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선택에는 늘 ‘계산’이 있습니다. 투자와 인사, 지배구조 개편부터 신사업과 정책 대응까지, 겉으로 드러난 숫자와 발표만으로는 재계의 속사정을 모두 알기 어렵습니다. ‘김정훈의 재계:산’은 기업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결정 뒤에 숨은 셈법과 이해관계를 하나씩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9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경제대도약위원회 출범식에 공동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왼쪽은 공동위원장인 조정식 국회의장.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국회와 경제계가 기업 규제와 입법을 직접 논의할 창구가 생겼다. 지난 9일 출범한 ‘국회 경제대도약위원회’는 조정식 국회의장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산업, 조세·재정, 공정거래·자본시장 등 3개 분과를 가동한다.
출범식에서 최 회장이 강조한 것은 ‘속도’였다. 그는 “지금은 속도전이기 때문에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대도약의 찬스를 잃는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투자와 사업 속도를 높이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규제 개선과 입법이 뒤따르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재계는 국회에 어떤 규제를 풀고, 어떤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까. 경제계의 요구를 뜯어보면 결국 ‘투자는 빠르게, 지원은 오래, 규칙은 명확하게’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투자는 빠르게”…메가프로젝트 규제부터 걷어낸다
경제대도약위원회는 이미 국회에 전략산업 경쟁력 강화와 미래성장동력 확충, 기업활동 활성화 등 3대 어젠다를 중심으로 기업 현장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 측은 위원회가 국회에 제안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히며 “기업 현장의 목소리가 실질적인 입법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회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3개 분과 중 산업분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장기간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규제 변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장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 것은 메가프로젝트의 안착이다.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AI·배터리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민간투자와 정부의 인프라·제도 지원을 결합해 추진하는 장기 사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참여하는 반도체 클러스터처럼 부지 조성부터 공장 건설, 전력·용수 공급망 구축, 협력업체 입주까지 길게는 10년 이상 걸린다. 사업 도중 노동·환경 등 관련 제도가 바뀌면 투자계획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우려다.
연구개발(R&D) 인력의 근로시간 유연화도 주요 과제다. 실제 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여당 관계자에 따르면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의 선결 과제로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포함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등이 건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특별 프로젝트의 경우 노동 관련 제도를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최태원 공동위원장 입장에서도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와 인력 이동 문제가 얽혀 있어 관련 법적 걸림돌을 해소하는 데 적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산업의 ‘투자 시간’을 줄여달라는 요구도 나온다. 반도체·배터리·AI 데이터센터는 부지부터 환경, 전력망, 용수까지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재계에서는 특정 사업에 패스트트랙을 적용하는 것을 넘어 첨단산업 전반에 신속한 인허가 체계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도 용인시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지원은 오래, 규칙은 명확하게”…세제·공정위도 숙제
조세·재정분과에서는 지원의 지속성과 예측 가능성이 화두다. 반도체·AI 투자는 수년에 걸쳐 집행되는 만큼 투자세액공제 등 지원이 언제까지 유지되는지가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일본 등이 전략산업에 세제혜택과 직접 지원을 병행하는 만큼 국내 지원 역시 기업의 장기 투자계획에 맞춰 안정적으로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정거래 분야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완화 등 경제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규제 개선안이 이미 건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제재 과정에서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사후적으로 처분이 취소되거나 제재 수준이 낮아졌을 경우 기업이 부담한 비용을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본시장에서는 주주 보호를 강화하는 동시에 정상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 사업재편 과정에서 경영진이 부담할 법적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가 예상된다. 경영판단의 기준이 불명확하면 기업의 투자와 사업재편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관건은 경제계의 건의가 이번에도 ‘경청’에 그칠지,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질지다. 과거에도 정치권과 경제계의 협의체는 적지 않았지만 현장의 요구가 입법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에는 국회와 실제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의 수장이 힘을 모은 만큼 기업들의 사업을 가로막는 규제를 걷어내기 위한 입법 논의가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다는 기대가 이전보다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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