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와 AI]③
자율주행이 바꾸는 도로, 주차장, 도시의 모양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3월 필자는 강남에서 심야 자율주행 택시가 유료화됐다는 뉴스를 봤다.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운전대를 잡지 않는 안전요원만 탄 채 강남 일대 20㎢를 누비는 택시. 누적 탑승 7700건 넘게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서울시는 올 하반기 상암에서 아예 운전석이 비어 있는 로보택시를 시범 운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사를 읽으며 떠오른 것은 기술에 대한 감탄이 아니었다. '저런 차가 많아지면, 과연 서울은 지금과 같은 모습일까.' 알고리즘의 편향과 플랫폼이 삼키는 골목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변화라면 자율주행차는 눈에 보이는 변화다. 어떻게 변할까? 어떤 모습이 돼 있을까.
실험이 끝나고, 일상이 시작되다
국내에서도 기업들이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강남 심야 로보택시를 운영하는 SWM 역시 관련 기술 고도화에 나서며 실증 운행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한국은 아직 완전 무인 로보택시를 상용으로 운영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전국 30여 개 시범운행지구에서 자율주행 서비스가 운행되고 있고, 상암과 강남 등 일부 구역에서는 레벨4 수준의 완전자율주행을 목표로 한 실증도 시작됐지만, 현행법은 여전히 시험운전자 탑승을 전제로 하고있다. ‘무인’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좀 다르다. 미국에서는 구글 자회사 웨이모(Waymo)가 일부 대도시에서 운전석이 비어 있는 로보택시를 상용 운영하고 있다. 서비스는 아직 도시 내 제한된 구역에서 이뤄지지만, 주당 수십만 건의 승차가 이뤄질 만큼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도쿄와 런던 진출도 예고돼 있다. 중국에서는 바이두의 아폴로 로보택시가 충칭과 우한 등지에서 수백만 건의 무인 승차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자율주행은 어디선가의 '실험'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의 '일상'이 되고있다.
미국의 법학자 B. W. 스미스와 M. 완슬리는 올해 도시정책 매체 ‘바이털 시티(Vital City)’에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로보택시가 장기적으로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높이고, 버스가 끊긴 심야나 노선이 닿지 않는 외곽의 이동권을 넓히며, 주차 수요를 줄여 도시의 땅을 자동차로부터 되찾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원하는 대로 규제를 풀어주기만 해서도, 안전이 불안하다며 기술 자체를 막아버려서도 이 미래는 오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도시행정과 정치가 기술에 조건을 달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차장과 스프롤, 두 얼굴의 자율주행
미국의 일부 도시에서는 도심부 토지의 평균 20~26%가 지상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디트로이트나 라스베이거스처럼 30%를 넘는 도시도 적지 않다. 서울은 주차 공간 대부분이 건물 지하에 묻혀 있어 지상에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주차 인프라가 도시 구조를 규정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아파트 단지 설계의 상당 부분이 주차 대수 확보에 맞춰지고, 건축비의 적지 않은 비율이 지하 주차장 공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로보택시처럼 한 대의 차가 여러 승객을 돌아가며 태우는 방식이 보편화되면 이 구조가 흔들린다. 차가 한자리에 세워져 있을 이유가 줄어들고, 도심 한복판에 지금처럼 많은 주차 공간이 필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도시가 주차장에 내줬던 땅이 다른 가능성을 향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율주행의 도시 효과를 오랫동안 추적해온 캐나다 빅토리아 교통정책연구소(Victoria Transport Policy Institute, VTPI)의 토드 리트먼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정책 기조에서는 자율주행이 확대되면 도시의 외연을 팽창시킬 가능성이 높다. 교통이 편해지면 도시는 계속 확장되기 때문이다. 1960년대 고속도로가 미국의 교외화를 촉진했듯, 자율주행이 21세기판 스프롤(sprawl)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확장의 혜택과 비용이 고르게 나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금 강남 심야 로보택시가 보여주는 풍경이 그 단서다. 서비스는 승차 수요가 많고 도로 여건이 좋은 강남에서 먼저 시작됐다. 수요가 적은 외곽이나 고령 인구가 많은 동네, 심야 대중교통이 정말로 절실한 지역은 뒷순서로 밀린다. 자율주행이 가져다줄 편리함이 클수록, 그 편리함에 먼저 닿는 곳과 끝까지 닿지 않는 곳의 격차도 함께 벌어질 수 있다.
기술은 달리는데, 도시는 준비됐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자율주행 로보택시가 교차로에서 멈춰 서거나 소방차·구급차 통행을 막았다는 논란이 반복돼 왔다. 교통 신호나 통신망이 마비되는 상황에서 로보택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도시 전체의 교통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전력 ▲신호 체계 ▲응급 서비스라는 도시의 다른 인프라와 엉켜 있을 때, 한쪽이 흔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뉴욕에서는 주지사가 로보택시 시범 법안을 내놨다가 논란에 밀려 철회했고, 연방 의회에서는 도시와 주의 자율주행 규제권을 선점하려는 법안이 올라왔다. 기술을 허용할 권한이 도시에 있는지, 연방에 있는지, 아니면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하는지를 두고 정치적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 사정은 또 다르다. 세종시가 자율주행 빅데이터 관제센터를 짓고 광역 버스 노선을 깔았지만, 아직은 안전요원과 운전원이 함께 타야 한다. 법이 완전 무인 상용화까지는 열어주지 않은 셈이다. 강남의 심야 택시도, 상암의 무인 로보택시도, 제도가 열어주는 만큼만 갈 수 있다. 도시 인프라는 한번 깔리면 수십 년을 간다. 지금 그리는 도로와 주차장이 자율주행 시대에도 쓸모 있으려면, 제도의 시계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 자율주행은 단순히 교통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로를 바꾸고, 주차장을 바꾸고,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를 바꾸고, 결국 도시의 모양을 바꾼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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