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정품 맞아?…에이피알 메디큐브 덮친 ‘수단레드 미스터리’
- [K화장품 잔혹사] ①
싱가포르선 검출, 같은 배치번호 국내 검사선 ‘불검출’
공식 수출·공급 이력도 없어…정품 여부·유통경로가 열쇠
특히 싱가포르 보건과학청(HSA)이 수단Ⅳ를 검출한 제품과 같은 배치번호가 표시된 제품을 국내에서 검사했지만 결과는 불검출이었다. 해당 배치번호는 에이피알이 실제 생산한 제품에 부여한 번호다.
반면 수단Ⅳ가 검출된 제품을 판매한 업체는 에이피알의 공식 공급처가 아니다. 같은 배치번호를 단 제품에서 왜 다른 결과가 나왔는지, 문제의 제품이 어떤 경로로 싱가포르에서 판매됐는지가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같은 배치번호인데 결과는 달랐다
논란의 시작은 홍콩이었다. 지난 7월 홍콩 세관이 시중에 유통되던 ‘메디큐브 PDRN 핑크 콜라겐 캡슐 크림’을 검사한 결과 수단레드가 확인됐다. 현지 당국은 소비자에게 사용 중단을 안내하고 판매도 중지시켰다. 다만 제품의 배치번호와 유통경로는 공개하지 않아 에이피알의 공식 유통망을 거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홍콩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싱가포르 보건과학청(HSA)도 현지 유통 제품을 검사했다. 에이피알 싱가포르 법인(APR SG), 비너스뷰티(Venus Beauty), 리로라 인터내셔널(Rirora International) 등 판매처 3곳에서 제품을 확보했다.
검사 결과는 한 곳에서만 달랐다. APR SG와 리로라 인터내셔널 제품에서는 수단Ⅳ가 나오지 않았지만 비너스뷰티가 판매한 샘플 2개에서는 미량이 검출됐다. 해당 제품에는 ‘2E122I·2E117I’와 ‘2E191G·2E193G’라는 배치번호가 표시돼 있었다. HSA는 지난 8월 26일 이들 제품을 리콜했다.
수단레드는 붉은색을 내는 합성염료로 화장품에는 사용할 수 없다. 다만 HSA는 검출량이 미량으로 해당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에게 심각한 건강상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관련 이상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다.
HSA는 문제가 없는 배치의 판매 재개를 허용했다. 다만 추가 안전조치로 싱가포르에서 판매되는 모든 배치를 공인기관에서 검사하고 시험성적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에이피알이 별도로 진행한 검사에서도 수단레드는 나오지 않았다. 회사는 한국과 중국 본토·대만·싱가포르·홍콩 등에서 해당 제품군을 검사해 불검출 결과를 확보했다. HSA에서 수단Ⅳ가 검출된 제품과 동일한 두 배치번호 제품도 국내 공인시험기관에 맡겼다. 지난 4일 나온 결과 역시 불검출이었다.
두 배치번호는 에이피알이 2025년 실제 생산한 제품에 부여한 번호다. 다만 출고·수출 기록을 확인한 결과 해당 배치 제품을 싱가포르로 공식 수출한 이력은 없었다. 현재 해당 배치의 시중 유통 물량과 회사 보유 재고는 소진됐다. 국내 검사에는 회사가 내부적으로 확보한 샘플을 사용했다.
중요한 점은 HSA와 에이피알이 검사한 제품이 동일한 실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치번호는 같지만 각각 별도의 샘플을 검사했다. HSA가 검사한 제품을 에이피알이 재검사해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현재 검사 결과만으로 어느 단계에서 차이가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공식 공급처 아닌데 진짜 배치번호…출처 미궁
검사 결과가 엇갈리면서 제품의 출처와 유통경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수단Ⅳ가 검출된 제품을 판매한 비너스뷰티는 싱가포르에서 여러 매장을 운영하지만 에이피알의 공식 공급처는 아니다.
에이피알 관계자는 “당사가 확인한 범위에서는 비너스뷰티와 당사 간 직접적인 거래 또는 공급 이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비너스뷰티의 제품 공급처나 구체적인 유통경로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에이피알은 HSA가 검사한 제품의 실물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포장과 용기, 내용물 등을 자사 정품과 비교해 정품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제품이 어떤 경로로 비너스뷰티에 들어갔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 다른 국가에 공식 출고된 정품이 병행수입이나 재판매 등을 거쳐 싱가포르로 유입됐을 수 있다. 반대로 가품 제작 과정에서 실제 제품의 배치번호가 사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품의 실물과 유통경로가 확인돼야 판단할 수 있다.
메디큐브 가품은 이미 해외에서 적발된 사례가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 5월 광둥성 자오칭의 위조 화장품 생산시설에서 메디큐브 가품 1400여개가 압수됐고, 루마니아에서도 가품이 적발됐다.
이번 논란은 해외 사업 비중이 빠르게 높아진 에이피알에도 과제를 던졌다. 에이피알의 올해 상반기 해외 매출 비중은 90.5%로 2024년 55.3%, 지난해 80.3%에서 크게 높아졌다. 해외 판매가 늘어날수록 공식 유통망 밖에서 거래되는 제품의 출처와 정품 여부를 확인하는 문제도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원인을 밝히려면 HSA가 확보한 제품의 출처와 정품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어떤 경로로 비너스뷰티에 공급됐는지, 에이피알이 생산한 정품과 동일한 제품인지가 확인돼야 수단Ⅳ 검출 원인도 좁힐 수 있다.
에이피알 관계자는 “HSA가 비너스뷰티에서 확보한 제품 실물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며 해당 제품을 가품이라고 단정하거나 공식 판단을 내린 상태는 아니다”며 “현재 확인 가능한 시험 결과와 제품 정보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으며, 확인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단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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