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성장률은 반등했지만 청년 고용은 후퇴
반도체·AI는 성장 엔진이지만, 일자리 엔진은 아냐
성장산업과 청년 잇는 직무훈련으로 일자리 만들어야
[이코노미스트 김정민 기자] 한국 경제가 성장률 지표상으론 회복 궤도에 올라섰다.
AI 투자 확산과 반도체 수출 호조가 쌍끌이 엔진이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고, 한국 수출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2.5%로 대폭 상향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성장률 전망을 끌어올린 핵심 배경이다. KDI는 올해 수출이 반도체 호조에 힘입어 4.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 성장률 고공행진에도 청년취업 뒷걸음질
그러나 성장률 숫자와 고용시장 체감 사이의 괴리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청년층이다. 4월 청년층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19만4000명 줄었고, 청년 고용률도 43.7%로 내려앉았다. 전체 취업자 증가폭도 7만4000명에 그치며 1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둔화됐다.
산업별로 봐도 성장과 고용의 온도 차는 뚜렷하다. 4월 제조업 취업자는 5만5000명 줄었다.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취업자도 11만5000명 감소했다. 반도체와 AI가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부상했지만, 정작 제조업과 기술서비스 분야의 고용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생산성은 높지만 고용 흡수력은 낮은 산업구조로 재편되고 있어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를 끌어올리는 성장 엔진이지만, 일자리 엔진은 아니다. KDI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당 2.1명으로 전 산업 평균 10.1명의 5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대규모 설비투자와 고도 기술인력이 필요한 자본·기술집약 산업인 만큼 생산이 늘어도 고용이 같은 속도로 늘지 않는다. 반도체 호황이 성장률과 수출, 증시를 밀어올리는 동안 청년 고용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이유다. 경제는 AI·반도체 슈퍼사이클을 타고 달리고 있지만, 청년 일자리에는 그 온기가 닿지 않고 있다.
생산성 높이는 AI, 신입 일자리는 축소
AI 확산은 청년 고용의 또 다른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AI는 모든 연령대의 일자리를 같은 방식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경력이 짧은 청년층이 주로 맡아온 정형적·반복적 업무를 먼저 대체하고 있다. 자료 조사, 문서 작성, 기초 코딩, 고객 응대, 회계·경리 보조, 콘텐츠 초안 작성처럼 신입 사원이 일을 배우며 담당하던 업무를 AI 도구로 빠르게 자동화하면서 취업 문턱을 높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 현상을 ‘연공편향 기술변화’로 설명한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 행정통계를 분석한 결과, 2022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최근 3년간 청년층 일자리는 21만1000개 감소했다.
이 가운데 20만8000개, 비중으로는 98.6%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0만9000개 증가했다. 이 중 14만6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늘었다.
보고서는 AI가 경력이 짧은 청년층의 정형화된 업무를 상대적으로 쉽게 대체하는 반면, 경력에 기반한 암묵지(暗默知)와 사회적 기술이 필요한 업무에서는 보완적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이 변화는 채용 현장에서도 청년층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과거에는 신입을 뽑아 자료 조사, 문서 작성, 기초 분석, 고객 응대 같은 업무를 맡기며 내부에서 훈련시키는 구조가 가능했다. 그러나 AI가 이 같은 기초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기업이 신입을 채용해 교육할 유인은 약해지고 있다.
반대로 산업과 직무 맥락을 이해한 상태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는 경력자와 숙련 인력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AI 활용 능력이 아니라, 업무 경험과 결합된 AI 활용 역량이다. ‘AI를 잘 쓰는 청년’보다 ‘업무를 알고 AI를 활용하는 경력자’가 더 선호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업정책과 고용정책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입 채용 인센티브, 기업 내 직무훈련 지원, AI 전환 직무교육, 청년의 초기 경력 형성 프로그램이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의 과실이 일부 산업과 숙련 인력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고용 사다리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이테크·아날로그 결합, 네오 블루칼라 양성해야"
실제 정부의 직업훈련도 AI 시대에 맞춰 확장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부터 K-디지털 트레이닝 내 ‘AI 캠퍼스’를 운영하며 AI 전문인력 양성에 나서고 있다.
K-디지털 트레이닝은 AI·빅데이터·반도체·로봇 등 디지털·첨단산업 분야 취업 희망자를 대상으로 기업 현장의 실제 프로젝트를 훈련 과정에 반영해 실무형 인재를 키우는 사업이다.
단순 이론교육이 아니라 기업 과제를 수행하며 직무 경험을 쌓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정부가 AI 전환교육을 확대하는 것은 청년 고용정책이 단순 구직 알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입 채용이 줄어드는 AI 시대에는 청년이 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AI 활용 역량과 직무 경험을 함께 쌓을 수 있도록 초기 경력 형성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전 산업인력공단 이사장)는 이 같은 변화를 ‘네오블루칼라’의 부상으로 설명한다. 그는 “하이테크와 아날로그가 결합한 네오블루칼라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일자리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며 “AI가 탑재된 첨단 가공장비가 있어도 미세한 오차를 잡아내는 숙련공의 기술이 없으면 활용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축적된 경험을 현장에서 직접 구현하는 하이브리드형 숙련기술인을 양성하는 것이 AI 시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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