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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주4.5일제, 지속 가능한 상생 모델을 찾아서 [스페셜리스트 뷰]
- 국내은행 직원, EU 정규직보다 10시간 더 일해
주4.5일제, 장시간 노동 해소…산재·병가 감소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은행의 주 4.5일제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올해만 해도 언론 기사에 은행 주 4.5일제 관련 기사가 155건에 가깝고, 이해당사자들의 인터뷰 발언도 380건이나 된다. 그러나 최근 몇몇 언론기사를 보면 접근 방식이나 지향에 차이가 있다. 일부 기사나 사설에서는 ‘시기상조’나 ‘공감대’를 떠나 ‘고액연봉’, ‘귀족노조’, ‘황제파업’과 같은 원색적 표현도 활용된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주 4.5일제를 시행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미국이나 영국은 물론 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호주 등에서는 몇 년 전부터 주 4일제를 시행하는 기업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현 정부도 주 4.5일제 시범사업 도입을 국정과제로 발표했다. 300인 미만 중소영세기업이 대상이며 참여 기업은 인건비와 세액 공제 등 지원을 할 계획이다. 특히 생명안전 분야와 교대제 사업장 등에는 우선 지원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때문에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법제도화 이전까지는 노사 자율 도입을 통해 진행될 듯하다. 경기도는 이미 6월부터 민간부문 30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 4.5일제 시범사업 참여 기업에 인건비와 인프라 도입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약 110여개의 사업장이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일부 기업에서도 이미 주 4일제나 주 4.5일제를 노사 합의를 통해 혹은 자율적으로 시범 운영 중이다. 통신·정보기술(IT)·헬스케어 등 주요 업종의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에서도 주 4일제 기업들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취업 포털 사이트만 보더라도 올해 상반기 476건이 확인된다. 이 중에서도 20인 미만(59.9%)과 100인 미만(30%) 기업이 10곳 중 9곳이나 된다.
제도와 정책의 필요성보다 부정적 영향을 강조
국내에서 은행권의 주 4.5일제 도입 요구는 금융노조가 몇 년 전부터 활발히 제기한 이슈다. 과거 주5일제 처음 도입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선제적인 시도로 보인다. 금융노조는 주 4.5일제가 단순히 노동시간 단축을 넘어 저출생 문제 완화 및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향상 등에 기여한다고 제시한다. 그럼에도 은행 경영진 등 일각에서는 금융 서비스 접근성 제약과 인력 감축 등의 우려로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일부 대학교수들도 고액 연봉 직원의 주 4.5일제 요구가 얼마나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을지 의구심을 표한다.
자본과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을 반대하거나 주저한다. 이들의 반대 논리나 명제는 세 가지다. 우선 노동시간 단축 자체의 반대다. 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성 하락과 직결되고 추가 인력 배치 등 비용 문제가 발생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노동자 건강 훼손이나 산업재해 등은 경미한 수준으로 치부한다. 다음은 노동시간 정책의 정당화 논리다. 현행 주 40시간 규정이나 운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부 특정 집단에만 적용 혹은 혜택만 있다는 것인데 낙수효과가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노동자 임금 감소까지도 걱정해 준다.

주 4.5일제 도입이 필요한 이유 찾아야
그렇다면 주 4.5일제 도입은 은행 직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만약 주 4.5일제를 시행할 경우 고객 서비스는 어떤 변화가 예상되며, 생산성이나 인건비 증가 문제는 해소 가능한가. 은행 주 4.5일제 시행은 금융산업과 우리 사회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까. 사실 금융노사는 2018년 만성적 초과근무 감소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을 합의했다. 이후 2022년 노사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2024년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 등이 진행됐다. 현재 노사간 교섭이 평행선을 달리고 중앙노동위원회의 두 차례 조정이 결렬되면서 향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주 4.5일제와 같은 정책 도입의 필요성은 장시간 노동 해소에 있다. 은행 직원들은 한주에 평균 8.3시간 남짓 연장근무를 수행하고 있다. 영업점 기준 아침 8시 이전 출근 직원이 12.9%, 저녁 7시 이후 퇴근자는 23.1%나 된다. 국내 은행 직원들의 주당 평균 실노동시간은 약 48.8시간으로 유럽연합(EU) 14개국의 정규직(39.8시간)에 비해 10시간 정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일상적인 장시간 노동의 삶은 개인과 가족의 일과 삶의 균형은 물론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시중은행 7곳의 지난 8년 동안의 출생아 수는 64%나 감소했다. 2015년 2600명에서 2023년 900명대 이하로 떨어졌다.
한국 합계 출산율 0.72명의 요인을 장시간 노동에서 찾아야 한다는 논문이나 지적을 곱씹어 봐야 한다. 최근 남재욱 박사는 논문에서 “총근로시간 자체보다는 주40시간 미만 노동자 비율이 출산율을 낮추는 데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하버드대학 클로디아 골딘(Claudia Dale Goldin) 교수 또한 “한국 기업은 사회의 변화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며 장시간 노동과 저출산·저출생 문제를 지적했다.
