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빌딩 앞의 대형 조형물, 왜 여기 있는 걸까? [백세희의 컬처&로(LAW)]
- 건축비 일정 비율 조형물에 투입...‘건축물 미술작품 제도’
건축주-작가-지자체 불공정 관행까지...제도 개선 필요

해머링맨은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2002년 작품이다. 1980년 뉴욕의 파울라 쿠퍼 갤러리에서 조각으로 처음 전시된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미국 시애틀 등에 이어 일곱 번째로 흥국생명 빌딩 앞에 세워졌다고 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한다. 하지만 그도 쉬는 날이 있다.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5월 1일(근로자의날)에는 망치질을 멈춘다.
이렇게 도심의 대로변을 걷다 보면 늘어선 빌딩 앞에 자리 잡은 조형물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조경 면적이 넓어서 제법 정중하게 널찍한 무대를 차지하고 대접받는 작품이 있고, 큰길에 바로 맞닿은 건물이라 현관 앞에 옹색하게 겨우 자리를 마련한 작품도 있다. 작품의 관리 상태도 제각각이다. 이런 조형물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진흥법 근거한 미술작품 설치 의무
멋 내려고 유행처럼 설치하는 건 아니다. 법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조형물을 세우는 것이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라는 공식적인 명칭도 있다. 이 제도는 1972년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만들어졌다. 문화적인 도시환경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예술적인 공간을, 동시에 예술가에게는 창작기회를 제공하려는 취지다. 1995년부터는 의무화됐다. 근거 법률은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의 설치 등) 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종류 또는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자(이하 “건축주”라 한다)는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ㆍ조각ㆍ공예 등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여야 한다.
② (중략)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는 대신에 제16조에 따른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할 수 있다.
③ (중략) 미술작품의 설치 또는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는 금액은 건축비용의 100분의 1 이하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 (중략) 설치에 사용하여야 하는 금액, 제2항에 따른 건축비용, 기금 출연의 절차 및 방법,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법조문을 보자. 이건 뭐 껍데기만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제1항부터 제4항까지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대통령령’(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다. 시행령을 살펴보자. 정확한 금액을 산출해 내기 위해서는 ‘별표’까지 확인해야 한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제12조는 연면적 1만㎡(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은 지역과 규모에 따라 전체 건축비의 0.5%에서 0.7% 사이(단, 2만㎡ 초과분에 대하여는 추가금 있음), 건축주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일 때는 건축비의 1% 비용으로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대신에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납부할 수도 있다.
연면적 1만㎡라니, 잘 와닿지 않는다. 일단 ‘연면적’은 거칠게 말해 모든 층의 바닥 면적을 더한 것이라 생각하면 쉽다. 그렇다면 ‘1만㎡’는 어느 정도 넓이일까?
경술국치 이후 1960년에 미터법이 정식으로 발효되기 전까지 쓰였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평(坪)’ 단위로 환산하면 3025평이다. 약 3000평의 건물! 1층 바닥이 얼마나 넓은 건물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 지상 15층 정도의 빌딩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그럼 건축비는 얼마나 들까? 「수도권정비계획법」 제14조 규정에 따라 과밀부담금 부과를 위해 산정해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2025년도 표준건축비는 제곱미터당 238만원이다. 1만㎡로 계산하면 건축비는 238억원이 넘는다.
구체적인 평가액은 필자의 거친 계산과는 다를 것이다. 건물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아무튼 「문화예술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건축물 미술작품의 설치 비용은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만큼 크다는 정도만 체감하면 된다.

서울이나 광역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지방의 거점 도시들만 살펴봐도 지상 15층 규모의 건물은 드물지 않다. 꽤 흔하다. 필자가 농촌 지역에 살아서 신중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그 정도 빌딩은 널려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다 보니 건축물 미술작품 시장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전체 미술시장의 총 거래금액 6928억원 가운데 건축물 미술작품이 1129억원으로 전체 거래의 16% 정도를 차지했다고 한다. 경기에 민감한 미술시장의 특성상, 화랑과 경매회사를 통한 개별 작품의 유통량의 변화에 따라 건축물 미술작품이 전체 거래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공공 영역에 국한해서는 건축물 미술작품의 거래량이 늘 가장 많다.
