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엔화 가치 ‘급락’에 놀란 韓·美·日…‘엔저 방어’ 전격 공조 나선 속내
- 미·일 공조로 환율 시장 전격 개입
미 국채시장 리스크 차단과 수출 경쟁력 방어
한국의 원·엔 경쟁력 유지 필요성 커져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엔화 가치가 곤두박질치자 미국·일본·한국이 엔화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표면적인 명분은 엔화 약세를 저지한다는 것이지만 엔화 가치 급락 상황에서 자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은 엔화를 매입하고 미국 재무부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유로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우리는 엔화의 상당한 저평가를 시정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단호한 시장 및 통화 정책 조치를 강력히 지지한다”고 2일(현지시간) 엑스(X)를 통해 밝혔다. 그는 “지난 7월 31일 공조된 외환시장 개입은 무질서한 엔화 변동성에 대응했다”며 “재무부는 일본 재무성 및 일본은행과 긴밀히 소통하며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공동 개입 참여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도 지난달 31일 미국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엔화 매수 개입을 실시했다고 3일 담화문을 통해 밝혔다. 교도통신과 NHK는 가타야마 재무상이 “최근 나타난 엔화의 과도한 변동과 무질서한 움직임에 대처한 것”이라며 “미국과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면서 앞으로의 추가 공동 개입에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일본의 이런 움직임에 한국도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투자증권은 한국 외환당국의 달러 매도·원화 매수 개입이 야간시장에 유입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1418원대까지 하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25일 163.84엔까지 치솟았다가 미국과 일본의 공동 대응 이후 157엔대까지 내려왔다(엔화 가치 반등). 같은 기간 원화 대비 엔화(100엔 기준) 환율은 893.54원까지 떨어졌다가 913원 수준으로 상승했다.
미국과 일본의 공조 배경에는 미국이 자국 국채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 중 하나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 일본 외환당국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대거 매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미국 국채 가격이 떨어지고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지금도 기준금리 인상 압박을 받는 연방준비제도(Fed) 입장에서 국채 금리가 상승할 경우 쓸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 엔화 약세로 달러화 초강세 현상이 이어질 경우 미국과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우려도 함께 커진다. 외환시장의 한 전문가는 “달러 가치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미국 주요 수출 기업은 물론 외환당국도 움직임에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엔화 폭락을 저지하는 것이 미국 자체 경제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외환당국도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내다 파는 방식으로 수급 조절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외환시장에서 달러 공급을 늘려 달러 가치를 낮추고 원화 가치를 올리는 직접적인 수단 중 하나다.
엔화 가치만 떨어질 경우 자동차·철강·석유화학·조선 등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합하는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달러 매도로 인한 원·엔화 가치 상승은 일정 수준의 원화 가치를 지키면서 일본과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한국의 고육책이라는 뜻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본이 미국 국채를 매도하지 않고도 미국에서 국채를 담보로 달러를 끌어올 수 있는 환매조건부채권(레포·Repo) 기구를 미국이 언급한 것은 그만큼 엔화 가치 하락이 미칠 국제적인 영향력이 크다는 뜻”이라며 “당분간 한·미·일 외환당국의 공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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