의 조직 문화와 워크 플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한편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 결정 체계를 도입하는 등 전사적 차원의 변화를 추진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고품질의 콘텐츠에 대한 집요한 추구 ▲이용자들과의 긴밀한 소통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 등이 결합하면서 뉴욕타임스는 디지털 저널리즘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1000만명에 육박하는 디지털 구독자를 확보한 뉴욕타임스의 성공 사례는 전통 미디어 기업의 변신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기업들의 콘텐츠 전략이다. 초기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콘텐츠를 유통하는 데 그쳤던 넷플릭스는 점차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고, 이는 기업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영화 ‘아이리시맨’이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전 세계적인 인기작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넷플릭스는 이제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아우르는 미디어 공룡으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이용자 니즈(요구) 예측 ▲대규모 투자를 통한 고품질 콘텐츠 확보 ▲글로벌 시장 공략 등의 전략이 유효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문화 확산이 OTT 성장에 우호적 환경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기업들의 약진은 콘텐츠 경쟁력이 플랫폼 경쟁력과 직결되는 미디어 산업 고유의 특성을 잘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또한, 이제는 전통적인 경영학적 단어가 되어버린 ‘글로컬리즘’(Glocalism·세계회+지역화)을 핵심적 사업모델로 적용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투자 효율성이 떨어지는 미국 시장 대신, 한국 시장을 제작시장으로 발굴하면서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글로벌 향 콘텐츠’가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잘 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집중투자하고 이를 전 세계로 유통해서 하나의 장르로 개척한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최근에는 TV 채널과 OTT 플랫폼, 스포츠 콘텐츠를 아우르는 통합 광고 모델도 주목할 만한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축구·농구·골프 등 인기 스포츠 경기 중계에 TV 광고를 결합하고, OTT 플랫폼을 통해서도 동시에 광고를 노출시키는 방식이다. 이른바 ‘프리미엄 콘텐츠’로 분류되는 스포츠 경기의 특성상 광고 주목도와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이를 기반으로 한 통합 광고 상품은 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NBC·ABC 등 주요 방송사들이 자사의 OTT 서비스에 스포츠 중계를 핵심 콘텐츠로 내세우며 통합 광고 상품을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전통적 광고주뿐 아니라 디지털 네이티브 브랜드들까지 가세하면서 스포츠 콘텐츠 기반의 통합 광고시장은 나날이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CJ ENM이 국내 야구 중계를 시행하면서 광고시장에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스트림플레이션’(Streamflation·스트리밍+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광고 요금제를 통해 요금 수준을 낮춰 이용자의 저항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미디어 기업이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전략적 선택지로는 ‘1위 전략’과 ‘강한 고리 전략’을 들 수 있다. 우선 1위 전략은 특정 분야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콘텐츠의 질적 수준이나 양적 규모 또는 기술력 등의 측면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갖추는 데 주력하는 방식이다. 시장 선점을 통한 브랜드파워 강화와 규모의 경제 실현 등이 기대 효과다.
국내에서는 웹툰·웹소설 등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선보이고 있는 전략을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양사는 자체 플랫폼을 통해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확보·제공함으로써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콘텐츠 지식재산권(IP) 확장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도 활발하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잇따라 제작되는 등 원천 콘텐츠 기반의 미디어 비즈니스 모델이 확산 중이다.
반면 강한 고리 전략은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기기) 등 미디어 산업 내 주요 가치사슬을 유기적으로 연계·통합함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수직계열화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각 영역에서의 경쟁력을 상호 보완하고, 나아가 미디어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른바 ‘디즈니 모델’로 불리는 월트디즈니 컴퍼니의 전략이 대표적 사례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영화·TV 채널 등 방대한 콘텐츠 IP를 보유한 동시에, 자회사 케이블 TV 네트워크와 OTT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자체적인 유통망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 테마파크와 완구 사업까지 수직계열화해 콘텐츠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는 CJ ENM이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영화·음악·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동시에, 케이블 TV 채널 tvN과 OTT 서비스 티빙을 운영하며 자체 유통 역량 또한 강화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콘텐츠 제휴의 폭을 넓히는 등 디지털에서의 영향력 확대에도 적극적이다. 이처럼 콘텐츠와 플랫폼의 선순환 고리를 공고히 하는 전략은 미디어 기업의 지속 가능성 확보에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
물론 이 같은 플랫폼 기업의 미디어 시장 장악력 강화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알고리즘에 의한 여론 독점과 편향성 문제, 뉴스 생산 주체로서의 언론사 역할 약화 등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플랫폼 기업들에는 공적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자정 노력과 함께,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 조성을 위한 사회적 역할 수행 또한 요구되고 있다.