우리에게는 거리를 걷다가 무심히 지나치는 조형물일 뿐이지만,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돈이 오가다 보니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어느새 하나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성했다. 하지만 생태계는 의외로 단순하다. 크게 ①건축주 ②미술품 제작업체(작가) ③심의기관(지방자치단체)이다. 이러한 세 당사자의 단순한 구조가 오랜 시간 계속되다 보니 불공정한 관행이 생겼다.
▲건축주와 미술품 제작업체가 가격을 담합한 이중계약 ▲작품가격을 과도하게 높게 책정하거나 특정 작가에게 일감을 몰아주기 ▲화랑과 심의신청 대행사의 심의기관에 대한 로비 ▲학연과 지연에 따른 불공정한 심의 등이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개별 작품의 수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작품설명과 작품형태가 일치하지 않거나 유사한 작품이 우후죽순 설치되는 등의 문제가 오랜 기간 지적돼왔다.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심의제도 등의 강화
1972년 제도 시행 이후로 오랜 기간 쌓여온 잘못된 관행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각 지방자치단체는 수년 전부터 이를 고치려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심의제도를 강화한 것이다. 경기도의 예를 살펴보자.
경기도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회는 2019년 10월 29일에 열린 회의에서 심의 대상 미술작품 33건을 모두 부결 처리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부결 사유는 크게 작품가격 과다 책정, 작품성과 독창성 부족, 주변 환경과의 부조화를 비롯한 공공성 결여였다고 한다.
심사 강화 전인 같은 해 1~8월의 심의 신청작품 336점 중 62.5%인 210점이 통과된 전력에 비교하면 매우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건축물 심의위원회의 위원장 선임 방법, 위원의 위촉 기간, 심의대상, 위원 금지사항, 회의내용 공개 등 심의기관의 구성 자체를 개선했다.
서울시 역시 수년 전부터 조금씩 심의위원회의 구성을 조정해 온 이후로 현재까지 개선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및 시행규칙은 최근까지도 개정을 계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심의기관 구성 자체의 개선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심의신청 작품에 대한 부결률도 크게 올랐다. ‘심의장벽’이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미술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지방자치단체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작품이 늘자 미술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부결은 곧 많은 작가의 창작 활동과 생계를 위협한다는 취지이다.
나아가 심의위원회가 지속적으로 부결을 함으로써 건축주들로 하여금 미술작품을 만들지 않고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내도록 유도하는 숨은 목적이 있다는 주장도 했다. 건축주로서는 높은 부결률에 따른 시간과 비용의 위험을 감수하느니 문화예술진흥기금의 납부를 선택할 테고,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금고를 불려줘 둘 사이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주, 작가, 심의기관의 세 당사자는 일종의 공공예술 ‘공급자’라고 할 수 있다. 모두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시민에 도움 되는 제도 되려면
그렇다면 실제로 이런 공공예술의 향유자, 즉 거리를 걷고 건물 앞을 지나며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일반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건축물 미술작품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만큼 다양한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우선 일단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부세종2청사에 세워졌던 조형물 ‘흥겨운 우리가락’은 일명 ‘저승사자’라고 불리며 수많은 민원 끝에 2019년 창고로 자리를 옮겼다.
번쩍거리는 재질의 한복을 입은 인물상이 섬뜩하다는 민원이었다. 조형물을 설치할 비용으로 차라리 조경에 더 힘을 쓰고 시민들이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 등을 더 늘려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당초 제도의 취지대로 문화 향유의 기회가 늘어나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공식적으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건축물 미술작품에 대한 생각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바 없으니, 어떤 의견이 다수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가 꾸준히 심의결과와 관리실태를 조사하여 보고하고 운영·관리 개선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지만, 정작 미술품을 향유하는 일반 시민들의 의견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 같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시민들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향유자들의 인식과 의견을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독자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평소 오가던 길가에 세워진 조형물을 떠올려 보자. 주변 환경과 어울릴까? 건물의 규모에 적절히 비례하는 작품일까? 이제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개요와 문제점도 대충 알게 되었으니, 뭔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큰 도시에 사는 독자라면 오늘내일 출퇴근길에 당장 살펴볼 수도 있겠다.
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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