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없는 조직 시대 여는 ‘DAO’가 온다 [스페셜리스트 뷰]
DAO, 스마트 컨트랙트 활용해 투명하고 자율적인 조직 운영 가능케 해
美 와이오밍주는 DAO 법적 지위 인정…한국도 제도 정비 논의 필요

블록체인의 핵심 개념은 위변조가 불가능한 분산 원장 기술이다. 이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암호화폐)을 주고받은 거래 내역이 중앙 서버가 아닌 모든 참여자의 컴퓨터에 공유돼, 한 번 기록된 데이터는 누구도 임의로 변경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런 구조 덕분에 우리는 가상공간에서도 실물 경제보다 더 높은 신뢰를 기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비트코인에서 이더리움으로…스마트 컨트랙트의 발전
블록체인의 시작은 비트코인이었다. 비트코인은 중앙기관 없이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줬지만, 그 기능은 금과 유사한 자산의 저장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비트코인의 블록체인 구조를 보고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개념을 생각해 낸다.
“비트코인처럼 단순히 거래 내역만 서로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실행하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프로그램으로 만든 앱 및 앱이 실행되면서 만들어지는 모든 결과물이 공유되므로 아무도 이를 위변조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결과물들을 소유하고 있는 소유권을 위변조할 수 없게 돼 인터넷상에 진정한 소유권이 확립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이더리움(Ethereum)이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상에서 자동으로 실행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코드에 의해 자동으로 계약이 실행되고 서로 공유되므로, 중개자 없이 이루어지면서도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인터넷상에서의 계약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자동화된 계약 시스템은 신속하며, 중개자를 제거해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준다.

탈중앙화 자율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DAO)는 인터넷상에서 운영되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조직이다. 기존의 오프라인 기업들은 경영진이 의사 결정을 내리고 직원들이 이에 따라 움직이는 중앙 집중식 구조를 가졌다. 하지만 DAO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규칙이 미리 정해지고, 구성원들의 투표에 의해 운영된다.
DAO는 모든 의사 결정이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투명성, 관리자가 아닌 코드에 의해 운영되는 자율성, 조직 구성원들이 직접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참여자 중심 구조로 핵심 특징을 요약할 수 있다.
DAO는 ‘온라인 자판기’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가 자판기에 돈을 넣으면, 사람의 개입 없이 원하는 상품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DAO 역시 조직 운영이 미리 정해진 코드(스마트 컨트랙트)에 의해 자동으로 진행되므로, 중개자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즉, DAO는 인터넷 상에서 코드에 의해 운영되는 자판기 형태의 온라인 회사인 셈이다.
이런 특징으로 DAO는 온라인상에서 효율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조직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DAO를 통해 중앙화된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신뢰 문제를 해결하고,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협업을 가능하게 하며, 중개자 없이 운영되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참여자 중심의 구조를 통해 개인의 의견이 조직 운영에 직접 반영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DAO의 다양한 종류와 실제 활용 사례
DAO는 사용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운영된다. 대표적인 DAO의 3가지 종류와 실제 활용 사례를 소개한다.
전통적인 벤처 캐피털 투자 방식은 폐쇄적이며, 소수의 투자자가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투자 DAO’인 비트(Bit)DAO는 이런 구조를 탈피하고, DAO 구성원들의 투표를 통해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도록 설계됐다. 비트DAO는 탈중앙화 금융(DeFi), 블록체인 인프라 및 웹(Web)3 프로젝트와 같은 분야에 투자하며, 참여자들은 투표를 통해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한다.

