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고물가에 지갑 닫는 소비자…“살길은 글로벌·AI·데이터” [제로 성장, 생존 전략은]①
- 3년 연속 1%대 ‘저성장’…소매유통, 경기 침체 직격탄
유통 기업 ‘양극화’ 전망…“소비 위축 장기화 경계해야”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지만 유통업계의 표정은 어둡다. 올해 국내 소매 유통 시장이 사실상 ‘제로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물가·고환율 여파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데다 가계부채 부담까지 겹친 탓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업황이 단시간에 개선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유통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해외 진출과 인공지능(AI)·데이터 기반 경영 체계 구축 등이 꼽힌다.
소매유통 성장률 5년 내 ‘최저’
한국은행과 주요 연구 기관은 2026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돌 것으로 내다본다. 한은은 지난 2025년 11월 27일 발표한 수정경제전망에서 2026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제시했다.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상과도 같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1.7%, 산업연구원은 1.9% 성장을 예측했다. 주요 기관 가운데 전망치가 2%를 넘긴 곳은 2.1%를 제시한 한국금융연구원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도다.
한은은 오는 2027년에도 성장률이 1.9%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지난 2024년까지 63년 동안 성장률이 2% 아래로 내려간 건 다섯 차례뿐이다.
▲2차 석유파동을 겪은 1980년(-1.5%)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4.9%)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코로나 팬데믹이 터진 2020년(-0.7%) ▲반도체 불황과 고금리로 수출과 내수가 동반 부진한 2023년(1.6%)이다.
2025년 1%, 2026년 1.8%에 이어 3년 연속 2%를 밑도는 저성장이 예고되면서 유통업도 경기 침체 장기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소매 유통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벌인 ‘2026년 유통산업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국내 소매 유통시장 성장률은 0.6%로 집계됐다. 최근 5년 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업계가 성장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건 ‘소비심리 위축’(67.9%)이다. 고물가 기조와 시장경쟁 심화, 가계부채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물가(46.5%) ▲시장경쟁 심화(34.0%) ▲가계부채 부담(25.8%) ▲소득·임금 불안(24.5%) 등이 뒤를 이었다.
업태별로는 희비가 갈릴 전망이다. 온라인쇼핑은 ▲합리적 소비 트렌드 확산 ▲배송 서비스 강화 등에 힘입어 3.2% 성장할 것으로 관측됐다.
오프라인 채널은 전반적으로 부진한 성장률이 예상된다. 백화점은 0.7%, 편의점은 0.1% 성장하며 사실상 정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오프라인 채널인 대형마트(-0.9%)와 슈퍼마켓(-0.9%)은 역성장이 예측됐다. ▲온라인과의 경쟁 심화 ▲소량 구매 트렌드 ▲할인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신성장 동력 발굴·경영 효율 강화 필요”
박경도 서강대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유통 기업의 생존 전략으로 ‘해외 진출’을 꼽았다. 박 교수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인구도 감소하는 상황에서 소비심리가 급격하게 반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해외 시장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K-뷰티, K-푸드 등 K-컬처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업해 해외시장을 개척한다면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 “해외 진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수 경기 침체와 인구 감소, 소비심리 위축 등이 맞물려 유통 시장의 성장 여력은 제한적이라고 본다”며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성장 부진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교수는 “향후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건 ‘인공지능’(AI)”이라면서 “AI를 ▲판매 ▲물류 ▲마케팅 ▲상품 개발 ▲매장 운영 등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에 접목해 효율을 높이고 새로운 고객과 시장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2026년 유통업계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소비 위축의 장기화’를 지목했다.
김 교수는 “고금리 기조가 길어지며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었고, 물가 상승으로 필수 지출 비중이 확대되면서 선택 소비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며 “인구 고령화와 소비 성향 변화까지 겹치면서 전체 소매 시장의 성장 동력이 약화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단기 경기 부진이 아니라 소비심리 자체가 보수적으로 굳어질 경우 재고 부담과 수익성 악화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며 “유통업체는 과잉 확장을 경계하고, 현금 흐름 관리와 효율 중심 경영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향후 유통업계는 경쟁력 있는 대형 플랫폼과 차별화된 소수 채널만 살아남는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김 교수는 “이제는 가격 경쟁이 아니라 고객을 붙잡을 수 있는 차별적 가치와 데이터 기반 전략이 생존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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