종합하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디어 기업들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의 옵션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각 기업의 고유한 역량과 시장 포지션에 걸맞은 차별화된 전략을 모색하는 일일 것이다. 전통 미디어 기업이든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이든, 플랫폼이든 콘텐츠 제작사이든 간에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끊임없는 혁신을 도모하려는 자세만큼은 공통으로 요구된다고 하겠다.
미디어 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만큼, 수익성 제고와 함께 공적 책무 수행을 위한 노력 또한 병행돼야 한다. 이용자 신뢰 확보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필수 요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술 발전과 시장 변화를 예의주시하는 한편,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와 윤리 기준을 견지하려는 노력 또한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디어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 ▲민주적 여론 형성 ▲사회 공론장으로서의 역할 등 미디어가 수행해야 할 공적 기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변화와 혁신을 향한 도전의 여정에서 이 같은 미디어의 존재 이유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곧 미디어 기업 경영 전략의 근간이 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도전과 전략 필요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기업들이 각국 정부의 규제 움직임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이버와 틱톡이다. 네이버는 일본에서 라인(LINE)을 통해, 틱톡은 미국에서 쇼트 비디오 플랫폼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최근 현지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 정책에 부딪히며 난항을 겪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네이버의 자회사 Z홀딩스(구 야후재팬)에 대해 경영 투명성과 이용자 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각종 제재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의회를 중심으로 틱톡의 국가안보 위협 가능성과 청소년 보호 문제 등을 제기하며 강도 높은 규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들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혁신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자국 기업 보호주의 성격의 규제 정책으로 인해 성장이 가로막힐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기업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정 국가의 정책적 결정에 글로벌 시장 지배력이 있지 않은 민간 기업이 선제적으로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 차원에서 통상 협상력을 발휘해 자국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양자·다자 통상 협의체 등을 통해 디지털 통상 규범 정립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데이터의 국가 간 이동·현지 서버 설치 의무화 같은 데이터 현지화 요건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국제 규범 마련에 한국 정부가 앞장선다면, 네이버와 틱톡 같은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현지 사업 인허가·세제 혜택 등에 있어서도 자국 기업과 형평성 있는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부 간 협의를 강화해야 한다.
지속 가능 경영 측면에서 살펴보면, 기업들의 비재무적 리스크 또한 날로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인권 보호·이용자 프라이버시 보호·조직 내 다양성 제고 등 각 영역에서의 책임 준수가 기업 경영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에 이용자 정보 관리와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는 사활을 건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개별 기업의 자율적 노력만으로 비재무적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가 많고, 정부와 시민사회의 감시·견제 또한 미흡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규제 체계를 신속히 마련하는 한편, 기업의 자발적 실천을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례로 이용자 정보 활용에 있어 프라이버시 보호와 사업 혁신 간 균형을 모색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활성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수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정부 지원 사업 참여 시 가점 부여 등의 인센티브 정책도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방송 평가나 미디어 관련 법·제도에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항목을 적극 반영함으로써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투자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정부 차원의 전략적 대응·지원 절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미디어 산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문화의 확산은 미디어 소비 행태에 구조적 변화를 초래했고, 이는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디어 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기 위한 혁신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자국 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한 각국 정부의 규제 움직임 또한 거세지고 있어 혁신 기업들의 도전이 발목을 잡히고 있다. 개별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이러한 글로벌 통상 분쟁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전략적 대응과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아울러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미디어 기업들도 예외일 순 없다. 환경적 책임·사회적 가치 창출·투명하고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그러나 미디어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ESG 경영 모델 정립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산업 특성에 걸맞은 ESG 정책 방향을 설계하고 실행해 나가는 협력의 과정이 시급히 요구된다.
이 같은 격변기에 미디어 기업들이 견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콘텐츠 경쟁력과 이용자 신뢰일 것이다. 플랫폼의 진화와 네트워크의 고도화가 이어지더라도 미디어 산업의 본질이 양질의 콘텐츠 생산과 건전한 여론 형성에 있음은 변함이 없다. 공적 책무성을 망각한 채 상업적 이익 추구에만 골몰한다면 그 어떤 전략도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가올 미래는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연대하고 협력할 때에만 ‘윈-윈’(Win-Win)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책무를 다하는 동시에, 때로는 영역을 초월한 소통과 협업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미디어 산업이 혁신과 상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변화는 언제나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품고 있기 마련이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열쇠는 결국 우리의 자세와 노력에 달려 있다. 미디어 기업·정부·시민사회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소통과 협력의 문화를 만들어갈 때, 이 전례 없는 대전환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힘과 지혜도 생겨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향한 희망의 항로가 열릴 것이다.
김용희 오픈루트 연구위원은_경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다. 미디어·ESG 컨설팅과 연구를 수행하는 오픈루트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표준협회 ESG경영센터 전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디어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미디어 산업의 사회·경제 효과 연구를 다수 진행했고, 정책 관련 각종 연구반과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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