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반도체-비반도체 간 깊어지는 K자형 양극화[한국경제 K자형 성장의 그림자]②
- AI 수요 중심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반도체·전력기기
글로벌 불확실성에 위기 맞은 화학·철강·건설업
[이코노미스트 김두용 기자]
반도체와 비반도체 산업 간의 ‘K자형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중심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반도체는 ‘슈퍼사이클’에 올라탔고, 전력기기도 호황을 맞고 있다. 반면 그동안 한국 경제를 떠받쳤던 전통의 제조업인 석유화학과 철강을 비롯한 건설업 등은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로 위기를 맞고 있다.
메모리 가격 역대 최고 ‘슈퍼사이클’
올해 한국 경제는 반도체와 비반도체로 나뉠 정도로 극단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5월 ‘반도체와 반도체 이외 제조업의 경기 양극화 현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까지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종 중 반도체의 생산능력지수는 5년 만에 80%포인트(p) 상승했다. 하지만 비반도체 생산능력은 같은 기간 오히려 14%p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산업의 생태계 내부에서 이런 극단적인 흐름은 AI 시대 전환과 맞물려 있다.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수요 확대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전 세계 D램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다. 폭발적인 수요에 메모리 가격도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5월 27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매출이 전 분기 대비 80% 증가한 970억 달러(145조50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 대비 260% 급증한 사상 최대 매출이다. 이중 K-반도체의 양대산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점유율 38%, 29%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반도체 메모리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급등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여기에 AI 수요 확대가 지속되고 있는 흐름이라 반도체 가격은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슈퍼사이클’에 떨어지는 떡고물도 많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반 기업들은 상상할 수 없는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2026년 임금협약이 체결되면서 반도체 담당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직원들은 성과급만 6억원을 수령하게 됐다. 이로써 연봉 1억원을 받는 직원 기준으로 총급여는 세전 7억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이 같은 총급여 수준은 한국 대기업 직원 연봉의 7배에 달하는 거액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집계한 매출 기준 상위 500대 기업의 직원 1인당 실질 평균 연봉(2025년 기준)은 1억280만원이었다.
K-전력기기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전력기기 업체들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북미 전력 인프라 투자에 힘입어 올해 1분기에 영업이익이 18.4% 증가한 2583억원을 기록했다.
효성중공업은 북미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지난 5월 일본 에너지 개발업체와 약 110억원 규모의 고압 연계 에너지저장장치(ESS) 프로젝트 계약을 맺었다. 올해 일본 ESS 시장에 진출했는데 상반기 누적 수주액 약 640억원으로 국내 전력기기 업체 중 최대를 기록했다.
더불어 전선 업체도 수혜를 누리고 있는데 LS전선이 대표적이다. LS전선의 자회사 가온전선은 최근 미국 빅테크 AI 데이터센터에 4조원대 버스덕트(금속 케이스 안에 판형 도체를 넣어 대용량 전력을 공급하는 배전 시스템)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는 국내 전선·전력기기 업계 통틀어 역대 최대 공급 계약 규모다.
철강·화학·건설 ‘힘겨운 버티기’
전통의 제조업들은 녹록지 않은 글로벌 환경과 장기 침체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석유화학·철강·건설업이 대표적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639개사의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실적을 살펴보면 건설 업종의 매출이 전년 대비 -10.53%나 감소했다. 화학 업종 역시 -4.4% 줄면서 약세를 나타냈다.
석유화학 업계는 정부의 주도 하에 강도 높은 구조 개편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산 산단 입주 기업들이 구조개편안을 제출했고, 산업통상부가 1호 프로젝트를 승인한 상황이다. 이어 여수 산단 입주 기업인 여천NCC과 롯데케미칼 등도 사업재편안을 확정하고 기업결합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에 따르면 LG화학(-497억원)과 여천NCC(-242억원) 등은 영업손실이 가장 컸던 10대 기업에 포함되기도 했다.
석화 업계에는 희망퇴직 칼바람과 임시 휴업 등 ‘힘겨운 버티기’가 지속되고 있다. LG화학을 비롯해 롯데케미칼 등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LG화학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2026년 이전 입사자’로 대상을 확대한 희망퇴직을 공고한 바 있다. 또 LG화학 청주공장의 경우 경영 악화로 올해 말까지 첨단사업본부 내 일부 사업부 직원들의 임시 휴업을 결정하기도 했다.
철강 업체들도 철강산업 위기에 따른 정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등 사투를 벌이고 있다. 국내 양대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노동조합은 “현재 철강산업은 세계적 수요 침체와 공급 과잉, 탄소·에너지 비용 급등, 유가·환율 상승이 동시에 덮친 복합위기에 직면했다. 철강은 방산·자동차·조선 등 핵심 산업을 떠받치는 기반인 만큼 붕괴 시 제조업 전반으로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정부를 상대로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완화 ▲탄소배출권 제도 개선 ▲수소환원제철 등 친환경기술 전환 지원 등을 요청하고 있다.
건설업도 중동전쟁 등의 변수로 해외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5월 14일 발간한 '중동 분쟁이 해외건설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전략' 보고서에서 이번 미국-이란 전쟁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분쟁 발생 및 인접 지역(쿠웨이트·UAE·카타르·사우디·이라크 등 9개국)에서 국내 건설사 79개 사가 275건의 사업을 진행 중이고, 사업 규모가 1409억 달러(약 212조원)에 이른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금 반도체와 몇몇 산업이 성장세를 거의 주도하고 있어, 핵심 산업이 아니면 전혀 회복세를 실감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건설·화학 등의 산업은 중동전쟁 여파에 의한 고통도 큰 상황”이라며 “산업 간 양극화, 내·외수 간 양극화, 계층 간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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