전통적인 금융 기관을 거치지 않고 사용자가 직접 대출 및 예치를 할 수 있는 탈중앙화 금융(DeFi)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대출 DAO’도 있다. 에이브(Aave)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중개자 없이 대출을 실행하며, 사용자는 자신의 가상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정책 및 이자율 조정은 에이브 DAO 구성원의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이 외에도 예술가, 크리에이터 및 문화 산업 종사자들이 보다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DAO 등 다양한 종류가 있고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DAO의 허브를 꿈꾸는 와이오밍州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미국의 와이오밍주(州)는 2021년 영리 목적의 DAO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2024년에는 ‘와이오밍 분산형 비법인 비영리 협회법’(DUNA)을 제정해 비영리목적의 DAO에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이를 통해 DAO는 와이오밍주 내에서 법인격을 인정받아 ▲제3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은행 계좌를 개설하며 ▲세금 납부 등의 법적 절차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법적 인정은 DAO 운영자들에게 법적 안정성과 신뢰를 제공하며, 와이오밍주를 DAO 설립 및 운영을 위한 매력적인 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와이오밍주는 블록체인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018년 이후 30개 이상의 친(親)가상자산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산악지역에 자리 잡아 광업과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던 와이오밍주에 블록체인 및 DAO 관련 기업과 프로젝트들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이 지역이 미국 내 블록체인 허브로 자리 잡아가는 계기가 됐다.
또한 와이오밍주는 2025년 1분기를 목표로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주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자산의 활용과 수용을 촉진하며, DAO와 같은 디지털 조직들이 안정적인 결제 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한다. 이런 움직임은 DAO가 실생활에서 더욱 활발하게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중요한 정책적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이 법안의 탄생에는 마크 고든(Mark Gordon) 와이오밍 주지사와 신시아 루미스(Cynthia Lummis) 상원의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든 주지사는 농업과 에너지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블록체인이 와이오밍주의 경제적 다각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루미스 상원의원은 비트코인의 초기 투자자로, 탈중앙화 기술이 금융 시스템을 혁신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2024년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 법안을 발의해 와이오밍 주정부가 비트코인을 법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DAO 기업 형태 도입 검토하는 일본
일본은 DAO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법적 프레임워크를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 금융청(FSA)은 그동안 DAO의 법적 지위와 운영 방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DAO를 기업 형태로 인정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DAO가 일본 경제에 미칠 영향과 블록체인 기술의 확산을 고려해, DAO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관련 규제를 정립할 계획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기술 혁신을 수용하는 정책을 펼쳐 왔다. 특히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7년 가상자산 거래소 등록 시스템을 도입했다. DAO의 법적 지위를 공식화하는 과정도 이러한 기술 수용 정책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으며, DAO를 기업이나 협동조합과 같은 법적 조직으로 간주해 법인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DAO의 운영 방식과 투표 시스템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의 의사결정 절차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DAO의 소득 및 자산 관리 방식을 명확히 해 세금 납부와 회계 기록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이런 논의를 배경으로 닌자(Ninja) DAO, 와구미 DAO, 슈퍼 사피엔스(Super Sapienss·スーパーサピエンス) 등과 같은 다양한 DAO 프로젝트가 활성화되고 있으며, ▲대체불가능토큰(NFT) ▲웹3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분야에서 탈중앙화된 금융 서비스와 공급망 관리를 실험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DAO의 확산은 국경을 초월한 협업을 가능하게 하며, 전통적인 기업 구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DAO는 중앙집권적 조직 구조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사회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DAO를 통해 기업 운영 방식뿐만 아니라 금융·예술·지역 사회 조직 운영 방식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이에 대한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규제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와이오밍주의 DAO 정책과 일본의 DAO 법안 검토 사례는 우리나라와 같이 아직 제도적 정비가 미비한 국가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법적 명확성이 확보된 환경이 기술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으며, 기업과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 법률제정이 늦어질수록 글로벌 경쟁력은 뒤쳐질 수밖에 없으며, 향후 글로벌 경제에서 DAO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질수록, 그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많은 국가가 이제 DAO를 단순한 실험적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모델로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DAO의 성장과 함께,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 커뮤니티, 정부가 등장하는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중앙이 없는 조직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전인태 가톨릭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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