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찰떡같이 알아듣는다”…은행원 옆 AI 비서, 손님 뒤 AI 뱅커 등장
- 신한·우리·카카오 등 ‘일하는 AI’ 에이전트 도입 가속화
업무 생산성 30~50% 향상 기대…할루시네이션 리스크 관리 필요 지적도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인공지능 기능이 확산하면서 국내 금융업계에도 AI 대전환(AX)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금융권의 AI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답변하는 챗봇 수준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금융사의 전사적 시스템과 연동돼 스스로 판단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Agent) 수준으로 진화했다. 은행들은 단순한 디지털 채널 확보 경쟁을 넘어 누가 더 똑똑하고 유능한 ‘AI 비서’를 조직 내부에 이식하느냐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최근 ‘AI 네이티브 은행’으로의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단순히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AI가 고객의 의도를 먼저 파악해 해결책을 제안하는 비서형 금융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다. 올해 3분기에는 ‘투자 탭’과 ‘결제홈’을 도입하며 여기에 생성형 AI를 결합한 투자 에이전트를 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객이 “요즘 주식 시장에서 상승세인 종목을 알려줘”라고 질문하면 AI가 실시간 데이터를 분석해 관련 리스트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신한·우리은행, 기업금융과 내부 통제까지 ‘AX’ 확대
신한은행은 은행원의 업무 프로세스와 고객 접점 양쪽에서 AI 혁신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서소문 등에 위치한 ‘AI 브랜치’는 ▲계좌 개설 ▲카드 발급 ▲환전 등 60여개 업무를 AI 은행원이 직접 상담하고 처리한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운영되는 이 무인 점포는 시니어 고객들에게도 자연스러운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적으로는 ‘여신심사지원 에이전트’가 핵심이다. 여신 심사에 생성형 AI를 접목한 이 시스템은 담당 직원이 업체 현황과 재무 정보를 입력하면 AI가 산업 동향, 매출 흐름, 기술 경쟁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의견서 초안을 작성해준다. 제조업, 소프트웨어 등 12개 주요 산업별로 특화 분석 엔진을 갖춰 정밀도를 높였다고 은행 측은 설명했다. 이는 숙련된 심사역의 판단 역량과 AI의 분석 속도를 결합해 기업금융 경쟁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우리은행도 전사 시스템과 결합한 ‘엔터프라이즈 레벨 AI 에이전트’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삼성SDS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고객 상담뿐만 아니라 기업여신, 자산관리, 내부통제 등 29개 핵심 업무 영역에 연내 90개, 내년 8월까지 총 175개의 에이전트를 도입하기로 했다. 묻고 답하는 AI에서 일을 수행하는 AI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셈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AX를 통해 업무 처리 속도를 약 30% 개선하고, 데이터 기반의 경영 의사결정 역량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AX에 열을 올리는 건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고객을 만나고, 늘어나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은행 내부에서도 ‘1인 1 AI’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 전북은행이 임직원 3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6 AX 생존전략‘ 교육은 이런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단순 트렌드 공유가 아니라 직원 스스로 미래 산업 재편 방향을 읽고 AI를 실무에 즉각 적용하는 역량을 키우려는 시도다.
AI는 반복 업무를 기계적으로 처리해 사람이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보고서 초안 작성 ▲법률 규정 검색 ▲문서 요약 ▲자료 번역 등 기존에 사람이 수 시간씩 매달렸던 작업을 AI 에이전트가 단 몇 분 만에 처리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AI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은행은 인력 운용의 어려움을 보완하고 장기적으로 1인당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지점이 문을 닫는 오후 5시 이후부터 오전 9시까지 비교적 단순한 금융 서비스는 AI가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AI가 일반 은행원 수준의 100%까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단순 업무 측면에서 80%까지는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고객 만족도를 충분히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생산성 극대화 vs 할루시네이션 리스크
AI가 만들어내는 ‘할루시네이션’(환각)이라는 단점이 금융권에서는 커다란 악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있다. 할루시네이션이란 AI가 만들어내는 그럴듯한 거짓 정보를 말한다. 100% 정확도가 요구되는 금융 서비스에서 거짓 정보는 자칫 대형 금융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AI가 존재하지 않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추천하거나 수익률 부분에서 거짓 정보를 제공해 투자자가 이를 믿고 실제 투자할 경우 심각한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사들도 강력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AI 에이전트의 결정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사람에게 부여하고 있다. AI는 자료를 취합하고 논리를 구성하며 리스크 요인을 제안하는데, 최종 승인은 전문 심사역이 수행한다는 뜻이다. 삼성SDS의 ‘패브릭스’ 플랫폼과 같이 기업 내부 데이터와 검증된 자료만을 기반으로 답변하도록 AI의 출처(Source)를 제한하는 기술을 도입하는 곳도 있다. 금융사가 AI를 도입할 때 가장 경계하는 할루시네이션 현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처다.
금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 AI의 지향점은 비용 절감을 넘어 ‘수익 극대화’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고객의 소비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투자 상품을 권유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것”이라며 “이런 고도의 서비스를 위해선 금융 사고를 예방하는 기술까지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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