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유가와 금리, 과거처럼 안 내려갈 수도”…인플레 고착화 ‘경고음’ [이코노 인터뷰]
- 오건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
“중동 전쟁 끝나도 에너지 비용 부담 지속 우려”
“반도체 쏠림에 작은 충격에도 시장 흔들릴 수도”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전쟁은 끝나도 ‘비용’은 남는다. 지금 자산시장은 전쟁 이후를 바라보며 거래되고 있지만, 중동 전쟁이 막을 내려도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원유 공급 재개와 별개로 해양 운송비와 보험료, 재고 확보 경쟁까지 포함한 ‘에너지 비용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물가를 자극할 요인이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들이 다시 인플레이션을 경계하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건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시장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특히 그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수 있고 그러면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으로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고유가에 인플레이션 재상승 가능성
오 단장은 고유가 현상에 대해 “전쟁이 끝나고 호르무즈 해협이 뚫리면 원유 공급이 늘어나 유가가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유 생산 설비 자체가 훼손된 부분이 많고 복구에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기존 수준으로 바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운송비 부담을 중요한 변수로 꼽았다. 오 단장은 “운송비 안에는 통행료와 용선료·보험료·인건비 같은 것들이 모두 들어간다”며 “문제는 전쟁이 끝났다고 민간이 바로 위험지역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용선료와 보험료, 인건비가 모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제유가 자체보다 실제 경제가 체감하는 에너지 비용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단장은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나 브렌트유 가격 숫자 자체보다 실제 경제가 체감하는 에너지 비용이 중요하다”며 “전쟁 이후에는 각국이 원유 재고를 더 많이 쌓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높은 원유 가격에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에 따라 에너지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그는 이런 흐름이 결국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오 단장은 “에너지 가격이 기존 수준으로 쉽게 되돌아가기 어렵다면 결국 인플레이션 요인이 남아 있다는 의미”라며 “물가가 기존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금리 역시 과거보다 높은 수준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 연준 분위기 역시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연준은 그동안 금리 인하 쪽으로 천천히 방향을 틀고 있었다”며 “금리 정책이 항공모함 운행과 비슷해서 한 번에 확 돌릴 수는 없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추가 금리 인하’라는 표현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왔다”며 “인하와 인상 가능성을 모두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단장은 “지금 연준은 물가 쪽에 무게를 더 두기 시작했다”며 “유럽중앙은행이나 일본은행에서도 성장 둔화와 함께 물가 상방 압력이 있다고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병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며 “(물가를) 초기에 잡지 못하면 고질병처럼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40점이던 학생을 80점까지 올리는 것보다 80점에서 90점으로 올리는 게 더 어렵다는 비유를 들고 싶다”며 “인플레이션 역시 마지막 구간이 어렵고 다시 (물가가) 흔들릴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케빈 워시, 금리 강조한 그린스펀 지향
오 단장은 미 연준의 새 의장 케빈 워시에 대해 전임 의장들과는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케빈 워시는) 그린스펀이 되고 싶어 하는 느낌이 있다”며 “그린스펀 시절에는 금리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했고 시장과의 소통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버냉키 이후 연준은 포워드 가이던스를 통해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고 설명했다. 오 단장은 “금융위기 이후에는 ‘몇 년 동안 금리를 안 올리겠다’ 같은 식으로 명확한 시그널을 줬다”며 “하지만 케빈 워시는 시장 원리에 조금 더 맡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케빈 워시가 바라보는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다른 측면이 있다며 “연준이 물가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에 정치권의 압박을 받게 된 것이고, 결국 연준 스스로가 독립성을 흔들리게 만든 측면이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케빈 워시는)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정책이 아니라 경기 부양에 직접 나서 양적완화를 하고, 이로 인한 자산 가격 상승과 불평등 확대를 유발하는 것은 중앙은행 역할이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며 “연준의 대차대조표 확대는 비판적으로 보고 금리를 통한 정책은 정직한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오 단장은 지금의 미국은 그린스펀 시절과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미국 부채 규모도 훨씬 크고 물가 수준도 높다”며 “전쟁 리스크까지 있는 상황에서 과거 방식이 그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 (케빈 워시는) 시장으로부터 강한 테스트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괴리 확대
최근 코스피 강세와 관련해선 “금융시장은 전쟁 자체보다 전쟁 이후 어떤 산업이 살아남을지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AI 투자 사이클이 강하다 보니 반도체 관련주 중심으로 자금 쏠림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시장은 결국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 요인으로 꼽았다. 오 단장은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금융자산 고평가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작은 충격에도 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 단장은 “최근에는 반도체와 일부 성장주로 자금 쏠림이 강한 것 같다”며 “하지만 시장 분위기가 바뀌면 다시 채권이나 금 같은 자산이 주목받는 국면이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처럼 한 방향으로 과도하게 쏠리는 투자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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