결국 주 4.5일제나 주 4일제가 노동자의 산재·병가를 줄일 수 있다면, 이에 따른 기업 유인도 같이 따져봐야 한다. 직장생활 만족도 상승은 동기유발 및 생산성 향상에도 적지 않은 요인이 될 것이다. 스트레스·피로 감소·수면의 질 개선 등은 퇴직률을 낮추는 기제가 된다. 특히 기피 업무에서의 신규 채용 증가나 고객 불만 감소 등 생산성과 직결된 결과들도 확인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은 고령화 시기 생애주기 평생학습과 자기개발을 위한 시간과 기회를 주는 정책이 된다. 물론 여행과 문화·여가 등 다양한 내수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고용주와 직원, 그리고 시민 모두의 이익 찾아야
안정적인 수익구조와 규모의 경제를 갖춘 은행에서 주 4.5일제 정책의 가장 큰 쟁점은 1인당 노동생산성과 금융 서비스 제공 역량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 국가적 차원에서 두 차례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는 생산성과 일자리 모두 증가했다. 1989년~1991년 사이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근로시간 단축하면서 노동생산성은 3.6% 상승했고 일자리는 4.7% 증가했다.
2004년~2011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할 때는 10인 이상 제조업의 1인당 실질 부가가치는 1.5% 향상하고 일자리는 5.2% 증가했다. 표준 노동시간인 법정 노동시간 단축은 중소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과 같은 국가의 제도적 개입을 통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은행의 주 4.5일제 도입 과정에서 고객의 서비스 제공과 생산성 유지 전략은 노사가 지혜를 모아 논의할 부분이다. 사실 지난 10여년 동안 은행 노사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운영했다. 예를 들면 저녁 7시30분 이후 컴퓨터 시스템 일괄 차단(PC-OFF)이나 지점장 성과평가의 노동시간 통계 반영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몇 년 간 은행은 업무 워크플로우 최적화, 고객과의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등을 위해 다양한 투자를 강화했다. 최신 생성형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한 고객 데이터 분석, 디지털 고객 등록 프로세스 등의 신속성은 디지털 뱅킹으로 전환돼 고객의 기대치를 충족하고 있다.
해외 노사 합의를 통한 주 4일제 사례에서 시사점을 찾을 필요도 있다. 호주 금융 서비스 기업 인시그니아(Insignia)는 2024년 11월 주 4일제 시범 운영을 노동조합과 합의했다. 노사합의 사항은 주 4일제 시범 운영, 재택근무 권한 확대 등이다. 노동조합은 주 4일제 시범 운영 과정에서 AI가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이는 단순히 이익만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주 4일제 시범 운영은 호주 금융산업에서 처음 시행되는 것이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과도한 근무시간 문제로 점점 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주 4일제 도입을 결정했다는 데 그 의의가 크다.
호주 보험회사(Medibanks)의 주 4일제 주요 결과에서도 ▲건강 향상 ▲수면 장애 감소 ▲업무 스트레스 감소 등 적지 않은 일과 삶의 균형이 확인된다. 특히 주 4일제 도입으로 생산성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업무성과와 직원 만족도가 크게 개선됐다. 직원들에게 시간의 여유를 선물해 기업에도 도움이 됐다. 고성과 작업 시스템과 고부가치 업무로의 전환 등 역량 창출 프로그램 도입 결과는 ▲성과 향상 ▲추가 노력의지로 나타났다. 결국 기술과 조직 혁신 방식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과 노동자 건강과 만족 모두 윈-윈하는 경영전략을 선택한 하이로드 방식(high-road)인 것이다.

저진로 방식이 아닌, 하이로드 방식에서 해법을
만약 금융 노사가 주 4.5일제 도입 과정에서 고객 접근성을 높이는 조율된 정책을 펼친다면 고객 불만의 정도는 크지 않다. 우선 은행 영업시간을 기존 9시30분∼3시30분에서 9시∼4시 등 시간조정과 고령자 특화 지점 등을 운영하면서 영업차질과 고객 불편을 해소하는 방식을 모색하면 된다.
특히 은행의 서비스 채널 중 대면방문이 많은 곳은 지점을 확대하고 접근성을 높이면 된다. 이미 금융산업의 디지털 전환으로 고객 10명 중 6명은 ‘앱’을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5년 사이 시중은행 765개 점포 폐쇄와 같은 방식이 아닌 채널 다변화 서비스 효율화 방식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적정 지점과 인력 배치 및 AI 활용으로 평균 고객 대기시간을 낮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 업무 강도를 낮추기 위해 청년 신규 일자리 확대는 사회적 책임과 서비스 질 향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이제는 주 4.5일제와 같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소극적이고 부정적 태도들에서 탈피하자. ‘노동의 인간화’나 ‘보람된 일터’를 위한 접근은 고객과 은행 모두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다. 20년 전 은행의 주5일제 논의 당시를 되짚어보면 변한 것이 없다. 당시 경제위기와 기업 도산부터 월요병과 이혼율 증가 그리고 지역 소멸론까지 다양한 논리들이 여과 없이 언론을 통해 전파됐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는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 개인의 수면과 생체리듬를 해치고, 가족생활과 사회생활을 교란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피로·기분·건강·안전·작업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속 가능한 사회와 노동을 위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면 더 중요한 목표에서 해법을 찾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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