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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메프 사태, 해외선 ‘빠른 정산’이 기준…국내선 네이버가 ‘앞장’

티메프 사태에…정부, 이커머스도 ‘정산 기한’ 단축 예고
아마존·엣시 홍역 치른 뒤 ‘판매자 우선’ 공감대 세계 확산
국내선 네이버 ‘모범 사례’…배송 시작 다음 날 100% 정산

티몬·위메프(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와 관련해 피해를 입은 판매자와 소비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검은 우산 집회’를 열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이하 티메프 사태)는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사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소 판매자를 중심으로 피해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안전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매자의 지속 가능한 사업 운영을 위한 제도가 안착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정부·국회도 이런 의견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이에 이미 ‘빠른 정산’을 상생 측면에서 도입한 플랫폼 기업들이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선 네이버의 제도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특히 21일 오전 서울청사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티메프 사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위메프·티몬 사태 대응 방안 추진 상황 및 향후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로 피해를 본 판매자들에게 약 1조6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한다. 이는 기존 지원 방안에서 긴급경영안정자금 등이 추가되며 43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정부는 이와 함께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정산 기한을 단축하는 식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예고했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은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에게 판매 대금을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40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직매입한 때도 상품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하도록 정해뒀다.

그러나 판매자-소비자를 중개하는 이커머스 기업은 이 법에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는 이 때문에 플랫폼이 원하는 대로 정산 기한을 정해왔고, 티메프 사태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봤다. 정부는 이에 이커머스 플랫폼의 정산 기한을 대규모유통업자 정산 기한인 최소 40일보다 단축하고, 판매 대금의 일정 비율을 예치·신탁하도록 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세계선 이미 ‘빠른 정산’ 안착

중소 판매자 대다수는 적은 자본금으로 사업을 운영한다. 빠른 자금 회전율 유지가 사업의 연속성을 담보하는 요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중소 판매자는 제품 제작이나 사입에 투자하기 위한 현금을 지속해서 확보해야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며 “판매자가 입점한 플랫폼으로부터 제때 대금을 정산받아야 비즈니스를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판매자 중심의 제도는 이런 필요성 때문에 이미 세계 기업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늦은 대금 정산이 판매자 사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면서 안착한 제도다. 물론 제도 안착까지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유통 공룡’이라 불리는 아마존은 판매 대금을 일주일 이상 지급 보류한다는 골자의 ‘영국 판매자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중소 판매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당시 영국 중소기업청 등도 아마존 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아마존은 결국 해당 정책의 도입을 연기했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 ‘엣시’도 비슷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환불 등을 위해 판매 대금의 75%를 45일 동안 동결하는 제도를 도입했던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중소사업자가 대출 및 신용카드까지 활용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엣시를 보이콧하자’는 식의 판매자 움직임이 나타났다. 엣시 역시 해당 정책을 변경했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오픈마켓 플랫폼의 근본적인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판매자 유지’의 측면에서도 신속한 정산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입증된 사례”라고 평가한다.

이런 홍역을 치른 뒤에야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는 대형 이커머스 기업들은 판매자에게 정산 대금을 빠르게 지급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판매자들의 자금 흐름을 개선해 임차료·구매 대금·급여 등 운영 비용을 처리에 문제가 없도록 생태계를 꾸리겠단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아마존의 ‘익스프레스 페이아웃’(Express Payout)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국 내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판매자가 미국 계좌를 소유하고 아마존 페이에 가입한 상태라면 주말을 포함해 24시간 이내에 정산금을 받을 수 있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빠른 정산을 무료로 누릴 수 있어 판매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중국 이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도 소비자의 구매 15일 내 판매 대금을 정산한다. 소비자가 구매를 확정한 후 7일 이후 ‘정산 대기’ 상태가 유지되다, 환불이 발생하지 않으면 고정 정산일인 매월 1일과 15일에 대금이 정산되는 방식이다.

이는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 진출 초기부터 국내 판매자를 대거 끌어모은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플랫폼과 달리 정산 주기가 비교적 빨라 판매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며 “플랫폼의 빠른 정산이 판매자 사업에도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경쟁력 있는 판매자를 유인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 ‘엣시’는 환불 등을 위해 판매 대금의 75%를 45일 동안 동결하는 제도를 도입해 판매자들이 보이콧 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티메프 사태 앞서 ‘세계 기준’ 도입한 네이버

정부는 티메프 사태로 발생한 미정산 금액이 현재까지 8188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생계를 걱정하는 중소 판매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이에 지난 7월 31일 국회 국민의 청원에 ‘이커머스 플랫폼의 정산 주기를 단축해야 한다’는 취지의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티메프 사태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도 ‘빠른 환불 처리 진행 요청’을 골자로 한 국민동의 청원을 제기한 바 있다. ‘본질적 사안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다.

판매자는 물론 소비자까지 피해가 번지자, 문제가 불거지기 전 ‘빠른 정산’ 제도를 안착시킨 기업들의 제도가 되레 주목받고 있다. 한 판매자는 “티메프 사태를 겪으면서 빠른 정산이 이뤄지는 플랫폼을 ‘착한 기업’으로 부르며 주 거래처를 이동하는 식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빠른 정산’ 서비스를 일찍이 도입한 네이버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네이버는 2020년 11월부터 빠른 정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배송 시작 다음 날 정산 대금의 100%를 지급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상품이 구매자에게 배송되기 전’ 대금을 지급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약 12만 명의 소상공인이 빠른 정산을 이용했다. 선 정산 대금은 누적 기준 40조원에 달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정산 주기를 단축하는 상생 전략을 일찍이 도입했다”며 “판매 대금의 원활한 정산 흐름이 중소상공인(SME)의 사업 성장에 핵심임을 인지해 정책을 운영 중”이라고 강조했다.
네이버가 2020년 11월부터 도입한 빠른 정산 서비스 안내 화면. [사진 네이버페이 마이비즈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에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사업자들을 중심으로 빠른 정산 서비스의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는 반응도 공유되고 있다. “빠른 정산 서비스로 사업 운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스마트스토어·네이버페이 쪽으로 매출 비중을 크게 가져가고 있다”, “빠른 정산으로 덕분에 물건을 추가로 구매할 수 있어 매출이 늘었다”는 식의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1번가도 이번 ‘티메프 사태’에 대한 소상공인 우려를 덜기 위해 기존의 최대 10일 정산 일정을 크게 앞당긴 ‘11번가 안심정산’ 서비스를 내놨다. 배송 완료 다음 날 정산 금액의 70%를 먼저 지급하는 제도다. 나머지 30%는 소비자 구매 확정 다음 날 지급한다.

반면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 쿠팡은 판매자 정산 완료까지 최대 60일이 걸린다. 쿠팡은 2022년 기업 자체의 현금 유동성 확대를 목표로 정산 대금 주기를 열흘 더 늘린 바 있다. 현재 쿠팡 마켓플레이스 입점한 판매자는 주 정산과 월 정산을 선택할 수 있는데, 두 방식 모두 판매 대금이 100% 정산되기까지 40일에서 50일이 소요된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쿠팡에 입점한 업체가 정산 대금을 대출로 먼저 받은 규모가 1조 3322억원에 달한다”며 “긴 정산 주기가 소상공인의 유연한 현금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산 주기는 세계 시장에서도 이미 판매자 사업 안정성과 플랫폼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이 이런 흐름에 맞춰 중소사업자들과 상생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며 자율적으로 정산 주기를 단축하고 있다. 판매자와 상생하고자 하는 플랫폼의 의지가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과 박상진 네이버페이 대표가 지난 1월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상생·협력 증진 우수기관 시상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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