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잘 팔려도 문제…200개국 뚫은 K뷰티 ‘규제 청구서’
- 미국·EU·중국마다 성분·등록·표시 기준 제각각
라벨 변경 넘어 처방까지…정부, 국가 간 규제 협력 추진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2025년 114억달러(약 15조5600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으로 올라섰고 최대 수출 시장도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수출 대상국 역시 200개국을 넘어섰다. 수출 영토가 넓어질수록 기업이 상대해야 할 규제도 다양해지는 구조다.
나라 바뀌면 라벨 바꾸고, 선크림은 처방까지
K-뷰티 기업들이 해외에서 거쳐야 하는 절차는 시장마다 다르다. 미국에서는 화장품규제현대화법(MoCRA)에 따른 제조시설 등록과 제품 리스팅 등의 의무가 적용된다.
유럽연합(EU)은 화장품제품신고포털(CPNP) 신고와 제품정보파일(PIF), 화장품 안전성 보고서(CPSR) 등이 필요하다. 중국도 일반 화장품을 대상으로 별도의 등록·신고 절차를 운영한다.
차이는 실제 진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에서 드러난다. 한 화장품 규제대응(RA) 전문업체에 따르면 일반 스킨케어 제품 1개를 기준으로 미국 등록에는 통상 약 2주, 50만~100만원이 든다. EU는 약 1~2개월, 200만~300만원이 소요된다. 중국은 현지 시험과 안전성 평가, 기술 심사 등을 거쳐야 해 통상 4~5개월이 걸린다. 실제 비용과 기간은 기업이 확보한 자료와 제품 유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국가별 규제 차이는 제품 자체에도 영향을 준다. 현지 안전성 기준에 맞추기 위해 성분의 처방 한도를 조정하는 사례가 있고 라벨도 수출 국가의 표시 기준에 맞춰 별도로 제작해야 한다.
단적인 예가 자외선차단제다. 미국에서는 자외선차단제를 일반의약품(OTC)으로 관리한다.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 관계자는 “한국에서 잘 팔리는 자외선차단제라고 해도 그대로 미국에 가져가 판매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미국 기준에 맞추기 위해 성분을 빼거나 처방을 다시 만드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브랜드사도 수출국이 추가될 때마다 현지 규정을 다시 확인한다. 약 40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아로마티카는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때 현지 성분 사용 기준과 제품 등록·라벨 필수 표기사항·효능 표현 범위 등을 검토한다.
아로마티카 관계자는 “같은 제품도 국가별 기준에 따라 라벨을 따로 제작하거나 제품 정보와 관련 자료를 추가로 준비한다”며 “이 과정에서 국가별 출시 시점이 달라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소 브랜드는 안전성 등을 입증하기 위한 시험 자료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RA 업계에 따르면 PIF 등 필요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출을 진행하면 실제 판매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체적으로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업체는 외부 RA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중국과 EU 등의 규정 개정에 따른 문의뿐 아니라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시장 진출 관련 문의도 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수출 늘자 규제도 장벽…정부, 문턱 낮추기 나서
정부도 국가별 규제 차이를 K-뷰티 수출 확대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K-뷰티가 세계로 뻗어나갈수록 국가별로 다른 화장품 규제가 해외 진출의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가 간 규제 협력을 위해 출범시킨 것이 ‘글로벌 화장품 규제기관장 협의체’(GCORAS·지코라스)다. 각국 화장품 규제당국이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애로사항과 규제 차이를 논의하는 협의체다.
구체적인 규제 완화 논의도 시작됐다. 식약처는 지코라스를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 브라질, 베트남 등과 양자회의를 열었다. 자외선차단제 심사자료 간소화와 수출제품 등록 시 시험 및 기준·방법의 사전 제출 의무 완화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규제당국 간 협의로 기업 부담을 줄인 사례도 나왔다. 인도네시아가 오는 10월 18일부터 화장품 할랄 인증 표시를 의무화하는 가운데 식약처는 현지 당국과 협의해 기존 통관 제품의 적용 유예기간을 1년 연장했다. 국내 기업들이 이미 유통 중인 제품을 회수해 별도로 표시하거나 즉시 인증을 받아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아직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지코라스가 출범했다고 국가별 규제가 곧바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아니다. 성분과 안전성 평가, 제품 등록, 표시 기준 가운데 어떤 분야부터 규제 차이를 좁힐지도 앞으로 논의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등 K뷰티 주요 시장의 규제당국도 현재 지코라스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 규제당국과 소통해 지코라스 참여를 확대할 계획이다. 동시에 주요 수출국과 개별 협의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당장 부딪히는 규제를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수출 시장 다변화에 맞춰 기업의 규제 대응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K뷰티가 수출 국가를 늘리는 단계에서 이제는 각 시장에 얼마나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며 “특히 중소 브랜드가 해외 사업을 확대하려면 국가별 규제 대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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